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를 만나다> 한층 더 진화한 배우 조인성

“걱정만 하다 내려놓고 들이댔죠”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배우 조인성의 어깨는 늘 무거웠다. 국내의 창작자들은 조인성의 파트너로 두 명 이상을 붙이려 하지 않았다. 멀티 캐스팅보다는 적은 인원이 나오는 작품이 많았다. 조인성을 부각하는 게 흥행 면에서 효과적이라 판단했던 것 아닐까. 이유를 막론하고 조인성은 작품 내외적으로 늘 현장의 주인공이었다. 따라서 외롭게 홀로 책임져야 할 때도 있었다. 막중한 책임감을 안고 카메라 앞에 섰다. 그런 조인성이 김윤석과 허준호라는 거목에 기대 오롯이 연기에만 집중한다. 신작 <모가디슈>에서다. 

학교 선생님마저 ‘광채’가 나는 학생으로 기억하고 있다. 중고등학교 시절 거주한 서울 천호동 일대에서 조인성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큰 키의 훤칠한 외모, 극강의 매력을 가진 그의 주위에는 늘 그를 흠모하는 여학생들로 붐볐다. 

광채
꽃미남

1998년 의류 브랜드 모델로 연예계에 데뷔했다가 KBS2 <학교3>를 통해 카메라에 얼굴을 비춘 후 조인성 개인의 삶은 턱없이 작아졌다. 이제껏 한국 연예계에 존재하지 않았던 커다란 몸에 작은 머리를 가진 꽃미남이라는 점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기 때문이다. 누구나 어디서나 그를 알아봤다.

굵직한 선을 가진 서구적인 인상의 스타들이 사랑받던 시절, 조인성의 등장과 함께 남성미의 기준이 뒤바뀌었다. 

MBC <뉴 논스톱>에 출연해 스타덤에 올랐고, SBS <피아노> <별을 쏘다> 영화 <클래식> 등을 통해 점차 자신의 연기적인 영역을 넓혀갔다. 2004년 SBS <발리에서 생긴 일>을 통해서는 명실상부한 국내 톱스타로 자리매김한다. 


정장 차림에 가방을 처음으로 메고, 구두 대신 스타일리쉬한 단화를 신은 그의 스타일링은 남성 직장인의 로망이 됐다. 당시 조인성의 패션을 맡은 발리는 국내에서 가장 인기 있는 브랜드로 거듭났다. 많은 직장인이 따라 하려 했지만, 조인성 외에는 소화하기 매우 어려운 패션이라, 낭패를 본 남성들이 적지 않았다는 슬픈 뒷이야기도 있다. 

그해 백상예술대상에서 TV부문 최우수 남자 연기상을 수상한 조인성은 꾸준히 배우로서 진화해 나간다. 이미 광고계의 블루칩으로서 왕자님 이미지의 캐릭터만 택했다면 더 큰 신드롬을 일으켰을 텐데, 그가 바라보는 다음 목적지는 언제나 도전이었다. 

뭇 여성들의 마음을 훔치기보다는 특별한 인물에 눈길을 보냈다.

이복 형에 대한 분노를 삭이지 못해 저항하는 청춘이었던 SBS <봄날>을 비롯해 삭발을 하고 온갖 추잡한 행위를 하면서 두목에게 충성했다가 결국 비수가 꽂히는 영화 <비열한 거리>나, 남자 배우와 농밀한 키스신을 마다하지 않았던 영화 <쌍화점>까지, 그는 대중이 기대하는 조인성과는 사뭇 다른 인물을 표현하는 데 주력했다.

군 복무 후, 인간 내면을 그려내는데 가장 섬세한 작가라는 평을 듣는 노희경 작가와 협업한 SBS <그 겨울, 바람이 분다>와 tvN <괜찮아, 사랑이야> 역시 누가 봐도 뻔한 길은 아니었다. 노 작가의 작품이 여타 드라마처럼 쉽게 소화할 수 있는 작품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의 연기력은 점점 더 짙어졌다. 

영화 <모가디슈> 안기부 요원 역
“김윤석·허준호에 기대고 싶었다”

영화 <더 킹>은 그야말로 조인성의 원맨쇼다. 동네 건달에서 정치 검사로 한국 정치권을 쥐락펴락하다가, 막다른 길에 몰려 복수를 감행한 박태수(조인성 분)는 영화 내에서 모든 내레이션을 포함해 95%가 넘는 장면에 등장한다. 배우로서는 누구나 쉽게 경험할 수 없는 값진 모험이었다. 


