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인이 운영하는 LP숍 가보니…

  • 구동환 기자 9dong@ilyosisa.co.kr
  • 등록 2022.03.14 16:53:44
  • 호수 1366호
  • 댓글 0개

‘지지직∼’ 모든 노래의 시작은 같다

[일요시사 취재1팀] 구동환 기자 = 음악은 우리 삶에서 빼놓을 수 없다.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매개체가 되기도 하고 스트레스를 푸는 용도가 되기도 한다. 멜론, 애플뮤직, 스포티파이 등 다양한 음원 플랫폼이 나오고 있지만 명곡들은 LP를 수집해서 듣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사회가 점점 편리해지고 있다. 버튼 몇 개만 누르면 무엇이든지 할 수 시대다. 이와 역행하는 게 턴테이블과 LP(Long Playing Record)판이다. 음악시장이 큰 미국에서는 LP가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국내 가수도 LP를 내고 있고 한정판은 구하기 힘들 정도다. 

장당 2000원

지난달 22일 서울시 중구 신당동 한 주택가에 위치한 LP숍 ‘모자이크 서울’을 찾았다. LP를 파는 곳이라면 화려한 간판이 있을 법도 한데 이곳은 그렇지 않았다. ‘mosaic(모자이크)’라고 적힌 펄럭이는 깃발을 보고 나서야 매장 위치를 파악했다.

매장 창문에는 집중해서 봐야 볼 수 있는 레코드숍이라는 글씨와 함께 운영 시간, 전화번호, 메일, 인스타그램 등의 정보가 적혀 있었다. 

매장 문을 열고 입장했지만 점원의 격한 환영이나 인사는 없었다. 점원과 손님은 음악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눌 뿐이었고 매장 안을 가득히 채운 LP가 기자를 반겨줄 뿐이었다. 


흰색과 청록색이 조합된 매장은 갈색 가구와 너무나 잘 어울렸다. 대여섯 명만 들어와도 비좁을 것 같은 내부는 LP로 벽면까지 가득 찼다. 과거 비디오 대여점이나 만화책 방에서 느낄만한 아늑한 느낌이 났다. 

이곳은 유창한 한국말을 구사하는 프랑스 외국인이 운영한다. 사장의 이름은 커티스 캄부. 한국에 온 지 10년된 그는 음악 관련 일을 하다가 지금은 음반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커티스 캄부는 “음악 관련 종사자이며 음반 판매를 한 지는 오래됐다. 나에 대한 얘기보다는 이 공간에 대해 이야기하자”고 말을 시작했다. 그는 “이곳은 음반 마니아들이 많이 찾는 매장이다. 다른 매장에 비해 수입하는 LP 양이 많은 편”이라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캄부의 말대로 매장 안을 둘러보니 1000장은 족히 넘어 보이는 LP판들이 이목을 끌었다. 매장 중앙도 모자라 벽면을 가득 채운 LP는 인테리어를 따로 할 필요가 없을 정도였다. 

얼마나 많은 LP를 보유하고 있냐는 물음에 커티스 캄부는 “현재 보이는 것만 3000장이고 따로 보관하고 있는 게 2000장이 있어 총 5000장 정도 갖고 있다. 1만장, 2만장이 넘을 때도 많다. 소장하고 있는 LP 개수는 시시각각 변한다. 이곳은 다른 곳보다 회전율이 좋다. 다음 달이면 또 다른 음반으로 매장을 가득 채울 것”이라고 답했다. 

이곳은 록, 힙합, 재즈, 하우스, 테크노 등 다양한 장르로 구분해 LP를 비치했다. 고객의 음악 장르를 취향에 맞춰 찾아볼 수 있게 하는 작은 배려였다. 수많은 LP를 구하기 위해 특별한 노하우가 있을 터.

그에게 슬쩍 물었지만 “영업 기밀”이라는 답변을 받았다. 상태가 좋고 저렴한 LP를 찾는 방법은 인맥이라고 귀띔했다. 


