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연재> 대통령의 뒷모습 ⑤사이비 정치가와 연예인

  • 김영권 작가
  • 등록 2022.10.24 15:48:43
  • 호수 139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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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권의 <대통령의 뒷모습>은 실화 기반의 시사 에세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재임 시절을 다뤘다. 서울 해방촌 무지개 하숙집에 사는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당시의 기억이 생생히 떠오른다. 작가는 무명작가·사이비 교주·모창가수·탈북민 등 우리 사회 낯선 일원의 입을 통해 과거 정권을 비판하고, 그 안에 현 정권의 모습까지 투영한다.

그런 느긋한 시간이면 하숙집의 괴짜들이 하나둘 등장한다. 이 세상에 그 누군들 독특하지 않으랴만, 괴짜는 독특하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하지 않는 존재이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가 이 세상에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과 같다고 강변하기도 한다. 하기사 요즘엔 평범인과 괴짜의 경계선이 모호해져 순식간에 뒤바뀌기도 하니까. 마음속에 숨겨둔 채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시대이므로… 그런 만큼 누굴 특별히 골라 소개하지 않고 그저 흐름에 맡기려 한다. 

가황의 꿈

2층으로부터 모창가수 지망생이 트로트 리듬에 맞춰 계단을 성큼성큼 걸어 내려오며 한 곡조 뽑기 시작했다. 

‘못 찾겠다 꾀꼬리 꾀꼬리 
나는야 오늘도 술래~
어두워져 가는 골목에 서면
어린 시절 술래잡기 생각이 날 거야
모두가 숨어 버려 서성거리다
무서운 생각에 나는 그만 울어 버렸지
못 찾겠다 꾀꼬리 꾀꼬리 
나는야 언제나 술래~’

원본(original) 조용필과 달리 꽤 잘생기고 허우대도 훤칠한데 목소리만큼은 영 조잡스럽다.


아니,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목청 자체는 남 못잖건만 억지로 조용필을 모방하려다 보니 우스꽝스러워지는 것이었다.

하숙집의 청중들이 비웃든 눈살을 찌푸리든 말든 본인은 점점 더 희희낙락 기고만장해져 펄떡거렸다.

30대 초반보다 2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데 싱긋벙긋 웃을 때 드러나는 이가 모두 금니라 퍽 의아스러웠다.

남들의 시선을 은근히 무시하며 그는 보란 듯 미소를 지어댔다.

혹시 전등 빛을 받아 번쩍번쩍 빛나는 그 꼴을 무대 위에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자신의 분신(또는 상징)으로 생각하는지도 몰랐다.

연예인 지망생들은 대개 자기 현시욕이 강해 잘났든 못났든 일단 제 개성미를 추구하다가 마지못해 현실 앞에 항복하곤 자신(아집 아견)을 찢어 버리기도 한다.

평범한 사람이 되기보단 비극의 주인공이 되고픈 욕망…. 그런데 조필필씨는 이미 3년 전부터 가황 조용필의 이미테이션이 되기로 작심했단다.


조용필의 ‘명작 가요’에 매료돼 노래를 시작한 이상 일로매진하기로 작정했다는 얘기였다.

뭔지 가상스럽다고 해야 할까, 혹은 어리석다고 해야 할까?

잘 모르겠다. 헌데 그의 가창을 듣다 보면 어딘지 조용필과 비슷하기보다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모창 가수 조영필 같은 느낌이 더 났다.

이를테면 조용필 모방에 성공한 조영필을 모방하는 꼴이랄까. 

‘일로매진’이란 말은 낡은 듯 습관적으로 많이 쓰지만, 특히 사이비 정치가와 연예인들이 쉽게 내뱉는 소리다.

뜻을 무시하고 진실을 왜곡하는 개 목청들의 소리… 그들의 입을 거치고 나면 현실은 허황찬란한 지상천국으로 변화된다.

자기네 이익은 다 챙기면서 황당무계한 개소릴 지껄이고도 나라 꼴이 어찌 되든 면책 특권을 받는 자들. 

하지만 그들은 욕할 필욘 없다.

신이 인간과 짐승 벌레 등 만유를 창조했다지만, 개 같은 그 인간들을 만든 건 바로 우리, 평범한 일반 국민들이다.

법적으론 당당히 문책할 권리를 지녔으면서 스스로 포기해 버린 사람들이 아닌가?

