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특집> '청량리 명물' 청운이용원 부부가 사는 법

“행복이 뭐 별건가요?”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행복은 어디에서 와서 또 어디로 가는가. 세밑 바람에 움츠렸던 몸이 따뜻해지고 안경에 하얀 김이 서렸다. 뿌옇던 시야가 환해지고 나니 그 앞에 행복한 얼굴이 있었다. “행복이 뭐 별 건가요? 이렇게 사는 게 행복이지!”

길가에 늘어선 가게 사이로 빨강·파랑·하양 3가지 색의 이용원 마크가 눈에 띄었다. 가게 앞에는 하얗게 타버린 연탄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염색 전문, 남성 컷트 전문, 신식 유행머리·투불머리’ 등 전문분야(?)를 붙여 놓은 종이에 조그맣게 ‘가위손’이라는 말도 보였다.

50년 경력

기온이 영하로 떨어져 추웠던 지난달 27일,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동에 자리한 청운이용원을 찾았다. 이종복·박선옥 부부는 이 자리에서만 14년, 바로 옆 골목에서 14년 등 청량리에서만 30년 가까이 이용원을 운영했다. 이종복씨는 이발사, 박선옥씨는 면도사다. 

37년 부부의 손발은 한 사람인 것처럼 잘 맞았다. 남편인 이씨가 이발을 마치면 아내 박씨가 면도해주고 손님의 머리를 감겨준다. 그 다음 이씨가 다시 머리를 다듬어 마무리한다. 말이 오가지 않아도 이미 서로의 동선을 다 알고 있는 부부의 호흡에 손님 역시 말없이 머리를 맡겼다. 손이 비는 사람이 바닥의 머리카락을 쓸었다.

먼저 끝난 손님은 박씨에게 커피를 청해 마셨다. 부부가 매일 쟁여두는 요구르트를 찾는 손님도 있었다. 손님은 머리가 마음에 드느냐는 기자의 물음에 무뚝뚝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미 10년 이상 이씨에게 머리를 맡긴 단골이었다.

옆자리에 앉아 있던 손님은 ‘산’ 이야기를 꺼냈다. 이 손님 역시 10년 넘게 이용원을 찾은 단골. 

한자리 30년 장사
손님 대부분 단골

이씨는 “손님의 80~90%가 단골손님”이라고 말했다. 한 달에 한 번, 두 달에 한 번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단골손님은 이용원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별다른 말이 필요 없다고 했다. 스타일에 변화를 주고 싶을 때만 이야기할 뿐, 머리에 대해서는 이씨에게 맡겨 버리는 것.

대신 그들은 시시콜콜한 일상,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이씨가 서울 청량리에 이용원을 차릴 때부터 지금까지 30여년간 찾아온 손님도 있다. 이제 아흔살이 다 된 한 노인은 한 달에 한 번 충남 천안에서 청량리까지 지하철을 타고 온다고 했다. 최근에는 건강이 악화되면서 이용원을 찾는 주기가 늘었지만 얼마 전에는 택시를 타고 찾아왔다. 

이씨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오전 6시40분이면 이용원 문을 열었다. 매주 수요일 딱 하루만 쉰다. 설·추석에는 명절 당일에만 문을 닫았다. 하루에 손님이 3~4명 올 때도, 10여명이 올 때도 이씨의 출근 시간은 같았다.

가게 안에 부부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은 없었다. 30년 세월이 이용원 곳곳에 묻어 있었다. 정수기를 고정시켜 놓은 앵글, 탁자 등은 모두 재료만 사서 이씨가 직접 만든 것이다. 이씨는 “가게에 외부 사람이 와서 일한 적이 없다. 전부 다 내 손으로 한 것”이라고 전했다. 

부부는 이용원을 운영하면서 3남매를 길러냈다. 다섯살 터울의 3남매는 부모 속을 썩이는 일없이 장성했다. 박씨는 “이 일이 힘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이라며 “할머니가 아이들을 잘 돌봐주시고, 또 큰딸이 남동생들을 잘 챙겼다”고 뿌듯해했다. 

1972년 선배의 권유로 이발 일을 배우기 시작한 이씨는 3년5개월 만에 정식 기술자가 됐다. 아내 박씨는 1986년 이씨와 결혼한 이후 1년여 동안 면도일을 배웠다고 했다. 이씨는 50년, 박씨는 30년이 넘는 경력을 갖고 있는 셈이다. 

