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윈데믹’ 부른 정부 헛발질

‘삽질’했으니…묻히는 쌍 백신

[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끝없는 코로나19 굴레. 엔데믹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또 다른 복병이 등장했다. 올겨울 코로나와 독감이 동시에 유행하는 ‘트윈데믹’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정부는 독감·코로나 ‘쌍 백신’ 접종을 권하고 있지만, 국민들 반응은 냉담하다. 앞서 정부가 백신 수급·접종 과정에서 선보였던 헛발질 때문이다. 일각에선 정부가 자초한 ‘백신 불신’ 때문에 트윈데믹 피해가 더 커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최근 코로나19 확진자는 대유행 시기에 비해 크게 줄어들었다. 한때 60만명을 넘어섰던 일간 신규 확진자 수는 지난 13일 기준 2만6957명까지 내려앉았다. 한 달 전(9만3981명)과 비교해도 눈에 띄게 감소한 수치다. 중앙방역대책본부(방대본)는 최근 3주 연속으로 코로나 위험도를 ‘낮음’으로 평가했다. 

겨울철 
재유행?

하지만 의료계는 일찌감치 겨울철 재유행 가능성을 제기하고 나섰다. 호흡기를 통해 공기 중으로 전파되는 코로나는 겨울철에 유행할 개연성이 높다. 건조한 겨울 날씨는 바이러스 전파를 가속한다. 환기가 줄고 실내활동 비중이 커지는 생활 양식 역시 확산세를 높이는 데 일조한다. 

지난 대유행 지배종 ‘오미크론’의 하위 변이가 국내에서도 잇달아 확인되는 점을 재유행 신호탄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질병관리청(질병청)은 지난 5일 국정감사장에서 “새로운 변이에 대한 우려가 존재한다”고 보고했다. 질병청은 특히 ‘BA.2.75’ 하위 변이인 ‘BA.2.75.2’를 관찰·감시 강화가 필요한 변이로 꼽았다.

BA.2.75.2변이는 지난달 말부터 검출률이 오름세인 BA.2.75변이보다 면역 회피 수준이 더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BF.7’변이도 국내 유입이 확인되며 주요 감시 대상으로 떠올랐다. BF.7변이는 지난달 국내 지배종을 차지한 ‘BA.5’변이의 하위 변이로, 감소하던 유럽 등지의 확산 상황을 다시 증가세로 돌려놓은 주범이다. 


방역당국이 겨울철 재유행 가능성을 직접 언급하면서 올겨울 재유행은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 질병청은 향후 재유행 전망에 대해 “감소 추세인 현 유행 상황 반영 시 당분간 감소세는 유지될 것으로 전망된다”면서도 “12~3월 재유행 발생을 예상한다”고 밝혔다. 

그래도 ‘숨 고르기’할 틈새는 보인다. 국내 연구기관의 전망에 따르면 가을철 확산세는 안정적으로 관리될 것으로 보인다. 일부 기관에선 일일 확진자 수가 네 자릿수로 떨어질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질병청이 7개 연구기관에 의뢰해 실시한 코로나 향후 전망치를 보면 7개 기관 중 4곳이 2주 후 평균 확진자 수를 최소 2000명에서 최대 2만1000명으로 예측했다. 나머지 3곳은 4주 뒤 확진자 수를 최소 1만2000명에서 최대 1만3000명으로 제시했다.

하지만 코로나가 잠잠한 사이, 이번엔 독감 확산세가 심상치 않다. 지난 9일 질병청 발표에 따르면 올해 40주 차(9월25일~10월1일) 의료 기관을 찾은 외래 환자 중 독감 의심 환자가 1000명당 7.1명에 달했다. 직전 주(4.9명)와 비교하면 일주일 만에 45%가량 급증했다. 

질병관리청은 전국 의료기관 중 200곳을 표본조사해 독감 의심 환자(38도 이상 발열·기침·인후통) 비율을 살피고 있다. 질병관리청이 정한 올해 독감 유행 기준은 1000명당 4.9명으로 이미 기준선을 넘어섰다. 

올해는 가을철부터 독감 환자가 늘며 지난달 16일 이미 유행 주의보가 내려졌다. 통상 유행 주의보가 내려지는 시기보다 2~4개월 빠른 추세다. 코로나 유행 이후 겨울철 독감 유행 주의보가 내려진 건 이번이 처음이다. 재작년과 작년 겨울철에는 마스크 착용과 개인위생·거리 두기 등의 영향으로 독감 환자가 비교적 적었다.

