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역단체장 릴레이 인터뷰> 박완수 경남도지사

“윤석열 대통령 원전 상용화 약속했다”

[일요시사 정치팀] 차철우 기자 =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의 중도 낙마로 더불어민주당은 현역 의원을 후보로 내지 못했다. 결과는 국민의힘의 압도적인 승리로 끝났다. 경남은 지방선거 이후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방문까지 하며 공들인 지역 중 하나였다. 경남이 윤정부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 재도약할 수 있을까.

박완수 경남도지사는 집념이 강하다. 행정고시부터, 창원시장, 경남도지사까지 여러 번 도전을 거친 끝에 목표를 이뤘다. 2002년에 무소속으로 처음 정계에 발을 들인 뒤 줄곧 보수 궤도를 달려왔다. 당선 때는 항상 압도적인 표차로 승리를 거둬온 만큼 기반이 탄탄하다. 창원시장은 3선까지 성공하며 행정력 입증을 받았다. <일요시사>는 박 지사에게 경남 청사진, 현안, 윤석열정부와 협치 방식 등을 물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본인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반갑습니다. 경상남도지사 박완수입니다. 저는 경남에서 태어나고 자란 CEO형 행정전문가입니다. 경남도청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했고, 합천군수, 김해부시장을 역임했습니다. 이후 3선 창원시장과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 재선 국회의원 등 다양한 공공기관에서 행정적·정치적 경험을 쌓았습니다. 지금은 민선 8기 경남도지사로서 진심과 열정을 다해 도정에 임하고 있습니다. 

-경남도지사에 당선됐습니다

▲먼저 많은 성원과 지지를 보내주신 우리 도민께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선거 과정에서 노동자와 학생, 상인 등 다양한 분을 만났습니다. 그 과정에서 많은 분들이 코로나19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계신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꼈습니다.


도민은 선거보다 삶을 이어가는 게 우선인데, 표를 달라고 말씀드리기가 죄송하기도 하고 민망했습니다. 어려운 상황에서 도지사를 맡게 된 만큼 도민께서 주신 신뢰와 기대에 보답하기 위해 더욱 엄중한 책임감과 겸허한 마음으로 맡은 소임을 다해 나가겠습니다. 

-도지사님께서 그리는 경남 청사진이 궁금합니다

▲제가 꿈꾸는 경남은 ‘활기찬 경남, 행복한 도민’입니다. 먼저 국내외 투자유치, 창업 활성화와 함께 산업의 체질을 튼튼하게 만들어 경남의 경제 전반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입니다. 또 도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킬 수 있는 의료·복지체계를 구축하고 도민의 삶을 풍요롭게 해줄 수 있는 문화·관광 인프라 조성에 힘써 나갈 예정입니다. 

-경남의 가장 시급한 현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며 해결 방법은?

▲먼저 경남도청과 산하기관 등 조직과 문화를 도민 중심으로 재편하고 있습니다. 중복되는 조직은 통폐합하고 향후 도정 주요 과제나 역점사업을 담당할 조직을 강화해 일하기 좋은 조직으로 탈바꿈시키겠습니다. 다소 경직돼있던 조직문화를 유연하게 만드는 일도 동시에 추진하고 있습니다.

하위직 공무원들도 지사와 언제든지 소통할 수 있도록 하고, 열심히 일하고 성과를 내는 공무원이 진급하는 상식적인 인사체계도 확립해나갈 것입니다.

“경남을 투자유치특별자치도로” 
원전 사업 부활 움직임 감지


-일자리, 경제 문제는 어떤 곳에 방점을 찍으셨는지 알고 싶습니다

▲지역에 기업과 투자를 적극적으로 유치하고 양질의 일자리를 늘리는 데 주력할 것입니다. 곧 설치될 투자유치 전담 기관과 경제투자자문위원회를 중심으로 경남을 투자유치특별자치도로 만들어나갈 계획입니다. 기존의 주력산업인 기계, 조선, 자동차, 항공 산업을 고부가가치화 하는 일과 새로운 신성장 동력을 일으키는 일도 동시에 추진 중입니다. 

남부내륙철도 거제·진해 신항·가덕도 신공항 등 트라이포트를 활용한 MICE산업, 배후지역을 활용한 물류산업 등을 활성화하기 위한 전략도 함께 마련하고 있습니다. 

