문 닫는 44년 푸르밀 설익은 오너 책임론

도련님이 말아먹은 우유 명가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푸르밀이 사실상 백기를 들었다. 오너 2세 체제가 가동된 직후부터 휘청거리더니, 적자를 이겨내지 못한 채 사업을 접기로 한 것이다. 꼭대기에 앉은 황태자가 헛발질을 계속하는 사이 탄탄했던 회사는 순식간에 망가졌고, 피해는 직원들에게 고스란히 전가된 형국이다. 

유제품 전문 기업 푸르밀이 사업을 접기로 결정했다. 지난 17일 푸르밀은 사내 이메일을 통해 400여명에 달하는 직원에게 사업 종료와 정리해고를 통지했다. 푸르밀 측은 “코로나19 여파 등으로 4년 이상 매출 감소와 적자가 누적돼 내부 자구 노력으로 회사 자산의 담보 제공 등 특단의 대책을 찾아봤다”며 “하지만 현재까지 가시적인 성과가 없는 상황에 직면하게 돼 부득이하게 사업을 종료하게 됐다”고 밝혔다.

날치기
수순

잇따른 매각 무산이 사업 종료 결정을 내린 이유였다. 푸르밀은 경영난 해소를 위해 매각을 추진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약화된 경쟁력 역시 푸르밀의 새 주인 찾기가 실패한 배경으로 작용했다. 유업계 경쟁사들이 건강기능식품 및 케어 푸드 등으로 외연을 확장하며 포트폴리오 다각화에 신경 쓴 데 반해, 푸르밀은 유제품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사업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푸르밀의 갑작스러운 사업 종료 통보로 인해 그간 원유를 공급해왔던 낙농가와 협력업체들은 직간접적인 피해를 보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푸르밀과 자체 브랜드 상품 공급계약을 체결했던 대형 유통업체들도 대체 업체 물색에 나서야 하는 상황이다.


물론 직장을 새로 찾아야 하는 처지에 내몰린 푸르밀 임직원들이 가장 큰 피해자다. 임직원들은 임금 삭감마저 감내하면서까지 사측에 협조했지만, 이 같은 노력은 끝내 물거품이 됐다. 사측에서 통보한 사업 종료 및 정리해고일은 내달 30일이다.

몇몇 직원은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사측의 일방적인 사업 종료 및 해고 통보를 저지하고자 결집하는 모습이다. 지난 20일 푸르밀 노동조합은 성명을 내고 “이번 결정은 직원들의 가정을 파탄시키며 죽음으로 내모는 살인 행위”며 집단행동을 예고했다.

노조는 “소비자 성향에 따른 사업 다각화 및 신설라인 투자 등으로 변화를 모색해야 했으나 안일한 주먹구구식의 영업을 해왔다”며 “해고 통보 전 임직원들과 일절 협의가 없었고 보상 방안도 없이 직원들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불법적인 해고를 진행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일각에서는 푸르밀의 사업 종료 결정을 오너 경영 체제의 실패라고 규정짓고 있다. 푸르밀의 가파른 하향세가 오너 경영 체제로의 회귀 시점과 맞물린다는 점에 주목한 시각이다. 사실상 ‘신준호·신동환’ 책임론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책임은
누가?

푸르밀은 1978년 4월 설립된 롯데우유를 모태로 하는 ‘범롯데’ 기업이다. 롯데그룹에서 떨어져 나온 건 신준호 푸르밀 회장과 고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 간 얄궂은 인연에 기인한 탓이다.

신 명예회장의 막냇동생인 신 회장은 롯데건설·롯데제과 대표이사, 롯데햄·우유 부회장 등을 거치며 롯데그룹에서 영향력을 키웠다. 하지만 신 회장은 1990년대 중반 형제 간 분쟁을 거치며 그룹의 모든 직위서 해임됐다.


이런 신 회장에게 롯데우유는 재기의 발판이 됐다. 신 회장은 2007년 4월 롯데햄으로부터 롯데우유 지분 100%를 인수하면서 독자생존을 모색했고, 롯데그룹의 브랜드 사용금지 요청을 계기로 사명을 2009년 1월 푸르밀로 변경하면서 완벽한 선긋기에 돌입했다.

