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를 만나다> 긍정 에너지 넘치는 오나라

“전 남편 친구와 사랑? 충분히 가능”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까르르 하며 웃는 모습이 익숙한 배우 오나라는 23년 경력의 베테랑 배우다. 뮤지컬 단역과 앙상블로 출발해 차츰 경험을 쌓고 40대가 넘어서야 비로소 빛을 본 케이스다. 굴곡진 인생이었지만, 그의 얼굴에는 늘 생기가 돈다. 웃음기가 가득하고, 밝고 긍정적인 하이 텐션을 유지한다. 옆에만 있어도 좋은 에너지를 주는 사람이다. 영화 <장르만 로맨스>에 출연한 오나라를 최근 만났다. 화상으로 만난 그는 ‘언제나 사는 게 즐겁다’며 비타민 같은 에너지를 뿌렸다.

조은지 감독의 신작 <장르만 로맨스>는 매우 독특한 콘셉트의 영화다. <스물> <극한직업>과 같은 이병헌 감독의 작품처럼, 말장난을 바탕으로 한 코미디 장르다. 주요 인물 간의 관계가 매우 복잡한데, 그 관계 속에서 인간 간의 존중과 진심을 낚아챈다. 근래 보기 힘든 신선하고 파격적인 작품이다.

파격적 말장난

오나라는 문학계의 거장이지만 누구에게도 존중받지 못하는 김현(류승룡 분)의 아내 미애를 연기한다. 둘은 이미 10년 전에 이혼한 사이지만, 아들 성경(성유빈 분)이 사춘기라 어쩔 수 없이 만난다. 비록 좋지 않게 헤어졌으나 오랜 친구처럼 대화가 곧잘 통하며, 서로에게 위로가 되기도 하는 사이다.

하지만 미애에게는 말하지 못할 비밀이 있다. 김현의 30년 지기 친구이자 김현이 소속한 출판사의 대표 순모(김희원 분)와 연애 중인 것. 

사춘기에 걸린 아들은 삐딱하게 행동하면서 대들기 일쑤인 데다, 하다못해 선생님에게까지 불려가지만, 미애는 남자친구와 여행 가는 게 먼저다. 누구의 엄마가 아닌 하나의 여자로서 가진 정체성이 더 분명하다. 평범한 듯 어딘가 색다른 맛이 있는 캐릭터다.


신선함을 바탕으로 배우들의 아기자기한 연기, 그 안에 담긴 독특한 대사와 복잡하게 얽힌 인물 간의 관계에서 나오는 서사에 강점이 있는 <장르만 로맨스>는 수준이 매우 높은 코미디를 구사한다. 

“류승룡 선배를 중심으로 다들 분위기가 정말 좋았어요. 감독님은 이 작품에 대한 이해가 정말 높으셨고, 각 캐릭터와 모든 장면을 완벽히 해부하셨어요. 상대역인 희원 오빠와는 눈빛만 봐도 느낌이 오는 사이거든요. 매 신마다 아이디어가 팡팡 터져 나왔어요. 그 순간에 늘 유쾌하게 반응했던 것 같아요. 촬영 초반부터 엄청 즐겁게 찍었어요.”

영화는 배우 간의 합이 딱딱 맞아떨어질 때 웃음을 만드는 연극을 보는 듯하다. 하나같이 난도가 높은 생활연기를 구현하는 데 단 한 순간도 흠이 없다. 감독과 배우들의 협업이 눈에 띄는 작품이다.

“제가 호기심이 많은 타입이에요. 사람을 관찰하는 걸 좋아해서 그런지 평소 생활 연기를 하는 게 그리 어렵지 않아요. 처음 보는 사람을 봐도 특별한 매력을 잘 알아채서 빨리 친해지는 편이에요. 그런 게 몸에 익숙하다 보니 일상 연기가 편해요. 사실 평소 생활에서 제 행동이 크고 연기하는 것 같다고 해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보였는지 모르겠네요.”

결혼 전부터 미애를 흠모했던 순모는 진심으로 미애를 아낀다. 미애와 보낼 시간에 들떠 여행 스케줄을 짜오는 그의 노력은 순수하고 예쁘다. 때론 질투를 하기도 하지만, 질투의 베이스는 사랑이다.

<장르만 로맨스> 뛰어난 생활연기
“저는 왜 이렇게 사는 게 재밌죠?”