이어 남주혁, 배성우, 엄태구 등과 함께 고구려를 지킨 장만춘의 삶을 묘사한 <안시성>까지 비교적 안정적인 성과를 얻었다. 그의 리더십이 빛을 발했다.

어딘가 건들건들하고 마음을 다 내주면 안 될 것 같은 사람이지만, 결과적으로는 선의 영역에 있고 때로는 정의로운 인물을 주로 연기했다. 어딘가 모르는 까칠함이 있지만, 속내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매우 진한 마음을 가진 그런 사람이 많았다. 어쩌면 조인성도 그런 사람이기에 그런 인물에 끌렸는지도 모르겠다.

조인성은 이번에는 앞장서는 대신 중간에서 서포트하는 포지션을 택했다. 잠시 숨을 고르고 여러 배우와 호흡을 하는 방향이다. 류승완 감독의 신작 <모가디슈>에서다. 영화 자체가 큰 모험이자 도전이다.

이역만리 타지인 모로코에서 4개월간 올로케이션으로 촬영한 것에 이어 외국에서 외국인들이 벌이는 전쟁을 그린다. 그 사이에서 오지도 가지도 못하는 남북한 대사관들의 이야기다. 남한 한신성 대사관은 배우 김윤석이, 북한 림용수 대사관은 허준호가 맡았다. 

조인성이 연기한 강대준은 안기부 정보요원으로 다양한 얼굴을 갖고 있다. 안기부에서 좌천돼 소말리아로 왔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불성실하며, 정의롭게 일을 헤쳐가기보다는 늘 뒤에서 수를 부리며 외교전을 하려는 인물이다. 남한 외교에 힘을 떨어뜨리기 위해 공작을 벌이는 북한에 대항해 거짓말을 만들어내는 걸 일삼는다. 

늘 불평불만이 많고, 오해의 소지가 있는 말에는 어김없이 예민하게 반응한다. 나라의 대의보다는 자신의 성과를 중시하는 인물이다. 강자 앞에서는 헤프게 웃고, 약자 앞에서는 싸늘하다. 때로 몸싸움도 마다하지 않고, 불안한 상황에 놓이면 윽박부터 지르고 위기를 모면하려 한다.

결과적으로 남북이 화합하는 순간에서는 희생한다. 꼭 매력적이지 않은 강대준에 조인성은 기어코 매력을 붓는다. 결과적으로 기억에 남는 캐릭터를 구현한다.

“책임질 게 
 많아졌다”

“인물을 표현하기에 앞서서 상황에 집중했어요. 영화는 내전 전과 후로 나눌 수 있을 텐데요. 그때부터 상황이 달라지죠. 순간순간 만나는 사람들 사이에서 몸으로 느껴지는 날것을 표현해내려고 했어요.”

류 감독의 <모가디슈>는 영화계가 주목한 작품이다. 워낙 거대한 자본이 투입된데다 끼 많고 능력 있는 배우가 대거 출연해서다. 앞선 작품인 <군함도>가 비교적 실패에 가까운 성적표를 받은 후 류 감독이 절치부심하고 만든 작품이라는 소문도 돌았다. 정작 시나리오를 본 배우들은 “이걸 어떻게 찍지?”라는 생각부터 들었다고 한다. 

외국에서 시나리오 상황에 맞는 미술을 구현하는 것부터 수많은 외국인이 필요한데 비중이 작지도 않으며, 언어적인 문제는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장소도 매우 변화가 많은데 어떻게 다 섭외할 것인지 등 의문부호가 붙었다.

김윤석, 허준호처럼 영화에 대한 이해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모가디슈>는 쉽지 않은 도전으로 받아들여졌다. 조인성도 마찬가지였다.


“처음 봤을 때 ‘영화를 어떻게 찍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막연하기도 했죠. 익숙한 동네도 아니고요. 영화를 찍는 것도 찍는 거지만 어떻게 생활할 것인가도 관건이었어요. 현지 적응에 대한 고민도 있었죠. 여러 스태프 덕분에 슬기롭게 헤쳐나갔던 것 같아요. 의문이 많았지만, 류승완과 허준호, 김윤석이라는 이름이 주는 신뢰가 컸어요. 함께하고 싶었나 봐요. 주저하지 않았어요.”

