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 52주 신저가’ 위기의 게임업계 실상

떵떵거리다가…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국내 게임주들의 주가 흐름이 심상찮다. 미국 연준의 긴축 기조에 따른 증시 하락 여파로 게임주들의 주가가 수직낙하 했다. 주요 게임사들은 무더기로 52주 신저가를 기록하기도 했다. 여기에 올해 1분기 게임업계 전반이 저조한 실적을 거둘 것으로 예상되면서 주가가 큰 폭으로 반등할 가능성이 낮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게임은 통상적으로 경제위기나 불황 때 더 잘나가는 업종으로 통한다. 경기가 안 좋을수록 실외 활동이 줄고 실내에서 게임을 즐기는 경향이 뚜렷하기 때문이다. 코로나19 대유행이 시작된 이후에도 그랬다. 2020년 팬데믹이 전 세계를 강타한 이후 대표적인 비대면 수혜 업종인 게임업계는 상승세를 탔다. 비대면 특수를 등에 업고 실적과 주가가 고공비행을 계속했다.

고공비행 후…
싸늘한 분위기

하지만 대유행이 수그러들고 점차 ’앤데믹‘ 분위기가 조성되자 최근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심상치 않은 게임업계 분위기는 최근 주요 상장 게임사들의 주가 흐름이 잘 말해준다. 증시에 상장된 메이저 게임사들이 무더기 52주 신저가를 기록하는 등 부진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국내 증시가 미국의 3연속 자이언트 스텝(기준금리 0.75% 인상) 단행 여파로 이틀 연속 폭락장세를 이어가고 있는 가운데 ▲엔씨소프트 ▲카카오게임즈 ▲크래프톤 ▲넷마블 등 업계 대표 상장 게임사들이 모조리 52주 신저가를 기록하고 있다.(지난달 23일 오전 기준)

가뜩이나 올들어 게임주의 부진한 행보가 이어지고 상황인 와중에 극도의 증시 부진이 겹치면서 게임주들이 맥을 못추고 있는 것이다.


’P의 거짓‘이란 신작이 독일 게임쇼(게임스컴)에서 주요 상을 휩쓰는 등 센세이션을 일으킨 덕에 주가가 초강세인 네오위즈를 제외하곤 대부분의 게임주들이 날개없는 추락을 계속하고 있다.

이날 업계 대표 종목인 엔씨소프트는 장중 한때 33만500원까지 급락하며 전일(장중 저가 34만6500원)에 이어 이틀 연속 52주 신저가를 경신했다. 엔씨의 시가총액은 7조원대 초반까지 밀렸다.

코스닥시장 게임 대장주인 카카오게임즈도 상황이 비슷하다. 카카오게임즈는 전날보다 2.05% 하락한 4만3100원에 거래했다(같은 날 12시50분 당시). 역시 하루 만에 전날 52주 신저가를 갈아치웠다.

최대주주와 경영진의 잇따른 자사주 매입에도 추락을 거듭해온 크래프톤 역시 전일 대비 3.93% 급락한 20만8000원을 형성하며 52주 신저가 기록을 다시 쓰고 있다. 

모바일 슈팅 배틀로얄 ‘뉴스테이트 모바일’의 대대적인 업데이트도 효과가 거의 없는 부진의 연속이다.

엔씨·카카오게임즈 이용자 반발에 ‘홍역’
상장 주요게임사 총체적 주가 부진 ‘울상’

넷마블도 예외는 아니다. 넷마블은 이날 오전 전일 대비 -2.49% 하락하며 52주 신저가를 기록했다. 넷마블 주가는 올들어 지속적으로 우하향 곡선을 그리며 자고 나면 신저가가 바뀌는 부진의 늪에서 허덕이고 있다. 한때 20조원을 바라보던 시총은 어느새 4조7000억대까지 밀리며, 체면을 구기고 있다.


이처럼 주요 선발 게임주들이 투자자들의 외면을 받으며 극도의 부진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주된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 전문가들 사이에선 게임업계가 기존 스테디셀러 이외의 차기작의 흥행, 즉 새로운 성장 모멘텀을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란 지적이 많다.

국내는 물론 글로벌 증시에서 게임주 등 신 성장주와 기술주가 ‘신 거품론’에 휩싸이며 상대적으로 더 고전하고 있는 여파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실제 미국 증시에서도 주요 빅테크 종목과 함께 게임주들의 주가 하락폭이 다른 종목을 압도하고 있다.

