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25주년 특집> '투기? 투자?' 대기업 알짜 농업법인 대해부

합법적인 돈 묻고 돈 먹기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대기업들이 앞다퉈 농업회사법인을 설립하고 있다. 농업회사법인은 오래전부터 '투기의 장'으로 유명했다. 이 외에도 절세, 대출에 용이하다는 점은 대기업들에게 큰 메리트로 다가온 것으로 보인다. <일요시사>가 베일에 싸여있는 농업회사법인에 대해 알아봤다.

최근 농업회사법인의 투기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부동산매매, 토지개발이 엄연한 불법임에도 이를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다수인 가운데 전국 지방자치단체가 3년 주기로 실시하는 실태조사도 농업인 스스로 하는 등 감시 사각지대가 큰 것으로 확인됐다.

'뻥튀기' 빈번
사각지대

지난 18일 금융당국 및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최근 신도시 3곳 필지와 산업단지 예정부지 290억원어치를 매입하는 등 부동산투기로 문제된 대한영농영림은 감사보고서에 법상으로 금지된 '토지개발업 및 부동산매매업'을 주요사업으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해당 법인에 대해 감사의견으로 '적정'을 제시했던 한서회계법인은 지난 4일 돌연 '의견 거절'로 정정했다. 감사인은 "회사의 부동산매매와 관련된 활동이 농어업겸영체법에 따른 경작 여부, 부대사업 범위에 해당하는지 충분한 감사증거를 확보하지 못했다"며 "준거법령 위반사항은 계속기업의 존속능력에 대해 유의적인 의문을 초래한다"고 밝혔다.

문제는 이런 불법행위가 빙산의 일각일 수 있다는 데 있다. 영농목적이 아닌 시세차익을 위한 부동산매입이 전혀 통제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2월 농식품부가 밝힌 '2019년 기준 농업회사법인 통계조사'에 따르면 실질운영 중인 활동 법인은 총 2만3315개소로 나타났다. 영농목적으로 설립이 가능한 농업회사법인은 농업인 1명 이상이 주주로 참여하고 농업인 출자액이 전체의 10% 이상이어야 한다.

농업회사법인이 영농활동을 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실태조사는 유명무실한 것으로 드러났다. 농어업겸영체법에 따라 각 지자체가 조합원·출자, 사업범위, 경작유무 등을 3년 주기로 점검하지만 농업인이 스스로 작성해 제출하는 식에 그친다.

부동산개발을 하더라도 얼마든지 지자체 공무원을 속일 수 있는 것이다.

부동산투기 등 목적외 사업을 한 것이 드러나더라도 영업정지, 과징금 부과도 불가능하다. 오직 법원에 해산명령 청구만 가능한데 이 또한 상당한 시일이 소요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농식품부는 세액 납부자료나 부동산거래 자료를 관계부처를 통해 받아 면밀한 검토를 하려 했지만 법적 근거가 없어 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절세·대출에 용이…너도나도 농지로
영업정지·과징금 불가…정부도 답답

이런 상황에 앞다퉈 이뤄지고 있는 국내 주요 기업들의 농업회사법인 설립도 눈길을 끈다. 대기업의 농업 진출 사례로 유명한 곳은 현대건설의 서산간척지와 동아건설의 김포매립지.

이 두 곳은 1970년대 중동 건설 수주가 줄어들자 위기에 노출된 대형건설사들의 건설장비 문제 해결을 위해 '민간자본 유치'와 '농지조성을 통한 쌀 생산'을 명분으로 추진됐다.


현대건설은 1979년 서산 A·B 지구 간척지의 매립면허를 받아 1982년에 B지구 물막이를, 1984년에 A지구 물막이를 완료했다. 이 때 동원된 폐유조선 공법이 언론에 신화로 회자된다.

