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입에 달린 윤석열 운명

‘꿩 잡는 매’ 그냥 풀어줬겠냐

[일요시사 정치팀] 차철우 기자 = 보수 결집이 필요한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에게 고민거리가 하나 생겼다. 대선을 코앞에 둔 상황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어떤 메시지를 낼지 알 수 없는 탓이다. 자칫 박 전 대통령이 비판적 말 한마디를 뱉을 경우 윤 후보 행보에 빨간불이 켜질 가능성도 엿보인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는 최악의 악연이라고 부를 수 있다. 악연의 시작은 2013년부터다. 박근혜정부 출범 초기 윤 후보는 국정원 댓글 조작 사건 특별 수사팀장을 맡았다. 국정원 댓글 조작 사건은 이명박정부가 2012년 대선 승리를 목적으로 온라인에서 조직적으로 댓글 등을 조작한 사건이다. 

시한폭탄 
째깍째깍

당시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내부망을 통해 직원들에게 오랜 기간 정치에 개입했다는 내용도 있다. 댓글 조작 사건 내용 중에는 대통령선거 후보 중 박 전 대통령에게 긍정적 여론을 조성하고 야권 후보들을 비방한 사실 등이 있었다는 게 확인됐다.

해당 여파는 박 전 대통령에게 치명타로 돌아왔다. 댓글 조작이 사실로 드러나자 박 전 대통령이 후보직에서 사퇴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기도 한 바 있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은 결국 대통령에 당선됐고, 윤 후보는 줄곧 내리막길을 걸었다.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외압이 있었다고 폭로한 탓이다. 정권의 치명적인 역린을 건드린 죄였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윤 후보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말로 일각에서는 진짜 검사라고 칭송받기도 했다. 이후 2016년 국정 농단 사태가 발생하면서 화려하게 부활한다. 보복성 발령을 받았던 과거와 달리 박근혜정부에 칼을 댈 수 있는 위치에 올랐기 때문이다. 

박영수 특별검사팀 수사팀장으로 임명된 윤 후보는 박 전 대통령 측근들을 차례대로 구속시켰다. 국정 농단 수사를 통해 특검팀이 헌정 사상 최초로 대통령 탄핵의 초석을 깔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과정에서 윤 후보는 박 전 대통령에 대해 45년 구형을 요청하기도 했다. 문제는 윤 후보가 구속영장을 청구한 책임자는 아니지만 구속을 이끌어낸 특검의 수사팀장이었다는 점이다.

두 인물의 악연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가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일할 당시 박 전 대통령은 윤 후보에게 형집행정지를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허리 통증을 호소하던 박 전 대통령이 두 차례 형집행정지를 신청했으나 윤 후보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전문가들이 통증 등의 사유 집행정지가 될만한 사안이 아니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바뀐 주도권 메시지에 갈려
박 지지자들 여전한 적의

국정 농단 사태 이후 윤 후보는 말 그대로 승승장구한다. 문재인정부가 탄생하고 난 뒤 이례적으로 고검장 자리를 건너뛰고 검찰총장에 파격 임명됐다. 


이후 윤 후보는 문정부와 사사건건 대립각을 세우다가 검찰총장직을 사퇴하고 본격적으로 정치판에 뛰어들었다. 현재는 국민의힘 대선후보로서 자리해있다. 지지율 역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에 앞서는 양상을 띤다.

본인을 비롯해 처가까지 지속적으로 논란이 발생했지만 최근에는 대부분 수습돼 줄곧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다. 정치인으로서 안정감도 생겼다.

그러나 문 대통령이 박 전 대통령의 특별사면을 결정한 순간 윤 후보에게도 위기가 찾아왔다. 그가 수사 책임자였다는 점 때문이다.

사면 이후 박 전 대통령은 허리 디스크와 어깨 질환, 지병으로 바로 입원했다. 현재 그의 퇴원 날짜는 3월 초 이후로 전해진다. 지지자들 사이에선 박 전 대통령의 건강이 좋지 않은 이유가 윤 후보의 형집행정지 거절 때문이라는 시선이 강하다. 

거처는 대구 달서구에 마련됐다. 달서구는 박 전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과도 같은 곳이다. 이곳에서만 4번의 국회의원을 지낸 바 있다. 현장에는 트럭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등 입주를 위한 작업이 한창이다. 