젊은 시절 일종의 파견직 개념의 ‘날일’을 해가면서 기술을 연마했다. 이용원 등에서 일손을 요청하면 그곳으로 가서 하루 일을 하고 일당을 받는 식이다. 이씨는 그때 선배를 잘 만나 기술이 크게 늘었다고 했다. 

그는 “한 군데에서만 일하다보면 기술 습득이 힘들다. 다 경험이기 때문”이라며 “다양한 곳에서 일하면서 기술을 배웠고, 그걸 나만의 기술로 만드는 과정을 거쳤다”고 설명했다. 이후 경기도, 강원도 등을 거쳐 서울로 왔다.

천안서 택시 타고 오는 손님도
쉬는 날엔 함께 산으로 포구로 

부부는 어느 손님에게든 깔끔하게, 꼼꼼하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거울을 통해 손님의 표정을 살피면서 처음 온 손님은 단골손님이 될 수 있게, 단골손님은 실망하지 않도록 하는 게 그들의 과제다. 특히 이씨는 “손님은 다 안다. 이발사가 대충 하는지, 성심성의껏 하는지. 거울을 통해 다 보이기 때문에 어설프게 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발 기술에 대한 이씨의 자부심은 대단했다. 머리 스타일에 대해 물을 때마다 여러 종류의 가위를 보여주면서 설명했다. ‘기계를 대서 돌린다’ ‘카트 가위’ 등의 전문(?)용어를 말하면서 머리를 시원하게, 또 깔끔하게 깎고 다듬는 방법을 말하는 이씨는 오랜 시간 기술 하나로 생계를 이어온 ‘장인’이었다.

부부는 오래도록 반복한 일상에 온전히 녹아든 듯했다. 종일 가게에 함께 있다 보니 다툼이 있을법한데, 그마저도 드문 일이라고 했다. 박씨는 “다툼이 오래가면 일을 할 수 없다. 한 손님을 둘이 함께 챙겨야 하는데 다투면 일이 진행되질 않는다. 그렇다보니 다투더라도 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잘 지낸다”고 웃었다. 

1주일에 하루 쉬는 날인 수요일에도 부부는 바쁘다. 함께 산에 가거나 인천 소래포구에서 회에 소주 한 잔을 곁들인다. 이씨는 “1년에 3~4번쯤 지하철을 타고 인천으로 가서 회를 먹고 바람도 쐬다 온다. 산에 갈 때는 컵라면을 싸들고 가서 막걸리 한 잔에 곁들여 먹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행복이 별 건가 싶다. 나와 애 엄마가 이 일을 해서 돈을 벌고, 그 돈을 또 우리에게 쓰면서 산다. 빚도 없어서 누구한테 아쉬운 소리 할 것도 싫은 소리 들을 일도 없다. 이게 행복이지, 뭐”라고 전했다.  

