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떠나는 '43년 한은맨'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 구동환 기자 9dong@ilyosisa.co.kr
  • 등록 2022.03.28 12:08:59
  • 호수 136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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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경제 뒤로한 채 가기가…”

[일요시사 취재1팀] 구동환 기자 = 43년 한은맨이 떠난다. 문재인정부 내내 한국은행의 수장 자리를 지켰던 이주열 총재 임기는 이달 말까지다. ‘최장수 근무’ ‘중도 추진맨’ 등의 타이틀을 소유한 이 총재의 경력은 화려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떠날 때는 말없이’라는 말이 있지만 그렇지 못하게 됐다”고 입을 뗐다. 8년간 한국은행을 이끌며 산전수전을 겪은 이 총재는 퇴임을 앞두고도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기준금리 결정과 국제협력, 내부경영 등을 두고 이 총재의 여러 선택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1998년부터
최장 근무자

이 총재는 2014년 4월부터 시작된 8년의 임기를 마치고 오는 31일 한은을 떠난다. 그는 금융통화위원회(이하 금통위) 의장을 맡기 시작한 1998년 이후로 연임한 첫 한은 총재다. 한은 부총재 퇴직 후 하나금융경영연구소 고문, 연세대 경제대학원 특임교수로 재직한 2년을 제외하고 43년을 한은에 몸담아 ‘최장수 한은 근무자’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이 총재는 지난 23일 송별간담회를 통해 “한국은행에서 43년간 국가경제를 위해 일할 수 있었던 건 영광이었다. 떠나는 자리에 덕담을 나누기에는 우리 경제가 헤쳐나가야 할 어려움이 많다”며 “이를 뒤로한 채 떠나게 돼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 후임 총재와 임직원이 어려운 경제상황에 슬기롭게 대처해나갈 것이라고 믿는다”고 소회를 밝혔다. 

마지막으로 몇 가지를 제언을 내놓기도 했다. 그는 최근의 높은 물가 오름세가 상당 기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되고 금융 불균형 위험을 줄여나갈 필요성이 여전히 크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 총재는 “통화정책의 완화 정도를 계속 줄여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특히 미 연준이 빠른 속도의 금리 인상을 예고했는데 우리가 지난 8월 이후 선제적으로 대응함으로써 잠시 금리정책 운용의 여유를 갖게 된 점은 다행이지만 앞으로의 상황은 녹록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앞으로 그러면 기준금리를 어느 시점에 또 얼마만큼 어떤 속도로 조정해 나갈지는 후임 총재와 금통위가 금융·경제상황을 잘 고려해서 결정할 사안이라고 본다”고 설명했다.

또 급변하는 경제 환경에서 중앙은행의 역할 확대와 세계 중앙은행·국제기구와의 더 많은 협력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총재는 보수와 진보정권을 모두 거친 그는 대체로 선제적이고 과감한 기준금리 조정 등을 통해 경제상황에 비교적 발 빠르게 대처하고, 적극적 통화스와프 체결 등으로 외환시장 안정에도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평소 차분하고 말을 아끼는 성격인 것으로 알려진 이 총재는 청와대 또는 정부의 기준금리 관련 발언에 대해서는 과감하게 비판하는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이는 시장 참가자들이 권력의 눈치를 보는 순간 통화정책이 신뢰를 잃고 기능을 상실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세월호 참사·메르스 사태 등 
주재한 회의 무려 76회 달해

이 총재는 취임 기간 동안 다사다난했다. 세월호 참사, 메르스 사태, 브렉시트, 미·중 무역갈등, 일본 수출규제 등이 있었으며 코로나19에 최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까지 벌어졌다. 그 기간 동안 이 총재가 주재한 금통위 회의만 무려 76회에 달했다.

그 동안 이 총재는 결단력 있는 모습을 보여줬다. 세월호 참사 등으로 경제상황이 어려울 때 기준금리를 빠르게 낮추고, 경기 회복세가 확인되면 금리 인상을 주저하지 않았다.

