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권 잠룡들의 예능 나들이 손익계산서

웃기는 정치인 무조건 좋을까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대한민국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있다. 20대 대통령을 가리기 위한 각 당의 경선이 치열하게 진행 중이다. 모든 후보가 정책을 바탕으로 캐치프레이즈를 걸고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온 힘을 다한다. 그 과정에서 상대 후보를 공격하거나 상대 후보의 공격에 방어한다. 때론 인상을 붉히는 일도 발생한다. 선거의 승패를 가르는 건 이성보다 정서다 보니 공방을 하는 중에도 이미지 관리에 신경 써야 한다.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내기에 가장 좋은 플랫폼은 예능 출연이다. 차기 유력 대권후보들이 예능 나들이에 나서고 있다. 

총과 칼을 들고 국민을 통치하던 군부 독재 시절만 하더라도, 국가의 대소사를 관장하는 정치인이 TV 프로그램에서 코미디언과 웃음을 나누는 일은 상상할 수 없었다. 당시만 해도 방송사에 보도 지침을 내리는 주인에겐 아마 격에 맞지 않는 행위라고 판단했을 공산이 크다. 

선거철 
통과의례

전두환 전 대통령의 6·29 선언 뒤 직선제가 실현되고, 민주 정권이 돼서도 마찬가지였다. 여야를 가리지 않고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정치인은 없었다. 최초의 연결고리는 1996년 MBC <이경규가 간다>였다. 

새벽 3시가 넘는 마라톤 회의 끝에 당시 DJ(고 김대중 전 대통령)를 만나기로 한 <이경규가 간다>의 이경규는 출근하는 DJ 맞아 갑작스럽게 인터뷰를 진행한다.

흔쾌히 ‘합시다’라고 수락한 뒤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72세의 DJ는 가장 좋아하는 가수로 서태지를 언급하고, 고 이희호 여사와 공원을 산책하는 등 특유의 소탈한 모습과 탈권위를 보이면서 국민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았다. 당시 시청률은 40%가 넘을 정도로 화제성이 강했다.


그로부터 11년이 지난 2007년 고 노무현 대통령은 MBC <느낌표>에 권양숙 여사와 함께 출연해 대중과 직접 소통했다. 권 여사와 첫 만남부터 데이트를 이어가게 된 이야기, 어릴 적부터 책을 좋아했다는 사연과 이를 통해 연설하러 다니면서 큰 효과를 받았다는 추억 등을 유머러스하게 풀어냈다. 

아무리 예능이라 하더라도 대통령과의 만남이다 보니, MC들도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청와대 주요 인사들이 방청객을 차지하고 있는 모습도 생경한 풍경이다. 그럼에도 신비주의에 둘러싸인 정치인의 사적인 영역이 드러나면서 당시에는 어마어마한 화제가 됐을 뿐 아니라 정권의 지지율에도 적잖은 효과가 있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정치인이 예능에 출연하는 건 국가적 이벤트에 해당하는 사안이었다. 국정을 처리하느라 바쁜 정치인들이 예능에서 소탈한 이미지를 보여주는 것이 개개인에게 효과적인지 의문이었을 뿐 아니라, 방송사 역시 이 같은 기획에 미진했다.

대통령과 같은 인물이 아니고서는 정치인이 굳이 나올 이유가 없었다.

그러한 인식을 바꾼 대표적인 인물은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다. 의사부터 공대 교수까지 거친 특이한 이력이 있던 안 대표가 MBC <황금어장-무릎팍도사>에 출연하면서 예능과 정치의 연결고리가 끈끈해졌다.

당시 연예인 신변잡기식 방송에서 벗어나 사회 저명인사의 출연을 통해 프로그램의 변화를 꾀하던 <무릎팍도사>의 눈에 안 대표가 눈에 띈 것.

제작진은 2008년부터 안 대표에게 섭외를 제안했다. 당시 미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안 대표는 강연과 인터뷰가 물밀 듯이 쏟아졌고, 카이스트 석좌교수로서 강의를 우선순위로 둬 “제안은 감사하지만, 적절치 않은 상황”이라며 출연을 고사했다.