여기에 지난달 20일, 애플이 5일부터 인앱결제 가격 인상을 일방적으로 통보, 국내 게임 콘텐츠 업체들이 난감한 입장이 된 것도 게임업계의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 애플 정책에 따라 가격이 오르면 결국 이용자로부터 화살을 피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게임주에 대한 투자자들의 투자심리가 크게 위축된 마당에 주요 게임사들의 운영을 둘러싼 사용자들과의 갈등이 첨예해지면서 주가를 더욱 끌어내리고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우선 카카오게임즈의 경우 간판 게임인 ‘우마무스메’가 일본 유저와 차별대우 논란이 불거지며 유저들의 집단 반발로 큰 홍역을 앓고 있다. 급기야 강성 유저 7000명이 집단소송을 제기하는 상황까지 사태가 악화돼 카카오 측이 거듭 사과하는 등 진화에 애를 먹고 있다.

모멘텀 부재
돈벌이 급급

엔씨소프트 역시 리니지 프랜차이즈 게임 이용자들이 엔씨의 유튜버 프로모션(광고료 지급)에 반발, 트럭 시위를 벌이는등 단체행동에 나서 진통을 겪고 있다. 유저끼리 경쟁하는 구도인 MMORPG에서 게임사가 특정 유튜버에 광고료를 지급하는 것은 불공정하다는 이유에서다.

게임계의 이 같은 총체적 부진은 언제까지 이어질까. 업계 전문가들은 주가가 과도하게 빠진 게 사실이며, 이제 어느 정도 바닥을 찍은 것 아니냐고 입을 모은다. 

그도 그럴 것이 여전히 주요 게임업체들의 실적은 다른 업종을 압도하고 남을만한 수준인데다가, 경기 부진의 반대급부로 실적이 급반등할만한 잠재력을 갖고 있는 탓이다.

외형상으로 보면 국내 게임회사들은 여전히 빠르게 성장 중인 것처럼 보인다. 일본 증시에 상장돼있는 넥슨은 2011년 매출 1조원을 돌파한 지 9년 만인 2020년 매출 3조원을 돌파했다. 같은 기간 엔씨소프트도 6089억원에서 1조7587억원으로 매출이 두 배 넘게 늘었다.

전체 게임산업 매출 역시 2016년 10조8945억원에서 2020년 18조8855억원으로 73% 성장했다. 음악(14%)이나 방송(27%) 등 다른 콘텐츠 산업에 비해 월등하게 빠른 성장 속도다.

하지만 전 세계 게임시장에서 K게임의 위상은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지난해 기준 한국은 전 세계에서 넷째로 큰 모바일게임 시장이지만, 한국산 게임은 전 세계 매출액 상위 9개 게임에 하나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중국 텐센트가 개발한 ‘배틀그라운드 모바일’과 ‘왕자영요’가 나란히 1, 2위에 올랐고, 중국 미호요(현 호요버스)가 개발한 ‘원신’이 3위를 차지했다. 

PC게임 분야에서도 한국산 게임은 스마일게이트가 2007년 출시한 FPS(1인칭 슈팅게임) ‘크로스파이어’ 하나만 10위 안에 이름을 올렸다. 게임의 창의성과 기술력을 가늠할 수 있는 주요 ‘올해의 게임상’ 명단에서도 한국 게임의 이름은 찾아볼 수 없다.

치열하기 
어려운 구조

대신 거대 자본력과 시장을 기반으로 한 중국산 게임의 공세가 거세다. 2014년만 해도 한국과 중국의 게임 수출액은 엇비슷했지만, 2020년에는 중국이 한국을 두 배가량 앞질렀다.

2000년대 초반 탄생한 한국 게임업체들은 당시 크지 않은 규모에도 참신한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신작을 꾸준히 만들어냈다. 이때 탄생한 게임이 2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큰 사랑을 받고 있는 ‘리니지’ ‘카트라이더’ ‘메이플스토리’ ‘마비노기’ 등이다.

해당 게임들에 대해 한 게임업계 전문가는 “꿈을 가진 개발자들이 초롱초롱한 아이디어를 갖고 만들어낸 보물이었다”고 말했다.


2010년대 이후 게임시장이 모바일 중심으로 재편되자 한국 게임회사들은 기존 PC를 기반으로 제작했던 게임을 모바일용으로 전환한 뒤 경쟁적으로 확률형 아이템을 도입했다. 게임의 특정 캐릭터나 무기 등을 정가에 판매하는 대신 ‘뽑기’ 방식으로 판매하는 방식이다.