누구보다도 예쁜 사랑을 하는 중이지만 이들에게는 난관이 있다. 둘의 사랑이 알려지는 것 자체가 출판업계에 큰 파장이 미치는 것을 알기에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다는 것.


친구들에게 배신자 낙인이 찍힐 수 있는 순모 역시 쉽게 미애와의 관계를 누구에게도 알리지 못했다. 흔치는 않지만, 누구나 겪을 수 있는 곤란한 상황에 놓여있다. 따라서  미애는 끝내 순모와의 사랑이 이뤄지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런 상황이 너무 재밌었어요. 제가 경험하지 못한 관계잖아요. 미애에게 놓인 불편한 상황이 재밌었어요. 남편의 절친이라고 하지만 이혼한 지는 10년이 넘었잖아요. 또 순모가 미애를 꾸준히 아껴왔던 것 같고요. 순애보를 보여준 순모는 이혼한 미애를 품었겠죠. 그런 점에서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사랑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런 사랑 괜찮다고 봐요. 하하.”

올해로 데뷔 23년 차인 오나라는 드라마 JTBC <스카이캐슬>로 비로소 대중에 이름을 알렸다. 20년 넘게 무명생활을 한 셈이다. 뮤지컬 단역과 앙상블을 거쳐 배우가 되는 데도 시간이 꽤 걸렸고, 이를 바탕으로 드라마와 영화계로 넘어오고도 한참을 무명으로 지냈다. 

재능이 뛰어났어도 쉽지 않은 길을 걸었기 때문이다. 안정적인 무용단을 박차고 나와 뮤지컬로 뛰어들었다가, 연기 향상을 위해 일본에서 연극도 경험했다. 오랜 경험을 마치고 실력을 갖추고 얼굴을 알리는 데 20년 이상 걸린 것이다. 

“왜 그렇게 무모하게 살았는가 싶기도 해요. 인생을 개척해도 좀 알아보고 해야 했던 건데 말이죠. 지금은 잘 극복해서 웃고 있지만, 사실 힘들었던 시절도 길었죠. 23년이 화살처럼 빠르게 흘러왔어요. 조바심은 없었어요. 뮤지컬 앙상블을 할 때도 행복했어요. 늘 즐기면서 해서 위축된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오나라의 실제 모습은 tvN 예능 <식스센스>에서 보이는 모습과 닮아있다. 작은 것에도 밝게 웃고, 늘 친절하며 인간적인 모습이 드러난다. 20대의 성유빈은 오나라가 늘 밝은 에너지를 줘 촬영장이 즐거웠다고 했는데, 그 말의 뜻을 알 것 같았다. 

즐거운 인생

“저는 왜 이렇게 사는 게 재밌나 모르겠어요. 새로운 사람 만나는 것도 좋아요. 제가 웃는 건 정말 재밌어서 웃는 거예요. 일이 일처럼 안 느껴져서 그런가 봐요. 저도 슬럼프가 있기는 있어요. 부족함도 느끼고요. 그럴 때마다 반성해요. 되도록 제 잘못으로 넘기고 보완하려고 해요. 그러다 보면 금방 일어서요. 믿기 어려우시겠지만 저는 가늘고 길게 배우생활을 하고 싶어요. 잔잔하고 따뜻한 휴먼 드라마처럼요. 그런 행복한 삶이 오길 고대하며 살아간답니다.”


<intellybeast@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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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⑥좌파 14명 체포 실패 내막