가위손

딱 한 가지, 이씨는 코로나19로 매달 한 번씩 가던 이발 봉사를 못 가게 된 점이 아쉽다고 했다. 그는 10여년 전부터 한 장애인센터에서 10명의 동료 이발사들과 이발 봉사를 하고 있다. 그는 “매달 첫째, 둘째 수요일에 습관처럼 하던 일을 코로나19 때문에 2년째 못하고 있다. 이 병이 없어지길 바라고 있는 상황”이라며 “이왕 하기로 한 거 열심히 하고 싶다”고 말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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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법원이 주호영 국회부의장의 대구시장 경선 컷오프 관련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항고할 뜻을 내비쳤다. 주 부의장의 강경 대응은 저조한 국민의힘 지지율과 맞물려 혼란상을 더욱 극적으로 비추고 있다. 과연 국민의힘이란 ‘대마’는 ‘불사’의 존재일까? 주호영 국회부의장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경선에서 컷오프된 것에 반발해 지난달 26일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했다.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수석부장판사 권성수)는 지난 3일 이를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곧바로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법원 결정에 반발했다. 법원 결정 바로 반발 주 부의장은 “저는 그동안 이번 컷오프가 절차·내용 모두 중대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해 왔다”며 “법원의 판단과 별개로 이번 공천 과정이 과연 당원·시민의 눈높이에 맞는 공정하고 민주적인 절차였는지는 여전히 엄중하게 따져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주 부의장은 지난 6일 항고를 제기했다. 이어 지난 8일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항고심 판단을 끝까지 지켜본 후 제 거취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선 일각에서 제기했던 무소속 출마설을 일단 유보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어 주 부의장은 “항고심 판단을 기다린다고 해서 이번 공천 난맥상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체제의 책임을 덮고 가겠단 뜻은 결코 아니”라며 “이런 공천 구조를 만든 세력과 절대로 타협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공천은 충성의 대가나 숙청의 도구가 아닌, 오직 국민 앞에 가장 경쟁력 있고 책임 있는 후보를 세우는 과정”이라고 주장하는 등 자신을 컷오프한 것을 ‘숙청’이라고 암시했다.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에 대해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6선인 주 부의장은 대구 수성에서만 국회의원을 지냈다. 대구 수성을에서는 4선을 지냈고, 수성갑에선 재선에 성공했다. 이 중 4선을 했던 지난 2016년 총선 수성을 선거에선 친박(친 박근혜)계 주도로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 출마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유 있게 이겼다. 문제는 주 부의장이 당내 최다선인 6선 의원 겸 국회부의장이라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명예가 곧 실권을 보장하진 않는다. 아울러 주 부의장이 차기 총선에서도 같은 지역구에 출마해 7선에 도전하면, 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수도 있다. 같은 6선인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조정식 의원은 각각 부산 사하을·경기 시흥을을 지역구로 두고 있다. 부산은 이미 격전지가 된 데다 조 의원은 민주당계 정당과 국민의힘 소속으로 각각 3선 했고, 경기 시흥을은 수도권이다. 국민의힘의 안정된 텃밭으로 분류되는 대구 수성을에서 7선에 도전하는 것과는 상황이 다르다. 설령 7선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도 참패 가능성이 제기되는 국민의힘이 2년 후 총선에서 다수당이 된다는 보장도, 국회의장이 되리라는 보장도 하기 어렵다. 오는 2028년 총선까지 연일 떠들썩하게 이어지는 계파 갈등을 어느 정도 안정시킨 후 대안 야당으로 발돋움하면서 이재명정부가 실정으로 지지율이 폭락하는 상황이 겹쳐야 승리를 노려볼 수 있다. 주 부의장이 국회의장에 도전하는 것도 현실적으로는 가능성이 희박하다. 불확실한 국회의장…‘텃밭 7선’ 대신 대구? 연이은 공천 가처분 세례 속 서울 지지율 13% 따라서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집념을 불태우는 것은 필연이다. 대선 패배 후 대구시장에 출마해 당선됐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전례도 있다. 주 부의장으로선 “나라고 출마 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에 있느냐”고 판단해도 무리가 아니란 분석이 있다. 대구시장으로서 임기를 마친 후 대권에 도전하거나 당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가능성은 일명 ‘주한 연대설’로 통하는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와의 연대설 때문에 불거졌다. 이는 국민의힘 이정현 전 공천관리위원장이 주 부의장을 컷오프한 직후 불거졌다.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 대구시장에 출마해 대구 수성갑에서 재보궐선거가 진행되면, 한 전 대표가 여기에 출마하는 형식으로 연대한다”는 설이다. 한 전 대표 측으로선 손해 볼 게 없다. 한 전 대표는 지난달 25일 채널A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보수 재건이 필요하다고 공감하면서 나서겠다고 했다”며 “우린 이미 연대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주장했다. 