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입에 달린 윤석열 운명

‘꿩 잡는 매’ 그냥 풀어줬겠냐

[일요시사 정치팀] 차철우 기자 = 보수 결집이 필요한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에게 고민거리가 하나 생겼다. 대선을 코앞에 둔 상황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어떤 메시지를 낼지 알 수 없는 탓이다. 자칫 박 전 대통령이 비판적 말 한마디를 뱉을 경우 윤 후보 행보에 빨간불이 켜질 가능성도 엿보인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는 최악의 악연이라고 부를 수 있다. 악연의 시작은 2013년부터다. 박근혜정부 출범 초기 윤 후보는 국정원 댓글 조작 사건 특별 수사팀장을 맡았다. 국정원 댓글 조작 사건은 이명박정부가 2012년 대선 승리를 목적으로 온라인에서 조직적으로 댓글 등을 조작한 사건이다. 

시한폭탄 
째깍째깍

당시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내부망을 통해 직원들에게 오랜 기간 정치에 개입했다는 내용도 있다. 댓글 조작 사건 내용 중에는 대통령선거 후보 중 박 전 대통령에게 긍정적 여론을 조성하고 야권 후보들을 비방한 사실 등이 있었다는 게 확인됐다.

해당 여파는 박 전 대통령에게 치명타로 돌아왔다. 댓글 조작이 사실로 드러나자 박 전 대통령이 후보직에서 사퇴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기도 한 바 있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은 결국 대통령에 당선됐고, 윤 후보는 줄곧 내리막길을 걸었다.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외압이 있었다고 폭로한 탓이다. 정권의 치명적인 역린을 건드린 죄였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윤 후보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말로 일각에서는 진짜 검사라고 칭송받기도 했다. 이후 2016년 국정 농단 사태가 발생하면서 화려하게 부활한다. 보복성 발령을 받았던 과거와 달리 박근혜정부에 칼을 댈 수 있는 위치에 올랐기 때문이다. 

박영수 특별검사팀 수사팀장으로 임명된 윤 후보는 박 전 대통령 측근들을 차례대로 구속시켰다. 국정 농단 수사를 통해 특검팀이 헌정 사상 최초로 대통령 탄핵의 초석을 깔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과정에서 윤 후보는 박 전 대통령에 대해 45년 구형을 요청하기도 했다. 문제는 윤 후보가 구속영장을 청구한 책임자는 아니지만 구속을 이끌어낸 특검의 수사팀장이었다는 점이다.

두 인물의 악연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가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일할 당시 박 전 대통령은 윤 후보에게 형집행정지를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허리 통증을 호소하던 박 전 대통령이 두 차례 형집행정지를 신청했으나 윤 후보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전문가들이 통증 등의 사유 집행정지가 될만한 사안이 아니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바뀐 주도권 메시지에 갈려
박 지지자들 여전한 적의

국정 농단 사태 이후 윤 후보는 말 그대로 승승장구한다. 문재인정부가 탄생하고 난 뒤 이례적으로 고검장 자리를 건너뛰고 검찰총장에 파격 임명됐다. 


이후 윤 후보는 문정부와 사사건건 대립각을 세우다가 검찰총장직을 사퇴하고 본격적으로 정치판에 뛰어들었다. 현재는 국민의힘 대선후보로서 자리해있다. 지지율 역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에 앞서는 양상을 띤다.

본인을 비롯해 처가까지 지속적으로 논란이 발생했지만 최근에는 대부분 수습돼 줄곧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다. 정치인으로서 안정감도 생겼다.

그러나 문 대통령이 박 전 대통령의 특별사면을 결정한 순간 윤 후보에게도 위기가 찾아왔다. 그가 수사 책임자였다는 점 때문이다.

사면 이후 박 전 대통령은 허리 디스크와 어깨 질환, 지병으로 바로 입원했다. 현재 그의 퇴원 날짜는 3월 초 이후로 전해진다. 지지자들 사이에선 박 전 대통령의 건강이 좋지 않은 이유가 윤 후보의 형집행정지 거절 때문이라는 시선이 강하다. 

거처는 대구 달서구에 마련됐다. 달서구는 박 전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과도 같은 곳이다. 이곳에서만 4번의 국회의원을 지낸 바 있다. 현장에는 트럭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등 입주를 위한 작업이 한창이다. 