롯데라는 우산을 벗어 던진 푸르밀은 2009년부터 본격적인 성장가도를 달렸다. 무엇보다 2009년 남우식 대표이사를 내세운 전문경영인 체제가 신의 한 수였다. 남 대표 취임 첫해에 거둔 매출 2000억원 돌파와 분사 이래 첫 흑자라는 결과물은, 푸르밀의 홀로서기에 대한 세간의 우려를 불식시키는 데 일조했다.

이후 푸르밀은 유업계서 확실한 영역을 구축해나갔다. 매출은 2012년 3000억원을 찍은 뒤 조금씩 내림세를 나타냈지만, 흑자 행진은 2017년까지 쉼 없이 이어졌다.

꾸준히 순이익을 발생시킨 덕분에 남 대표 취임 직전 해인 2008년 130억원에 달했던 결손금은 2012년부터 이익잉여금으로 전환되기에 이르렀다. 급기야 2017년에는 이익잉여금이 272억원에 달할 만큼 내실이 탄탄해졌다.

하지만 남 대표 체제는 2017년을 끝으로 종지부를 찍었다. 유업계 경쟁 심화와 유류 소비 하락이라는 악재를 헤쳐 나가기 위해서라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분위기가 조성된 까닭이다.

실제로 푸르밀은 남 대표의 마지막 임기였던 2017년에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30% 수준인 15억400만원으로 떨어졌고, 순이익은 10억원 밑으로 주저앉는 등 2008년 이래 최악의 실적을 기록했다. 창립 40주년을 앞두고 있던 만큼 눈앞에 닥친 수익성 악화를 이겨낼만한 탈출구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일방적 사업 종료·해고 통지
후계자 오고 귀신같이 미끌∼

변혁을 꾀하고자 꺼낸 카드는 오너 경영 체제로의 회귀였다. 남 대표가 사임한 2017년 12월31일에 곧바로 신 회장이 후임 대표이사직을 넘겨받았고, 사흘 뒤 신동환 부사장이 대표이사로 선임되면서 부자 공동 경영 체제가 갖춰졌다.

신 회장의 둘째 아들인 신 대표는 사실상 회사의 후계자였다. 롯데우유 계열분리 과정서 지분 100%를 인수한 신 회장은 인수 직후 우리사주조합에 10%가량을 주고 나머지 90%를 보유해왔다. 신 회장은 2012년 7월, 자신이 보유하고 있던 지분 가운데 30%를 아들과 딸, 손자들에게 증여하며 승계 작업을 본격화했다.

지난해 말 기준 신 회장이 푸르밀 지분 60%를 보유한 최대주주고, 2대 주주는 딸 신경아 푸르밀 이사(12.6%)다. 신 대표는 지분 10%를 보유한 3대 주주지만, 두 아들인 재열·찬열군이 각각 보유한 지분 4.8%와 2.6%를 더하면 사실상 2대 주주다.

표면상 두 명의 대표가 지휘하는 형태였지만, 관련 업계에서는 푸르밀이 사실상 오너 2세 경영 체제로 진입했다고 해석했다. 그리고 지난해 12월31일자로 신 회장이 대표이사직을 내려놓으면서 완벽한 단독 경영 체제가 확립됐다.

신 대표는 대표이사에 이름을 올리자마자 곧바로 신제품 개발에 뛰어들었다. 1998년 롯데제과 기획실에 입사해 롯데우유 영남지역담당 이사, 푸르밀 부사장 등을 거친 신 대표는 본인이 직접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등 신제품 개발을 진두지휘했다.


이 같은 노력이 빛을 발하며 신 대표 취임 첫해에 신규 출시한 가공유 제품만 30개에 육박했다. 다른 유업체들이 신제품 출시를 머뭇거리는 모습과 사뭇 다른 행보였다. 신 대표가 불러온 신선한 바람이 회사 수익으로 연결되는 건 시간문제쯤으로 여겨졌다.

기막힌
내리막

그러나 신동환호 푸르밀은 기대치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신제품 출시가 매출 확대로 이어지기는커녕 주요 실적 지표에서 급격한 하향세가 뚜렷해진 것이다. 

신 대표 취임 직전년도에 2575억원이던 푸르밀의 매출은 2019년 2000억원을 겨우 넘기는 수준으로 떨어진 진 데 이어, 이듬해 1800억원대로 주저앉았다. 푸르밀이 1000억원대 매출을 찍은 건 2009년(1700억원) 이래 처음이었다.