<이경규가 간다>부터 <집사부일체>까지
정치와 예능 사이에 얽힌 연결고리는?

집요한 <무릎팍도사> 제작진은 1년이 지난 후에도 꾸준히 출연을 요청했다. 당시 회사 임원들조차 출연을 막았다는 후문이다. 연예인들이 출연하는 프로그램에 안 대표(당시 박사)가 나가면 희화화될 수 있다는 게 논리였다.

반대로 카이스트 학생들은 출연을 반겼고, 안 대표는 고민 끝에 출연을 결심했다. 그렇게 역사적인 방송이 만들어진 것. 

방송은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특이한 이력의 안 대표가 살아온 길과 진정성 있는 이야기에 찬사가 이어졌다. 

안철수 신드롬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정도였다. 당시 정치권에 혐오를 느끼던 국민은 새로운 인물론을 부각하며 안 대표를 정치권으로 호출했다. 2011년 서울시장 선거를 앞두고 안 대표의 지지율은 50%가 넘었다. 정치권에 발을 담그지도 않은 신인에게 이러한 지지를 보내는 것 자체가 이례적인 현상이었다. 

당시 변호사이자 아름다운재단 상임이사였던 고 박원순 서울시장과 단일화한 이후 그를 향한 국민의 지지는 더욱 강해졌다. 가히 예능이 배출한 정치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후 정치권에서 끊임없이 하락세를 거듭했고, 최근 서울시장 선거 경선 과정에서 오세훈 서울시장에 패배하는 등 지금에야 그에 대한 지지가 예년만큼은 아니다 하더라도, 여전히 그의 존재감은 정치권에 중요하게 작동한다.

안 대표의 삶이 예능 프로그램 출연 이후 완전히 달라진 것을 미뤄봤을 때 예능이 정치인에게 어떤 효과를 주는지 분명히 알 수 있는 계기가 됐다. 

비슷한 시기 팟캐스트의 시초인 <나는 꼼수다>의 역할도 정치와 예능이 끈끈해지는 데 일조한 프로그램이다. 당시 진보진영의 정치인들은 <나는 꼼수다>에 나와 정책적 기조를 설명하는 것은 물론 권력에 대한 가치관, 개인사를 털어놓고, 때로는 첨예한 논란에 적극 해명하기도 했다. 

“계파가 누가 있냐” “리더십 부재에 대한 평가에 어떻게 생각하느냐” “꼭 당신이 이 직책을 맡아야 하느냐” 등 후보가 쉽게 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거침없이 던졌다. 당황하면서도 유려하게 넘어가는 장면에서 팬덤이 생기기도 했다. 진보진영 인사들이 대중에 각인되는 계기가 됐다. 

예능이
낳았다

진보진영에서 강세를 보인 팟캐스트 대안 언론의 서포트를 받은 사람들은 국회에 진입하는 등 새로운 형태의 정치가 시작됐다.


아울러 JTBC <썰전>도 정치가 대중의 일상에 스며들도록 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MC 김구라를 중심으로 진보와 보수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토론 과정은 그 어떤 예능 프로그램보다 박진감이 있었다. 서로 의견이 나뉘어 싸우다가도 국가의 중차대한 문제 앞에서 화합하는 장면은 정치의 묘미를 전달하는 대목이기도 했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정치와 예능이 결합된 방송 프로그램으로 대표적인 예다. 

2012년 당시 후보였던 박근혜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이 SBS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에 출연했다. 당시 보수 진영 후보였던 박 전 대통령은 중학교 시절 비키니 수영복을 입은 사진을 공개했고, 문 대통령은 특전사 시절 사진을 공유하며, 격파 시범을 선보이기도 했다. 

각각 친근하고 소탈하거나, 강하고 믿음직스러운 이미지를 연출했다. 예능이 정치인의 이미지 제고에 활용됐다. 

이후에는 국내 중요한 선거가 있을 때마다 정치인이나 혹은 유력 후보의 예능 진출은 통과의례가 됐다. 지방선거나 총선 등 국내 굵직한 선거에서 예능에서 편안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 자체가 방송사나 정치인으로서 이득이 되는 것이 많다는 판단에서다. 