당초 박 전 대통령의 퇴원은 2월 중순경으로 알려졌으나 현재는 건강상의 이유로 미뤄진 상태다. 곧 퇴원 시기가 온다는 점은 윤 후보에게 압박으로 다가올 수 있다. 

윤 후보가 박 전 대통령과의 관계 설정을 어떻게 하느냐는 문제가 발생해서다. 이미 윤 후보는 지난해 박 전 대통령에게 한차례 사과를 한 적 있다.

한마디에 
결정된다?

앞서 윤 후보는 “공직자로서 직분에 의한 일이었지만 정치적으로나 정서적으로는 대단히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사면 직후에도 윤 후보는 박 전 대통령의 사면을 환영한다는 입장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러나 이 같은 발언은 오히려 박 전 대통령 지지층의 공분을 샀다. 여전히 박 전 대통령 구속 책임론에서 벗어나지 못한 셈이다.  

박 전 대통령은 퇴원과 동시에 대국민 메시지를 낼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어떤 메시지를 내놓느냐에 따라 이번 대선에서 지대한 영향을 끼칠 것으로 전망된다. 여전히 그를 지지하는 세력이 크기 때문이다. 

거론되는 경우의 수는 크게 3가지로 압축된다. 우선 보수 야권의 통합을 강조하는 경우다. 이럴 경우 보수층과 야권이 결집효과가 발생해 윤 후보의 지지율이 한층 더 상승할 수 있다. 현 시점 최대 약점이 될 수 있는 구속 책임론에서도 벗어날 수 있는 기회라고 해석된다. 


앞선 상황에서 윤 후보는 책임론 지우기를 시도한 적도 있다. 과거 한 언론에서 박 전 대통령을 비공개 조사한 후 불구속 기소로 가닥을 잡았다고 언급한 것. 

해당 시도는 언론을 통해 보도되는 바람에 무산됐고, 수사 기간 연장도 불허돼 사건이 검찰로 넘어갔다고 설명했다는 게 윤 후보의 입장이다. 

하지만 해당 발언은 오히려 역풍을 불러 일으켰다. 국민의힘 내에서도 비판이 쏟아졌다. 박 전 대통령 장기 수감에 대한 책임을 검찰에 돌리며 친박(친 박근혜) 성향이 강한 국민의힘 내부 지지세를 확장하려는 의도라는 해석이 나와서다.

윤 후보는 여전히 TK(대구·경북)에서 과거 보수 후보들이 보여주던 지지율에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다. 대선이 임박했음에도 여전히 보수층이 윤 후보를 보수당 대선후보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다.

이를 의식한 듯 윤 후보는 최근 TK지역 집중공략에 나서기도 했다. 특히 구미에 있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생가를 방문해 박정희 전 대통령이 경제, 사회혁명을 이뤘다며 치켜세웠다. 이후 달서구까지 찾으며 광폭행보에 나섰다. 

해당 행보는 박 전 대통령의 퇴원이 임박하자 전통 보수층을 결집하기 위한 시도라고 풀이된다. 이런 점을 감안해 일각에선 박 전 대통령이 윤 후보 지원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지 않겠느냐는 목소리도 제기된다.


박 전 대통령이 윤 후보를 공식 지지할 경우, 국민의당 안철수 대선후보와의 단일화 역시 필요 없다는 시각이 강하다. 이 같은 시선은 단일화를 대체할 만한 이슈라고도 판단된다. 

그러나 이마저도 역풍으로 작용할 수 있다. 중도층의 이탈 가능성 때문이다. 여전히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중도층의 여론은 좋지 않다. 중도층이 이탈할 경우 윤 후보에게는 즉시 치명타다.

8년 묵은
질긴 악연

보수층만으로는 우위를 점하기는 한계가 있다. 박 전 대통령의 지지 선언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는 만큼 윤 후보는 신중을 기하는 모습이다. 

두 번째 경우는 박 전 대통령이 윤 후보에게 비판적인 메시지를 내는 경우다. 박 전 대통령의 저서 <그리움은 아무에게나 생기지 않습니다>에는 국정 농단 사태에 대한 억울한 심경을 담은 글이 등장한다. 

책은 공교롭게도 박 전 대통령 사면과 동시에 출판됐다. 사면 당시에는 윤 후보의 최측근으로 불렸던 권성동, 장제원 의원을 향해 ‘거짓말로 세상을 속인 인물’이라고 표현했을 만큼 강도 높은 발언이 나왔다.