수익성 악화는 한층 심각했다. 2008년(영업손실 75억원)을 끝으로 흑자전환했던 푸르밀은 신 대표 임기 첫해였던 2018년에 영업손실 15억원을 기록하며 10년 만에 적자로 전환했다.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2019년에는 영업손실이 전년 대비 6배 가까이 불어났고, 이듬해 113억원, 지난해 124억원 등 최근 3년간 연평균 영업손실이 109억원에 달했다. 2018년 580억원이었던 판관비 지출을 지난해 523억원 수준으로 줄였음에도, 같은 기간 매출총이익이 566억원에서 400억원으로 낮아지는 바람에 적자 폭이 한층 커진 모양새다.


거듭된 적자 행진은 제법 안정적이라고 평가받던 푸르밀의 재무상태를 급격히 악화시켰다. 신 대표 취임 직후부터 본격화된 현상이라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17년 102.8%에 불과했던 푸르밀의 부채비율은 2020년 223.4%로 두 배 이상 높아졌고, 지난해에는 급기야 507.4%로 치솟았다. 통상적인 적정 부채비율(200% 이하)과는 현격한 격차가 발생한 셈이다.

심각한 총자본의 감소가 부채비율 급등에 영향을 준 것으로 분석된다. 2017년 657억원으로 역대 최대치를 찍었던 푸르밀의 총자본은 적자 지속의 여파로 지난해 말 기준 143억원으로 줄었다. 흑자 행진에 힘입어 2017년까지 271억원이 쌓였던 이익잉여금이 실적 부진의 여파로 2020년에는 결손금 107억원으로 전환됐고, 결손금 규모가 한 해 만에 240억원까지 확대된 게 뼈아팠다.

총자본이 줄어든 가운데 총부채는 나날이 증가하면서 재무상태에 부담을 더했다. 2018년 572억원이던 푸르밀의 총부채는 4년 새 723억원으로 150억원가량 불어났다.

외부에서 차입한 자금이 확대되면서 부채가 덩달아 커진 형국이다. 2017년 202억원이던 푸르밀의 총차입금은 2년 만에 100억원가량 증가한 데 이어, 지난해에는 498억원으로 불어났다. 차입금 증가의 영향으로 재정건전성의 척도로 인식되는 차임금의존도(적정 수준 30% 이하)는 2017년 16.5%에서 지난해 57.5%로 올랐다.

지난해 말 기준 차입금 항목에서 두드러진 특징은 총차입금의 89.8%가 1년 내 상환을 필요로 한다는 점이다. 단기차입금이 408억원으로 비중이 가장 컸으며, 장기차입금 중 만기도래를 앞둔 유동성장기차입금이 40억원이었다. 상환 부담이 클 수밖에 없는 구조였던 셈이다.

본전도
못찾고…

업계 관계자는 “신 회장이 올해 초 퇴직금 30억원을 챙기는 등 오너 일가는 챙길 건 다 챙겼고, 정작 임직원들만 피해를 보게 된 양상”이라며 “신 대표가 경영권을 잡은 이후 업황이 딱히 좋다고 보긴 힘들었지만, 오너 경영 체제에서 회사가 급격히 기울어졌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라고 말했다.


<heaty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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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총질 ‘친명 전쟁’ 서막

