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어서 돌아오세요” 김홍빈 대장

대장님의 무사귀환 기원합니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장애인 최초로 브로드피크 정상에 올라 히말라야 14좌를 완등한 산악인 김홍빈 대장이 하산 도중 실종됐다.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여러 인사들은 김 대장의 무사귀환을 기원하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계속되는 기상악화로 수색은 지지부진한 상태. 김 대장의 가족들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국민들도 한마음 한뜻으로 김 대장의 구출 소식을 기다린다.  

열 손가락이 없는 불편함을 딛고 세계에서 12번째로 높은 해발 8047m급 브로드피크 완등에 성공한 산악인 김홍빈 대장이 하산 도중 실종됐다. 광주시와 광주장애인체육회 등에 따르면 김 대장은 이날 정상에서 내려오던 중 조난을 당했다.

파란만장
대장의 삶

김 대장은 지난 18일 파키스탄령 카슈미르 북동부 카라코람산맥 제 3고봉인 브로드피크 등정에 성공했다. 이후 하산 도중 실종돼 현지 캠프4에 대기 중이던 러시아 구조팀에 의해서 발견됐다. 당시 러시아 구조팀은 김 대장이 손을 흔들며 의식이 있는 상태였다고 밝혔다.

이어 1명의 대원이 내려가 물을 제공한 뒤 구조활동을 펼쳐 15m 정도를 끌어 올렸으며 이후 김 대장이 암벽 등강기(주마)를 이용해 올라오던 중 줄이 헐거워지면서 등선 아래쪽으로 추락했다. 김 대장이 추락한 지점은 파키스탄이 아닌 중국 쪽이며, 8000m 급 정상 부근이라 구조대 파견도 어려운 여건인 것으로 전해졌다.

러시아 원정대는 관련 사항을 현지에 있는 한국 연락관을 통해 전달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세계 등반사에 역사적 기록을 남기자마자 청천벽력 같은 비보가 전해지면서 인간 김홍빈, 산악인 김 대장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김홍빈 대장은 1964년생으로 벌교중학교, 매산고등학교를 거쳐 1983년 송원대학교 재학 중 산악부에 들어가면서 산과 인연을 맺었다. 광주대에 진학하고 나서는 공부와 등반을 병행하며 국외 원정에 뽑힐 정도로 유망주로 인정받았다.

1991년에는 북미 매킨리산(6194m)을 단독 경량 등반하다 손에 동상을 입어 조난을 당했다. 사고 16시간 만에 겨우 구조돼 10일 만에 의식을 회복했지만 7차례의 수술 끝에 10개의 손가락을 모두 절단하는 등 시련을 겪었다. 

손가락을 잃은 이후 등반을 포기했지만 사고 6년 만에 할 수 있는 것은 등반 밖에 없다고 생각을 바꾸고 다시 고산지역 등반에 나섰다.

열 손가락 없이 8000m급 14좌 완등
마지막 도전 성공 뒤 하산 도중 실종

그는 1997년 유럽 엘브루즈(5642m)를 시작으로 2006년 가셔브룸2(8035m), 2007년 에베레스트(8849m), 2012년 케이2(8611m), 2014년 마나슬루(8163m), 2018년 안나푸르나1봉(8091m) 등정에 성공했다. 이어 코로나19 여파로 한 차례 미룬 마지막 봉우리 브로드피크 완등을 위해 지난달 1일, 6명의 원정대를 구성하고 현지로 떠났다.

현지에서 2주 동안 고소 적응을 마친 김 대장과 원정대는 지난 14일부터 본격적인 등반에 나섰으며 16일께 7200m 지점에 도착했다. 정상 도착 시기를 17일 오전으로 잡았지만 기상 등의 영향으로 같은날 오후 11시30분께 캠프4에서 출발해 18일 오후 4시58분 완등 소식을 전함과 동시에 장애인 최초 8000m급 봉우리 14좌 완등에 마침표를 찍었다.