대표적 사례가 지난해 8월과 11월, 올해 1월에 걸쳐 세 차례 기준금리를 인상했다. 이 시기는 미국 등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물가 상승 압력 등을 과소평가하고 금리 인상을 머뭇거리던 때다.

지난해 11월 <블룸버그> 출신 윌리엄 페섹 칼럼니스트는 미국 경제 전문지 <포브스>에 게재한 ‘제롬 파월 의장의 연준은 한국으로부터 배울 점이 많다’는 제목의 기고문을 통해 “한은이 지난해 8월 이후 두 번째로 기준금리를 올렸다. 연준이 말만 할 때 한은은 행동으로 옮긴 것”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이 총재는 신중한 의사소통으로 시장을 안정시켰다는 시각도 있다. 절제된 표현과 일관된 메시지를 통해 시장의 기대를 정교하게 관리한다는 것이다.

한 전임 금통위원은 “(이 총재는)절제된 언어를 사용하고 팩트를 말하는 것이 몸에 뱄다”고 말하기도 했다. 임기 중 미국, 캐나다, 스위스 등 기축통화국 중앙은행은 물론 중국인민은행과도 통화스와프를 체결하거나 연장해 우리나라 외환 안전망을 탄탄히 갖춘 점도 성과로 거론된다. 

신속하게
금리 조정

이 총재의 신망은 여야를 막론하고 두터웠다. 과거 한국은행 총재는 4년 임기를 채우면 물러났다. 대통령이 새로 선출돼도 전임 대통령 때 임명된 한국은행 총재는 당연히 임기를 완수하는 것이 임무였다.

이 총재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임명했고 문재인 대통령이 2018년 새로운 4년 임기의 재신임을 했다. 한은 총재의 철저한 임기 완수 전통이 자리 잡은 덕택에 이 총재는 48년 만의 연임 총재라는 영광을 누렸다. 

2018년 당시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이 총재는 거시경제와 금융시장에 관한 풍부한 식견을 갖추고 있으며 국내에서 통화신용정책의 최고 전문가로 꼽힌다”며 “그의 연임은 한국은행의 중립성과 자율성을 보장하겠다는 문 대통령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고 말했다.

여야 의원들도 2018년 3월 한국은행 총재 인사청문회를 마친 직후 이 총재의 인사청문보고서를 만장일치로 채택하면서 신뢰를 보여줬다.

이 총재가 2014년 4월1일 취임할 당시 세계경제는 글로벌 금융위기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였다. 한국경제는 성장 잠재력이 약화되고 저성장·저물가 현상이 지속되는 상황이었다. 당시 기준금리는 2.5% 수준이었다. 

이 총재는 4개월 만인 2014년 8월 금통위가 기준금리를 15개월 만에 0.25%포인트 내려 연 2.25%로 조정했다. 일본의 엔화 약세정책에 세월호 참사 등 악재가 겹친 데다 정부에서 시장에 돈을 대거 풀어 경기를 부양하는 ‘초이노믹스’(당시 최경환 경제부총리의 경제정책)와 정책공조 필요성이 제기된 점을 감안했다.

금통위는 2014년 10월 기준금리를 다시 0.25%포인트 내려 연 2.0%로 조정했다. 2015년 3월과 5월에도 기준금리를 0.25%포인트씩 내리면서 금리가 연 1.5%까지 떨어졌다.

2016년 들어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당선 등 국제 금융시장에 충격을 주는 사건이 발생하고 국내에서도 대우조선해양 사태 등으로 기업 구조조정이 본격화되면서 금리를 추가로 내려야 한다는 의견이 힘을 얻었다. 

2016년 4월에 새로 추천된 금통위 4명 가운데 상당수가 비둘기파로 분류된 점도 금리인하 전망의 근거가 됐다.

정부가 한국판 양적완화를 명분으로 국책은행에 직접 출자하라고 한은을 압박했을 때 당시 이 총재는 “(총재)직을 걸고 막겠다”면서 직원들의 동요를 차단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총재가 끝내 출자를 거부했고 대출 프로그램인 ‘자본확충펀드’를 제시한 뒤 실행요건을 까다롭게 했고, 결국 실적 없이 2017년 말 종료됐다. 

