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꺼지지 않은 홍등가’ 미아리 텍사스촌 가보니…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2.07.04 12:01:27
  • 호수 1382호
  • 댓글 2개

“코로나 때 더 잘 됐어요”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서울시 성북구 신월1구역의 지하철 길음역 일대는 ‘미아리 텍사스촌’으로 유명하다. 이곳은 대낮에도 빛이 들지 않아 언뜻 밖에서 보면 영업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미성년자 출입금지’ 간판을 지나 으슥한 골목으로 조금만 들어가면 노쇠한 호객녀의 “잘해줄게, 쉬어가”라는 목소리가 들린다. 이 목소리가 미아리 텍사스촌 불이 꺼지지 않았음을 알리고 있다.

미아리 텍사스촌·청량리 588·천호동 텍사스촌은 서울의 대표적인 3대 사창가다. 이 중 미아리 텍사스촌은 1960년대 서울시 종로3가의 집창촌이 폐쇄되며, 종로3가에서 일하던 직업 여성이 미아리 텍사스촌으로 대거 이주해 형성됐다. 당시 미아리 텍사스촌의 규모는 3000여평이었고 800여명의 직업 여성들이 있었다.

3000여평
800여명

1990년대는 미아리 텍사스촌의 전성기였다. 당시 미아리 텍사스촌에서는 밤을 지새운 남자들이 아침에 택시를 잡아 귀가하는 장면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서울이 아니라 지역에서 찾아온 사람도 많았다. 그만큼 장사가 잘됐다. 

전성기 시절 미아리 텍사스촌 작은 가게 하나의 월세가 1000만원 정도였고, 중소기업 수준으로 돈을 벌었다. 지하철 길음역 근처 은행은 밤일을 하는 사창가를 배려해, 오후 늦은 시간에 은행 직원이 직접 가게를 돌아다니며 수금했다.

당시 미아리 텍사스촌은 그야말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고, 미아리 텍사스촌은 2004년 무렵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2004년 9월23일 ‘성매매특별법’이 시행됐다. ‘성매매 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과 ‘성매매 방지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정부는 집중단속에 들어갔고, 성매매 영업 자체가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다. 

실제로 2004년에는 0시부터 오전 4시까지 특별단속을 시행해 총 138명의 성매매사범이 검거됐다. 직업 여성이 경찰에게 직접 “주인이 오늘 단속이 심하니 밖에 나갔다 내일 아침에 들어오라고 했다”고 신고해 업주가 검거되기도 했다. 서울경찰청의 경우 경찰 656명과 시민단체 관계자 15명이 합동단속을 펼쳤다. 

대부분은 오피스텔 성매매로
“잘해줄게” 호객녀들 목소리

이런 과정을 미아리 텍사스촌이라고 피해갈 리 없었다. 2004년부터 언론은 ‘붉은 불이 꺼진 미아리 텍사스촌’을 일제히 보도했고, 2010년부터는 미아리 텍사스촌이 재개발된다는 소식을 전했다. 미아리 텍사스촌의 붉은 등은 그렇게 꺼졌고, 서울 최대 규모의 집장촌은 사라지는 듯 보였다.

사실을 말하자면 모양새만 그랬다. 지금도 미아리 텍사스촌은 불이 꺼진 듯 보이지만 <일요시사> 취재 결과 여전히 영업 중이었다. 다만 과거 전성기 시절의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일요시사>는 미아리 텍사스촌에 지난달 11일과 28일 두 차례에 걸쳐 방문했다. 첫 번째는 토요일 저녁, 두 번째는 화요일 오후였다. 

길음역 10번 출구는 미아리 텍사스촌의 입구 중 하나와 바로 통한다. ‘미성년자 출입금지 구역’이라는 적힌 노란색 팻말이 눈에 띈다. 


