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를 만나다> 정의로움을 입은 배우 엄지원

“‘발연기’라고 욕먹을까 걱정했어요”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좀비물이나 스릴러 장르에 필연적으로 따르는 캐릭터가 있다. 이른바 작품의 화자 역할이다. 대부분 주인공이다. 이런 경우 최대 분량을 차지하지만, 소위 ‘따 먹을 게 없는’ 장면만 그득하다. 연기를 잘해도 티가 나지 않고, 혹시나 감정선이 어긋나면 바로 티가 난다. tvN 드라마 <방법>에 이어 크로스오버로 영화화까지 이어진 <방법:재차의>에서 이 같은 역할을 맡은 배우는 엄지원이다. 많은 배우들이 어려워하는 역할을 연기 고수 엄지원은 훌륭히 소화해냈다. 

2014년 개봉한 영화 <좋은 친구들>의 지성이 연기한 현태, 2015년 SBS에서 방영된 <마을 - 아치아라의 비밀>의 문근영이 분한 소윤, 2020년 개봉한 영화 <반도>에서 강동원이 맡은 정석. 장르적 특성이 강한 작품 속 세 캐릭터는 작품의 이야기를 끌고 가는 주인공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의 시선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이른바 화자다. 

이야기 끄는
주인공 화자

장르물의 경우 사건이 빠르게 진행돼야 할 뿐 아니라, 설명할 거리도 많고 인물도 다수 등장한다. 이러한 조건 속에서 이야기 전개하는 막중한 역할로 늘 바쁘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색다른 경험을 한다. 대사량도 많다. 주변 캐릭터뿐 아니라 관객들에게 작품 속 상황의 정보를 전달한다.

정보 전달은 매우 이성적인 영역이라 현실성을 바탕으로 한다. 

따라서 캐릭터 색감이 대체로 옅다. 대중이 어디서든 볼 수 있는 흔한 인물인 경우가 많다. 태생적으로 밋밋하다. 색감이 너무 짙은 인물이 정보를 전달하면, 현실성이 무너질 확률이 높아 관객들의 공감을 이끌기 어렵기 때문이다.

감정신도 거의 없고, 전반적으로 절제된 연기를 선보여야 한다. 이 캐릭터들이 현실성을 부여하면서 색감이 뚜렷한 다른 캐릭터들이 도드라진다. 작품을 위해 희생하는 역할이다. 

정보 전달자는 기본적으로 분량이 많다. 분량이 많다는 건 시험대에 오르는 장면이 많다는 것. 관객의 매서운 평가를 받을 확률이 높다. 게다가 현실성이 높은 인물은 감정선이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연기 이상한데?’라는 느낌을 준다.

상상력이 가미된 인물이면 오히려 ‘그럴 수 있지’라고 관대하게 받아들여지는데, 현실성이 높은 인물은 작은 실수라도 고스란히 보인다. 수많은 슈퍼세이브를 했더라도 결국 결승골을 뺏기면 죄인이 되는 골키퍼와 비슷한 포지션이다.

배우는 고뇌에 빠진다. 작품에 희생하면서도 인물의 능동성을 이미지화해야 한다는 숙제가 주어져서다. 안정적인 연기는 기본적으로 뒷받침돼야 한다. 영화나 드라마 제작진은 이러한 인물을 캐스팅할 때, 주인공 자리임에도 미안한 마음을 갖고 제안한다. 

이 같은 역할을 맡는 배우는 연기력뿐 아니라 작품을 대하는 태도도 훌륭해야 한다. 혹여 배우의 욕심 때문에 작품 전체가 어그러질 수 있어서다. 

크로스오버 영화 <방법:재차의>
절제된 감정·현실적인 이미지 

tvN 드라마 <방법>에서 엄지원이 연기한 임진희가 언급한 역할에 해당한다. 신문사에서 탐사보도를 맡은 기자인 그는 현실에서는 설명할 수 없는 괴이한 현상과 늘 맞닥뜨린다. 온몸이 꼬여서 죽은 시신을 발견하거나, 주술로서 사람을 죽이는 장면도 본다.

임진희는 관객 대신 새로운 현상에 반응하는 인물이다.

이후 방법사 백소진(정지소 분)과 함께 악신을 이용해 대다수 사람을 죽이려 하는 진종현(성동일 분)과 그 일당을 퇴치한다. 