코로나 악재
‘빅컷’ 단행

금통위는 2016년 6월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추가로 내려 기준금리는 연 1.25%가 됐다. 시장의 금리 동결 전망을 뒤엎은 결정이었다. 이 총재는 “기업 구조조정이 본격화되면 경기가 하강할 위험이 있어 선제적 완화에 나섰다”고 밝혔다. 

반대로 2017년 들어 국내 경제 회복세가 뚜렷해지면서 금통위는 11월 기준금리를 1.50%로 올린 뒤 이듬해 11월 1.75%까지 추가 인상했다.

하지만 2019년 미국과 중국 간 무역 갈등, 일본 수출규제 등의 악재가 이어지자 이 총재를 포함한 금통위는 같은 해 7월과 10월 인하 결정을 통해 기준금리를 1.25%로 내렸다.

2020년 초 코로나19 확산세가 커지자 3월16일 임시 금통위는 기준금리를 0.5%포인트나 한꺼번에 낮추는 이른바 ‘빅컷’을 단행했고, 5월28일 추가 인하로 사상 최저 수준인 0.50%까지 떨어뜨렸다.

당시 이 총리는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해 중앙은행으로서 필요한 역할을 다해나갈 것”이라며 “통화정책은 우리 경제가 위기에서 벗어나 회복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될 때까지 완화적으로 운용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미국 등 세계 주요 국가들이 일제히 코로나19 사태에 대응해 기준금리를 대폭 낮추던 상황에서 한국은행도 과감하게 금리를 인하해야 경제적 타격을 효과적으로 방어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지난해 국내 경제가 수출 중심으로 빠른 회복세를 보이고, 저금리 장기화의 부작용으로 가계부채 증가, 부동산 등 자산 가격 급등이 심해지자 8월부터 금리를 올리기 시작해 같은 해 11월과 올해 1월 잇단 인상으로 1.25%까지 끌어올렸다.

박이 임명 문이 4년 재신임
절제된 표현·일관적 메시지

지난달 이 총재가 주재한 마지막 통화정책결정 회의에서는 기준금리 동결이 결정됐다. 결과적으로 이 총재가 이끄는 금통위는 8년 동안 기준금리를 9차례 인하하고 5차례 인상했다. 이 총재 임기 중 기준금리는 최고 2.50%, 최저 0.50% 사이에서 오르내렸다.

이 총재는 내부 경영면에서도 박한 평가를 받았다.

한국은행 노동조합이 지난해 12월3~10일 직원 716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노조의 65.7%가 이 총재의 내부 경영에 대해 부정적 평가를 내렸다. 33.3%가 매우 미흡, 32.4%는 미흡이라고 응답했다. 25.9%는 보통, 7.0%는 우수, 1.5%는 매우 우수라고 답했다.

또 후임 총재에 대해서도 57.9%가 ‘외부 출신을 원한다’고 답했고 26.4%는 ‘한은 출신을 원한다’고 답했다. 이 같은 답변은 보수와 복지를 비롯한 전반적 조직문화에 대해 한은 직원들의 불만이 고조된 상태라는 것을 의미한다.

한은은 조직문화 개혁을 위해 지난해 맥킨지에 의뢰해 진단을 받기도 했다. 국민의힘 황보승희 의원실이 내놓은 한은이 받은 해당 컨설팅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한은의 조직 건강도는 100점 만점 기준 38점 수준이었다.

이 총재는 한은 총재 직무 외에도 국제결제은행(BIS) 이사회 이사에 올랐다. 2018년 11월11일 스위스 바젤 국제결제은행 본부에서 열린 국제결제은행 정례 이사회에서 이사로 선출됐다. 임기는 2019년 1월부터 3년이었다.

BIS는 1930년에 설립된 국제기구로 ‘중앙은행들의 중앙은행’으로 불린다. 주요 60개국 중앙은행이 회원으로 활동하며 국제금융 안정을 위해 협력한다.

