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면 나오는' 스포츠 예능 전성시대

웃음기 빼고 진지하게

[일요시사 취재 1팀] 남정운 기자 = 방송가에 불어닥친 스포츠 예능 돌풍이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스포츠만의 매력인 진정성을 예능프로그램에 녹여내 대중의 열띤 반응을 이끈다. 새롭고 다양한 포맷도 인기 비결 중 하나. 줄지 않는 인기에 새 프로그램 편성 소식도 잇따른다.

 스포츠 예능 유행 시대를 열었다는 JTBC <뭉쳐야 찬다>. 어느덧 방영 3주년이 목전이다. <뭉쳐야 찬다>를 필두로 한 스포츠 예능은 오랜 시간 상한가를 유지하고 있다. 한 프로그램이 성공하면 열 프로그램이 나오는 요즘이다. 

유행 장르

쿡방·트로트 예능 등이 유행하자 우후죽순 생겨난 동종 프로그램에 시청자들은 피로감을 호소해왔다. 스포츠 예능이 처음 유행할 때, 이들과 비슷한 전철을 밟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왔다. 실제로 수많은 스포츠 예능이 쏟아졌지만, 시청자들이 느끼는 피로감은 이전보다 확연히 줄어들었다.

스포츠 예능들의 생존은 나름 성공한 모습이다.

생존의 비결은 다양한 종목과 포맷에 있다. 프로그램별 차별화가 어려웠던 이전의 유행 장르들과는 다르게, 스포츠 예능은 종목만으로도 쉽게 차별화를 꾀할 수 있다. 축구·농구·탁구·골프·컬링 등 다양한 종목을 다루고 특유의 매력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시청자들이 싫증난 구성을 피해간다.


포맷도 다양하다. ‘연예인들이 구성한 아마추어 운동팀의 좌충우돌 성장 이야기’라는 전형적인 설정에 국한되지 않는다. 전·현직 운동선수들을 섭외해 뛰어난 경기력을 내세운 프로그램이나, 관찰 예능을 접목해 스포츠 가족의 일상을 담은 설정 등도 인기다.

이같이 스포츠 예능들은 ‘제로섬 게임’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들만의 독자적인 콘셉트와 영역을 구축하고 있다.<뭉쳐야 찬다> 외에도 <골 때리는 그녀들> <우리끼리 작전타임> <피는 못 속여> 등이 대표적인 흥행 프로그램으로 꼽힌다.

<뭉쳐야 찬다>는 각 종목의 전설적인 은퇴 선수들을 불러 모아 조기 축구팀을 꾸린다는 설정이다. 각자의 분야에서는 정점을 찍었지만, 축구에는 문외한인 출연진이 발전해나가는 과정을 보여주며 시청자들에게 웃음과 감동을 준다.

현재 방영 중인 시즌 2는 오디션으로 멤버를 선발했다. 이를 통해 더 높은 기량을 가진 출연진으로 팀을 구성하며 시즌 1과는 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SBS <골 때리는 그녀들>은 여자 연예인들이 축구 소모임을 구성해 서로 치열한 각축전을 펼치는 과정을 담았다. 지난해 2월 설 특집 파일럿 방송 때 10% 내외의 성공적인 시청률을 기록한 것에 힘입어 정규 편성됐다. 전형적인 포맷을 따르는 대신 여자 축구라는 종목 선택으로 차별화를 이뤄냈다.

KBS2 <우리끼리 작전타임>은 부모 자녀가 같은 길을 걷는 스포츠 가족의 삶을 조명한다. 여홍철-여서정 부녀(체조), 유남규-유예린 부녀(탁구), 이종범-이정후 부자(야구) 등이 출연한다. 든든한 지원자인 동시에 엄격한 선배가 돼주는 부모세대 이야기와 2세대로서 받는 주목과 부담감을 이겨내며 성장하는 자녀 세대의 이야기 등 그들만의 일상을 담았다.

