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선라이즈F&T P2P 펀딩 사기 추적

피해자 넘치는데 가해자 없다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차철우 기자 = P2P 펀딩 상품에 투자했던 사람들이 3년 반이 지나도록 투자금을 돌려받지 못하고 있다. 돈을 빌린 채 손을 닦아버린 회사 주인에게는 무죄가 선고됐고, 어찌된 영문인지 피해자는 있어도 가해자를 짚어내기 힘든 형국이다.

‘온라인투자연계금융업(P2P)’은 금융기관을 거치지 않고 자금이 필요한 대출자와 높은 투자수익을 원하는 투자자를 온라인으로 연결시키는 금융 방식이다. 예금 금리가 연 2~3%를 넘기기 힘든 상황에서 연 10%대 이자를 내세우는 P2P는 매력적인 투자 상품으로 인식됐고, 지금껏 국내에서 10조원이 넘는 자금을 중개했다.

그러나 ‘부실’이라는 어두운 면도 존재했다. 부실 P2P업체가 속출했고, 상당수 투자자가 수익은커녕 원금조차 돌려받지 못하는 사례가 연이어 목격됐다. ‘펀딩하이대부(이하 펀딩하이)’에서 발생했던 연체 사건 역시 별반 다를 게 없었다.

매력적인 
투자 상품?

2017년 4월 첫 P2P 펀딩에 나선 펀딩하이는 동산 담보 펀딩 상품에 주력한 업체였다. 이 회사는 중국·동남아시아에서 농산물을 수입하는 업체에 돈을 빌려 주고, 투자자들에게 15% 이상 수익을 보장하는 펀딩 상품을 내세웠다.

펀딩하이는 단순 상품 판매에 그치지 않고, 표면상이나마 투자금 관리를 위한 안전장치 마련에도 힘을 쏟았다. 담보물에 대한 선하증권 및 보세창고 보관증을 양도받아 수입 상품이 승인 없이 보세창고에서 반출이 불가능하도록 시스템을 구축했다며 투자자들의 신뢰를 이끌어냈다.


이렇게 되자 펀딩하이가 내놓은 펀딩 상품에는 저위험·고효율이라는 인식이 퍼졌고, 펀딩하이는 가파른 성장세를 나타냈다. 펀딩하이가 2018년 5월 기준 누적 대출액 200억원, 누적상환액 100억원, 연체율 0%를 달성하게 된 배경이다.

하지만 여기까지였다. 2018년 6월20일을 기점으로 펀딩하이에서는 심각한 이상 징후가 나타났다. 펀딩하이를 대표하던 수입 농산물 펀딩 상품에 균열이 생겼다는 점에서 심각성은 한층 크게 다가왔다.

펀딩하이는 이날 ‘마늘 시즌2-17차(차주 승리산업)’ 펀딩 상품이 연체됐음을 알렸다. 만기 3개월짜리였던 해당 펀딩은 2018년 3월21일 모집 금액 3억원 규모로 개설됐고, 연수익율 18% 보장을 내세워 29초 만에 마감될 만큼 인기를 끌었던 상품이다.

이 상품의 연체는 시작에 불과했다. 상환을 앞두고 있던 ▲세척당근 시즌2-18차(모집금액 5억원, 차주 지엔티에이치) ▲김치 펀딩 2차(모집금액 1억2000만원, 차주 상아농산) ▲번데기 펀딩 1차(모집금액 1억8000만원, 차주 월량완코리아) 등에서도 차주가 투자금 상환에 실패할 거란 불안요소가 감지됐고, 우려는 머지않아 현실이 됐다.

공교롭게도 연이은 상환 지연은 차주 네 곳의 관련성이 부각되는 계기로 작용했다. 2018년 6월25일 펀딩하이 사무실에서 열린 간담회를 통해 세척당근 차주였던 지엔티에이치를 중심으로 승리산업(마늘), 상아농산(김치), 월량완코리아(번데기) 등이 긴밀하게 연결돼 있음이 드러났다. 특히 사업상 협력 관계로 분류되는 상아농산을 제외한 세 곳의 관계가 이목을 끌었다.

일단 지엔티에이치와 승리산업이 하나의 회사라는 점이 공식적으로 확인됐다. 두 회사에서 대표이사에 이름을 올린 윤모씨는 지엔티에이치와 승리산업 지분을 각각 60%, 100% 보유 중이었다.