-부울경 메가시티가 곧 출범합니다

▲부울경 메가시티가 수도권 집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지방의 연대라는 긍정적인 측면은 있지만, 추진 과정에서 서부 경남 균형발전 방안이 충분히 고려되지 못했습니다. 중앙의 권한과 재정을 충분히 넘겨받는 방안도 제대로 마련되지 못했습니다.

경남 입장에서 유불리를 꼼꼼하게 재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 제대로 된 검토없이 부울경 메가시티가 출범하게 된다면 인력과 재정만 낭비하는 옥상옥 조직이 될 수 있습니다. 도내 균형발전과 부울경 메가시티 실익을 검증하기 위해 추진의 필요성, 추진 방향 등에 대한 연구 용역을 이달 말까지 완료할 예정입니다.

연구 결과를 반영해 부울경 메가시티 추진 방향을 정리할 것입니다.

-최근 경남 88개 담당 사무관을 폐지한다고 밝히셨습니다

▲실무자 중심 조직, 성과 중심 조직, 일하는 조직이라는 원칙에 도민이 체감할 수 있는 성과를 만들어 낼 수 있도록 산업·경제 분야에서 88개에 이르는 담당사무관 제도를 폐지했습니다. 앞으로 경남 도정은 중간관리자를 줄이고 부서장을 중심으로 속도감 있게 업무를 추진해나가면서 보다 많은 성과를 창출하게 될 것입니다.

-경남에서 원전 사업 부활 움직임이 감지됩니다. 문정부는 5년간 탈원전을 추진한 바 있습니다. 반면 윤정부는 원전과 관련해 부활 드라이브를 걸고 있습니다

▲대통령께서 당선인 시절에 이어 두 달 만에 다시 도내 원전 기업을 방문해 원전산업 협력업체를 대상으로 조기 일감 공급, 금융 애로 해소 등 정부 차원의 종합대책을 발표했습니다. 원전산업을 정상화시키는 데 대단히 의미가 있는 조치이자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새 정부의 원전 산업 생태계 강화 정책에 맞춰 경남을 다시 대한민국 원전의 중심지로 육성하도록 다양한 지원사업을 추진할 것입니다. 또 미래 먹거리 확보 측면에서 소형모듈 원전(SMR) 기술개발과 상용화를 적극적으로 지원할 계획입니다.


재정·권한·인력 대폭 이양 필요
“작은 목소리에도 귀 기울일 것”
경남 도정 개인 정치행보 경계

-윤석열 대통령이 경남을 찾아 도지사님과 통화를 했습니다

▲대통령께서는 크게 두 가지를 말씀하셨습니다. 먼저 지난 정부의 무리한 탈원전 정책으로 직격탄을 맞은 지역의 원전 관련 기업 지원을 위해 신한울 3·4호기 공사 재개와 금융 지원, 소형모듈 원전(SMR) 개발과 상용화 지원을 약속하셨습니다. 

또 우주항공청 설립과 관련, 임기 내 착공 의지를 표명하고 경남에서 미리 제반사항을 준비해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경남은 대통령께서 말씀하고 약속하신 사항들을 차질 없이 추진하기 위해 중앙정부와 열심히 소통해 협력하고 있습니다. 

-경남도의회 전체 의원 중 60명이 국민의힘 소속입니다. 일각에서는 우려를 표하기도 합니다 

▲도민의 뜻을 엄중하게 받들어 도정을 운영해나갈 것이지만, 포용과 화합의 자세를 잃지 않겠습니다. 도민을 위한 것이라면 작은 목소리라도 언제나 귀 기울이고, 통합의 과정을 통해 견제와 비판을 수용할 것입니다. 도의회 본연의 임무는 도정을 감시 감독하는 것입니다.


도의회가 특정 정당 출신들 중심으로 구성됐다 해도 본연의 기능이 왜곡되거나 축소되지 않을 것으로 봅니다. 도의회 함께 도민에게 희망을 주는 도정을 펼치도록 할 것입니다.

-최근 도지사님께서는 중앙정부 권한을 대폭 이양해 달라고 제시하셨습니다

▲수도권 인구 집중은 대한민국이 당면한 가장 큰 병입니다. 그동안 정부에서 다양한 균형발전·저출산 대책을 내놨지만, 여전히 수도권은 과밀로 고통받고, 지방은 인구소멸의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중앙정부의 재정, 권한, 인력, 그리고 정보를 과감히 지방으로 이양하는 혁명적 대안이 나오지 않으면 불균형의 전철을 답습할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재정에 대한 권한, 책임을 지방에 이양하는 재정분권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우선 국세와 지방세의 8대2로 배분 비율을 실제 재정 집행 비율인 6대4 수준으로 개편이 이뤄져야 합니다. 

