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25주년 특집> '투기? 투자?' 대기업 알짜 농업법인 대해부

합법적인 돈 묻고 돈 먹기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대기업들이 앞다퉈 농업회사법인을 설립하고 있다. 농업회사법인은 오래전부터 '투기의 장'으로 유명했다. 이 외에도 절세, 대출에 용이하다는 점은 대기업들에게 큰 메리트로 다가온 것으로 보인다. <일요시사>가 베일에 싸여있는 농업회사법인에 대해 알아봤다.

최근 농업회사법인의 투기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부동산매매, 토지개발이 엄연한 불법임에도 이를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다수인 가운데 전국 지방자치단체가 3년 주기로 실시하는 실태조사도 농업인 스스로 하는 등 감시 사각지대가 큰 것으로 확인됐다.

'뻥튀기' 빈번
사각지대

지난 18일 금융당국 및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최근 신도시 3곳 필지와 산업단지 예정부지 290억원어치를 매입하는 등 부동산투기로 문제된 대한영농영림은 감사보고서에 법상으로 금지된 '토지개발업 및 부동산매매업'을 주요사업으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해당 법인에 대해 감사의견으로 '적정'을 제시했던 한서회계법인은 지난 4일 돌연 '의견 거절'로 정정했다. 감사인은 "회사의 부동산매매와 관련된 활동이 농어업겸영체법에 따른 경작 여부, 부대사업 범위에 해당하는지 충분한 감사증거를 확보하지 못했다"며 "준거법령 위반사항은 계속기업의 존속능력에 대해 유의적인 의문을 초래한다"고 밝혔다.

문제는 이런 불법행위가 빙산의 일각일 수 있다는 데 있다. 영농목적이 아닌 시세차익을 위한 부동산매입이 전혀 통제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2월 농식품부가 밝힌 '2019년 기준 농업회사법인 통계조사'에 따르면 실질운영 중인 활동 법인은 총 2만3315개소로 나타났다. 영농목적으로 설립이 가능한 농업회사법인은 농업인 1명 이상이 주주로 참여하고 농업인 출자액이 전체의 10% 이상이어야 한다.

농업회사법인이 영농활동을 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실태조사는 유명무실한 것으로 드러났다. 농어업겸영체법에 따라 각 지자체가 조합원·출자, 사업범위, 경작유무 등을 3년 주기로 점검하지만 농업인이 스스로 작성해 제출하는 식에 그친다.

부동산개발을 하더라도 얼마든지 지자체 공무원을 속일 수 있는 것이다.

부동산투기 등 목적외 사업을 한 것이 드러나더라도 영업정지, 과징금 부과도 불가능하다. 오직 법원에 해산명령 청구만 가능한데 이 또한 상당한 시일이 소요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농식품부는 세액 납부자료나 부동산거래 자료를 관계부처를 통해 받아 면밀한 검토를 하려 했지만 법적 근거가 없어 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절세·대출에 용이…너도나도 농지로
영업정지·과징금 불가…정부도 답답

이런 상황에 앞다퉈 이뤄지고 있는 국내 주요 기업들의 농업회사법인 설립도 눈길을 끈다. 대기업의 농업 진출 사례로 유명한 곳은 현대건설의 서산간척지와 동아건설의 김포매립지.

이 두 곳은 1970년대 중동 건설 수주가 줄어들자 위기에 노출된 대형건설사들의 건설장비 문제 해결을 위해 '민간자본 유치'와 '농지조성을 통한 쌀 생산'을 명분으로 추진됐다.


현대건설은 1979년 서산 A·B 지구 간척지의 매립면허를 받아 1982년에 B지구 물막이를, 1984년에 A지구 물막이를 완료했다. 이 때 동원된 폐유조선 공법이 언론에 신화로 회자된다.

당시 현대는 "정주영 회장의 신화와 더불어 이곳이 단일경영규모로는 세계 최대이고, 선진 과학영농으로 50만명이 1년간 먹을 쌀을 생산한다"고 홍보했다. 매립 후 이 지역은 염분제거와 경지정리 후 1985년 시험영농에 들어가 10년만인 1995년 농림수산부로부터 농지 준공인가를 받았다.