월량완코리아는 김치 펀딩, 당근 펀딩, 마늘 펀딩의 수입 대행을 책임졌다는 사실이 공개됐다. 투자된 현금이 월량완코리아로 모이고, 나머지 3개 업체는 월량완코리아에서 수입 대행 수수료와 각종 비용을 뺀 만큼의 상품을 수입하게 되는 구조였다. 윤씨는 월량완코리아 사내이사에도 이름을 올린 상태였다.


확연한 명암
피해자 속출

첫 연체 이후 차주들은 조속한 투자금 변제를 약속했지만, 지금껏 투자금 상환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상환일 도래를 앞두고 있던 나머지 펀딩 상품 역시 별다른 해결 방안이 없는 건 마찬가지였다.

지금껏 네 곳의 업체가 연체한 금액은 ▲지엔티에이치 29억원 ▲승리산업 33억원 ▲상아농산 11억8000만원 ▲월량완코리아 1억8000만원 등 총 75억6000만원에 달한다. 이들 가운데 지엔티에이치와 승리산업은 폐업한 것으로 확인됐으며, 연체율 100%를 찍은 펀딩하이 역시 사실상 영업이 중단된 상태다.

연체 발생 이후 펀딩하이의 담보물 관리에서 큰 허점을 발견됐다. 펀딩하이는 상환이 지연되면 수입된 농산물을 담보 삼아 원금 회수를 할 수 있다고 자신했지만, 애초부터 차주들이 투자금을 농산물 수입에 활용하지 않았던 탓에 담보 확보가 불가능했고, 투자자들은 사실상 투자금을 변제 받을 길이 막혀 버렸다.

졸지에 증발한 75억 어디에
제3자처럼 보이는 공모자?

흥미로운 점은 크게 결부되지 않았던 것처럼 여겨졌던 '제3자'가 생각 이상으로 해당 사건에 얽혀 있었다는 사실이다. 2010년 설립과 함께 평택항 인근 황해경제자유구역에 자리 잡은 ‘선라이즈F&T(현 카리나F&T)’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선라이즈F&T는 고관세 농산물 수입 및 가공, 보세창고 운영 등을 영위하는 업체다. 이 회사는 ▲지엔티에이치 ▲승리산업 ▲상아농산 ▲월량완코리아 등이 연루된 펀딩에서, 물품을 인계받아 보세 창고에 저장하는 방식으로 거래에 참여하고 있었다.

펀딩 초창기부터 펀딩하이와 협력 관계였던 선라이즈F&T는 특정 시기를 거치며 지엔티에이치의 지배를 받게 됐다. 지엔티에이치는 펀딩에 참여하기 이전부터 선라이즈F&T 주식을 매입했고, 2017년 초 10%였던 지분율을 2018년 6월 기준 27.6%(16만1400주)로 끌어 올린 것으로 파악됐다.

해당 내용은 2018년 6월12일 펀딩하이가 지엔티에이치에 대한 신용 보강 차원에서 선라이즈F&T 건물 10개동을 담보로 20억원의 근저당권을 설정했다는 사실을 공개하는 과정에서 알려졌다. 당시 펀딩하이는 지엔티에이치가 선라이즈F&T 최대주주라고 언급했다.

돌이켜 보면 선라이즈F&T는 연체 사건이 발생하게 된 결정적 이유였다. 앞서 승리산업이 처음으로 연체한 직후 지엔티에이치와 승리산업에서 대표이사였던 윤씨는 선라이즈F&T 경영권 인수 목적으로 펀딩 자금을 일부 사용했고, 경영진의 판단 실수로 일시적인 자금 경색에 의한 연체가 발생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럼에도 펀딩하이는 지엔티에이치가 투자금을 연체할 시 활용하겠다고 밝힌 선라이즈F&T에 대한 근저당권을 알 수 없는 이유로 끝내 행사하지 않았다. 선라이즈F&T 부동산 등기부 확인 결과 펀딩하이 측이 근저당을 설정한 기록은 존재하지 않고, 선라이즈F&T 측 역시 근저당권 설정자로 이름을 올린 적 없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처음부터
공모관계?