2009년에는 남극 빈슨매시프(4897m)등정에 성공하면서 세계 7대륙 최고봉 완등 기록도 갖고 있다. 김 대장은 열 손가락을 대신하고자 하체 근력을 키웠고, 스키와 사이클 훈련을 하면서 선수로 활약하기도 했다.   

1999년 장애인스키 국가대표로 발탁돼 2002년 미국 솔트레이크 동계패럴림픽에 참가했다. 2013년 전국 장애인 동계대회에서 회전, 대회전, 콤바인 3관왕, 지난해에도 2관왕에 올랐다. 전국 장애인 도로 사이클 대회에도 꾸준히 참가해 순위권에 드는 성적을 거두기도 했다.

광주시와 광주장애인체육회, 산악연맹은 지난 20일 광주전남등산학교·김홍빈과 희망만들기 등과 함께 대책위 구성, 본격적인 사고수습 체계를 가동했다. 대책위 사무실은 월드컵경기장 내 광주산악연맹에 마련됐다. 사고수습대책위는 조인철 광주시 문화경제부시장을 위원장으로, 피길연 광주시 산악연맹 회장을 본부장으로, 김준영 광주시 문화관광체육실장을 실무지원반장으로 구성했다.

대책위는 코로나19로 구조대 파견은 현실적으로 어려워 현지에 있는 원정대와 연락을 통해 구조활동을 지원할 계획이다.

사고 현장에 있는 원정대원들과 현지인(셀파)들의 도움을 받아 구조활동에 나서는 방안이 유력하다. 현재 브로드피크에는 김 대장과 함께 등반했던 대원들이 기상 여건 등으로 인해 하산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은 다른 나라 원정대원들과 구조대 구성 등을 협의하고, 실종지점 수색 방안 등을 논의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대책위 구성
본격 사고수습

대책위는 정부와 파키스탄 정부에 적극적인 협조를 요청하는 동시에 현지에서 활동하는 구조대 지원을 위해 추가 예산을 확보할 계획이다.

장애인체육회 관계자는 “브로드피크 정상 부근 기상이 나빠져 캠프4에 남아있던 대원들도 하산하고 있다”며 “이들이 5000m 지점에 있는 베이스캠프에 도착하면 정확한 상황을 들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밝혔다.

이어 “실종지점이 브로드피크 7900m 정상 부근이어서 국내에서 구조인력을 파견하면 고산지대 적응훈련 등으로 시간이 소요되고 코로나19 여파 등으로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판단했다”며 “광주대책위는 최대한 현지원정대가 움직일 수 있도록 예산 등을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김 대장은 열 손가락이 없는 장애에도 14좌 완등에 성공한 불굴의 산악인”이라며 “생존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구조활동에 나설 것”이라고 전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여러 인사가 김 대장의 무사귀환을 기원하는 응원의 목소리를 냈다. 문 대통령은 지난 20일 “마지막까지 희망을 갖고, 간절한 마음으로 김 대장의 구조와 무사귀환 소식을 국민들과 함께 기다리겠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이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참으로 황망하다. 어제 저녁, 김 대장의 히말라야 14봉우리 완등 축하 메시지를 (SNS에) 올렸었는데, 하산길에 실종되어 현재 김 대장의 위치가 파악되지 않고 있다고 한다”며 이같이 적었다.


문 대통령은 “등정 성공 후 하산 중에 연락이 두절됐다는 소식에 가슴을 졸이다, 구조됐다는 반가운 소식을 듣고 기쁜 나머지 글을 올렸는데 다시 사고가 발생한 것 같다”며 “외교부의 요청으로 오늘 파키스탄의 구조 헬기가 현장으로 출발할 예정이고, 또 중국 대사관에서도 구조활동에 필요한 가용 자원을 동원하고 있다”고 전했다.