즉, 모창가수와 엉터리 국회의원은 대중 속에 숨어 히득거리는 우리들 자신의 초상이 아닌지 궁금해진다. 

아무튼 모창가수는 누가 비웃어도 전혀 수치스러워하지 않았다.


외려 더 크고 능글맞게스리 팝송 마이웨이를 불러댔다.

나의 길인지 조영필의 길인지…

그런데도 모방자 조영필을 결코 좋아하진 않았다.

자신은 평범한 모방꾼이 아니라 재창조하는 예술가라며…

이미테이션 가수 조필필씨의 일상
미국·일본 모방하는 한국의 현실

가황님을 직접 뵙고 그분 앞에서 누가 더 진짜인지 참된 모창 예술가인지 판정받고 싶단 얘길 주절거렸다.


술에 곤드레만드레 취해 들어오는 날이면 자기가 모방하는 모방 전문가에 대해 불평 불만과 시기 질투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제 능력 부족을 돌아보고 노력하기보다는 안고수비증에 걸린 망나니처럼 굴었다.

그런데 별 큰 문제거린 생겨나지 않았다. 설령 어떤 위험 상황일지언정 가황 조용필의 노래가 들려오면 그는 곧장 무릎 꿇고 엎드려 경배하거나 벌떡 일어나 두 손을 쳐든 채 열광 환호하느라 제정신이 사라지기 때문이었다.

마치 신흥 사이비 종교에 빠져 교주께 종순하는 꼴이었달까(정작 ‘가황 교주’ 조용필은 인간 보편의 실존과 자유를 노래하건만…).

여기서 우리는 한국 사회의 현실상에 대해 잠시나마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연예계는 바로 이 시대의 정치 경제 종교 철학 사상 언론 스포츠 교육 문화뿐 아니라 우리 사회 최고의 지식인이라 자처하는 분들의 전당과도 이어지기 때문이다.

모두가 다 모방이다.

아니, 모방의 모방이다.

일본과 미국에 대한 모방, 그들의 모든 것에 대한 모방이다.

보따리 장사치들.

장점 단점도 가리지 않은 채 정녕 일로매진이다.

물론 그렇잖은 사람도 있고, 묵묵히 기술 입국을 지향하는 분들, 사리사욕을 씻어 버리곤 공공을 위해 실천하는 현대적 지사(선비)도 많지만 중과부적이다.

입가에 핏방울을 흘리며 마구 달려드는 극우파 좀비들을 욕하진 말자.

그들 또한 이 나라와 자기가 좋아하는 사회를 지키기 위해 분투하는 중이니까.

다만 이기적인 욕망을 감춘 위선과 허위의식, 현재를 직시하지도 미래를 지향하지도 않은 채 한국 사회를 과거의 허상 속으로 끌고 들어가려는 무지몽매, 히틀러 같은 독재 모리배들에게 세뇌당해 미친 좀비 로봇처럼 광란광분하는 꼴은 역겹다.

수구 꼴통과 급진 종북 세력들은 서로 반면교사 삼아 진실한 보수와 진보로 재탄생해야지 않겠는가?

무슨 짓을 해도 좋다!

제발 사리사욕을 버리고 조금씩만 겸허해진다면 아마 당장 친구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미국과 일본 혹은 러시아와 중국을 등에 엎은 채 개 같은 조상 놈들처럼 당파싸움 벌이지 말고 부디 한반도의 운명을 생각하라.

그거야말로 진정 ‘이기심’과 ‘사리사욕’을 배불리 채우고도 당신의 자녀와 손자들까지 영화롭게 살리는 길이리라. 

다시 모창가수에게로 돌아가 보자.

가황 조용필의 노래가 꺼져 버리면 사내는 약 기운 떨어진 마약 중독자처럼 멍해 있다가 불현듯 신세타령을 늘어놓기도 했다. 

“흥, 그래! 내가 가짜 짜가인 건 사실이야. 일류급은 창조하고 이류급은 보편화시키고 삼류급은 타락시켜 버린다는 얘기도 있지만… 흥, 이 세상에 모방 아닌 게 어디 있냔 말야. 일류라고 자칭하는 분님들도 사실을 캐 보면 미국 일본 프랑스 등의 특일류급을 좃빠지게 배껴 먹으면서… 누굴 욕하고 지랄이야! 흐음, 내가 가황님의 명곡을 모창하고 있지만… 사실상 모든 게 완전무결하진 않거든. 신께도 흠결은 있다잖아? 가황님의 노래를 모방만 하는 게 아니라 결점을 바로잡아 승화시키는 것도 예술이 아닐까 고뇌하고 있건만… 원숭이 흉내라고 비웃을 뿐 알아 주는 사람은 적어. 재미있다고 꺄르륵 캭캭 웃어대면서도… 실상 그들 또한 모방을 제대로 못해 안달하는 주제에… .” 