게임업체가 설정한 확률에 따라 게임 이용자가 낸 금액의 가치보다 더 높거나 낮은 아이템이 나올 수 있는 구조여서 게임의 재미를 키워주기도 하지만 지나치게 사행성을 조장한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돼왔다.

이런 사업모델이 성공하면서 게임사들은 국내에서 엄청난 매출과 이익 성장을 이뤄냈지만, 결과적으로 혁신에 게을러지는 부작용도 낳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현직 대형 게임업체 간부는 “비슷한 스토리와 확률형 아이템 게임에 기반한 돈벌이에 익숙해진 나머지 노력을 게을리하면서 세계 시장에서 멀어져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게임업계에 따르면, 올해 하반기 출시했거나 출시 예정인 국내 게임업체의 주요 신작 가운데 11개가 기존 게임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대형 업체인 넥슨·엔씨소프트·넷마블이 출시하는 4개의 게임 가운데 3개도 마찬가지다. 재탕·삼탕한 게임이 계속 쏟아지는 배경에는 편하고 쉽게 돈을 벌 수 있다는 계산이 자리 잡고 있다. 

대박을 친 원작의 인지도를 활용하면 성공 가능성이 커지고, 비용은 아낄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겉만 번지르르’
추락하는 K게임

‘리니지’의 경우 1998년 최초 개발된 이후 리니지 시리즈로 나온 게임이 15개가 넘는다. 리니지는 지금까지도 엔씨소프트 매출의 80%를 차지한다. 2000년대 초반에 개발된 ‘라그라로크’ IP(지적재산권)로 만든 게임이 35개가 넘고, 넥슨이 제작한 ‘바람의 나라’ ‘던전앤파이터’ 등도 수십 개의 비슷한 게임이 꾸준히 제작돼왔다. 

그러다 보니 상당수 게임의 스토리와 구조도 비슷하다. 가령 ‘악당을 무찌르기 위해 뛰어든다→많은 돈을 주고 아이템을 사들여 캐릭터의 능력을 향상시킨다→악당을 무찌른다→또 다른 악당이 등장해 다시 게임이 진행된다’는 식이다.

일부 대형 게임업체의 경우 비대해진 조직도 혁신을 가로막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엔씨소프트의 경우 직원 수가 2013년 1110여명이었는데, 올해 6월 현재 4700여명으로 4배 넘게 늘었다. 크래프톤은 2020년 1171명에서 올해 6월에는 1700여명으로 600여명 늘어났다.

과거 같으면 직원들이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내고, 서둘러 아이디어를 채택 여부를 결정해 빠르게 게임을 내놨다. 그런데 조직이 커지면서 의사결정이 늦어지고, 우수한 아이디어가 채택되지 못하는 일이 잦아진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국내 한 대형 게임업체에서 개발자로 근무했던 A씨는 “신작 게임 아이디어가 통과되려면 팀장·실장·본부장·CEO 4개의 결재선을 거쳐야 하는데, 팀장·실장까지 허가가 났지만 본부장이 허가하지 않아 무산된 적이 있다”며 “내가 구상했던 것과 똑같은 게임을 나중에 다른 업체가 출시해서 큰 재미를 봤다”고 말했다.

그는 “조직이 커졌으니 어쩔 수 없는 측면도 있지만, 예전 같으면 무난히 출시돼 빛을 볼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아쉬움이 남는다”고 덧붙였다.

한국 게임회사들이 대기업이 되면서 설립 초기의 열정과 창의성이 사라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게임업체 간부 B씨는 “김택진·김정주 회장 같은 1세대 게임 개발자들은 야전침대에서 잠을 자면서 게임을 개발해낼 정도로 치열했는데, 지금 그들은 모두 관료화된 대기업의 오너나 최고위직이 됐다”며 “이들이 물러나고 새로운 후배 개발자들이 계속 나와야 하는데, 이미 게임업계는 조직이 너무 커졌고, 돈을 편하게 벌 수 있도록 짜여 있어서 치열하게 일하기 어려운 구조”라고 말했다.

게임업계에서는 내달 17일이 분위기 반전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날이 대입 수능시험일과 국내를 대표하는 국제게임쇼 ‘부산지스타’가 개막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특히 업계는 지스타 시즌을 전후에 다양한 신작게임을 공개하거나 업데이트를 단행한다.