현 추세가 통상 수준보다 빠르긴 하지만. 독감 유행 정점은 대체로 12~1월이다. 정점에 이르면 환자 수가 1000명당 70~80명에 달한다. 본격적으로 코로나 재유행이 시작되는 시기와 독감 유행 정점이 맞물리는, 이른바 ‘트윈데믹’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이유다.


‘엔데믹’ 향하는 길목서 또 다른 복병 등장
저조한 접종률 왜?…돌아보니 낮은 신뢰 탓

트윈데믹 우려는 코로나 유행 이후 매년 겨울철마다 제기돼왔다. 다만 그동안은 강도 높은 방역수칙 등 선제 조치 덕에 우려가 현실로 이어진 사태는 없었다. 하지만 올해는 다르다. 방역수칙 대부분이 완화·중단됐고, 그 결과 이미 독감 유행 상황은 임계점을 넘었다.

더군다나 이번 독감 유행은 그 위험도가 더욱 높을 것으로 전망된다. 오랜만에 독감이 유행하면서 자연 면역력이 없는 환자가 예년보다 많을 것이란 설명이다. 실제로 독감 유행을 한 번도 겪지 않았던 영유아 사이에서 환자가 크게 늘고 있다.

올해 40주 차 영유아 독감 환자는 전주 대비 53% 증가했다. 영유아는 독감 감염 시 합병증 발병 소지가 커 ‘독감 고위험군’으로 분류된다.

정부는 ‘적극적인 백신 접종’을 해결책으로 삼았다. 코로나·독감 백신 ‘동시 접종’이 가능하다는 점을 피력하면서 피해 최소화에 전력을 쏟는 모양새다.

이번 5차 접종에 사용되는 코로나 백신은 모더나가 개발한 2가 백신(공식 명칭은 코로나19 오미크론 함유 2가 백신 스파이크박스2주)이다. 이 백신은 코로나 초기 바이러스부터 오미크론 하위 변이까지 폭 넓게 효과를 보이는 점이 특징이다.

방역당국 설명에 따르면 이 백신은 기존 접종 백신에 비해 중화능이 초기 바이러스에서는 1.22배 높다. 현재 지배종인 BA.5에는 중화능이 1.69배 높다. 

방역당국은 2가 백신 접종을 원하지 않을 경우 유전자 재조합 방식인 ‘노바백스’나 ‘스카이코비원’ 백신 대체 접종을 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 모더나에 이어 화이자가 만든 2가 백신은 국내 도입 즉시 투입해 2가 접종률을 높이겠다는 구상이다.

독감 무료 접종도 시작됐다. 정부는 지난 12일 만 75세 이상 고령층을 대상으로 독감 무료 접종을 시작했다. 이를 필두로 만 65세까지 순차적으로 접종 대상에 포함될 예정이다. 기한은 올해 연말까지다.

질병청 관계자는 “65세 이상 독감 예방접종은 12월 말까지 전체 접종 대상자의 99% 이상이 맞는다”며 “적기에 신속한 접종을 위해 접종기간을 연말까지로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슬슬 느는
독감 환자

코로나 2가 백신은 독감 백신과 동시에 접종받을 수 있다. 다만 접종 부위를 달리해야 한다. 이를테면 코로나 백신은 왼팔에, 독감 백신은 오른팔에 맞는 식이다.


하지만 정부의 대대적인 홍보에도 불구하고, 백신 접종률은 저조하다. 방역당국에 따르면 접종 누적 인원은 6만여명으로 접종 대상 대비 0.5%에 그쳤다(지난 12일 0시 기준). 접종 첫날 신청이 쇄도했던 예전과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황경원 코로나19 예방접종대응추진단 접종기획팀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이제 막 접종을 시작했기 때문에 접종률이나 접종 추이에 대한 평가는 아직 좀 이른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며 “참고로 지난 4월 시작했던 4차 접종의 1일 차 접종 건수는 3만2000명 정도였기 때문에 이번 동절기 추가 접종이 이보다는 좀 더 많은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접종률이 저하됐다고 못 박기는 시기상조라는 게 방역당국 입장이지만, 사전 예약률이 한 자릿수에 지나지 않는 게 그 방증이라는 지적이 잇따른다.