당시 현대는 "정주영 회장의 신화와 더불어 이곳이 단일경영규모로는 세계 최대이고, 선진 과학영농으로 50만명이 1년간 먹을 쌀을 생산한다"고 홍보했다. 매립 후 이 지역은 염분제거와 경지정리 후 1985년 시험영농에 들어가 10년만인 1995년 농림수산부로부터 농지 준공인가를 받았다.

그러나 현대는 애초 논으로 조성키로 한 서산 B지구를 밭으로 변경해달라고 끈질기게 정부에 요구해왔다. 2000년 부도사태를 맞은 현대건설은 경영안정을 위해 간척지를 담보로 토지공사로부터 수천억원을 차입하고 일부를 일반인과 농어민들에게 팔았다.

이후 지속적인 타용도 전용 시도가 성공하면서 2005년 정부로부터 간척지 상당 부분이 관광·레저형 기업도시로, 2008년에는 바이오웰빙특구로 지정됐다. 

결국 농업용으로 허가받은 현대간척지는 현대 재벌가 내에서 주인이 바뀌며 대부분 산업용 등 타용도로 활용되거나 매각됐고, 일부만 현대서산농장이 직영하고 있다.

동아건설의 김포매립지도 농지를 조성한다는 이유로 공유수면 매립허가를 받아 1991년에 매립지를 준공했다. 이 가운데 일부는 쓰레기 매립장, 복합화력발전소, 하수처리장 등으로 용도 변경됐다. 동아건설은 나머지 땅에 대해 농업용수 부족을 이유로 농사를 짓지 않고 방치하면서 지속적으로 용도 변경을 시도했다.

앞다퉈
진출 왜?

1998년 IMF 위기때 부도에 몰린 동아건설은 외자 유치를 내세우며 마이클 잭슨, 갑부인 사우디 왕자 등을 내세워 대대적인 용도 변경 공세를 폈지만, 정부에 의해 거부됐다.

결국 김포매립지는 동아건설의 기업구조조정을 위해 1999년 5월 농어촌공사에 매각됐다가 다시 LH와 인천시 등에 넘어가 도시용지, 산업용지로 전용됐다.

동부그룹의 동부팜한농은 원래 1953년 한국농약으로 출발했으며, 농약·비료·종자·동물약품을 아우르는 국내 최대 농자재 회사였다.

2009년에는 자회사인 동부그린바이오(새만금팜)가 새만금간척지 대규모농어업회사 사업자로 선정됐고, 2010년에는 동화청과를, 2011년에는 천적곤충기업인 세실을 비롯해 동호제약, 대농종묘, 가야를 인수했다.

동부팜한농은 2012년 몬산토코리아로부터 영업권을 인수하기도 했다. 몬산토코리아는 지난 1998년 외환위기 때 국내 종자업계 1위 흥농종묘와 3위 중앙종묘를 인수한 세미니스코리아를 인수했었다.


특히 2012년에는 동부팜화옹이 경기도 화옹간척지 내에 일부 정부 지원을 받아 15ha규모의 첨단유리온실 단지를 건립했다가 농민들의 반발로 2013년 포기를 선언했고, 유리온실을 우일팜에 팔았다.

동부팜한농은 우여곡절 끝에 동부그룹이 부도위기를 맞자 LG화학에 매각돼 '팜한농'으로 출발했다.

동부팜을 인수한 LG가 농업에 관여하기 시작한 것은 1973년 학교법인 연암학원을 설립하고 이듬해 연암대학의 전신인 연암축산고등기술학교(축산과)를 개교하면서부터다.

구자경 LG 명예회장은 1995년 은퇴 후 천안 연암대 인근 농장에서 머물며 버섯 재배와 된장 등을 취급하는 수향식품을 운영했다. LG그룹은 2006년 리조트와 수목원에 조경수를 공급하는 농업회사법인 곤지암원예원을 설립하고, 같은 해부터 곤지암 화담숲을 조성, 2013년 개장했다.

