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아동 성폭행범들의 ‘솜방망이 형량’ 실태

  • 김설아 sasa7088@ilyosisa.co.kr
  • 등록 2012.09.12 17: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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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김’이면 그냥 용서 되는 ‘더러운 세상’

[일요시사=김설아 기자] ‘집에서 잠자던 초등학생을 이불째 안고 납치해 성폭행’ ‘어린 조카를 7년간 상습적으로 성폭행한 큰아버지’ ‘가출한 여중생에게 숙식을 제공하겠다고 접근해 성폭행한 40대’ ‘방학을 맞아 아르바이트를 하러 온 10대 조카에게 몹쓸 짓’. 최근 인터넷을 도배했던 성범죄 사건들이다. 어쩌다가 어린아이를 상대로 한 흉악범죄자들이 이토록 날뛰게 됐을까? 문제는 솜방망이 처벌에 있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잔혹한 성범죄가 터지고 있다. 동시에 아동 성범죄자를 엄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기막힌 일이 있었다.

지난 7월 통영에서 초등학생을 납치해 성폭행하려다 살해한 김점덕. 그는 통영경찰서 유치장 보호실에서 면회 온 아내에게 “시간이 지나면 조용해지니까 힘을 내라. 혼자서라도 살 수 있게 돈을 벌어라”고 당부했다.

그는 알고 있었다. 아니 그 뿐만 아니라 모든 성범죄자들도 다 안다. 사건 당시에만 호들갑이다가 곧 시들해질 것이고, 적당히 감옥살이하다 집행유예로 풀려날 것까지.

짐승만도 못 한
인간들에게 고작…

지난 5일 친딸을 상습적으로 성폭행한 가장에게 내려진 벌은 징역 7년에 불과했다. 김모(38)씨는 지난 2010년 8월부터 올해 초까지 14살 친딸을 수차례 성폭행한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딸은 법정에서 “아빠가 내가 있는 데서 휴대전화로 음란 동영상을 보며 자위행위를 한 적도 있다”고 진술했다. 김씨는 이혼한 상태이며 김씨의 전 아내는 법정에서 “남편이 아동 포르노물 등을 보여 주며 변태 성행위를 요구한 게 주된 이혼 사유였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는 법정과 검찰 조사과정에서 “딸이 친오빠와 성관계를 갖다 들켜 야단치자 거짓말을 하고 있다”며 “이혼한 아내가 돈을 노리고 딸을 부추겨 나를 강간범으로 몰고 있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재판부는 “친딸을 성욕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죄질이 아주 불량하고 반인륜적인 점, 범행을 부인하면서 가족을 거짓말쟁이로 매도하는 등 엄벌이 불가피 하다”면서도 결국 7년형을 내리는데 그쳤다.

지난 8월에는 9살 여아를 상습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70대가 증거 불충분 등을 이유로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판결을 받았다. 서모(71)씨는 2004년 자신의 과수원에서 일하던 장애인 부부의 딸 A(당시 9세)양을 과수원 내 컨테이너박스로 유인해 성폭행하는 등 2010년까지 네 차례 성폭행 한 혐의로 기소됐다. 하지만 서씨는 재판에서 “20여년 전부터 당뇨를 앓아와 15년 전부터 발기가 전혀 되지 않았다”며 무죄를 주장했다.

“성기 점까지 봤는데” 미성년 성폭행 혐의 70대 무죄
‘초범이라’ ‘술 먹어서’ ‘고령이라’ 등 황당한 감형이유

1심 재판부는 작년 6월 내린 판결에서 “피해자에 대한 진찰 결과, 처녀막이 이완됐고 주로 성교에 의해 전염되는 트리코모나스 질염이 있는 것으로 확인된 점, 피해자는 피고인의 성기에 점이 있다고 진술했는데 실제 피고인의 성기에 점이 있는 것으로 확인된 점 등을 고려하면 피고인이 피해자를 성폭행한 것이 아닌가 하는 강한 의심이 든다”고 판시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피해자는 성폭행 당시 5∼10분간 관계를 가졌다고 진술하고 있으나 법원이 병원에 의료감정촉탁을 한 결과, ‘피고인이 발기부전치료제를 복용하고도 발기가 전혀 되지 않는 점’ ‘고령인 점’ ‘당뇨병 합병증이 있는 점’ 등을 감안해 서씨에게 무죄를 선고하고,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명령 청구를 기각했다.


2심 재판부 역시 지난 2월 내린 판결에서 “공소사실에 부합하는 유일한 증거인 피해자 진술에 신빙성이 의심스럽고 범죄증명이 없어 무죄로 판단한 원심의 조처가 정당하다”며 1심을 유지했다.

피해자가 적극
거부 안 해서…

13세 미만의 아동 성폭행범에 대해선 10년 이상 최고 무기징역의 형벌이 내려지게 돼 있다. 하지만 실제 형량은 평균 징역 8년에 불과하다. 법원이 성범죄자의 전과나 피해자와 합의 여부, 범행 반성, 음주 상태 등을 반영해 형을 낮추기 때문.

일례로 지난 2008년 12월 만취 상태로 8살 나영이(가명)를 성폭행해 신체 기능 일부를 영원히 훼손시킨 조두순. 그는 1심 검찰 구형에서 무기징역을 받았다. 하지만 “술에 취해 온전한 상태가 아니었다”는 주장을 펴 최종 징역 12년형으로 줄었다. 당시 조두순의 형이 확정된 뒤 나영이 아버지는 “나영이가 성인이 될 때쯤 조두순이 형기를 마치고 출소하게 된다고 생각하면 끔찍하다”고 말했다.