영화 <방법:재차의>는 드라마에서 확장된 크로스오버 작품이다. 드라마 속 전반적인 인물과 세계관은 같은데 다른 형태의 사건이 벌어졌을 뿐이다. 드라마 속 인물을 영화에서 다시 보여주는 건 다른 배우들도 해본 적 없는 값진 경험이다. <방법>에서 작가의 페르소나이자 이야기의 화자인 엄지원이 그 중심에 있다. 

“매체를 넘나드는 크로스오버는 정말 좋았어요. 드라마에서 구축했던 인물이기 때문에 영화로 넘어올 때 캐릭터를 만드는 작업이나 배우들 간의 친밀감, 연기적인 합을 맞추는 기간도 짧았어요. 영화가 저의 고향 같은 곳이고, <방법> 제작진이 영화 팀이 모여 만든 드라마여서 고향에 온 기분이었어요.”

초현실적인 세계를 글과 말로 전달한 기자 진희는 영화에서 신문사를 퇴사하고 보도 채널을 따로 개설한다. 보도 형태만 조금 바뀌었을 뿐, 기자로서 불의와 맞서는 정의로운 성향은 더욱 견고해졌다. 

정의로움을 드러내는 인물은 사실 매력이 없다. 때로 그 정의로움이 위선으로 비춰 ‘오지랖’이라는 비호감을 주기도 된다. 감정 변화의 폭도 좁고, 오직 정의로움이라는 틀에 갇힌 리액션과 대사만 있을 뿐이다. 궁금증을 유발하기보다는 궁금증이 될만한 존재를 발견하는 게 주 임무다. 능동적으로 행동하기보다는 수동적으로 반응한다.

그 안에서 진취적인 기자의 형태를 띠어야 한다. 엄지원은 맡은 배역을 표현하기 어려워 매우 괴로웠었다고 토로했다.
 
“<방법> 드라마나 영화나 연기하기 정말 힘들었어요. 제일 힘든 게 ‘정의로운 기자’였어요. 인물을 정의로움으로 정의한 거예요. 도대체 정의로움이 뭐냐고요. 활동적이거나, 화가 많거나라는 식으로 구체화했었으면 더 좋았을 것 같아요. 정의로움은 너무 모호해요. 어떻게 정의로움을 표현해야 할지 어려웠어요.”

정의란
무엇인가

감독과 작가에게 계속 정의로움의 의미를 질문했다. 무엇이 진정한 정의냐고 물었다. 작품에 임할 때마다 스스로 답을 구할 때까지 질문하고, 자신의 성향과 인물의 성향을 적절히 섞어가며 새로운 이미지를 탄생시키는 데 최선을 다하는 그에게 ‘정의로움’은 끝내 언어로 설명하기 어려운 숙제였다. 

“연기하면서 ‘정의로움이라는 덫에 갇혔어요’라고 말하기도 했어요. 정의롭다는 건 곧 매력이 없다는 얘기기도 해요. 매번 보편적으로 올바른 모습만 보이잖아요. 옳긴 하지만 매력은 없어요. 매력이 있어야 흥미가 끌리는 건데. 결국 감독님도 대답하지 못했어요. 정의로운 기자가 나오는 작품은 평가가 좋지 않다는 속설이 있어요. 그건 정의로운 인물이 매력이 없어서인 것 같아요.”

정의로움의 뜻은 풀어내지 못했다고 했지만, 영화를 보면 엄지원은 정의로우며 진취적인 임진희를 구현해낸다. 진실을 좇는 데 늘 앞장서고, 주위에 희생하며 불의 앞에서 매서운 질문을 던지는 그의 얼굴에는 정의가 서려 있다. 

누군가 지시하기 전에 해야 할 일을 찾고 위험한 순간을 굳이 피하지 않는 강단도 엿보인다. 태생적으로 단편적이고 밋밋할 수 있는 임진희는 작품의 화자 역할을 충분히 하면서도, 매력적이다. 

“연기 못했다는 말, ‘발연기’하는 거 아니냐는 비판을 받을까 봐 조마조마했어요. 연기를 잘해도 드러나지 않고, 못하면 바로 티 나는 인물이 진희거든요. 걱정 많이 했어요. 그래도 그렇게 연기를 못하진 않았나 봐요. 진희는 사실 태생적으로 한계가 분명해요. 건조하달까요. 스토리는 빠르게 이어지는데, 그 안에서 진희로 뭔가 연기를 하고 싶어도 뭐가 없어요. 뻔한 모습이 너무 많은 거죠. 이 뻔한 것을 어떻게 입체적으로 풀어내냐가 큰 숙제였죠. 연기의 결을 미세하게 잡아가려고 했어요. 순간의 점을 잡아내고 이 점들을 이었을 때 전체적으로는 능동적으로 보였으면 했어요.”