두 인물은 선대본부에서 백의종군을 선언하며 떠났지만 측면에서 여전히 윤 후보를 지원하고 있다. 해당 발언은 윤 후보를 우회적으로 비판한 취지로 읽힌다. 윤 후보 역시 사면에 대해 원론적인 입장만 밝혔을 만큼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구체적 언급을 회피하기도 했다. 

우리공화당 조원진 대선후보는 박 전 대통령이 윤 후보를 향한 감정이 좋지 않다고 밝혔다. 조 후보에 따르면 우리공화당 당원은 50만명에 육박하며 박 전 대통령의 지지세 역시 여전하다. 이런 점들은 윤 후보에게 압박이 될 수밖에 없다. 

윤 후보가 박 전 대통령 구속에 책임이 있다는 여론이 확산될 경우 보수 진영 내 친박 세력에서 반윤(반 윤석열) 정서가 커지면서 보수의 분열이 불가피하다. 비판 메시지뿐만 아니라 ‘억울하다’는 입장만 밝혀도 윤 후보가 탄핵의 강에 휘말려 파란이 닥치는 것은 예견된 수순이다. 

윤 지지 선언 시 보수 결집
비판 시 분열 피할 수 없어

이런 탓에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긴장감이 감돈다. 대선판에서 박 전 대통령 탄핵이 이슈로 재부상하며 당내 갈등이 재차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 전 대통령이 메시지를 내지 않는 것도 염두해야 한다. 이 같은 상황에서도 윤 후보 입장에서는 분열이라는 최악을 면하겠지만 보수층 결집 효과를 내지는 못한다는 게 문제다. 

침묵 메시지가 영남권이 받아들이기에 윤 후보에 대한 거부로 느껴진다면 난처할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 박 전 대통령의 메시지 하나에 윤 후보의 운명이 달린 셈이다. 

다만 침묵을 지키는 이유는 박 전 대통령이 보수층을 분열시켰다는 책임론이 본인에게 가해질 경우를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전면에 나서지 않은 채 측면에서 윤 후보를 지원하겠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박 전 대통령의 메시지 발현에 대해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는 과거 “박 전 대통령의 첫 행보가 보수 분열을 막는 역할을 한다”며 “메시지에 주목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 바 있다. 그만큼 박 전 대통령이 내는 메시지가 영향력을 발휘할 수밖에 없다는 발언으로 읽힌다. 

대선판
변수로

정치권에서는 박 전 대통령이 정무적 판단을 내린 메시지를 낼 것으로 보고 있다. 윤 후보가 이 후보를 앞서고 있는 만큼 정권교체에 대한 메시지를 내는 게 유력하다는 관측이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박 전 대통령은 정무적 감각이 탁월하다”며 “자신은 음모의 희생자라고 생각하겠지만 원한을 정치적 메시지로 드러내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ckcjfdo@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돌고 돌아 다시 박빙 “빈틈 막아야 이긴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선후보와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의 단일화가 결렬되자 지지율 역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후보와 오차 내 접전을 벌일 정도로 좁혀졌다.

결렬 이후 이 후보가 앞서는 결과도 나온다.

이 같은 결과를 두고 일각에선 친문(친 문재인)의 결집 효과와 수도권 지지자들의 표심이 이 후보에게 쏠리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관측도 있다.

국민의힘은 당혹스러운 분위기에 휩싸였다.

빈틈을 이용해 이 후보가 통합 정부론을 띄우며 중도층 공략에 나섰기 때문이다.

대장동 수사의 칼끝이 윤 후보에게 향하는 경우도 염두해야 한다.

지난 선거관리위원회 주최 토론에서 이 후보는 대장동과 윤 후보의 연관성 의혹을 꺼내들었다.

또 최근 김만배씨가 윤 후보를 직접적으로 언급하면서 자칫 역풍이 불 수 있는 가능성도 생겼다.

이 후보를 비롯해 정의당 심상정(정의당)·안철수(국민의당) 후보도 윤 후보를 집중견제하는 모양새다. 

윤 후보가 이전에 비해 대처 방식 등 맷집을 키웠다는 평가가 나오지만 대선 직전까지 막아내야 할 공세는 여전하다.

이에 빈틈을 잘 틀어막아야 안정감을 꾀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치권에서도 아직까지 윤 후보가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보고 있다. 자만이 곧 실책으로 이어질 수 있는 까닭이다.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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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