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 넘은 금융권 모럴헤저드 실태 고발

  • 한종해 han1028@ilyosisa.co.kr
  • 등록 2012.09.12 14:3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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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돈으로 '빚잔치'…"내 돈 어디에 맡기나?"

[일요시사=한종해 기자] 돈을 믿고 맡길 데가 없다. 집에 쌓아두자니 '도둑'이 무섭고 통장에 넣자니 '은행'이 무섭다. 은행들이 고객돈으로 개인 잇속 챙기기에 여념이 없다. 횡령·배임·불법대출을 넘어 고액배당·정보유출까지 탐욕은 끝이 없다. 징계자는 작년에 비해 2배 이상 급증했는데 감시망은 여전히 허술하기만 하다.

 

경기 일산경찰서는 지난달 29일 고객이 예치한 돈을 빼돌린 혐의로 우리은행 최모 차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우리은행 등에 따르면 최씨는 2010년 6월부터 2011년 6월까지 1년간 13회에 걸쳐 고객돈 31억원을 횡령하다 은행 내부감사에 적발됐다.

최씨는 고객이 정기예금에 가입하고 2억5000만원을 맡겼을 때 1000만원만 입금하고 2억5000만원이 입금된 것처럼 통장에 가짜 잔액을 붙이는 수법을 사용했다. 정상거래 내용을 임의로 출력해 통장에 오려 붙이는 수법으로 고객들을 속였지만 은행 간부라 별다른 의심을 받지 않았다.

31억 가져갔는데
은행 1년간 몰라

최씨는 30억원이 넘는 돈을 주식 선물옵션에 투자했다 모두 탕진한 것으로 조사됐다.

문제는 우리은행이 이러한 사실을 한동안 알아채지 못했다는 것이다. 지난 6월에서야 감사를 통해 적발해 경찰에 고발했다.


이에 앞서 우리은행은 지점장급 전·현직 은행원 3명이 지난 2005년 6월부터 2008년 10월까지 채권보전절차 없이 1350억여원의 PF대출을 해 주는 조건으로 수억원의 뭉칫돈과 함께 골프 등의 접대를 받은 것이 밝혀져 물의를 일으킨 바 있다.

이 일로 우리은행은 서울 회현동 본점이 경찰 특수수사과에 압수수색을 당하는 굴욕을 겪었고 최근에는 서울 양재동 화물터미널 부지에 복합 유통센터를 조성하는 파이시티 사업과 관련해 의혹이 일고 있다.

지난 2010년 우리은행이 파이시티의 사업권을 뺏기 위해 청와대에 비리 첩보를 제보하고 의도적으로 파산신청을 냈다는 주장인데 은행 측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의혹은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신한은행에서는 직원 18명이 고객이 낸 수수료 수억원을 가로채 전원 면직처리 당한 일도 발생했다.

지난 3일 금감원 등에 따르면 신한은행 서울 서교동 지점 한 직원은 지난해 기업고객들이 납부한 신용평가수수료 등 각종 1회성 수수료 2억여원을 수차례 걸쳐 빼돌리다 올해 초 고객의 민원제기로 덜미가 잡혔다.

이를 계기로 신한은행이 전체 지점을 대상으로 전수조사를 벌였고 이 결과 직원 18명이 적발됐다. 조사결과 이들은 수수료 영수증을 허위로 발급해준 뒤 여러 차례에 걸쳐서 적게는 40만원에서부터 많게는 수천만원에 이르는 돈을 횡령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달 28일에는 2010년 9월 '신한사태'를 앞두고 신한은행 직원들이 재일교포 주주의 계좌를 무단으로 열람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금감원은 "신한은행 사태를 앞두고 양용웅 재일한국인본국투자협회장과 그 가족의 계좌를 신한은행 측이 무단 열람했다는 민원이 제기됐다"고 밝혔다. 이어 "계좌 열람 권한이 있는 직원들이 본 것인지 아니면 무단으로 열람한 것인지는 아직 파악되지 않고 있다"며 "오는 10월 신한은행 종합검사 때 이 부분을 집중 조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횡령·정보유출·서류조작까지 '비리백화점'
비리 징계자 지난해 2배…근본 대책 절실

양 회장은 신한지주 사외이사를 역임했으며 신한지주 주식 100만주 이상을 가진 재일교포 주주모임 회원이다. 양 회장은 2010년 신상훈 전 사장의 사퇴를 반대한 바 있다. 때문에 양 회장 계좌 무단 열람이 신 전 사장 진영의 약점을 잡기 위해 이뤄졌다는 사실이 확인될 경우 파문이 예상된다.