당초 박 전 대통령의 퇴원은 2월 중순경으로 알려졌으나 현재는 건강상의 이유로 미뤄진 상태다. 곧 퇴원 시기가 온다는 점은 윤 후보에게 압박으로 다가올 수 있다. 

윤 후보가 박 전 대통령과의 관계 설정을 어떻게 하느냐는 문제가 발생해서다. 이미 윤 후보는 지난해 박 전 대통령에게 한차례 사과를 한 적 있다.

한마디에 
결정된다?

앞서 윤 후보는 “공직자로서 직분에 의한 일이었지만 정치적으로나 정서적으로는 대단히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사면 직후에도 윤 후보는 박 전 대통령의 사면을 환영한다는 입장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러나 이 같은 발언은 오히려 박 전 대통령 지지층의 공분을 샀다. 여전히 박 전 대통령 구속 책임론에서 벗어나지 못한 셈이다.  

박 전 대통령은 퇴원과 동시에 대국민 메시지를 낼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어떤 메시지를 내놓느냐에 따라 이번 대선에서 지대한 영향을 끼칠 것으로 전망된다. 여전히 그를 지지하는 세력이 크기 때문이다. 

거론되는 경우의 수는 크게 3가지로 압축된다. 우선 보수 야권의 통합을 강조하는 경우다. 이럴 경우 보수층과 야권이 결집효과가 발생해 윤 후보의 지지율이 한층 더 상승할 수 있다. 현 시점 최대 약점이 될 수 있는 구속 책임론에서도 벗어날 수 있는 기회라고 해석된다. 


앞선 상황에서 윤 후보는 책임론 지우기를 시도한 적도 있다. 과거 한 언론에서 박 전 대통령을 비공개 조사한 후 불구속 기소로 가닥을 잡았다고 언급한 것. 

해당 시도는 언론을 통해 보도되는 바람에 무산됐고, 수사 기간 연장도 불허돼 사건이 검찰로 넘어갔다고 설명했다는 게 윤 후보의 입장이다. 

하지만 해당 발언은 오히려 역풍을 불러 일으켰다. 국민의힘 내에서도 비판이 쏟아졌다. 박 전 대통령 장기 수감에 대한 책임을 검찰에 돌리며 친박(친 박근혜) 성향이 강한 국민의힘 내부 지지세를 확장하려는 의도라는 해석이 나와서다.

윤 후보는 여전히 TK(대구·경북)에서 과거 보수 후보들이 보여주던 지지율에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다. 대선이 임박했음에도 여전히 보수층이 윤 후보를 보수당 대선후보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다.

이를 의식한 듯 윤 후보는 최근 TK지역 집중공략에 나서기도 했다. 특히 구미에 있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생가를 방문해 박정희 전 대통령이 경제, 사회혁명을 이뤘다며 치켜세웠다. 이후 달서구까지 찾으며 광폭행보에 나섰다. 

해당 행보는 박 전 대통령의 퇴원이 임박하자 전통 보수층을 결집하기 위한 시도라고 풀이된다. 이런 점을 감안해 일각에선 박 전 대통령이 윤 후보 지원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지 않겠느냐는 목소리도 제기된다.


박 전 대통령이 윤 후보를 공식 지지할 경우, 국민의당 안철수 대선후보와의 단일화 역시 필요 없다는 시각이 강하다. 이 같은 시선은 단일화를 대체할 만한 이슈라고도 판단된다. 

그러나 이마저도 역풍으로 작용할 수 있다. 중도층의 이탈 가능성 때문이다. 여전히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중도층의 여론은 좋지 않다. 중도층이 이탈할 경우 윤 후보에게는 즉시 치명타다.

8년 묵은
질긴 악연

보수층만으로는 우위를 점하기는 한계가 있다. 박 전 대통령의 지지 선언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는 만큼 윤 후보는 신중을 기하는 모습이다. 

두 번째 경우는 박 전 대통령이 윤 후보에게 비판적인 메시지를 내는 경우다. 박 전 대통령의 저서 <그리움은 아무에게나 생기지 않습니다>에는 국정 농단 사태에 대한 억울한 심경을 담은 글이 등장한다. 

책은 공교롭게도 박 전 대통령 사면과 동시에 출판됐다. 사면 당시에는 윤 후보의 최측근으로 불렸던 권성동, 장제원 의원을 향해 ‘거짓말로 세상을 속인 인물’이라고 표현했을 만큼 강도 높은 발언이 나왔다.