BIS 이사회는 국제결제은행의 전략과 정책 방향을 결정하고 집행부 업무를 감독하는 최고 의사결정기구다. 창설 회원국 중앙은행 총재 6명이 당연직 이사인데 미국 뉴욕 연방준비제도 총재가 지명직 이사로 일하며 선출직 이사 11명이 함께 이사회를 구성한다.

한국은행 총재가 BIS 이사에 오른 것은 한국은행이 1997년 국제결제은행에 정식 가입한 뒤 처음이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한국의 국제적 위상이 크게 높아진 점과 함께 이 총재가 2014년부터 BIS 주요 현안 논의에 기여한 점이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것”이라고 말했다.

국제결재은행
이사직 겸직

한편 이 총재는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두 사람은 공개적으로만 8회 만나는 등 역대 부총리와 한국은행 총재 중 가장 가까웠던 관계로 꼽힌다. 특별한 학연이나 지연으로 얽히진 않았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김 전 부총리는 청와대 재정경제비서관을 지냈다. 또 한국은행 부총재보를 맡으며 업무파트너로 호흡을 맞췄다. 김 전 부총리가 이 총재에게 케이크를 선물하며 깜짝 생일파티를 열어주기도 했다.


<9do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이창용 한은 총재 후보는?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3일 새 한국은행 총재 후보로 이창용 국제통화기금(IMF) 아시아·태평양담당 국장을 지명했다.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이날 브리핑에서 이같이 밝혔다.

박 수석은 “이 후보자는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금융위 부위원장, 아시아개발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를 거친 경제금융 전문가”라며 “국내·국제 경제 및 금융통화 이론과 정책 실무를 겸비했고 주변으로부터 신망이 두텁다는 평가를 받는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이번 인선 과정에 대해 “자세한 사항은 답하기 곤란하지만, 한국은행 총재직의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윤석열 대통령)당선인 측의 의견을 들어 내정자를 발표했다”고 전했다.

이 후보는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로 재직하다, 2007년 이명박 대통령 인수위원회에 참가한 뒤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등 관료의 길을 걸어 이론과 실무를 두루 갖춘 경제 전문가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2014년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IMF 고위직인 아시아·태평양 담당 국장에 올라 국제 경험도 풍부한 편이다. 

시장에서는 그가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통화정책 수장 역할을 무리 없이 수행할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그의 인선이 신구 정권이 교체되는 민감한 시기에 이뤄진 만큼, 정치적 변수에 따라 그가 새 총재 자리에 앉게 될지는 아직 불투명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일단 청와대는 이 후보 인선에 윤 당선인 측 의견을 수렴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윤 당선인 측이 곧바로 “협의한 적이 없다”며 반박해 협치 인사가 아님을 강하게 시사했다.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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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국방부 검찰단, 내란 고발자 ‘닥치고 기소’ 막전막후