-사회대통합위원회 구성, 국내외 투자유치를 활성화하기 위한 투자유치자문위원회 구성 및 전문가 영입을 하고 계십니다

▲취임식 때 화합과 통합의 도정을 약속한 바와 같이 세대, 지역, 젠더, 계층 간의 갈등과 분열을 해결하지 않고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학계, 사회시민단체, 직능단체, 여성, 청년 등 사회 각계각층이 참여하는 사회대통합위원회를 구성해 지역사회에 곳곳에 퍼져있는 갈등과 상처를 치유하고 공존과 상생의 문화가 뿌리내릴 수 있도록 노력해나갈 것입니다. 

또 4대 기업이 600조원 규모의 국내 투자를 발표한 만큼 투자유치 전담기구와 함께 투자유치자문위원회를 구성해 기업과 투자를 적극 유치할 것입니다. 경제투자자문위원회는 전직 대기업 CEO 출신 분들을 중심으로 구성해서 대기업들의 투자정보를 신속하게 파악하고, 맞춤형 투자 유치 전략을 세우는 데 활용할 것입니다. 

-국민의힘이 지방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요인을 분석해 보신다면?

▲이번 지방선거는 지난 3월 정권교체의 연장선상에 치러진 선거라고 생각합니다. 국민들께서 대통령, 국회의원, 지방선거를 통해 더불어민주당에 큰 기회를 주셨지만 많은 실망을 하셨습니다. 비정상적인 상황을 정상화하기 위해 국민의 힘에 많은 지지를 보내주신 것이 아닌가 합니다. 다만 국민의 힘은 절대 자만하지 않고 언제나 초심을 지켜나가야 할 것입니다. 

-경남도지사 출신은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를 제외하고 대부분 선거를 출마한 바 있습니다. 전국 타 광역지자체장에 비하면 대권에 도전한 사례가 매우 많은 편입니다 

▲그동안 정치인 출신 도지사가 정치적 사심으로 도지사직을 이용해왔기 때문입니다. 준비되지 않은 도정 공백은 경남 경제와 도민 삶의 질 저하의 원인이 됐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도민이 부담해야 했습니다. 경남도정이 더 이상 개인의 정치적 행보에 휘둘려서는 안 됩니다.

이제는 경남만을 생각하고 도정에 전념할 수 있는 진짜 도지사가 필요한 시기입니다. 박완수의 도정은 정치적 사심 없이 오로지 도민만을 바라보고, 경남의 발전을 위해 헌신할 생각입니다. 

-윤석열정부와 어떤 방식으로 협치를 하실지 알고 싶습니다

▲우리 국민은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를 통해 국민의 힘에 큰 지지와 기대를 보내주셨습니다. 이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힘을 합쳐 대한민국과 경남을 다시 일으켜 세우라는 준엄한 명령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통령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지역의 발전이 곧 국가의 발전입니다. 새 정부가 지방 균형발전에 대한 확고한 철학을 바탕으로 지역을 위한 실질적인 정책을 실현해나갈 것으로 기대합니다. 

-마지막으로 각오를 부탁드립니다

▲민선 8기 경남 도정이 출범했습니다. 그동안 도정 공백이 많았던 만큼 좌고우면하지 않고 무너진 경남의 경제와 위상을 다시 바로 세우겠습니다. 도민이 행복한 경남, 340만 도민이 진정한 주인이 되는 그런 경남을 만드는 데 모든 역량과 열정을 쏟겠습니다. 경남 도정에 많은 관심과 격려를 부탁드립니다. 고맙습니다. 

< ckcjfdo@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박완수 도지사, 민주당 의원들 무슨 말 나눴나

박완수 경남도지사는 더불어민주당 경남지역 국회의원과 함께 국비 확보를 위해 자리를 가졌다.

지난달 김해에서 민주당 경남지역 국회의원 간담회에 참석해 내년도 국비 주요사업 42개에 대한 지원과 협조를 요청한 바 있다. 

해당 자리에서 박 지사는 경남 현안 사업의 차질 없는 추진을 위한 방안을 함께 논의했다.

이날 간담회에는 민주당 민홍철·김정호·김두관 의원이 마주 앉았다. 