문 대통령은 “일부 사망 추정 보도가 있었지만, 아직 정보가 분명하지 않아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며 “국민들께서도 그의 안전을 함께 빌어 주시기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재명 경기지사는 페이스북을 통해 “김홍빈 대장님은 등반에서 사고를 당해 열 손가락을 모두 잃었다. 그러나 그분은 포기하지 않고 산악인으로서 커다란 업적을 세웠다”며 “이번에도 코로나로 지친 우리 국민들께 희망을 주기 위해 히말라야 8000m봉 마지막 14번째 등정길에 나섰다. 우리 국민 모두와 함께 온마음으로 김홍빈 대장님의 무사귀환을 간절히 기원한다”고 밝혔다.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는 “완등 성공 소식에 온 국민이 축하를 보낸지 몇 시간 만에 들려온 실종 소식에 가슴이 내려앉았다”며 “장애를 이겨내고 14좌를 모두 오르셨던 그 힘을 한 번만 더 모아주십시오. 김홍빈 대장님, 어디에 계시든 꼭 무사히 돌아와주십시오”라고 희망했다.

“살아있을 것”
응원 목소리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히말라야 14좌 등반 성공 소식을 전한 지 불과 몇 시간 만에, 하산하던 김홍빈 대장의 실종 소식이 우리를 아프게 한다. 제발 무사했으면 좋겠다”며 “일상을 견뎌내기 힘든 요즘 세상, 김홍빈 대장은 우리에게 도전정신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었다. 부디 환한 웃음으로 우리 곁으로 돌아오길 진심으로 기도한다”고 전했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장애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장애인 세계 최초로 7대륙 최고봉을 완등한 불굴의 의지를 가진 분으로 알고 있다. 그 투혼으로 반드시 무사히 돌아오시기를 많은 국민과 함께 기원하겠다”고 말했다.

황보승희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지난 21일 논평을 통해 “‘김홍빈’이라는 이름은 그 자체로 도전과 희망의 상징이었다”며 “뜬눈으로 밤을 새웠을 가족들과 하나 된 마음으로, 국민의힘은 김 대장의 무사 귀환을 간절히 기원한다”고 말했다.

황보 수석대변인은 “열 손가락이 절단되고서도 도전을 멈추지 않았던 그는 완등 직후에는 ‘코로나19로 어려운 국민에게 힘이 되고 싶다’고 했다”며 “이제는 우리가 김 대장의 귀환을 위해 힘이 되어야 할 때”라고 썼다. 그는 “국민의힘은 모든 국민과 함께 김 대장의 무사 귀환을 기원하며, 어떠한 협조 노력도 아끼지 않겠다”고 밝혔다.

김 대장에 대한 수색이 진척이 없는 가운데 부인이 헬기가 뜰 수 있도록 중국정부가 조속히 비행 허가를 내주기를 바란다고 눈물로 호소했다. 김 대장의 부인은 지난 22일 광주 서구 광주장애인국민체육센터 3층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같이 전했다.

국민들 한마음 한뜻으로 구조 기원
기상악화로 지지부진…생존 확률은?

부인은 “현재 김 대장의 실종 위치는 중국 쪽으로 확인되고 있다”며 “그런데 중국 정부의 허가가 늦어지고 있어 수색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외교부와 파키스탄 정부도 중국 정부의 헬기 비행 허가가 이뤄질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노력해 주길 바란다”고 부탁했다.

그러면서 “김 대장은 난관을 이겨낸 강한 사람이다”며 “가족들은 김 대장이 살아있을 것으로 굳게 믿고 있는 만큼 시간이 흐르기 전에 조속히 수색에 나서야 한다”고 호소했다.

