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계 흔드는 '귀족 스태프' 부작용

"월 1000만원" 부르는 게 몸값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수년 전만 해도 영화 혹은 드라마 스태프들에게는 '열정페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고생스러운 노동강도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임금을 받았기 때문이다. 지난해부터 주52시간 근무제가 정착되면서 스태프들의 처우는 선진국과 다름없는 수준이 됐다. 스태프의 노동비가 오른 반면 코로나19 등으로 인해 시장의 성장률이 둔화되면서 오히려 업계의 존폐가 걱정된다는 평가가 나온다. 

영화 투자배급사의 한 예산 관련 직원은 예산을 나눠줄 때마다 자괴감에 빠진다고 토로했다. 이른바 사회에서 통용되는 스펙이 낮은 스태프들의 임금이 힘겹게 경쟁률을 뚫고 대기업에 입사한 자신보다 2~3배가량 높기 때문이다. 

상대적
박탈감

지난 20일 최근 영화 촬영을 마친 한 감독에 따르면 일반 보조 스태프들의 평균 월급은 800만~900만원에 이른다. 약 3년에서 5년 경력을 가진 스태프들 대부분이 1000만원에 가까운 월급을 가져간다. 경험이 전무한 신입 스태프도 월 270만원 이상의 임금을 받는다. 

이 같은 현상은 드라마·영화 등의 촬영 관련 스태프들이 표준계약서를 작성하는 시점부터 시작됐다. 주68시간 근무제가 시행되면서 대다수 스태프들의 임금이 대폭 상승했고, 주52시간 근무제 시행 이후부터는 업무 질적인 차원에서도 매우 좋아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현재 방영을 앞둔 드라마 스태프라고 밝힌 A씨는 "주68시간 근무제가 시행된 2년 전부터 임금이 대폭 올랐다. 당시만 하더라도 현장 업무는 힘들었다. 하지만 주52시간 근무제가 정착되면서부터는 임금이 오르는 폭은 크지 않지만, 업무량이 매우 편해졌다"고 밝혔다. 


불과 몇 년전만 하더라도 '열정페이' 논란이 나올 정도로 국내 스태프에 대한 처우는 가혹했다. 임금은 턱없이 적었고, 수많은 갑들로부터 빈번한 횡포를 당했다. 드라마나 영화 등 이야기 산업 영역에서 스태프들의 포지션은 하위권이었다. 

하지만 웹드라마를 비롯해 OTT 시장이 활성화되는 등 국내 콘텐츠 산업의 외연이 확장되면서 스태프 품귀현상이 일어났다. 현장 경험이 있는 스태프를 구하는 것조차 어려운 실정이 됐다. 스태프에 대한 가치가 급격히 올라갔다.

드라마와 영화 모두 '스태프 모시기' 경쟁이 일어났다. 주68시간 근무제로 인해 스태프 평균 임금이 2배 가까이 올랐다.

스태프 한 명당 임금이 대폭 상승하면서 영화계는 존폐를 고민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불과 5년 사이 스태프 임금은 두 배 이상 오르면서 손익분기점을 맞추는 것조차 어려운 실정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영화 배급사 관계자는 "4년 전에 순제작비 31억원에 찍은 영화가 있다. 당시 110만 관객으로 손익분기점을 넘겼다. 이제 그 영화를 찍으려면 최소 55억원 이상이 든다. 제작비가 2배 이상이 올랐다고 보면 된다"며 "그렇다고 영화 시장이 2배 이상 컸냐고 하면 그렇지 않다. 영화 시장의 성장세는 임금의 성장을 따라가지 못한다"고 말했다.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열정페이 옛말 오버페이 논란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에서 발간한 '2020년판 한국영화연감'에 따르면 2019년 국내에서 순제작비 30억원 이상이 투입된 상업영화는 45편이다. 마케팅 비용이 포함된 총제작비의 도합은 약 4550억원이다. 한 영화당 101억원 정도의 제작비가 투입된다. 