경남은 현재 풀어야 할 숙제들이 많다.

박 지사는 진해 신항, 남부내륙철도, 남해·여수 해저터널 등을 위해 예산의 필요성을 촉구하고 나섰다.

그는 “정부가 내년 예산편성에 재량 지출 10% 의무 감축과 지출구조 조정을 예정하고 있다. 국비 확보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언급했다.

이어 “지역사업과 경남 전체의 발전을 위한 핵심 산업이 추진될 수 있도록 예산이 확정될 때까지 부탁드린다”고 덧붙였다. 

박 지사는 예산 확보를 위해 중앙부처를 자주 방문할 계획이다.

또 경남도 지역구 의원들과 협업 체제를 구국해 국비 확보에 총력을 다하겠다는 방침을 내걸었다. <차>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2015년 진행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의 여파가 아직까지 남아있다. 정부는 당시 합병으로 인해 외국계 투자회사인 엘리엇 매니지먼트및 메이슨 캐피탈과 국제투자 분쟁에 휩싸였다. 국제상설중재재판소의 판정으로 정부는 이들에게 약 2100여억원을 배상해야 하는 상황 중 아주 작은 소생의 실마리가 나왔다. 엘리엇 분쟁 사건의 판정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승소한 것이다. 정부가 미국계 해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와의 8년간 진행 중인 국제투자 분쟁에서 반전의 기회를 잡았다. 1300여억원을 배상하라는 국제투자 분쟁 판정에 불복해 제기한 소송의 항소심에서 승소하면서다. 이로 인해 배상 판결이 취소될 가능성도 되살아났다. 사건 발단 짚어보니… 법무부에 따르면 영국 항소법원은 지난 17일 한국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여 1심 법원인 고등법원에 사건을 환송했다. 이에 따라 사건을 되돌려받은 영국 고등법원은 엘리엇에 대한 한국 정부의 배상을 결정한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의 재판 관할권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한국 정부로서는 중재판정 자체를 무효화할 가능성을 다시 확보하게 된 셈이다. 엘리엇 배상 사건은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이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국제투자분쟁(ISDS) 사건이다. 해당 사건은 지난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정부가 국민연금공단(이하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이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면서 시작됐다. 엘리엇은 해당 의혹이 발발한 지 3년이 지나서야 7억7000만달러의 손해를 입었다며 ISDS를 제기했다. 엘리엇의 ISDS 제기는 대한민국 정부에게는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만약 엘리엇의 주장이 받아들여질 경우, 막대한 국민 세금이 배상금으로 지급돼야 하는 상황이었다. 또 국제 중재 절차는 매우 복잡하고 오랜 시간이 소요될 뿐만 아니라, 국가의 대외 신인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법무부를 중심으로 전담팀을 구성하고 국제 법률 전문가들과 협력해 엘리엇의 주장에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양측은 수년간의 준비 과정을 거쳐 네덜란드 헤이그에 위치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서 치열한 법적 공방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국정 농단 사건의 재판 결과와 국민연금 관계자들의 증언 등이 중요한 증거로 활용됐다. 기나긴 법적 공방 끝에 지난 2023년 6월20일, 네덜란드 헤이그의 PCA는 엘리엇의 ISDS 사건에 대한 최종 판정을 내렸다. 판정 결과는 대한민국 정부에게 상당한 충격이었다. PCA는 한국 정부가 엘리엇에 5358만6931달러(당시 환율로 약 690억원) 와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이는 엘리엇이 청구한 금액인 약 7억7000만달러의 약 7%에 해당하는 금액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정부가 국제 중재에서 패소해 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점에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PCA는 판정문에서 국민연금의 삼성물산 합병 찬성 행위가 한국 정부에 귀속되는 행위며, 이로 인해 엘리엇에 손해가 발생했다고 판단했다. 이는 국민연금이 공적기금으로서 정부의 통제 하에 있으며, 그 의사결정이 정부의 행위로 간주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또 정부가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의 정당한 주주 권리를 침해하고 투자가치를 훼손했다고 봤다. 배상 취소 소송 항소심 승소 한미FTA상 성립 불가능 판단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는 이 판정을 그대로 수용하지 않았다. 