대기업들의 농업 진출 시도는 정보통신업계에서 두드러진다. 카카오는 2015년 KAIST 출신들이 만든 식물공장 업체인 '만나씨이에이'의 지분 약 33%를 인수하고 유통과 마케팅을 지원하고 있다. 만나씨이에이가 생산하는 품목은 바질 같은 외래종 채소류다.

농민 구역
침해 논란도


이 업체는 다시 '팜잇'이라는 법인을 만들어 크라우드펀딩으로 공유농장이라는 사업모델을 확산시키려 하고 있다. 카카오의 행보는 농민들과 중소상인들의 골목상권을 침해한다는 논란을 빚기도 했다. 

노루표페인트로 잘 알려진 노루그룹도 2014년 자본금 100억원을 들여 노루기반이라는 회사를 설립하고 농업관련 사업을 하고 있다. 노루그룹 산하에는 농산물 유통·가공·판매와 영농 자재를 생산·공급하는 더기반이 있고, 노루지에스는 무인기 기술, GIS(지리정보시스템)를 이용한 정밀 농업 분야 시장을 노리고 있다.

이동통신사인 SK텔레콤· KT·LG 유플러스 등 3사도 모바일 원격제어시스템 마케팅에 열을 올리고 있다. 

KT&G는 2011년 인삼과 한약재 재배를 주력으로 하는 농업회사법인 예본농원을 설립했으나 실적이 없이 2014년 청산했다. 대성그룹의 경우 2012년 고구마와 감자를 재배하는 농업회사법인 굿가든과 굿랜드를 세웠다가 2013년 굿가든으로 흡수합병했다.

녹차브랜드 '설록차' '오설록'의 아모레퍼시픽은 1979년 제주도에 진출해 190ha규모로 녹차를 재배하면서 공장과 박물관까지 운영하고 있다. SK임업은 1972년 서해개발 주식회사로 시작해 천안, 충주, 영동 등에 조림지를 보유하고 조림, 조경, 임산물 사업을 한다.

그렇다면 기업들은 왜 농업회사법인에 관심을 두는 것일까. 전문가들은 ▲토지 투자에 가장 걸림돌 중 하나인 농지 취득 자격 제한을 받지 않고 ▲취득세나 종부세 등 세금을 회피할 수 있으며 ▲정책자금 등을 통해 대출을 받기도 유리하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한 전문가는 "농업회사법인이 땅 투기 수단으로 널리 쓰이게 된 건 오래전부터"라며 "농업활동을 하는 사람이 참여해야 한다는 제한이 있지만, 이를 회피할 수 있는 수단은 많은 데다 '편법'이긴 하지만 여러 장점이 있기 때문"이라고 귀띔했다.

유명 그룹 정보통신업계도 합류
총수가 앞장서…본질은 이윤추구?

가장 많이 거론되는 것은 세금이다. 부동산 관련 전문가는 "조세특례제한법 등에 따라 농업활동을 목적으로 농지를 매매할 경우 취득세와 양도소득세 감면 혜택이 있기 때문에 개인 명의로 사들이는 것보다 절세효과가 크고 대출 면에서도 용이하다"고 설명했다. 

현행법상 농업회사법인은 영농·유통·가공에 직접 사용하기 위해 취득하는 부동산에 대해서는 취득세의 100분의 50을, 과세기준일 현재 해당 용도에 직접 사용하는 부동산에 대해서는 재산세의 100분의 50을 각각 2023년 12월 31일까지 경감한다.

상속이나 증여에도 농업회사법인은 뛰어난 절세 수단이다.

한 업계 전문가는 "법규상 개인 명의로 보유한 땅을 농업회사법인으로 넘기는 현물출자를 하는 경우 땅을 궁극적으로 판 게 아니라고 간주해 농업회사법인이 처분할 때까지 양도세를 유예할 수 있고, 현물출자를 통해 농업회사법인은 취득세 비용도 발생하지 않아 취득 면에서도 유리한 구조"라고 설명했다.

