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은 모르는 노동계 진짜 현실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2.03.21 13:47:15
  • 호수 136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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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 노조부터 잡도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주 120시간 노동” “최저임금보다 낮은 임금제가 필요하다.” “가난한 사람은 부정식품을 먹어도 된다.” 이는 모두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대통령선거 유세 기간 중에 한 말이다. 당시 이 말로 윤 당선인은 ‘막말 논란’의 종결자가 됐고, 노동자들은 윤 당선인을 ‘노동 혐오’를 조장한다고 비난했다. 그리고 지금은 ‘노동환경 후퇴’를 염두하고 있다.

윤석렬 대통령 당선인의 노동에 대한 대선공약은 ‘노동개혁’이란 제목으로 전체 공약집 총 340페이지 중 4페이지에 해당한다. 윤 당선인의 노동에 관한 생각은 이처럼 미약한 상태였다. 이는 선거유세 기간 중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났다.

모두 소극적

윤 당선인은 지난해 11월30일 충북 청주의 한 중소기업을 방문해 기업의 문제점을 청취했다. 기업의 문제점을 들은 후 “정부의 최저시급제, 주 52시간제도 등은 단순 기능직이 아닌 경우 대단히 비현실적이라는 말씀을 들었다. 비현실적인 제도를 모두 다 철폐하겠다”고 말했다.

지난해 7월에는 “주 120시간이라도 바짝 일하고 쉬는 게 좋다”, 지난해 9월에는 “손발 노동은 아프리카나 하는 것”이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선거가 코앞에 다가왔을 때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윤 당선인은 선거가 2주 남았을 당시 노동 공약에 대한 의견이 없었다. 공약이 없었던 것뿐 아니라 시민사회단체 질의에 대한 답변, 토론회 참여에도 소극적이었다.


시민사회는 윤 당선인의 공략을 반개혁적·반노동적이라고 지적했다. 당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심상정 정의당 후보에 대한 지적도 있었으나, 이들은 대체로 ‘개혁 의지는 확실하다’는 평을 받았다.

하지만 선거 막바지에는 윤 당선인의 태도가 바뀌었다. 그는 ‘노동의 가치’를 강조하기 시작했고 ‘동일노동 동일임금’에 힘을 실었다. 그러나 이런 행보는 본인의 공약과 맞지 않는 것이었다.

선거가 이틀 남았던 지난 7일 윤 당선인은 경기도 안양·시흥·안산·화성에서 유세를 펼치며 중산층, 근로자, 노동자가 살기 좋은 나라가 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이 자리에서 “정부가 몇 %만을 대변하는 강성 노조와 동업할 게 아니라 모든 노동자를 공정하게 대우해야 하며, 같은 일을 하는 데 임금 처우 차이가 너무 많이 나면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가는 어떤 노동이든 공정하게, 고생하는 것에 비례해서 처우가 이뤄지게 해야 할 책무가 있다”고 주장했다.

유세 기간 중 한 말 두고 우려
전체 공약집 340p 중 4p 해당

윤 당선인은 “사내 하청 파견을 하더라도 그 안에 주인과 머슴이 있다. 이런 상황이 만들어지는 이유는 강성 노조 때문”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당시 윤 당선인의 주장은 힘을 받지 못했다. 지난달 14일 발표된 한국비정규노동센터, 민주평등사회를 위한 전국교수연구자협의회 등 8개 학술·시민사회 단체에 보낸 정책질의 답변서에서는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명시하는 방안에 반대하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같은 항목에 이재명·심상정 후보는 찬성했고 윤 당선인의 입장만 반대였다. 이런 상황에 노동자 단체는 윤 당선인의 행보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대통령 당선 바로 다음 날인 지난 10일부터 노동자들의 기자회견이 시작됐다. 지난 10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는 서울 영등포구 국민의힘 중앙당사 앞에서 ‘2022년 공공운수노조 비정규직 투쟁 선포 기자회견,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를 개최했다.