앞서 <모가디슈> 언론시사회에서 그는 선배 배우들과 작업하고 싶은 소박한 마음에 이 영화에 참여하게 됐다고 밝혔다. 선배들로부터 연기적으로 혹은 개인적으로 배우고 싶은 부분이 있었던 것 같다. 4개월간 타지에서 생활하면서 그는 얻은 것이 적지 않다고 했다. 

“영화라는 작업은 모두가 함께해야 해요. 그간 타이틀롤이 많아서 부담감이 컸는데, 두 거목이 자리를 하고 계셔서 저는 연기에만 집중하면 됐어요. 비교적 심플한 마음이었어요. 앙상블의 위대함을 다시 한 번 느꼈어요. 의지할 사람이 있다 보니 여유도 생겼고요.”

어느덧
23년

이미 수준 이상의 연기를 보여준 조인성이지만, 선배 배우들의 깊이에 놀라는 시간이었다고도 했다. 

“현장에서 두 분의 대단함을 많이 느꼈어요. 작품을 바라보는 시점과 해석 면에서 차원이 다른 수준을 느꼈어요. 같이 서 있기만 해도 힘을 느꼈던 것 같아요. 특히 시나리오에는 나오지 않는 빈 곳을 채우는 부분에서는 감탄을 많이 했어요. 앞으로 저도 계속 영화를 할 건데요. 그런 부분에서 저를 정비할 수 있는 시간이었어요. 또 오랜만에 현장을 이끌어가는 리더십을 배우는 시간이기도 했고요.”


40세가 넘은 조인성은 어느덧 선배 배우가 됐다. 고등학생 신분으로 모델이 되고 벌써 데뷔 23년이 지났다. 국내를 넘어 아시아가 주목하는 배우다. 시간이 흐르는 사이 조인성도 성장했다. 하지만 여전히 놓치고 있는 건 없는지, 스스로 좋은 배우의 덕목을 갖추고 있는지 불안했다고 한다.

김윤석을 붙잡아놓고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는 시간이 있었다고 한다. 한참 동안 조인성의 불안을 경청한 김윤석의 대답은 “널 믿어. 응원할게”였다고. 조인성은 이 말에 적지 않은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응원을 정말 많이 받았어요. 사실 활동하다 보니 어느덧 선배급이 돼버린 거죠. 배우라는 직업을 갖게 되면서 의문점도 있었고, 앞으로 삶의 방향성에 대한 모호성도 있었어요. ‘잘하고 있나?’라는 질문만 되뇌기도 했고요. 방향이 헷갈릴 때 물어볼 선배가 있다는 것은 참 좋은 것 같아요. 구체적으로 무슨 얘기인지는 말씀드리기 어려워요. 개인적인 일이라서요. 어찌 됐든 쉽게 꺼내기 힘든 것들을 하나하나 꺼내면서 물어봤고, 응원을 받았어요. 앞으로 더 자신 있게 살아갈 수 있는 용기가 됐던 것 같아요.”

“갈등이 없으면 그게 행복 아닐까요?”
“경험을 통해 진화해 나가고 있어요”

은근히 적지 않은 어록을 생산해냈다. 배우이기 전에 인간으로서 사회생활의 영역이나 살아가는 부분에 있어서 귀감이 될만한 말을 적지 않게 했다. 최근에는 유튜브 채널 버거왕에서 인간관계에 있어서 모호한 지점을 깔끔하게 정립하기도 했다.

한때 행복에 대한 강박이 있었다고 밝힌 그는 최근 여러 면에서 자유로워졌다고 한다.

“행복이라는 게 관념적인 언어잖아요. 사람마다 행복에 대한 개념이 다를 수 있고요. 저는 행복이란 특별히 갈등이나 힘든 점이 없다면 행복이라 생각해요. 힘든 게 없다는 게 행복이라면, 앞으로 더 행복할 것도 많을 거라 생각해요. 지금 문제가 없다면 모든 것들이 행복일 수 있다는 개념으로요. 오히려 우리가 행복을 좇다 놓치는 보물이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어느덧 불혹을 넘긴 조인성도 수많은 인물을 거치면서 내면적으로 성숙해진 듯하다. 누군가 선망하는 스타이기도 하지만, 그의 내면에는 터벅터벅 걸어온 인생의 어려운 포인트를 설명해주는 선생님 같은 부분도 분명 존재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책임질 것이 많다는 거기도 하죠. 행동에 대한 책임이요. 그래서 행동하기 전에 생각을 많이 하죠. 여러 예상을 하고요. 예상이 적중하려면 통찰력이 있어야 해요. 통찰력이 있다고 늘 맞는 것도 아니죠. 항상 조심하고 용기가 안 나는 것도 있어요. 용기가 안나다보니까 움츠려들기도 하고요. ‘움츠려드는데 이게 맞는 겁니까?’가고 물어보기도 했어요. 그럼 공감을 해주시더라고요.”