농업회사법인에 대한 대출 형태로 법인 대주주나 그가 소유한 기업이 고리로 자금을 빌려주고 이를 비용으로 처리하는 경우도 여럿이다.

신도시 개발 지구에 다수의 토지를 보유한 것으로 알려진 한 농업회사법인의 지난해 자산은 330억원인데, 부채는 266억원이다. 이 농업회사법인은 두 회사로부터 각각 연리 5.0%로 118억원, 연리 5.6%로 125억원을 각각 빌렸다. 

농업회사법인 대표는 두 회사 중 한 곳의 감사로 재직하고 있다. 그런데 이 회사가 지역농·축협에 16억원을 대출받았을 때 조건은 각각 연리 3.88%와 4.24%다. 경제민주주의21 관계자는 "과도하게 높은 금리로 자금을 빌려주고 이자수익 형태로 매각 차익을 미리 선취하는 방식일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한 사람 
여러 개

조사 결과 농업회사법인을 한 사람이 여러 개 가진 경우도 있다. 서울 테헤란로에 세워진 2017년과 2018년 각각 설립된 농업회사법인 두 곳은 대표이사가 동일하다. 이렇게 농업회사를 쪼개면 외부감사기준인 자산 100억원을 회피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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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빅텐트 타령 국민의힘, 왜?

