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칫집 극장가 ‘웃픈’ 딜레마

갑자기 돌아온 봄날에 ‘흠칫’

[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유난히 길었던 영화관의 겨울. 무려 2년여 만에, 그토록 기다리던 봄이 찾아왔다. 이들은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와 흥행 기대작 연속 개봉에 힘입어 실적 반등이 확실시된다. 하지만 마냥 기뻐할 때가 아니다. 확 불어난 인파로 직원들의 곡소리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구인난 속 인력 대거 확충’이라는 무거운 과제를 떠안은 탓이다.

지난 2년간 이어졌던 사회적 거리두기는 영화업계의 불황으로 직결됐다. 시행 당시 업계는 시시각각 변하는 방역지침에 대응하느라 촉각을 곤두세웠었다. 정부 지침을 준수하면서도 살 길을 골몰해봤지만, 피해를 줄일 수는 있었을지언정 막을 수는 없었다.

겨울 지나고
봄이 왔건만…

한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12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널을 뛰는 방역지침 때문에 업계와 관객 모두가 힘들어 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당시 방역 당국은 그 전달부터 시행됐던 ‘위드 코로나’ 여파로 강해진 확산세를 감당하지 못하고 ‘방역 패스’ 도입을 선언했다.

위드 코로나 시행에 발맞춰 여러 빗장을 풀었던 업계로서는 그야말로 청천벽력이었다. 

이 관계자는 “지난달(지난해 11월)에는 백신 접종자들을 대상으로 취식과 좌석 붙여앉기가 가능한 ‘백신 패스관’도 운영하고, 미접종자들도 별다른 제한 없이 입장할 수 있어 이전보다 많은 관객이 영화관을 찾았다”면서도 “하지만 방역 패스 도입 이후에는 백신 패스관도 없애고, 입장 요건도 까다로워지다 보니 회복세가 한풀 꺾였다”고 설명했다.


이어 “영업시간이 제한될 때마다 타격이 너무 크다”며 “특히 오후 9시나 10시 제한 때는 저녁 황금 시간대 영화 상영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주 관객층인 학생·직장인을 모두 놓치게 되는 셈”이라고 토로했다.

실제로 CGV, 롯데시네마 등 주요 영화관들은 당시 관객 755만명을 동원한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개봉에도 불구하고 실적 개선에 난항을 겪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자구책으로 마련한 인원 감축·가격 인상 계획 등에 쏟아지는 비난도 감내해야 했다.

2년간의 부침은 지난달이 돼서야 끝났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전면 해제되면서다. 정부는 지난달 18일 마스크 착용을 제외한 대부분의 방역 조치를 종료했다.

거리두기 해제 소식이 알려진 직후, 영화관은 야구장·식당 등과 함께 대표적인 수혜자로 꼽혔다. 그동안 금지됐던 실내 취식이 가능해지면서 영화를 보며 팝콘을 먹을 수 있게 됐다. 반가운 마음에 극장을 찾는 발길도 늘어났을뿐더러, 관객당 기대수익도 상당히 늘었다.

잔칫집 극장가 ‘웃픈’ 딜레마 
갑자기 돌아온 봄날에 ‘흠칫’

이번 달부터 성수기인 여름까지 흥행 기대작이 계속 늘어서 있다는 점 역시 호재다. 코로나 유행 이전에 흥행 돌풍을 일으켰던 인기작들의 속편이 개봉날짜를 속속 확정하고 있다. 

앞서 지난 4일 개봉한 마블의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이하 <닥터 스트레인지>)는 일주일 만에 약 400만명을 동원하면서 코로나 유행 이후 최고 기록을 갈아치우는 중이다.


이어 오는 18일에는 <범죄도시2>가 개봉한다. 전작인 <범죄도시>는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에도 불구하고 687만명의 관객을 불러모았다. <범죄도시2>는 이보다 한 등급 낮은 15세 관람가로 더 큰 흥행을 노리고 나섰다.