이들은 윤 당선인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쏟아내며, 1년에 2000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사고·과로로 목숨을 잃는 현실을 모른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지난 박근혜정부의 몰락을 ▲비정규직 강요 ▲정리해고 확대 ▲성과 연봉제 도입으로 정의내렸다. 그러면서 윤 당선자와 국민의힘이 노동자들을 고통에 내몰면 저항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상시 지속업무 비정규직 고용 제한 법제화 ▲가짜 정규직인 용역형 자회사 운영 개선과 원청의 책임 강화 ▲일터에서의 차별을 금지하고 저임금 노동자에 대한 격차 해소 및 인건비 예산 편성 ▲공공부문 하청노동자 인건비 저가 낙찰제 폐지 ▲공무직 법제화 ▲노조법 2조 개정으로 간접고용과 특수고용 노동자의 노동기본권 보장 등 공공부문에서부터 비정규직을 없애고 차별을 철폐해야 한다고 밝혔다. 

공공운수노조 발전 비정규 노동자들은 지난 14일 오후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문재인 대통령 임기 내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약속을 이행하라고 촉구하며, 윤 당선인에게도 “생명·안전업무에 대한 정규직화 공약 이행에 좌고우면하지 않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2020년 5월 연료·환경 설비 운전 분야 노·사·전문가 협의체는 한전산업개발 재 공영화를 통한 정규직화를 결정했다.

하지만 한전이 자유총연맹의 한전산업개발 지분을 매입하는 과정이 지연되면서 정규직 전환이 지체되고 있다. 이들은 “이제는 위험의 외주화를 두고 볼 수 없다. 공공부문 비정규직부터 없어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코로나19에 직격탄을 맞은 항공 노동자들도 윤 당선인에게 지원 대책을 요구했다. 지난 15일 광화문 정부중앙청사 앞에서 공항·항공 노동자 고용안정 쟁취 투쟁본부는 윤 당선인에게 항공산업 일터 회복 대책을 마련하라고 주장했다.

동일노동 동일임금 반대
일이 먼저냐 삶이 먼저냐

항공 노동자들은 2년이 넘도록 ‘무급휴직’과 ‘정리해고’로 일터에서 쫓겨난 상황이다. 


그러나 정부도, 고용노동부도 아무런 대책을 제시하지 못한 실정이다. 이들은 코로나19 극복과 일상 회복을 선언하기 전까지 고용유지 정책을 유지하고 보완해야 하며, 위드 코로나에 발맞춰 공항 항공산업 방역 대책을 요구했다.

또 코로나19로 재벌에게 경영권 방어 특혜를 주고 노동자에게 고용유지 대책도 없이 일방적인 합병을 강행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항공 노동자들은 윤 당선인에게 “특별 고용 지원업종 지정을 연장하고, 지급기한 1년을 보장해야 한다. 운항 정상화에 따른 복직 대책을 마련하고, 재벌 특혜 고용불안인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합병 일방강행을 규탄한다. ‘항공산업 일터 회복을 위한 사회적 논의’ 협의체를 구성하라”고 전했다.

지난 9일부터 시작된 노동자 단체들의 기자회견 및 농성은 계속 진행 중이다. 이들은 모두 연간 계획을 짜서 올해 말까지 윤 당선인에게 노동자들의 요구사항을 촉구할 계획이다.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윤 당선인의 귀에 들릴까.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은 윤 당선인을 향한 쓴 목소리를 마지않았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는 지난 15일 성명서를 통해 “윤 당선인이 후보 시절 말한 주 120시간 노동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커졌다. 그러면 노동자는 하루 24시간, 주 120시간의 노동에 내몰려 건강권의 심각한 침해와 과로사에 내몰리게 된다”고 주장했다.