이는 70편이 제작된 2015년의 총제작비인 3700억원(평균 총제작비 약 52억원)과 33편이 제작된 2016년의 총제작비 2950억원(평균 총제작비 약 89억원)을 크게 상회하는 수치다. 2017년에는 평균 제작비는 약 97억원, 2018년의 평균 제작비는 102억원이다.

불과 3년 사이에 제작비가 2배 가까이 상승한 셈이다. 스태프 임금 상승과 함께 제작비가 대폭 상승한만큼, 영화 투자사와 제작사의 수익은 줄어들고 있다.

2019년 제작된 영화 45편의 총매출액은 약 5660억원이다. 한 편당 평균 12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하지만 영화는 특정 작품만 고수익을 내는 형태다. 부익부 빈익빈이 심하게 나타난다. 연감에 따르면 2019년 매출 1위를 기록한 <극한직업>을 제외하면 44편의 평균 추정수익률은 -8.1%다. 

2015년부터 2018년까지 4년 동안 국내 상업영화 총 매출액은 4500억원 내외다. <극한직업>과 <기생충>, <어벤져스:엔드게임> 등 1000만 영화가 무려 5편이나 된 2019년 총매출이 약 1000억원 이상 늘어난 것. 그럼에도 <극한직업>을 제외한 수치를 따지면, 영화계는 마이너스 성적표를 받았다.

영진위가 집계한 2018년 추정수익률은 -4.8%다. 영화산업은 코로나가 발생하기 전부터 마이너스 성장으로 접어들었다. 코로나19가 발발한 2020년의 수익은 전년 대비 90% 손실에 가깝다. 2021년 관객수 역시 코로나19 이전에 비교해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영화산업은 4년 동안 투자금을 회수하지 못하고 있다. 

한 영화 배급사 관계자는 "영화계가 존폐의 갈림길에 선 지 오래됐다. 코로나19를 떠나서 이미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다. 쉽게 설명해서 6000억원을 투입하면 5500억원 이하의 수익을 내는 산업"이라고 밝혔다. 

4년 동안
마이너스

영화계의 지속적인 마이너스 성장의 이유로 인건비 상승이 꼽힌다. 갑작스럽게 2배 가까이 오른 제작비로 인해 손익분기점이 전반적으로 높아졌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100만 관객만 동원해도 손익분기점을 넘겼던 영화가 이제는 200만 관객을 동원해야 수익을 남기는 것. 

촬영 회차당 비용이 급격하게 높아지면서, 영화 질적인 부분도 떨어질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특히 세트촬영이 주가 아닌 각종 지역을 돌아다니며 찍어야 하는 작품은 실질적인 촬영 시간이 매우 적어 제작비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익명을 요구한 한 영화감독은 "로케이션이 많은 작품은 이제 꿈꾸기도 힘들다. 매우 높은 비율의 세트촬영을 해야 겨우 주어진 시간에 모두 찍을 수 있다. 촬영장 이동 시간도 근무시간에 포함되기 때문에 차가 막히면 하루 회차를 이동하는 데 다 쓸 수도 있다"며 "로케이션 이 많은 방식을 택했다가 심각한 스트레스를 받은 감독도 있다"고 말했다. 

국내 영화계에서 크게 문제가 되는 것 중 하나가 양산형 영화의 확산이다. 양산형 영화는 창의적인 방식으로 이야기를 펼쳐나가는 것이 아닌, 흥행한 작품을 적당히 따라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진 작품을 말한다. 


양산영 영화의 특징은 장면마다 기시감이 강한 클리셰가 난무하며, 영화 속 이야기의 맥락과 상관없이 신파가 이어진다. 소재는 대부분 자극적인 사건이며, 캐스팅에서도 모험을 시도하지 않는다. '그 나물에 그 밥'인 영화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과 <미나리>의 윤여정이 전 세계를 호령하는 영화인으로 발돋움하고 있음에도, 한국 영화의 장래가 밝지 못하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메가박스는 최근 <자산어보>를 개봉하고 호평을 받았다. 이준익 감독은 백상예술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정약용과 정약전의 가치를 그린 <자산어보>는 예술성이 높은 작품으로 평가된다. 대중적인 요소도 상당하다. 이 감독은 또 하나의 명작을 만들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자산어보>와 같은 의미 있는 작품에 투자하는 것 자체가 소위 '미친 짓'이라는 말이 나온다. 적은 제작비로 훌륭한 퀄리티의 영화를 만들어온 이 감독이 <자산어보> 제작의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신인 감독이었다면 엄두도 못 낼 작품이라는 것.  

