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의 지팡이' 경찰만 까는 K-장르물의 한계

어쩌다 동네북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1986년 화성연쇄살인 사건이 발생한 지 34년이 지났다. 과학수사의 불모지였던 한국의 과학수사력은 그사이에 해외에 수출할 정도로 높은 수준을 인정받고 있다. ‘살인의 추억은 끝났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살인사건이 일어나면 대부분 빠른 시간안에 범인을 잡는다. 경찰의 수사력이 나날이 발전하고 있음에도, 영화계가 경찰을 바라보는 시각은 여전히 무능에만 머물러있다. 

“한국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살인사건은 빨리 해결된다. 한국의 과학 기술은 세계 최고다. 언론에 공개되는 사건은 미제 사건이다. 전체로 보면 극히 일부의 사건이다. 전체의 단면만 보고 경찰의 노력을 깎아내리는 발언은 없었으면 한다.”

무능 이미지

SBS <그것이 알고 싶다>의 단골 취재원인 박지선 숙명여자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사회심리학과 교수는 유튜브 채널 ‘그알저알’에서 이렇게 말했다. 박 교수의 말처럼 국내의 과학수사 기술은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 화성연쇄살인 사건의 진범 이춘재를 34년 만에 검거한 것은 국내의 과학 기술력과 경찰의 집요함이 일궈낸 쾌거다. 

권일용 동국대 경찰사법대학원 겸임교수에 따르면 현재 경찰은 사망한 지 오래된 시신의 지문이 심하게 건조됐거나 물에 불어서 지문 식별이 힘든 경우에도 지문 추출이 가능하다.

전국에 CCTV가 깔려있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강도, 살인 등 강력 범죄를 일으키고 경찰의 수사망을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따라서 최근에는 연쇄살인범이 되기조차 어렵다는 말이 나온다. 사람을 한 번 죽이면, 다른 사람을 죽이기 전에 잡히기 때문에 연쇄살인이 어렵다는 것.

오히려 단 한 번의 살인으로는 형량이 적어 이들이 다시 사회에 복귀했을 때 또 다른 살인사건이 일어날 것을 우려한다. 연쇄살인이라는 단어가 현실에서는 옛말이 돼가고 있다. 

그런 가운데 국내 미디어계는 장르물 범람의 시대에 돌입했다. 영화나 드라마 등에서 장르물이 이른바 대세의 흐름을 보인다. 장르물이 다루고 있는 소재가 대부분 강력 범죄다.

스릴러 장르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서스펜스다. 사건과 인물 간의 갈등이 촘촘하게 이어지면서 범인이 어떻게 범죄를 저지르는지, 주인공이나 공권력이 이 범인을 어떻게 잡아내는지를 밀도 있게 그려내는 것이 핵심이다. 

범인 세력과 주인공 세력이 똑똑하게 상대의 심리나 의중을 간파하면서, 속고 속이는 싸움이 벌어질 때 관객은 장르적 쾌감을 느낀다. 좋은 스릴러 영화의 공식 중 하나는 경찰의 잘못된 수사에 개연성을 부여한다는 것.

실수가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부분을 명확히 제시하며, 범죄자를 잡는 세력을 단순히 무능하게만 그리지 않는다. 

최근 개봉한 <발신제한>과 <미드나이트>는 앞선 수작의 공식과는 반대로 경찰의 무능에만 의존한다. 작품 속 경찰이 무능하지 않았다면 두 영화는 러닝타임조차 채우기 힘들었을 것이다. 현실에서처럼 상식적으로만 수사했어도 사건이 종결됐을 테니 말이다. 


특공대 뚫은 혈혈단신 은행원
피 튀기며 싸워도 조사 안 해?

<발신제한>은 자동차 폭파사건으로 인해 파생된 이야기를 그린다. 주인공은 성규(조우진 분)는 이름 모를 상대로부터 전화로 협박을 받고 있다. 그러던 중 성규 후배의 자동차가 폭발한다. 이 사건을 총괄하는 경찰서장(류승수 분)은 몇 가지 단서만으로 성규가 사건의 진범이라고 확신한다. 

성규가 자신이 협박당하고 있고, 자동차에서 내리는 순간 차가 폭발한다고 호소하고 있음에도 서장은 의심을 풀지 않는다. 심지어 폭발물이 설치된 차에 성규의 자식들이 타고 있었음에도 총구는 그에게 향한다.