실제로 국민의힘 나경원 전 국민의힘 의원과 더불어민주당 후보였던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지난 4월 재보궐선거를 3개월 앞두고 TV조선 <아내의 맛>에 출연했다. 또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성남시장 시절 SBS <동상이몽2>에 출연해 남편 이재명의 민낯을 드러내기도 했다. 


해당 프로그램은 관찰 예능으로 토크쇼와는 달리 집안에서의 사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정치인의 일상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대목에서 대중은 해당 인물의 매력을 느낀다는 반응을 보였다. 대중의 반응이 크자 미디어 비평 전문가들은 대중을 호도한다며 비판했다.

대중의 눈
못 속인다

예능에서 짜여진 모습을 실제로 믿는 대중이 많다면서 위험성이 높다는 게 요지였다.

최근에는 정치인의 예능 출연이 예전만큼 높은 파급력을 갖지는 못하고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지지율이 급반등 된다거나, 정치적 논란이 완벽하게 해소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 

이미 대중이 정치인의 사적인 영역과 공적인 영역을 분리하는 인식이 생겼기 때문에, 안철수 대표나 DJ와 같은 드라마틱한 효과를 보지는 못한다는 의미다. 기존 지지자들을 결집시키는 데만 효과를 본다는 주장이 나온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과거 이명박 전 대통령의 국밥 영상과 같은 효과를 보는 시대는 지나갔다. 국민 대다수가 정치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정치인의 공과 사를 구분해내는 능력이 생겼다”며 “현재 예능 출연은 각 후보의 인기를 검증하는 차원이다. 엄청난 효과를 보는 시대는 지나갔다”고 말했다. 

한창 경선 과정이 진행되고 있는 최근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 이재명·이낙연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SBS <집사부일체>에 출연했다. 검찰총장 출신인 윤 후보는 밥을 직접 해주는 형님 리더십을 부각시켰고, 각종 논란에서도 호탕하게 넘어가는 모습을 보였다.

비교적 순한 이미지인 <집사부일체> 패널의 공격에 웃음으로 대응했다. 

언변에 능하지 않은 윤 후보는 현안에 초점을 두기보다는 과거 검사가 되는 과정과 검찰 시절의 모습, 평소 생활 등 인간 윤석열을 보여주는 데 집중했다. 게스트에 따라 장소와 내용 모든 것이 바뀌는 <집사부일체>의 윤석열 편은 관찰 예능이 더러 섞인 SBS <돌싱포맨>과 비슷한 형태의 포맷이었다. 

반대로 이재명 후보는 논란에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집이 아닌 새로운 공간에서 <집사부일체> 패널과 만난 이 후보는 각종 논란에 해명하는 시간으로 할애했다. 현 후보 중 가장 의혹 거리가 많은 그는 <집사부일체>를 해명의 기회로 만들려는 의지가 엿보였다. 

“약점 보완에 매력 어필도 쉬워”
“결정 못한 지지자 얻을 기회도”

직설적인 화법을 갖고 있고, 언변에 화려한 그가 어떤 형태로 예능을 활용하려 했는지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이재명 후보의 <집사부일체>는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나 tvN <유퀴즈 온더 블록>과 같은 토크쇼 형태였다. 

이낙연 후보는 유일하게 아내 김숙희씨와 함께 나왔다. <집사부일체> 패널과 식사를 하면서 평소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데 주력했다. 유머감각 면에서 단점이 있는 이 후보에게 편안함을 주면서 재미의 영역을 아내를 통해 만들어낸 것.