법무부는 판정 직후 즉각적으로 불복 절차에 돌입하겠다고 밝혔다. 2023년 7월18일, 정부는 중재판정부에 판정의 해석·정정을 신청하는 동시에, 중재지인 영국 법원에 판정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정부는 판정에 법리적 오류가 있거나 중재 절차에 중대한 하자가 있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주장하며 판정을 뒤집기 위한 총력전을 펼쳤다. 특히, 정부는 엘리엇 사건이 한미 FTA상 ‘성립 불가능’한 사건이라는 점을 취소소송에서 가장 크게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국제투자 분쟁은 해외 투자자가 ‘투자국’의 협정 위반 행위에 대해 제기하는 국제중재로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는 ‘상업적 행위’일 뿐 국가의 행위로 볼 수 없다는 게 정부의 논리였으나 1심 법원에서는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정부는 해당 판결에 대해서도 항소를 진행했고 지난 17일 영국 항소법원은 우리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사건은 다시 1심 법원인 영국 고등법원으로 환송됐으며, 영국 고등법원은 배상 판결을 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 애초 재판 관할권이 있었는지부터 다시 심리하게 된다. 이 판결은 한국 정부가 거액의 배상을 면할 수 있는 반전의 기회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엘리엇 배상 사건의 발단은 삼성물산 제일모집 합병에서 촉발됐다. 지난 2015년 5월26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합병 계획을 발표하며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제일모직이 삼성물산을 1대 0.35의 비율로 흡수합병하는 방식이었다. 이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그룹 경영권 승계 및 지배력 강화를 위한 것으로 해석됐으나, 삼성물산 주주들에게는 불리한 합병 비율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8년 소송 결말은? 당시 제일모직의 주가는 삼성물산의 약 3배였지만, 자산총액 기준으로는 삼성물산이 제일모직의 3배에 달했기 때문이다. 이에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는 삼성물산 지분 7.12%를 보유하고 있음을 공시하며 합병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 합병 금지 가처분신청을 제기하는 등 적극적인 반대 운동을 펼쳤다. 당시 엘리엇은 삼성물산의 가치가 지나치게 저평가됐으며 합병 조건이 불공정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법원은 엘리엇의 가처분신청을 모두 기각하며 삼성의 손을 들어줬다. 합병의 가장 중요한 변수는 삼성물산의 최대주주였던 국민연금이었다.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들이 합병 반대 의견을 내놨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연금은 내부 투자위원회를 거쳐 합병에 찬성표를 던졌다. 결국 2015년 7월17일, 삼성물산 주주총회에서 합병안이 통과됐고, 그해 9월1일 통합 삼성물산이 공식 출범했다. 이후 박근혜정부 국정 농단 사건이 불거지면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의 불법성 의혹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특별검사팀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와 지배력 강화를 위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이 이뤄졌고, 이 과정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에게 뇌물을 제공하는 등 불법 행위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특히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하도록 정부가 부당하게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관련 인사들이 재판에 넘겨졌다. 2025년 7월17일, 대법원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및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부정과 관련한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 행위, 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 대해 전부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이로써 이 회장은 약 10년간 이어져 온 사법 리스크에서 벗어나게 됐다. 리스크 해소 다양한 반응 엘리엇 배상 사건이 새로운 국면을 맞으면서 법조계와 정치권에서는 다양한 반응이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항소심에서 ‘한국 승소’로 뒤집히자, 취소 청구를 주도한 법무부 장관으로서 환영했다. 