통상 1년 중 게임시장의 최대 성수기는 11월 중순 이후부터라는 게 정설로 알려져 있다. 수능시험과 국제 게임쇼인 지스타 기간을 기점으로 게임 이용률이 급반등하는 경향을 보여왔다. 이후 각급 학교의 겨울방학과 맞물리며 이듬해 2월 말까지 이용자 수, 이용시간, 이용률, 객당가 등 모든 게임지표가 일제히 상승한다. 

게임시즌은 
아직 겨울

때와 장소를 불문하고 사용 가능한 모바일게임이 시장의 대세로 굳어졌지만, 여전히 게임 시즌은 겨울철이다. 오랜 부진의 늪에 빠져있는 게임업계가 위기를 딛고 다시 한 번 도약할 수 있을지, 지스타 시즌 이후 게임업계와 게임주의 분위기 반등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ktikt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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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대통령실 따로 노는 내막

정부·대통령실 따로 노는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정부와 대통령실 간 파열음이 커질 전망이다. 12·3 불법 계엄 사태 이후 정책 및 정치적 대응 노선을 두고 엇박자인 모양새다. 대표적으로 ‘대왕고래’ 사업이 꼽힌다. 정부는 사실상 사업 실패를 인정했다. 대통령실은 정부의 공식 입장을 노골적으로 비판하는 스탠스를 취했다. 문제는 두 기관 사이의 갈등이 이제 시작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라는 점이다. “확실한 근거도 없이 정치적 판단이 작용한 게 너무 많다.” 한 정부 부처 관계자의 말이다. 정부 부처 안팎에서는 동해 심해 유전 탐사 ‘대왕고래’ 프로젝트에 대한 대통령실과 일부 여당의 비판이 정치적이라는 여론이 상당하다. 활화산이던 정부와 대통령실의 갈등이 폭발하기 시작한 모양새다. 나라는 뒷전 일손 놨다 대통령실은 지난 9일 산업통상자원부 고위 관계자가 진행한 ‘대왕고래’ 프로젝트 브리핑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다. 앞서 산업부는 1차 탐사 시추 결과 “경제성을 확보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고 밝혔다. 대통령실은 공식 입장을 내고 “이번 잠정 결과는 대왕고래에 대한 단정적 결론이 아니며 나머지 6개 유망 구조에 대한 탐사 시추도 해봐야 한다”고 반박했다. 야권의 비판으로 대왕고래가 정치적 논란을 야기한 상황서, 발표 내용을 다듬어 밝혔어야 했다는 불만도 깔려 있다. 국민의힘도 대통령실의 입장과 큰 차이가 없었다. 정부 부처 안팎에서는 산업부를 향한 대통령실과 여당의 비판이 내부 총질과 다를 바 없다고 지적한다. 한 부처 간부는 “경제성이 있는지 없는지 확정되지도 않은 상황서 발표해버린 대통령의 잘못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브리핑은 산업부서도 몰랐던 사안이다. 비판하려면 누가 먼저 사안을 ‘정치화’했는지 깊이 있게 고민하고 지적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로 윤 대통령은 지난해 6월3일 첫 국정 브리핑을 통해 “최대 140억배럴의 석유와 가스가 동해에 매장돼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결과가 나왔고, 유수의 연구기관과 전문가들의 검증도 거쳤다”며 예고 없이 직접 대왕고래를 발표했다. 천연가스는 최대 29년, 석유는 최대 4년을 넘게 쓸 수 있는 양이라며 구체적 수치도 거론했다. 윤 대통령의 브리핑 직후 기자들의 질문을 받았던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도 “현재 가치로 따져보면 최대 매장량은 삼성전자 시가총액의 5배에 달한다”고 밝혔다. 통상 석유 시추사업과 같이 실패 가능성이 큰 사업은 대통령이 직접 발표하는 경우가 없다. 윤 대통령이 대왕고래를 직접 발표한 날은 여당의 22대 총선 참패 두 달 뒤였다. 실제로 정치적 위기가 닥치자 국면 전환을 시도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총선 참패 뒤 ‘대왕고래 프로젝트’ 과장 발표 산업부, 사실상 사업 실패 인정 “경제성 없다” 윤 대통령의 참모 일부는 대왕고래가 지지율 상승에 긍정적일 것이라는 의견을 냈던 것으로 알려졌다. 