지엔티에이치가 선라이즈F&T 최대주주로 자리매김했다는 건 외부 세력이 회사의 주인으로 급부상했음을 의미했다. 이 과정에서 경영권을 둘러싼 갈등이 부각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농산물 무역업 관계자는 “선라이즈F&T는 세관 공무원이 주축이 된 상태에서 무역업자들이 참여해 만들어졌다”며 “하지만 수년 전 몇몇 기존 구성원은 독립해 회사를 차렸고, 내부인들도 다수 바뀌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2018년 7월11일자로 선라이즈F&T 임원 명단에서는 변화가 목격됐다. 초창기부터 함께했던 사내이사와 아버지에 이어 선라이즈F&T에 몸담았던 대표이사는 퇴임했고, 새로운 인물들이 빈자리를 꿰찼다.

경영권 교체 과정에서 지엔티에이치 측 법률 자문은 A법무법인이 수행한 것으로 추측된다. A사 홈페이지에 명시된 선라이즈F&T 경영권 분쟁에 자문 역할을 수행했다는 기록이 이를 뒷받침한다. A사는 국민의힘 윤석열 대통령 후보가 검찰총장 시절 직무집행정지처분 명령을 받았을 때 이에 대한 정지 처분을 이끌어낸 국내 최고 권위의 법무법인이다.

이후 A사는 선라이즈F&T와 관련된 법정 공방에서 또 한 번 모습을 드러냈다. 2020년 1월 서울동부지방법원에서 진행된 ‘명의개서절차 이행’에 대한 민사재판(원고 펀딩하이, 피고 선라이즈F&T)에서 피고 측 변호인으로 참여해 재판부가 원고 청구 기각 판결을 내리는 데 일조했다.

지엔티에이치는 2018년 5월16일 투자금 미상환 시 보유 중인 선라이즈F&T 주식 16만1400주를 펀딩하이에 양도한다는 내용의 계약을 체결한 상태였다. 하지만 지엔티에이치는 연체 발생 넉 달 후인 2018년 10월 보유 중이던 선라이즈F&T 주식을 펀딩하이와 상의 없이 난릉현래보식품유한공사에 넘겼다.


그럼에도 재판부는 피고의 손을 들었다. 중국의 ‘난릉현래보식품유한공사’가 지엔티에이치의 이중 양도 행위에 가담했다고 보기 힘들다는 이유에서였다. 원고가 패소하면서 투자자들을 구제할 길은 사실상 막혀버렸다.

이상한
연결고리

연체 건으로 인해 배임 혐의로 기소됐던 윤씨마저 법적 처벌을 피했다. 해당 재판 역시 지엔티에이치가 난릉현래보식품유한공사에 양도한 선라이즈F&T 주식 16만1400주가 화두였다. 검찰은 주식을 넘기는 과정에서 윤씨가 8억700만원(1주당 5000원) 상당의 이익을 취했다고 봤지만,  2020년 10월 대전지방법원은 윤씨에게 무죄 판결을 내렸다. A사는 이 재판에서 윤씨의 변호인단에 이름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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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르고 보는 정청래 두 번째 카드