다음 달에는 <쥬라기 월드: 도미니언> <마녀 Part2> <탑건: 매버릭> 등이 개봉을 앞두고 있고, 오는 7월에는 <토르: 러브 앤 썬더> <한산: 용의 출현> 등이 개봉 날짜를 조율하는 중이다. 

특시 <한산>은 2014년 개봉한 <명량>의 후속작이다. <명량>은 관객 1761만명을 동원하면서 개봉 8년 뒤인 지금까지도 역대 박스오피스 1위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업계에서 <한산>에 거는 기대가 클 수밖에 없는 이유다.

“팝콘 푸느라
수명 갉았다”

CGV 관계자는 “우선 <닥터 스트레인지>가 첫 단추를 잘 꿰준 것으로 보고 있다. 덕분에 코로나 유행 때 영화관을 찾지 못했던 관객들이 다시 돌아오는 계기가 잘 마련된 것 같다”며 “다른 인기 후속작들과 한국 영화 기대작들이 줄 서 있는 만큼, 지금부터 여름시장까지 더 많은 관객이 영화관을 찾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롯데시네마 관계자 역시 “<닥터 스트레인지>가 시장에 좋은 신호를 준 것으로 본다”며 “그동안 너무 어려웠던 만큼, 좋은 상황을 계속 유지해 나가는 것을 중요한 과제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이번 달을 기점으로 실적 ‘턴어라운드(흑자 전환)’를 기대하는 분위기다. 업계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큰 업체들은 이번 달을 기점으로 살아날 것으로 본다”며 “대표적으로 업계 1위인 CGV는 지난 27개월 동안 계속 적자에 허덕여왔는데, 이번 달에는 반등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점치고 있다”고 귀띔했다.

이환욱 IBK투자증권 연구원도 지난 3월 말 작성한 투자 보고서에서 CGV가 올해 흑자 전환에 성공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 연구원은 “코로나 회복세를 보이는 가운데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콘텐츠가 연달아 개봉을 기다리고 있고, 티켓 가격 인상으로 큰 폭의 실적 개선이 나타날 것으로 예상한다”며 “또 마진율이 높은 매점 매출 회복 및 비용 절감 정책으로 소폭의 흑자 전환도 가능할 전망”이라고 내다봤다.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에 반등 조짐
흥행 기대작 줄줄이…장밋빛 전망

하지만 급격한 회복세에 따른 반작용도 상당하다. 최근 영화관 현장 근무자들은 갑자기 불어난 업무량 때문에 여러 고충을 겪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코로나 유행 당시 불황으로 한껏 감축했던 인원이 다시 충원되기도 전에, 관객이 몰려든 여파다.

앞서 이번 달 초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는 “과도한 업무로 너무 힘들다”며 토로하는 영화관 현장 직원들의 글이 수차례 올라왔다. CGV 직원으로 추정되는 A씨는 ‘지금 시키는 그 팝콘, 직원들 수명 갉아 내드린 겁니다’라는 제목의 글에서 어려운 현장 상황을 전했다.


그는 “코로나 (유행)이전엔 영화관당 직원이 6~7명 있었고 아르바이트생도 20~50명씩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직원 3명이 3교대 근무를 하고 있다”면서 “휴무를 보장받지 못하는 건 물론이고 화재·안전문제 등 그 어떤 사건사고가 터져도 해결하지 못한다”고 털어놨다.

이어 “지난달 25일부터 영화관 취식이 가능해졌고, 모두가 잘될 거라고 예상했던 <닥터 스트레인지>가 개봉했는데 본사는 옥수수, 기름, 팝콘 컵, 콜라 컵 등 기본 물품들을 보충하지 않는다”며 “발주를 안 한 게 아니라 3주 전부터 본사가 물량을 통제하고 지정된 수량만 넣어줬다”고 비판했다.