[단독] 국방부 검찰단, 내란 고발자 ‘닥치고 기소’ 막전막후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종합특검팀이 종료됐다. 12·3 내란과 관련된 수사는 사실상 마침표를 찍었다. 마무리되지 않은 사건은 경찰 국수본으로 이첩됐다. 검찰 특수본과 특검팀의 수사에 협조한 이들이 없었다면 확인이 어려운 의혹이 산적했다. 이 중에는 정보사 공작 업무와 내란 당일 계엄군의 움직임을 알린 군인들이 있다. 대개 국방부 검찰단에 의해 재판에 넘겨졌다. 수사기관 간 판단이 다른 걸 두고 형평성에 어긋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12·3 내란에는 여러 수사기관이 뛰어들었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 국방부 내란 특수본, 내란 특별검사팀(특별검사 조은석), 2차 종합특검팀(특별검사 권창영) 등이다. 복수의 군인들은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했다. 일부는 혐의가 있었다. 수사기관마다 판단이 달랐다는 게 핵심이다. 국방부 검찰단의 경우가 그렇다. 누군가의 공작이나 의도, 내란 당일 같은 행위를 했음에도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조차 받지 않는 사례가 존재했다. 협조했는데 다른 판단 내란 특검팀과 검찰 특수본에 협조한 데 이어 재판에서 핵심 증언을 한 것으로 알려진 인물 중 1명은 김창학 전 수도방위사령부 군사경찰단장(대령)이다. 김 전 단장은 지난 2월 국방부 검찰단에 의해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두 달 뒤인 4월에는 법령준수의무위반 및 성실의문위반으로 파면됐다. 김 전 단장은 수사기관에 이진우 전 수방사령관의 지시로 국회로 갔던 계엄군의 움직임에 대해 진술했다. 종합특검팀이 내란의 리허설이라고 판단한 국군방첩사령부 자유의 방패(FS) 훈련과 이 전 사령관의 이례적인 지시가 담긴 녹취를 제출하기도 했다. 여기엔 내란 특검팀에 제출된 적 없는 자료도 포함됐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관련 녹취에는 방첩사의 전시 합동수사본부 훈련 과정에서 수방사 실무진들이 병력 지원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컸다. 김 전 단장을 포함한 전·현직 수방사 관계자들은 “‘합수단 수사관들은 경호 대상이 아니다’ ‘합수단 경호는 전례가 없는 일’이라며 병력 지원 자체에 난색을 표했다”고 진술했다. 수방사 관계자들은 “전시 상황이라면 검토가 가능하지만 평시에 병력을 지원하려면 수방사 작전계획부터 변경해야 한다. 육군본부 군사경찰실과의 협의가 필요하다”고 이 전 사령관에게 보고했다. 이 전 사령관과 방첩사의 압력에 못 이긴 수방사는 당시 훈련에 군사경찰단 50명과 35특임대대 20~25명 등 70여 명 규모 병력을 지원했다. 이 같은 진술을 확보한 종합특검팀은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2024년 3월 전시나 계엄 시 부대별 임무와 병력 운용 등을 규정한 군 내부 계획 문서인 ‘전시 비문’ 개정을 추진하며 기존과 다른 방식의 합수본 운영을 준비한 것으로 의심했다. 이 전 사령관은 이 과정에서 수방사 병력 지원을 추진하며 실무진의 반대에도 병력 파견을 지시한 혐의를 받았다. 종합특검팀은 두 사령관을 지난달 직권남용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모든 특검에 자료 넘겨 김 전 단장을 비롯한 복수의 군 관계자들은 현재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고 있다. 반대로 행위가 비슷했던 조성현 대령(전 수방사 제1경비단장)은 훈장을 받았다. 종합특검팀은 지난달 말 조 대령을 조사한 후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조 대령은 합참 지휘통제2팀장 직을 수행하다 최근 인사 조치된 것으로 확인됐다. 