지르고 보는 정청래 두 번째 카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스스로 리더십 도마 위에 올라섰다. 1인1표제 재추진과 조국혁신당과의 합당이라는 두 개의 승부수를 동시에 던지면서다. 양쪽에서 후폭풍이 몰아치는 형국이다. ‘자기 정치’ VS ‘당원의 뜻’이라는 명분과 명분이 거칠게 붙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의 합당 논의가 여전히 뜨거운 감자다. 지난달 22일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혁신당을 향해 “지방선거를 따로 치를 이유가 없다”며 손을 내밀었지만, 민주당의 반발과 ‘흡수 합당은 싫다’는 혁신당의 주장이 부딪히면서 합당 테이블조차 마련되지 못하고 있다. 중구난방 가쁜 숨만 합당 논의 초반부터 혁신당 측의 반발이 이어졌다. 혁신당 서왕진 원내대표는 최고위원회의서 “본격적인 통합 논의가 시작되기 전에 오해가 형성되는 것에 강력한 유감을 표한다. 통합은 뻔한 몸집 불리기가 아니라 새로운 희망을 제시하는 가치 연합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앞서 민주당 조승래 사무총장이 합당과 관련해 “민주당이라는 큰 생명체 내에서 혁신당의 DNA도 잘 섞이게 될 것”이라고 밝히자 이를 ‘흡수 합당’이라고 받아들인 것에 대한 유감 표명으로 풀이된다. 혁신당이 합당 논의를 중단해야 한다는 의견도 전했다. 서 원내대표는 MBC 라디오를 통해 “이미 민주당은 162명 거대 정당이고 (여기에) 혁신당 12명이 합쳐지는 것은 단순한 몸집 불리기”라며 “그 이상 의미는 없다”고 평가했다. 이어 “합당 논의 자체를 본격적으로 할 필요가 없다. 제안 방식이나 준비된 내용 자체가 없고, 오히려 지금 준비하고 있는 지방선거에 상당히 악영향이 있으니 당장 (논의를) 중단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합당 논의라는 것 자체가 불가피한데 우리 원칙과 기준에 맞게, 질서 있게 논의는 진행할 필요는 있다는 긍정적 입장도 상당히 있었다”고 설명했다. 민주당에서도 합당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지도부에서 친명(친 이재명)계로 불리는 이언주·황명선·강득구 최고위원은 합당 발표 다음 날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제대로 된 통합을 위해서라도 정청래식 독단은 이제 끝나야 한다”며 정 대표를 겨냥하고 나섰다. 이들은 “이번 합당 제안에 앞서 정 대표와 이재명 대통령 간 교감이 있었던 것처럼 언론 보도가 됐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이어 “당무는 당의 책임이고, 당이 결정해야 한다. 마치 대통령이 관여하는 것처럼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방식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며 합당 논의에 이 대통령을 끌어들인 것에 이의를 제기했다. 이들은 기자회견 말미에 ▲정 대표의 공식 사과 ▲독선적 당 운영에 대한 재발 방지 대책 마련 ▲합당 제안을 언제, 누구와, 어디까지, 어떻게 논의하였는지 등을 밝힐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합당·1인1표제, 쏟아지는 안건 “뭐부터 해결해야…” 여당도 혼란 이런 상황서 정 대표의 대표 공약인 ‘1인1표제’가 최종 관문인 당 중앙위원회(이하 중앙위) 표결에 다시 부쳐지면서 논란이 재점화할 전망이다. 당 대표 및 최고위원 선출 시 대의원과 권리당원의 표 행사 가치 비율을 현행 20대 1 이하에서 1대 1로 변경하는 것을 골자로 지난해 중앙위원회에서 재적위원 과반수를 채우지 못해 부결됐다. 정 대표가 압도적 당심으로 당선된 만큼 정치권 일각에서는 1인1표제 통과로 인한 권력 재편을 견제해왔으나 두 달 만에 또다시 날 선 공방이 예고된 것이다. 지난달 19일 당무위원회는 해당 안건 상정을 중앙위서 결정한 뒤 같은 달 22~24일 권리당원 투표 절차를 마무리했다. 1인1표제 안건에 대한 투표 결과 ▲찬성 85.3%(31만5827명) ▲반대 14.7%(5만4295명)로 집계됐다. 당은 이달 2일 중앙위원회를 개최해 당헌·당규 개정에 대한 안건을 투표로 부칠 예정이며 중앙위원 온라인 투표는 3일까지 진행된다. 권리당원 투표 결과가 발표되자 정 대표는 “당원들의 압도적 다수의 뜻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며 1인1표제 굳히기에 나섰다. 정 대표는 “당원들의 뜻을 받들어 민주당을 더 좋은 민주주의 정당으로 만들겠다”며 “당의 모든 의사와 진로는 당원들이 가라는 대로 가고 당원들이 하라는 대로 하겠다”고 설명했다. 민주당 조승래 사무총장도 페이스북에 “참여율은 지난번 16.81%에 비해 15% 가까이 높아졌고, 찬성률은 비슷하다. 압도적인 찬성 여론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며 힘을 실었다. 1인1표제를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질 때마다 정 대표는 이 대통령을 방패처럼 소환했다. 