감사원이 지난 7월23일 발표한 '금융권역별 감독실태' 공개문에서는 신한은행이 개인신용대출 금리를 매길 때 대출자의 학력 수준에 비례해 차등을 뒀다고 알려지면서 비난 여론이 거세게 일었다.

신한은행은 고졸 이하 대출자에 13점을, 석·박사 학위자에는 54점을 줬다. 4배 이상 차이가 나는 것. 신용평점은 곧바로 대출승인 여부와 대출금리에 영향을 준다는 점에서 당시 신한은행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국민은행은 아파트 중도금 대출 서류를 직원이 고객 동의를 받지 않고 조작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물의를 빚고 있다. 여기에 본점 영업감사부가 금감원의 근거리 감독하에 중도금 집단대출 서류를 검사하는 중 약 4000~5000여건의 조작사실이 적발되면서 "직원 실수"라고 해명한 국민은행에 찬물을 끼얹었다.

대출 만기를 은행직원이 멋대로 바꾼 사례가 가장 많았고 고객 대신 서명을 하거나 대출금액을 고친 일도 있었다.

지난 7월에는 고객돈을 마음대로 인출해 쓴 전직 국민은행 고객관리팀장 이모씨에 징역 2년이 선고됐다. 이씨는 2007년 8월 중순부터 지난해 9월 말까지 중랑구 국민은행 모 지점의 VIP고객관리팀 사무실에서 27회에 걸쳐 고객 5명의 예금 약 10억4000만원을 인출해 생활비 등 개인적인 용도로 쓴 혐의로 기소됐다.

올해 1월까지 고객예금을 관리하며 펀드와 보험 등 각종 금융 상품의 관리와 판매 업무를 맡아왔던 이씨는 펀드 실적을 높이기 위해 투자자를 모집했으나 큰 손실이 발생해 고객 예금에 손을 댄 것으로 드러났다. 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 투자한 주식에서도 손실이 발생하자 생활비와 개인 주식 투자를 위해 고객돈을 인출하기도 했다.

국민은행에서는 지난 2월 경기도 포천의 한 지점에서도 지점장이 자신이 관리하던 고객돈 28억5000만원을 인출해 달아난 사건도 있었다.

하나은행은 지난 5월 금감원으로부터 기관경고와 과태료 2750만원 처분을 받았다. 또한 임직원 28명을 징계하라는 지시를 받기도 했다. 상품권 횡령, PF 대출 부당 취급, 이사회 결의의무 위반 등 온갖 비리가 적발됐기 때문이다.

당시 금감원에 따르면 하나은행 직원 김모씨 등은 2008년 6월부터 3년간 기업들이 국민관광상품권을 수천만원씩 사들인 것처럼 서류를 조작하고 상품권을 빼돌려 현금화했다. 횡령 규모가 174억4000만원에 달했지만 하나은행 측은 사고를 인지하지도 못했다.

우리·신한·국민·하나
그들만의 '돈잔치'


하나은행은 2268억원 규모의 PF 대출을 취급하면서 여신심사를 제대로 하지 않아 1506억2800만원의 손실이 발생하기도 했다.

또한 대주주 특수관계인들에게 총 7100억원의 신용공여 안건을 이사회에서 처리하면서 의결 정족수를 채우지 못했는데도 안건을 의결하기도 했다.

이밖에도 ▲파생상품 회계 부당처리 ▲금융거래 실명확인 의무 위반 ▲예금잔액증명서 부당발급 ▲고객신용정보 부당 조회 ▲대출금 용도 외 유용 및 사후관리 불철저 ▲담보 및 보증 설정업무 불철저 ▲그룹 내 임직원 겸직업무 불철저 ▲은행장 승인 없이 외부 영리업무 영위 등의 문제가 발견됐다.