LP를 처음 접하는 이들에게 ‘입문곡’을 추천해달라는 질문에 커티스 캄부는 “그런 건 따로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는 “음악으로 단계를 나누거나 레벨을 나누는 건 맞지 않다. 자신이 직접 다 들어보고 취향을 찾는 행위를 해야 한다”며 “LP라고 해서 특별한 건 아니다. 음악을 듣는 하나의 플랫폼이다. 음악에 순위나 랭킹을 매기지 말고 자신만의 취향을 찾길 바란다. 모자이크 서울에는 다양한 장르의 음악이 있다”고 말했다.

록, 힙합 등 다양한 장르 구분
턴테이블 통해 청음할 수 있어

젊은 층이 LP 문화 입문에 꺼리는 이유는 아무래도 가격 때문이다. 음원 플랫폼을 구독하면 매월 1만5000원정도 결제 후 음악을 무제한으로 들을 수 있다. 반면 최근 출시되는 LP 가격은 4~5만원선이다. 재출시되는 앨범 같은 경우에는 15만원을 웃돌기도 한다. 

모자이크에서는 중고 LP를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단돈 2000원으로도 구입할 수 있는 LP가 많다. 매장을 둘러보는 손님 연령층을 살펴보면 20~30대가 주를 이룬 것을 보면 저렴한 가격대가 한몫한 것으로 보인다.

커티스 캄부는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 부담스럽지 않게 접근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다. 매장에는 저렴한 LP는 2000원으로 책정돼있고 보통 7000원에서 1만원 정도 한다. 그 다음 비싼 게 2만원에서 2만5000원정도 수준”이라며 “LP 가격은 공급과 수요에 따라 바뀐다. 비틀스, 마이클 잭슨 등 유명한 아티스트라고 해도 LP를 많이 찍으면 저렴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곳의 백미는 LP를 직접 청음할 수 있다는 점이다. 카세트테이프와 CD 세대였던 기자에게 턴테이블을 활용해 LP를 직접 들을 기회는 흔치 않았다.

수많은 LP 중에 1980년대 가요계를 주름 잡았던 민해경의 ‘제1회 미국 국제 가요제 그랑프리 및 최우수가창상 수상곡’이라고 표기된 앨범과 힙합가수 팀독의 앨범 총 2장의 LP를 집었다. 국내 가요 카테고리에는 민해경뿐 아니라 희자매, 방미 등 과거 국내 가요계를 휘어잡은 가수들의 앨범도 있었다. 

직원의 도움을 받아 턴테이블 사용법과 함께 LP 잡는 법 등의 설명을 들었다. 꽤 큼지막한 LP를 잡을 때는 손바닥으로 밑면 중앙 라벨에 대고 엄지로 LP 가장자리를 잡아 내피에서 뺀 다음 양손으로 턴테이블을 걸어야 한다. LP트랙에 손자국이 남지 않게 하는 게 중요하다. 

귀에 헤드셋을 낀 뒤 LP를 턴테이블 가장자리 끝 부분에 바늘을 위치시켜야 1번 트랙부터 들을 수 있다. ‘지지직’거리는 잡음은 분명 음원 스트리밍과 다른 매력이 있었다. 음악을 듣기 위한 과정을 거친 덕분에 우아하고 고급스러운 느낌도 받았다. 

팀독의 ‘Tim dog i get wrecked’를 들을 때 공연장에 온 듯한 느낌을 받기도 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듣다 보니 1곡이 끝나버렸다. 턴테이블 옆에 포스트잇으로 ‘구매 목적을 위한 손님을 위한 것’이라는 글귀를 보고 헤드셋을 내려놓고 LP를 정리했다. 