윤 대통령 측은 이후 야권의 대왕고래 관련 예산 삭감이 12·3 불법 계엄 명분 중 하나라고 주장한다. 대왕고래는 시작부터 많은 의심을 받았다. 경북 포항시 인근 바다에 다량의 가스와 석유가 매장돼있을 가능성을 주장한 분석업체 ‘액트지오(Act-Geo)’의 전문성을 두고 의구심이 커졌다. 대왕고래는 지난 2023년 2월 한국석유공사가 액트지오에 대왕고래 유망 구조 데이터에 대한 분석을 의뢰하면서 시작됐다. 액트지오는 “대왕고래 유망 구조서 최대 140억배럴의 석유와 가스가 매장돼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결과를 석유공사에 보냈다. 석유공사는 액트지오 분석 결과를 교차 검증하기 위해 국내외 자문단을 꾸렸고 해당 자문단에서는 ‘액트지오의 분석 방법론과 이를 바탕으로 결론에 이르는 과정은 합리적’이라는 의견을 냈다. 이를 근거로 석유공사는 지난해 4월 시추선 용역 계약을 체결했다. 비슷한 시기 산업부는 내부 검토를 마무리하고 장관 보고까지 진행한 뒤 최종적으로 대왕고래 유망 구조에 대한 시추가 필요하다고 판단, 대통령실에도 진행 상황을 알렸다. 그러나 액트지오는 글로벌 자원개발회사가 아닌 소규모 분석업체였다. 액트지오 미국 본사 주소지가 일반 주택가인 점도 드러나면서 액트지오 분석 결과에는 의문부호가 따라붙었다. 이 분석을 진두지휘한 비토르 아브레우 박사가 윤 대통령 발표 이틀 만에 한국으로 들어와 기자회견을 여는 등 여론전을 펼쳤으나 의구심을 없애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특히 유명 글로벌 자원개발기업 ‘우드사이드’가 이미 대왕고래 유망 구조를 검토했다가 철수했다는 소식까지 알려졌다. 폭발 직전 활화산 산업부는 우드사이드가 검토한 유망 구조 지역과 액트지오가 분석한 대왕고래 유망 구조 지역이 다르다고 해명했으나 여론은 액트지오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산업부는 액트지오 분석 결과를 신뢰한다며 1차 시추를 밀어붙였다. 지난해 7월에는 사실상 매장 가능성이 큰 곳으로 첫 탐사 위치를 정했다. 이후 시추 관련 용역업체를 고른 뒤 지난해 12월 시추선이 1차 시추 지점으로 이동, 한 달 전인 1월 탐사 시추를 시작했다. 탐사 시추 이후에는 1차 지점서 얻은 ‘시료’ 분석에 들어갔다. 유망 구조 내에 가스나 원유 성질의 물질이 얼마나 묻혀 있는지, 경제성이 확보될 정도의 규모 인지를 조금이라도 파악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현장 물리 검층·이수 검층 결과 가스, 석유 매장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산업부는 “대왕고래 시추 작업 과정서 가스 징후가 잠정적이나마 일부 있었음을 확인했지만 그 규모가 경제성을 확보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고 발표했다. 1차 탐사 시추 실패 가능성이 제기되지 않았던 건 아니다. 애초에 밝힌 시추 성공률이 20%였기에 최소 다섯 번은 뚫어야 한다는 게 정부 계획이었다. 그러나 윤 대통령이 프로젝트를 성급하게 발표하면서, 사업에 의구심과 정치적인 논란만 키웠다는 비판이 거세다. 산업부도 “정무적인 영향이 많이 개입” “첫 시추서 성공 확률은 로또보다 작은 데 많은 부담을 안고 있었다” 등의 해명을 내왔다. 사실상 대통령실 등 정치권의 책임론을 언급한 것으로 해석된다. 최근 윤 대통령의 헌법재판소 탄핵 심판 변론에 증인으로 출석한 박춘섭 대통령실 경제수석도 윤 대통령 측으로부터 야당의 대왕고래 예산 삭감 관련 질문을 받자 “중국이나 일본은 근해서 해저자원 개발을 많이 하고 있다”며 “두 나라를 따라가려면 바다서 많이 시추해야 한다”고 말했다. 파열음 정면 충돌 나머지 유망 구조 6개가 있는 만큼 전체 프로젝트의 성공 가능성을 예단하긴 이르다는 평가도 나온다. 석유공사는 이번 시추서 얻은 시료 등을 전문 분석 기업으로 보내 약 6개월간 정밀 분석과 실험을 진행한다. 오는 5~6월께에는 중간 결과를 발표할 계획이다. 산업부 외에도 대통령실과의 갈등 조짐을 보이는 정부 부처는 기획재정부다. 