희생적 태도
현실적 연기

엄지원이 현실적인 톤을 잡아주자, 초현실적인 설정인 ‘재차의’가 실감 나게 받아들여진다. 재차의는 시나리오를 집필한 연 감독이 새롭게 설정한 것으로, 주술을 통해 조종당하는 시신이다. 고서 <용재총화>에 나오는 전통 요괴 재차의에, 인도네시아 흑마술을 포개 새로운 괴생물체를 만들어냈다.

<부산행>의 좀비보다는 비교적 느리지만, 총에 맞아도 죽지 않는다. 팔목을 부러뜨려야만 행동을 멈춘다. ‘스토리 마스터’로 불리는 연 감독의 상상력이 또 한 번 커다란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이런 초현실적 설정이 그럴듯하게 받아들여지는 건 엄지원을 비롯한 배우들의 안정적인 연기력 덕분이다.

“촬영 현장에서는 재차의 군단이라고 했어요. 평소 이름도 알고 친하게 지냈어요. 그러다 촬영 들어가면 고강도 액션을 하면서 대립했죠. 그 배우분들은 사실 댄서예요. 관절을 이용한 춤을 잘하시는 분들이 맡아주셨어요. 중반부에 100명의 재차의 군단이 뛰어오는 데 정말 멋있더라고요. 새로운 영화가 탄생할 거라는 기대감이 그 순간에 확 들었어요.”

엄지원이 영화 시나리오를 받은 건 드라마 <방법>이 끝난 직후다.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까 궁금했던 그는 시나리오를 읽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주술사와 주술사의 대립을 그린 드라마와 달리 영화는 <부산행>과 같은 좀비를 띠고 있었기 때문이다.

연 감독이 집필하고 김용완 감독이 연출한 <방법:재차의>는 촘촘한 스토리 라인을 바탕으로 볼거리 넘치는 화면이 가득하다. 상업 영화로서 군더더기 없는 작품이다. 

“연 감독님은 정말 엄청난 이야기꾼인 것 같아요. 그 수 많은 이야기가 머릿속에 들어있다는 게 놀라워요. 게다가 작업 속도도 엄청 빨라요. 다른 분들이 몇 년에 걸쳐 할 것을 한 달 만에 완성하시기도 해요. 추진력과 에너지, 열정도 대단해요.”

“그런 모습이 제게 좋은 자극이 됐어요. 이분이랑 옆에 있으면서 함께할 수 있는 이야기가 많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김용완 감독님은 물 같아요. 차분하고 꼼꼼해요. 밀도 있는 이야기를 많이 나눈 것 같아요. 상반된 두 스타일이 시너지를 내서 좋은 영화가 나온 것 같아요.”

“도대체 정의로움이 뭐냐고요…괴로웠어요”
“진심을 담아 가슴으로 하는 연기가 철칙”

배우에게 주어진 숙명 중 하나가 직업에 대한 이해다. 인물의 직업이 정해지는 순간 의상과 말투, 삶에 대한 태도가 정해진다. 같은 직업군이라고 해도 부서마다 특성이 다르고, 대사에 쓰인 성향과 겹쳐지면서 새로운 인물이 탄생한다. 배우는 그 인물에 자신을 부여하거나 빼면서 연기한다. 

엄지원이 맡은 역할은 탐사보도 기자다. 이슈의 현장이나 주어진 출입처를 오가는 기자가 아닌, 숨어있는 진실을 발굴하는 기자다. 배우 생활을 하면서 봐온 기자들과 비슷하면서도 사뭇 다르다.

“어떤 직업을 연기하게 될 때 작든 크든 간에 조사하고 이해하는 시간을 가지기도 해요. 필요에 따라서는 참관을 하기도 하고요. 기자들은 친근한 편이에요. 진희는 탐사보도 기자인데요. 연기하면서 느낀 건 또 다른 사명감이 있는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펜으로 뭔가를 만드는 데다가, 단어의 소중함을 아는 직업군이라고 느꼈어요. 작업 후에 애정이 많이 생겼죠. 저도 이제 기자 출신이에요.”