커티스 캄부는 “청음은 5장 정도 들을 수 있다고 적어놨다. LP를 구매할 의향도 없으면서 계속 듣는 무례한 손님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며 “옷 가게에서도 구입할 목적이 없지만 여러 벌의 옷을 입는 것과 같다. 턴테이블이 2개밖에 없기 때문에 다른 손님을 위해 배려하는 자세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곳에서는 LP 판매뿐 아니라 앉아서 쉴 수 있는 공간도 있다. 서너명이 앉을 수 있을 만큼 작은 공간이지만 휴식을 취할 수 있을 만한 충분한 공간이다. 다락방 같은 느낌은 이 공간을 더욱 아늑하게 만들어준다. 메뉴는 핸드드립 커피와 민트 티 등 두가지 뿐이지만 3500원의 가격으로 여유를 즐기기엔 충분하다.

5000장 보유

커티스 캄부는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 찾아와 취향을 이야기하는 등 소통의 장이 됐으면 좋겠다.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끼리의 커뮤니티나 모임은 많다. LP는 잠깐 유행했다가 사라지는 게 아니라 이전부터 자리 잡은 문화”라고 설명했다. 


<9dong@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여당발 검찰과의 전쟁 막전막후

여당발 검찰과의 전쟁 막전막후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검찰의 대장동 항소 포기 후폭풍이 거세다. 더불어민주당과 검찰의 시각이 크게 엇갈리면서 서로를 향해 날을 겨누는 형국이다. 검찰청은 내년 9월 폐지될 시한부 운명이지만, 더불어민주당은 ‘검찰개혁’을 필두로 이참에 검찰의 뿌리를 뽑겠다는 방침이다. 국민의힘을 등에 업고 버티기에 나선 검찰의 반발 또한 만만치 않아 당분간 양측 간의 힘겨루기가 이어질 전망이다. 지난 7일 서울중앙지검이 대장동 사건에 대한 항소 시한을 넘기면서 논란에 불이 붙었다. 서울중앙지검이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을 비롯해 ▲남욱 변호사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 ▲정민용 변호사 ▲정영학 회계사 등 대장동 일당에 대한 1심 판결에 항소하지 않은 것이다. 꺾이거나 되치거나 검찰이 항소를 포기하면서 ‘불이익변경 금지 원칙’에 따라 피고인에게 더 무거운 형을 선고할 수 없게 됐다. 대장동 개발 비리로 발생한 범죄수익의 국고 환수 규모가 축소될 것이란 해석에도 힘이 실린다. 화살은 곧바로 이재명 대통령에게로 향했다. 이 대통령은 대장동 사건에서 이해충돌방지법 위반 혐의 등을 받는데, 이미 대장동 민간업자 재판에서 무죄가 나온 만큼 항소 포기로 인해 추가로 다툴 여지를 차단했다는 게 국민의힘의 설명이다. 여기에 대통령실이 항소 포기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이재명 면죄부’라고도 주장했다. 국민의힘 곽규택 대변인은 “대통령실 민정수석실 비서관 4명 중 3명, 법무부 장관 정책보좌관, 법제처장, 국정원 기조실장까지 모두 이 대통령의 변호인 출신”이라며 “이 대통령과 사법연수원 동기인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대장동 사건 주요 피고인 정진상, 김용, 이화영 등을 특별 면회하면서 ‘검찰은 증거가 없다’는 발언으로 회유를 시도한 인물”이라고 주장했다. 보수 성향인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 역시 “국가의 유례없는 사법 정의 포기 사태는 이재명정부의 책임”이라며 “공소 사실의 핵심에 무죄 선고가 난 사건에 검찰이 항소를 포기한 전례를 찾기 어렵다. 대통령의 어깨가 한결 가벼워진 것은 부인하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정부 출범 이후 대검찰청 차장검사로 승진한 노만석 검찰총장을 겨냥해서는 책임론이 불거졌다. 법조계에 따르면 항소 시한을 앞두고 서울중앙지검은 대장동 일동에 대해 일부 무죄가 선고되는 등 다툼의 여지가 있는 1심 판결에 대해 “관행대로 항소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지만, 이를 전해 들은 대검 수뇌부가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에 노 대행은 지난 9일 “대장동 사건은 일선 검찰청의 보고를 받고 통상의 중요 사건의 경우처럼 법무부의 의견도 참고한 후 해당 판결의 취지 및 내용, 항소 기준, 사건의 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며 “검찰총장 대행인 저의 책임하에 서울중앙지검장과의 협의를 거쳐 숙고 끝에 내린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 역시 대장동 일동에 대해 검찰의 구형량보다 높은 형량이 선고된 만큼 항소 포기가 ‘적절한 판단’이었다는 점을 강조하며 “항소 포기 지시는 없었다”고 일축했다. 