A씨는 “매점엔 대기 고객만 300명을 넘어가고 아르바이트생 2명이서 모든 주문을 다 해결하고 있다. 각종 대기줄을 쳐내느라 정직원도 12시간씩 밥은커녕 물도(못 마시고), 화장실도 못 가고 일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내가 간 지점은 팝콘이 잘 나와서 저희가 배부른 푸념하는 것 같나. 그거 팝콘 아니다”라며 “뒤에서 어떻게든 재고 요리조리 옮겨서 고생하는 영업팀 사람들과 12시간씩 배고픔 참고 클레임(항의) 참고, 참으며 일하는 현장 직원들·아르바이트생·미화 직원들 수명 갉아서 드린 것”이라고 호소했다.

알바 다 
뺐는데…

A씨 주장에 공감하는 롯데시네마·메가박스 직원들의 증언이 계속 이어지면서, 해당 게시판은 업계 성토의 장이 됐다.


회사 측은 “이들의 고충을 이해하고 있다”며 사과하고 빠른 문제 해결을 약속했다. 롯데시네마 관계자는 “영화 예매율 추이를 보면서 지난달 중순부터 일찌감치 인력 확충에 나선 바 있다”면서도 “주요 채용 대상이 대학생들인데, 중간고사 기간이 겹치면서 필요한 만큼 채용이 되진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주말 등 관객이 많을 때는 본사에서도 현장 지원을 나가는 등 인원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온 신경을 기울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CGV 관계자는 “<닥터 스트레인지> 개봉일이 4일이었고, 다음날 어린이날이 겹치면서 하루 관객 수가 총 130만명을 넘어섰다.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본 것도 사실이지만 현장 직원들의 고충도 그만큼 컸던 것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코로나 유행 여파로 인원을 줄인 것은 맞지만 거리두기 해제 이후 인력 충원이 이루어졌다”면서 “예상보다 더 많은 관객들이 영화관을 방문하면서 일시적인 혼란이 생겼다”고 설명했다. 

그는 “오는 18일 <범죄도시2>가 개봉하면 지난 5일만큼은 아니겠지만 많은 관객들이 영화관을 찾을 것으로 예상된다”며 “최대한 빨리 추가 채용을 실시해 운영상 어려움을 줄이고, 장기적으로는 여름 성수기 전까지 차질 없는 운영이 가능하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확 불어난 인파에 반쪽 인력 곡소리
인력 충원 시급한데…구인난 어쩌나 

하지만 이들이 필요한 만큼의 인력을 즉각 충원하기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 이후 대다수의 서비스업 업종이 구인난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표적인 서비스업으로 꼽히는 외식업계는 아르바이트 구인난에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구인이 한꺼번에 몰린데다 청년들의 시선이 고정적인 근무 방식에서 유동적이면서 단기적인 고수익 업종으로 쏠리고 있는 탓이다.

이로 인해 식당에서는 최저임금보다 20~30% 높게 책정한 시급을 내걸어도 마땅한 지원자를 구하지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영화관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는 않다. 한 업계 관계자는 “우리 역시 자영업자들과 인력 확보 경쟁을 벌여야 하는 상황”이라며 “인력 보충에 난항을 겪고 있다는 현장의 목소리가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밝혔다.

문제는 코로나 유행으로 노동 시장이 재편되면서 당분간 이 같은 구인난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통계청이 지난달 발표한 ‘3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주당 17시간 미만의 초단기 일자리 취업자 수는 231만9000명이다.

코로나 유행 이전인 2년 전에 비해 45%가량 급증한 수치다. 앞서 “당장 문제 해결에 나서겠다”고 밝혔던 영화관 관계자들의 고심이 깊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롯데시네마 관계자는 “구인난이라고는 하지만 경험적으로 봤을 때 이번 달 초가 지난달 말보다 지원율이 높은 것은 사실”이라며 “추가 채용 외에도 숙련도에 따른 보직 배치와 지속적인 교육 등으로 안정적인 운영이 가능하도록 다양한 방안을 적극 강구할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지금 뽑아도
너무 늦었다

인원 공백이 지속되면 고객 불만도 가중될 수밖에 없다. 간만에 영화관을 찾은 관객들을 붙잡지 못한다면, 이들의 ‘봄날’은 말 그대로 ‘일장춘몽’에 그칠지도 모를 일이다. 이를 잘 알고 있는 업계에서는 해결책 마련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긴 터널을 지나온 영화업계가 마지막 난관을 어떻게 돌파할지, 그 행보에 눈길이 모이고 있다.