그러나 현대는 애초 논으로 조성키로 한 서산 B지구를 밭으로 변경해달라고 끈질기게 정부에 요구해왔다. 2000년 부도사태를 맞은 현대건설은 경영안정을 위해 간척지를 담보로 토지공사로부터 수천억원을 차입하고 일부를 일반인과 농어민들에게 팔았다.

이후 지속적인 타용도 전용 시도가 성공하면서 2005년 정부로부터 간척지 상당 부분이 관광·레저형 기업도시로, 2008년에는 바이오웰빙특구로 지정됐다. 

결국 농업용으로 허가받은 현대간척지는 현대 재벌가 내에서 주인이 바뀌며 대부분 산업용 등 타용도로 활용되거나 매각됐고, 일부만 현대서산농장이 직영하고 있다.

동아건설의 김포매립지도 농지를 조성한다는 이유로 공유수면 매립허가를 받아 1991년에 매립지를 준공했다. 이 가운데 일부는 쓰레기 매립장, 복합화력발전소, 하수처리장 등으로 용도 변경됐다. 동아건설은 나머지 땅에 대해 농업용수 부족을 이유로 농사를 짓지 않고 방치하면서 지속적으로 용도 변경을 시도했다.

앞다퉈
진출 왜?

1998년 IMF 위기때 부도에 몰린 동아건설은 외자 유치를 내세우며 마이클 잭슨, 갑부인 사우디 왕자 등을 내세워 대대적인 용도 변경 공세를 폈지만, 정부에 의해 거부됐다.

결국 김포매립지는 동아건설의 기업구조조정을 위해 1999년 5월 농어촌공사에 매각됐다가 다시 LH와 인천시 등에 넘어가 도시용지, 산업용지로 전용됐다.

동부그룹의 동부팜한농은 원래 1953년 한국농약으로 출발했으며, 농약·비료·종자·동물약품을 아우르는 국내 최대 농자재 회사였다.

2009년에는 자회사인 동부그린바이오(새만금팜)가 새만금간척지 대규모농어업회사 사업자로 선정됐고, 2010년에는 동화청과를, 2011년에는 천적곤충기업인 세실을 비롯해 동호제약, 대농종묘, 가야를 인수했다.

동부팜한농은 2012년 몬산토코리아로부터 영업권을 인수하기도 했다. 몬산토코리아는 지난 1998년 외환위기 때 국내 종자업계 1위 흥농종묘와 3위 중앙종묘를 인수한 세미니스코리아를 인수했었다.


특히 2012년에는 동부팜화옹이 경기도 화옹간척지 내에 일부 정부 지원을 받아 15ha규모의 첨단유리온실 단지를 건립했다가 농민들의 반발로 2013년 포기를 선언했고, 유리온실을 우일팜에 팔았다.

동부팜한농은 우여곡절 끝에 동부그룹이 부도위기를 맞자 LG화학에 매각돼 '팜한농'으로 출발했다.

동부팜을 인수한 LG가 농업에 관여하기 시작한 것은 1973년 학교법인 연암학원을 설립하고 이듬해 연암대학의 전신인 연암축산고등기술학교(축산과)를 개교하면서부터다.

구자경 LG 명예회장은 1995년 은퇴 후 천안 연암대 인근 농장에서 머물며 버섯 재배와 된장 등을 취급하는 수향식품을 운영했다. LG그룹은 2006년 리조트와 수목원에 조경수를 공급하는 농업회사법인 곤지암원예원을 설립하고, 같은 해부터 곤지암 화담숲을 조성, 2013년 개장했다.

대기업들의 농업 진출 시도는 정보통신업계에서 두드러진다. 카카오는 2015년 KAIST 출신들이 만든 식물공장 업체인 '만나씨이에이'의 지분 약 33%를 인수하고 유통과 마케팅을 지원하고 있다. 만나씨이에이가 생산하는 품목은 바질 같은 외래종 채소류다.