가짜는 가짜

“노래방이나 가라오케에 가면, 자동기계가 뱉어내는 사이버 곡조에 자기 목소릴 맞추려 안달복달하는 꼴이라니… 하하핫! 그러면서도 아마추어의 순수성을 잃곤, 개중엔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를 자만심 가득 찬 음계로 짓밟아 올라 인기 가수와 어깨동무한 양 공상에 빠져 우쭐거리며, 나 같은 순수 순진한 모창 프로를 무시하고 침 뱉는 거야.”


<다음 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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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2015년 진행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의 여파가 아직까지 남아있다. 정부는 당시 합병으로 인해 외국계 투자회사인 엘리엇 매니지먼트및 메이슨 캐피탈과 국제투자 분쟁에 휩싸였다. 국제상설중재재판소의 판정으로 정부는 이들에게 약 2100여억원을 배상해야 하는 상황 중 아주 작은 소생의 실마리가 나왔다. 엘리엇 분쟁 사건의 판정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승소한 것이다. 정부가 미국계 해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와의 8년간 진행 중인 국제투자 분쟁에서 반전의 기회를 잡았다. 1300여억원을 배상하라는 국제투자 분쟁 판정에 불복해 제기한 소송의 항소심에서 승소하면서다. 이로 인해 배상 판결이 취소될 가능성도 되살아났다. 사건 발단 짚어보니… 법무부에 따르면 영국 항소법원은 지난 17일 한국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여 1심 법원인 고등법원에 사건을 환송했다. 이에 따라 사건을 되돌려받은 영국 고등법원은 엘리엇에 대한 한국 정부의 배상을 결정한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의 재판 관할권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한국 정부로서는 중재판정 자체를 무효화할 가능성을 다시 확보하게 된 셈이다. 엘리엇 배상 사건은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이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국제투자분쟁(ISDS) 사건이다. 해당 사건은 지난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정부가 국민연금공단(이하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이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면서 시작됐다. 엘리엇은 해당 의혹이 발발한 지 3년이 지나서야 7억7000만달러의 손해를 입었다며 ISDS를 제기했다. 엘리엇의 ISDS 제기는 대한민국 정부에게는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만약 엘리엇의 주장이 받아들여질 경우, 막대한 국민 세금이 배상금으로 지급돼야 하는 상황이었다. 또 국제 중재 절차는 매우 복잡하고 오랜 시간이 소요될 뿐만 아니라, 국가의 대외 신인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법무부를 중심으로 전담팀을 구성하고 국제 법률 전문가들과 협력해 엘리엇의 주장에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양측은 수년간의 준비 과정을 거쳐 네덜란드 헤이그에 위치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서 치열한 법적 공방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국정 농단 사건의 재판 결과와 국민연금 관계자들의 증언 등이 중요한 증거로 활용됐다. 기나긴 법적 공방 끝에 지난 2023년 6월20일, 네덜란드 헤이그의 PCA는 엘리엇의 ISDS 사건에 대한 최종 판정을 내렸다. 판정 결과는 대한민국 정부에게 상당한 충격이었다. PCA는 한국 정부가 엘리엇에 5358만6931달러(당시 환율로 약 690억원) 와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이는 엘리엇이 청구한 금액인 약 7억7000만달러의 약 7%에 해당하는 금액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정부가 국제 중재에서 패소해 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점에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PCA는 판정문에서 국민연금의 삼성물산 합병 찬성 행위가 한국 정부에 귀속되는 행위며, 이로 인해 엘리엇에 손해가 발생했다고 판단했다. 이는 국민연금이 공적기금으로서 정부의 통제 하에 있으며, 그 의사결정이 정부의 행위로 간주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또 정부가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의 정당한 주주 권리를 침해하고 투자가치를 훼손했다고 봤다. 배상 취소 소송 항소심 승소 한미FTA상 성립 불가능 판단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는 이 판정을 그대로 수용하지 않았다. 