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권 잠룡들의 예능 나들이 손익계산서

웃기는 정치인 무조건 좋을까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대한민국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있다. 20대 대통령을 가리기 위한 각 당의 경선이 치열하게 진행 중이다. 모든 후보가 정책을 바탕으로 캐치프레이즈를 걸고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온 힘을 다한다. 그 과정에서 상대 후보를 공격하거나 상대 후보의 공격에 방어한다. 때론 인상을 붉히는 일도 발생한다. 선거의 승패를 가르는 건 이성보다 정서다 보니 공방을 하는 중에도 이미지 관리에 신경 써야 한다.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내기에 가장 좋은 플랫폼은 예능 출연이다. 차기 유력 대권후보들이 예능 나들이에 나서고 있다. 

총과 칼을 들고 국민을 통치하던 군부 독재 시절만 하더라도, 국가의 대소사를 관장하는 정치인이 TV 프로그램에서 코미디언과 웃음을 나누는 일은 상상할 수 없었다. 당시만 해도 방송사에 보도 지침을 내리는 주인에겐 아마 격에 맞지 않는 행위라고 판단했을 공산이 크다. 

선거철 
통과의례

전두환 전 대통령의 6·29 선언 뒤 직선제가 실현되고, 민주 정권이 돼서도 마찬가지였다. 여야를 가리지 않고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정치인은 없었다. 최초의 연결고리는 1996년 MBC <이경규가 간다>였다. 

새벽 3시가 넘는 마라톤 회의 끝에 당시 DJ(고 김대중 전 대통령)를 만나기로 한 <이경규가 간다>의 이경규는 출근하는 DJ 맞아 갑작스럽게 인터뷰를 진행한다.

흔쾌히 ‘합시다’라고 수락한 뒤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72세의 DJ는 가장 좋아하는 가수로 서태지를 언급하고, 고 이희호 여사와 공원을 산책하는 등 특유의 소탈한 모습과 탈권위를 보이면서 국민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았다. 당시 시청률은 40%가 넘을 정도로 화제성이 강했다.


그로부터 11년이 지난 2007년 고 노무현 대통령은 MBC <느낌표>에 권양숙 여사와 함께 출연해 대중과 직접 소통했다. 권 여사와 첫 만남부터 데이트를 이어가게 된 이야기, 어릴 적부터 책을 좋아했다는 사연과 이를 통해 연설하러 다니면서 큰 효과를 받았다는 추억 등을 유머러스하게 풀어냈다. 

아무리 예능이라 하더라도 대통령과의 만남이다 보니, MC들도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청와대 주요 인사들이 방청객을 차지하고 있는 모습도 생경한 풍경이다. 그럼에도 신비주의에 둘러싸인 정치인의 사적인 영역이 드러나면서 당시에는 어마어마한 화제가 됐을 뿐 아니라 정권의 지지율에도 적잖은 효과가 있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정치인이 예능에 출연하는 건 국가적 이벤트에 해당하는 사안이었다. 국정을 처리하느라 바쁜 정치인들이 예능에서 소탈한 이미지를 보여주는 것이 개개인에게 효과적인지 의문이었을 뿐 아니라, 방송사 역시 이 같은 기획에 미진했다.

대통령과 같은 인물이 아니고서는 정치인이 굳이 나올 이유가 없었다.

그러한 인식을 바꾼 대표적인 인물은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다. 의사부터 공대 교수까지 거친 특이한 이력이 있던 안 대표가 MBC <황금어장-무릎팍도사>에 출연하면서 예능과 정치의 연결고리가 끈끈해졌다.

당시 연예인 신변잡기식 방송에서 벗어나 사회 저명인사의 출연을 통해 프로그램의 변화를 꾀하던 <무릎팍도사>의 눈에 안 대표가 눈에 띈 것.

제작진은 2008년부터 안 대표에게 섭외를 제안했다. 당시 미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안 대표는 강연과 인터뷰가 물밀 듯이 쏟아졌고, 카이스트 석좌교수로서 강의를 우선순위로 둬 “제안은 감사하지만, 적절치 않은 상황”이라며 출연을 고사했다.


<이경규가 간다>부터 <집사부일체>까지
정치와 예능 사이에 얽힌 연결고리는?

집요한 <무릎팍도사> 제작진은 1년이 지난 후에도 꾸준히 출연을 요청했다. 당시 회사 임원들조차 출연을 막았다는 후문이다. 연예인들이 출연하는 프로그램에 안 대표(당시 박사)가 나가면 희화화될 수 있다는 게 논리였다.