내부 총질 ‘친명 전쟁’ 서막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당내 울려 퍼지던 비명(비 이재명)계 소리가 사라졌다. ‘내부 저격수’가 사라졌으니 이제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 중심으로 똘똘 뭉쳐 국회를 꽉 잡을 것이란 희망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다른 한쪽에서는 우려의 뜻을 내비친다. ‘이재명 독주’ 체제로 완성된 민주당이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겠냐는 점에서다. 22대 총선서 압승을 거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큰 폭으로 물갈이에 나섰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주요 자리에 친명(친 이재명)계 인사들을 대거 투입했다. 친명 위주의 인선을 단행해 원팀 민주당을 꾸리겠다는 셈이다. 공천 파동을 딛고 살아남은 친명 의원들이 일제히 한 보 전진했다. 피바람 잦아드니… 지난 21일 이 대표는 사무총장에 김윤덕 의원을 임명했다. 김 의원은 이번 총선서 전략공천관리위원회 위원을 지낸 인물로 지난 20대 대선 경선 당시 이재명 후보의 열린캠프서 활동한 바 있다. 조직사무부총장은 황명선 당선인, 당 대표 정무조정실장에는 김우영 당선인, 전략기획위원장은 민형배 의원 등 친명계가 이름을 올렸다. 민주당의 정책을 이끌 민주연구원장에는 이 대표의 ‘정책 멘토’로 알려진 이한주 전 경기연구원장이 선임됐다. 이 원장은 이 대표의 ‘기본소득’을 설계한 인물로 민주당이 제시한 ‘25만원 지원금’에 전폭적으로 힘을 실어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법률위원장에는 이 대표의 대장동 변호를 맡은 박균택 당선인이 낙점됐다. 이 밖에도 당 대표 비서실장에는 천준호 의원, 당 대표 정무조정실장에는 김우영 당선인, 교육연수원장에는 김정호 의원, 수석대변인에는 박성준 의원, 대변인에는 한민수·황정아 당선인이 자리했다. 이날 한민수 대변인은 인사 소개를 마친 후 당직 개편에 대해 “4·10 총선의 민심을 반영한 개혁 과제 추진에 있어서 동력을 형성한다는 의미가 있다”며 “신진 인사들에게 기회를 부여한다는 의미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인선은 이 대표가 국회에 입성한 후 진행된 두 번째 물갈이다. 2022년 8월 이 대표가 취임 직후 단행한 인선을 두고 ‘친명 일색’이라는 거친 비판이 터져 나왔다. 곧바로 한병도·권칠승·고민정 등 대표적인 친문(친 문재인)계 인사를 등용하면서 논란을 잠재웠지만 이번 총선서 친명이 주류를 이루면서 이들을 당에 대거 투입한 것으로 풀이된다. 22대 국회 문턱을 넘은 친문 세력은 약 스무명 안팎인 것으로 전해진다. 한때 민주당 180석을 지탱하던 핵심축이었지만 총선을 거치면서 세력이 급격히 쪼그라들었다. 민주당 공천을 두고 ‘비명횡사 친명횡재’라는 말이 나오자 고민정 최고위원은 위원직을 사퇴했다가 다시 복귀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이처럼 공천 피바람이 당내를 휩쓸었지만 총선 이후 이 대표를 비판하던 목소리가 단숨에 잦아들었다. 총선 결과 이후 이 대표 체제는 더욱 견고해졌다. 이 대표를 거칠게 비판하며 당을 떠나거나 새로운 둥지를 꾸린 이들이 줄줄이 낙선하면서다. ‘친명’ 타이틀 달고 꽃밭 안착 둥지 떠난 탈당파 줄줄이 낙선 새로운미래 이낙연 공동대표는 이 대표와 대립각을 세운 뒤 탈당해 새로운 당을 꾸렸다. 이번 총선서 광주 광산을에 출사표를 던졌지만 민주당 민형배 당선인에게 62.25%p로 크게 밀려 패배했다. 이 공동대표가 야심 차게 창당한 새로운미래는 지역구 한 석에 그치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개혁신당과 손을 잡은 이원욱 공동선대위원장 역시 지역구서 낙선했다. 탈당 후 국민의힘으로 이적한 ‘5선 중진’ 이상민 의원과 김영주 의원(국회 부의장)도 고배를 마셨다. 홍영표·설훈 등 다른 비명계 의원 역시 줄줄이 낙선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당을 떠나면 춥다는 걸 몸소 보여줬다”며 “소위 비명계로 분류됐던 이들이 모두 당을 떠났으니 당내 파열음이 나오지 않는 건 당연한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대부분 여의도를 떠나게 됐으니 당분간 ‘내부 저격수’로 불리는 이들의 목소리는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친명 체제에 화룡점정을 찍을 원내대표 선출 결과에도 눈길이 쏠린다. 내달 3일, 선출을 앞둔 차기 원내대표 선거가 사실상 친명인 박찬대 의원의 독무대인 만큼 ‘친명일색 민주당’이 완성될 것이란 해석이 우세하다. 