정덕현 평론가는 “<집사부일체>의 포맷을 보면서 각 후보가 어떤 면을 부각시키려 하고 숨기려 하는지 각각의 장단점을 읽을 기회가 됐다”며 “윤 후보는 리더십을 드러내고, 인간적인 면을 보여주려 했고, 이 후보는 의혹을 정면돌파하는 데 중점을 뒀다. 이낙연 후보는 인간적인 면모의 보완에 집중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정치인의 예능 출연은 일종의 팬 서비스 형태로 변화했다. 선거철 표를 달라고 국민을 만나고 다니는 것의 또 다른 형태”라며 “예능 출연이 화제성 면에서 약간의 효과는 있겠지만, 대세를 바꿀 정도로 큰 역할은 하지 못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치와 예능 간에는 이해관계가 정확히 맞물린다. 정치인들은 자신이 약점이라 생각하는 부분을 방송을 통해 보완할 수 있으며, 전문 방송인의 립 서비스를 받으면 대중에 매력적인 모습을 보여주기 쉬워지기 때문이다. 정치인과 연예인이 비슷한 성질을 가진 직업군이라는 점으로 봤을 때, 정치인에게 있어 예능 출연은 실보다 득이 크다.

이로 인해 경쟁후보가 나오는 방송에 자신이 나오지 못하면 심하게 반발하는 경우도 생긴다.

방송사 입장에서도 나쁠 것은 없다. ‘뜨거운 감자’인 유력 정치인이 방송에 나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화제성을 가질 뿐 아니라 시청률도 크게 오른다. 방송 후에는 수많은 시사프로그램에 방송 장면을 바탕으로 리뷰하는 방송도 급격히 늘어나, 프로그램 홍보도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새로운 시청자를 흡수하는 새로운 기회다. 

팬 서비스
립 서비스

한 방송 관계자는 “비록 예년만큼 효과를 보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정치와 예능은 서로 윈윈 전략을 짜나가고 있다. 굵직한 선거를 앞둔 정치인의 예능 출연은 이어질 전망”이라며 “다만 정치인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대중을 호도하는 식의 역기능은 보완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intellybeast@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집사부’ 못 간 홍준표 왜?
 
정치인들의 예능 출연이 물밀 듯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홍준표 국민의 힘 대선 후보도 예능에 출연해 일상을 드러냈다. 

앞서 정치권에서는 지상파 방송인 SBS <집사부일체>에 보수 진영의 윤석열 후보, 진보 진영의 이재명‧이낙연 후보만 출연하는 것에 대해 홍준표 후보가 서운해할 것으로 점쳤다.

그런 상황에 홍 후보는 TV조선 <와이프 카드 쓰는 남자>(이하 <와카남>)으로 반전을 꾀했다.

여성들로부터 좋지 못한 지지율을 얻는 그는 <와카남>에서 아내와의 러브스토리를 풀고 설거지를 하는 등 가정적인 이미지를 드러냈다. 그는 “여성분들이 오해를 좀 풀었으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지속적으로 약점으로 거론된 여성 표심을 잡기 위한 방송 출연이었다고 평가했다. <와카남> 시청률은 1부 5.6%, 2부 4.6%로 기존 방송보다 소폭 상승했다. <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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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구로발’ 국민의힘 당원 명부 유출 의혹