또 빅텐트 타령 국민의힘, 왜?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이 당심 반영 비율을 늘린 지방선거 경선 규칙을 발표했다. 이어 장동혁 대표를 필두로 지방선거 전략으로 ‘반명 빅텐트론’을 지난 대선에 이어 또 거론했다. 국민의힘이 6년째 내리 실패한 전략을 또 끌고 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국민의힘이 지난달 25일 지방선거 경선 규칙을 발표했다. 국민의힘 지방선거 총괄기획단 대변인을 맡은 조지연 의원은 이날 국회에서 진행된 기획단 회의 후 “내년 지방선거 경선에서 당원투표 비중을 기존 50%에서 70%로 늘리기로 했다”고 밝혔다. 민심보다 당심으로? 국민의힘 지방선거 공천은 당원투표 70%와 국민 여론조사 결과 30%가 혼합돼 결정된다. 만 44세 이하 청년은 가점을 부여받고, 여성 신인은 만 45세 이상이어도 가산점이 부여된다. 광역의원 비례대표 후보자는 청년 인재 오디션을 거쳐 선출해 최우선 순위로 당선권에 배치할 예정이다. 지난 2022년 지방선거 당시 국민의힘 대표였던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시행했던 공직 후보자 기초 자격 평가는 기초자치단체장·기초의원 후보자들을 대상으로 진행된다. 국민의힘 지방선거 총괄기획단장은 5선 나경원 의원이 맡고 있다. 나 의원은 서울시장 출마 후보군 중 1명으로 거론된다. 현 시점에선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로 오세훈 서울시장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일각에선 “나 의원이 사심 때문에 경선 규칙을 정한 것 아니냐”고 의심한다. “오세훈 서울시장의 대중적 인기는 높지만, 당내 기반은 약하다”는 평가로부터 비롯되는 의심이다. 새로 정한 경선 규칙에 대해선 당내에서도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았던 김용태 의원은 지난 25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내년 지방선거를 시작으로 실질적인 수권 전략을 실현하려면, 공직선거 후보자 선출 규칙은 국민경선 100% 제도를 채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도 같은 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비판했다. 윤 의원은 “민심이 곧 천심이고, 민심보다 앞서는 당심은 없다”며 “민의를 줄이고 당원 비율을 높이는 것은 민심과 거꾸로 가는 길이고, 폐쇄적 정당으로 비칠 수 있는 위험한 처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최근 사법부 압박 논란과 대장동 항소 포기 문제까지 있었는데도 우리 당 지지율은 떨어지고 여당 지지율이 오르는 이유는 무엇이겠느냐”며 “여당이 잘해서가 아니라 진정성 있는 성찰과 혁신 없이 표류하는 야당에 대한 국민적 실망이 더 크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라고 강조했다. 한국갤럽이 지난 18일부터 20일까지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정당 지지도 여론조사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지지율은 43%였고,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4%였다. 지난 7월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만 18세 이상 1003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전화 면접 여론조사 당시 국민의힘 지지율이 19%를 기록했던 것에 비하면 높지만, 두드러진다고 보긴 어렵다. 내부 비판 이어지는데 당심 비중↑ 비상계엄 사과 두고도 ‘옥신각신’ “국민의힘의 지지율이 당분간 크게 오르긴 어렵다”는 일각의 예측도 있다. 다음 달 3일은 비상계엄 1주년이라서 윤석열 전 대통령의 재임 중 실정과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불참 ▲윤 전 대통령 체포 저지 시도 ▲심야 대선후보 교체 시도 등 지난 1년 동안 국민의힘이 여론으로부터 비난을 받았던 행보들이 다시 주목받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국민의힘 일부 소장파 의원들은 비상계엄 사과 등을 통한 윤 전 대통령과의 확실한 절연을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지난 24일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좀 더 명확한 메시지를 낼 필요가 있다는 얘기가 당내에서도 나온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역사와 국민 앞에 누군가 사과해야 할 상황이고, 국민의힘이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예측할 수 없었던 돌발적인 계엄이 있었고, 탄핵에 이어 정권을 잃은 후 국정의 주도권을 넘겨줬다”고 강조했다. 반면 같은 당 김재원 최고의원은 같은 달 26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일회성 사과로 과거의 잘못을 끊어내고 새로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사과를 자꾸 하는 것은 오히려 현 상황을 악화시킬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의힘은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어떤 정치를 할 것인지 고민하는 게 필요하다”며 “사과하는 것보단 앞으로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는 게 더 낫다”고 역설했다. 