벌써 데뷔 20년 차다. 2002년 MBC <황금마차>로 시작해 여러 작품에서 새로운 얼굴을 만들어냈다. 어떤 연기든 믿고 맡길 수 있는 배우다. 감정의 폭이 크든 작든, 서민이든 귀족이든, 선이든 악이든, 그가 못해낸 연기는 없다. 

“연기할 때 질문을 많이 하는 편이에요. 시나리오나 대본의 허점을 먼저 찾아내요. 캐릭터가 가진 개연성의 문제점을 발견해내려고 해요. 그 다음에 부족한 부분을 채우려고 하죠. 그리고 저를 그 인물에 섞는 작업을 해요. 제가 그 삶을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에 제 내면의 어떤 점과 인물의 공통점을 찾아서 반반 정도 믹스하는 과정을 거쳐요.”

“제가 그 속에 있어야 보시는 분들도 편하거든요. 엄지원만 있으면 안 되기 때문에 새로운 부분을 넣으려고 하죠. 꼭 지키려고 하는 게 있어요. ‘이 연기가 진심인가?’라는 부분이요. 적어도 가짜로 연기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가슴으로 연기하고 있는가가 제 철칙이에요.”

적지 않은 고뇌와 노력으로 매우 훌륭한 작품을 만들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코로나19 확진자가 늘어나고 있으며, 정부의 거리두기 정책도 4단계로 격상됐다. 영화를 보러 오는 관객의 발걸음이 무거울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새로운 인물
탄생의 과정

“텐트폴 시장에 영화를 개봉하는 건 처음인 거 같아요. 여름 시장에 영화를 개봉해서 의미가 남달라요. 전통적으로 이 기간에 개봉하면 다 잘됐기 때문에 큰 걱정이 없었겠지만, 이번에는 참 쉽지 않네요.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저희뿐 아니라 이번에 개봉하는 작품 모두 잘 됐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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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춤 추는 이정현 마이웨이