반대로 카이스트 학생들은 출연을 반겼고, 안 대표는 고민 끝에 출연을 결심했다. 그렇게 역사적인 방송이 만들어진 것. 

방송은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특이한 이력의 안 대표가 살아온 길과 진정성 있는 이야기에 찬사가 이어졌다. 

안철수 신드롬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정도였다. 당시 정치권에 혐오를 느끼던 국민은 새로운 인물론을 부각하며 안 대표를 정치권으로 호출했다. 2011년 서울시장 선거를 앞두고 안 대표의 지지율은 50%가 넘었다. 정치권에 발을 담그지도 않은 신인에게 이러한 지지를 보내는 것 자체가 이례적인 현상이었다. 

당시 변호사이자 아름다운재단 상임이사였던 고 박원순 서울시장과 단일화한 이후 그를 향한 국민의 지지는 더욱 강해졌다. 가히 예능이 배출한 정치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후 정치권에서 끊임없이 하락세를 거듭했고, 최근 서울시장 선거 경선 과정에서 오세훈 서울시장에 패배하는 등 지금에야 그에 대한 지지가 예년만큼은 아니다 하더라도, 여전히 그의 존재감은 정치권에 중요하게 작동한다.

안 대표의 삶이 예능 프로그램 출연 이후 완전히 달라진 것을 미뤄봤을 때 예능이 정치인에게 어떤 효과를 주는지 분명히 알 수 있는 계기가 됐다. 

비슷한 시기 팟캐스트의 시초인 <나는 꼼수다>의 역할도 정치와 예능이 끈끈해지는 데 일조한 프로그램이다. 당시 진보진영의 정치인들은 <나는 꼼수다>에 나와 정책적 기조를 설명하는 것은 물론 권력에 대한 가치관, 개인사를 털어놓고, 때로는 첨예한 논란에 적극 해명하기도 했다. 

“계파가 누가 있냐” “리더십 부재에 대한 평가에 어떻게 생각하느냐” “꼭 당신이 이 직책을 맡아야 하느냐” 등 후보가 쉽게 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거침없이 던졌다. 당황하면서도 유려하게 넘어가는 장면에서 팬덤이 생기기도 했다. 진보진영 인사들이 대중에 각인되는 계기가 됐다. 

예능이
낳았다

진보진영에서 강세를 보인 팟캐스트 대안 언론의 서포트를 받은 사람들은 국회에 진입하는 등 새로운 형태의 정치가 시작됐다.


아울러 JTBC <썰전>도 정치가 대중의 일상에 스며들도록 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MC 김구라를 중심으로 진보와 보수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토론 과정은 그 어떤 예능 프로그램보다 박진감이 있었다. 서로 의견이 나뉘어 싸우다가도 국가의 중차대한 문제 앞에서 화합하는 장면은 정치의 묘미를 전달하는 대목이기도 했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정치와 예능이 결합된 방송 프로그램으로 대표적인 예다. 

2012년 당시 후보였던 박근혜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이 SBS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에 출연했다. 당시 보수 진영 후보였던 박 전 대통령은 중학교 시절 비키니 수영복을 입은 사진을 공개했고, 문 대통령은 특전사 시절 사진을 공유하며, 격파 시범을 선보이기도 했다. 

각각 친근하고 소탈하거나, 강하고 믿음직스러운 이미지를 연출했다. 예능이 정치인의 이미지 제고에 활용됐다. 

이후에는 국내 중요한 선거가 있을 때마다 정치인이나 혹은 유력 후보의 예능 진출은 통과의례가 됐다. 지방선거나 총선 등 국내 굵직한 선거에서 예능에서 편안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 자체가 방송사나 정치인으로서 이득이 되는 것이 많다는 판단에서다. 

실제로 국민의힘 나경원 전 국민의힘 의원과 더불어민주당 후보였던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지난 4월 재보궐선거를 3개월 앞두고 TV조선 <아내의 맛>에 출연했다. 또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성남시장 시절 SBS <동상이몽2>에 출연해 남편 이재명의 민낯을 드러내기도 했다. 


해당 프로그램은 관찰 예능으로 토크쇼와는 달리 집안에서의 사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정치인의 일상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대목에서 대중은 해당 인물의 매력을 느낀다는 반응을 보였다. 대중의 반응이 크자 미디어 비평 전문가들은 대중을 호도한다며 비판했다.