조 대령이 2024년 12월3일 오후 11시51분 이 전 사령관과 통화하며 “그렇게 지금 임무를 줬고” “충성, 계속 작전하겠습니다”고 라고 언급한 녹취와 다음 날인 12월 4일 오전 1시2분 김 전 단장이 “(이진우) 사령관이 울타리를 넘어서라도 국회에 들어가라고 하는데, 그게 안 되잖아”라고 말하자 조 대령이 “우리는 그렇게 들어왔습니다” “경찰과 협조해 한적한 곳으로 들어갔습니다”라고 답한 내용을 확인한 종합특검팀은 조 대령이 이 전 사령관의 지시를 전달하고 국회 침투를 실행하는 과정에서 사실상 ‘중간 실행자’ 역할을 했다고 결론 냈다. 김 전 단장이 기소된 점도 기소 근거로 꼽혔다. 이 전 사령관의 지시를 받은 조 대령은 예하 제2특임대대와 제35특임대대에 하달했다. 실제 35특임대대는 계엄 당시 국회 경내에 투입됐다. 종합특검팀의 판단은 내란 특검팀의 수사 결론과 배치된다. 내란 특검팀은 조 대령이 “상부의 위헌·위법적인 지시를 거부했다”며 그를 입건하지 않았다. 종합특검팀은 “서강대교를 넘지 말라”는 조 대령의 지시가 있었는지 확인되지 않았다고 의심했다. 일부 군인들 특검에 핵심 진술·자료 제출하고 불기소 군검찰, 내란 중요임무 종사 재판 넘기고 대거 파면 종합특검팀은 조 대령이 같은 해 12월4일 새벽 1시4분 서강대교 북단에 도착한 제2특임대대 2지역대장 윤덕규 소령에게 총 세 가지를 지시했다고 봤다. ▲총기와 탄약을 차량에 두고 진압봉을 챙겨 서강대교를 넘어올 것 ▲진입 방법은 국회에 이미 들어가 있는 부대와 상의할 것 ▲임무는 국회 안에 있는 인원을 끌어내는 것 등이다. 조 대령은 “2지역대장에게 정확하게 “서강대교를 넘지 말라”는 말을 한 사실이 있나요”라는 종합특검팀의 질문에 “윤덕규에게 2024년 12월4일 1시20분경 다시 북으로 올라가라고 말한 것이고, 넘지 말라고 한 것이 아닙니다”고 진술했다. 조성현 대령 측은 문자 그대로 “넘지 말라”고 하지는 않았지만, 지시가 회군의 취지였다는 점은 동일하다고 주장한다. 윤 소령은 “조 대령이 ‘너희가 (서강대교를) 넘어왔을 때 시민과 충돌하게 되면 크게 다친다. (서강대교 인근에) 대기하라’고 했다”고 진술했다. 끝까지 반대 김 전 단장과 동시에 파면된 핵심 증인 중 1명은 정성우 전 방첩사 1처장이다. 그는 지난해 6월24일 서울 용산구 중앙지역군사법원에서 열린 여 전 사령관의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정 전 처장은 검찰 특수본에서 진술했던 것처럼 “여인형 전 사령관이 당시 선관위 전산실을 통제하고 이후 민간 수사기관에 넘기며, 여의치 않으면 서버를 복사하거나 ‘떼어오라’는 3단계 지시를 내렸다”고 증언했다. 정 전 처장을 비롯해 방첩사 법무실 간부들은 여 전 사령관의 지시에 대해 기술적·법률적 검토 결과 현실적으로 이행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여 전 사령관은 “제 기억으론 정성우 증인한테 서버를 복사해라, 떼오라고 이야기한 기억은 분명히 없다”며 “정성우에게 서버를 떼서 가져오는 방법이 있을까 정도를 문의했다면 모를까, 명시적으로 카피해라, 떼서 가져오라고 했을 것 같지 않다. 카피도 안 되는데 어떻게 떼서 가져오나?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고 반박했다. 정 전 처장은 내란 사태 당일부터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과 총 6차례 통화했다.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50분 정 전 처장은 여 전 사령관으로부터 노 전 사령관의 전화번호를 넘겨받고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노 전 사령관은 정 전 처장에게 “(병력이) 출발을 했느냐”라고 물었고 정 전 처장은 “이제 영외 거주자를 소집한 상황”이라고 답했다. 내란 특검팀에 협조했던 정 전 처장은 김 전 단장처럼 내란 중요임무 종사와 직권남용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내란 특수본은 정 전 처장이 방첩사 인원 115명을 4개 팀으로 긴급 편성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과천·관악 청사, 선관위 수원 연수원, 여론조사 꽃 등 4곳에 출동하게 하는 등 군인들에게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했다고 판단했다. 