접종 첫날 사전 예약자는 37만1429명으로 집계됐다. 1순위 접종대상자가 1138만5737명인 점을 고려할 때, 이들 중 단 3.3%만 접종 예약에 나선 셈이다. 방역당국은 아직 사전 예약 대상이 아닌 2~3순위 대상자도 잔여 백신을 통해 당일 접종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이 같은 조치에도 접종률은 본궤도에 오르지 못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백신 접종률이 저조한 이유로 정부의 과거 행적을 지목한다. 정부가 코로나 백신 접종을 적극 장려, 혹은 사실상 강제하면서도 이어진 부작용 논란과 피해보상 문제에 대해서는 책임감 있는 대처를 보여주지 못했다는 것.


결국 이로 인해 국민 사이에서 백신의 신뢰성과 접종 필요성이 큰 타격을 입었고, 낮은 접종률로 이어졌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국민 사이에선 개량 백신의 안전성이 아직 완벽하게 확인되지 않았다는 의심이 만연하다. 이 분야 권위자인 정기석 국가감염병위기대응 자문위원장 또한 지난달 4차 백신 접종을 독려하면서 개량 백신에 대해 “안전성·효과성이 불확실하다”고 평한 바 있다.

이와 관련해 백경란 질병청장은 “2가 백신은 기존의 백신과 동일한 메신저 리보핵산(mRNA) 플랫폼을 이용해서 만들어진 백신”이라며 “mRNA 백신 접종은 전 세계에서 수십억 명의 접종을 통해서 안전성과 유효성이 확인된 바 있다”고 해명했다.

개량 안전성
완벽하지 않다?

지금까지의 임상 실험 결과를 종합하면 2가 백신은 기존 백신과 이상 반응 증상은 유사하지만 발생 빈도가 더 낮다.

실험 결과를 대동한 해명에도 의심과 불만이 끊이지 않는다. 정부가 백신 부작용을 지나치게 폭 좁게 인정하고, 보상을 질질 끌었던 탓이다. 피해자 호소가 수년간 이어지고 정권이 바뀌어도 문제 해결이 요원하다.

지난 6일 보건복지부와 질병청을 대상으로 열린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는 코로나 백신 부작용 피해자 가족이 참고인으로 출석했다. 이들은 정부에 책임 있는 자세로 신속하게 백신 부작용을 인정·보상하라고 촉구했다.

이날 참석한 최미리씨는 지난해 9월 남편을 잃었다. 기저질환 없이 건강했던 남편이 백신 부작용으로 사망했다. 최씨는 “남편의 나이는 고작 36살이었고, 남겨진 아이는 여덟 살과 네 살이었다”며 “지난 1년간 아이들과 저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슬픔과 상실감에 하루하루를 살았다. 경제적으로도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고 눈물로 호소했다.

그는 “작년 9월 바로 피해 보상을 신청했지만 유독 인과성 (여부에 대한 확인)결과가 늦어졌고, 지난 3월 (사망과 백신접종 사이에)인과성이 있다는 통보를 받았다”며 “하지만 같은 날 피해보상 신청을 (다시)하라는 연락을 받았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알아보니 다시 피해 보상 신청 (순위가) 한참이나 미뤄져 버렸다”며 “콜센터 직원으로부터 무작정 기다리라는 대답만 돌아왔다”고 설명했다.

최씨는 “인과성을 인정받았지만 그저 기다려야 하는 답답한 현실”이라며 “피해 보상 신청 후 120일 안에 결과를 통지해야 함에도 질병청은 묵묵부답이다. 엄연한 직무유기”라고 꼬집었다.

뒤이어 발언한 김두경 코로나19백신피해협의회 회장은 “윤석열정부가 백신 피해를 인정해준다고 해서 잔뜩 기대했지만 피해 보상이 아닌 지원금을 인정해주는 것에 그치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날 국감에서 일부 의원들은 정부가 지난달 코로나 백신 피해보상 관련 소송에서 패소한 뒤 상소하기로 한 결정이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지난달 서울행정법원은 백신 접종 뒤 뇌 질환 진단을 받은 남성이 ‘예방접종 피해보상 신청을 거부한 처분을 취소하라’며 질병청장을 상대로 낸 소송에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이에 질병청은 항소 방침을 밝힌 바 있다.

백신 강요하곤 나 몰라라
피해자 등지고 추가 접종?

의원들의 지적에 대해 백 청장은 “관련 부처와 잘 협의해 보완하겠다”고 답했다. 아울러 방역당국은 개량 백신 접종 시행 초기 이상 반응에 더 적극적으로 대응할 계획이다. 접종자가 문자 수신에 동의하면 접종 후 1주일간 능동 감시를 통해 건강상태와 일상생활 문제 여부 등을 확인한다. 접종자 전원은 접종 후 3일 차에 주의사항과 조치사항을 다시 안내받는다.