대중의 눈
못 속인다

예능에서 짜여진 모습을 실제로 믿는 대중이 많다면서 위험성이 높다는 게 요지였다.

최근에는 정치인의 예능 출연이 예전만큼 높은 파급력을 갖지는 못하고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지지율이 급반등 된다거나, 정치적 논란이 완벽하게 해소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 

이미 대중이 정치인의 사적인 영역과 공적인 영역을 분리하는 인식이 생겼기 때문에, 안철수 대표나 DJ와 같은 드라마틱한 효과를 보지는 못한다는 의미다. 기존 지지자들을 결집시키는 데만 효과를 본다는 주장이 나온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과거 이명박 전 대통령의 국밥 영상과 같은 효과를 보는 시대는 지나갔다. 국민 대다수가 정치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정치인의 공과 사를 구분해내는 능력이 생겼다”며 “현재 예능 출연은 각 후보의 인기를 검증하는 차원이다. 엄청난 효과를 보는 시대는 지나갔다”고 말했다. 

한창 경선 과정이 진행되고 있는 최근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 이재명·이낙연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SBS <집사부일체>에 출연했다. 검찰총장 출신인 윤 후보는 밥을 직접 해주는 형님 리더십을 부각시켰고, 각종 논란에서도 호탕하게 넘어가는 모습을 보였다.

비교적 순한 이미지인 <집사부일체> 패널의 공격에 웃음으로 대응했다. 

언변에 능하지 않은 윤 후보는 현안에 초점을 두기보다는 과거 검사가 되는 과정과 검찰 시절의 모습, 평소 생활 등 인간 윤석열을 보여주는 데 집중했다. 게스트에 따라 장소와 내용 모든 것이 바뀌는 <집사부일체>의 윤석열 편은 관찰 예능이 더러 섞인 SBS <돌싱포맨>과 비슷한 형태의 포맷이었다. 

반대로 이재명 후보는 논란에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집이 아닌 새로운 공간에서 <집사부일체> 패널과 만난 이 후보는 각종 논란에 해명하는 시간으로 할애했다. 현 후보 중 가장 의혹 거리가 많은 그는 <집사부일체>를 해명의 기회로 만들려는 의지가 엿보였다. 

“약점 보완에 매력 어필도 쉬워”
“결정 못한 지지자 얻을 기회도”

직설적인 화법을 갖고 있고, 언변에 화려한 그가 어떤 형태로 예능을 활용하려 했는지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이재명 후보의 <집사부일체>는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나 tvN <유퀴즈 온더 블록>과 같은 토크쇼 형태였다. 

이낙연 후보는 유일하게 아내 김숙희씨와 함께 나왔다. <집사부일체> 패널과 식사를 하면서 평소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데 주력했다. 유머감각 면에서 단점이 있는 이 후보에게 편안함을 주면서 재미의 영역을 아내를 통해 만들어낸 것.

정덕현 평론가는 “<집사부일체>의 포맷을 보면서 각 후보가 어떤 면을 부각시키려 하고 숨기려 하는지 각각의 장단점을 읽을 기회가 됐다”며 “윤 후보는 리더십을 드러내고, 인간적인 면을 보여주려 했고, 이 후보는 의혹을 정면돌파하는 데 중점을 뒀다. 이낙연 후보는 인간적인 면모의 보완에 집중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정치인의 예능 출연은 일종의 팬 서비스 형태로 변화했다. 선거철 표를 달라고 국민을 만나고 다니는 것의 또 다른 형태”라며 “예능 출연이 화제성 면에서 약간의 효과는 있겠지만, 대세를 바꿀 정도로 큰 역할은 하지 못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치와 예능 간에는 이해관계가 정확히 맞물린다. 정치인들은 자신이 약점이라 생각하는 부분을 방송을 통해 보완할 수 있으며, 전문 방송인의 립 서비스를 받으면 대중에 매력적인 모습을 보여주기 쉬워지기 때문이다. 정치인과 연예인이 비슷한 성질을 가진 직업군이라는 점으로 봤을 때, 정치인에게 있어 예능 출연은 실보다 득이 크다.

이로 인해 경쟁후보가 나오는 방송에 자신이 나오지 못하면 심하게 반발하는 경우도 생긴다.

방송사 입장에서도 나쁠 것은 없다. ‘뜨거운 감자’인 유력 정치인이 방송에 나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화제성을 가질 뿐 아니라 시청률도 크게 오른다. 방송 후에는 수많은 시사프로그램에 방송 장면을 바탕으로 리뷰하는 방송도 급격히 늘어나, 프로그램 홍보도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새로운 시청자를 흡수하는 새로운 기회다. 