[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⑥좌파 14명 체포 실패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12·3 계엄 당일 내란 주동자들은 정치인과 판사 등 자신들이 반국가 세력으로 지칭한 14명의 체포를 위해 서둘렀다. 하지만 준비가 된 것은 각 군의 사령관들뿐이었다. 계엄사령부와 합동수사본부의 설치는 훈련 상황서도 24시간가량 걸리는데 이를 간과한 것이다. 미리 계엄을 준비했다는 증거가 계속해서 나오는 상황에 실무진에게 준비시키지 않은 점이 의문점으로 남아있다. 12·3 비상계엄 선포 이후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등 내란 주도자들이 정치인과 판사 등 ‘좌파세력’이라고 지칭한 14명의 체포를 시도했지만 무산됐다. 그 내막에는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이하 합수본)의 미설치가 있다. 진술 나오자 다른 전략 <일요시사>가 검찰 진술 조서를 입수해 분석한 결과, 계엄이 시작된 계기와 14명의 체포 미수 및 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불법 점거의 실패 이유로 ‘합동수사본부 미설치’를 꼽았다. 12·3 내란 사태가 발생하기 이전 국회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대립은 심각했다. 과반 의석을 차지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야당은 자기들끼리 뭉쳐서 법안을 통과시켰고 윤 전 대통령은 재의요구권을 사용했다. 또 야당은 이진숙 방통위원장과 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를 수사한 검찰들에 대한 탄핵을 시도하고 김건희씨와 관련한 특검법을 계속 발의했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검찰 진술조서에 따르면 지난해 11월27일경, 윤 전 대통령이 관저 식사 자리서 “수사받다가 마음에 안 든다고 검사를 탄핵하고, 재판받다가 마음에 안 든다고 판사를 탄핵하고, 헌법재판소가 마음에 안 들면 정족수를 자르고, 이게 나라냐.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국가 세력의 준동에 관해 청주간첩단 및 창원간첩단 사건과 관련해 수사 과정서 잡은 인원들을 판사 기피 신청이 들어오면 단기간에 결정하는 것이 상식인데 6개월이나 결정을 하지 않아 간첩들의 구속 기간이 끝나 다 풀려나 돌아다니는데도 이런 것을 방치하고 있는 상황이니 나라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며 “미래 세대에 제대로 된 나라를 만들어주기 위해서는 특단의 조치(비상계엄)이 필요하겠다”고 강조했다. 일주일이 지난 후 윤 전 대통령은 김 전 장관에게 “야당의 패악질로 나라의 미래가 없다. 국가 비상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고 이들은 비상계엄 관련 논의를 했다. 이때 체포 명단인 이른바 ‘좌파 세력’ 14명의 명단과 군대를 어떻게 투입할지 등을 확정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들은 체포 명단의 사람들의 신병을 확보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게다가 내란 주동자들은 검찰 진술과 형사 법정 등에서도 체포하려 하지 않았다고 진술하고 있다. “합수부 미설치로 체포 불가” “합수부 없어 시작부터 위법” 김 전 장관은 검찰에 “주요 정치인 등에 대한 검거를 시도한 바 없다. 혐의가 있어야 검거를 시도하지 않겠냐”며 “언론에 나오는 위치 추적 등은 포고령에 따라 정치활동이 금지되고 있는 상황이니 주요 정치인 몇 분과 부정선거 등과 관련해 사회서 의혹이 제기되는 사람들의 위치를 미리 파악하라고 이야기한 것일 뿐”이라고 진술했다. 하지만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과 작전에 투입된 군인들의 진술로 체포 명단이 실제로 존재했으며 체포를 지시하고 시도했다는 것마저 모두 드러났다. 체포 시도가 있었다는 진술이 계속해서 나오자 내란 주동자들은 다른 전략을 세우게 된다. 바로 ‘합동수사본부 미설치’다. 김 전 장관은 검찰 진술서 합수본이 미설치돼 체포가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그는 “계엄사령부와 합수본이 설치되는 과정이라 검거가 불가능하다”며 “합수본이 설치되려면 검찰과 경찰의 협조가 필요한데 아무런 대비도 없이 체포부터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진술했다. 김 전 장관의 진술은 계엄 직후 선관위에 국군 정보사령부 부대원들을 보내 선거인 명부 관리 서버를 장악하고 선관위 당직자들에 대한 통신 제한(휴대전화 압수)과 감금이 위법한 수사 활동임을 나타내고 있다. 계엄이 터지면 통상적으로 합수본 역할을 맡는 국군 방첩사령부 관계자도 검찰 진술 당시 선관위 투입은 잘못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최영희 방첩사 비서실 1과장은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방첩사 소속 군인들로 하여금 중앙선관위 서버를 꺼내오도록 지시하거나 계엄 해제 이후 관련 증거를 제거하도록 시킨 것은 자신들의 정당한 권한 범위를 넘어선 것”이라고 말했다. 