한 영화 배급사 관계자는 "당장 투자배급사가 죽게 생겼는데, 작가주의 영화나 다양성 영화에 투자하기란 쉽지 않다. 다양성 영화를 의식해서 투자를 잘못했다가는 투자팀 직원이 잘리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뒤바뀐
갑과 을


스태프들의 임금이 상승하면서 다양한 문제가 생겨나는 가운데, 영화관계자들은 더 큰 문제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이른바 '부서 이기주의'다. 

영화마다 각 부서가 있는데, 부서만의 이익을 위해 이기적인 결정을 내리는 것을 말한다. 부족한 예산으로 좋은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협력을 해도 모자를 판에 부서의 이익을 위해 비협조적인 결정을 내리는 행태가 만연해졌다는 것. 

촬영을 하다 보면 여러 가지 변수로 인해 30분에서 1시간 정도 시간이 더 소요될 때가 있다. 이런 경우 감독을 비롯한 연출진과 제작자는 '오버페이'를 부담하면서 촬영을 이어가기를 바란다. 하루 더 연장해서 촬영하면 약 2000만~3000만원의 제작비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여기에 장소 대여비와 각종 일정 등을 고려하면, 제작비는 예상치를 크게 웃돌게 된다. 오버페이를 지불하는 것이 영화를 만드는 입장에서는 합리적인 선택일 수 있다. 

하지만 최근 영화 현장에서 이런 협의는 절대 통용되지 않는다고 한다. 최근에 영화 촬영을 진행한 감독은 "스태프들과 협의를 포기했다"고 밝혔다. 

그는 "몇 차례 오버페이를 줄 테니 좀 더 찍자고 협의를 했는데 계속 거부당했다. 나중에는 협의하지도 않고 그냥 회차를 늘렸다. 한국 영화 현장은 할리우드보다 더 빡빡해졌다. 할리우드는 촬영이 좀 오버된 경우 충분히 협의하는 방법이 있는데, 한국은 스태프들이 거부하면 방법이 없다"며 "임금이 늘었다고 책임감이 생긴 건 아니다"라고 토로했다. 

협력 포기한 '부서 이기주의'
"위기의 충무로, 존폐 기로까지
"

드라마의 경우는 비교적 낫다. 매주 찍어야하는 분량이 있기 때문에 부서 이기주의가 비교적 덜한 편이라고 한다. 반대로 영화는 시간의 여유가 있는 편이라 각 스태프의 이기주의가 더욱 심화됐다고 한다. 

한 영화 스태프는 "영화는 일절 협의를 하지 않는다. 주어진 촬영 시간이 끝나면 바로 집에 가는 분위기다. 처음에는 나도 놀랐다. 조금만 더 촬영하면 이 장소에서는 모든 촬영이 끝나는데, 그런 형편을 이해해주지 않는 모습이 무책임해 보였다"며 "좋은 스태프도 있지만, 악질적인 스태프도 많다"고 밝혔다. 

엄청난 흥행을 일으킨 영화 감독은 '현장의 왕'으로 불렸다. 각종 배우 및 스태프의 캐스팅을 손에 쥐고 있으며, 촬영 및 편집 등 모든 부분에서 결정을 내리는 역할이라는 점에서 막강한 권력을 지니고 있었다. 과거에는 이런 감독을 견제하는 역할을 투자사에서 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제 감독은 동정심이 가는 포지션으로 전락했다고 한다. 