독감 백신에 관한 ‘헛발질’도 있었다. 2020년 벌어진 백신 ‘부실 배송’ 사건이다. 당시 정부는 독감 백신 유통업체 선정에 난항을 겪었다. 두 달에 걸쳐 4차례 유찰됐고, 5차에서 가까스로 낙찰됐다. 업체 입장에서 수지타산이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부는 무료 접종 백신을 기존 3가 백신보다 더 비싼 4가 백신으로 바꾸면서도 입찰단가는 크게 올리지 않았다. 이때 정부가 제시했던 조달 입찰가는 8740원. 시중 가격에 턱없이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같은 시점 서울의료원과 서울시 산하의료기관은 4가 백신을 1만800원에 입찰했다.

접종 시작을 불과 한 달 앞둔 그해 8월이 돼서야 유통업체 ‘신성약품’ 참여가 결정됐다. 그런데 정부는 독감 백신 무료 접종을 하루 앞둔 2020년 9월21일, 신성약품이 적정 냉장온도(영상 2~8도)를 제대로 유지하지 않았다는 신고를 접했다. 조사 결과 신성약품의 위탁업체가 백신 상자를 옮기면서 한동안 상온에 노출한 정황이 드러났다.

신성약품의 공급 물량은 국내 총공급물량 2964만 도즈(1회 접종분) 가운데 국가 확보 물량 전량인 1259만 도즈였다. 21일 하루 동안에만 약 500만 도즈가 전국 각지로 옮겨졌다. 유통업체의 운송 과정상 실수로 정리됐지만, 정부 역시 “부실 배송을 자초했다”는 비판에 홍역을 치렀다.

당시 정부는 트윈데믹을 막기 위해 독감백신 무료 접종 대상을 크게 늘렸다. 공급량이 대폭 늘어났음에도 백신 공급단가를 올리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정부는 빡빡한 예산 안에서 종전 계획보다 더 많은 물량을 배송하라고 요구한 셈이다.

뒤늦게 업체가 결정되면서 촉박한 일정 속 위탁업체 관리·감독 부실이 발생했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이처럼 백신에 얽힌 정부의 촌극은 아직도 국민 뇌리에 날카롭게 박혀 있다. 1순위 접종 대상자임에도 접종이 꺼려진다는 A씨는 <일요시사>에 “믿음이 가질 않는다. 코로나도 다 끝나가는 와중에 (백신 접종으로)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있나 싶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국민 개인의 건강과 국가적 확산세 안정을 위해 백신 접종은 필수불가결하다. 전문가는 결국 사태 해결의 열쇠는 ‘신뢰 회복’이라고 조언한다. 

그래 봐야
안 믿는다?

천병철 고려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지난달 <뉴데일리 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코로나 접종 과정에서 접종률 제고가 제1원칙이었다면 이제는 장기적 관점에서 피해 보상 체계 개선 등 수월한 접종이 가능하도록 국민 눈높이에 맞는 접종과 후속대책이 고민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비단 코로나 백신뿐만 아니라 백신에 대한 전반적 인식과 신뢰가 떨어졌음을 인지하고 보다 전향적 자세로 백신 관련 정책을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상황”이라고 제언했다. 