경찰로부터 지속적인 의심을 받은 탓에 위협을 느낀 성규는 도주를 결심한다. 그리고 경찰 특공대가 둘러싸고 있는 현장을 가볍게 돌파한다. 특수 훈련을 받은 것도 아닌 은행장 한 명에게 너무 쉽게 경찰 통제선이 뚫린 것이다.

실소가 나올 정도로 허술한 장면이다. 이때부터는 이야기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미드나이트>도 헛웃음이 나는 건 마찬가지다. 실종된 여동생 소정(김혜윤 분)을 찾던 종탁(박훈 분)은 파출소에서 사라진 동생의 실마리를 찾는다. 우연히 소정을 본 뒤 경찰에 알리러 온 경미(진기주 분)를 만나서다. 

파출소에는 소정을 죽이려 했던 연쇄살인범 도식(위하준 분)도 함께 있었다. 경찰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도식이 진범인 것을 안 경미가 종탁에게 사실을 말하려 하자, 도식은 종탁을 노린다.

해병대 출신인 종탁은 칼을 든 도식을 순식간에 제압한다. 그러던 중 경찰이 들이닥친다. 경찰은 칼을 내려놓으라는 말을 듣지 않자 종탁을 전기충격기로 사용해 기절시킨다. 

놀라운 점은 이때부터다. 흉기를 들고 다투던 두 사람의 혈흔이 낭자하고 파출소가 심하게 훼손됐음에도 불구하고 경찰은 의심없이 도식을 풀어준다. “왜 싸움이 벌어졌는지” “흉기는 어디서 났는지” 등 정황을 알아보려는 생각조차 없다. 사람 좋은 웃음으로 연쇄살인범을 놓아준다. 

이후부터 영화가 아무리 흡입력 있게 이야기를 끌고 나가도, 파출소 신에서의 공허함이 채워지지 않는다. 

과연 현실의 경찰이 이토록 무지하고 나태한지 의문이다. 경찰 인력 중 악한 마음으로 권력을 활용하는 이도 있고, 때론 초동수사에서 미흡한 점이 나오기도 하지만 이 정도로 무책임한 경우는 과연 얼마나 있을까.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 있다.


경찰의 무능에만 의존하는 허술함이 분명한 서사는 아무리 좋은 연기력을 가진 배우가 열연하고, 화두로 던지는 메시지가 의미 있어도 몰입을 방해한다. 화려한 편집 기법을 활용한 카체이싱 장면이나, 눈을 사로잡는 액션도 의미가 퇴색된다. 

<그것이 알고 싶다>를 비롯해 MBC <실화탐사대> SBS <궁금한 이야기 Y> 등 사건 사고를 기반으로 수사의 전반을 보여주는 다큐멘터리도 열풍이다. 경찰이 진범을 잡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는지, 공권력이 얼마나 뛰어난지 이미 다각도로 체험한다. 

허술한 서사

국내 관객들의 수준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영화계의 시선은 여전히 30여년 전에 향해 있다. 창작자들이 너무 쉬운 길로만 가려 하는 건 아닌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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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빅텐트 타령 국민의힘, 왜?