채널A <피는 못 속여>는 걸출한 스포츠 선수들이 스포츠 스타를 꿈꾸는 자녀들을 교육하는 방식에 주목한다. 이동국(축구)-이재아(테니스) 부녀, 김병헌(야구)-김민주(테니스) 부녀, 남현희-공하이(펜싱) 모녀 등이 출연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스포츠 예능의 인기 비결로 가장 먼저 ‘진정성’을 꼽는다. 출연진들이 전문적인 멘토의 지도 아래 부단히 훈련하고, 발전한 모습을 선보이는 과정이 스포츠 예능의 제일 큰 매력이다. 아울러 순간순간 박진감이 넘치고 예측이 어렵다는 스포츠의 특성도 흥행 요소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스포츠는 ‘각본 없는 드라마’로 불릴 정도로 의외성이 강하고, 출연자들의 진정성을 느낄 수 있는 소재로 리얼리티가 잘 드러난다”며 “요즘 시청자들이 원하는 트렌드와 잘 맞아떨어진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스포츠 경기 관람·중계 시청이 어려워진 점이 스포츠 예능에 관한 관심을 높였다는 분석도 나온다.

억지 웃음 대신 각본 없는 드라마
다양한 종목·설정으로 콘셉트 차별화

정 평론가는 “코로나19로 스포츠 중계 자체가 많이 사라졌는데, 그 빈자리를 예능이 끌어가는 경향도 있다”며 “출연자들이 골프장에 나간 모습이나 치열하게 벌이는 축구 경기 등을 보면서 힐링하거나 활력을 받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결국 스포츠 예능의 흥행 공식은 ‘자연스러움’에 있다는 설명이다. 스포츠 본연의 재미를 살리고 출연진들의 희로애락을 잘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는 것.

실제로 스포츠의 의외성을 통제하고 기존의 예능 제작법으로 재미를 더하려다 화를 본 사례가 있다. 지난해 말 불거졌던 <골 때리는 그녀들> 조작 논란이다.

시청자들에 의해 제작진이 편집으로 경기 내용에 자의적 조작을 가한 것이 밝혀졌다. 스포츠를 소재로 한 예능에서 스포츠 정신을 져버렸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방송 중이던 시즌 2뿐만 아니라 시즌 1에서도 유사한 조작이 행해졌다는 정황이 연이어 드러났다.

제작진은 “지금까지의 경기 결과 및 최종 스코어는 방송된 내용과 다르지 않다고 하더라도, 일부 회차에서 편집 순서를 실제 시간 순서와 다르게 방송했다”며 “제작진의 안일함이 불러온 결과”라고 해명했다. 사태는 책임 프로듀서와 연출자를 교체하면서 일단락됐다.

현재 <골 때리는 그녀들>은 안정세를 되찾았다. 최근 수요일 예능 1위, 주간 예능 10위권 자리를 지켜내며 순항하고 있다. 조작 범위가 경기 승패 등 결과까지 뒤바꾼 것은 아니었다는 점, 출연진들의 진정성에는 문제가 없었다는 점 등이 주효했다. 

뒷수습은 잘 됐지만 <골 때리는 그녀들> 조작 논란은 스포츠 예능에 부자연스러운 조작이 들어가면 어떤 문제가 발생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준 ‘흑역사’로 남게 됐다.

한편 새 스포츠 예능 등판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이번 달을 전후해 <올 탁구나!> <국대는 국대다> <마녀체력 농구부> 등이 첫선을 보인다.


tvN의 <올 탁구나!>는 지난달 31일 처음 전파를 탔다. 연예계 숨은 탁구 고수들이 특훈과 도전을 통해 연예계 최강 탁구팀으로 거듭난다는 설정이다. 첫 방송에서는 강호동과 은지원이 각각 팀원을 모집하고자 탁구 오디션을 진행하는 내용이 담겼다.

전 야구선수 윤석민, 아이돌 그룹 위너 강승윤, 모델 주우재, 배우 박은석 등이 오디션에 지원했다.

MBN의 <국대는 국대다>는 국민적인 스포츠 스타를 최소 한 달 이상 훈련시킨 뒤 현역 국가대표와 대결하게 한다. 지난 5일 나온 첫 방송에서는 ‘탁구 전설’ 현정화가 출연했다. 현정화는 60일간의 훈련을 거쳐 세계랭킹 8위인 서효원 선수와 맞붙었다.

리얼리티

JTBC의 <마녀체력 농구부>는 오는 15일부터 방영된다. <뭉쳐야 찬다>와 <뭉쳐야 쏜다> 제작진들이 제작에 참여했다. 주전 선수로는 송은이·고수희·별·박선영·장도연·허니제이·옥자연·임수향 등 8명이 출연한다.