<jeongun15@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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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페이스북에 사과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도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는 짧았지만,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난은 길었다. 사과 의견을 통해 확인되는 국면 전환 노림수는 ‘한동훈을 제외한 빅텐트’인 걸까? 국민의힘 공보실은 지난 2일 오후 10시54분 출입기자들에게 지난 3일 지도부 일정을 공지했다. 공보실에 따르면, 지도부의 일정은 ‘통상 일정’이었다.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의미다. 지난 3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1주년이었다. 통상의 의미는? 지도부의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것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공개 사과 및 기자회견 일정이 없었단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장 대표는 지난 3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 의견을 밝혔다. 장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는 등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있는 주장부터 제시했다.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대해서도 “한국 정치의 연속된 비극을 낳았고, 국민과 당원들께 실망과 혼란을 드렸다”는 등 ‘탄핵 반대’ 의견을 유지했다. 장 대표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잘못은 하나로 뭉쳐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는 부분이었다. 자신에 대해서도 “당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가 사과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같은 날 오전 4시50분경 이정재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확실시됐다. 장 대표는 페이스북 게시글에서도 “추 의원 구속영장 기각은 어둠의 1년이 지나고 두터운 장막이 걷히고, 새로운 희망의 길이 열리는 신호탄”이라면서 대정부 투쟁에 의미를 부여했다. 장 대표는 “이재명정권의 대한민국 해체 시도를 국민과 함께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사과 불가는 지난달 28일 대구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장외집회에서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그는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우리가 흩어지고 분열한 결과, 이재명정권이 탄생했단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연설 대부분을 채웠다. 5일 간격으로 같은 얘기를 반복한 것이었다. 당시 장 대표가 주장한 민주당에 대한 비난의 핵심 내용은 ▲의회 폭거·국정 방해 ▲무모한 적폐 몰이에 따른 공무원 사찰 위협 ▲폭거로 인한 민생 파탄·국가 시스템 붕괴 ▲내란 몰이 등이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국민의힘의 비상계엄 관련 사과는 ▲송언석 원내대표 ▲유상범·김은혜 원내부대표 ▲최수진·최은석 원내대변인 등 원내 지도부 차원에서 나왔다. 송 원내대표 등은 지난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께 큰 충격을 드린 비상계엄 발생을 막지 못한 데 대해 국민의힘 국회의원 모두는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군인·공직자·의료인·자영업자 등 비상계엄 선포 피해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하지만 이후의 메시지는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 등 장 대표의 주장과 크게 차이가 없는 내용이었다. 송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패배의 아픔을 딛고 분열과 혼란의 과거를 넘어서 다시 거듭나겠다”며 “소수당이지만 처절하게 다수 여당과 정권에 맞서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전까지 국민의힘에서 장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정치인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용태·김재섭·권영진·엄태영·이성권·조은희 의원 등이었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에서 진행된 장외집회 중 “국민의힘은 불법 계엄을 방치했으니,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일부 지지자들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김재섭 의원은 지난달 28일 YTN 라디오 <더 인터뷰>에 출연해 “당 지도부의 사과가 없으면 제 나름의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며 “같이 메시지를 낼 국민의힘 의원들이 약 20명은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 “연판장을 돌리거나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다”는 압박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었다. 오 시장도 같은 날 채널A <김진의 돌직구 쇼>에 출연해 “중도층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도 당 차원의 사과가 필요하다”며 “공당이라면 반성문을 쓰는 게 도리”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은 당과 무관하게 대국민 사과를 했다. 오 시장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 소속 중진 정치인이자, 서울시민의 일상을 책임지는 시장으로서 그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그날의 충격과 실망을 기억하는 모든 국민께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지난 3일 국회에서 “비상계엄 선포 당시 집권여당의 일원으로서 비상계엄을 미리 막지 못하고 국민께 커다란 고통과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거듭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면서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존중 ▲윤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단절 ▲국민의힘 체질 개선·재창당 수준의 혁신 등을 약속했다. 이어지는 각자 플레이 장 대표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후 자체적으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대체로 수도권에 기반을 둔 소장파다. 이들 중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면 가장 큰 손해를 볼 정치인으로는 오 시장과 김재섭·김용태 의원이 거론된다. 오 시장은 높은 개인 인기를 바탕으로 민주당의 서울시장 탈환 공세에 맞서고 있다. 김재섭 의원의 지역구 서울 도봉갑은 원래 민주당 텃밭이었다. 김 의원은 지난해 총선 당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1094표 앞서 어렵게 이겼다. 지난해 12월7일 국민의힘의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집단 이탈에 동참했을 때도 지역구에서 규탄 집회가 개최되는 등 홍역을 치렀다. 김용태 의원도 경기 가평·포천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박윤국 한국도자재단 이사장에 2774표 앞서 어렵게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강경 보수화가 진행된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 우려는 장 대표가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자유통일당 ▲우리공화당 ▲자유민주당 ▲자유와혁신 등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깊어졌다.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지금은 연대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면서 선을 그었다. 최근 국민의힘에선 “한동훈 전 대표를 축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만한 밑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다. 국민의힘 여상원 윤리위원장은 지난달 17일 사의를 표명했다. 