또 빅텐트 타령 국민의힘, 왜?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이 당심 반영 비율을 늘린 지방선거 경선 규칙을 발표했다. 이어 장동혁 대표를 필두로 지방선거 전략으로 ‘반명 빅텐트론’을 지난 대선에 이어 또 거론했다. 국민의힘이 6년째 내리 실패한 전략을 또 끌고 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국민의힘이 지난달 25일 지방선거 경선 규칙을 발표했다. 국민의힘 지방선거 총괄기획단 대변인을 맡은 조지연 의원은 이날 국회에서 진행된 기획단 회의 후 “내년 지방선거 경선에서 당원투표 비중을 기존 50%에서 70%로 늘리기로 했다”고 밝혔다. 민심보다 당심으로? 국민의힘 지방선거 공천은 당원투표 70%와 국민 여론조사 결과 30%가 혼합돼 결정된다. 만 44세 이하 청년은 가점을 부여받고, 여성 신인은 만 45세 이상이어도 가산점이 부여된다. 광역의원 비례대표 후보자는 청년 인재 오디션을 거쳐 선출해 최우선 순위로 당선권에 배치할 예정이다. 지난 2022년 지방선거 당시 국민의힘 대표였던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시행했던 공직 후보자 기초 자격 평가는 기초자치단체장·기초의원 후보자들을 대상으로 진행된다. 국민의힘 지방선거 총괄기획단장은 5선 나경원 의원이 맡고 있다. 나 의원은 서울시장 출마 후보군 중 1명으로 거론된다. 현 시점에선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로 오세훈 서울시장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일각에선 “나 의원이 사심 때문에 경선 규칙을 정한 것 아니냐”고 의심한다. “오세훈 서울시장의 대중적 인기는 높지만, 당내 기반은 약하다”는 평가로부터 비롯되는 의심이다. 새로 정한 경선 규칙에 대해선 당내에서도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았던 김용태 의원은 지난 25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내년 지방선거를 시작으로 실질적인 수권 전략을 실현하려면, 공직선거 후보자 선출 규칙은 국민경선 100% 제도를 채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도 같은 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비판했다. 윤 의원은 “민심이 곧 천심이고, 민심보다 앞서는 당심은 없다”며 “민의를 줄이고 당원 비율을 높이는 것은 민심과 거꾸로 가는 길이고, 폐쇄적 정당으로 비칠 수 있는 위험한 처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최근 사법부 압박 논란과 대장동 항소 포기 문제까지 있었는데도 우리 당 지지율은 떨어지고 여당 지지율이 오르는 이유는 무엇이겠느냐”며 “여당이 잘해서가 아니라 진정성 있는 성찰과 혁신 없이 표류하는 야당에 대한 국민적 실망이 더 크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라고 강조했다. 한국갤럽이 지난 18일부터 20일까지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정당 지지도 여론조사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지지율은 43%였고,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4%였다. 지난 7월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만 18세 이상 1003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전화 면접 여론조사 당시 국민의힘 지지율이 19%를 기록했던 것에 비하면 높지만, 두드러진다고 보긴 어렵다. 내부 비판 이어지는데 당심 비중↑ 비상계엄 사과 두고도 ‘옥신각신’ “국민의힘의 지지율이 당분간 크게 오르긴 어렵다”는 일각의 예측도 있다. 다음 달 3일은 비상계엄 1주년이라서 윤석열 전 대통령의 재임 중 실정과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불참 ▲윤 전 대통령 체포 저지 시도 ▲심야 대선후보 교체 시도 등 지난 1년 동안 국민의힘이 여론으로부터 비난을 받았던 행보들이 다시 주목받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국민의힘 일부 소장파 의원들은 비상계엄 사과 등을 통한 윤 전 대통령과의 확실한 절연을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지난 24일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좀 더 명확한 메시지를 낼 필요가 있다는 얘기가 당내에서도 나온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역사와 국민 앞에 누군가 사과해야 할 상황이고, 국민의힘이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예측할 수 없었던 돌발적인 계엄이 있었고, 탄핵에 이어 정권을 잃은 후 국정의 주도권을 넘겨줬다”고 강조했다. 반면 같은 당 김재원 최고의원은 같은 달 26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일회성 사과로 과거의 잘못을 끊어내고 새로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사과를 자꾸 하는 것은 오히려 현 상황을 악화시킬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의힘은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어떤 정치를 할 것인지 고민하는 게 필요하다”며 “사과하는 것보단 앞으로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는 게 더 낫다”고 역설했다. 