광주김홍빈사고수습대책위 관계자는 “외교부와 파키스탄 대사관, 중국 대사관이 화상회의를 통해 수색에 대해 협조를 하기로 협의했다”며 “다만 파키스탄 정부에서 비행 허가를 위한 관련 절차가 늦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최근 김 대장의 위성전화 신호가 중국 영토 내에서 잡힌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22일 수색 당국에 따르면 파키스탄군은 K2(8611m) 남동쪽 9㎞ 지점에서 김 대장이 갖고 있던 위성전화 신호를 확인했다. 김 대장이 조난된 브로드피크는 중국과 파키스탄 국경 지역에 걸쳐있다.

K2와는 8㎞가량 떨어진 곳이다. 김 대장은 파키스탄 쪽에서 브로드피크를 등정한 후 조난됐고 구조 과정에서 중국 쪽 절벽으로 추락한 것으로 추정된다.

당국은 위성전화 위치의 세부 위도와 경도까지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날 광주시사고수습대책위원회 등이 김 대장의 위성전화 신호가 잡혔다는 소식을 전했는데, 더 구체적인 위치가 파악된 것이다. 처음 위성전화 신호가 포착된 시간은 파키스탄 현지시각으로 지난 19일 오전 10시37분이다.

위성전화가 있는 곳은 해발 7000m가량이다. 김 대장의 조난 지점이 해발 7800~7900m라는 점을 고려하면 위성전화는 800~900m 아래로 떨어진 셈이다. 위성전화 근처에 김 대장이 함께 있는지에 대한 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수색 당국은 위성전화 신호가 확인된 지점을 중심으로 수색을 벌일 계획이다. 다만 추락 추정 지점이 경사 80도의 직벽에 가까운 빙벽이라 난항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더군다나 현지 기상 상태가 좋지 않아 조난 후 나흘째인 이날도 구조 헬기가 뜨기 어려운 상황인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 외교부 요청으로 파키스탄 육군 항공구조대 헬기 2대가 브로드피크 인근 도시 스카르두에서 대기 중이다. 전문 등산 대원과 의료진이 포함된 중국 연합 구조팀도 전날 사고 현장 인근 지역에 도착했다.

계속되는 수색
기상악화 고전

한국 외교부 요청으로 파키스탄 육군 항공구조대 헬기 2대가 브로드피크 인근 도시 스카르두에서 대기 중이다. 전문 등산 대원과 의료진이 포함된 중국 연합 구조팀도 전날 사고 현장 인근 지역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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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보이스피싱·스캠 조직 캄보디아 ‘셀허브’ 추적