화약고에 불붙인 ‘항소 포기’ 후폭풍 이재명·노만석·정성호 몽땅 도마 위로 정 장관은 지난 12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 회의에 출석해 ‘(이진수) 법무부 차관에게 대장동 사건 관련으로 어떤 지시를 했느냐’는 국민의힘 배준영 의원의 질문에 “노 검찰총장 직무대행에게 지휘권을 행사할 수도 있으니 항소를 알아서 포기하라는 지시를 한 적이 없다”고 답했다. 이어 정 장관은 총 3번 정도 대장동 사건에 관해 이야기했다고 언급하며 “(두 번째인) 11월6일 목요일에는 국회에서 예결위 종합질의가 있어 국회에 왔는데, 예결위 끝나고 대검에서 항소할 필요성이 있다고 한 의견을 들었다”며 “당시 ‘중형이 선고됐는데 신중한 판단을 해야 하지 않는가’란 정도의 이야기만 하고 돌아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다음 날인 11월7일에도 마찬가지”라며 “저녁에 예결위가 잠시 휴정돼 검찰에서 항소할 것 같다는 구두 보고를 식사 중에 받았고, 그날 저녁 예결위가 끝난 후 최종적으로 항고하지 않았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부연했다.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대목을 놓고 국민의힘은 “신중한 검토(판단)가 곧 항소 포기인지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며 법무부가 사실상 외압을 행사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는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이 8글자에 모든 것이 함축적으로 들어가 있다”며 “법무부 장관이 개인적인 견해임을 전제로 하며 검찰에 지시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대장동 사건 수사·공판팀을 이끌었던 일선 검사를 중심으로 반발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 김영석 대검찰청 감찰1과 검사는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를 통해 “검찰 역사상 일부 무죄가 선고되고 엄청난 금액의 추징이 선고되지 않은 사건에서 항소 포기를 한 전례가 있었나”라며 이번 결정으로 대장동 일당 등 민간업자에게 수천억원 상당의 범죄수익이 돌아간 점을 꼬집었다. 대장동 사건의 수사·공판팀을 이끌었던 강백신 대구고검 검사도 “항소 포기로 남욱·정영학을 상대로는 범죄수익을 단 한 푼도 환수할 수 없게 됐고, 김만배를 상대로는 당초 예상 금액의 1/10에 불과한 금액만 추징 선고가 이뤄졌음에도 이를 묵과할 수밖에 없게 됐다”고 지적했다. 기막힌 타이밍 검찰 안팎에서 책임론이 확산하자 결국 노 대행은 항소 포기 논란이 불거진 지 닷새 만에 사의를 표명했다. 그러자 일선 검사들은 ‘검찰총장 권한대행께 추가 설명을 요청드린다’는 제목의 글을 통해 항소 포기 과정에 대한 상세 설명을 요구하는 입장문을 냈다. 해당 입장문은 박재억 수원지검장을 비롯해 ▲박현준 서울북부지검장 ▲박영빈 인천지검장 ▲박현철 광주지검장▲임승철 서울서부지검장 ▲김창진 부산지검장 등 검사장 18명 명의로 작성됐다. 이들은 “서울중앙지검장은 명백히 항소 의견이었지만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항소 포기 지시를 존중해 최종적으로 공판팀에 항소 포기를 지시했다”며 “검찰총장 권한대행을 상대로 항소 의견을 관철하지 못하고 책임지고 사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면 검찰총장 권한대행이 어제 배포한 입장문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의 항소 의견을 보고받고 법무부의 의견도 참고한 뒤 해당 판결의 취지 및 내용, 항소 기준, 사건의 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며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책임 하에 서울중앙지검장과 협의를 거쳐 숙고 끝에 항소 포기를 지시했다는 것”이라고 짚었다. ▲하담미 수원지검 안양지청장 ▲최행관 부산지검 동부지청장 ▲신동원 대구지검 서부지청장 등 8개 대형 지청을 이끄는 지청장들도 집단 성명을 냈다. 