[단독] ‘구로발’ 국민의힘 당원 명부 유출 의혹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서울의 한 지역구에서 특정 당의 당원 명부가 유출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2020년부터 2022년까지 총선, 지방선거 등을 치르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로, 당 관계자의 업무용 노트북에 담겨있던 정보가 뒤늦게 드러난 것이다. 올림픽 육상 100m 경기를 생각해 보자. 8개 레인에 각 나라를 대표하는 선수들이 선다. 이 선수들은 국내 선발전에서 1등을 차지했을 것이다. 국가대표로 뽑힌 선수는 올림픽에 출전해 예선을 치르고 결승에서 금메달을 다툰다. 0.01초 차이로 메달 색깔이 달라지는 경기에서 승자는 늘 단 1명뿐이다. 치열한 공천 경쟁 선거는 올림픽보다도 더 확고한 ‘승자 독식’ 구조다. 올림픽에선 2등에게 은메달, 3등에게 동메달이라도 주지만 선거에서 2등은 꼴찌와 같다. 당선자는 후보자에서 국회의원, 시·군·구의원, 구청장·군수, 시·도지사 등으로 신분 상승이 이뤄진다. 명예와 권력을 동시에 거머쥘 수 있는 자리로 순식간에 올라가는 셈이다. 이렇다 보니 선거에 출마하려는 후보들은 당선 가능성이 큰 자리로 몰린다. 어떤 경기든 일단 출발선에 서야 경쟁을 할 수 있듯, 선거에서 공천은 본선으로 가기 위한 1차 관문이 된다. 자리는 하나, 후보는 여럿이니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 일례로 최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에서 불거진 공천 헌금 의혹은 자리를 돈으로 사려 했다는 내용으로, 관련자는 구속됐다. 최근 서울 구로구에서 일어난 당원 명부 유출 의혹도 공천 경쟁 과정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의 업무용 노트북에서 수십개의 엑셀 파일이 발견됐는데 그중 일부가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였고 이름, 연락처, 거주지 등이 포함된 이 파일이 상대 당의 후보 경선에 사용됐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2020년 21대 총선 당시 서울 구로을 지역구에서 거물급 인사가 후보로 맞붙었다. 구로을 지역은 서울에서 민주당 지지세가 가장 강한 곳이다. 17대(2004년)부터 지난 22대(2024년) 총선까지 20여년간 민주당이 이겼다. 민주당(당시 통합민주당)이 사상 최악의 패배를 당한 18대 총선에서도 구로을 지역은 넉넉하게 수성한 바 있다. 업무용 노트북에서 발견 이름·연락처·거주지 담겨 구로에서만 평생 살았다는 한 시민은 “선거 때마다 텃밭, 험지 이런 말을 많이 쓰지 않나. 구로는 국민의힘 입장에서 ‘사지’다. 민주당이 아주 꽉 잡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 보니 총선 등에서 민주당 후보가 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몇몇 인사들은 바닥부터 훑어가며 선거를 준비한다. 민주당은 21대 총선 때 구로을 지역 후보로 윤건영 의원을 전략공천 형태로 낙점했다. 윤 의원은 당시 문재인정부 청와대 국정기획상황실장을 맡고 있었다. 현재까지도 문재인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복심으로 불린다. 국민의힘은 서울 양천을 지역에서 내리 3선을 지낸 김용태 전 의원을 ‘자객’ 공천했다. 민주당의 독식으로 관심 지역에서 벗어나 있던 구로을이 순식간에 ‘격전지’로 떠올랐다. 문제는 구로을 지역 총선 출마를 준비하던 예비후보들이 있었다는 점이다. 이 가운데 민주당 조규영 전 서울시의원의 반발이 거셌다. 조 전 시의원은 2006년 지방선거에서 서울 비례대표로 정치권에 입성, 이후 구로2선거구에서 서울시의원으로 재선했다. 조 전 시의원은 최소한 경선은 치를 수 있게 해달라며 민주당의 전략 공천을 비판했다. 당시 조 전 시의원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기존 지역 당원 수보다 더 많은 권리당원을 모았다. 열심히 뛰었다. 누구와 경쟁하든 경선에서 이길 자신이 있었다”며 “그러나 결과는 낙하산 공천이었다. 저는 특혜나 찬스를 원하지 않았다. 공정한 경선만을 바랐다. 낙하산 공천은 공정하지도 않고 본선 경쟁력도 없다”고 강조했다. 어디에 사용했나 조 전 시의원은 노숙 단식까지 해가며 경선을 촉구했지만 결국 낙천했다. 이후 다른 선거에도 출마하지 않았다. 잊히는 듯했던 조 전 시의원의 이름이 최근 다시 거론되고 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업무용 노트북에서 조 전 시의원의 이름이 표기된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가 발견된 것이다.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국민의힘 당원들의 이름과 연락처, 행정동 등이 기재된 엑셀 파일은 ‘(보안철저)저쪽디비’ 폴더에 담겨있었다. 해당 파일의 ‘구분’ 부분에 ‘조규영 일반 당원’이라고 표기돼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는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가 맞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에 민주당 구로을 국회의원 예비후보였던 조 전 시의원의 이름이 기재돼있다는 점에서 의심이 촉발됐다. 동시에 누가 노트북에 해당 파일을 옮겼는지도 관심사로 떠올랐다. 