한 투자 배급사 관계자는 "과거에 투자사에서 영화 현장을 가는 건 두 가지 이유였다. 이전에 찍은 촬영분이 너무 허접해서 혼내러 가거나, 작품이 잘 되고 있어서 놀러 가는 것이었다"며 "요즘에는 위로해주러 간다. '잘 찍는 건 둘째 치고 회차만 맞춰달라'고 말하고 온다. 그러면 감독은 '저런 애들 데리고 어떻게 회차를 맞추냐'며 하소연을 한다. 실제로 현장에 가보면 다들 스마트폰을 하고 있다. 영화 촬영에 집중하지 않는다. 어차피 촬영이 늦어지면, 이득을 보는 게 그들이다. 회차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좋으니까"라고 말했다. 

대부분 스태프는 3~4개월 촬영하면, 1~2개월은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다시 작품에 투입된다고 한다. 계약의 연속성 면에서 부담이 있기는 하나, 요즘과 같은 콘텐츠 범람의 시대에서는 일자리를 구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는 게 전언이다. 

한 제작사 관계자는 "'귀족 스태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임금도 많이 받고, 실업급여도 받는다. 어차피 몇 달 하고 안 볼 사람이라는 생각들이 있어서인지 절대 제작진의 마음을 이해해주지 않는다. 그렇다고 딱히 견제할 방법도 없다. 수틀리면 갑자기 도망치기도 하는데, 처벌할 방법은 없다"고 말했다. 

갑자기 도망
책임감 필요

한 영화 감독은 "인건비가 늘어난 만큼 책임감 있는 스태프들이 늘어났으면 한다. 예전과는 다르게 일하기 좋은 환경이 됐다. 건강한 생각의 좋은 인력들이 많이 들어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어쭙잖은 실력으로 갑질하는 스태프는 안 봤으면 한다"고 말했다. 


<intellybeast@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포스트 코로나' 시대, 한국 영화 미래는?

영화계 내에 문제가 산적한 가운데, 현재 한국 영화계의 미래는 암울한 수준이다. 코로나19를 회복하지 못한 것에 더불어 각종 OTT로 인해 집에서 드라마를 보는 문화가 확산됐기 때문이다. 

코로나19를 회복한다면 곧 영화계도 회복될 것이라는 긍정적인 시선이 있는 반면, OTT로 인해 잠식될 것이라는 비관적인 시선도 많다. 오히려 비관론이 더 늘어나는 추세라는 게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한 시나리오 작가는 "영화산업은 사양산업에 접어들었다고 본다. 과거에는 영화관 가는 것이 일상이었다면,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는 일탈이 될 것"이라며 "관람료는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감독이나 작가, 배우 등 새로운 스타를 발굴하지 못한다면 영화계는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할 것"이라고 예견했다.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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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2조 물먹은’ 한양 수상한 계열사와 의문의 돈거래