한 전 대표는 “최선을 다하고 성과를 낸 많은 ‘좋은 공직자’들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한동훈 전 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에 “제가 법무부 장관으로서 지휘했던 엘리엇 국제투자분쟁(ISDS) 중재판정의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대한민국이 이겼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더불어민주당이 저 소송(취소소송 제기) 관련해 저를 많이 비난했었다”고 정쟁적 비판을 상기시켰다. 그는 “‘국익’이 걸렸지만 결과가 나쁠 수도 있는 위험 부담이 큰 문제를 결정할 때, 몸 사리면 공직자들은 편하다. ‘지면 네 돈 낼 거냐’는 폭력적인 질문 앞에서 ‘안 하고 말지’ 생각이 들게 마련”이라며 “그래도 몸 사리지 않고 국익을 생각한 좋은 공직자들이 있다. 이 경우가 그랬다”고 설명했다. 특히 “엘리엇 항소에 대해 ‘질 가능성이 크니 항소하지 마라, 그래서 지면 한동훈 사비로 돈 대신 내라’는 감정적 비난이 많았고, 그런 제목의 언론 사설까지 있었다”면서 공직사회에 “피 같은 국민 세금 아끼기 위해 많은 분들이 혼신의 노력을 해온 것을 제가 잘 안다”고 격려를 보냈다. 한 전 대표는 “의미있는 승리지만 이 사안은 아직도 갈 길이 먼, 쉽지 않은 싸움”이라며 “끝까지 최선을 다해 국익을 지켜주시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법조계에서는 엘리엇 배상 사건처럼 메이슨 캐피탈이 같은 이유로 제기했던 ISDS의 중재판정 취소소송 항소 포기에 대한 아쉬움을 내비쳤다. 한 국제통상 전문 변호사는 “엘리엇과 메이슨은 같은 이유로 ISDS를 제기했다”며 “엘리엇은 취소소송의 항소심을 진행하면서 메이슨은 지연이자 등으로 항소심을 진행하지 않았다. 하지만 엘리엇 사건이 항소심에서 승리하면서 메이슨도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아쉬울 따름”이라고 평가했다. 앞서 법무부는 지난 4월 정부 대리 로펌 및 외부 전문가들과 논의한 끝에 정부의 메이슨 ISDS 중재판정 취소 청구를 기각한 싱가포르 국제상사법원의 1심 판결에 대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발단 “이재명정부가 구상권 제기해야” 메이슨은 지난 2018년 9월 우리 정부가 자유무역협정(FTA)을 위반했다며 손해배상금 1억9139만달러(약 2609억원)와 판정일까지 연 5% 월 복리이자를 지급하라는 ISDS를 제기했다. 정부는 한미 FTA상 ‘정부가 채택하거나 유지한 조치’는 공식적인 국가 행위를 전제로 하는데, 개별 공무원의 불법적이고 승인되지 않은 비위 행위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중재판정부는 지난해 4월 우리 정부를 향해 메이슨 측에 3203만876달러(약 438억원) 및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정부는 지난해 7월 취소소송을 제기했지만, 지난달 싱가포르 법원은 메이슨 측 주장을 받아들여 한국 정부 측에 손해배상을 명한 중재판정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법무부는 "법리뿐 아니라 항소 제기 시 발생하는 추가 비용 및 지연이자 등 여러 가지 사정을 종합해 결정했다"고 항소 포기 이유를 밝힌 바 있다. 이번에 항소심에서 정부가 승리했지만, 여전히 문제는 국민 세금으로 내야 할 배상액이다. 정부가 메이슨에 지급해야 할 돈은 지연이자까지 포함해 약 887억원이 됐다. 엘리엇에 배상해야 할 금액은 당초 1300억원에서 지연이자까지 더하면 약 1500억원가량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시민단체에서는 엘리엇과 메이슨이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손해를 봤다며 소송을 제기한 만큼 당시 합병을 주도한 이 회장과 두 기업의 합병 과정에서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박근혜 전 대통령 등을 상대로 구상권을 제기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복리이자가 계속 쌓이면서 배상액도 천문학적으로 계속 늘고 있는 상황이라, 이재명정부의 대응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5월 대선을 앞두고 참여연대는 대선후보들에게 엘리엇·메이슨 ISDS 배상금 구상권 행사 여부를 듣기 위해 질의문을 보냈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였던 이재명 대통령은 질의에 응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참여연대는 “단순한 침묵이 아니라 대통령 후보로서 세금 수천 억원의 손실을 되돌리기 위한 의지와 책임을 보여야 할 자리에서 책무를 방기하고 있다는 점이 중대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지난 17일에는 이재용 회장의 대법원 판결이 나온 직후 다시 한번 “재벌 봐주기 판결로 사회 정의를 무너뜨리고 총수 일가의 전횡을 용인하는 해로운 판례를 남긴 법원을 강력히 규탄한다”는 주장과 함께 정부를 향해 구상권 청구를 요청했다. 구상권 문제는? 다만 국제통상 전문가로 활동한 송기호 변호사가 대통령실 국정상황실장에 있다는 점에서 변화를 기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송 실장은 변호사 시절 “법무부는 당시 중과실로 불법 행위한 대한민국 공무원들, 이들과 공모 관계라고 인정된 이재용 회장을 상대로 신속하게 구상권 청구를 해야 한다”며 “박 전 대통령 등 공무원에겐 국가배상법에 따라 당사자에게 청구하고, 이 회장에 대해선 민법상 공동불법행위자로서 청구할 수 있다고 본다”고 밝힌 바 있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