불법성 미리 알고? 박성하 방첩사 기획조정실장은 “현장에 나가 있던 소위 체포조에 대해서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면서도 “하지만 전시에도 방첩사가 일부 범죄에만 수사권이 있기 때문에 전시나 계엄 상황이라도 관할권이 없는 선관위나 정치인 등 체포나 점거는 경찰의 협조가 필요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게다가 합수본(방첩사)은 직접 수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통합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해야 하는데 지역 합수단서 해야 할 일을 방첩사 인원으로 진행한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한 군검찰 출신 변호사는 “합수본은 계엄사령관이 임명하는 군사경찰 관리, 경찰공무원, 국가정보원 직원 중 사법경찰 관리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 그 밖에 사법경찰 관리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로 구성된다”며 “또 합수본은 계엄사령관이 지정한 사건의 수사와 정보기관 및 수사기관의 조정·통제업무를 관장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하지만 선관위로 투입된 인원들은 계엄사령관으로부터 임명을 받지도, 임무를 하달받지도 않았다”며 “게다가 합수본까지 설치되지 않았다고 한다면 시작부터 위법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보사와 방첩사 모두 계엄사령군(군사경찰)이 아니기에 정당한 절차가 없었다면 반란군이라고 볼 수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여기서 의문이 드는 점은 계엄 업무를 해본 김 전 장관이 왜 무리수를 뒀는지다. 김 전 장관은 대한민국 합동참모부서 작전본부장을 역임한 바 있다. 합참 작전본부에는 계엄과가 편제돼있기 때문에 김 전 장관이 계엄군과 합수본 지정 및 운용 등을 몰랐다고 보기 힘들다. 합참 계엄과서 편찬하는 계엄실무편람에도 잘 나와있기 때문이다. 김 전 장관은 논란을 줄이기 위해 계엄이 선포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전군주요지휘관회의를 화상으로 개최하면서 박안수 전 육국참모총장을 계엄사령관으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을 합동수사본부장으로 임명했다. 하지만 일부 사령관 등에게만 공유됐던 12·3 계엄 작전은 계엄사령부가 설치되기도 전에, 합수본이 설치되기도 전에 끝났다. 사령부만 알았다 <일요시사>가 확보한 검찰 진술 조서에 따르면, 김 전 장관은 전군주요지휘관회의서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부 사령관, 곽종근 전 육군 특수전사령부 사령관에게 국회와 선관위 출동을 하면서 방첩사에 합동수사본부를 구성해서 임무 수행을 하라고 지시했다. 김 전 장관이 방첩사에 지시한 임무는 경찰과 국방부 조사본부에 100명씩 인원을 요청하고 선관위로 먼저 투입된 국군 정보사령부가 접수한 선관위 서버를 꺼내오라는 지시였다. 국방부 조사본부와 경찰에 인원 요청을 한 것은 정치인, 판사, 등 민간인 체포를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조사본부는 방첩사가 요청한 수사관 지원 요청을 4차례 거절했다. 조사본부 한 관계자는 검찰 조사 당시 “지난 3일 계엄령 선포 이후 방첩사로부터 수사관 100명 지원을 네 차례 요청받았지만, 근거가 없다고 판단해 응하지 않았다”며 “이후 합수본 실무자 요청에 따라 시행 계획상 편성돼있는 수사관 10명을 지난해 12월4일 오전1시8분 출발시켰다”고 진술했다. 방첩사의 수사관 파견 요청에는 불응했고, 계엄 시행 이후 방첩사를 중심으로 꾸려지는 합수본 요청에는 응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수사관이 파견된 시간은 이미 계엄 해제 의결이 이뤄진 뒤였다. 합수본이 계엄 해제와 비슷한 시기에 모양새라도 갖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김 전 장관이 계엄 직후 전군주요지휘관회의서 여 전 사령관에게 합수본 설치를 지시했지만 설치가 늦어진 이유가 있다. 방첩사에 내려진 지시는 좌파세력 체포와 합수본 설치, 검찰과 경찰 및 국방부 조사본부 등에 협조 요청 등으로 내란 주동자들에게는 어느 것 하나 미룰 수 없는 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박 기획조정실장은 “부대에 도착해보니 OOO회의실에 여 전 사령관이 이경민 참모장, 이창엽 비서실장과 같이 있었다”며 “합수본 설치 지시를 받으려 사령관에 물어봤지만 답을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여 전 사령관이 다른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는데 ‘합수본부장으로 임명됐다. 