[단독] ‘2조 물먹은’ 한양 수상한 계열사와 의문의 돈거래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광주 노른자위 땅을 개발하는 사업이 건설사 간의 갈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총사업비 2조여원의 초대형 프로젝트가 양측이 제기한 고소·고발로 표류하는 모양새다. 갈등의 본질은 사업을 좌지우지하는 특수목적법인(SPC)의 최대주주 지위가 누구에게 있는지다. 최근 지분확보를 위한 소송 과정서 의문의 돈거래가 포착됐다. 2020년 7월1일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라 도시계획시설서 도시공원으로 지정해놓은 개인 소유의 땅에 20년간 공원 조성을 하지 않을 경우 땅 주민의 재산권 보호를 위해 도시공원서 해제하는 제도인 ‘도시공원 일몰제’가 시행됐다. 도시공원 일몰제의 도입으로 민간공원 특례사업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민관 합작 윈윈 사업 민간공원 특례사업은 민간에 사업시행권을 주고 공원을 조성해 지자체에 기부채납하도록 하는 제도다. 민간 사업시행자는 공원부지 30% 범위서 아파트 건설 등 비공원사업을 진행해 수익을 챙길 수 있다. 정부나 지자체는 민간 자본으로 공원을 조성할 수 있다는 점에서, 민간 사업시행자는 주택 공급 사업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서로 이득 볼 수 있는 구조다. 현재 전국 각지서 진행하고 있는 민간공원 특례사업 중 ‘중앙공원 1지구 민간공원 특례사업’의 규모가 가장 크다. 광주시 서구 금호동과 화정동, 풍암동 일대 243만5027㎡에 공원시설과 비공원시설을 건축하는 초대형 프로젝트다. 비공원시설 부지에는 지하 3층~지상 28층, 39개동 총 2772세대 규모의 아파트가 들어설 예정이다. 총사업비가 2조2000억원에 달한다. 2020년 1월 사업시행사인 특수목적법인(SPC) 빛고을중앙공원개발(이하 빛고을)이 설립되면서 추진되기 시작한 사업은 최근 시행사 지위와 시공권 등을 두고 고소·고발이 난무하고 있다. SPC 설립 시점부터 컨소시엄에 참여한 한양과 이후 시공자로 들어온 롯데건설, 지분 다툼을 벌이고 있는 우빈산업, 케이앤지스틸 등이 갈등의 주체다. SPC 빛고을 설립 초기 한양이 30%로 최대주주, 우빈산업(25%), 케이앤지스틸(24%), 파크엠(21%) 등이 주주로 참여했다. 한양이 우빈산업과 케이앤지스틸의 SPC 빛고을 참여를 위한 초기자본 49억원을 댔다. 한양이 우빈산업에 49억원을 빌려주고 우빈산업이 다시 케이앤지스틸에 24억원을 대여해 지분을 분배했다. 이때 우빈산업은 케이앤지스틸에 24억원을 빌려주면서 ‘콜옵션’ 계약을 맺은 것으로 보인다. 콜옵션은 특정한 기초자산을 만기일이나 만기일 이전에 미리 정한 행사가격으로 살 수 있는 권리를 뜻한다. 다시 말해 우빈산업은 언제든지 원할 때 케이앤지스틸의 지분을 회수할 수 있는 조건을 걸어둔 것이다. ‘초대형’ 중앙공원 1지구 사업의 이면 한양-케이앤지스틸 모종의 관계 의혹 SPC 빛고을 주주구성에 변화가 생긴 시점은 컨소시엄 구성 당시 한양이 맡기로 한 시공권이 롯데건설로 넘어가면서부터다. 우빈산업은 케이앤지스틸의 지분 24%를 위임받아 주주권을 행사해 롯데건설과 중앙공원 1지구 아파트 신축 도급 약정을 체결했다. 이 과정서 30% 지분의 한양은 배제됐다. 롯데건설을 시공자로 선정할 당시 우빈산업에 지분을 위임했던 케이앤지스틸의 태도가 변한 시기는 2022년 5월경으로 추정된다. SPC 빛고을 관계자에 따르면, 당시 케이앤지스틸은 우빈산업에 25억3000만원(대여금 24억원+이자)을 송금한 뒤 주주권을 주장하고 나섰다. SPC 빛고을 설립 과정서 빌린 돈을 갚았으니 24% 지분만큼 주주권을 행사하겠다는 것이다. 그러자 우빈산업은 케이앤지스틸에 24억원을 빌려주면서 맺었던 콜옵션을 행사하고 49%의 지분을 확보해 SPC 빛고을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이후 우빈산업 내부 사정이 변하면서 한 차례 더 지분구조에 변화가 생겼다. 우빈산업은 대출금 100억원에 대해 채무불이행을 선언하고 부도 처리됐다. 지급보증을 섰던 롯데건설은 우빈산업이 보유하고 있던 지분을 넘겨 받으면서 49%를 확보했다. 지분양도는 롯데건설이 근질권(담보물에 대한 권리)을 행사해 채무를 대신 갚아주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우빈산업이 빠진 자리에 롯데건설이 들어오면서 현재 기준 빛고을 SPC 지분구조는 한양 30%, 롯데건설 29.5%, ㈜파크엠 21%, 허브자산운용 19.5%로 재편된 상태다. 