통합하려면…

연맹은 “윤 당선인이 당선 이후 외치는 ‘국민통합’이 진정성을 가지려면 노동자들의 처지와 입장을 살펴야 한다. 개혁이라는 이름 아래 추진되는 일방적 개악은 전 노동자, 민중의 저항에 직면할 것임을 경고한다. 박근혜정부가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다 실패한 성과 퇴출제의 사례를 곱씹어 살펴보길 권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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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2015년 진행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의 여파가 아직까지 남아있다. 정부는 당시 합병으로 인해 외국계 투자회사인 엘리엇 매니지먼트및 메이슨 캐피탈과 국제투자 분쟁에 휩싸였다. 국제상설중재재판소의 판정으로 정부는 이들에게 약 2100여억원을 배상해야 하는 상황 중 아주 작은 소생의 실마리가 나왔다. 엘리엇 분쟁 사건의 판정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승소한 것이다. 정부가 미국계 해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와의 8년간 진행 중인 국제투자 분쟁에서 반전의 기회를 잡았다. 1300여억원을 배상하라는 국제투자 분쟁 판정에 불복해 제기한 소송의 항소심에서 승소하면서다. 이로 인해 배상 판결이 취소될 가능성도 되살아났다. 사건 발단 짚어보니… 법무부에 따르면 영국 항소법원은 지난 17일 한국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여 1심 법원인 고등법원에 사건을 환송했다. 이에 따라 사건을 되돌려받은 영국 고등법원은 엘리엇에 대한 한국 정부의 배상을 결정한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의 재판 관할권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한국 정부로서는 중재판정 자체를 무효화할 가능성을 다시 확보하게 된 셈이다. 엘리엇 배상 사건은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이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국제투자분쟁(ISDS) 사건이다. 해당 사건은 지난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정부가 국민연금공단(이하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이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면서 시작됐다. 엘리엇은 해당 의혹이 발발한 지 3년이 지나서야 7억7000만달러의 손해를 입었다며 ISDS를 제기했다. 엘리엇의 ISDS 제기는 대한민국 정부에게는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만약 엘리엇의 주장이 받아들여질 경우, 막대한 국민 세금이 배상금으로 지급돼야 하는 상황이었다. 또 국제 중재 절차는 매우 복잡하고 오랜 시간이 소요될 뿐만 아니라, 국가의 대외 신인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법무부를 중심으로 전담팀을 구성하고 국제 법률 전문가들과 협력해 엘리엇의 주장에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양측은 수년간의 준비 과정을 거쳐 네덜란드 헤이그에 위치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서 치열한 법적 공방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국정 농단 사건의 재판 결과와 국민연금 관계자들의 증언 등이 중요한 증거로 활용됐다. 기나긴 법적 공방 끝에 지난 2023년 6월20일, 네덜란드 헤이그의 PCA는 엘리엇의 ISDS 사건에 대한 최종 판정을 내렸다. 판정 결과는 대한민국 정부에게 상당한 충격이었다. PCA는 한국 정부가 엘리엇에 5358만6931달러(당시 환율로 약 690억원) 와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이는 엘리엇이 청구한 금액인 약 7억7000만달러의 약 7%에 해당하는 금액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정부가 국제 중재에서 패소해 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점에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PCA는 판정문에서 국민연금의 삼성물산 합병 찬성 행위가 한국 정부에 귀속되는 행위며, 이로 인해 엘리엇에 손해가 발생했다고 판단했다. 이는 국민연금이 공적기금으로서 정부의 통제 하에 있으며, 그 의사결정이 정부의 행위로 간주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또 정부가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의 정당한 주주 권리를 침해하고 투자가치를 훼손했다고 봤다. 배상 취소 소송 항소심 승소 한미FTA상 성립 불가능 판단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는 이 판정을 그대로 수용하지 않았다. 