모럴헤저드는 제2금융권에서도 심하게 나타났다. 특히 신협·농협·수협 등 상호금융회사 행태가 '위험수위'인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5일 금감원에 따르면 광주광역시 우산신협은 직원 가족 등 특수관계인에게 11억원을 빌려주고 대출 상환이 연체되자 7000만원의 대출을 일으켜 이자를 메웠다. 또 이런 사실을 숨기기 위해 대출 이자를 내부 전산에서 삭제하기도 했다. 더욱이 우산신협은 5차례나 징계를 받은 직원 3명을 9차례나 승진시키고 3차례 자체 표창과 특별 승급 혜택도 부여했다.

불법대출이 적발되자 징계를 피하기 위해 공사를 미끼로 건설업자에게 4000만원을 빌려주고 다시 받아 갚기도 했다.


지난 5월에는 역시 광주시에 소재한 퇴촌신협에서 여직원 김모씨가 10년에 걸쳐 고객 예금 66억여원을 횡령한 사건도 발생했다.

신협·농협·수협
'비리백화점'

김씨는 조합원 명의의 청구서를 위조해 임의 해지 후 예금을 출금하거나 조합원이 요청한 입금액보다 적은 금액만 입금시킨 다음 입금되지 않은 나머지 돈을 횡령하는 수법 등을 사용했다.

농협도 간부와 조합장들이 잇따라 각종 비리혐의로 경찰조사를 받으면서 곱지 않은 시선을 받고 있다.

지난 2일 경남 마산중부경찰서는 투자사업과 관련해 특정 업체에 혜택을 주고 공금을 가로챈 혐의 등으로 마산시농협 간부 윤모, 강모, 차모씨 등 3명을 농업협동조합법 위반 등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고 밝혔다.

지난 7월에는 대출청탁 명목으로 수천만원을 받은 혐의로 경남 도내 모 지역 농협 조합장 박모씨가 경찰에 형사입건됐고 지난 1월에는 전국 지역 단위농협에서 수백억원의 대출비리가 포착되기도 했다.

수협은 더하다. '비리백화점'이라 불릴 정도다. 경북 포항수협에서는 수협 대의원과 이사 선거 과정에서 20여명의 수협 임원과 조합원들이 돈 봉투를 돌린 것으로 밝혀졌다. 전남 목포수협에서도 지난해 9월 목포수협 조합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특정 후보 지지를 부탁하며 조합원들에게 수십만~수백만원을 건넨 혐의로 5명의 조합원이 불구속 기소됐다.

제주수협에서는 수협 저장냉동고에서 2000여만원 상당의 갈치와 30여만원 상당의 어업용 면세유 400ℓ가 도난당했는데도 제주수협이 사건 발생 두 달이 지나도록 관련 내용을 수협중앙회에 보고하지 않아 제주해양경찰서가 수사에 착수했다.

부산수협은 수십만원을 수수하고 오징어 경매대행 수수료를 100여 회에 걸쳐 총 1억원 가량 초과 지급하다 지난 3월 적발됐다.

보험권에서는 설계사가 고객의 보험료를 가로채는 일이 여러 차례 적발됐다. 올해에만 메트라이프생명, 교보생명, 알리안츠생명, 미래에셋생명, 삼성생명, ING생명, 대한생명의 설계사 12명이 보험료 수백만~수억원을 유용했다.

제2금융권도 금융사고 빈발, 탐욕 위험수위
'비리척결' 칼 빼든 금감원, 실효성은 의문

삼성화재, 현대해상, 한화손보, 동부화재, 메리츠화재, 악사손보 등 손해보험사는 자동차사고 피해자의 보험금 수백만~수억원을 주지 않았다가 적발됐다.

저축은행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동양저축은행 직원은 고객 330명의 예금을 멋대로 해지해 146억원을 횡령했고 참저축은행은 대출해준 업체에서 주식 배당금 명목으로 1000만원을 받았다.