<jeongun15@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블록버스터 맞설 국내 기대작 라인업

올해 흥행 기대작 중에는 ‘할리우드표’ 블록버스터가 다수 포진돼있다. 하지만 이에 충분히 대적할 만큼, 국내 영화 라인업도 쟁쟁하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우선 <브로커>가 다음 달 8일 개봉을 확정지었다. 일본의 명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와 배우 송강호·강동원·배두나 등이 의기투합한 작품이다. 베이비 박스를 둘러싸고 만난 이들의 예기치 못한, 특별한 여정을 그렸다. 제75회 칸 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도 진출했다. 

뒤이어 <마녀 Part2. The Other One>이 다음 달 15일 개봉 예정이다. 전편의 독특한 설정과 배경을 기반으로 더욱 확장된 세계관과 강렬한 액션을 선보인다. 1408대1의 경쟁률을 뚫은 주연 배우 신시아를 비롯해 박은빈·서은수·진구·성유빈·조민수·이종석 등이 출연한다. 전편 주인공이었던 김다미도 특별 출연할 예정이다.

<외계+인>은 오는 7월 개봉한다. <전우치> <도둑들> <암살> 등을 잇달아 흥행시킨 최동훈 감독의 신작이다. 고려 말 소문 속의 신검을 차지하려는 도사들과 2022년 인간의 몸 안에 수감된 외계인 죄수를 쫓는 이들 사이에 시간의 문이 열리며 펼쳐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류준열·김태리·소지섭·염정아·조우진 등이 출연한다. 

<한산>은 7월 말 개봉을 앞두고 있다. 전편 <명량>보다 5년 앞인 1592년 7월의 한산해전을 그린다. <명량>에서 배우 최민식이 맡았던 이순신 장군 역할은 배우 박해일이 맡았다. 이외에도 안성기·변요한·손현주·김성규·김성균 등이 출연해 몰입감을 더한다.

<비상선언>도 올해 여름 안에 개봉할 예정이다. <비상선언>은 사상 초유의 재난 상황에 직면해 ‘무조건 착륙’을 선포한 비행기를 두고 벌어지는 리얼리티 항공 재난 영화로, 이미 지난해 칸 월드프리미어에 초청받은 바 있다. 이병헌·송강호·전도연·김남길·임시완 등 국내 정상급 배우가 대거 출연해 기대를 모으는 중이다. <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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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보이스피싱·스캠 조직 캄보디아 ‘셀허브’ 추적