농민 구역
침해 논란도


이 업체는 다시 '팜잇'이라는 법인을 만들어 크라우드펀딩으로 공유농장이라는 사업모델을 확산시키려 하고 있다. 카카오의 행보는 농민들과 중소상인들의 골목상권을 침해한다는 논란을 빚기도 했다. 

노루표페인트로 잘 알려진 노루그룹도 2014년 자본금 100억원을 들여 노루기반이라는 회사를 설립하고 농업관련 사업을 하고 있다. 노루그룹 산하에는 농산물 유통·가공·판매와 영농 자재를 생산·공급하는 더기반이 있고, 노루지에스는 무인기 기술, GIS(지리정보시스템)를 이용한 정밀 농업 분야 시장을 노리고 있다.

이동통신사인 SK텔레콤· KT·LG 유플러스 등 3사도 모바일 원격제어시스템 마케팅에 열을 올리고 있다. 

KT&G는 2011년 인삼과 한약재 재배를 주력으로 하는 농업회사법인 예본농원을 설립했으나 실적이 없이 2014년 청산했다. 대성그룹의 경우 2012년 고구마와 감자를 재배하는 농업회사법인 굿가든과 굿랜드를 세웠다가 2013년 굿가든으로 흡수합병했다.

녹차브랜드 '설록차' '오설록'의 아모레퍼시픽은 1979년 제주도에 진출해 190ha규모로 녹차를 재배하면서 공장과 박물관까지 운영하고 있다. SK임업은 1972년 서해개발 주식회사로 시작해 천안, 충주, 영동 등에 조림지를 보유하고 조림, 조경, 임산물 사업을 한다.

그렇다면 기업들은 왜 농업회사법인에 관심을 두는 것일까. 전문가들은 ▲토지 투자에 가장 걸림돌 중 하나인 농지 취득 자격 제한을 받지 않고 ▲취득세나 종부세 등 세금을 회피할 수 있으며 ▲정책자금 등을 통해 대출을 받기도 유리하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한 전문가는 "농업회사법인이 땅 투기 수단으로 널리 쓰이게 된 건 오래전부터"라며 "농업활동을 하는 사람이 참여해야 한다는 제한이 있지만, 이를 회피할 수 있는 수단은 많은 데다 '편법'이긴 하지만 여러 장점이 있기 때문"이라고 귀띔했다.

유명 그룹 정보통신업계도 합류
총수가 앞장서…본질은 이윤추구?

가장 많이 거론되는 것은 세금이다. 부동산 관련 전문가는 "조세특례제한법 등에 따라 농업활동을 목적으로 농지를 매매할 경우 취득세와 양도소득세 감면 혜택이 있기 때문에 개인 명의로 사들이는 것보다 절세효과가 크고 대출 면에서도 용이하다"고 설명했다. 

현행법상 농업회사법인은 영농·유통·가공에 직접 사용하기 위해 취득하는 부동산에 대해서는 취득세의 100분의 50을, 과세기준일 현재 해당 용도에 직접 사용하는 부동산에 대해서는 재산세의 100분의 50을 각각 2023년 12월 31일까지 경감한다.

상속이나 증여에도 농업회사법인은 뛰어난 절세 수단이다.

한 업계 전문가는 "법규상 개인 명의로 보유한 땅을 농업회사법인으로 넘기는 현물출자를 하는 경우 땅을 궁극적으로 판 게 아니라고 간주해 농업회사법인이 처분할 때까지 양도세를 유예할 수 있고, 현물출자를 통해 농업회사법인은 취득세 비용도 발생하지 않아 취득 면에서도 유리한 구조"라고 설명했다.

농업회사법인에 대한 대출 형태로 법인 대주주나 그가 소유한 기업이 고리로 자금을 빌려주고 이를 비용으로 처리하는 경우도 여럿이다.

신도시 개발 지구에 다수의 토지를 보유한 것으로 알려진 한 농업회사법인의 지난해 자산은 330억원인데, 부채는 266억원이다. 이 농업회사법인은 두 회사로부터 각각 연리 5.0%로 118억원, 연리 5.6%로 125억원을 각각 빌렸다. 