<jeongun15@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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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천지 삼킨 장동혁 속내

신천지 삼킨 장동혁 속내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새해 벽두부터 당명 변경·단식투쟁을 정치 문법으로 제시했다. 삼김 시대 정치 문법을 동원하는 장 대표에겐 ‘상상력 부재’란 지적을 할 수도 있다. 김종인·마키아벨리·아우구스투스가 장 대표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 국민의힘이 지난 12일 당명 개정 작업에 착수했다. 지난 2020년 9월 당명을 미래통합당에서 국민의힘으로 바꾼 후 약 5년5개월여 만이다. 이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공천 헌금·통일교 특검 수용 촉구’를 명분으로 지난 15일부터 22일까지 8일 동안 단식을 했다. ‘택갈이’ 당명 개정 외국과 달리 한국 정당사에선 유난히 당명 개정이 잦았다. 당명을 바꾸는 주된 원인은 선거 패배 수습과 당내 쇄신이다. 당의 체질은 바꾸지 않은 채 명칭만 바꾸기 때문에 당명 개정은 ‘택갈이’와 비슷한 측면이 있다. 새누리당에서 자유한국당으로 당명을 바꿨다고 지난 2017년 제19대 대선에서 패배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자유한국당에서 미래통합당으로 당명을 바꿨다고 지난 2020년 제21대 총선에서 패배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미래통합당에서 국민의힘으로 당명을 바꾼 후 지난 2022년 제20대 대선과 제8회 지방선거에서 이기긴 했지만, 문재인정부에 대한 비판적인 유권자들의 호응과 국민의힘 나름의 자체 개선에 대한 주목이 더 큰 역할을 했다. 장 대표가 단식투쟁이란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했던 것에 대해서도 여러 의문이 있다. 대통령실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대응하지 않았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는 지난 20일 원내대책회의에서 “신임 홍익표 대통령실 정무수석이 제1 야당 대표의 목숨을 건 단식투쟁을 심각하게 인식하길 바란다”며 “홍 수석을 단식농성장에서 만날 수 있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강명구 의원도 같은 날 채널A 라디오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인간적 도리로 장 대표를 걱정·위로·격려하는 게 맞다”며 “이재명 대통령도 홍 수석이라도 보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어 “조정식 대통령 정무특보도 한번 찾아오지 않았고, 위로의 말을 건네지 않았다”며 “우리 정치 역사에 없었던 일인데,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직접 와서 야당 대표 얘기를 듣고 이재명 대통령에게 전달해 달라”고 요구했다. 통상의 정치 문법에 따르면, 대통령실·여당은 야당 대표의 극한 투쟁을 자제시키기 위해 먼저 움직인다. 하지만 장 대표의 단식투쟁에 대해선 단식 투쟁자와 그 주변에서 “제발 관심을 가져달라”고 호소했다. 당명 변경·단식 투쟁은 20세기 대한민국 정치, 특히 삼김 시대에 강한 인상을 남겼다. 당시엔 당명 변경이 1인자 교체·정계 개편 등 강력한 정치적 파문을 거친 후 이를 상징적으로 정리하는 수단으로 활용됐다. 단식투쟁은 군사독재 시절 야당 지도자의 최후 항거 수단이었다. 세월이 흘러 수단이 남용되면서 그 수단이 지니는 정치적 의미가 축소됐다. 이젠 야당 대표가 단식을 하든 말든 대통령실·여당이 무시하는 시대다. 장 대표가 삼김 시대를 상징하는 정치 문법인 당명 변경·단식투쟁을 선택한 것을 놓고, 일각에선 “장 대표의 정치 문법이 너무 정직한 것 아니냐”고 지적한다. 