도착한 시간은 오후 5시쯤. 여름이라 해가 중천에 떠 있었지만, 미아리 텍사스촌 안은 좁은 골목에 비닐로 된 차양막이 쳐져 밤처럼 보였다. 골목길 자체도 구불구불 좁았다. 주황색 천막으로 만들어진 공간이 듬성듬성 자리했다. 드물게 들어가는 사람이 있었지만, 손님으로 미아리 텍사스촌에 온 사람은 아니었다. 할머니였다.

가게들은 빼곡하게 붙어 있었다. 하지만 영업은 하지 않았다. 불빛이 전혀 새어 나오지 않는 골목이었다. 들어가니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 고양이들이 모여 있었다. 고양이 사료도 있고 작게 집도 만들어 있었다. 고양이는 이곳에 사람이 살고 있다는 표시처럼 보였다.  

여전히
영업 중

가게 입구에는 ‘술값. 현금 : 10만원, 카드 : 12만원’이 적힌 종이가 붙어 있었지만, 입구에 있는 가게들은 이미 폐업한 지 오래돼 보였다. 이런 식의 가게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었고, 안쪽으로 조금 들어가니 골목은 더 미로처럼 꼬여 있었다. 전부 벽으로 막혀 있고 햇빛도 들지 않으니 쉽게 길을 잃을 것 같았다. 

벽이 부서진 곳도 있었고, 유리문이 깨진 곳도 있었다. 부서진 벽 안에는 생활용품과 매트리스가 뒤죽박죽 엉켜 있었다. 녹록지 않았을 이곳의 삶이 보이는 듯 했다. 미아리 텍사스촌 시간은 과거에 멈춰 있는 것처럼 보였다.

미로처럼 된 골목을 조금 더 들어가니 사람이 모여 있었다. 일명 ‘삐끼’라고 불리는 호객녀였는데, 남자가 들어오면 호객행위를 했다. 실제로 거리를 두고 떨어져 걸었던 <일요시사> 남자 기자는 10걸음에 한 번씩 호객행위를 당했지만, 여자 기자에게는 호객행위를 하지 않았다.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니 살짝 열려 있는 문틈 사이에 직업 여성이 보였다. 그들은 컨테이너 방바닥에 앉아서 화장을 하거나, 컨테이너 건물 벽에 기대서 밖을 향해 멍하니 앉아 있었다. 살짝 열린 컨테이너 문 사이로 붉은 빛이 새어 나왔다.

시간이 지나 해가 지자, 주황 천막 안에는 호객녀가 앉아 있었다. 미아리 텍사스촌 입구에는 할머니 호객녀가 포진했고, 여전히 불빛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일요시사>가 방문한 시간에 ‘손님’은 보이지 않았다. 호객녀들만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두 번째 날은 달랐다. 드물지만 손님처럼 보이는 사람도 보였다.

인근에서 식당을 하는 상인은 기자에게 “요새는 예전 같지 않다. 재개발을 한다고 하는데, 언제 진행되는지 아는 게 없다”고 말했다. 

80개 중 
30개 정도

미아리 텍사스촌에는 ‘88정화위원회’가 있다. 미아리 텍사스촌의 상인이 모여서 만든 곳으로, 일대의 업주들을 관리한다. 이곳은 미아리 텍사스촌 중앙의 샛길에 있다. 호객녀들에게 “정화위원회가 어디 있냐”고 물으면 친절하게 가르쳐줬다. 


유리문에는 스티커로 ‘정화위원회’라고 붙어있었다. 문을 열면 바로 지하로 통하는 계단이 있다. 지하에는 갈색 쇼파, TV, 책상, 컴퓨터 등 없는 게 없었다. <일요시사>가 정화위원회에 방문한 시간에는 전직 업주 A씨가 있었다.

A씨는 <일요시사>에 “성매매특별법 이후 영업을 그만뒀다. 그래서 지금은 이해관계가 전혀 없다”고 자신을 소개하며, 과거부터 지금까지 미아리 텍사스촌이 어떻게 운영됐는지 상세히 설명했다.