농업회사법인 대표는 두 회사 중 한 곳의 감사로 재직하고 있다. 그런데 이 회사가 지역농·축협에 16억원을 대출받았을 때 조건은 각각 연리 3.88%와 4.24%다. 경제민주주의21 관계자는 "과도하게 높은 금리로 자금을 빌려주고 이자수익 형태로 매각 차익을 미리 선취하는 방식일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한 사람 
여러 개

조사 결과 농업회사법인을 한 사람이 여러 개 가진 경우도 있다. 서울 테헤란로에 세워진 2017년과 2018년 각각 설립된 농업회사법인 두 곳은 대표이사가 동일하다. 이렇게 농업회사를 쪼개면 외부감사기준인 자산 100억원을 회피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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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분오열’ 의료계 내분 내막

‘사분오열’ 의료계 내분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뚝심인가, 고집인가? 의대 정원 확대에 대한 대통령의 뜻이 확고해도 너무 확고하다. 겉으로는 유연한 대처를 언급하면서 ‘2000명’이라는 수치는 굽히지 않을 기세다. 강 대 강 대치에 나섰던 의료계는 우왕좌왕하는 모양새다. 의료계 내부의 의견을 모으는 일도 쉽지 않아 보인다. <일요시사>와 인터뷰한 지방의대 A 교수는 의과대학 정원 확대를 밀어붙이는 윤석열정부의 강경 기조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정규군은 수뇌부만 처리하면 와해되기 쉽다. 하지만 현재 의료계는 게릴라 방식으로 대응 중이다. 주동자를 찾기 어렵고 실제 주동자도 없다. 전공의, 의대생 모두 조직의 통제하에 움직이는 게 아니라 본능에 따라 행동하고 있다. 윤정부 입장에서는 협상 대상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일괄 협상에 따른 일괄 타결은 어렵다고 본다.” 2월 이후 평행선만 실제 의료계는 대학의사협회(의협),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의대협) 등 여러 단체가 의대 정원 확대 정책에 개별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의대 정원 확대 반대’를 큰 틀로 하되 대응 방식이나 세부적인 요구사항은 각각 다른 상황이다. A 교수의 말대로 의료계는 현재 단일협의체가 없다. 협상테이블이 마련된다 해도 앞에 대표로 나설 사람이 없는 셈이다. 과거 의정갈등이 일어났을 때 주로 의협이 나서서 의료계 입장을 전달하고 대응을 이끌었다면 현재는 각개전투를 진행하고 있다. 이미 정부는 의협의 대표성에 대해 의문을 표한 상태다. 정부는 지난 2월 말 의협 대신 ‘대표성을 갖춘 협의체’를 구성해 의대 정원 확대 등에 대해 대화하자고 의료계에 요청했다. 의협이 전체 의사들의 대표성을 띠기 어렵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 것이다. 당시 주수호 의협 비상대책위원회 언론홍보위원장은 “의협 회원엔 전공의·봉직의 등 모든 직역이 포함돼있고 모든 직역이 배출한 대의원 총회 의결을 거쳐 만들어진 조직이 비대위”라며 “정부가 의협의 대표성을 부정하는 이유는 내부 분열을 조장하기 위함”이라고 반발했다. 의협은 의료법에 근거해 모든 의사가 가입하는 법정 단체지만 개원의를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번 의정갈등 국면서 가장 선봉에 선 단체는 전공의가 모인 대전협이 꼽힌다. 전공의가 의대 정원 확대에 반발해 병원을 떠나는 등 집단 강경 투쟁에 나서면서 의정갈등에 불이 붙었다. 의대생은 집단 휴학으로 힘을 실었다. 유급 마지노선에 이른 대학들이 수업을 재개했지만 의대생은 돌아올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집단사직에 나선 전공의가 여전히 버티고 있는 상황서 의대생의 복귀 가능성 역시 낮다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대통령실 1년 유예안 일축하면서도 ‘2000명 정원’ 논의 가능성 제시해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달 31일 기준 학칙에 따른 형식적인 신청 요건을 지킨 의대생의 휴학 신청은 누적 1만242명으로 전체 의대 재학생 대비 54.5% 규모에 이른다. 