[단독] 보이스피싱·스캠 조직 캄보디아 ‘셀허브’ 추적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캄보디아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의 민낯이 드러났다. 주로 수도인 프놈펜 인근과 시아누크빌 범죄 단지가 그들의 주둔지였다. 국내 조직폭력배가 중국 갱단과 결탁해 만든 ‘셀허브’의 경우 피해자만 수십명이다. 이들은 엔터테인먼트 기업을 가장했다. 사이트에는 유명인의 사진이 수차례 도용된 것으로 확인됐다. 현재는 사라진 셀허브 엔터테인먼트의 홈페이지. 지난해 7월 <일요시사>가 취재한 이후 대표이사의 이름과 사진이 여러 차례 바뀌었다. 유인촌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게 표창장을 받았다며 문서를 위조하기도 했다. 이 기업의 정체는 로맨스 스캠 조직이다. 확인된 피해액만 약 40억원, 피해자는 수십명이다. 한 언론사는 보도자료까지 작성하며 홍보하기도 했다. 조직적 준비 경찰 수사 중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지난 24일, 셀허브 조직원 3명을 각각 구속·불구속으로 서울중앙지검에 송치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이들은 조건 만남 사이트를 운영한 로맨스 스캠 조직이다. 여성 관련 데이트 상품을 판매하거나 연애 빙자 사기를 일삼았다. 셀허브 조직원이던 A씨는 “연예인 지망생이나 모델과 연락하게 해 준다며 50만원에서 100만원까지 대포통장 계좌에 돈을 입금하게 한 뒤 텔래그램 아이디를 알려주고 연락하게 하는 시스템”이라며 “연결된 여자는 실제 남성이고 한국에서 조직폭력배로 활동하던 사람들이 대부분”이라고 주장했다. 이 조직은 지난해 3월 캄보디아 범죄 밀집 지역인 태자 단지에서 인력을 모으기 시작했다. 같은 해 5월 사이트를 개설해 조직원들에게 민간인 협박, 중국어 통역 등의 역할을 맡기고 수십명으로부터 약 40억원을 뜯어냈다. 같은 해 7월 <일요시사> 취재가 시작되자 이 조직은 셀허브 엔터테인먼트 대표이사의 이름을 ‘김현숙’에서 ‘박소희’로 변경하고 유명인의 사진을 수차례 도용했다. 유 전 장관에게 표창장까지 수여받았다며 피해자들의 의심을 피하려는 꼼수도 서슴지 않았다. A씨는 “조직에서 탈출하려는 사람은 밤새 맞거나 강제로 마약을 투약당하기도 했다. 조직폭력배 출신 한국 사람들이 간부고 일반 조직원은 교민 사이트를 통해 ‘한 달에 500만~1000만원을 벌 수 있다’는 거짓말에 속아 일하게 된 사람들”이라고 설명했다. 이 사건은 서울경찰청이 수사하기 이전인 지난해 7월부터 강서·영등포·구로경찰서 등에 여러 고소장이 접수됐었다. 하지만 수사는 원활하지 않았다. 주요 혐의자가 해외에 거주 중이거나 피의자 특정이 어려운 게 난관이었다. 수사를 담당했던 한 경찰 관계자는 “캄보디아 프놈펜에 주요 혐의자들이 거주한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지난해부터 공조를 요청했으나 캄보디아 당국이 비협조로 일관했다”며 “고소인분들이 ‘왜 안 잡냐’ ‘내 돈 어떻게 하냐’는 등 불만이 많으셨다. 매번 죄송하다고 말씀드리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캄보디아가 협조하지 않으면 조치가 불가능했다”고 토로했다. 지난해 3월부터 조직원 모집…태자 단지서 모의 ‘유인촌 표창장’ 걸어 놓고 ‘정상 기업’ 홍보 막막했던 수사는 대학생 박모씨 피살 사건이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면서 풀리기 시작했다. 이재명정부가 캄보디아를 압박했고 현지에 구금된 한국인 범죄자 겸 피해자 수십명을 국내로 송환했다. 송환된 인원 중 일부는 셀허브 사건과도 연관된 것으로 파악됐다. 