“오히려 선배님들이 더 많이 알아서 더 많이 두려워하시는 것 같기도 했어요. 경험이 많아서요. 저 역시 이번 경험을 통해 진화하고 있다고 느꼈어요. 선배님들을 보면서 확인하는 거죠. 선배님들도 여러 경험을 통해 진화해 온 것처럼요. 앞으로 저도 계속 성장할 계획입니다. 특별히 멋있게 사는 건 없어요. 현실에 충실하는 게 최선이죠. 그러면 나중에 뭐가 되도 되겠죠.”

영화는 매우 매끄럽다. 남녀노소 누가 봐도 엄지를 들 만큼 괜찮은 작품이다. 올로케이션의 가장 좋은 예라는 수식어가 붙을지도 모를 정도다. 수백억의 제작비가 투입됐지만, 영화계의 지원으로 손익분기점은 300만으로 내려갔다. 평소 같으면 첫 주에 넘겨버릴 수치지만, 코로나19 시국인지라 이마저도 어려운 숙제라는 게 현실이다. 

소박한 꿈
현실에 충실

“<모가디슈>라는 이름으로 모인 영화인들이 용기를 한 번 내봤습니다. 상황이 좋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만히 있기보다는 콘텐츠를 소비하고 싶은 분들에게 소개 정도는 할 수 있지 않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함께 공감하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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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춤 추는 이정현 마이웨이