의대생들의 집단 휴학과 수업 거부는 지난 2월부터 시작됐다. 대학 사이에선 이달 중순이 지나면 여름방학까지 총동원해도 유급을 막을 수 없다. 의대는 특정 수업서 3분의 1 또는 4분의 1 이상을 결석하면 낙제(F) 처리되고 F가 하나라도 나올 경우 유급이 되도록 학칙을 세워둔 곳이 많다. 전공의의 집단사직으로 병원 업무가 마비되고 일부 의료진에 업무가 과중되는 이른바 ‘의료대란’이 벌어졌다. 여기에 의대생의 집단 휴학은 의사 수급 부족 현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의료현장에 구멍이 생기면서 의사를 찾지 못해 환자가 사망하는 ‘응급실 뺑뺑이’ 사건도 일어났다. 문제는 정부의 태도다. 지난 2월6일 2025학년도 의대 입학 정원을 5058명으로 현행보다 2000명 늘리겠다고 발표한 이후부터 현재까지 요지부동 상태다. 정부는 2035년까지 1만명의 의사 인력을 확충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2006년 이후 19년 동안 동결됐던 의대 정원 확대를 예고한 것이다. 당시 보건복지부(이하 복지부)는 발표 당시 의료계와 소통한 결과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지난해 10월26일 ‘의대정원 확대 추진계획’을 발표한 이후 40개 대학으로부터 증원 수요와 교육역량에 대한 자료를 받았고 현장점검을 포함한 검증을 마쳤다고 밝혔다. 의료계를 비롯해 사회 각계각층과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했다는 점도 언급했다. 특히 정부는 의대 정원 확대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강조했다. 언론사 여론조사 등에서 의대 정원을 늘리는 문제에 대해 국민 10명 가운데 8명 이상이 ‘필요하다’고 응답한 것을 의미있게 언급했다. “흔들림 없는 의료개혁을 완수하겠다”는 정부의 입장에 국민의 응원을 지지대로 삼은 것이다. 요구 다른 의사단체 윤석열 대통령의 의지는 더 강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 1일 ‘국민께 드리는 말씀’ 대국민담화서 “역대 정부들이 9번 싸워 9번 모두 졌고 의사들의 직역 카르텔은 더욱 공고해졌다”며 “이제는 결코 그런 실패를 반복할 여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2000명이라는 숫자는 정부가 꼼꼼하게 계산해 산출한 최소한의 증원 규모”라며 “이를 결정하기까지 의사단체를 비롯한 의료계와 충분하고 광범위한 논의를 거쳤다”고 설명했다. 연구 결과를 들어 그 배경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윤 대통령은 “정부는 국책연구소 등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연구된 의사 인력 수급 체계를 검토했다. 수요 측면서 저출산 고령화와 같은 인구구조의 변화, 만성질환의 증가와 같은 질병구조의 변화, 소득 증가에 따른 의료수요 변화까지 반영했다”며 “어떤 방법론이더라도 지금부터 10년 후인 2035년에는 자연 증감분을 고려하고도 최소 1만명 이상의 의사가 부족하다는 결론은 동일하다”고 말했다. 의대 정원 확대 시기에 대해서도 정부는 가차없는 태도를 보인다. 대통령실은 지난 8일, 의협이 제안한 의대 증원 1년 유예안에 대해 “정부는 그간 검토한 바 없고 앞으로도 검토할 계획도 없다”고 밝혔다. 앞서 박민수 복지부 차관이 “내부 검토는 하겠고 현재로서 수용 여부를 말씀드리기 어렵다”고 내놓은 답변서 더 강경해진 입장이다. 대통령실은 1년 유예안을 받을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하면서도 “만약 의료계서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근거, 그리고 통일된 의견으로 제시한다면 논의할 가능성은 열어놓고 있다”며 “열린 마음으로 임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팔짱 낀 정부 공은 의료계로 일각에서는 정부는 초지일관 원론적인 입장을 되풀이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현재로선 ‘2000명’이 정부와 의료계 간 대화의 장벽이 되고 있다. 