장 대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히고 있다. 그는 같은 달 25일, 경북 구미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를 방문한 후 “사과 메시지를 내는 것은 지금 말씀드릴 단계는 아닌 것 같다”며 “국민의힘이 지금 싸워야 할 대상은 무도한 이재명정권과 의회 폭거를 이어가는 민주당”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구미역 광장에서 진행된 민생 회복·법치 수호 경북 국민대회에 참석해 “저들이 똘똘 뭉쳐 우리를 공격하고 손가락질할 때, 우리가 우리를 향해 손가락질·비판하는 게 부끄럽다”고 목소리 높였다. 그러면서 “대한민국과 자녀 세대를 위해 소리치는 우리가 아스팔트 세력이라고 손가락질당하는 게 부끄러운 게 아니라, 나라가 쓰러져가는데도 한마디도 못하는 게 부끄러운 것”이라고 강조했다. 해당 발언은 “사과해야 한다”는 일부 주장에 대한 반박으로 풀이된다. 돌발적인 계엄이다? 이재명 대통령·민주당에 대한 투쟁을 강조하는 장 대표의 주장은 빅텐트론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나 의원도 지난 1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대통령과 민주당을 비판하면서 “국민의힘은 네 탓 공방을 벌이면서 분열에 빠져 있다”며 “정당의 뿌리를 흔드는 내부는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하나로 뭉쳐 민주당의 독재 완성 계략에 단호히 맞서야 한다”고 했다. 국민의힘에선 각종 선거와 정국에 대응할 때마다 빅텐트론이 거론됐다. 시작은 황교안 당시 자유한국당 대표가 재임했던 지난 2019년이다. 이듬해엔 “각 정당·정파가 참여하는 통합추진위원회를 구성해 모든 자유민주 세력과 손을 맞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황 전 대표는 “통합 없이는 절대 이길 수 없단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며 “이 나라를 망치려는 사람들은 통합을 두려워한다”고 말했다. 황 전 대표가 주장했던 빅텐트론은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란 헌법 가치를 공유한다면, 태극기 세력부터 중도 보수 인사까지 아우른다”는 것이었다. 그의 주장을 토대로 자유한국당은 미래통합당으로 바뀌었다. 황 전 대표는 제21대 총선 패배 후 물러났다. 이 대표는 빅텐트론에 일관적으로 반대하면서 세대 포위론을 토대로 지난 2022년 대선을 지휘했다. 지난 6월 대선에 출마했던 이 대표는 국민의힘 등 보수 각계로부터 후보 단일화 요구를 받았다. 이 대표는 당시에도 국민의힘 등에서 주장했던 ‘반명 빅텐트론’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대선을 완주했다. 일각에선 국민의힘의 빅텐트론을 놓고 “혁신 요구가 나올 때마다 제기되는 주장”이라고 비판한다. 빅텐트론의 핵심은 통합이다. 통합은 정치권에서 반대 계파·의견을 억압하는 수사로 활용되는 예가 잦다. 빅텐트의 핵심은 조정 능력이다. 여기엔 다양한 계파·의견을 조율해 갈등을 최소화하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장 대표는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체제 전쟁 깃발 아래 모일 수 있는 모든 우파가 함께 모여서 이재명정권이 사회주의 독재체제로 가려는 걸 막기 위해 연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주장하는 ‘체제 전쟁’의 근거는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 ▲민주당의 배임죄 폐지·대법관 증원 시도 등이다. 장 대표는 공식적으로 국민의힘과 관계없는 황 전 대표가 지난 12일 내란 선동 혐의를 받아 내란 특검에 의해 체포되자 “우리가 황교안이다”라는 구호를 외쳤다. 이어지는 재탕 삼탕 이어 “국민의힘만으로 이재명정부·민주당과 싸우긴 어렵다”며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주도하는 자유통일당 ▲고영주 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이 주도하는 자유민주당 ▲새누리당 조원진 전 의원이 주도하는 우리공화당 ▲황 전 대표가 주도하는 자유와혁신 등을 연대 대상으로 지목했다. 이들은 모두 부정선거론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그에 반해 개혁신당과 이 대표는 부정선거론을 강하게 비판한다. 장 대표가 주장하는 빅텐트론은 김문수 전 대선후보 등이 주장했던 빅텐트론과 큰 차이가 없다. 당시 김 전 후보는 “민주당 이재명 후보를 이기기 위해선 어떤 경우든 힘을 합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한덕수 전 총리 ▲황 전 대표 ▲이낙연 전 총리 ▲이 대표 등을 통합 대상으로 지명했다. 권성동 당시 원내대표는 김 전 후보·한 전 총리의 단일화를 지지하면서, 당시 당내 주류와 불화했던 국민의힘 김상욱 당시 의원(현 민주당 의원)에게 “스스로 거취를 결정하라”고 요구했다. 이는 장 대표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에게 당원 게시판 의혹 관련 압박을 가한 것과 비슷하다. 