박 의원은 지난 21일, 일찌감치 출마 기자회견을 열고 “이재명 대표와 강력한 투톱 체제로 개혁 국회, 민생 국회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최고위원직을 사퇴한 박 의원이 신호탄을 쏘아 올리면서 자천타천으로 물망에 오른 의원들은 속속 불출마를 선언했다. 서영교 최고위원은 지난 22일 원내대표 출마 선언을 위한 기자회견을 예고했지만 돌연 취소했다. 당 대표 ‘원픽’ 이와 관련해 서 최고위원은 “(박찬대 의원 포함)2명 다 최고위원직을 사퇴하면 제가 원내대표에 당선돼도 최고위원 두 자리가 비게 된다”며 “총선에 압도적으로 이긴 이 대표 체제에 문제가 된다는 게 처음부터 고민이었는데 사전에 조율하지 못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4선 김민석 의원도 “당원 주권의 화두에 집중해 보려고 한다”며 불출마를 시사했다. 인재위원회 간사였던 3선 김성환 의원과 원내수석부대표인 박주민 의원 역시 불출마 입장을 표했다. 민형배·진성준 의원도 하마평에 올랐지만 각각 전략기획위원장, 정책위의장에 임명되면서 자연스레 출마가 불발됐다. 이로써 원내대표 출마 후보군은 박 의원 한 명으로 압축됐다. 친명계 핵심인 만큼 이 대표의 의중인 ‘명심’이 강하게 작용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당초 10명 안팎의 후보군이 난립할 것으로 예상됐으나 물밑서 이 대표가 교통정리에 나섰다는 해석이다. 당 대표의 노골적인 선거개입이라는 비판이 나왔지만 당을 좌우하는 명심에 대항하기는 사실상 어렵다. 친문 인사가 끼어들 틈도 없이 빠르게 상황이 흘러갔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의 설명이다. 민주당 원내대표 겸 의장단 선출 선거관리위원회 간사인 황희 의원은 지난 24일, 선거관리위원회 1차 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당규상 민주당서 원내대표 선거는 결선투표가 원칙으로 기본적으로 과반 득표를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후보자가 1인일 경우 찬반 투표를 하기로 정했다”고 설명했다. 원내대표 다음으로 주목받는 자리는 바로 차기 국회의장이다. 당내 우직한 이력을 가진 후보들이 기싸움이 이어가면서 명심이 누군의 손을 들어줄지 주목되는 상황이다. 민주당에서는 6선에 성공한 조정식·추미애 당선인과 5선인 정성호·우원식 의원이 22대 전반기 국회의장 출마를 밝혔다. 이들은 일제히 “기계적 중립은 없다”는 입장을 강조하며 강경 성향 의원의 표심을 얻기 위한 선명성 경쟁에 나섰다. 완벽한 시나리오 먼저 정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기계적 중립만 지켜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며 “민주당 출신으로서 다음 선거의 승리를 위해 보이지 않게(그 토대를) 깔아줘야 된다”고 말했다. 여야 간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을 경우 다수결의 원리에 따라서 다수당의 주장대로 갈 수밖에 없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정 의원은 이 대표의 사법연수원 18기 동기로 알려졌다. 40년 가까이 알고 지낸 만큼 ‘원조 친명’이자 ‘친명계 좌장’으로 통한다. 이 대표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7인회’ 핵심 멤버기도 하다. 친명 후발주자인 추 당선인도 국회의장 도전에 대해 “주저하지 않겠다”며 “국회의장도 물론 좌파도 우파도 아니다. 그렇다고 중립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정치적 유불리를 계산하지 않고 유보된 언론개혁, 검찰개혁을 해내겠다는 의지를 거듭 밝히면서 강성 지지자의 호응을 유도했다. 민주당 조 전 사무총장도 “여야 합의가 될 때까지 무한정 기다릴 수 없다”며 “국회의장이 되면 긴급 현안에 대해서는 의장 직권으로 본회의를 열어 처리하겠다”고 말했다. 민주당이 과반석을 차지한 만큼 당내 경쟁도 치열해진 양상을 띠고 있다. 국회의장 경선에 당원투표를 반영하자는 주장까지 나온 것으로 전해진다. 강성 지지층의 힘이 크게 작용하는 만큼 후보들은 당심을 겨냥하기 위해 명심을 강조할 수밖에 없다. 당의 주요 인사들이 ‘이재명과의 호흡’을 강조하고 나선 만큼 이 대표의 의중인 ‘명심’은 당을 좌지우지하는 강력한 무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를 앞세운 메시지가 앞다퉈 나오면서 입법 독주에 대한 우려 섞인 목소리도 커질 전망이다. 