드물긴 하지만 일정부분 피해자에게 책임을 돌린 경우도 있다. 작년 여름 서울중앙지법은 자신의 체육관에 다닌 여학생들을 성추행한 합기도체육관 관장 문모(33)씨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문씨는 1998년 성범죄로 소년부 송치 처분을 받은 일이 있는 사람이었다. 판결문에는 “체육관 지도과정에서 일정한 신체접촉은 발생할 수 있는 사정 등에 비춰 문씨가 계획적으로 추행했거나 성적 습벽에 의한 범행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피해자들이 적극적인 거부의사를 표시하지 않아 거부감을 갖지 않는다고 오인했을 수 있다”는 부분이 포함됐다. 문씨는 13세 여학생들을 무릎에 앉히고 신체 일부를 더듬는 등 추행한 혐의로 기소됐다.

아동 성범죄는 날이 갈수록 엽기적이고 흉악해지고 있지만, 아동 성범죄자에 대한 집행유예 선고 비율은 오히려 늘어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발생한 13세 미만 어린이에 대한 성폭력 범죄는 949건. 하루 평균 3명의 어린이가 성폭력에 시달리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이중 절반 가까이가 감옥에 가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성범죄자에 대한 전국 법원의 1심 선고 결과를 분석한 결과 13세 미만 어린이를 상대로 한 성범죄자 2명 가운데 1명은 집행유예로 풀려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마저도 1년 전에 비해 7% 포인트 가까이 증가한 수치다.

전문가들은 “이 때문(법원의 약한 처벌)에 풀려난 성범죄자의 절반이 성범죄를 또 저지르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고 지적한다.

영혼 살인 범죄
“자비란 없다”


반면 외국은 다르다. 아동이나 장애인을 상대로 저지른 성폭행범의 인권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형량도 무시무시하다.

스위스 아동성폭행범은 무조건 종신형이다. 미국 플로리다주의 ‘제시카 런스퍼드 법’의 경우는 12세 미만 아동을 상대로 한 성폭행범은 최소 25년의 형에다 출소 후에도 평생 전자발찌 신세다.

미국 내 캔자스 주에선 재범 가능성이 높은 성범죄 전과자는 형기만료 뒤에도 재범 가능성이 사라질 때까지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시키는 ‘성 맹수법(Sexual Predator Law)’이 시행 중이다. 언론도 아동 대상 성범죄자에겐 ‘성 맹수’라는 표현을 일반적으로 쓴다.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실제로 지난 2008년 텍사스주 그레이엄 퀴즌베리 판사는 10대 3명을 2년간에 걸쳐 성폭행한 범인 제임스 케빈 포프에 대한 배심원의 유죄평결 후 성폭행 한번마다 종신형 한 번씩 총 40차례 종신형과 소년 1명당 20년씩 모두 4060년의 징역형을 선고한 바 있다.

아동 상대 성범죄자 절반이 집행유예…‘솜방망이 처벌’
외국 “성폭행범에겐 인권 없다” 관용 없는 무거운 판결

여기서 끝이 아니다. 성폭행범은 가석방 자체가 어렵다. 일반 범죄자들과는 달리 절대로 85% 형량 아래로 줄어들지 않는다. 제임스 케빈 포프의 경우에도 3209년의 형을 살아야 가석방의 기회가 주어진다.


중국은 아예 14세 이하 어린이와 성관계를 맺다 적발되면 사형에 처한다. 체코는 지난 10여 년간 최소 94명의 성범죄자의 고환을 외과적으로 들어내는 ‘물리적 거세’를 실행했다.

이에 유럽연합은 “폭력적이며 환원 불가능하고 지나치게 잔혹한 처벌”이라고 비난했지만 체코 정부 당국은 “성범죄자를 생물학적으로 영구적인 안정 상태에 두기 위한 의학적 조치이며, 피해자의 인권을 최우선시 하여 이와 같은 법률을 시행하고 있다”며 물러서지 않았다. 아동 대상 성범죄를 살인에 버금가는 강력 범죄로 규정하고 엄격하게 처벌하는 게 세계적 추세다.

성폭력예방센터의 한 관계자는 “외국의 경우 100% 가해자가 의사를 가지고 가해자가 전혀 항거불능인 아동을 상대로 공격한 것이기 때문에 극형으로 다스려야 된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된 것”이라며 “우리나라도 이러한 분위기에 편승하여 형량을 대폭 늘리고 ‘무관용 처벌’을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밟지 마세요!
지켜주세요!

최근 일어난 나주 성폭행사건 후 여기저기서 신상공개 소급적용, 화학적 거세, 물리적 거세 등 각종 대안이 쏟아져 나온다. 불안한 엄마들은 “우리 아이들을 지켜달라”며 촛불을 들고 거리에 섰다.

통영사건 후 ‘성범죄자 알림e’ 사이트가 한때 마비됐다. 안양 초등생 살해사건 후 관계당국은 문구점, 약국, 슈퍼마켓 등에 아동안전지킴이집 스티커를 붙이느라 바빴다. 아동성범죄전담반을 설치하겠다고 했지만 성범죄 우범자 관리대상엔 허점을 보여 또 다른 희생자를 낳았다.

어쩌면 통영사건의 범인 김점덕의 말이 맞다. 지금은 시끌시끌하다. 하지만 그의 예상대로 시간이 지나면 곧 조용해질 게 분명하다. 유사한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되풀이되는 레퍼토리이기 때문이다.

보다 강력한 법 적용과 근본적인 관행이 바뀌지 않는 한 아동 성범죄는 더욱 잔혹한 모습으로 우리 곁에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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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