성매매특별법이 시행된 직후에도 미아리 텍사스촌 매출은 크게 떨어지지 않았지만, 업주와 직업 여성들이 위축돼 미아리 텍사스촌에서 빠져나가는 결과를 만들었다. 특히 직업 여성들은 성매매특별법이 생기고 난 뒤 성매매 장소를 오피스텔로 옮겼다.

미아리 텍사스촌은 성매매 업주가 직업 여성에게 손님을 연결해서 돈을 나누는 시스템이다. 여기서 호객녀에게도 돈을 나눠줘야 했다. 그러나 오피스텔 성매매는 직업 여성이 인터넷에 글을 올려 직접 손님을 모집하기 때문에 더 큰 돈을 벌 수 있다. 

오피스텔 성매매는 단속을 쉽게 피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대다수의 미아리 텍사스촌 직업 여성은 성매매특별법 이후 오피스텔 성매매를 선택했다. 

영업보상비 받기 위해?
지난 2년 매출 보니… 


전성기에는 미아리 텍사스촌 가게 하나에 직업 여성이 30명까지 있었다면, 지금은 직업 여성이 없어서 장사를 못하는 상황까지 온 것이다. 1~2명의 직업 여성으로는 장사를 할 수 없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지금 하루에 손님이 몇 명 정도 오느냐는 질문에 A씨는 “손님 한 명이 오면 10만원이다. 그러니 손님이 하루에 10명은 와야 가게 문을 여는 게 유지된다”고 답했다. 

과거에는 직업 여성 대부분이 출퇴근을 하지 않고 업소에서 생활했다면, 지금은 시간에 맞춰 출퇴근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퇴근한 직업 여성이 다음날 출근을 하지 않으면 그날 장사는 공치는 것. 한 달에 3~4번만 장사하는 집은 직업 여성이 없어서 못하는 셈으로 장사에 대중이 없었다.

상황이 이런 만큼 현재 미아리 텍사스촌의 성매매 업주는 직업 여성에게 ‘읍소’해야 장사를 이어갈 수 있다. 직업 여성의 연령층도 높아졌다.

A씨는 “옛날에는 미성년자가 20살 넘었다고 속여서 직업 여성을 했다. 그런데 지금은 나이가 많은 여자가 어리다고 거짓말을 해서 직업 여성을 한다. 실제로 지금 미아리 텍사스촌에는 50~60대 직업 여성도 있다. 상황이 이러니 남자 손님이 옛날 생각해서 와도 다시 찾아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오히려 코로나19에 미아리 텍사스촌에 손님이 몰렸다. 어차피 불법이기 때문에 코로나 영업시간 제한에 해당되지 않았다. 저녁 늦게 술을 마시고 싶은 남자는 미아리 텍사스촌을 찾는 어이없는 상황이 발생했다.

물론 그렇다고 전성기만큼 장사가 잘된 것은 아니었다. 지금은 다시 미아리 텍사스촌에 불황이 찾아왔다. 현재 미아리 텍사스촌은 80여개 가게만 영업 중이다. 이 중에서 제대로 장사를 하는 가게는 30~40개, 나머지 30개 정도 가게는 직업 여성 등이 생활하고 있다.

A씨는 미아리 텍사스촌이 내년 초쯤 재개발될 거라고 예상했다. 그때가 되면 서울의 마지막 집창촌이 사라진다.

A씨는 “솔직히 지금까지 미아리 텍사스촌에 남아있는 사람은 대안이 없는 사람들이다. 봤다시피 어차피 영업을 못하는 곳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버티는 이유 중 하나는 영업보상비라도 받으려고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재개발
언제쯤?

이어 “어차피 마땅히 갈 곳도 없는 사람이니까 재개발조합에 영업보상비를 달라고 요구하는 것”이라며 “현재 미아리 텍사스촌의 땅값만 4000억원인데 재개발하지 말라고 해서 되는 게 아니지 않냐. 다만 여태까지 이곳에서 먹고 살았으니까, 앞으로도 잘 살 수 있게 해달라고 하는 거다. 어차피 이곳은 너무 낙후됐다”고 말했다. 