신민저축은행은 대주주가 사실상 지배하는 회사에 불법대출을 했고 W저축은행과 HK저축은행은 주거래 회사의 대출이자를 부당하게 깎아줬다.

금융권에서 올해 8월 말까지 비리로 인해 징계를 받은 임직원은 무려 447명으로 임원 95명, 직원 352명인 것으로 조사됐다. 2006년부터 2010년까지 5년간 징계를 받은 임직원 468명과 비슷한 수치이며, 지난해 같은 기간 222명과 비교해선 2배가 넘는다.

피해액 규모도 2006년 874억원에서 2010년 2736억원으로 급증했다. 2009년 48건이던 은행권 비리는 2010년 57건으로 19% 증가했고 연간 피해액은 291억원에서 1692억원으로 무려 222% 늘었다. 2006년부터 5년간 총 피해액을 보면 은행권이 2579억원으로 가장 많았고 비은행권 1920억원, 증권사 896억원, 보험사 264억원 순이었다.

이처럼 금융권의 모럴헤저드가 갈수록 심해지자 금융당국이 전방위 대응에 나섰다. 금감원은 가산금리 문제와 차별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태스크포스(TF)를 꾸려 다음 달 중 개선책을 내놓을 방침이다.

금감원은 보험의 약관대출 가산금리도 합리적으로 조정하는 방안을 만들도록 연구용역을 발주했고 은행의 경영실태평가 제도를 대대적으로 뜯어고치기도 했다. 경영실태평가 6개 항목 가운데 수익성 항목의 배점 비중을 15%에서 10%로 줄였고 경영관리적정성 항목에 '사회적 책임 이행실태'와 '성과보상체계 적정성'을 새로 만들었다.

'사후약방문'
실효성 의문

부유층 회원에게 지나친 혜택을 제공하는 초우량고객(VVIP) 서비스도 모럴헤저드의 소지가 있어 이를 억제하는 쪽으로 정책 방향을 잡았다. 금감원은 VVIP신용카드 신규발급을 사실상 제한하고 기존 VVIP카드의 수익성도 재검토할 방침이다.