두 인물은 선대본부에서 백의종군을 선언하며 떠났지만 측면에서 여전히 윤 후보를 지원하고 있다. 해당 발언은 윤 후보를 우회적으로 비판한 취지로 읽힌다. 윤 후보 역시 사면에 대해 원론적인 입장만 밝혔을 만큼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구체적 언급을 회피하기도 했다. 

우리공화당 조원진 대선후보는 박 전 대통령이 윤 후보를 향한 감정이 좋지 않다고 밝혔다. 조 후보에 따르면 우리공화당 당원은 50만명에 육박하며 박 전 대통령의 지지세 역시 여전하다. 이런 점들은 윤 후보에게 압박이 될 수밖에 없다. 

윤 후보가 박 전 대통령 구속에 책임이 있다는 여론이 확산될 경우 보수 진영 내 친박 세력에서 반윤(반 윤석열) 정서가 커지면서 보수의 분열이 불가피하다. 비판 메시지뿐만 아니라 ‘억울하다’는 입장만 밝혀도 윤 후보가 탄핵의 강에 휘말려 파란이 닥치는 것은 예견된 수순이다. 

윤 지지 선언 시 보수 결집
비판 시 분열 피할 수 없어

이런 탓에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긴장감이 감돈다. 대선판에서 박 전 대통령 탄핵이 이슈로 재부상하며 당내 갈등이 재차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 전 대통령이 메시지를 내지 않는 것도 염두해야 한다. 이 같은 상황에서도 윤 후보 입장에서는 분열이라는 최악을 면하겠지만 보수층 결집 효과를 내지는 못한다는 게 문제다. 

침묵 메시지가 영남권이 받아들이기에 윤 후보에 대한 거부로 느껴진다면 난처할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 박 전 대통령의 메시지 하나에 윤 후보의 운명이 달린 셈이다. 

다만 침묵을 지키는 이유는 박 전 대통령이 보수층을 분열시켰다는 책임론이 본인에게 가해질 경우를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전면에 나서지 않은 채 측면에서 윤 후보를 지원하겠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박 전 대통령의 메시지 발현에 대해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는 과거 “박 전 대통령의 첫 행보가 보수 분열을 막는 역할을 한다”며 “메시지에 주목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 바 있다. 그만큼 박 전 대통령이 내는 메시지가 영향력을 발휘할 수밖에 없다는 발언으로 읽힌다. 

대선판
변수로

정치권에서는 박 전 대통령이 정무적 판단을 내린 메시지를 낼 것으로 보고 있다. 윤 후보가 이 후보를 앞서고 있는 만큼 정권교체에 대한 메시지를 내는 게 유력하다는 관측이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박 전 대통령은 정무적 감각이 탁월하다”며 “자신은 음모의 희생자라고 생각하겠지만 원한을 정치적 메시지로 드러내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ckcjfdo@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돌고 돌아 다시 박빙 “빈틈 막아야 이긴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선후보와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의 단일화가 결렬되자 지지율 역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후보와 오차 내 접전을 벌일 정도로 좁혀졌다.

결렬 이후 이 후보가 앞서는 결과도 나온다.

이 같은 결과를 두고 일각에선 친문(친 문재인)의 결집 효과와 수도권 지지자들의 표심이 이 후보에게 쏠리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관측도 있다.

국민의힘은 당혹스러운 분위기에 휩싸였다.

빈틈을 이용해 이 후보가 통합 정부론을 띄우며 중도층 공략에 나섰기 때문이다.

대장동 수사의 칼끝이 윤 후보에게 향하는 경우도 염두해야 한다.

지난 선거관리위원회 주최 토론에서 이 후보는 대장동과 윤 후보의 연관성 의혹을 꺼내들었다.

또 최근 김만배씨가 윤 후보를 직접적으로 언급하면서 자칫 역풍이 불 수 있는 가능성도 생겼다.

이 후보를 비롯해 정의당 심상정(정의당)·안철수(국민의당) 후보도 윤 후보를 집중견제하는 모양새다. 

윤 후보가 이전에 비해 대처 방식 등 맷집을 키웠다는 평가가 나오지만 대선 직전까지 막아내야 할 공세는 여전하다.

이에 빈틈을 잘 틀어막아야 안정감을 꾀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치권에서도 아직까지 윤 후보가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보고 있다. 자만이 곧 실책으로 이어질 수 있는 까닭이다.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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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