<alsw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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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고객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쿠팡의 태도가 도마 위에 올랐다. 현재까지 대응만 봐서는 국민은 물론, 정부와도 전면전을 벌일 기세다. 새어나간 정보의 범위와 규모가 ‘역대급’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최악의 사태임에도 불구하고 쿠팡의 고개는 꺾일 줄 모르고 있다. 일각에서는 ‘뭘 믿고 저러나’ 소리가 나오는 중이다. 쿠팡의 고객 개인정보 유출 사건, 이른바 쿠팡 사태가 점입가경이다. 사태가 일어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수습은커녕 국민의 화만 돋우고 있다. 쿠팡의 대응 태도가 미지근한 수준을 넘어 뻔뻔한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 김범석 의장은 모습을 비추지 않고 보상안은 꼼수로 가득하다. 국민을 조롱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한 달 만에 고개 숙여 지난해 11월 말 3370만명에 이르는 쿠팡 고객의 개인정보가 ‘탈탈’ 털렸다. 앞서 쿠팡은 4500여건의 고객 정보가 유출됐다고 정부 당국에 신고했지만 2주 만에 그 수치는 7500배까지 늘어났다. 전 국민의 65% 수준이며 지난해 4월 SKT 개인정보 유출 사태 범위(2300만명)를 훌쩍 넘는 사태였다. 쿠팡은 이커머스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갖고 있다. 대형마트 등이 규제에 막혀 뒷걸음질 칠 때 쿠팡은 로켓배송으로 시장을 싹쓸이했다. 전날 저녁에 주문해도 새벽이면 물건이 문 앞에 와 있는 총알 배송에 소비자는 쿠팡으로 몰렸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비판을 받던 물류센터는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사태는 아이러니하게도 쿠팡이 국민의 실생활에 얼마나 스며들어있는지를 바로 보여줬다. 쿠팡 사태가 터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은 “쿠팡이 경쟁자가 없는 시장 지위를 누리고 있고 한국 고객이 데이터 유출에 덜 민감해 보인다”며 “잠재적 고객의 이탈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놨다. 그래서일까? 쿠팡은 역대 최악의 정보 유출 사태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도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이 언급하고 정부 차원의 TF가 꾸려졌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힘겨루기’를 하는 태도를 보이는 중이다. 최근에는 정부의 반박에도 자체 조사 결과를 고집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보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쿠팡은 지난달 25일 ‘정보 유출자는 3300만개 계정에 접근했으나 실제 저장한 정보는 3000여개에 불과하며 제3자 유출 정황은 없는 등 피해가 미미하다’는 내용의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면서 “(유출자는)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언론 보도를 접한 이후 저장했던 정보를 모두 삭제하고 범죄에 사용한 노트북을 파손해 하천에 던졌다”고 주장했다. 쿠팡은 “잠수부들이 벽돌에 담긴 쿠팡 가방에 든 노트북을 하천에서 회수했고 유출자가 클라우드 계정에 등록한 일련번호와 해당 노트북의 일련번호가 일치하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범행에 사용된 PC 와 노트북 등 모든 장치를 회수해 안전하게 확보했고 글로벌 보안업체들의 조사 결과도 진술 내용과 같았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매출 90% 나오는데 정보 유출 태도·대응 낙제점 쿠팡이 발표한 대로라면 고객 정보 유출 피해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든다. 또 유출자와 접촉해 장치를 확보했으니 추가 피해는 없다. 전체적으로 사건이 축소되는 것이다. 쿠팡의 발표에 정부는 강하게 반발했다. 쿠팡의 조사 내용은 사전에 정부와 어떤 논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됐다는 설명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는 “정보 유출 종류와 규모, 경위 등은 민관합동조사단이 조사 중인 사안”이라며 “쿠팡이 발표한 내용은 조사단에 의해 확인된 바 없다”고 밝혔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과도 “쿠팡 측이 제출한 진술서와 노트북 등 증거물을 분석 중”이라며 “사실관계를 면밀하게 확인하겠다”고 했다. 