저축은행에는 아예 법을 고쳐 대응키로 했다. 금융위는 대주주에 대한 감시와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으로 저축은행법 개정안을 제출했다. 하지만 이런 조치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겪이 아닐 수 없다. 이미 대형 비리들이 잇따라 터지고서 나온 처방전이어서 얼마나 효과를 거둘지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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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정청래·조국·김민석 세 사람이 삼각관계로 얽혔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연임을,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자당의 생존을, 김민석 국무총리는 청와대의 명을 받아 권력 싸움에 참전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세 사람이 만든 새로운 소용돌이가 여의도를 향하고 있다. 이들이 범여권 지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이목이 쏠린다. 여당 대표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그립감이 강해졌다. 지난 3일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도입을 담은 당헌 개정안이 재적 위원 과반의 찬성으로 문턱을 넘은 것이다. 이로써 오는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부터 대의원과 권리당원이 동일한 한 표를 행사하게 된다. 존재감 굳히기 민주당에 따르면 중앙위원 총 590명 중 87.29%인 515명이 투표에 참석했다. 이 중 찬성 312명(60.58%), 반대 203명(39.42%)으로 의결 요건을 충족했다. 이후 정 대표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핵심 공약이자 1호 공약이라고 할 수 있는 1인1표제를, 임기 안에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돼 보람 있게 생각한다”며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고 모든 법의 으뜸은 헌법이다. 헌법에서 명령하고 있는 보통·평등·비밀투표, 1인 1표제는 진작에 민주당에서 시행돼야 마땅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1인1표 시행으로 가장 직접적인 효과는 당내 계파가 해체되는 것이라고 예상한다”며 “10년이 넘게 1인1표제, 당원이 주인이 되는 정당, 당원 주권 시대를 부르짖었는데, 드디어 마침표를 찍게 돼 개인적으로도 무한한 기쁨”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1인1표제가 통과되자 권리당원 사이 지지도가 높은 정 대표의 연임 가능성이 탄력을 받았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지난해 8월 치러진 전당대회서 정 대표는 전국 대의원 투표에선 46.91%로 박찬대 의원(53.09%)에게 열세를 보였으나 권리당원 투표서 66.48%의 득표율을 기록해 박 의원(33.52%)을 앞질렀다. 다만 6대 4라는 투표 결과를 놓고 정치권의 분석이 엇갈렸다. 정족수보다 16명 많은 ‘턱걸이 통과’로 리더십을 굳히기엔 명분이 약하다는 점에서다. 1인1표제 재추진에 제동을 걸던 집단의 반대표가 늘어난 것 역시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치러진 첫 투표 당시 투표율이 62.58%로 두 달 만에 20%p 올랐지만, 반대표 역시 102표에서 203표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에 민주당 권칠승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1인1표가 갖는 대의엔 다 동의하지만 현재 민주당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당이 갖고 있는 당원 구조의 취약성 때문에 1인1표제하는 게 맞느냐는 것에 대한 회의는 좀 있는 것 같다”며 “후속 정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저는 대의엔 찬성하지만 지금 상태에서 그냥 (1인 1표제를) 적용하면 부작용이 있다”고 설명했다. 정 대표의 두 번째 승부수였던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합당에 반대하는 최고위원들이 정 대표를 정면으로 들이 받으며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독주하는 정청래, 승부수는 던졌는데… “합당 못해” 마주하기도 전 무산 위기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혁신당과의 합당 논란이 벌써부터 차기 대권을 의식한 논의로 번져 걱정”이라며 “‘큰 배를 띄우려면 본류를 타야 한다’면서 마치 민주당을 조국 대표의 대통령 만들기 수단으로 여기는 발언까지 나오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은 이재명 대통령의 시간이지 차기 대권주자를 밀어줄 시간이 아니”라며 “야당도 아니고 여소야대도 아니고 과반 의석을 차지한 강력한 집권여당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60%에 육박하는데 왜 벌써부터 이런 얘기가 나오는지 괴이하기까지 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강득구 최고위원 역시 “어제(3일)부터 지방선거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됐고 중앙당과 시도당은 후보자 공모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런 시점에서 합당을 밀어붙이면 혼란만 커진다. 