이들은 “이번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 지시는 그 결정에 이른 경위가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면 검찰이 지켜야 할 가치, 검찰의 존재 이유에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상처를 남기게 될 것”이라며 “그간 중앙지검장과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입장문, 법무부 장관의 설명만으로는 항소를 포기한 구체적 경위가 설명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법적·행정적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 정치 검사들의 반란을 분쇄하겠다”며 검찰의 집단 반발을 ‘항명’이라고 규정하고 이에 대한 징계를 예고했다. 현재 일반 공무원은 6단계 징계 처분(파면·해임·강등·정직·감봉·견책)이 가능하지만, 검사는 파면에 해당하는 징계 규정이 없다. 검사에 대한 징계는 검사징계법에 따라 이뤄지는데, 이를 ‘검사 특혜법’이라고 지적하며 폐지하겠다는 설명이다.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는 “정치 검사들의 반란에 철저하게 책임을 묻겠다”며 사실상 검찰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김 원내대표는 “정 법무부 장관께 강력히 요청한다. 항명 검사장 전원을 즉시 보직 해임하고 이들이 의원면직하지 못하게 징계 절차를 바로 개시하라”며 “항명에 가담한 지청장과 일반 검사들도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이후 김 원내대표가 검사징계법 폐지 법률안·검찰청법 개정안을 각각 국회에 제출하면서 사실상 검찰 징계는 당론으로 추진될 전망이다. 항소 포기 논란 이후 박재억 수원지검장에 이어 송강 광주고검장이 연달아 사의를 표명했지만 민주당은 “사표를 수리하지 말고 징계 절차를 밟아야 한다”며 퇴로를 막았다. 항명? 투쟁? 법무부 내부에서 집단행동에 나선 일부 검사장을 대상으로 평검사 보직이동을 하거나 국가공무원법 위반 등으로 형사 처벌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지면서 또 다른 문제가 불거졌다. 검찰 측에서는 “보복용 강등”이라는 거센 반발이 나오지만 법무부는 “검사장은 직급이 아닌 보직”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강등·징계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검사장의 집단행동을 비판하며 징계의 타당성을 주장했지만, 일선 검사들은 항소 포기 판단 경위에 대해 추가 설명을 요청한 것이 어떻게 항명이냐며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상황이다. 그동안 민주당 의원들이 앞다퉈 일선 검사장을 향해 “빨리 나가라”고 윽박지르던 것과 달리 최근 지도부는 숨 고르기에 돌입한 모양새다. 국민의힘이 계속해서 이정부와 대장동을 엮어 공격하는가 하면, 이 대통령의 UAE(아랍에미리트) 순방 성과가 묻힐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톤 조절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김병기 원내대표는 이 대통령이 순방을 떠난 17일부터 이틀간 공개 석상에서 검사 항명, 징계 등 관련 현안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 등 일부 최고위원이 내란전담재판부 도입을 주장했으나 당은 “지도부 차원의 의견은 아니”라며 거리를 뒀다. 정 법무부 장관 역시 지난 18일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검사장 징계 검토 관련 질문에 “어떤 것이 좋은 방법인지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건 국민을 위해 법무부나 검찰이 안정되는 것”이라며 신중한 자세를 택했다. 낮은 볼륨을 유지하는 지도부와 달리 의원 개개인의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다. 