장 대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히고 있다. 그는 같은 달 25일, 경북 구미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를 방문한 후 “사과 메시지를 내는 것은 지금 말씀드릴 단계는 아닌 것 같다”며 “국민의힘이 지금 싸워야 할 대상은 무도한 이재명정권과 의회 폭거를 이어가는 민주당”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구미역 광장에서 진행된 민생 회복·법치 수호 경북 국민대회에 참석해 “저들이 똘똘 뭉쳐 우리를 공격하고 손가락질할 때, 우리가 우리를 향해 손가락질·비판하는 게 부끄럽다”고 목소리 높였다. 그러면서 “대한민국과 자녀 세대를 위해 소리치는 우리가 아스팔트 세력이라고 손가락질당하는 게 부끄러운 게 아니라, 나라가 쓰러져가는데도 한마디도 못하는 게 부끄러운 것”이라고 강조했다. 해당 발언은 “사과해야 한다”는 일부 주장에 대한 반박으로 풀이된다. 돌발적인 계엄이다? 이재명 대통령·민주당에 대한 투쟁을 강조하는 장 대표의 주장은 빅텐트론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나 의원도 지난 1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대통령과 민주당을 비판하면서 “국민의힘은 네 탓 공방을 벌이면서 분열에 빠져 있다”며 “정당의 뿌리를 흔드는 내부는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하나로 뭉쳐 민주당의 독재 완성 계략에 단호히 맞서야 한다”고 했다. 국민의힘에선 각종 선거와 정국에 대응할 때마다 빅텐트론이 거론됐다. 시작은 황교안 당시 자유한국당 대표가 재임했던 지난 2019년이다. 이듬해엔 “각 정당·정파가 참여하는 통합추진위원회를 구성해 모든 자유민주 세력과 손을 맞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황 전 대표는 “통합 없이는 절대 이길 수 없단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며 “이 나라를 망치려는 사람들은 통합을 두려워한다”고 말했다. 황 전 대표가 주장했던 빅텐트론은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란 헌법 가치를 공유한다면, 태극기 세력부터 중도 보수 인사까지 아우른다”는 것이었다. 그의 주장을 토대로 자유한국당은 미래통합당으로 바뀌었다. 황 전 대표는 제21대 총선 패배 후 물러났다. 이 대표는 빅텐트론에 일관적으로 반대하면서 세대 포위론을 토대로 지난 2022년 대선을 지휘했다. 지난 6월 대선에 출마했던 이 대표는 국민의힘 등 보수 각계로부터 후보 단일화 요구를 받았다. 이 대표는 당시에도 국민의힘 등에서 주장했던 ‘반명 빅텐트론’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대선을 완주했다. 일각에선 국민의힘의 빅텐트론을 놓고 “혁신 요구가 나올 때마다 제기되는 주장”이라고 비판한다. 빅텐트론의 핵심은 통합이다. 통합은 정치권에서 반대 계파·의견을 억압하는 수사로 활용되는 예가 잦다. 빅텐트의 핵심은 조정 능력이다. 여기엔 다양한 계파·의견을 조율해 갈등을 최소화하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장 대표는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체제 전쟁 깃발 아래 모일 수 있는 모든 우파가 함께 모여서 이재명정권이 사회주의 독재체제로 가려는 걸 막기 위해 연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주장하는 ‘체제 전쟁’의 근거는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 ▲민주당의 배임죄 폐지·대법관 증원 시도 등이다. 장 대표는 공식적으로 국민의힘과 관계없는 황 전 대표가 지난 12일 내란 선동 혐의를 받아 내란 특검에 의해 체포되자 “우리가 황교안이다”라는 구호를 외쳤다. 이어지는 재탕 삼탕 이어 “국민의힘만으로 이재명정부·민주당과 싸우긴 어렵다”며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주도하는 자유통일당 ▲고영주 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이 주도하는 자유민주당 ▲새누리당 조원진 전 의원이 주도하는 우리공화당 ▲황 전 대표가 주도하는 자유와혁신 등을 연대 대상으로 지목했다. 이들은 모두 부정선거론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그에 반해 개혁신당과 이 대표는 부정선거론을 강하게 비판한다. 장 대표가 주장하는 빅텐트론은 김문수 전 대선후보 등이 주장했던 빅텐트론과 큰 차이가 없다. 당시 김 전 후보는 “민주당 이재명 후보를 이기기 위해선 어떤 경우든 힘을 합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한덕수 전 총리 ▲황 전 대표 ▲이낙연 전 총리 ▲이 대표 등을 통합 대상으로 지명했다. 권성동 당시 원내대표는 김 전 후보·한 전 총리의 단일화를 지지하면서, 당시 당내 주류와 불화했던 국민의힘 김상욱 당시 의원(현 민주당 의원)에게 “스스로 거취를 결정하라”고 요구했다. 이는 장 대표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에게 당원 게시판 의혹 관련 압박을 가한 것과 비슷하다. 