아울러 단식 중단 결정에 대해서도 “중단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당명 변경·단식투쟁…장의 ‘정직한 정치’ 법관 출신·위기 없는 안락함…절박함 없어 통일교·신천지의 정교유착 비리 의혹을 수사하는 검·경 합동수사본부는 장 대표의 단식 하루 전인 지난 21일 신천지 전직 강사로부터 “지난 2021년 6~7월경 국민의힘 대선후보 경선을 앞두고 지역 지파장으로부터 국민의힘 가입 지시를 받아 신도들을 가입시켰다”는 진술을 받았다. 그는 “윤석열 전 대통령을 돕기 위해 국민의힘에 가입해야 한다는 기류가 팽배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민주당은 “통일교 금품수수 의혹을 다루는 특검법에 신천지 관련 의혹도 포함해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장 대표의 단식투쟁 출구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만들어줬다. 박 전 대통령은 지난 22일 국회를 전격 방문해 장 대표의 단식을 만류했고, 장 대표는 이를 수용해 단식을 중단한 후 병원으로 이송됐다. 장 대표는 “좀 더 길고 큰 싸움을 위해서”라는 단식 중단 명분을 제시했다. 아울러 국민의힘 윤리위원회는 지난 13일 장 대표와 사이가 좋지 않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에 대해 당원 게시판 의혹과 관련해 제명을 결정했다. 장 대표는 “강경 보수 성향 유튜버 전한길·고성국씨와 밀착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전씨는 지난해 7월에, 고씨도 지난 6일 국민의힘에 입당했다. 일각에선 “장 대표가 강경 보수 세력과의 밀착을 토대로 국민의힘 안에 ‘장동혁계’를 만들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한다. 장 대표는 광주지법 부장판사를 지낸 법관 출신이다. 여의도엔 수많은 법관 출신 정치인이 있었다. 법관은 법전·판례란 과거의 흔적을 토대로 현재를 심판한다. 하지만 정치는 다르다. 현재를 토대로 과거를 참고하면서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법관도 새로운 판례를 개척하고 싶은 욕심이 있을 땐 미래를 의식하지만, 판단의 중심은 현재에 맞춰져 있다. 자유선진당 이회창 전 대표는 지난 2002년 대선 출마 당시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로부터 “북한이 서해 5도에서 무력 도발하면, 즉시 육법전서를 가져오라고 할 사람”이란 비난을 들었다. 유권자의 감성을 자극하는 각종 선거 기법을 활용해 많은 고비를 넘는 선거를 치른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이 전 대표가 패배했던 이유가 함축됐던 평가라고 할 수 있다. 이는 판사 출신 정치인에게 한정된 문제라고 보기 어렵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이재명 대통령·개혁신당 이준석 대표·한 전 대표 등 정적들에게 검사 재직 시절 관성으로 범죄자를 바라보듯 대응하다가 정치적으로 몰락했다. 한 전 대표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으로서 지난 2024년 총선을 지휘하면서 이 대통령과 조국혁신당 조국 전 대표를 범죄자로 규정한 ‘이조심판론’을 과도하게 내세우다가 패배했다. 현재의 문제점을 토대로 미래 비전을 제시해야 하는 정치·선거 영역에서 과도하게 직업적 관성을 내세우다가 정치적으로 패배한 사례들이다. 장 대표는 지난 2020년 제21대 총선에 출마해 정계에 입문한 이후 큰 정치적 위기를 겪지 않았다. 그가 정치에 입문한 후 겪은 좌절은 제21대 총선 패배와 대전시장 경선 패배가 있다. 물론 이 같은 사례는 다른 정치인도 흔히 겪는 일이기 때문에 두드러지는 좌절이라고 평가하긴 어렵다. 얻은 것 잃은 것 장 대표는 지난 2022년 재보궐선거에서 당선돼 국회의원이 됐다. 이어 지난 2024년 총선에서 재선에 성공한 후 아직 2년이 지나지 않았다. 형식적으로는 재선 의원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초선 의원 임기가 아직 끝나지 않을 만큼의 의정활동을 했다. 그런데 그는 현재 제1야당 대표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지난 1983년 단식은 신군부 군사정권과 맞설 정상적 정치 수단이 없었던 상황에서 이뤄졌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큰 의미가 있다. 