정 대표는 “1인1표제는 당원이 주인 되는 정당, 당원주권정당, 당원주권시대 등 여러 가지 표현으로 이재명 당 대표 시절부터 3년여간 꾸준히 요구되고 논의했던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이리 튀고 저리 튀고 이어 “당원과 대의원 1대 20 미만을 결정할 때도 많은 반대와 저항이 있었다. 그 당시에도 많은 논의가 있었다”며 “1인1표제는 논의할 만큼 논의했고 영남권 등 전략 지역 원외위원장들께서도 그 당시 어느 정도 이해하고 양해했던 사안으로 저는 기억하고 있다”고 밝혔다. 1인1표제는 이 대통령이 추진했던 사안인 만큼 민주당이 이를 반대할 명분이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민주당과 당원들은 정 대표가 충분한 논의 없이 중요한 사안을 본인 페이스대로 밀어붙인다는 것에 불만을 제기했다. 지난해 27표 차이로 1인1표제가 처음 부결됐을 당시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과반에 가까운 상당수 최고위원이 우려를 표하고 숙의를 원했음에도 강행, 졸속 혹은 즉흥적으로 추진된 부분에 대해 유감”이라며 정 대표를 공개 지적하기도 했다. ‘자기 세력 강화’를 위해 합당 카드를 꺼내 들었다는 의심이 가라앉기도 전 1인1표제로 또다시 당을 흔들면서 반청(반 정청래) 정서가 퍼졌다. 이재명정부가 출범한 지 1년도 되지 않은 시점에서 여당이 흔들리자 정 대표의 진퇴를 물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합당 발표 이튿날 서울 여의도 민주당 당사 앞에선 당원들이 주도하는 합당 반대 집회가 열렸다. 이들은 ‘정청래 사퇴’ 등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합당 반대”를 외쳤다. 민주당 일각에도 정 대표의 ‘졸속 추진’ 행보가 이어진다면 사퇴 요구 가능성을 열어두겠다는 이들이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정 대표의 모든 행동이 ‘자기 정치’ 프레임으로 귀결되면서 승부수가 자충수가 됐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에 정 대표는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라는 도종환 시인의 ‘흔들리며 피는 꽃’ 전문을 자신의 SNS에 공유했다. 자신의 선택을 두고 당내 반발이 이어지자 우회적으로 심경을 밝힌 것으로 풀이된다. 이를 겨냥한 듯 강득구 최고위원 역시 자신의 SNS에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당원의 뜻은 독단으로 결코 꺾을 수 없나니, 흔들리는 것은 뿌리 없는 꽃뿐”이라며 저격 글을 게시했다. O? X? △도 필요 여의도 안팎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민주당은 혁신당과의 합당과 1인1표제 추진에 큰 이견이 없는 것으로 전해진다. 문제는 사전 논의 없이 진행된 점 등 정 대표의 독단적인 행동이 우려스럽다는 것이다. 민주당 김지호 대변인 역시 “당내 문제 제기는 합당 자체보다는 의견수렴 절차가 급작스럽게 진행된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정 대표가 당권을 쥐었을 당시 잡음은 예상됐으나, 일단 지르고 수습하는 예측 불허한 행동이 반복되면서 신뢰를 잃은 게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정 대표 취임 이후 ‘명청 갈등’ ‘당정 불협화음’ 등으로 민주당은 계속해서 흔들렸다. 최고위원들의 반발 역시 당에서도 정청래 체제에 대한 위험성에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됐다는 근거로 해석된다. 당 대표 임기 종료까지 반년이 남았지만 정 대표의 연임 의혹은 여전한 만큼 갈등 역시 쉽게 봉합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그동안 정 대표는 당원주권시대를 거듭 강조했지만 막상 중요한 사안은 독단으로 결정하면서 당 안팎으로 불만이 제기된 것으로 전해진다. “1인1표제로 당원 중심 원칙을 강화하자”면서 합당 등 중요한 사안을 대표 혼자 결정하는 건 모순이라는 설명이다. 혁신당과의 합당 제안에 당내 반발이 이어지자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당원들이 이 문제를 최종 결정할 것”이라며 진화에 나섰다. 박 수석대변인은 “(합당이라는) 당 대표의 제안은 정무적 판단과 그에 따른 정치적 결단의 영역”이라며 “그렇기에 앞으로 이런 문제에 대해 전 당원 토론, 투표 등 정해진 절차를 거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활발하게 당원의 의견을 묻는 그런 토론의 장을 마련하겠다”며 “당원주권시대에 걸맞게 당원의 뜻을 최종적으로 묻고, 최종 결정을 내리게 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말씀드린다”고 거듭 강조했다. 