반면 주 부의장은 신중한 반응을 내비쳤다. 그는 지난달 26일 기자들을 만나던 중 주한 연대설 관련 질문을 받자 “제 코가 석 자인데 딴 생각할 여지가 있겠느냐”고 답변했다. 다만 무소속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선 “모든 경우의 수에 대해 준비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따라서 주한 연대설 성립 가능성 자체를 배제한 것은 아니라는 해석이 나왔다. 주 부의장의 항고 제기는 국민의힘의 치명적 문제 하나를 외부로 노출했다. 국민의힘에선 당내 처분에 대해 연이어 법원으로 달려가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가깝게는 주 부의장과 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컷오프에 대한 가처분을 신청했다. 김 지사는 주 부의장과 달리 가처분이 인용돼 경선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멀게는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배현진 의원에 대해 각각 결정했던 제명·당원권 정지 1년 징계의 효력도 법원에서 정지됐다. 4건의 가처분 모두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에서 판단했다. 재판부는 주 부의장 건에 대해서만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줬다. 장 대표는 김 지사가 신청한 가처분이 인용된 다음 날인 지난 1일 기자들과 만나 “법원이 정치에 너무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며 “재판장이 국민의힘에 와서 공천관리위원장과 윤리위원장을 하면 될 것 같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정치의 사법화가 심각할 정도로 진행된 것 같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천 관련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승리 가능성을 어둡게 하는 신호들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국갤럽은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2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상대로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직접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48%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8%로 집계됐다. 제 코가 석 잔데… 서울에선 민주당 지지율이 51%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3%로 집계됐다. 부산·울산·경남에서도 민주당 지지율은 42%로,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7%로 집계됐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바람). 영원한 격전지 서울에서도 양당의 지지율 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여론조사 결과 수치가 공개되자,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한 지적이 날로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4일 자 사설을 통해 “국민의힘은 지금 수도권에서 후보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며 “현행법상 15% 이상 득표해야 선거 비용을 전액 보전받을 수 있는데 그에 미치지 못할까 걱정한다는 것”이라며 현실을 짚었다. 이어 “말로만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선언했을 뿐 실제로는 반대로 하고 있다”며 “공천 혼란에 대해서도 가처분을 인용한 법원 탓만 할 뿐, 어떻게 수습하고 책임질지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등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조선일보>의 주장대로라면, 수습·책임을 맡을 당 대표는 보이지 않는 셈이다. 해당 매체는 “어렵게 나선 후보들은 국민의힘 상징색인 빨간색을 포기하고 흰색 점퍼를 입고 다닌다”며 “인구가 1300만명에 달하고 국회의원 의석수도 가장 많은 경기도에선 지사 출마자를 구하지 못해 공천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는 현실도 짚었다. <조선일보>가 짚은 국민의힘의 현실은 신체를 통제할 두뇌 없이 거대한 군집을 이룬 채 각자의 역할을 맡은 군집 생물에 비유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관해파리를 들 수 있다. 관해파리는 겉으로 볼 땐 덩치 큰 해파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각각의 역할을 맡은 독립 개체들이 모인 군집이다. 이 개체들은 먹이 섭취·이동·번식 등 각각의 역할만을 담당한다. 각각의 개체들은 생존을 위해 서로 연결돼있지만, 이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뇌는 없다. 개체 중 누군가가 제 역할을 못하면 모두 죽는다. 단세포생물인 점균류도 먹이를 찾을 때, 각자의 세포가 알아서 효율적인 길을 찾는다. 이를 통제할 뇌는 없지만, 화학적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최적의 경로를 결정한다. 그런데 잘못된 경로를 찾으면 방향을 틀 능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는 것은 군집 전체가 굶어 죽는 일이다. 페로몬을 통해 신호를 주고받는 군대개미 집단도 선봉에 선 개미가 길을 잃으면 모든 개미가 원을 그리다가 지쳐 죽는다. 제 역할 못하면… 이탈리아의 정치학자 조반니 사르토리는 원심적 경쟁 이론을 주장했다. 보통의 민주주의 국가에선 정당이 중도층의 표심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강경한 여당과 무책임한 야당이 양립할 땐 정당이 중도층을 설득하기보다 진영 결집에 따른 조직표 구성에 몰두한다. 이런 구도에선 중도층이 정치에서 배제되고, 정치적 대화도 단절된다. 