자신의 단식을 만류하던 민주정의당 권익현 당시 사무총장이 외국행을 제안하자, 김 전 대통령은 “국민이 고생하는데 내가 어떻게 외국에 나가느냐. 나를 외국으로 보내고 싶으면, 시체로 만들어 보내면 된다”고 응수했다. 김 전 대통령은 당시 가택연금 중이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내란음모 사건 때문에 수감생활을 하다가 형집행정지로 석방돼 미국으로 떠나 있었다. 김종필 전 총리는 권력형 부정 축재자로 몰려 정계에서 축출당한 후 은둔 생활을 하고 있었다. 대통령실·여당이 장 대표의 단식을 무시하는 이유는 이 같은 큰 그림과 의지를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일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사람의 상상력은 절박한 위기에서 나온다. 판사 출신으로서 갖는 관성과 위기를 겪은 적 없는 정치 행보가 상상력 부재로 이어져 당명 변경·단식투쟁 등 삼김 시대 정치 문법을 대여 투쟁 방법으로 제시하는 현 상황으로 이어졌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국민의힘 김종인 전 총괄선대위원장은 지난 2022년 1월 국민의힘 윤석열 당시 대선후보를 일컬어 “내가 ‘총괄선대위원장이 아니라 비서실장 노릇을 할 테니, 윤 후보도 태도를 바꿔서 선대위가 알려준대로 연기 좀 해달라’고 부탁했다”고 말했다. 이어 “대선후보는 선대위에서 해주는대로 연기만 잘할 것 같으면 선거에서 이길 수 있다고 늘 얘기한다”며 “대선후보는 자신의 의견이 국민 정서에 맞지 않으면 절대로 말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당시 윤 전 대통령의 지지율은 각종 실언 논란 때문에 하락하고 있었다. 김 전 위원장의 당시 발언은 “군주는 모든 미덕을 갖출 필요는 없지만, 갖춘 것처럼 보여야 한다”는 니콜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내용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국가원수는 국가의 상징이다. 국가원수가 되려는 자의 발언·행보엔 큰 정치적 의미가 부여된다. 뉴스에 나오는 대통령의 이미지는 강하고 믿음직해야 하지만, 실제로 강하고 믿음직할 필요는 없다. 국민의 눈에 강하고 믿음직하게 보이는 것이 권력의 본질이다. 아울러 마키아벨리는 “군주는 짐승의 방법을 잘 이용할 줄 알아야 하는데, 그중에서도 여우와 사자를 본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마키아벨리는 이 같은 전략·도구를 ‘가상’이라고 표현했다. 윤 전 대통령은 대외적으로 투박한 사람으로 알려졌다. 김 전 위원장은 윤 전 대통령에게 여우의 교활한 연기를 통한 가상 구축을 주문한 것이었다. 정치도 일종의 상품이라서 포장지가 필요하다. 마키아벨리가 말한 ‘여우의 교활한 연기’는 대중에게 교묘하게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한 정치적 포장지를 의미한다. 마키아벨리는 “사람은 대체로 손으로 만져보는 것보다 눈으로 보는 것에 의해 판단한다”고 주장했다. 김 전 위원장은 이를 ‘연기’라는 두 글자로 축약한 것이다. 큰 그림과 의지 부재 마키아벨리가 말한 대중 기만·속임수의 극치를 보여준 사람은 로마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였다. 아우구스투스는 40년 동안 황제로서 로마를 통치했다. 그런데 아우구스투스는 단 한 번도 스스로를 황제라고 칭하지 않았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그나이우스 폼페이우스와의 내전에서 승리한 후 종신독재 관직에 취임하면서 로마군의 최고사령관을 겸직했다. 이후 로마에선 카이사르 동상에 왕관이 씌워지거나, 일부 카이사르 지지자가 카이사르를 향해 “왕”이라고 부르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후 마르쿠스 안토니우스가 카이사르에게 왕관을 씌우자, 카이사르가 이를 벗고 안토니우스에게 돌려주는 이벤트도 있었다. 공화정 사수를 주장하는 보수파는 이를 보고 크게 불안해했다. 결국 마르쿠스 브루투스 등 보수파 일부는 원로원 회의에 참석한 카이사르를 향해 무기를 들고 덤볐고, 카이사르는 과다 출혈로 사망했다. 