칼춤 추는 이정현 마이웨이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이정현 공천관리위원장이 거침없이 칼을 휘두르고 있다. 주호영 국회부의장·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이 공관위원장의 칼에 희생됐다. 변방의 이방인이어서 휘둘러야 했던 칼의 운명은 반복되고 있다. 그는 왜 칼을 휘두르는 걸까? 국민의힘 이정현 공천관리위원장(이하 공관위원장)이 지난 13일 “여러 의견을 존중하는 과정에서 제가 생각했던 방향을 더는 추진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면서 사퇴했다가 이틀 후 번복했다. 이 공관위원장은 사퇴했던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이틀 후 또 번복 정치권 안팎에선 대체로 이 공관위원장의 갑작스러운 사퇴의 주요 원인으로 오세훈 서울시장과의 갈등을 주된 원인으로 거론했다. 오 시장은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에 소극적인 지도부 혁신 ▲혁신적인 선거대책위원회 조기 출범 등을 요구하면서 지방선거 공천 기간 내 후보 등록을 하지 않았다. 이 공관위원장의 사퇴 번복에는 장 대표가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사퇴 번복 후 “장 대표가 지난 14일 공천 혁신을 완수해 달라면서 공천 관련 전권을 맡긴다는 뜻을 전해왔다”고 밝혔다. 따라서 이 공관위원장의 사퇴는 대체로 ‘무력 시위’로 해석되고 있다. 결국 오 시장은 지난 17일 국민의힘 서울시장 경선 후보로 등록했다. 복귀한 이 공관위원장은 ‘장 대표가 부여한 공천 관련 전권’을 거침없이 휘둘렀다. 지난 16일에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이하 공관위)는 박형준 부산시장 공천 컷오프를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박 시장을 컷오프하고,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을 단수공천하자”고 주장한 핵심은 이 공관위원장이었다. 그러자 부산에 지역구를 둔 국민의힘 의원들이 장 대표를 방문해 항의했고, 장 대표는 박 시장·주 의원 간 경선을 결정했다. 같은 날 공천이 날아간 현역 광역자치단체장은 김영환 충북도지사였다. 공관위는 김 지사를 컷오프한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그저 “김 지사의 공적·업적을 부정·평가절하 하기 위한 게 결코 아니”라면서 시대 교체·세대 교체를 언급했다. 정치권에선 ▲만 70세 고령 ▲수뢰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는 등 사법 리스크 ▲재임 중 각종 발언 논란 등 대체로 김 지사의 약점이 컷오프의 실제 이유 아니겠느냐는 추측이 돌고 있다. 김 지사는 곧바로 “특정인을 두고 면접을 진행하다니 기가 막힌다”면서 일각에서 거론됐던 ‘국민의당 김수민 전 의원 충북도지사 후보 내정설’을 암시했다. 김 전 의원은 지난 2024년부터 1년 동안 충북 정무부지사를 지냈다. 김 지사는 지난 18일엔 서울남부지법에 공천 배제 효력 정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이어 다음 날 진행된 심문에서 “이 공관위원장이 김 전 의원에게 개인적으로 연락해서 출마 여부를 타진했다”며 “절차적 정당성이 파기됐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공관위는 이와 상관없이 지난 20일 김 지사를 제외한 경선 구도를 확정했다. 이 공관위원장은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 공천과 관련해서도 존재감을 드러냈다. 공관위는 지난 22일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 경선과 관련해 주호영 국회부의장·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을 공천에서 배제했다. 광주시장 출마 아닌 공관위원장 지방선거와 묶인 운명의 끝은? 대구시장 후보 경선에 대해선 한동안 “국민의힘 최은석 의원 공천이 사실상 내정된 게 아니냐”는 설이 돌아다녔다. 그러자 최 의원은 지난 21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공관위원장은 공천 심사 면접에서 처음 만났다”면서 이를 강하게 부인했다. 주 부의장은 공천 배제에 크게 반발했다. 그는 공천 배제 가능성이 거론되던 지난 17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대구를 공천 실험장으로 삼으면 안 된다”며 “대구시장을 더불어민주당에 상납하려는 거냐”고 비판했다. 이어 “이 공관위원장은 대구의 자존심을 더 이상 짓밟지 말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주 부의장 공천 배제는 지난 22일 확정됐다. 그는 지난 25일 가처분 신청과 무소속 출마 가능성을 언급했다. 일각에서 의아하게 해석하는 지점은 유튜버 고성국씨 등 강경 보수 진영에서 강하게 지지했던 이 전 위원장이 공천에서 배제됐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추 의원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로 확정돼 의원직에서 물러나면, 이 전 위원장이 추 의원의 지역구 대구 달성 재보궐선거에 출마하는 게 아니냐”는 설이 나왔다. 