칼춤 추는 이정현 마이웨이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이정현 공천관리위원장이 거침없이 칼을 휘두르고 있다. 주호영 국회부의장·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이 공관위원장의 칼에 희생됐다. 변방의 이방인이어서 휘둘러야 했던 칼의 운명은 반복되고 있다. 그는 왜 칼을 휘두르는 걸까? 국민의힘 이정현 공천관리위원장(이하 공관위원장)이 지난 13일 “여러 의견을 존중하는 과정에서 제가 생각했던 방향을 더는 추진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면서 사퇴했다가 이틀 후 번복했다. 이 공관위원장은 사퇴했던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이틀 후 또 번복 정치권 안팎에선 대체로 이 공관위원장의 갑작스러운 사퇴의 주요 원인으로 오세훈 서울시장과의 갈등을 주된 원인으로 거론했다. 오 시장은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에 소극적인 지도부 혁신 ▲혁신적인 선거대책위원회 조기 출범 등을 요구하면서 지방선거 공천 기간 내 후보 등록을 하지 않았다. 이 공관위원장의 사퇴 번복에는 장 대표가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사퇴 번복 후 “장 대표가 지난 14일 공천 혁신을 완수해 달라면서 공천 관련 전권을 맡긴다는 뜻을 전해왔다”고 밝혔다. 따라서 이 공관위원장의 사퇴는 대체로 ‘무력 시위’로 해석되고 있다. 결국 오 시장은 지난 17일 국민의힘 서울시장 경선 후보로 등록했다. 복귀한 이 공관위원장은 ‘장 대표가 부여한 공천 관련 전권’을 거침없이 휘둘렀다. 지난 16일에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이하 공관위)는 박형준 부산시장 공천 컷오프를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박 시장을 컷오프하고,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을 단수공천하자”고 주장한 핵심은 이 공관위원장이었다. 그러자 부산에 지역구를 둔 국민의힘 의원들이 장 대표를 방문해 항의했고, 장 대표는 박 시장·주 의원 간 경선을 결정했다. 같은 날 공천이 날아간 현역 광역자치단체장은 김영환 충북도지사였다. 공관위는 김 지사를 컷오프한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그저 “김 지사의 공적·업적을 부정·평가절하 하기 위한 게 결코 아니”라면서 시대 교체·세대 교체를 언급했다. 정치권에선 ▲만 70세 고령 ▲수뢰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는 등 사법 리스크 ▲재임 중 각종 발언 논란 등 대체로 김 지사의 약점이 컷오프의 실제 이유 아니겠느냐는 추측이 돌고 있다. 김 지사는 곧바로 “특정인을 두고 면접을 진행하다니 기가 막힌다”면서 일각에서 거론됐던 ‘국민의당 김수민 전 의원 충북도지사 후보 내정설’을 암시했다. 김 전 의원은 지난 2024년부터 1년 동안 충북 정무부지사를 지냈다. 김 지사는 지난 18일엔 서울남부지법에 공천 배제 효력 정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이어 다음 날 진행된 심문에서 “이 공관위원장이 김 전 의원에게 개인적으로 연락해서 출마 여부를 타진했다”며 “절차적 정당성이 파기됐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공관위는 이와 상관없이 지난 20일 김 지사를 제외한 경선 구도를 확정했다. 이 공관위원장은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 공천과 관련해서도 존재감을 드러냈다. 공관위는 지난 22일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 경선과 관련해 주호영 국회부의장·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을 공천에서 배제했다. 광주시장 출마 아닌 공관위원장 지방선거와 묶인 운명의 끝은? 대구시장 후보 경선에 대해선 한동안 “국민의힘 최은석 의원 공천이 사실상 내정된 게 아니냐”는 설이 돌아다녔다. 그러자 최 의원은 지난 21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공관위원장은 공천 심사 면접에서 처음 만났다”면서 이를 강하게 부인했다. 주 부의장은 공천 배제에 크게 반발했다. 그는 공천 배제 가능성이 거론되던 지난 17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대구를 공천 실험장으로 삼으면 안 된다”며 “대구시장을 더불어민주당에 상납하려는 거냐”고 비판했다. 이어 “이 공관위원장은 대구의 자존심을 더 이상 짓밟지 말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주 부의장 공천 배제는 지난 22일 확정됐다. 그는 지난 25일 가처분 신청과 무소속 출마 가능성을 언급했다. 일각에서 의아하게 해석하는 지점은 유튜버 고성국씨 등 강경 보수 진영에서 강하게 지지했던 이 전 위원장이 공천에서 배제됐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추 의원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로 확정돼 의원직에서 물러나면, 이 전 위원장이 추 의원의 지역구 대구 달성 재보궐선거에 출마하는 게 아니냐”는 설이 나왔다. 