정부는 2000명이라는 수치를 꿋꿋하게 고수하고 의료계는 2000명 백지화가 대화의 선결 조건이라는 뜻을 굽히지 않는 중이다. 정부든 의료계든 어느 한쪽이라도 구부려야 맞닿는 법인데 평행선만 그리는 모양새다. 이 와중에 의료계는 내분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정부가 의료계에 요구하는 ‘통일된 의견’을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새 회장을 선출한 의협이 그 중심에 있는 상황이다. ‘강성’으로 꼽히는 임현택 의협 회장 당선인과 의협 비대위가 엇박자를 내고 있고 대전협의 박단 비대위원장도 의협 비대위와 갈등 조짐을 보이는 중이다. 현재 의협은 비대위원장과 차기 회장이 공존하는 상태다. 의협은 지난달 26일, 임 당선인을 차기 회장으로 선출했다. 임 당선인은 결선투표서 65%의 지지를 얻어 당선됐고 임기는 다음 달 1일부터다. 임 당선인의 등장으로 의협의 대정부 투쟁 수위가 올라갈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됐다. 임 당선인은 의대 정원 증원 철회를 비롯해 대통령의 사과와 책임자 파면을 요구하는 등 다른 의사단체에 비해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마찰음이 나온 건 ‘단일대오’를 구성하는 과정에서였다. 의협 비대위는 지난 7일, 기자회견서 전의교협, 대전협, 의대협 등과 함께 합동 기자회견을 이번주 안에 열겠다고 예고했다. 하지만 임 당선인이 이런 움직임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의협 비대위, 차기 회장·전공의 회장 갈등 삐걱거리는 단일대오에 대화 공전 가능성도 의협 회장직 인수위원회는 의협 비대위와 대의원회에 공문을 보내 임 당선인이 김택우 현 비대위원장 대신 의협 비대위원장직을 수행할 수 있도록 협조해달라고 요청했다. 이는 ‘한 지붕 두 가족’ 상황의 의협 창구를 단일화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대전협 박 위원장도 의협 비대위와 불협화음을 내고 있다. 박 위원장은 자신의 SNS에 “의협 비대위 김택우 위원장, 전의교협 김창수 회장과 지속적으로 소통하고 있지만 합동 브리핑 진행에 합의한 적은 없다”고 적었다. 합동 기자회견은 일단 취소된 상태다. 박 위원장과 임 당선인의 갈등도 관심사다. 임 당선인은 지난 4일, 윤 대통령과 박 위원장의 비공개 만남에 불만을 드러냈다. 의협 비대위는 윤 대통령과 박 위원장의 만남을 ‘의미 있다’고 평가했지만 임 당선인은 SNS에 ‘내부의 적’을 운운하며 박 위원장을 강도 높게 비난하는 듯한 글을 남겼다. 박 위원장은 이 같은 보도 내용을 게시글에 공유하며 ‘유감’이라고 적었다. 전의교협은 의대 비대위에 힘을 실어주는 모양새다. 전의교협은 전국 40개 의과대학 교수협의회로 구성된 단체다. 김창수 전의교협 회장이 의협 비대위에 합류하면서 의료계 단일대오 구성이 빨라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통일된 의견을 내놓을 단일협의체 구성 속도에 따라 의정갈등의 타결 가능성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의협 비대위를 중심으로 단일대오를 구성하려던 시도가 임 당선인과 박 위원장의 행보로 삐걱거리면서 의료계 상황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처지가 됐다. 여기에 협상테이블이 마련돼 정부와 의료계의 대화가 이뤄진다 해도 합의까지 가는 데는 하 세월이 걸릴 것이라는 의견이 만만찮다. 입장차가 그만큼 첨예하다는 뜻이다. 타결까지 첩첩산중 일각에서는 정부와 의료계 모두 환자에 대한 배려는 뒷전에 두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2월 이후 두 달 넘게 갈등이 계속되면서 환자들은 불편을 겪고 있고 일부 의료진은 업무 과중으로 그로기 상태에 빠졌다. 전공의가 떠난 병원은 매일 막대한 손해를 입고 있다. 정부와 의료계의 10번째 갈등이 어떤 결론으로 끝나느냐에 따라 의료계 지각변동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