공천 기준, 경선 룰이 흔들린다”며 “합당 논의를 당장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정 대표는 전체 당원 여론조사와 토론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겠다며 의견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일련의 과정에 대해 한 정치권 관계자는 “공천권만 손에 넣으면 세력은 알아서 따라붙게 돼있다. 정 대표는 ‘축구 경기에서 1대 3이나 3대 0이나 같다’고 말하면서까지 1인1표제를 밀어붙였다. 당 대표 연임에 선을 긋고 있지만 연임을 통한 공천권 확보를 포석에 뒀다고 해석하지 않을 수가 없다”며 “조 대표를 끌어들여 본격적으로 자기 세를 넓히려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해석했다. 정 대표가 띄운 합당론에 혁신당이 휘말리는 듯한 그림이 됐다. 그동안 혁신당 조국 대표는 민주당과의 합당에 선을 그어왔지만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혔고, 이번 합당 논의 역시 자당을 살리기 위해 민주당의 손을 잡은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세를 불려야 하는 정 대표와 대권주자로서 도움닫기 공간이 필요한 조 대표의 니즈가 맞아 떨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테이블이 마련되기도 전 민주당 내 집안싸움이 불거지면서 혁신당과의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했다. 합당 논의에 촉각을 세우는 사이 이번에는 혁신당이 추진하는 토지공개념을 놓고 이견이 갈렸다. 이언주 최고위원이 토지공개념에 반대 의사를 표하자 조 대표가 “헌법재판소가 합헌이라고 판시한 것. 어이없다”고 맞받아치면서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뿌리를 내린 것이다. 꼿꼿한 자존심 토지공개념이 난타전으로 번진 이유는 최근 집값 등 부동산을 저격하는 이재명 대통령과의 행보와도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다. 이 최고위원은 “토지공개념은 과거 공산주의 몰락 이전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AI 대전환과 글로벌 자본 유치, 기술 경쟁이 국가의 생존 과제가 된 지금의 시대 현실과는 분명한 괴리가 있고, 시대착오적이라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통령이 강력한 부동산 공급 대책을 내놓고 있는데 토지공개념 입법화를 주장하는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주장이 대두되면 대통령의 건강한 개혁 의지마저 희석되고 곡해돼 공격받을 여지가 크다”고 강조했다. 혁신당이 주장하는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그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을 골자로 한다. 지난 2일 열린 ‘신토지공개념 입법추진단 출범식 및 토론회’서 혁신당 차규근 의원은 입법을 비판한 여당을 향해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틀린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차 의원은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이라며 “헌법재판소도 1989년 토지거래허가제 사건 판결에서 모든 사람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 토지 소유권은 절대적인 권리가 될 수 없으며, 공공복리 증진을 위해 의무와 제약을 수반하는 방향으로 변화해 왔다고 판시했다”고 설명했다. 이 최고위원의 주장을 반박하기도 했다. 차 의원은 민주당 강령을 언급하며 “토지 재산권 행사의 합리성을 담보하는 제도적 장치를 구축해 지대 수익으로 인한 경제 왜곡과 불평등을 방지한다고 명시돼있다”며 “현재 시행 중인 토지거래허가제와 개발이익환수제 역시 모두 토지공개념에 기반한 제도”라고 꼬집었다.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가 진행 중인 민주당 일각에서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토지공개념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합당 논의는 불가능하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그럼에도 혁신당이 이를 추진하는 이유는 혁신당이 민주당에 흡수 합당되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는 분위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에 혁신당 DNA가 섞이는 게 아닌, 혁신당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민주당과 함께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점에서다. 논의를 띄운 이상 합당을 하든 약속을 파기하든 결과가 나와야 한다. 그러나 “주판알을 굴렸을 때 합당 가능성이 낮다”는 게 한 여의도 관계자의 전언이다. 로망을 현실로? 이 관계자는 “어떤 방법으로든 조 대표가 민주당과 함께한다면, 차기 당권을 놓고 정 대표와 경쟁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봤다. 이어 “두 사람(정 대표, 조 대표) 모두 대권주자로서 욕심이 있다. 시기가 언제가 됐든 다음 대선을 위해 경쟁하는 사이가 될 것”이라며 “종래에 서로를 집어삼키려는 계파 싸움으로까지 번질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조 대표를 등에 업고 빠른 보폭으로 걷는 정 대표의 시선 끝에는 김민석 국무총리가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 총리가 “당 대표에 로망이 있다”고 말하면서 8월 전당대회 출마설에 스스로 불을 지핀 것이 화근이다. 