문서가 발견된 노트북은 2020년 총선 과정에서 당원협의회에 업무용으로 지급된 것으로 알려졌다. 다시 말해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만 사용할 수 있었다는 뜻이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 비례대표로 구로구의회에 입성한 A 구의원이 해당 노트북을 사용했다. A 구의원은 2022년 국민의힘 비례대표 후보로 공천을 받아 당선됐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여성부장을 맡은 이력도 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에 따르면, 문제의 노트북은 A 구의원이 여성부장으로 활동할 무렵 사용했다가 후임자에게 넘겼다. 그는 “이후 여성부장이 바뀔 때까지 쭉 A 구의원이 가지고 있던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쉬쉬하다 이제서야 눈여겨볼 대목은 A 구의원의 이력이다. 그는 2022년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 소속으로 비례대표 순번을 받아 당선됐지만, 2020년 총선 때까지만 해도 민주당 조 전 시의원을 보좌하는 수행비서 역할을 했다. 실제 조 전 시의원이 예비후보로 선거운동을 하는 모습이 찍힌 사진 곳곳에서 A 구의원을 확인할 수 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에 따르면 “A 구의원은 조 전 시의원 낙천 이후 김용태 전 의원 배우자의 수행비서로 발탁됐다. 김 전 의원의 측근이 A 구의원을 추천한 것으로 안다”며 “2020년 총선에서 김 전 의원이 낙선하고 당협위원장으로 있을 당시 A 구의원이 비례대표로 공천받았다”고 설명했다. 민주당 측 정치인을 수행했던 인사가 국민의힘 소속으로 선거에 출마한 데 이어, 그가 직접 사용한 노트북에서 자신이 보좌했던 사람의 이름으로 파일명이 기재된 국민의힘 당원 명부가 발견된 셈이다. A 구의원이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를 민주당 측에 유출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대목이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는 “A 구의원이 조 전 시의원을 수행할 당시 지역구 경선을 대비해 당원 명부를 입수한 게 아닌가 싶다”며 “당시 경선까지 진행되지 않았기에 당원 명부가 실제 사용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문서를 가지고 있었다는 자체만으로도 의아한 점이 많다”고 말했다. 또 다른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는 “사실 이 문제는 올해 1월경에 처음 드러났다. A 구의원이 당원협의회에 노트북을 반납하고 확인하는 과정에서 해당 폴더가 발견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쉬쉬’하다가 최근에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왔다”고 설명했다. 당협 회의에서 논의 A 구의원 “문제없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A 구의원의 당원 명부 유출 의혹은 지난 1월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에서 논의됐다. 해당 의혹이 구로 지역에서 확산하자 A 구의원이 먼저 이 문제를 먼저 거론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당원협의회 회의에 참석했던 관계자에 따르면 대부분 위원은 ‘덮고 가자’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고 한다. 문제가 불거지면 지방선거를 망칠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일부 관계자가 “심각한 개인정보 유출” “해당 행위”라고 주장하면서 조사를 요청했지만 그 수가 많지 않아 관철되지 않았다. 회의에 참석한 한 위원은 “선거를 치르다 보면 당원 명단이 일부 흘러 다니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이렇게 명부가 통째로 유출되는 건 심각한 일”이라며 “명백한 해당 행위다. 자체 조사를 통해 징계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 윤리위원회 규정 제20조(징계사유)에 따르면 ▲당에 극히 유해한 행위를 했을 때 ▲현행 법령 및 당헌·당규·윤리 규칙을 위반해 당 발전에 지장을 초래하거나 그 행위의 결과로 민심을 이탈케 했을 때 등의 사유로 징계할 수 있다고 돼있다. 해당 관계자는 A 구의원의 행위가 당에 극히 유해한 행위라고 주장했다. 경찰 수사가 진행될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해당 행위? 징계 가능성? A 구의원은 해당 의혹은 전부 해명됐다는 입장이다. 그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당협 회의에서 이 문제가 논의됐는데 문제없다고 결론 났다. (당원 명부 유출 의혹은) 일고의 논의 가치도 없는 주장”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해당 의혹을 언급한 제보자에게 허위사실 유포, 명예훼손 등으로 조치할 수 있다는 점을 전해 달라”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