여 위원장은 “당에서 ‘물러나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며 “굳이 능욕당하면서 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돼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답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윤리위원회가 ‘계파 갈등 조장’을 이유로 윤리위에 넘겨진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주의 조치만 내린 것 때문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국민의힘 우재준 청년 최고위원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원하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윤리위원장을 사퇴시키는 게 정당한 일이냐”며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드는 민주당과 뭐가 다르냐”고 정면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한 조사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당원 게시판 의혹은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올라온 윤 전 대통령 부부 비방글 작성에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밝혀 당원에게 알릴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던 바 있다.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정치적으로 몰락해 서울구치소에 갇혔고,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이 당원 게시판 의혹을 밝혀낸 후 거둘 수 있는 실익으로는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친한(친 한동훈)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거론된다. 구 친윤(친 윤석열)계가 거둘 수 있는 이익이다.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보수 성향 유권자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뉜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갈등하면서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던 이력이 있다. 이 때문에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일색이 되는 걸 막는 방파제·상징”이란 분석이 오랫동안 있어왔다. 친한계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의원 중 상당수는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소장파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리위원장 쫓아낸 이유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이 정치에서 폭력을 동원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정치의 본질은 대화·토론·협상이다. 영국 하원에선 20세기 초까지 의원이 총칼을 이용해 결투·난투를 했다. 물리적 폭력이 아닌 ‘언어폭력’ 선에서 공방을 이어가는 정치 문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정착됐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전 세계에 줬던 충격은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했다고 믿었던 대한민국에서 군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려던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는 사과 메시지를 먼저 짧게 발표하면서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은 길게 이어가는 형식의 사과 의견을 밝혔다. 사과엔 ▲직접적인 반성 ▲분명한 잘못 인정 ▲재발 방지 약속 ▲보상 약속 등 4개의 원칙이 제기됐는데 “상대방 비판에 더 중점을 둔 사과는 역설적으로 ‘반성을 하는 게 맞느냐’는 비판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대국민 사과를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후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국민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후속 조치 중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미흡했고, 우려를 덜어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을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당시 크게 불거졌던 각종 우려를 ‘괴담’으로 규정지었다. 이 때문에 촛불 시위 세력이 제시한 재협상 시한과 맞물린 시점에서 사과가 나온 점을 감안할 때 국면 전환을 위한 명분 쌓기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각종 의혹이 광범위하게 제기돼 근거 자료들까지 제시되는 시점에서 “취임 후 일정 기간 일부 자료들에 대해 최순실씨의 의견을 들은 적은 있지만,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의 해명은 신뢰를 잃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두 전직 대통령의 사과처럼 자신의 주장을 뒤에 배치한 후 더 큰 비중을 부여하는 형식을 유지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이런 사과 형식은 국면 전환·지지층 결집 목적을 가진 이들이 활용한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고대 로마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있었던 마르쿠스 브루투스·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연설이 꼽힌다. 카이사르 살해를 주동한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에 대한 내 사랑은 카이사르를 사랑하는 다른 분보다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고 선언한 후 “로마를 더 사랑해서 카이사르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라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죽였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한 사람들은 모두 존경할 만한 분들”이라고 선언한 후 카이사르를 찬양하면서 그의 유언장을 공개했다. 유언의 핵심 내용은 “내 재산을 로마 시민에게 기증한다”는 것이었다. 또 카이사르가 살해당할 당시 입었던 칼자국과 피로 얼룩진 옷도 공개했다. 흥분한 로마 시민은 암살자들의 집을 습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토니우스·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정국을 장악했다. 불리한 내용을 먼저 짧게 거론한 후 유리한 내용을 장황하게 거론하는 형식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즐겨 이용된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가 짧은 사과 의견을 밝힌 후 이재명정부·민주당을 비중 있게 비판한 것도 강경 보수 세력에겐 강한 인상을 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장 대표는 비상계엄의 원인을 ‘의회 폭거’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카이사르가 된다. 비상계엄 해제에 찬성해 사실상 윤 전 대통령 몰락에 가담한 한 전 대표와 친한계는 브루투스 일당이 되는 구도가 그려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강경 보수 세력은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해 어떤 의견을 제시할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공나형 전남대 학술연구교수는 지난 2022년 발표한 논문 <대통령의 공적 사과 담화에서 드러나는 ‘개입’ 양상>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1993년 쌀 시장 개방을 수용하면서 밝힌 대국민 사과와 박 전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 관련 대국민 사과를 분석했다. 공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선의로 행한 행위가 어쩔 수 없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고 강조하면서 결과의 부정성에 관여하는 자신의 의도의 비중을 제거했다”고 분석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자기 고백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그 고백의 원인이 되는 행위에 대해선 소극적”이라고 분석했다. 12월3일 조용히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과 상대방 비판을 내용으로 채웠다. 그러면서 민주당 심판·보수 재건·대여 투쟁을 강조했다. 결국 두 사람의 답은 ‘한 전 대표를 제외한 빅텐트’ 방침 재확인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12월3일은 이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