이런 상황에선 후보자들은 당의 승리와 중도 확장을 포기하고, 강성 핵심 지지층의 지지를 얻으려고 노력한다. 중도층이 정치에 냉담해지면서 설득 가능 대상으로 강성 핵심 지지층만 남기 때문이다. 가성비 높은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아울러 후보자들이 지도부를 거부하면서 강성 핵심 지지층에게만 구애하는 각자도생에 몰두한다. 이는 결국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준비 과정에서 서울시장·경기도지사 경선에선 구인난에 빠졌지만, 대구시장·경북도지사 경선은 열기가 과도한 것도 이와 비슷하다. 특히 대구시장 경선엔 국회부의장·경제부총리·원내대표 등 당정의 핵심을 지낸 인사들이 모두 출마했기 때문에 더욱 눈에 띄고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리처드 카츠와 아일랜드의 정치학자 피터 메어는 정당을 카르텔·프랜차이즈 기업에 비유하는 독특한 이론을 발표했다. 카츠와 메어는 “현대 정당이 시민의 자발적 후원보다 국가의 정당 보조금·공천권 등 국가의 자원에 의존해 서로 담합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앙당과 지역구 후보의 관계를 본사와 가맹점주 관계로 규정했다. 따라서 중앙당이 자원을 적절히 배분하지 못하거나, 시장에서 자원의 가치가 폭락하면 가맹점주의 불만이 폭발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을 매개로, 캐나다의 정치학자 켄 카티는 “정당이 실제로 프랜차이즈 시스템으로 바뀌고 있다”고 주장했다. 카티에 따르면, 정당은 브랜드로서만 기능하고, 선거에선 후보가 중앙의 브랜드를 빌려온다. 공천은 결국 이들 간 계약 관계 역할을 한다. 이는 실제 정치적 현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일 서울 쌍문역 일대 쌍리단길을 방문했다. 오 시장의 현장 방문에 동행한 국민의힘 소속 서울시의원들과 도봉구의원들은 국민의힘의 상징색 빨간색이 아닌 흰색 점퍼를 입었다. 오 시장도 서울시 로고가 새겨진 흰색 점퍼를 입고 현장을 돌아다녔다. 지난달 31일 진행된 국민의힘 서울시장 본경선 후보들 대상 첫 토론회에서도 후보들은 장 대표를 비판했다. 이들은 “흰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동그라미 푯말을, 빨간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엑스 푯말을 들어달라”는 진행자의 요구에 일제히 엑스 푯말을 들었다. 오세훈 ‘흰색 점퍼’ 현장행 “빨간색 입고 싶다” 대우그룹·프랑스 사회당 등 한순간에 망한 대마들 하지만 말은 날카로웠다. 오 시장은 “빨간색 점퍼를 입고 싶은 마음을 엑스 푯말을 들어 표현해 봤다”고 말했다. 미래통합당 윤희숙 전 의원은 “흰색 옷을 입어야 하는 사람은 장 대표”라며 “이번 공천이 마무리되면 백의종군을 결심해 달라”고 요구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빨간 당 출신이 빨간색을 안 입는 자기모순은 이해할 수 없다”면서도 “장 대표가 확장하지 못했다면 후보들이 확장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달엔 장 대표의 지원 유세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본사에 대한 가맹점주들의 집단행동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서울시당위원장을 맡은 배 의원도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의 서울 지지율 13%의 주역 장동혁 지도부가 기초단체장 후보를 못 구한 지역의 후보를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방선거 패배 가능성이 내·외부에서 연이어 제기되고 있지만, 국민의힘 지도부에 대해선 “변화할 의지도, 대책도 없는 것 같다”는 평이 나온다. 이 같은 상황은 카츠와 메어가 이미 이론적으로 짚었다. 이들은 “카르텔 정당은 국가 자원을 독점하기 때문에 ‘우리는 망하지 않는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고 지적했다. 바둑으로 치면, 국민의힘은 여러 개의 돌로 넓게 자리 잡은 곤마인 ‘대마’와 비슷하다. 시사 분야에서 관용적으로 잘 쓰는 표현 중 하나는 ‘대마불사’다. “대기업이나 대형 금융기관은 국가의 지원을 받아 망하지 않는다”는 관용 표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1990년대 후반 IMF 금융위기는 대마불사로부터 비롯됐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상황은 당시 재계 2위였던 대우그룹의 해체였다. 김우중 당시 회장은 ‘세계 경영’이라면서 해외 업체를 공격적으로 인수했다. 그러다 IMF 금융위기를 맞아 구조조정을 거쳤지만, 삼성자동차를 받고 대우전자를 주는 빅딜 과정에서 엄청난 빚을 져 결국 워크아웃을 선언했다. 김 전 회장도 해외로 도피했다. 대우그룹은 그렇게 해체됐다. 국제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1990년대 초반 캐나다의 집권당 진보보수당은 경제 실정과 내부 갈등 끝에 구심력을 잃고 연이은 당원 탈당 사태를 겪었다. 그 결과 150석을 넘게 보유했던 거대 여당이 선거 한번에 2석만 건지는 참패를 당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프랑스에서도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을 극복하지 못했던 사회당은 지난 2017년 대선을 앞두고 강경한 좌파 성향 브누아 아몽 대선후보를 선출했다. 그러자 사회당 소속 정치인 다수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창당했던 신생 정당 앙 마르슈로 옮겼고, 당은 선거에서도 참패했다. 반대로 민주당은? 민주당은 대구시장 선거 승리를 위해 대구에서 일정한 기반을 갖추고 있고 선거 승리 경험도 있는 김부겸 전 총리를 대구시장 후보로 선출했다. 이어 지난 8일엔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김 후보와 함께 대구 농수산물도매시장을 방문하는 등 승리 의지를 드러냈다. 구인난을 겪고 있는 국민의힘과 달리, 민주당에선 추미애 의원이 치열한 경선 끝에 경기도지사 후보로 선출돼 주목받고 있다. 대마불사는 과연 영원한 걸까. 대마불사만 믿고 배짱 영업을 해도 되는 걸까. 대우그룹 해체는 국민의힘에 어떤 의미를 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