반대로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서 대구시장 선거에 출마하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주 부의장의 지역구인 대구 수성갑에 출마하는 것 아니냐”는 설도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친한(친 한동훈)계 일원으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박정하 의원은 지난 24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주 부의장의 공천 배제엔 감정이 어느 정도 반영돼있는 게 아니냐는 생각을 하지 않고선 해석이 잘 안 된다”며 “장 대표의 생각도 분명히 들어가 있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이어 주 부의장과 한 전 대표의 연대설에 대해서도 “한 전 대표가 보수 재건 후 당에 돌아오는 길을 찾아가는 길에 있어선 주 부의장의 선택 여하에 따라 모든 가능성을 다 열어 검토할 것이라고 본다”면서 연대설을 부정하진 않았다. 장 대표는 지난 23일 국민의힘 대구시당을 방문해 “공천 관련 모든 것은 당 대표인 제 책임”이라면서 공천 내정설에 대한 간접적인 의견을 밝혔다. 이어 “시민이 납득할 수 있는 경선을 치르겠다는 말씀을 드렸고, 당 대표로서 역할을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광역지방자치단체장 경선 상황·흐름에 대해선 “영남권 기성 중진과 반 장동혁 성향 인사를 배제하는 방향으로 가는 게 아니냐”는 의문이 나오고 있다. 일각에선 장 대표와 이 곤공관위원장이 각각 ‘굿 캅’과 ‘배드 캅’으로 역할을 분담한다고 의심하고 있다. 의외의 연대설 이 공관위원장의 활동 방향을 놓고, 일각에선 그가 “사실상 장 대표의 칼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그의 삶과 정치 활동은 국민의힘 주류 정치인과 많이 다르다. 국민의힘은 영남을 주된 지역 기반으로 두고 있지만, 이 공관위원장은 전남 곡성 출신이다. 그가 태어나 자란 곡성에서도 특히 위치가 외진 목사동면 동암리로 알려졌다. 그는 고등학생 시절부터 정치에 관심을 둔 것으로 알려졌고, 정계 입문 계기는 그의 고향을 지역구로 두고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던 민주정의당 구용상 전 의원의 비서관으로 발탁된 것이었다. 구 전 의원이 지난 1988년 제13대 총선에서 낙선한 후 이 공관위원장은 민주정의당의 말단 간사로 특채됐다. 영남 기반 정당의 호남 출신 당직자였던 그는 훗날 “늘 근본 없는 놈 취급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로부터 26년 후 그는 고향 전남 순천·곡성에서 진행된 재보궐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당선되는 이변을 일으켰고, 다시 2년이 지나선 새누리당 대표로 당선됐다. 당선 이후 그의 28년에 대해선 “한 편의 드라마” 혹은 “인간 승리”라는 평가도 나왔다. 이 공관위원장에겐 2명의 이 위원장이 있다. 그는 재보궐선거 당시 49.43%를 득표해 40.32%를 득표한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서갑원 후보를 물리쳤다. 이 후보의 당선엔 서 후보와 노관규 전 순천시장의 갈등도 큰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있다. 하지만 정치적 흐름만을 탄 결과라고 보기 어렵다는 판단도 있다. 고향 곡성에서 이 공관위원장에 대한 지지세가 높아 70% 이상 득표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그는 새누리당이 아닌 ‘곡성 출신 이정현’을 내세워 자전거를 타고 지역구를 누볐다. 당시 그는 스스로 ‘머슴’ 혹은 ‘촌놈’을 자처했다. 그러면서 “고향을 위해 미치도록 일하고 싶다”며 “죽도록 부려먹다가 못하면 그때 쓰레기통에 다시 넣으시더라도 이번 한번만큼은 제 손을 한 번 잡아달라”고 호소하는 등 지역의 호감을 얻는 발언을 이어나간 영향도 컸던 것으로 분석됐다. 비판·조롱 낯설게하기 지난 2016년 총선에선 지역구 조정 영향으로, 이 공관위원장은 전남 순천에 출마했다. 고향이 아닌 지역구에 출마한 것은 일견 불리할 수도 있는 선택이었다. 하지만 그는 44.54%를 득표해 당선됐다. 그는 재보선 당선 이후 매주 지역구를 방문해 현장을 누빈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당시 야권이었던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에서 모두 후보를 출마시킨 구도의 영향도 호재로 작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공관위원장은 지난 2022년 지방선거에선 국민의힘 전남도지사 후보로 출마해 선거 비용 보전액 하한선 15%를 넘기는 18.81%를 득표해 “선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그는 중앙 정치에선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그가 중앙 정치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을 때 그 원인은 대체로 설화였다. 청와대 홍보수석비서관으로 재직했던 2014년엔 길환영 당시 KBS 사장에게 연락해 “세월호 참사 관련 해경에 대한 비판을 지금은 자제해 달라”고 요구한 게 2년여가 흐른 후 뒤늦게 알려져 물의를 일으켰다. 이는 방송 편성 관련 규제·간섭을 금지한 방송법 위반 행위가 될 위험이 있었는데 실제로 그는 벌금형을 확정받았다. 새누리당 최고위원이었던 지난 2015년엔 광주를 방문해 ‘광주 비하’로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을 했다. 