논란이 계속되자 쿠팡은 정부의 지시를 받아 조사를 진행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경찰은 사전 협의가 없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사실관계가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쿠팡은 지난달 26일 내놓은 입장문에서 “정부의 지시에 따라 수주간 진행한 조사였다”고 선을 그었다. 같은 달 9일 정부가 쿠팡 측에 유출자와 접촉할 것을 제안했고 14일 쿠팡은 유출자를 처음 만난 뒤 해당 사실을 정부에 보고했으며 16일에는 정부 지시에 따라 유출자의 데스크톱과 하드드라이브를 정부에 제공했다는 게 쿠팡 측 주장이다. 하지만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도 “쿠팡의 입장문 형식의 보도자료에서 정부와 협력했다는 내용 중 일부 국정원으로 추정되는 부분도 사실과 다르거나 왜곡된 부분이 있다”고 반박했다. 쿠팡이 자체 조사와 관련해 정부와 사실 공방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 김범석 쿠팡 의장이 사건 발생 한 달여 만에 사과했다. 그동안 박대준 전 대표가 청문회 등에서 뭇매를 맞고 있는 동안에도 김 의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정부의 압박이 거세지자 처음으로 입을 연 것이다. 5만원 상당 속사정은? 김 의장은 지난달 28일 “쿠팡의 창업자이자 이사회 의장으로서, 쿠팡 전체 임직원을 대표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저희의 책임으로 발생한 이번 데이터 유출로 인해 많은 분께서 자신의 개인정보가 안전하지 않다는 두려움과 불안을 느꼈고 사고 초기부터 명확하게 직접적으로 소통하지 못한 점으로 인해 큰 좌절감과 실망을 안겨 드렸다”며 “사고 직후 미흡했던 초기 대응과 소통 부족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한 달 만에야 입을 연 부분에 대해 “무엇보다 제 사과가 늦었다”면서 “모든 사실이 확인된 이후에 공개적으로 소통하고 사과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돌이켜보면 이는 잘못된 판단”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비판과 질책을 겸허히 받아들인다고도 했다. 하지만 자체 조사 논란에 대해서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김 의장은 “쿠팡은 조사 초기부터 정부에 전면적으로 협력해 왔다”며 “일련의 과정에서 많은 오정보가 확산하는 상황에서도 정부의 ‘기밀 유지’ 요청을 엄격히 준수했다”고 주장했다. 김 의장의 사과는 국회 6개 상임위원회가 참여하는 대규모 연석 청문회를 이틀 앞두고 나왔다. 정부가 범부처 TF를 과기부 총리 산하로 확대하고 다각도로 압수수색과 조사를 진행하는 등 대응 수위를 높이는 상황에 압박을 느꼈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그러나 사과와는 별개로 김 의장은 청문회에 불출석하겠다고 밝혔다. 김 의장뿐만 아니라 동생인 김유석 쿠팡 부사장, 강한승 전 쿠팡 대표 등이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면서 쿠팡에 대한 부정적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여기에 쿠팡이 내놓은 보상안도 도마 위에 올랐다. 쿠팡은 지난달 29일 고객 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해 총 1조6850억원 규모의 보상안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전체적으로 보면 1인당 5만원 상당이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뜯어보면 쿠팡의 ‘꼼수’가 보인다. 청문회는 나 몰라라 보상안은 ▲쿠팡 전 상품 구매 이용권 5000원 ▲쿠팡이츠 5000원 ▲쿠팡트래블 2만원 ▲명품 플랫폼 알럭스 2만원 등으로 구성됐다. 소비자들은 보상금의 상당 부분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 등 평소 이용 빈도가 낮은 서비스 이용권 위주로 구성된 점을 지적했다. 실제 이번 보상안을 통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를 처음 알게 됐다는 소비자도 있다. 시민단체도 쿠팡의 보상안에 반발했다. 참여연대는 “1인당 5만원 보상이라고 했지만 현금이 아닌 구매 이용권으로 사실상 강제 소비를 유도하는 방식”이라며 “보상이 아니라 매출 확대를 위한 마케팅에 불과하다”는 내용의 논평을 발표했다. 