[단독] 보이스피싱·스캠 조직 캄보디아 ‘셀허브’ 추적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캄보디아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의 민낯이 드러났다. 주로 수도인 프놈펜 인근과 시아누크빌 범죄 단지가 그들의 주둔지였다. 국내 조직폭력배가 중국 갱단과 결탁해 만든 ‘셀허브’의 경우 피해자만 수십명이다. 이들은 엔터테인먼트 기업을 가장했다. 사이트에는 유명인의 사진이 수차례 도용된 것으로 확인됐다. 현재는 사라진 셀허브 엔터테인먼트의 홈페이지. 지난해 7월 <일요시사>가 취재한 이후 대표이사의 이름과 사진이 여러 차례 바뀌었다. 유인촌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게 표창장을 받았다며 문서를 위조하기도 했다. 이 기업의 정체는 로맨스 스캠 조직이다. 확인된 피해액만 약 40억원, 피해자는 수십명이다. 한 언론사는 보도자료까지 작성하며 홍보하기도 했다. 조직적 준비 경찰 수사 중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지난 24일, 셀허브 조직원 3명을 각각 구속·불구속으로 서울중앙지검에 송치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이들은 조건 만남 사이트를 운영한 로맨스 스캠 조직이다. 여성 관련 데이트 상품을 판매하거나 연애 빙자 사기를 일삼았다. 셀허브 조직원이던 A씨는 “연예인 지망생이나 모델과 연락하게 해 준다며 50만원에서 100만원까지 대포통장 계좌에 돈을 입금하게 한 뒤 텔래그램 아이디를 알려주고 연락하게 하는 시스템”이라며 “연결된 여자는 실제 남성이고 한국에서 조직폭력배로 활동하던 사람들이 대부분”이라고 주장했다. 이 조직은 지난해 3월 캄보디아 범죄 밀집 지역인 태자 단지에서 인력을 모으기 시작했다. 같은 해 5월 사이트를 개설해 조직원들에게 민간인 협박, 중국어 통역 등의 역할을 맡기고 수십명으로부터 약 40억원을 뜯어냈다. 같은 해 7월 <일요시사> 취재가 시작되자 이 조직은 셀허브 엔터테인먼트 대표이사의 이름을 ‘김현숙’에서 ‘박소희’로 변경하고 유명인의 사진을 수차례 도용했다. 유 전 장관에게 표창장까지 수여받았다며 피해자들의 의심을 피하려는 꼼수도 서슴지 않았다. A씨는 “조직에서 탈출하려는 사람은 밤새 맞거나 강제로 마약을 투약당하기도 했다. 조직폭력배 출신 한국 사람들이 간부고 일반 조직원은 교민 사이트를 통해 ‘한 달에 500만~1000만원을 벌 수 있다’는 거짓말에 속아 일하게 된 사람들”이라고 설명했다. 이 사건은 서울경찰청이 수사하기 이전인 지난해 7월부터 강서·영등포·구로경찰서 등에 여러 고소장이 접수됐었다. 하지만 수사는 원활하지 않았다. 주요 혐의자가 해외에 거주 중이거나 피의자 특정이 어려운 게 난관이었다. 수사를 담당했던 한 경찰 관계자는 “캄보디아 프놈펜에 주요 혐의자들이 거주한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지난해부터 공조를 요청했으나 캄보디아 당국이 비협조로 일관했다”며 “고소인분들이 ‘왜 안 잡냐’ ‘내 돈 어떻게 하냐’는 등 불만이 많으셨다. 매번 죄송하다고 말씀드리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캄보디아가 협조하지 않으면 조치가 불가능했다”고 토로했다. 지난해 3월부터 조직원 모집…태자 단지서 모의 ‘유인촌 표창장’ 걸어 놓고 ‘정상 기업’ 홍보 막막했던 수사는 대학생 박모씨 피살 사건이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면서 풀리기 시작했다. 이재명정부가 캄보디아를 압박했고 현지에 구금된 한국인 범죄자 겸 피해자 수십명을 국내로 송환했다. 송환된 인원 중 일부는 셀허브 사건과도 연관된 것으로 파악됐다. 