김 전 단장을 비롯해 복수의 군 간부들이 기소되자 내란 특검팀은 국방부 검찰단에 ‘‘사전 협의’가 있었어야 했던 것 아니냐’는 취지로 불만을 전했다고 한다. 군 일각에서는 정 전 처장은 아니더라도 김 전 단장과 소수의 영관급 장교들은 국방부 조사본부 차원에서 무혐의 종결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되기도 했다. 내란 특검팀에 몸담았던 한 관계자는 “김창학 대령 외에도 여러 사람이 협조했고 그들 덕분에 수사를 할 수 있었던 게 컸다”며 “군검찰의 기소에 감 놔라 배 놔라 해서는 안 되고 해당 기관의 판단이지만 복수의 군 관계자들을 기소했을 때 ‘왜 저 사람은 기소 안 하느냐’는 등의 뒷말이 상당했다. 특검팀도 관련 내용을 알았기에 문제 제기를 했던 것”이라고 했다. 음모·모해 명확한데 혐의는 내란 중요임무 종사가 아니지만 사실상 노 전 사령관과 여 전 사령관에게 피해를 본 사람도 있다. 박민우 전 정보사 A 여단장(예비역 준장)이다. 그는 2025년 초 국회 청문회에서 ‘노상원 수첩’에 관한 핵심 증언을 했던 인물로 주목받았다. 박 준장의 증언 후 실제 관심이 크지 않았던 노 전 사령관의 수첩의 신빙성과 중요도가 커졌다. 노 전 사령관은 정보사를 내란에 동원하려 사실상 박 준장을 축출했다. 여 전 사령관의 검찰 특수본 진술조서를 보면 그는 “(노 전 사령관으로부터) 박 준장의 비위, 비밀은닉, 업체 로비 등 4~5건의 중요한 제보를 받았다. 노 전 사령관이 비위 제보를 하지 않았으면 연락을 하지 않았을 거다”고 진술했다. 방첩사는 군형법상 군사기밀누설 및 암호 부정사용, 국가보안법·군사기밀보호법·남북교류협력법 위반 등 사건에 대해 수사권을 갖는다. 당시 블랙 요원 명단 유출 사건도 방첩사가 초동수사해 사건을 군검찰로 넘겼다. 여 전 사령관이 노 전 사령관의 연락을 받은 건 박 준장과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 간 갈등 전후다. 박 준장이 노 전 사령관의 연락을 받은 시기와도 일치한다. 박 준장은 지난 3월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에서 “갑자기 전화가 와서 ‘아직도 고집이 세냐’고 하길래 ‘그렇다’고 말한 게 전부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날 내란에 동원하려 일종의 간보기 차원으로 질문했던 것 같다. 노상원에 의해 직무에서 배제됐다고 본다. 여단장이 공석이 되자 이 자리 진급을 미끼로 김봉규, 정성욱을 노상원이 조종한 것”이라고 말했다. 노상원 수첩 '핵심 증언자' 박민우, 사실상 노·여 모해로 좌천 신원식 “노상원·여인형에 의해 피해 본 것 맞다” 특검에 진술 문 전 사령관은 국방부 장관이던 신원식 전 안보실장이 2024년 8월 국회 국방위원회에 출석해 ‘정보사 갈등’ 교통정리를 위한 후속 조치를 약속하고 경질될 예정이었다. 신 전 실장은 박 준장과 문 전 사령관에게 “법적 문제를 모두 취하하고 정리하라”고 했지만 문 전 사령관이 거부했다. 문 전 사령관은 유임됐고 노 전 정보사령관과 대통령실 경호처장이던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개입하면서 신 전 실장은 회의가 끝난 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옷을 벗었다. 오영대 전 국방부 인사기획관은 이에 관해 검찰 특수본 조사에서 “신원식 (전 국방부) 장관이 저와 원천희 국방부 정보본부장에게 문 전 사령관에 대한 보직해임·정보사령관 교체 검토를 지시했으나 2024년 9월6일, 김 전 장관이 취임하면서 문 전 사령관에 대한 ‘현 보직 유지’를 지시했다”며 “납득하기 어려운, 이해하기 어려운 인사였다”고 진술했다. 박 준장의 주장은 사실에 가까워 보인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신 전 실장은 종합특검팀 조사에서 “박민우 장군은 여인형과 노상원에게 피해를 봤다. 문상호가 유임되지 않았으면 박 장군도 재판에 넘겨지거나 좌천되는 일이 없었을 것이다”며 “큰일도 아니었고 그래서 둘에게 법적 문제를 모두 취하하고 정리하라고 얘기를 했던 거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