법무부는 판정 직후 즉각적으로 불복 절차에 돌입하겠다고 밝혔다. 2023년 7월18일, 정부는 중재판정부에 판정의 해석·정정을 신청하는 동시에, 중재지인 영국 법원에 판정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정부는 판정에 법리적 오류가 있거나 중재 절차에 중대한 하자가 있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주장하며 판정을 뒤집기 위한 총력전을 펼쳤다. 특히, 정부는 엘리엇 사건이 한미 FTA상 ‘성립 불가능’한 사건이라는 점을 취소소송에서 가장 크게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국제투자 분쟁은 해외 투자자가 ‘투자국’의 협정 위반 행위에 대해 제기하는 국제중재로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는 ‘상업적 행위’일 뿐 국가의 행위로 볼 수 없다는 게 정부의 논리였으나 1심 법원에서는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정부는 해당 판결에 대해서도 항소를 진행했고 지난 17일 영국 항소법원은 우리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사건은 다시 1심 법원인 영국 고등법원으로 환송됐으며, 영국 고등법원은 배상 판결을 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 애초 재판 관할권이 있었는지부터 다시 심리하게 된다. 이 판결은 한국 정부가 거액의 배상을 면할 수 있는 반전의 기회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엘리엇 배상 사건의 발단은 삼성물산 제일모집 합병에서 촉발됐다. 지난 2015년 5월26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합병 계획을 발표하며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제일모직이 삼성물산을 1대 0.35의 비율로 흡수합병하는 방식이었다. 이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그룹 경영권 승계 및 지배력 강화를 위한 것으로 해석됐으나, 삼성물산 주주들에게는 불리한 합병 비율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8년 소송 결말은? 당시 제일모직의 주가는 삼성물산의 약 3배였지만, 자산총액 기준으로는 삼성물산이 제일모직의 3배에 달했기 때문이다. 이에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는 삼성물산 지분 7.12%를 보유하고 있음을 공시하며 합병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 합병 금지 가처분신청을 제기하는 등 적극적인 반대 운동을 펼쳤다. 당시 엘리엇은 삼성물산의 가치가 지나치게 저평가됐으며 합병 조건이 불공정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법원은 엘리엇의 가처분신청을 모두 기각하며 삼성의 손을 들어줬다. 합병의 가장 중요한 변수는 삼성물산의 최대주주였던 국민연금이었다.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들이 합병 반대 의견을 내놨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연금은 내부 투자위원회를 거쳐 합병에 찬성표를 던졌다. 결국 2015년 7월17일, 삼성물산 주주총회에서 합병안이 통과됐고, 그해 9월1일 통합 삼성물산이 공식 출범했다. 이후 박근혜정부 국정 농단 사건이 불거지면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의 불법성 의혹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특별검사팀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와 지배력 강화를 위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이 이뤄졌고, 이 과정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에게 뇌물을 제공하는 등 불법 행위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특히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하도록 정부가 부당하게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관련 인사들이 재판에 넘겨졌다. 2025년 7월17일, 대법원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및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부정과 관련한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 행위, 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 대해 전부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이로써 이 회장은 약 10년간 이어져 온 사법 리스크에서 벗어나게 됐다. 리스크 해소 다양한 반응 엘리엇 배상 사건이 새로운 국면을 맞으면서 법조계와 정치권에서는 다양한 반응이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항소심에서 ‘한국 승소’로 뒤집히자, 취소 청구를 주도한 법무부 장관으로서 환영했다. 