팬 서비스
립 서비스

한 방송 관계자는 “비록 예년만큼 효과를 보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정치와 예능은 서로 윈윈 전략을 짜나가고 있다. 굵직한 선거를 앞둔 정치인의 예능 출연은 이어질 전망”이라며 “다만 정치인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대중을 호도하는 식의 역기능은 보완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intellybeast@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집사부’ 못 간 홍준표 왜?
 
정치인들의 예능 출연이 물밀 듯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홍준표 국민의 힘 대선 후보도 예능에 출연해 일상을 드러냈다. 

앞서 정치권에서는 지상파 방송인 SBS <집사부일체>에 보수 진영의 윤석열 후보, 진보 진영의 이재명‧이낙연 후보만 출연하는 것에 대해 홍준표 후보가 서운해할 것으로 점쳤다.

그런 상황에 홍 후보는 TV조선 <와이프 카드 쓰는 남자>(이하 <와카남>)으로 반전을 꾀했다.

여성들로부터 좋지 못한 지지율을 얻는 그는 <와카남>에서 아내와의 러브스토리를 풀고 설거지를 하는 등 가정적인 이미지를 드러냈다. 그는 “여성분들이 오해를 좀 풀었으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지속적으로 약점으로 거론된 여성 표심을 잡기 위한 방송 출연이었다고 평가했다. <와카남> 시청률은 1부 5.6%, 2부 4.6%로 기존 방송보다 소폭 상승했다. <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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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고객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쿠팡의 태도가 도마 위에 올랐다. 현재까지 대응만 봐서는 국민은 물론, 정부와도 전면전을 벌일 기세다. 새어나간 정보의 범위와 규모가 ‘역대급’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최악의 사태임에도 불구하고 쿠팡의 고개는 꺾일 줄 모르고 있다. 일각에서는 ‘뭘 믿고 저러나’ 소리가 나오는 중이다. 쿠팡의 고객 개인정보 유출 사건, 이른바 쿠팡 사태가 점입가경이다. 사태가 일어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수습은커녕 국민의 화만 돋우고 있다. 쿠팡의 대응 태도가 미지근한 수준을 넘어 뻔뻔한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 김범석 의장은 모습을 비추지 않고 보상안은 꼼수로 가득하다. 국민을 조롱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한 달 만에 고개 숙여 지난해 11월 말 3370만명에 이르는 쿠팡 고객의 개인정보가 ‘탈탈’ 털렸다. 앞서 쿠팡은 4500여건의 고객 정보가 유출됐다고 정부 당국에 신고했지만 2주 만에 그 수치는 7500배까지 늘어났다. 전 국민의 65% 수준이며 지난해 4월 SKT 개인정보 유출 사태 범위(2300만명)를 훌쩍 넘는 사태였다. 쿠팡은 이커머스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갖고 있다. 대형마트 등이 규제에 막혀 뒷걸음질 칠 때 쿠팡은 로켓배송으로 시장을 싹쓸이했다. 전날 저녁에 주문해도 새벽이면 물건이 문 앞에 와 있는 총알 배송에 소비자는 쿠팡으로 몰렸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비판을 받던 물류센터는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사태는 아이러니하게도 쿠팡이 국민의 실생활에 얼마나 스며들어있는지를 바로 보여줬다. 쿠팡 사태가 터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은 “쿠팡이 경쟁자가 없는 시장 지위를 누리고 있고 한국 고객이 데이터 유출에 덜 민감해 보인다”며 “잠재적 고객의 이탈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놨다. 그래서일까? 쿠팡은 역대 최악의 정보 유출 사태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도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이 언급하고 정부 차원의 TF가 꾸려졌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힘겨루기’를 하는 태도를 보이는 중이다. 최근에는 정부의 반박에도 자체 조사 결과를 고집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보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쿠팡은 지난달 25일 ‘정보 유출자는 3300만개 계정에 접근했으나 실제 저장한 정보는 3000여개에 불과하며 제3자 유출 정황은 없는 등 피해가 미미하다’는 내용의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면서 “(유출자는)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언론 보도를 접한 이후 저장했던 정보를 모두 삭제하고 범죄에 사용한 노트북을 파손해 하천에 던졌다”고 주장했다. 