정성학 충남경찰청 수사부장은 지난 20일 청내 프레스센터에서 브리핑을 열고 “이들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사기) 및 범죄단체 가입 및 활동 혐의로 전원 구속했다”고 밝혔다. 현재까지 부건(총책 가명, 40대 초반, 한국말을 쓰는 외국인 추정) 조직으로부터 확인된 피해 건수는 110건, 피해액은 93억여원에 달했다. 약 100명의 조직원을 거느린 부건은 지난해 중순부터 올해 7월까지 주로 프놈펜 웬치(범죄 단지) 및 태국 방콕 등지에서 한국인을 상대로 범행을 벌여왔다. 부건 조직은 지난 2018년 중국에서부터 활동을 시작해 그동안 단속을 피하려 태국, 캄보디아 등지로 거주지를 옮겨가며 범행을 계속해 왔다. 이들은 데이터베이스, 입출금 등을 지원·관리하는 CS팀과 광고를 보고 접근한 피해자를 기망하는 로맨스팀, 검찰 사칭 보이스피싱팀, 코인투자리딩 사기팀, 공무원 사칭 노쇼 사기팀 등 총 5개 팀으로 이뤄진 조직체계를 갖췄다. 이들은 가구판매업을 하러 캄보디아에 갔다고 진술했으나 이후 지역 선·후배 권유, 고액 아르바이트 인터넷 광고 등을 접하고 범죄에 연루된다는 걸 알면서도 조직에 가입해 활동한 것으로 조사됐다. 속아서 조직에 들어갔다고 진술하지 않은 이들의 유입 경로는 ▲지인 포섭 29명 ▲인터넷 광고 등 포섭 8명 ▲현지 카지노 포섭 6명 ▲기타 2명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남성 42명과 여성 3명으로 연인도 있었다. 대부분은 20~30대 연령으로 최소 2개월부터 최대 16개월까지 범행에 가담해 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조건 만남 사이트 경기북구경찰청 형사기동대도 전기통신금융사기특별법 위반 등 혐의로 피의자 15명 중 11명을 구속 송치했다. 이들은 지난해 8월부터 한 달간 캄보디아 범죄 단지에서 여성을 사칭, 조건 만남 등을 명목으로 피해자들로부터 돈을 가로챘다. 또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이성 만남 광고를 낸 후 이를 보고 연락해 온 피해자에게 여성인 척 채팅으로 유인했다. 여성을 소개받기 위해서는 자신들이 개발한 조건 만남 사이트에 회원 가입과 인증을 받아야 한다고 속여 인증을 위한 돈을 요구했다. 3차례에 걸친 인증 절차 과정에서 여러 게임에 성공하면 가입비를 돌려준다고 속여 피해자로부터 1인당 적게는 수십만원에서 많게는 수억원을 받아 챙겼다. 피해자들이 믿을 수 있도록 별도의 만남 인증과 후기글을 남기는 ‘화력방’도 운영했다. 현재까지 확인된 피해 규모는 피해자 36명, 피해금 16억원 상당이며, 1인당 최대 피해 금액은 2억1000만원이다. 이들은 대부분 20~30대 남녀다. 최초 범죄집단을 구성한 캄보디아 프놈펜 지역 명칭 ‘툴콕’을 의미하는 ‘TK’파로 스스로를 부르며 총책을 정점으로 한 지휘·통솔 체계를 갖췄다. 조직 운영을 총괄하는 총책, 이를 보좌하며 실무 전반과 인력 공급 등을 담당하는 총관리자, 각 파트 팀원의 근태를 관리하고 지시하는 팀장으로 구성됐다. 또 자체적인 조건 만남 홈페이지를 제작하는 개발자, SNS에 광고 글을 게시하는 홍보팀과 광고를 보고 접근한 피해자를 기망하는 로맨스 2개팀으로 역할을 분담했다. ▲상호 가명 사용 ▲근무 중 휴대전화 금지 ▲사진 촬영 금지 ▲야간에는 커튼으로 외부 차단 ▲다른 부서와의 업무 내용 공유 금지 등의 규칙에 따라 생활하기도 했다. 중국 국적 100명 뒷배 이들은 총책이 마련한 건물에서 2인1조로 합숙했는데 프놈펜 툴콕 지역의 13층 건물을 사용하다가 지난 8월, 현지 단속을 피해 센소크 지역 7층 건물로 이전해 범행을 이어오던 중 현지 수사 당국에 의해 검거됐다. 이들은 경찰 조사에서 경제적 이익을 목적으로 SNS 구직 광고나 조직원을 통해 범죄단체에 가입했다고 진술했으며 사기임을 알고도 범행을 지속한 것으로 조사됐다. 피의자 대부분은 현지에서 구금된 중에도 총책이 이른바 관작업을 통해 자신들을 석방시켜 줄 것이라는 말만 믿고 대사관의 도움을 거절하고 귀국하지 않았다. 셀허브 사건 간부들은 타 사건에도 연루됐다. 