정성학 충남경찰청 수사부장은 지난 20일 청내 프레스센터에서 브리핑을 열고 “이들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사기) 및 범죄단체 가입 및 활동 혐의로 전원 구속했다”고 밝혔다. 현재까지 부건(총책 가명, 40대 초반, 한국말을 쓰는 외국인 추정) 조직으로부터 확인된 피해 건수는 110건, 피해액은 93억여원에 달했다. 약 100명의 조직원을 거느린 부건은 지난해 중순부터 올해 7월까지 주로 프놈펜 웬치(범죄 단지) 및 태국 방콕 등지에서 한국인을 상대로 범행을 벌여왔다. 부건 조직은 지난 2018년 중국에서부터 활동을 시작해 그동안 단속을 피하려 태국, 캄보디아 등지로 거주지를 옮겨가며 범행을 계속해 왔다. 이들은 데이터베이스, 입출금 등을 지원·관리하는 CS팀과 광고를 보고 접근한 피해자를 기망하는 로맨스팀, 검찰 사칭 보이스피싱팀, 코인투자리딩 사기팀, 공무원 사칭 노쇼 사기팀 등 총 5개 팀으로 이뤄진 조직체계를 갖췄다. 이들은 가구판매업을 하러 캄보디아에 갔다고 진술했으나 이후 지역 선·후배 권유, 고액 아르바이트 인터넷 광고 등을 접하고 범죄에 연루된다는 걸 알면서도 조직에 가입해 활동한 것으로 조사됐다. 속아서 조직에 들어갔다고 진술하지 않은 이들의 유입 경로는 ▲지인 포섭 29명 ▲인터넷 광고 등 포섭 8명 ▲현지 카지노 포섭 6명 ▲기타 2명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남성 42명과 여성 3명으로 연인도 있었다. 대부분은 20~30대 연령으로 최소 2개월부터 최대 16개월까지 범행에 가담해 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조건 만남 사이트 경기북구경찰청 형사기동대도 전기통신금융사기특별법 위반 등 혐의로 피의자 15명 중 11명을 구속 송치했다. 이들은 지난해 8월부터 한 달간 캄보디아 범죄 단지에서 여성을 사칭, 조건 만남 등을 명목으로 피해자들로부터 돈을 가로챘다. 또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이성 만남 광고를 낸 후 이를 보고 연락해 온 피해자에게 여성인 척 채팅으로 유인했다. 여성을 소개받기 위해서는 자신들이 개발한 조건 만남 사이트에 회원 가입과 인증을 받아야 한다고 속여 인증을 위한 돈을 요구했다. 3차례에 걸친 인증 절차 과정에서 여러 게임에 성공하면 가입비를 돌려준다고 속여 피해자로부터 1인당 적게는 수십만원에서 많게는 수억원을 받아 챙겼다. 피해자들이 믿을 수 있도록 별도의 만남 인증과 후기글을 남기는 ‘화력방’도 운영했다. 현재까지 확인된 피해 규모는 피해자 36명, 피해금 16억원 상당이며, 1인당 최대 피해 금액은 2억1000만원이다. 이들은 대부분 20~30대 남녀다. 최초 범죄집단을 구성한 캄보디아 프놈펜 지역 명칭 ‘툴콕’을 의미하는 ‘TK’파로 스스로를 부르며 총책을 정점으로 한 지휘·통솔 체계를 갖췄다. 조직 운영을 총괄하는 총책, 이를 보좌하며 실무 전반과 인력 공급 등을 담당하는 총관리자, 각 파트 팀원의 근태를 관리하고 지시하는 팀장으로 구성됐다. 또 자체적인 조건 만남 홈페이지를 제작하는 개발자, SNS에 광고 글을 게시하는 홍보팀과 광고를 보고 접근한 피해자를 기망하는 로맨스 2개팀으로 역할을 분담했다. ▲상호 가명 사용 ▲근무 중 휴대전화 금지 ▲사진 촬영 금지 ▲야간에는 커튼으로 외부 차단 ▲다른 부서와의 업무 내용 공유 금지 등의 규칙에 따라 생활하기도 했다. 중국 국적 100명 뒷배 이들은 총책이 마련한 건물에서 2인1조로 합숙했는데 프놈펜 툴콕 지역의 13층 건물을 사용하다가 지난 8월, 현지 단속을 피해 센소크 지역 7층 건물로 이전해 범행을 이어오던 중 현지 수사 당국에 의해 검거됐다. 이들은 경찰 조사에서 경제적 이익을 목적으로 SNS 구직 광고나 조직원을 통해 범죄단체에 가입했다고 진술했으며 사기임을 알고도 범행을 지속한 것으로 조사됐다. 피의자 대부분은 현지에서 구금된 중에도 총책이 이른바 관작업을 통해 자신들을 석방시켜 줄 것이라는 말만 믿고 대사관의 도움을 거절하고 귀국하지 않았다. 셀허브 사건 간부들은 타 사건에도 연루됐다. 