법무부는 판정 직후 즉각적으로 불복 절차에 돌입하겠다고 밝혔다. 2023년 7월18일, 정부는 중재판정부에 판정의 해석·정정을 신청하는 동시에, 중재지인 영국 법원에 판정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정부는 판정에 법리적 오류가 있거나 중재 절차에 중대한 하자가 있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주장하며 판정을 뒤집기 위한 총력전을 펼쳤다. 특히, 정부는 엘리엇 사건이 한미 FTA상 ‘성립 불가능’한 사건이라는 점을 취소소송에서 가장 크게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국제투자 분쟁은 해외 투자자가 ‘투자국’의 협정 위반 행위에 대해 제기하는 국제중재로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는 ‘상업적 행위’일 뿐 국가의 행위로 볼 수 없다는 게 정부의 논리였으나 1심 법원에서는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정부는 해당 판결에 대해서도 항소를 진행했고 지난 17일 영국 항소법원은 우리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사건은 다시 1심 법원인 영국 고등법원으로 환송됐으며, 영국 고등법원은 배상 판결을 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 애초 재판 관할권이 있었는지부터 다시 심리하게 된다. 이 판결은 한국 정부가 거액의 배상을 면할 수 있는 반전의 기회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엘리엇 배상 사건의 발단은 삼성물산 제일모집 합병에서 촉발됐다. 지난 2015년 5월26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합병 계획을 발표하며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제일모직이 삼성물산을 1대 0.35의 비율로 흡수합병하는 방식이었다. 이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그룹 경영권 승계 및 지배력 강화를 위한 것으로 해석됐으나, 삼성물산 주주들에게는 불리한 합병 비율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8년 소송 결말은? 당시 제일모직의 주가는 삼성물산의 약 3배였지만, 자산총액 기준으로는 삼성물산이 제일모직의 3배에 달했기 때문이다. 이에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는 삼성물산 지분 7.12%를 보유하고 있음을 공시하며 합병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 합병 금지 가처분신청을 제기하는 등 적극적인 반대 운동을 펼쳤다. 당시 엘리엇은 삼성물산의 가치가 지나치게 저평가됐으며 합병 조건이 불공정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법원은 엘리엇의 가처분신청을 모두 기각하며 삼성의 손을 들어줬다. 합병의 가장 중요한 변수는 삼성물산의 최대주주였던 국민연금이었다.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들이 합병 반대 의견을 내놨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연금은 내부 투자위원회를 거쳐 합병에 찬성표를 던졌다. 결국 2015년 7월17일, 삼성물산 주주총회에서 합병안이 통과됐고, 그해 9월1일 통합 삼성물산이 공식 출범했다. 이후 박근혜정부 국정 농단 사건이 불거지면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의 불법성 의혹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특별검사팀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와 지배력 강화를 위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이 이뤄졌고, 이 과정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에게 뇌물을 제공하는 등 불법 행위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특히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하도록 정부가 부당하게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관련 인사들이 재판에 넘겨졌다. 2025년 7월17일, 대법원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및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부정과 관련한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 행위, 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 대해 전부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이로써 이 회장은 약 10년간 이어져 온 사법 리스크에서 벗어나게 됐다. 리스크 해소 다양한 반응 엘리엇 배상 사건이 새로운 국면을 맞으면서 법조계와 정치권에서는 다양한 반응이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항소심에서 ‘한국 승소’로 뒤집히자, 취소 청구를 주도한 법무부 장관으로서 환영했다. 