반대로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서 대구시장 선거에 출마하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주 부의장의 지역구인 대구 수성갑에 출마하는 것 아니냐”는 설도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친한(친 한동훈)계 일원으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박정하 의원은 지난 24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주 부의장의 공천 배제엔 감정이 어느 정도 반영돼있는 게 아니냐는 생각을 하지 않고선 해석이 잘 안 된다”며 “장 대표의 생각도 분명히 들어가 있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이어 주 부의장과 한 전 대표의 연대설에 대해서도 “한 전 대표가 보수 재건 후 당에 돌아오는 길을 찾아가는 길에 있어선 주 부의장의 선택 여하에 따라 모든 가능성을 다 열어 검토할 것이라고 본다”면서 연대설을 부정하진 않았다. 장 대표는 지난 23일 국민의힘 대구시당을 방문해 “공천 관련 모든 것은 당 대표인 제 책임”이라면서 공천 내정설에 대한 간접적인 의견을 밝혔다. 이어 “시민이 납득할 수 있는 경선을 치르겠다는 말씀을 드렸고, 당 대표로서 역할을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광역지방자치단체장 경선 상황·흐름에 대해선 “영남권 기성 중진과 반 장동혁 성향 인사를 배제하는 방향으로 가는 게 아니냐”는 의문이 나오고 있다. 일각에선 장 대표와 이 곤공관위원장이 각각 ‘굿 캅’과 ‘배드 캅’으로 역할을 분담한다고 의심하고 있다. 의외의 연대설 이 공관위원장의 활동 방향을 놓고, 일각에선 그가 “사실상 장 대표의 칼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그의 삶과 정치 활동은 국민의힘 주류 정치인과 많이 다르다. 국민의힘은 영남을 주된 지역 기반으로 두고 있지만, 이 공관위원장은 전남 곡성 출신이다. 그가 태어나 자란 곡성에서도 특히 위치가 외진 목사동면 동암리로 알려졌다. 그는 고등학생 시절부터 정치에 관심을 둔 것으로 알려졌고, 정계 입문 계기는 그의 고향을 지역구로 두고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던 민주정의당 구용상 전 의원의 비서관으로 발탁된 것이었다. 구 전 의원이 지난 1988년 제13대 총선에서 낙선한 후 이 공관위원장은 민주정의당의 말단 간사로 특채됐다. 영남 기반 정당의 호남 출신 당직자였던 그는 훗날 “늘 근본 없는 놈 취급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로부터 26년 후 그는 고향 전남 순천·곡성에서 진행된 재보궐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당선되는 이변을 일으켰고, 다시 2년이 지나선 새누리당 대표로 당선됐다. 당선 이후 그의 28년에 대해선 “한 편의 드라마” 혹은 “인간 승리”라는 평가도 나왔다. 이 공관위원장에겐 2명의 이 위원장이 있다. 그는 재보궐선거 당시 49.43%를 득표해 40.32%를 득표한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서갑원 후보를 물리쳤다. 이 후보의 당선엔 서 후보와 노관규 전 순천시장의 갈등도 큰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있다. 하지만 정치적 흐름만을 탄 결과라고 보기 어렵다는 판단도 있다. 고향 곡성에서 이 공관위원장에 대한 지지세가 높아 70% 이상 득표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그는 새누리당이 아닌 ‘곡성 출신 이정현’을 내세워 자전거를 타고 지역구를 누볐다. 당시 그는 스스로 ‘머슴’ 혹은 ‘촌놈’을 자처했다. 그러면서 “고향을 위해 미치도록 일하고 싶다”며 “죽도록 부려먹다가 못하면 그때 쓰레기통에 다시 넣으시더라도 이번 한번만큼은 제 손을 한 번 잡아달라”고 호소하는 등 지역의 호감을 얻는 발언을 이어나간 영향도 컸던 것으로 분석됐다. 비판·조롱 낯설게하기 지난 2016년 총선에선 지역구 조정 영향으로, 이 공관위원장은 전남 순천에 출마했다. 고향이 아닌 지역구에 출마한 것은 일견 불리할 수도 있는 선택이었다. 하지만 그는 44.54%를 득표해 당선됐다. 그는 재보선 당선 이후 매주 지역구를 방문해 현장을 누빈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당시 야권이었던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에서 모두 후보를 출마시킨 구도의 영향도 호재로 작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공관위원장은 지난 2022년 지방선거에선 국민의힘 전남도지사 후보로 출마해 선거 비용 보전액 하한선 15%를 넘기는 18.81%를 득표해 “선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그는 중앙 정치에선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그가 중앙 정치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을 때 그 원인은 대체로 설화였다. 청와대 홍보수석비서관으로 재직했던 2014년엔 길환영 당시 KBS 사장에게 연락해 “세월호 참사 관련 해경에 대한 비판을 지금은 자제해 달라”고 요구한 게 2년여가 흐른 후 뒤늦게 알려져 물의를 일으켰다. 이는 방송 편성 관련 규제·간섭을 금지한 방송법 위반 행위가 될 위험이 있었는데 실제로 그는 벌금형을 확정받았다. 새누리당 최고위원이었던 지난 2015년엔 광주를 방문해 ‘광주 비하’로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을 했다. 