민주당 김현정 원내대변인은 한 라디오를 통해 정 법무부 장관의 ‘검찰조직 안정’ 발언에 대한 질문에 “아무 일 없었던 듯이 넘어가는 것이 조직의 안정을 위해서 도움이 되는 방법은 아니”라고 답했다. 이어 “정 법무부 장관은 법무부와 검찰 전체를 총괄하는 수장이기 때문에 고민이 있으신 것 같다”면서도 “다만 중요한 것은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현재 민주당이 내세우는 원칙은 항명 검사에 대한 징계로, 그 원칙을 지키는 것이 국민 여론이라는 발언으로 해석된다. 몰아붙이던 지도부 잠시 숨 고르기 이제는 각개전투…검사들도 ‘부글’ 민주당이 다수 석을 차지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에서는 ‘집단 항명 검사장 18인’ 전원을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항소 포기 결정에 반발하는 검사장 18명을 겨냥해 “헌정 질서의 근본인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과 검찰조직의 지휘 감독체계를 정면으로 무너뜨린 사건”이라고 비판하며 법적 조치에 나선 것이다. 지난 19일 법사위 여당 간사인 김용민 의원은 조국혁신당·무소속 의원과 함께 기자회견을 통해 이같이 밝히며 “검찰의 집단 항명은 정치적 집단행동으로 헌정 질서를 훼손하는 중대 범죄”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들의 행동은 단순한 의견 개진이 아니었으며 법이 명백히 금지한 공무의 집단행위, 즉 집단적 항명”이라고 규정했다. 이어 “피고발인 18명은 모두 각 검찰청을 대표하는 검사장급 고위 공무원으로서 정치적 중립성이 누구보다 강하게 요구되는 위치에 있다”며 “그런데 이들은 서로 합의해 공동성명을 작성하고 이를 동시에 내부망과 언론에 공개했다. 이는 다수가 결집해 실력으로 주장을 관철하려는 집단적 압력 행위”라고 말했다. 민주당의 압박이 거세지자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의 임기가 끝난 뒤 검사들이 반격에 나설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권력이 교체됨에 따라 검사의 태도 역시 손바닥 뒤집듯 바뀌고, 만일 보수 세력에게 정권이 넘어갈 경우 검사의 날이 다시 이 대통령을 향할 것이란 점에서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내년 10월 해체 예정인 검찰청이지만 막강한 권력을 지니던 시절의 관행을 버리지 못한다면 이들을 중심으로 정치 검찰의 모습을 한 또 다른 집단이 탄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대통령실은 “검사 인사권은 법무부에 있다”며 이번 사안에 직접 개입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논란의 중심으로부터 최대한 거리를 유지하며 대통령실이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았다는 점을 부각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 민주당 관계자 역시 “‘대통령실 외압’은 궁지에 몰린 국민의힘의 프레임”이라며 “만약 5년 뒤에 검찰이 반기를 들면 그때는 (이 대통령의 거취를) 국민 여론에 맡기면 된다. 지난 몇 년간 수십번의 압수수색과 조사가 이뤄졌고, 그 결과를 전부 국민이 지켜봤다”고 설명했다. 피바람 과도기 이 모든 과정을 놓고 최요한 정치 평론가는 “과도기”라고 설명했다. 최 평론가는 <일요시사>를 통해 “검찰이 하나의 권력으로 등장해 민주주의를 유린했다. 그 대상을 개혁하는 일은 굉장히 어려운 문제고, 이정부는 그걸 시스템으로 헤쳐나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개혁은 혁명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혁명은 싹을 자르면 되지만 그건 민주주의가 아니”라며 “검사 징계, 검찰개혁을 놓고 같은 진보라 하더라도 결이 다르지 않나. 다양한 논의와 의견을 두들겨 맞춰서 하나의 안을 만드는 게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개혁안은 보수도 일정 정도 동의를 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시스템 개혁이라는 건 단칼에 두부처럼 잘리는 게 아닐뿐더러 이정부가 끝날 때까지 (개혁을) 시도하는, 많은 시간이 걸리는 일일 수도 있다”고 부연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