카이사르의 조카손자 아우구스투스는 카이사르의 양자 자격으로 정계에 입문해 안토니우스와의 내전을 거쳐 로마의 통치자가 됐다. 그는 대중을 속여 양아버지의 전철 답습을 피하면서 로마를 통치해야 했다. 아우구스투스가 창조한 속임수는 원수정이었다. 그는 내전 승리 직후 “권력을 원로원과 로마 시민에게 반납한다”면서 자신의 통치 체제를 “회복된 공화정”이라고 명명했다. 이어 ▲제1시민·아우구스투스(존엄한 자)란 존칭이 갖는 권위 ▲최고사령관 직위 ▲근위대 지휘권 ▲호민관 특권 등을 이용해 로마를 통치했다. 제1시민은 공화정 말기 로마 원로원에서 최고 원로를 명예롭게 예우하기 위해 사용된 호칭이었다. 카르타고 전쟁에서 한니발 바르카스를 물리친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에게도 부여됐던 호칭이었다. 최고사령관 직위를 의미하는 ‘임페라토르’는 승전한 장군에게 병사들이 경의를 표하던 호칭이었다. 아우구스투스는 이를 군권 1인자란 의미로 활용해 군권을 독점했다. 이탈리아 반도 내에 주둔하는 군대는 근위대가 유일했기 때문에 근위대 지휘권은 매우 중요했다. 아우구스투스는 근위대 지휘권을 통해 근위대장 임명권을 행사하면서 근위대를 통제했다. 김종인 ‘연기’ 발언 속 마키아벨리 철학 통찰해야 정치적으로는 호민권 특권을 요긴하게 활용했다. 아우구스투스는 귀족 가문 출신이라서 평민 출신이 독점하는 관직 호민관에 오를 수 없었다. 이 때문에 호민관의 권한만 가져왔다. 그가 가져간 호민관 특권은 ▲신체 불가침권 ▲입법권 ▲원로원 결의 거부권 등을 의미한다. 제1시민이란 존경을 받는 군권 1인자가 호민관 특권을 가져가면 원로원보다 우월한 지위가 확고해진다. 아우구스투스는 ‘황제 아닌 황제’로 40년 넘게 로마를 통치했다. 이런 교묘한 정치 행위는 우리 정치사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정치적 이념·행적이 전혀 다른 김종필 전 총리와 DJP 연대를 구축한 후 대통령에 당선돼 의원내각제식 연립정권을 구축했다. 비교적 진보 성향을 드러내는 소수 야당 후보로서, 거대 여당에서 분리돼 독자노선을 걷는 강경 보수 야당과 연대해 선거에서 신선한 충격을 준 후 연립정권을 구축한 독특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윤 전 대통령 당선 과정에선 세대포위론이란 정치공학 이론이 등장했다. “2030세대 여성·4050세대 다수가 지지하는 민주당을 이기기 위해선 민주당에 적대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대 이상 노년 세대가 연합해 포위해야 한다”는 취지의 이론이었다. 이는 새로운 국민의힘 지지층을 형성하는 데 이바지했고, 젊은 보수 정치인이 다수 등장하는 긍정적인 효과를 안겨줬다. 하지만 민주당과 지지자들로부터 “세대·남녀 갈라치기를 한다”는 비판을 들었다. 아울러 윤 전 대통령과 이 대표의 갈등 끝에 새로 수혈된 2030세대 신진 정치인과 지지층 상당수는 이 대표를 따라 개혁신당으로 둥지를 옮겼다. 이는 “인간은 어버이의 죽음은 쉽게 잊어도, 재산의 손실은 좀처럼 잊지 못한다”는 마키아벨리의 주장이 현실 정치에 구현된 사례라고 평가할 수 있다. 윤 전 대통령 당선 과정에선 “이 대통령보다 중도층 지지를 더 많이 얻었다”는 평가가 크게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도층은 정치 변화의 의지가 담긴 신선한 정치 문법 제시를 선호한다. 정치 문법은 결국 정치인이 대중 앞에서 선보이는 연기에 달렸다. 아우구스투스는 안토니우스 견제를 원했던 로마 최고의 논객·정치인 키케로를 상대로 예의 바른 청년 행세를 하면서 속여 그의 지지를 이끌어냈다. 키케로는 안토니우스를 국가의 적으로 규정한 연설을 했다. 아우구스투스는 자신의 정치 기반이 안정된 후엔 “키케로를 숙청해야 한다”는 안토니우스의 요구를 묵인했다. 아우구스투스는 당시 20세였다. 카이사르 사후 양자로서 정계에 등장한 후 불과 2년 만에 구사한 속임수였다. 아우구스투스 59년 교훈은? 안토니우스를 몰아낸 이후엔 40년 동안 원수정을 통해 로마인을 교묘하게 속였다. 아우구스투스는 만 77세로 사망하면서 “내가 인생이란 연극에서 내 배역을 충분히 잘 연기했다면, 기쁜 목소리와 박수로 날 보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당명 변경·단식 투쟁이란 삼김 시대 방식 정치 문법을 구사하는 장 대표는 그의 배우 인생 59년으로부터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