우리 대원들은 다 나가 있다’고 말하며 통화에만 집중했을 뿐 합수본 설치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계엄 6개월 전부터 준비 실무진만 ‘닭 쫓던 개’ ‘비상계엄이 선포되면 국가적으로 엄중한 상황이 될 텐데 방첩사는 계엄 선포 예정 사실을 알고 준비하지 않았느냐’는 검사의 질문에 “계엄이 선포되면 합수본을 설치해야 하는 사람이 나다. 하지만 나는 해당 사실을 알지 못했다”며 “체포조를 운영한 수사단장도 해당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답했다. 그는 “방첩사 비상소집이 완료된 시간이 지난해 12월4일 오전 1시4분”이라며 “합수본은 기본 시설도 갖추지 못한 상태서 계엄이 해제됐다”고 말했다. 방첩사 인원들이 전원 소집되는 시간에 이미 계엄은 해제된 것이다. 방첩사의 작전 계획상에는 상황실 설치에 8시간, 합수본 설치에 24시간을 예정하고 있는데 비상계엄이 3시간 만에 해제됐다. 본부 설치에만 24시간이 걸리며 계엄사령관으로부터 임명을 받아 합수본을 완전히 구성하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한 군사학과 교수는 “계엄 선포에 대해 사령관과 참모진 외에 실무자에게도 공유가 됐다면 미리 합수본 설치를 준비하고 있다가 계엄이 선포된 후 바로 체포를 진행했을 것”이라며 “이번 계엄의 패착은 이전 계엄과 달리 빠르게 대처한 국회를 막지 못한 것과 계엄사령부부터 합수본까지의 실무자들이 준비할 시간이 없었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방첩사 사령부에서는 미리 계엄 준비를 해왔던 것으로 보인다. 방첩사 소속 간부 A씨는 검찰 조사에서 “방첩사와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가 체결한 MOU에 언급된 ‘합동수사본부’는 계엄 시 설치되는 합수부가 맞다”고 진술했다. 방첩사와 국수본은 지난해 6월28일 ‘안보범죄 수사 협력에 관한 업무협약’을 체결하면서 “합동수사본부 설치 시 편성에 부합하는 수사관 등을 지원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검찰은 이를 근거로 방첩사가 계엄을 오래전부터 준비한 것으로 보고 있다. A씨는 “지휘부에서 최초에는 지난해 5월 초순경 3주안에 체결하라는 지시를 했다”며 “보통 미국 국방정보국(DIA) 등 해외정보수사기관과 이런 MOU를 맺고, 국내 기관은 관련 법령이 있어 MOU를 맺지는 않는다. 국내 기관과 MOU를 맺은 건 이번이 처음이고, 굳이 이런 MOU를 맺는 게 의아했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다만 조지호 경찰청장은 해당 MOU에도 불구하고 계엄 당일 수사관 지원 요청을 이행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조 청장은 지난 5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긴급 현안 질의에 나와 “방첩사 주관으로 수사본부가 꾸려질 수 있으니 경찰서 필요한 인력을 지원해줬으면 좋겠다고 해서, 제가 준비하겠다고 했다”고 밝혔으며 계엄 당일 수사관 81명이 방첩사 요청으로 대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두환과 구상 흡사 내란 주동자들은 경찰력을 대거 방첩사로 파견해 합동수사본부를 꾸리고 정치인 체포 작전을 벌일 계획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1979년 비상계엄하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 피살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만든 합수본과 흡사한 구상이다. 당시 합수본은 정권에 반대하는 정치인에 대한 정보 기능을 도맡아 12·12 군사 반란의 수괴인 전두환씨가 권력을 장악하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됐다. <kcj5121@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계엄 사령부 구성도 완전 실패 <일요시사>가 확보한 검찰 진술조서에 따르면 계엄사령부는 구성조차 못했다. 권영환 전 대한민국 합동참모본부 계엄과장은 계엄이 선포된 후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으로부터 ‘계엄사령부 설치를 도와라’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에 그는 육군 본부 참모진들이 올라올 때까지 계엄사 상황실 구성 준비를 했다. 계엄이 선포되면 계엄사에는 2실(비서실, 기획조정실) 8처(정보처, 작전처, 치안처, 법무처, 보도처, 동원처, 구호처, 행정처)를 구성하도록 돼있으나. 권 전 과장이 계엄사 상황실을 구성하고 있을 당시 국회에서는 ‘비상계엄해제 요구결의안’이 가결됐다. 당시 권 전 과장이 박안수 전 육군참모총장에게 “(계엄해제 요구안이 가결됐으니) 법률상 지체 없이 계엄을 해제하도록 돼있다”고 말하자 박 전 총장은 “그런 것을 조언할 것이 아니라 일이 되게끔 만들어야지 일머리가 없다”며 “올해 연습을 두 번이나 했다고 하면서 구성을 왜 빨리 못하냐”고 꾸짖었다고 한다. 이는 내란 주동자들이 2차 계엄을 생각하고 있었으며 계엄사 구성의 역할이 합참에 있었다는 것을 내포하는 대목이다. <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