국민의힘은 “너도나도 ‘명심팔이’를 하며 이 대표에 대한 충성심 경쟁을 하니 국회의장은커녕, 기본적인 공직자의 자질마저 의심스러울 정도”라며 “협치라는 말을 머릿속에서 아예 지워버려야 한다는 망언을 빙자한 민주당의 속내가 흘러나오는 가운데 상임위를 독식하겠다는 위헌적 발상도 서서히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다”고 비판했다. 솔솔 올라오는 ‘대표 연임설’ 대세는 ‘명심’…친문계 주목 총선 승리 이후 일부 민주당 의원들 사이에서 “협치는 없다”는 기류가 흐르자 이를 꼬집은 것으로 풀이된다. 이처럼 당내 주요직이 속속들이 친명으로 배치되는 가운데 친문에게 더 이상 핵심적인 역할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여기에 이 대표의 연임설까지 불거지면서 ‘이재명호’ 민주당은 한층 견고해질 전망이다. 이 대표 임기는 오는 8월28일까지다. 이제까지 민주당서 당 대표가 연임한 역사는 없지만 당헌·당규상 이를 금지한 조항도 없다. 이 대표가 마음만 먹는다면 몇 번이고 당 대표를 연임할 수 있다는 뜻이다. 게다가 이 대표는 20대 대선 패배 직후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와 전당대회에 연이어 출마하면서 이전과는 다른 선례를 남기기도 했다. 총선 승리 직후부터 친명 의원 중심으로 “민주당에 압승을 가져다준 이 대표가 한번 더 당 대표를 맡아야 한다”는 여론이 일면서 친·비명 간의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정성호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국회가 본연의 역할을 하고 민주당이 윤석열정권의 무능과 폭주하는 이 상황을 막아야 된다는 측면서 당 대표가 강한 리더십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며 “그런 면에서 연임할 필요성도 있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총선이 끝나고 이 대표를 만나 “강한 당 대표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전달했다고도 덧붙였다. 해남·진도·완도에 승기를 꽂은 박지원 당선인 역시 “만약 이 대표가 계속 대표를 한다고 하면 당연히 해야 한다. 연임해야 맞다”며 “이번 총선을 통해 국민이 이 대표를 신임했다”고 전폭적으로 힘을 실어줬다. 반면 친문계 핵심으로 꼽히는 윤건영 의원은 이 대표 연임에 대해 “전당대회가 넉 달이나 남은 상황서 민주당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이슈”라며 “지금은 총선서 나타난 민의를 충실하게 수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우려를 표했다. 이어 “당의 리더십에 관한 것은 시간을 두고 차분하게 풀어가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여의도 정가에 밝은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친명 체제를 두고 외부서 걱정하는 모양이지만 정작 당내에서는 후폭풍이 불 수 없는 상황”이라며 “비명 의원끼리 바람을 일으키려고 해도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폭풍 전야 잔잔한 미풍 일제히 이 대표의 의중만 바라보는 민주당은 친명과 찐명 그리고 ‘신명(새로운 친명)’만 존재하게 된다. 이런 상황서 “당의 민주주의가 제대로 실현되겠냐”는 비판이 물밑으로 조용히 들려온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애초에 이 대표의 목적은 자신만의 민주당을 만드는 거였고 이번 총선을 통해 결국 이뤄냈다”며 “친명 민주당이라는 날카로운 검을 어떻게 사용할지 결국 이 대표의 손에 달려 있다. 이 대표는 임기를 마치는 날까지 자신의 영향력 밑에 당을 두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속 타는 조국혁신당 교섭단체 구성에 난항을 겪는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과의 거리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앞서 조국당 조국 대표는 여러 차례 민주당 이재명 대표에게 ‘범야권 연석회의’를 제안했지만 이 대표는 만찬 회동으로 갈무리하는 데 그쳤다. 민주당 내에서는 “아직 그럴 시기가 아니다”라며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이 대표와 어깨를 나란히 하려는 조 대표가 부담스럽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하지만 캐스팅보트 역할을 쥔 것 또한 조국당인 만큼 22대 국회 개원 이후 민주당과 협상 테이블에 앉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