여기에 청와대에서까지 김 총리를 차기 당 대표로 세우려 한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정 대표의 셈법이 더욱 빨라졌다는 해석이다. 그동안 김 총리의 대표 도전설은 꾸준히 회자했다. 지난달 23일 국무총리실은 공지를 통해 서울시장 선거 여론조사에서 김 총리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 총리가 서울시장이 아닌 민주당 당 대표를 노리는 게 아니냐고 봤다. 여기에 김 총리가 한 유튜브를 통해 정 대표와 차기 대표 자리를 놓고 경쟁할 수 있다는 관측에 대해선 “민주당의 당 대표는 굉장히 자랑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로망은 있다”고 말하면서 본격적으로 불씨를 댕겼다. 다만 김 총리는 “세상(일)이 욕심을 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안다. 욕망의 정치로 뭔가를 풀려고 하지 않는 편”이라며 조심스럽게 입장을 전했다. 그러던 중 민주당-혁신당 합당 논쟁에 김 총리가 뛰어들면서 당권을 둘러싼 경쟁이 시작됐다는 관측이 다시 나왔다. 김 총리는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총리공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시점, 이런 방식으로 진행될 줄은 몰랐다”며 정 대표의 합당 방식을 꼬집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뿌리 깊은 정당이기에 당원들의 뜻을 묻는 민주적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통합 자체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김 총리는 당 대표 선출 전당대회 출마설과 관련해 “(앞서 대표직에 대해 언급한) 로망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많은 말들을 불러올지는 몰랐다”며 “(당시 대표 출마 여부는 직접적으로 묻지 않기에) 국정에 전념한다고 했고, 오늘 기자간담회 내용을 주의 깊게 보면 굉장히 강력한 국정 전념 의지가 담겨있다는 것을 알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는 서울시장 선거로 본인(김민석)이 할 생각 없는데 서울시장 선거와 관련돼 거론되는 것이 국정 운영에 도움도 안 돼 거론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며 “당과 관련한 부분에 대해서도 제가 대표라는 평소 로망을 이야기한 것이고 또 합당 등 모든 문제들은 당의 질서 속에서 충분히 논의될 것으로 보고 제가 더 이상 현재 당내 문제와 연관돼서 소환되거나 호출되거나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민석 카드’ 청와대가 띄웠다? “당 대표 로망” 한마디에 ‘술렁’ 이후 김 총리는 3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전날 신년 기자간담회를 언급하며 “기자간담회의 핵심은 한층 높은 ‘책임감’으로 국정에 ‘전념’한다는 것이다. 정책 관련한 질문에는 훨씬 적극적으로 답하겠다”며 출마 의지가 없음을 강조했다. 김 총리가 거듭해서 출마설에 선을 긋지만 계속해서 이름이 오르내리자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를 정 대표의 대항마로 김 총리를 띄우기 위한 청와대의 물밑작업으로 봤다. 김 총리는 지난 총선 상황실장을 맡아 합을 맞춰오는 등 이 대통령과 연이 깊은 인물로 이 대통령의 의중인 ‘명심’을 등에 업어 민주당 수석최고위원 자리까지 오르기도 했다. 지난 2024년 민주당 전당대회서 김민석 의원의 최고위원 후보로 출마했지만, 사전 득표율이 저조했다. 이에 이재명 대표 후보는 첫 지역 순회 이후 김 후보와 함께 차 안에서 유튜브 라이브를 진행하면서 “(김 후보) 왜 이렇게 표가 안 나오느냐”며 “제 선거를 도와주느라 본인 선거(운동)를 못 해 결과가 잘못되면 어쩌나 부담된다”고 언급했다. 이후 민주당 커뮤니티 등에서는 “이재명이 김민석을 낙점했다”는 글이 퍼졌고, 빠르게 순위가 뒤집혀 단숨에 수석최고위원으로 올라섰다. 이처럼 청와대에서 정청래 체제의 힘을 빼기 위해 다시 한번 ‘김민석 카드’를 띄우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청와대가 정 대표를 견제하는 것은 정 대표가 ‘당원 주권 정당’ 등을 명분으로 당을 강하게 쥘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점에서다. 한 여권 관계자는 “정 대표의 행보가 모두 이해는 간다. 명분도 좋다. 문제는 시기가 너무 빨랐던 것”이라며 “이재명정부 출범 극초기부터 갈등이 불거졌다. 청와대 입장에서는 대놓고 발톱을 드러내는 정 대표가 장기간 민주당을 주무르는 게 달갑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집안싸움이 격화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혁신당 역시 합당 논의가 잘 풀리지 않을 경우 조 대표의 탓으로 돌리는 것을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방선거가 끝나는 대로 정치권의 시선은 8월 민주당 전당대회로 쏠리는 만큼 6월 전 합당 논의가 매듭을 지을지가 최대 관건이다. 숨길 수 없는 불편한 심기 혁신당 황현선 인재영입위원회 부위원장(전 사무총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 대통령과 김 총리, 정 대표를 모조리 언급하며 현 상황을 직격했다. 황 위원장은 “이 싸움(합당)의 최대 피해자는 이 대통령이다. 언젠가 후계 전쟁이 벌어질 것을 예상했겠지만 집권 1년도 안 돼 심각한 내분에 직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친K(김민석 국무총리) 세력이 선공을 하고, 선방 맞은 친J(정청래 대표)의 반격도 시작될 것”이라며 “지금은 대통령 눈치보며 권력투쟁을 벌이겠지만 총선에 다다를수록 눈치 보지 않는 싸움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