추경 편성 자체를 반대하는 데 이어 여당의 협조를 얻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최근 중국 딥시크로 인해 AI에 대한 관심이 커진 만큼 산하 분과들이 경쟁적으로 여러 제안들을 내놨다. 그러나 예산 벽에 부딪혀 추경 편성에 희망을 걸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도 추경을 통해 AI 관련 예산을 추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유상임 과기부 장관은 지난 4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서 국가AI컴퓨팅센터에 쓰일 GPU(그래픽처리장치) 조기 확보 필요성을 강조하며 “추경을 하면 AI 분야에선 반드시 GPU 구입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달 내에 국가AI위원회의를 주재할 계획이다. 국가AI위는 이 자리서 지난해 12월부터 진행해 온 워크숍과 내부회의를 통해 마련한 시그니처 프로젝트를 보고할 예정인 만큼, 추경을 통한 예산 확보 건의도 이뤄질 계획이다. 대통령실과 국민의힘은 회의적이다. 국민의힘은 추경 논의 가능성을 열어두면서도, 전액 삭감된 동해 심해 가스전 개발사업(대왕고래 프로젝트) 예산 등을 복구하는 게 우선이라는 입장이다.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은 최근 “향후 추경을 통해 대왕고래 프로젝트 예산을 복구하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딥시크 대응 AI 예산 필요한데… 대화도 안 하고 당국과 거리두기 국정협의체 본회담이 삐거덕거리면서 추경 편성이 무산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여야 모두 반도체특별법과 국민연금 개혁안을 둘러싼 안팎의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한 탓이다. 구체적으로 반도체법상 주52시간 근로제 예외와 국민연금 구조·모수개혁 병행 여부를 두고서다. 여당은 삭감예산 복구에, 야당은 AI와 R&D 예산 추가 편성에 방점을 찍었다. 한 정부 부처 관계자는 “계엄 이후 대통령실과 정부 부처 간 소통이 확연히 줄었다. 추경과 관련해서도 야당과 입장이 비슷하다. 대화를 해야 의견이 모이거나 좁혀지는데 양보도 하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대통령실과 국무위원의 주장이 충돌하는 사례도 이어지고 있다. 한덕수 국무총리와 최 권한대행은 지난 6일 국회 ‘윤석열정부의 비상계엄 선포를 통한 내란 혐의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해, 지난해 불법 계엄 당시 국무회의를 “국무회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같은 자리서 정진석 대통령비서실장은 “국무회의의 본질이 부정당하는 시간은 아니었다”며 다른 주장을 폈다. 윤 대통령은 계엄 당일 최 권한대행에게 전달된 ‘비상입법기구’ 쪽지를 부인하고 있지만, 최 권한대행은 당시 윤 대통령이 직접 자신을 부른 뒤 옆에 있던 참모가 자신에게 ‘비상입법기구’ 쪽지를 전달했다고 재차 주장했다. 각 정부 부처는 지난해 말 올해 업무계획 추진을 위한 보고서 작성을 끝마쳤다. 그러나 윤 대통령이 구속되면서 모든 업무계획이 늦어졌다. 통상 정부와 각 부처는 12~1월쯤 다음 연도 업무계획을 위해 부처별, 국·과별로 업무보고를 받는다. 정부는 출범 이래 교육개혁 3대 정책인 ▲국가 책임 교육·돌봄(유보통합 등) ▲디지털 교육혁신 ▲대학 개혁과 국정과제로 추진한 의과대학 정원 증원 등 추진 계획 등을 밝혔다. 행정안전부 산하서도 ▲지방행정체제 개편 ▲인구전략기획부 신설 등 조직개편과 관련한 굵직한 정책들이 예고된 바 있다. 예산 두고 갈팡질팡 대통령실 근무 경험이 있는 한 정부 인사는 “국정 동력에 상당한 타격이 가해진 상황이고 대통령실이 모든 정책과 예산 및 계획을 정치적으로만 해석하는 게 문제”라며 “‘어떻게 하면 윤 대통령을 살릴 수 있을까’가 아니라 국익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외교와 경제가 파탄 나기 직전인데 대화도 하지 않으려는 건 직무유기”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