쿠팡은 “잠수부들이 벽돌에 담긴 쿠팡 가방에 든 노트북을 하천에서 회수했고 유출자가 클라우드 계정에 등록한 일련번호와 해당 노트북의 일련번호가 일치하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범행에 사용된 PC 와 노트북 등 모든 장치를 회수해 안전하게 확보했고 글로벌 보안업체들의 조사 결과도 진술 내용과 같았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매출 90% 나오는데 정보 유출 태도·대응 낙제점 쿠팡이 발표한 대로라면 고객 정보 유출 피해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든다. 또 유출자와 접촉해 장치를 확보했으니 추가 피해는 없다. 전체적으로 사건이 축소되는 것이다. 쿠팡의 발표에 정부는 강하게 반발했다. 쿠팡의 조사 내용은 사전에 정부와 어떤 논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됐다는 설명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는 “정보 유출 종류와 규모, 경위 등은 민관합동조사단이 조사 중인 사안”이라며 “쿠팡이 발표한 내용은 조사단에 의해 확인된 바 없다”고 밝혔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과도 “쿠팡 측이 제출한 진술서와 노트북 등 증거물을 분석 중”이라며 “사실관계를 면밀하게 확인하겠다”고 했다. 논란이 계속되자 쿠팡은 정부의 지시를 받아 조사를 진행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경찰은 사전 협의가 없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사실관계가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쿠팡은 지난달 26일 내놓은 입장문에서 “정부의 지시에 따라 수주간 진행한 조사였다”고 선을 그었다. 같은 달 9일 정부가 쿠팡 측에 유출자와 접촉할 것을 제안했고 14일 쿠팡은 유출자를 처음 만난 뒤 해당 사실을 정부에 보고했으며 16일에는 정부 지시에 따라 유출자의 데스크톱과 하드드라이브를 정부에 제공했다는 게 쿠팡 측 주장이다. 하지만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도 “쿠팡의 입장문 형식의 보도자료에서 정부와 협력했다는 내용 중 일부 국정원으로 추정되는 부분도 사실과 다르거나 왜곡된 부분이 있다”고 반박했다. 쿠팡이 자체 조사와 관련해 정부와 사실 공방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 김범석 쿠팡 의장이 사건 발생 한 달여 만에 사과했다. 그동안 박대준 전 대표가 청문회 등에서 뭇매를 맞고 있는 동안에도 김 의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정부의 압박이 거세지자 처음으로 입을 연 것이다. 5만원 상당 속사정은? 김 의장은 지난달 28일 “쿠팡의 창업자이자 이사회 의장으로서, 쿠팡 전체 임직원을 대표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저희의 책임으로 발생한 이번 데이터 유출로 인해 많은 분께서 자신의 개인정보가 안전하지 않다는 두려움과 불안을 느꼈고 사고 초기부터 명확하게 직접적으로 소통하지 못한 점으로 인해 큰 좌절감과 실망을 안겨 드렸다”며 “사고 직후 미흡했던 초기 대응과 소통 부족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한 달 만에야 입을 연 부분에 대해 “무엇보다 제 사과가 늦었다”면서 “모든 사실이 확인된 이후에 공개적으로 소통하고 사과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돌이켜보면 이는 잘못된 판단”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비판과 질책을 겸허히 받아들인다고도 했다. 하지만 자체 조사 논란에 대해서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김 의장은 “쿠팡은 조사 초기부터 정부에 전면적으로 협력해 왔다”며 “일련의 과정에서 많은 오정보가 확산하는 상황에서도 정부의 ‘기밀 유지’ 요청을 엄격히 준수했다”고 주장했다. 김 의장의 사과는 국회 6개 상임위원회가 참여하는 대규모 연석 청문회를 이틀 앞두고 나왔다. 정부가 범부처 TF를 과기부 총리 산하로 확대하고 다각도로 압수수색과 조사를 진행하는 등 대응 수위를 높이는 상황에 압박을 느꼈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그러나 사과와는 별개로 김 의장은 청문회에 불출석하겠다고 밝혔다. 김 의장뿐만 아니라 동생인 김유석 쿠팡 부사장, 강한승 전 쿠팡 대표 등이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면서 쿠팡에 대한 부정적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여기에 쿠팡이 내놓은 보상안도 도마 위에 올랐다. 쿠팡은 지난달 29일 고객 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해 총 1조6850억원 규모의 보상안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전체적으로 보면 1인당 5만원 상당이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뜯어보면 쿠팡의 ‘꼼수’가 보인다. 청문회는 나 몰라라 보상안은 ▲쿠팡 전 상품 구매 이용권 5000원 ▲쿠팡이츠 5000원 ▲쿠팡트래블 2만원 ▲명품 플랫폼 알럭스 2만원 등으로 구성됐다. 