한 전 대표는 “최선을 다하고 성과를 낸 많은 ‘좋은 공직자’들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한동훈 전 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에 “제가 법무부 장관으로서 지휘했던 엘리엇 국제투자분쟁(ISDS) 중재판정의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대한민국이 이겼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더불어민주당이 저 소송(취소소송 제기) 관련해 저를 많이 비난했었다”고 정쟁적 비판을 상기시켰다. 그는 “‘국익’이 걸렸지만 결과가 나쁠 수도 있는 위험 부담이 큰 문제를 결정할 때, 몸 사리면 공직자들은 편하다. ‘지면 네 돈 낼 거냐’는 폭력적인 질문 앞에서 ‘안 하고 말지’ 생각이 들게 마련”이라며 “그래도 몸 사리지 않고 국익을 생각한 좋은 공직자들이 있다. 이 경우가 그랬다”고 설명했다. 특히 “엘리엇 항소에 대해 ‘질 가능성이 크니 항소하지 마라, 그래서 지면 한동훈 사비로 돈 대신 내라’는 감정적 비난이 많았고, 그런 제목의 언론 사설까지 있었다”면서 공직사회에 “피 같은 국민 세금 아끼기 위해 많은 분들이 혼신의 노력을 해온 것을 제가 잘 안다”고 격려를 보냈다. 한 전 대표는 “의미있는 승리지만 이 사안은 아직도 갈 길이 먼, 쉽지 않은 싸움”이라며 “끝까지 최선을 다해 국익을 지켜주시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법조계에서는 엘리엇 배상 사건처럼 메이슨 캐피탈이 같은 이유로 제기했던 ISDS의 중재판정 취소소송 항소 포기에 대한 아쉬움을 내비쳤다. 한 국제통상 전문 변호사는 “엘리엇과 메이슨은 같은 이유로 ISDS를 제기했다”며 “엘리엇은 취소소송의 항소심을 진행하면서 메이슨은 지연이자 등으로 항소심을 진행하지 않았다. 하지만 엘리엇 사건이 항소심에서 승리하면서 메이슨도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아쉬울 따름”이라고 평가했다. 앞서 법무부는 지난 4월 정부 대리 로펌 및 외부 전문가들과 논의한 끝에 정부의 메이슨 ISDS 중재판정 취소 청구를 기각한 싱가포르 국제상사법원의 1심 판결에 대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발단 “이재명정부가 구상권 제기해야” 메이슨은 지난 2018년 9월 우리 정부가 자유무역협정(FTA)을 위반했다며 손해배상금 1억9139만달러(약 2609억원)와 판정일까지 연 5% 월 복리이자를 지급하라는 ISDS를 제기했다. 정부는 한미 FTA상 ‘정부가 채택하거나 유지한 조치’는 공식적인 국가 행위를 전제로 하는데, 개별 공무원의 불법적이고 승인되지 않은 비위 행위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중재판정부는 지난해 4월 우리 정부를 향해 메이슨 측에 3203만876달러(약 438억원) 및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정부는 지난해 7월 취소소송을 제기했지만, 지난달 싱가포르 법원은 메이슨 측 주장을 받아들여 한국 정부 측에 손해배상을 명한 중재판정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법무부는 "법리뿐 아니라 항소 제기 시 발생하는 추가 비용 및 지연이자 등 여러 가지 사정을 종합해 결정했다"고 항소 포기 이유를 밝힌 바 있다. 이번에 항소심에서 정부가 승리했지만, 여전히 문제는 국민 세금으로 내야 할 배상액이다. 정부가 메이슨에 지급해야 할 돈은 지연이자까지 포함해 약 887억원이 됐다. 엘리엇에 배상해야 할 금액은 당초 1300억원에서 지연이자까지 더하면 약 1500억원가량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시민단체에서는 엘리엇과 메이슨이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손해를 봤다며 소송을 제기한 만큼 당시 합병을 주도한 이 회장과 두 기업의 합병 과정에서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박근혜 전 대통령 등을 상대로 구상권을 제기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복리이자가 계속 쌓이면서 배상액도 천문학적으로 계속 늘고 있는 상황이라, 이재명정부의 대응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5월 대선을 앞두고 참여연대는 대선후보들에게 엘리엇·메이슨 ISDS 배상금 구상권 행사 여부를 듣기 위해 질의문을 보냈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였던 이재명 대통령은 질의에 응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참여연대는 “단순한 침묵이 아니라 대통령 후보로서 세금 수천 억원의 손실을 되돌리기 위한 의지와 책임을 보여야 할 자리에서 책무를 방기하고 있다는 점이 중대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지난 17일에는 이재용 회장의 대법원 판결이 나온 직후 다시 한번 “재벌 봐주기 판결로 사회 정의를 무너뜨리고 총수 일가의 전횡을 용인하는 해로운 판례를 남긴 법원을 강력히 규탄한다”는 주장과 함께 정부를 향해 구상권 청구를 요청했다. 구상권 문제는? 다만 국제통상 전문가로 활동한 송기호 변호사가 대통령실 국정상황실장에 있다는 점에서 변화를 기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송 실장은 변호사 시절 “법무부는 당시 중과실로 불법 행위한 대한민국 공무원들, 이들과 공모 관계라고 인정된 이재용 회장을 상대로 신속하게 구상권 청구를 해야 한다”며 “박 전 대통령 등 공무원에겐 국가배상법에 따라 당사자에게 청구하고, 이 회장에 대해선 민법상 공동불법행위자로서 청구할 수 있다고 본다”고 밝힌 바 있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