쿠팡의 행보는 사사건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국민을 조롱하고 정부를 기만하는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쿠팡이 미국 시장에 상장한 기업이지만 매출 대부분을 우리나라에서 벌어들이는 상황인데도 이 같은 태도를 보이는 것에 분노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회원 탈퇴, 보상안 거부, 집단소송 참여 움직임이 거세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심지어 이재명 대통령도 쿠팡 사태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쿠팡 사태가 일어나고 사흘 뒤인 지난달 2일 “쿠팡 때문에 국민의 걱정이 많다”면서 “사고 원인을 규명하고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관계부처는 해외 사례를 참고해 과징금을 강화하고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도 현실화하는 등 실질적인 실효적 대책에 나서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뒤늦은 사과·꼼수 보상안 도마 위에 이래서 정치권 인사 영입했나? 의혹 12일에도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반복되는 것에 대해 “경제 제재가 너무 약해서 규정 위반을 밥 먹듯이 한다”며 “앞으로는 규정을 위반해 국민에게 피해를 주면 엄청난 경제 제재를 당해서 ‘회사가 망한다’는 생각이 들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규정을 위반하면 난리가 나야 하는 것 아니냐”며 “그런데 위반해도 태도를 보면 ‘그래서 어쩔 건데’ 이런 느낌이 든다”고 지적했다. 정부도 쿠팡에 강력하게 경고하며 전방위 대응을 예고했다. 실제로 같은 달 29일, 배경훈 부총리 겸 과기부 장관 주재로 ‘쿠팡 사태 범정부TF’ 회의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과기부와 경찰청, 개인정보위원회, 금융위원회 등은 역할을 분담해 신속한 조사를 진행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배 부총리는 “쿠팡이 국내 고객 정보 3000만건 이상을 유출한 것은 명백한 국내법 위반 사항으로 정부는 쿠팡이 관련 법령을 위반한 사실이 확인될 경우, 다른 기업과 동일하게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에 따라서는 영업정지 여부도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 사방에서 몰아치는 압박에도 쿠팡이 연달아 이상한 행보를 보이자 ‘믿는 구석’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그 정도로 쿠팡의 현재 대응 방식을 이해할 수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쿠팡이 미국 기업인 것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 증시가 쿠팡의 모든 결정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라는 것이다. 실제 쿠팡이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한 다음 날 미국 뉴욕 증시에서 쿠팡의 주가는 6% 급등했다. 국내에서는 쿠팡의 ‘셀프 조사’에 분통을 터트리고 있는데 미국 시장에는 호재로 작용한 것이다. 쿠팡이 정치·국회 인사를 대거 영입한 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정치권 인사를 영입해 쿠팡 관련 각종 논란을 틀어막고 있다는 의혹이다. 해당 의혹은 ‘강력 경고’ ‘전방위적 대응’ 등의 수사를 사용하고 있지만 실제 조사는 흐지부지될 것이라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나오는 배경으로도 꼽힌다. 변죽 울리다 무사통과? 실제 최근 원내대표직에서 사퇴한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이 국정감사를 한 달여 앞둔 시점에 박대준 전 쿠팡 대표 및 대관 총괄과 오찬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쿠팡이 일용직 퇴직금 미지급 사건에서 검찰 외압 의혹, 물류센터·배송 기사의 과로 및 산재 사망 문제가 제기된 상황이었던 만큼 적절성 논란이 불거졌다. 김 의원은 그달 16일 자신의 SNS에 “공개 일정이고 적어도 5명이 (함께) 식사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만남보다 대화의 내용이 중요한 것 아니냐? 참고로 지난해 7월16일 쿠팡 물류센터도 방문했었다”고 적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