당시 권 전 원내대표는 “당원 대부분은 민주당 이 후보에게 대항하기 위해선 반명 빅텐트가 필요하단 의견을 갖고 있다”며 “지도부는 당원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는 부정선거론을 주장하는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연대를 주장하면서, 개혁신당과의 연대설도 공개적으로 부정하진 않는다. 일각에선 “오 시장이 장 대표·이 대표의 가교 역할을 한다”고 관측하고 있다. 오 시장은 지난 9월 “개혁신당과의 연대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한 이후 꾸준히 개혁신당과의 연대를 주장하고 있다. 이후 정치권 일각에선 “오 시장이 서울시장으로 다시 출마하고, 이 대표가 경기도지사 야권 단일 후보로 출마하면 수도권에서 보수 진영이 선전할 수 있다”는 기대를 하고 있다. <미디어토마토>가 지난달 28일부터 이틀 동안 서울특별시 거주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무선·ARS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오 시장은 보수 진영에서 민심 27.5%·당심 50.3%의 지지를 얻어 서울시장 후보 중 가장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민주당이 서울시장 후보를 선출한 후 ‘여당 프리미엄’을 앞세워 오 시장에 대한 공세를 이어간다면, 재선을 장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국민의힘이 중도층의 민심을 끝내 얻지 못하면, 오 시장으로선 힘겨운 선거가 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체제 전쟁” 명분으로 사과 거부 홍 “국힘은 보수 참칭 사이비 레밍” 당내에서도 나 의원 등 막강한 경쟁자가 있어 본선행을 확실하게 장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대표는 지난달 23일 “국민의힘 내부에서 변화·쇄신 목소리가 전혀 안 나온다”며 “연대를 함께할 가능성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국민의힘은 지난 대선에 이어 1990년대식 ‘뭉치면 이긴다’ 구호만 내세운다”며 “그 전략으로 패배한 사람은 황 전 대표였는데, 같은 선택을 하면서 다른 결과가 나오길 기대하는 건 이해가 안 간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내부에도 연대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국민의힘 지도부에서 강경 보수의 주장을 가장 강하게 내세우는 김민수 최고위원은 같은 달 25일, 채널A 유튜브 채널 ‘정치시그널’에 출연해서 “이 대표는 당내 많은 분쟁을 가져온 사람이라서 화합을 해칠 가능성이 있다”며 “개혁신당과의 연대는 득보다 실이 더 많을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김 최고위원의 주장은 오 시장의 주장에 대한 반박으로 해석되고 있다. 김 최고위원은 “개혁신당은 보수 정당인지, 진보 정당인지 모르겠고, 그 사이에 있다고 생각한다”며 “저는 최고위원이 되기 전부터 우측으로의 연대를 주장했다”고 설명했다. 대선은 기동전·총력전 성격이 강한 반면, 지방선거는 진지전 성격이 강하다. 선거의 성격이 다르지만, 국민의힘에선 똑같이 ‘반명 빅텐트’라는 구호를 거론하고 있다. 역사엔 위기 상황에서 변화를 거부했다가 돌이킬 수 없는 위기를 맞이한 사례가 다수 기록돼있다. 변화를 거부하는 세력이 그 집단을 주도할 때, 이 사례는 더욱 빈번하게 재현된다. 중국 청나라에선 수구파를 이끌던 서태후가 변법자강운동을 주도하던 광서제에게 반대해 정변을 일으켜 성공한 후 광서제를 유폐했다. 중국 정부가 지난 2008년 광서제의 능을 공식 발굴 조사한 결과, 광서제는 급성 비소 중독으로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어 3세 나이로 즉위한 청나라 황제는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영화 <마지막 황제>의 주인공인 선통제다. 선통제는 영화 제목 그대로 마지막 황제였다. 광서제의 개혁 시도는 청나라의 마지막 몸부림이었다. 자신에게 유리한 정보만 취사 선택해 그 정보를 근거로 자신의 주장을 전개하고, 불리한 정보는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성향을 확증편향이라고 한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지역구 관리에만 능하고, 기득권·이익 추구에만 관심을 두는 의원들이 당을 주도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언더 찐윤’이란 집단이 거론된다. 확증편향 소탐대실 일각에선 국민의힘이 변화·혁신에 거부감을 느끼면서 같은 선택을 반복하는 핵심 이유로 언더 찐윤을 거론한다. 홍준표 전 대구시장은 지난 6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은 이념도 없는, 보수를 참칭한 사이비 레밍 집단”이라고 주장했다. 이미 여러 번 선거에서 패배한 전략임에도 확증편향·소탐대실을 근거로 같은 선택을 고집한다면, 무리 지어 절벽에서 떨어지는 레밍과 비교되는 수모를 또 겪을 수도 있다. 하지만 국민의힘에선 또 빅텐트론이 반복되고 있다. 빅텐트는 국민의힘 주변을 배회하는 유령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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