지난 7일 캄보디아 바벳에 인접한 베트남 떠이닌 지역 국경 검문소 인근에서 30대 여성 B씨가 차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는데, 숨지기 직전까지 셀허브 간부와 같이 있었다. B씨의 사인은 마약 과다 투약이었다. 국내 정보·수사기관은 B씨가 셀허브에서 한국인 명의의 대포통장을 공급해 왔다고 보고 있다. A씨는 “셀허브에서 일할 사람을 모집하는 역할을 했던 B씨인데 통장을 팔려고 캄보디아에 도착한 한국인들을 유인해 범죄 단지로 팔아넘기고 유인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실제 정보·수사기관도 B씨에 의해 범죄 단지에 넘겨지는 피해를 입거나 유흥업소 일을 강요당한 사례를 확인하고 조사 중이다. 정보기관 관계자는 “사실상 마약을 강제로 과다하게 투약당한 살인사건이라는 첩보는 아직 확인 중”이라며 “특정 조직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건 현지 경찰도 수사 중인 내용”이라고 말했다. 대개 조직폭력배 출신…지휘는 중국 조직이 맡아 40억 피해액 환수 불가능 “자금 세탁 끝났다” 첫 데이트하던 연인을 치어 여교사를 숨지게 했던 이른바 ‘대전 머스탱 교통사고’의 피의자도 셀허브 조직원으로 확인됐다. 피의자 전모씨는 2019년 2월10일 오전 10시14분 대전 중구 대흥동에서 면허도 없이 외제차를 운전하던 중 인도를 걷던 조모씨와 박모씨를 들이받아 박씨를 숨지게 하고, 조씨에게 중상을 입혔다. 전씨가 대여한 외제차는 불법 대여 차량이었다. 이 차량은 애초 대구에 사는 C씨가 자신 명의로 캐피털에서 월 115만원씩 주는 조건으로 60개월간 대여한 것이다. C씨는 사촌 안모씨와 함께 인터넷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나모씨가 올린 ‘외제차 저렴하게 빌려줄 사람을 찾는다”는 글을 보고 접근, 한 달에 136만원씩 받기로 하고 대여한 머스탱 차량을 재임대했다. 나씨는 이렇게 빌린 머스탱 차량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활용해 “외제차를 빌려준다”고 광고하며 또다시 대여업을 했다. 전씨는 나씨가 올린 이 글을 보고 일주일에 90만원씩 주기로 약속하고 머스탱을 빌려 운전했다. 매년 확정되는 범죄수익 추징금은 30조원을 넘지만 환수 금액은 1%에도 미치지 않는다. 법무부가 캄보디아에서 보이스피싱과 로맨스 스캠 등의 범죄로 발생한 현지 범죄수익을 국내로 환수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우선 법무부는 “캄보디아 내에서 벌어진 범죄 가운데 현재 국내에서 수사 중이거나 재판 중인 사건이 1차 현지 수사 의뢰 대상”이라며 “이후 국내에서 유죄 선고를 받으면 최종적으로 환수 대상이 된다”고 밝혔다. 국제형사사법공조 조약에 따르면 해외에서 발생한 범죄라 하더라도 피해자가 국내에 있고 피해액이 특정될 경우, 우리 정부가 해외에 범죄수익 환수를 요청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2019년 캄보디아와 국제형사사법공조 조약을 체결해 2021년 정식 발효됐다. 주요 간부들 타 사건 연루 정보기관 관계자는 “범죄자 개인이 아닌 조직을 대상으로 한 범죄수익 환수 사례는 거의 없다. 특히 국내에서 수사와 재판이 끝나야 한다”며 “정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나서는 건 좋지만 이미 늦었다. 범죄조직 특성상 이미 코인이나 대포 통장으로 제3국에 은닉하거나 세탁을 하고도 남았을 시간”이라고 지적했다. 부장검사 출신 한 변호사도 “수사가 끝나고 유죄 판결이 나기까지 수년이 걸리는데 환수 절차는 이 모든 사법절차가 종료돼야 가능하다. 특히 조세회피처로 범죄수익을 옮겨놨다면 환수는 불가능에 가깝다”고 봤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