당시 그는 “광주 시민이 이정현이를 쓰레기통에 버렸다”며 “박근혜 대통령이 나 같은 쓰레기를 끄집어내서 탈탈 털어 청와대 정무수석·홍보수석을 시켜주는 배려를 했다”고 주장했다. 박 전 대통령에게 과잉 충성하는 이 공관위원장의 모습이나 발언은 지금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였던 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12년 9월 과거사 사과 기자회견에서 회견문을 읽은 후 고개 숙여 인사했다. 당시 상황을 촬영한 사진 중에 후보 공보단장이었던 이 공관위원장이 “질의 시간을 가지면 안 된다”는 의미로 손가락으로 X 표시를 만드는 사진도 있다. 새누리당 대표였던 지난 2016년 11월엔 야권이 박 전 대통령의 임기 단축 협상을 거절하고 탄핵소추를 추진하자 “그 사람들이 탄핵을 실천하면 뜨거운 장에 손을 집어넣겠다”고 반발해 한동안 이 공관위원장을 조롱하는 합성 사진이 범람했다. 정치인은 대체로 선거 현장·당내 투쟁에선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일부 정치인은 그 간극이 커서 주목받는다. 이 공관위원장의 태도는 “상대방에게 진정성 있게 몰입한다”는 장점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 그 진정성 있는 몰입은 정반대의 이미지를 연출한다. 지역구에선 유권자들이 전통적인 지역 구도에 따른 관성을 무시하고 그를 지지하는 이변으로 이어진다. 반대로 중앙 정치에선 지지자들의 환호와 반대파의 비판·조롱으로 나뉜다. 주호영·김영환 치니 한동훈 꿈틀…나비효과? 마구 휘두르고 장동혁이 수습…굿 캅 배드 캅? 20세기 독일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의 존재론에 따르면, 이 공관위원장은 ‘호남 출신 보수정당 소속’으로 던져졌다. 이는 그 스스로 선택한 것이지만, 주어진 운명이 그를 던진 측면도 있다. 던져진 상황을 극복하는 것은 그의 선택이 부여한 운명이었다. 이 때문에 이 공관위원장은 고향에선 ‘친근한 고향 사람’이 돼 선거에 임하면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하지만 보수정당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그를 발탁한 사람은 박 전 대통령이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충성은 그 스스로 선택해 자신의 삶을 던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영남 출신 엘리트’ 주축으로 구성된 국민의힘 기준에서 이 공관위원장은 변방의 이방인이다. <조선일보> 양상훈 주필은 지난 2016년 8월 이 공관위원장이 새누리당 대표에 당선된 후 그에 관한 칼럼을 썼다. 양 주필에 따르면, 이 공관위원장은 당직자 시절 자신보다 어린 당 출입기자로부터 반말을 들어가면서 그의 심부름을 했다. 변방의 이방인이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태도는 훨씬 ‘편하게’ 나왔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는 지금도 국민의힘에 있다. 러시아 문예비평가 빅토르 슈클로프스키는 시 창작과 관련해 ‘낯설게하기’란 이론을 창안했다. “익숙한 대상을 생경하게 바라보면서 그 본질을 시로 표현할 수 있다”는 취지의 이론이다. 그런데 이 공관위원장은 존재 자체가 ‘낯설게하기’였다. 고향에선 보수 정당 소속이기 때문에 낯설다. 보수 정당에선 호남 출신인 그의 존재는 낯설면서도 동시에 강렬하다. 공천관리위원장으로서 시행하는 주요 정치인 컷오프도 그가 낯선 존재이기 때문에 더욱 부각된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그의 충성도 반대파·비판자의 관점에선 개종자의 열정·과잉 사회화로 보일 여지가 있다. 개종자의 열정은 원래 특정 집단 소속이 아니었던 사람이 집단에 들어간 이후 기존 구성원보다 더 근본주의적인 태도로 열정을 쏟아붓는 현상을 말한다. 이는 대체로 “난 원래 이 집단 사람이 아니었다”는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진행된다. 그에게는 늘 ‘근본’과 관련된 비판을 받으면 안 된다는 불안감이 있기 때문이다. 과잉 사회화도 뒤늦은 주류 문법 학습 때문에 유연성을 발휘하기보다 집단의 규범을 그대로 집행하려는 경향으로 이어지는 측면을 일컫는다. 개종자의 열정·과잉 사회화를 상징하는 역사 속 인물로는 긍정적인 측면에선 한때 유대교 바리새파에서 촉망받았다가 예수의 가르침을 전파한 사도 바울을 언급할 수 있다. 부정적인 측면에선 20세기 소련의 공안 탄압을 상징하는 라브렌티 베리야를 언급할 수 있다. 조지아 출신인 베리야는 이오시프 스탈린에게 발탁된 후 대숙청을 진두지휘했던 니콜라이 예조프를 몰아내고 방첩기관 NKVD의 수장이 됐다. 지금도 베리야는 공안 탄압을 상징한다. 특정 집단에 기반이 없는 이방인이 그 집단에서 생존하기 위해 누군가의 ‘칼’이 되는 것은 숙명에 가깝다. 숙명적으로 묶인 운명 이 공관위원장은 원래 광주·전남통합시장 출마를 준비했다가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장으로 임명됐다. 그는 임명된 직후 군복을 연상시키는 야전상의를 입고 다시 등장했다. 사실상 장 대표의 칼로써 공천을 진두지휘하면서 그의 정치적 운명은 지방선거에 묶였다. 그의 운명은 여전히 칼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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