아울러 “당원이 합당하라면 하는 것이고 하지 말라고 하면 못 하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그러나 정 대표가 논의를 띄우고 당원에게 ‘예’ ‘아니오’로만 의견을 묻는 행위가 당원주권정당의 취지에 어긋난다는 비판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말로만 당원 주권 시대? “이제는 숙의 민주주의로” 이에 한 정치권 관계자는 “1인1표제의 경우 정 대표는 당원들의 찬성률이 압도적이었다고 말하지만 투표율은 저조했다. 이것이 무엇을 시사하는지 들여다 보지 못하고 숫자에만 매몰됐다”며 “이것을 당원주권정당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현재 소수의 당원이 당의 여론을 이끌고 있다. 일반 국민의 시선에서 ‘나머지 당원들은 무책임하게 방관하느냐’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까지 과정을 보면 당 대표가 논의를 띄우고 ‘자, 여기에 O, X로만 투표해!’ 하는 식이니 당과 당원 간의 간극이 생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1인1표제와 혁신당과의 합당 모두 찬성 여론이 높다. 그럼에도 정 대표를 향한 반발은 거칠다. 결국 민주당이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이 아니라 배의 키를 쥔 선장을 향한 불만이 표출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합당 방식에 반발한 민주당 최고위원들 역시 “정 대표의 선택적 당원주권”이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대통합을 가로막는 정 대표의 독선과 비민주성을 강력하게 문제를 제기한다”며 “선출된 최고위원들이 의견조차 낼 수 없는 구조, 대표 결정에 동의만 강요하는 구조는 민주적 당 운영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가고자 하는 방향은 같지만 목적지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서 파열음이 나는 만큼 결국 정 대표의 리더십이 관건이다. 3대 개혁의 빠른 추진, 혁신당과의 합당을 통한 지방선거 승리, 이정부의 성공 등 각종 요구가 쏟아지면서 이를 한데 어우르는 ‘통합형 당 대표’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정 대표의 자기 정치 프레임이 가장 큰 걸림돌이다. 그동안 자기 정치 의혹이 숱하게 제기된 만큼 조 사무총장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당내 가장 큰 경쟁자인 한동훈 전 대표를 내치려고 하는 것은 당권을 계속 강화하거나 유지하기 위한 그야말로 자기 정치 아닌가”라며 “반면 정 대표는 경쟁자가 될 수 있는 조국 대표와 함께하자고 하는 것인데 이걸 자기 정치라고 하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엄호에 나섰다. 민주당의 민주주의 체제에 경고등이 켜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모자이크 민주주의 평화 그룹 백왕순 대표는 <일요시사>를 통해 “숙의 민주주의의 부재”를 꼬집었다. 민주주의 제자리걸음 백 대표는 “1인 1표제가 맞냐 틀리냐 갑론을박이 이어지는데 당원주권시대에는 이 방법이 옳다. 다만 이득을 놓고 계파 간의 힘겨루기만 이어지니 문제가 풀리지 않는 것”이라며 “혁신당과의 합당도 마찬가지다. 통합하면 이기고 분열하면 진다. 그런데 이를 차기 당권 문제와 연결해 해석하니 복잡해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현재 대한민국은 숙의 민주주의가 아닌 절차 민주주의 수준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찬반이 극명한 사안에 대해 쉽게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며 “당원이 직접 토론하고 의견을 내는 오프라인 공간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불안한 민주당 혁신당도 ‘흔들’ 합당이라는 중대한 사안을 놓고 조국혁신당이 자당 의원들 입단속에 나섰다. 혁신당 황운하 의원이 “민주당과 합당할 경우 혁신당 조국 대표가 통합한 당의 공동대표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자 경고한 것과 더불어 입조심을 당부한 것이다. 혁신당은 조국 대표가 즉각 황 의원의 이날 발언에 경고했다고 밝혔다. 혁신당 대변인실은 입장문을 통해 “혁신당 최고위는 이 문제(황 의원 발언)에 대해 논의하고, 이 같은 논의를 전혀 한 바가 없으며 매우 부적절한 발언이라고 지적했다”며 “조 대표 역시 강한 경고를 했음을 알린다”고 밝혔다. 이어 “혁신당은 공식적 기구를 통해 합당과 관련된 논의를 해왔으며 위와 같은 논의는 전혀 언급된 바가 없음을 분명히 밝힌다. 조 대표를 비롯한 혁신당 구성원 누구도, 민주당과 합당과 관련된 실무 논의를 진행한 바가 없다”고 강조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