당시 권 전 원내대표는 “당원 대부분은 민주당 이 후보에게 대항하기 위해선 반명 빅텐트가 필요하단 의견을 갖고 있다”며 “지도부는 당원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는 부정선거론을 주장하는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연대를 주장하면서, 개혁신당과의 연대설도 공개적으로 부정하진 않는다. 일각에선 “오 시장이 장 대표·이 대표의 가교 역할을 한다”고 관측하고 있다. 오 시장은 지난 9월 “개혁신당과의 연대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한 이후 꾸준히 개혁신당과의 연대를 주장하고 있다. 이후 정치권 일각에선 “오 시장이 서울시장으로 다시 출마하고, 이 대표가 경기도지사 야권 단일 후보로 출마하면 수도권에서 보수 진영이 선전할 수 있다”는 기대를 하고 있다. <미디어토마토>가 지난달 28일부터 이틀 동안 서울특별시 거주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무선·ARS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오 시장은 보수 진영에서 민심 27.5%·당심 50.3%의 지지를 얻어 서울시장 후보 중 가장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민주당이 서울시장 후보를 선출한 후 ‘여당 프리미엄’을 앞세워 오 시장에 대한 공세를 이어간다면, 재선을 장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국민의힘이 중도층의 민심을 끝내 얻지 못하면, 오 시장으로선 힘겨운 선거가 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체제 전쟁” 명분으로 사과 거부 홍 “국힘은 보수 참칭 사이비 레밍” 당내에서도 나 의원 등 막강한 경쟁자가 있어 본선행을 확실하게 장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대표는 지난달 23일 “국민의힘 내부에서 변화·쇄신 목소리가 전혀 안 나온다”며 “연대를 함께할 가능성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국민의힘은 지난 대선에 이어 1990년대식 ‘뭉치면 이긴다’ 구호만 내세운다”며 “그 전략으로 패배한 사람은 황 전 대표였는데, 같은 선택을 하면서 다른 결과가 나오길 기대하는 건 이해가 안 간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내부에도 연대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국민의힘 지도부에서 강경 보수의 주장을 가장 강하게 내세우는 김민수 최고위원은 같은 달 25일, 채널A 유튜브 채널 ‘정치시그널’에 출연해서 “이 대표는 당내 많은 분쟁을 가져온 사람이라서 화합을 해칠 가능성이 있다”며 “개혁신당과의 연대는 득보다 실이 더 많을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김 최고위원의 주장은 오 시장의 주장에 대한 반박으로 해석되고 있다. 김 최고위원은 “개혁신당은 보수 정당인지, 진보 정당인지 모르겠고, 그 사이에 있다고 생각한다”며 “저는 최고위원이 되기 전부터 우측으로의 연대를 주장했다”고 설명했다. 대선은 기동전·총력전 성격이 강한 반면, 지방선거는 진지전 성격이 강하다. 선거의 성격이 다르지만, 국민의힘에선 똑같이 ‘반명 빅텐트’라는 구호를 거론하고 있다. 역사엔 위기 상황에서 변화를 거부했다가 돌이킬 수 없는 위기를 맞이한 사례가 다수 기록돼있다. 변화를 거부하는 세력이 그 집단을 주도할 때, 이 사례는 더욱 빈번하게 재현된다. 중국 청나라에선 수구파를 이끌던 서태후가 변법자강운동을 주도하던 광서제에게 반대해 정변을 일으켜 성공한 후 광서제를 유폐했다. 중국 정부가 지난 2008년 광서제의 능을 공식 발굴 조사한 결과, 광서제는 급성 비소 중독으로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어 3세 나이로 즉위한 청나라 황제는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영화 <마지막 황제>의 주인공인 선통제다. 선통제는 영화 제목 그대로 마지막 황제였다. 광서제의 개혁 시도는 청나라의 마지막 몸부림이었다. 자신에게 유리한 정보만 취사 선택해 그 정보를 근거로 자신의 주장을 전개하고, 불리한 정보는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성향을 확증편향이라고 한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지역구 관리에만 능하고, 기득권·이익 추구에만 관심을 두는 의원들이 당을 주도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언더 찐윤’이란 집단이 거론된다. 확증편향 소탐대실 일각에선 국민의힘이 변화·혁신에 거부감을 느끼면서 같은 선택을 반복하는 핵심 이유로 언더 찐윤을 거론한다. 홍준표 전 대구시장은 지난 6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은 이념도 없는, 보수를 참칭한 사이비 레밍 집단”이라고 주장했다. 이미 여러 번 선거에서 패배한 전략임에도 확증편향·소탐대실을 근거로 같은 선택을 고집한다면, 무리 지어 절벽에서 떨어지는 레밍과 비교되는 수모를 또 겪을 수도 있다. 하지만 국민의힘에선 또 빅텐트론이 반복되고 있다. 빅텐트는 국민의힘 주변을 배회하는 유령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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