지난 7일 캄보디아 바벳에 인접한 베트남 떠이닌 지역 국경 검문소 인근에서 30대 여성 B씨가 차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는데, 숨지기 직전까지 셀허브 간부와 같이 있었다. B씨의 사인은 마약 과다 투약이었다. 국내 정보·수사기관은 B씨가 셀허브에서 한국인 명의의 대포통장을 공급해 왔다고 보고 있다. A씨는 “셀허브에서 일할 사람을 모집하는 역할을 했던 B씨인데 통장을 팔려고 캄보디아에 도착한 한국인들을 유인해 범죄 단지로 팔아넘기고 유인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실제 정보·수사기관도 B씨에 의해 범죄 단지에 넘겨지는 피해를 입거나 유흥업소 일을 강요당한 사례를 확인하고 조사 중이다. 정보기관 관계자는 “사실상 마약을 강제로 과다하게 투약당한 살인사건이라는 첩보는 아직 확인 중”이라며 “특정 조직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건 현지 경찰도 수사 중인 내용”이라고 말했다. 대개 조직폭력배 출신…지휘는 중국 조직이 맡아 40억 피해액 환수 불가능 “자금 세탁 끝났다” 첫 데이트하던 연인을 치어 여교사를 숨지게 했던 이른바 ‘대전 머스탱 교통사고’의 피의자도 셀허브 조직원으로 확인됐다. 피의자 전모씨는 2019년 2월10일 오전 10시14분 대전 중구 대흥동에서 면허도 없이 외제차를 운전하던 중 인도를 걷던 조모씨와 박모씨를 들이받아 박씨를 숨지게 하고, 조씨에게 중상을 입혔다. 전씨가 대여한 외제차는 불법 대여 차량이었다. 이 차량은 애초 대구에 사는 C씨가 자신 명의로 캐피털에서 월 115만원씩 주는 조건으로 60개월간 대여한 것이다. C씨는 사촌 안모씨와 함께 인터넷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나모씨가 올린 ‘외제차 저렴하게 빌려줄 사람을 찾는다”는 글을 보고 접근, 한 달에 136만원씩 받기로 하고 대여한 머스탱 차량을 재임대했다. 나씨는 이렇게 빌린 머스탱 차량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활용해 “외제차를 빌려준다”고 광고하며 또다시 대여업을 했다. 전씨는 나씨가 올린 이 글을 보고 일주일에 90만원씩 주기로 약속하고 머스탱을 빌려 운전했다. 매년 확정되는 범죄수익 추징금은 30조원을 넘지만 환수 금액은 1%에도 미치지 않는다. 법무부가 캄보디아에서 보이스피싱과 로맨스 스캠 등의 범죄로 발생한 현지 범죄수익을 국내로 환수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우선 법무부는 “캄보디아 내에서 벌어진 범죄 가운데 현재 국내에서 수사 중이거나 재판 중인 사건이 1차 현지 수사 의뢰 대상”이라며 “이후 국내에서 유죄 선고를 받으면 최종적으로 환수 대상이 된다”고 밝혔다. 국제형사사법공조 조약에 따르면 해외에서 발생한 범죄라 하더라도 피해자가 국내에 있고 피해액이 특정될 경우, 우리 정부가 해외에 범죄수익 환수를 요청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2019년 캄보디아와 국제형사사법공조 조약을 체결해 2021년 정식 발효됐다. 주요 간부들 타 사건 연루 정보기관 관계자는 “범죄자 개인이 아닌 조직을 대상으로 한 범죄수익 환수 사례는 거의 없다. 특히 국내에서 수사와 재판이 끝나야 한다”며 “정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나서는 건 좋지만 이미 늦었다. 범죄조직 특성상 이미 코인이나 대포 통장으로 제3국에 은닉하거나 세탁을 하고도 남았을 시간”이라고 지적했다. 부장검사 출신 한 변호사도 “수사가 끝나고 유죄 판결이 나기까지 수년이 걸리는데 환수 절차는 이 모든 사법절차가 종료돼야 가능하다. 특히 조세회피처로 범죄수익을 옮겨놨다면 환수는 불가능에 가깝다”고 봤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