당시 그는 “광주 시민이 이정현이를 쓰레기통에 버렸다”며 “박근혜 대통령이 나 같은 쓰레기를 끄집어내서 탈탈 털어 청와대 정무수석·홍보수석을 시켜주는 배려를 했다”고 주장했다. 박 전 대통령에게 과잉 충성하는 이 공관위원장의 모습이나 발언은 지금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였던 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12년 9월 과거사 사과 기자회견에서 회견문을 읽은 후 고개 숙여 인사했다. 당시 상황을 촬영한 사진 중에 후보 공보단장이었던 이 공관위원장이 “질의 시간을 가지면 안 된다”는 의미로 손가락으로 X 표시를 만드는 사진도 있다. 새누리당 대표였던 지난 2016년 11월엔 야권이 박 전 대통령의 임기 단축 협상을 거절하고 탄핵소추를 추진하자 “그 사람들이 탄핵을 실천하면 뜨거운 장에 손을 집어넣겠다”고 반발해 한동안 이 공관위원장을 조롱하는 합성 사진이 범람했다. 정치인은 대체로 선거 현장·당내 투쟁에선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일부 정치인은 그 간극이 커서 주목받는다. 이 공관위원장의 태도는 “상대방에게 진정성 있게 몰입한다”는 장점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 그 진정성 있는 몰입은 정반대의 이미지를 연출한다. 지역구에선 유권자들이 전통적인 지역 구도에 따른 관성을 무시하고 그를 지지하는 이변으로 이어진다. 반대로 중앙 정치에선 지지자들의 환호와 반대파의 비판·조롱으로 나뉜다. 주호영·김영환 치니 한동훈 꿈틀…나비효과? 마구 휘두르고 장동혁이 수습…굿 캅 배드 캅? 20세기 독일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의 존재론에 따르면, 이 공관위원장은 ‘호남 출신 보수정당 소속’으로 던져졌다. 이는 그 스스로 선택한 것이지만, 주어진 운명이 그를 던진 측면도 있다. 던져진 상황을 극복하는 것은 그의 선택이 부여한 운명이었다. 이 때문에 이 공관위원장은 고향에선 ‘친근한 고향 사람’이 돼 선거에 임하면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하지만 보수정당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그를 발탁한 사람은 박 전 대통령이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충성은 그 스스로 선택해 자신의 삶을 던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영남 출신 엘리트’ 주축으로 구성된 국민의힘 기준에서 이 공관위원장은 변방의 이방인이다. <조선일보> 양상훈 주필은 지난 2016년 8월 이 공관위원장이 새누리당 대표에 당선된 후 그에 관한 칼럼을 썼다. 양 주필에 따르면, 이 공관위원장은 당직자 시절 자신보다 어린 당 출입기자로부터 반말을 들어가면서 그의 심부름을 했다. 변방의 이방인이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태도는 훨씬 ‘편하게’ 나왔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는 지금도 국민의힘에 있다. 러시아 문예비평가 빅토르 슈클로프스키는 시 창작과 관련해 ‘낯설게하기’란 이론을 창안했다. “익숙한 대상을 생경하게 바라보면서 그 본질을 시로 표현할 수 있다”는 취지의 이론이다. 그런데 이 공관위원장은 존재 자체가 ‘낯설게하기’였다. 고향에선 보수 정당 소속이기 때문에 낯설다. 보수 정당에선 호남 출신인 그의 존재는 낯설면서도 동시에 강렬하다. 공천관리위원장으로서 시행하는 주요 정치인 컷오프도 그가 낯선 존재이기 때문에 더욱 부각된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그의 충성도 반대파·비판자의 관점에선 개종자의 열정·과잉 사회화로 보일 여지가 있다. 개종자의 열정은 원래 특정 집단 소속이 아니었던 사람이 집단에 들어간 이후 기존 구성원보다 더 근본주의적인 태도로 열정을 쏟아붓는 현상을 말한다. 이는 대체로 “난 원래 이 집단 사람이 아니었다”는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진행된다. 그에게는 늘 ‘근본’과 관련된 비판을 받으면 안 된다는 불안감이 있기 때문이다. 과잉 사회화도 뒤늦은 주류 문법 학습 때문에 유연성을 발휘하기보다 집단의 규범을 그대로 집행하려는 경향으로 이어지는 측면을 일컫는다. 개종자의 열정·과잉 사회화를 상징하는 역사 속 인물로는 긍정적인 측면에선 한때 유대교 바리새파에서 촉망받았다가 예수의 가르침을 전파한 사도 바울을 언급할 수 있다. 부정적인 측면에선 20세기 소련의 공안 탄압을 상징하는 라브렌티 베리야를 언급할 수 있다. 조지아 출신인 베리야는 이오시프 스탈린에게 발탁된 후 대숙청을 진두지휘했던 니콜라이 예조프를 몰아내고 방첩기관 NKVD의 수장이 됐다. 지금도 베리야는 공안 탄압을 상징한다. 특정 집단에 기반이 없는 이방인이 그 집단에서 생존하기 위해 누군가의 ‘칼’이 되는 것은 숙명에 가깝다. 숙명적으로 묶인 운명 이 공관위원장은 원래 광주·전남통합시장 출마를 준비했다가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장으로 임명됐다. 그는 임명된 직후 군복을 연상시키는 야전상의를 입고 다시 등장했다. 사실상 장 대표의 칼로써 공천을 진두지휘하면서 그의 정치적 운명은 지방선거에 묶였다. 그의 운명은 여전히 칼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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