소비자들은 보상금의 상당 부분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 등 평소 이용 빈도가 낮은 서비스 이용권 위주로 구성된 점을 지적했다. 실제 이번 보상안을 통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를 처음 알게 됐다는 소비자도 있다. 시민단체도 쿠팡의 보상안에 반발했다. 참여연대는 “1인당 5만원 보상이라고 했지만 현금이 아닌 구매 이용권으로 사실상 강제 소비를 유도하는 방식”이라며 “보상이 아니라 매출 확대를 위한 마케팅에 불과하다”는 내용의 논평을 발표했다. 쿠팡의 행보는 사사건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국민을 조롱하고 정부를 기만하는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쿠팡이 미국 시장에 상장한 기업이지만 매출 대부분을 우리나라에서 벌어들이는 상황인데도 이 같은 태도를 보이는 것에 분노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회원 탈퇴, 보상안 거부, 집단소송 참여 움직임이 거세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심지어 이재명 대통령도 쿠팡 사태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쿠팡 사태가 일어나고 사흘 뒤인 지난달 2일 “쿠팡 때문에 국민의 걱정이 많다”면서 “사고 원인을 규명하고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관계부처는 해외 사례를 참고해 과징금을 강화하고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도 현실화하는 등 실질적인 실효적 대책에 나서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뒤늦은 사과·꼼수 보상안 도마 위에 이래서 정치권 인사 영입했나? 의혹 12일에도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반복되는 것에 대해 “경제 제재가 너무 약해서 규정 위반을 밥 먹듯이 한다”며 “앞으로는 규정을 위반해 국민에게 피해를 주면 엄청난 경제 제재를 당해서 ‘회사가 망한다’는 생각이 들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규정을 위반하면 난리가 나야 하는 것 아니냐”며 “그런데 위반해도 태도를 보면 ‘그래서 어쩔 건데’ 이런 느낌이 든다”고 지적했다. 정부도 쿠팡에 강력하게 경고하며 전방위 대응을 예고했다. 실제로 같은 달 29일, 배경훈 부총리 겸 과기부 장관 주재로 ‘쿠팡 사태 범정부TF’ 회의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과기부와 경찰청, 개인정보위원회, 금융위원회 등은 역할을 분담해 신속한 조사를 진행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배 부총리는 “쿠팡이 국내 고객 정보 3000만건 이상을 유출한 것은 명백한 국내법 위반 사항으로 정부는 쿠팡이 관련 법령을 위반한 사실이 확인될 경우, 다른 기업과 동일하게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에 따라서는 영업정지 여부도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 사방에서 몰아치는 압박에도 쿠팡이 연달아 이상한 행보를 보이자 ‘믿는 구석’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그 정도로 쿠팡의 현재 대응 방식을 이해할 수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쿠팡이 미국 기업인 것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 증시가 쿠팡의 모든 결정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라는 것이다. 실제 쿠팡이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한 다음 날 미국 뉴욕 증시에서 쿠팡의 주가는 6% 급등했다. 국내에서는 쿠팡의 ‘셀프 조사’에 분통을 터트리고 있는데 미국 시장에는 호재로 작용한 것이다. 쿠팡이 정치·국회 인사를 대거 영입한 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정치권 인사를 영입해 쿠팡 관련 각종 논란을 틀어막고 있다는 의혹이다. 해당 의혹은 ‘강력 경고’ ‘전방위적 대응’ 등의 수사를 사용하고 있지만 실제 조사는 흐지부지될 것이라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나오는 배경으로도 꼽힌다. 변죽 울리다 무사통과? 실제 최근 원내대표직에서 사퇴한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이 국정감사를 한 달여 앞둔 시점에 박대준 전 쿠팡 대표 및 대관 총괄과 오찬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쿠팡이 일용직 퇴직금 미지급 사건에서 검찰 외압 의혹, 물류센터·배송 기사의 과로 및 산재 사망 문제가 제기된 상황이었던 만큼 적절성 논란이 불거졌다. 김 의원은 그달 16일 자신의 SNS에 “공개 일정이고 적어도 5명이 (함께) 식사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만남보다 대화의 내용이 중요한 것 아니냐? 참고로 지난해 7월16일 쿠팡 물류센터도 방문했었다”고 적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