한 전 대표는 “최선을 다하고 성과를 낸 많은 ‘좋은 공직자’들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한동훈 전 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에 “제가 법무부 장관으로서 지휘했던 엘리엇 국제투자분쟁(ISDS) 중재판정의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대한민국이 이겼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더불어민주당이 저 소송(취소소송 제기) 관련해 저를 많이 비난했었다”고 정쟁적 비판을 상기시켰다. 그는 “‘국익’이 걸렸지만 결과가 나쁠 수도 있는 위험 부담이 큰 문제를 결정할 때, 몸 사리면 공직자들은 편하다. ‘지면 네 돈 낼 거냐’는 폭력적인 질문 앞에서 ‘안 하고 말지’ 생각이 들게 마련”이라며 “그래도 몸 사리지 않고 국익을 생각한 좋은 공직자들이 있다. 이 경우가 그랬다”고 설명했다. 특히 “엘리엇 항소에 대해 ‘질 가능성이 크니 항소하지 마라, 그래서 지면 한동훈 사비로 돈 대신 내라’는 감정적 비난이 많았고, 그런 제목의 언론 사설까지 있었다”면서 공직사회에 “피 같은 국민 세금 아끼기 위해 많은 분들이 혼신의 노력을 해온 것을 제가 잘 안다”고 격려를 보냈다. 한 전 대표는 “의미있는 승리지만 이 사안은 아직도 갈 길이 먼, 쉽지 않은 싸움”이라며 “끝까지 최선을 다해 국익을 지켜주시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법조계에서는 엘리엇 배상 사건처럼 메이슨 캐피탈이 같은 이유로 제기했던 ISDS의 중재판정 취소소송 항소 포기에 대한 아쉬움을 내비쳤다. 한 국제통상 전문 변호사는 “엘리엇과 메이슨은 같은 이유로 ISDS를 제기했다”며 “엘리엇은 취소소송의 항소심을 진행하면서 메이슨은 지연이자 등으로 항소심을 진행하지 않았다. 하지만 엘리엇 사건이 항소심에서 승리하면서 메이슨도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아쉬울 따름”이라고 평가했다. 앞서 법무부는 지난 4월 정부 대리 로펌 및 외부 전문가들과 논의한 끝에 정부의 메이슨 ISDS 중재판정 취소 청구를 기각한 싱가포르 국제상사법원의 1심 판결에 대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발단 “이재명정부가 구상권 제기해야” 메이슨은 지난 2018년 9월 우리 정부가 자유무역협정(FTA)을 위반했다며 손해배상금 1억9139만달러(약 2609억원)와 판정일까지 연 5% 월 복리이자를 지급하라는 ISDS를 제기했다. 정부는 한미 FTA상 ‘정부가 채택하거나 유지한 조치’는 공식적인 국가 행위를 전제로 하는데, 개별 공무원의 불법적이고 승인되지 않은 비위 행위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중재판정부는 지난해 4월 우리 정부를 향해 메이슨 측에 3203만876달러(약 438억원) 및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정부는 지난해 7월 취소소송을 제기했지만, 지난달 싱가포르 법원은 메이슨 측 주장을 받아들여 한국 정부 측에 손해배상을 명한 중재판정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법무부는 "법리뿐 아니라 항소 제기 시 발생하는 추가 비용 및 지연이자 등 여러 가지 사정을 종합해 결정했다"고 항소 포기 이유를 밝힌 바 있다. 이번에 항소심에서 정부가 승리했지만, 여전히 문제는 국민 세금으로 내야 할 배상액이다. 정부가 메이슨에 지급해야 할 돈은 지연이자까지 포함해 약 887억원이 됐다. 엘리엇에 배상해야 할 금액은 당초 1300억원에서 지연이자까지 더하면 약 1500억원가량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시민단체에서는 엘리엇과 메이슨이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손해를 봤다며 소송을 제기한 만큼 당시 합병을 주도한 이 회장과 두 기업의 합병 과정에서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박근혜 전 대통령 등을 상대로 구상권을 제기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복리이자가 계속 쌓이면서 배상액도 천문학적으로 계속 늘고 있는 상황이라, 이재명정부의 대응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5월 대선을 앞두고 참여연대는 대선후보들에게 엘리엇·메이슨 ISDS 배상금 구상권 행사 여부를 듣기 위해 질의문을 보냈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였던 이재명 대통령은 질의에 응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참여연대는 “단순한 침묵이 아니라 대통령 후보로서 세금 수천 억원의 손실을 되돌리기 위한 의지와 책임을 보여야 할 자리에서 책무를 방기하고 있다는 점이 중대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지난 17일에는 이재용 회장의 대법원 판결이 나온 직후 다시 한번 “재벌 봐주기 판결로 사회 정의를 무너뜨리고 총수 일가의 전횡을 용인하는 해로운 판례를 남긴 법원을 강력히 규탄한다”는 주장과 함께 정부를 향해 구상권 청구를 요청했다. 구상권 문제는? 다만 국제통상 전문가로 활동한 송기호 변호사가 대통령실 국정상황실장에 있다는 점에서 변화를 기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송 실장은 변호사 시절 “법무부는 당시 중과실로 불법 행위한 대한민국 공무원들, 이들과 공모 관계라고 인정된 이재용 회장을 상대로 신속하게 구상권 청구를 해야 한다”며 “박 전 대통령 등 공무원에겐 국가배상법에 따라 당사자에게 청구하고, 이 회장에 대해선 민법상 공동불법행위자로서 청구할 수 있다고 본다”고 밝힌 바 있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