허브자산운용이 보유한 19.5%는 롯데건설로부터 양도받은 것이다. SPC 빛고을 내에서 롯데건설의 발언권이 커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뉜 지분 콜옵션으로? 사업시행권과 시공권을 두고 롯데건설과 우빈산업, 한양과 케이앤지스틸이 궤를 같이 하면서 분쟁이 이어지고 있다. 쟁점은 우빈산업과 케이앤지스틸이 가진 지분이 최종적으로 누구의 소유냐는 것이다. 두 회사의 지분이 어느 쪽으로 움직이느냐에 따라 SPC 빛고을의 최대주주가 바뀔 수 있다. 케이앤지스틸은 우빈산업에 주금 대여금을 갚았으니 24%에 대한 주주권이 자사에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양은 SPC 빛고을 설립 과정서 우빈산업에 49억원의 출자금을 대여하면서 맺은 특별약정을 내세웠다. 해당 약정에 한양이 중앙공원 1지구 사업의 비공원시설 시공권을 전부 갖는데 우빈산업이 의결권을 행사한다는 항목이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우빈산업이 주도해 롯데건설로 시공사를 바꾼 것은 특별약정에 어긋난다는 설명이다. 광주지방법원은 케이앤지스틸과 한양이 각각 우빈산업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서 모두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케이앤지스틸 관계자는 “주주권 확인 소송서 승소 판결을 받았다. 우리가 SPC 주식을 실제로 소유한 주주라는 뜻”이라고 강조했다. 한양 관계자도 “1심 법원은 우빈산업이 한양에게 49억원의 손해배상금을 지급하고 보유 주식 25% 전량을 양도하라는 판결을 내렸다”고 말했다. 반면 롯데건설은 소송 판결 한 달 전, 우빈산업의 지분을 인수했다고 설명했다. 우빈산업이 한양에 양도할 주식이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 과정서 한양은 우빈산업의 ‘고의 부도’를 의심하고 있다. 한양은 1심 법원 판결을 근거로 자사가 지분 55%(한양 30%+우빈산업 25%)의 SPC 빛고을 최대주주라고 주장하고 있다. 다만 대법원서 한양에 ‘시공권이 없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놓으면서 시공자 지위는 잃게 됐다. 소송 이겨도 지위 잃었다 최근 SPC 빛고을 지분 갈등서 케이앤지스틸의 역할이 관심사로 떠올랐다. 케이앤지스틸은 상하수도 설비공사 업체로 2003년에 설립됐다. SPC 빛고을에 우빈산업과 함께 참여했다가 현재는 빠진 상태다. 케이앤지스틸 관계자는 “전 대표가 우빈산업과 친분이 있어서 (SPC 빛고을에)참여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현 사태서 롯데건설과 우빈산업은 이른바 ‘비한양파’로 묶여있다. 두 업체의 지분 이동도 비교적 명확히 드러나 있는 상황이다. 반면 케이앤지스틸과 한양은 두 업체 모두 우빈산업과 소송을 진행하면서도 서로 명확하게 선을 그었다. 한양 관계자는 “적(우빈산업)이 같을 뿐 특별히 관계가 있는 업체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한양의 모기업인 보성그룹 계열사에 속한 ‘앤유’라는 업체가 케이앤지스틸에 2022년 4월, 2억원을 빌려줬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앤유는 이기승 보성그룹 회장의 동생인 이점식씨가 지분 83.6%를 가지고 있는 친족회사다. 전기 조명장치 제조업체로 2007년에 설립됐다. 2022년 기준 매출은 28억2900만원, 영업이익은 3억300만원으로 확인된다. 한양과의 거래를 통해 27억7900만원의 매출을 올렸다. 앤유는 케이지앤지스틸에 2억원을 빌려주는 과정서 1주일짜리 주식근질권을 설정했다. 1주일 뒤 케이앤지스틸이 2억원을 갚지 못하면서 케이앤지스틸의 주식이 전부 앤유로 넘어온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또 1주일 뒤 케이앤지스틸의 대표이사를 비롯해 사내이사 3명 등 4명이 등기이사로 이름을 올렸다. 이 가운데 1명은 앤유 대표인 정모씨의 아내로 추정된다. 케이앤지스틸 수뇌부가 물갈이된 것이다. 당시 케이앤지스틸의 채무가 수십억원에 이를 정도로 적자가 누적된 상태였다고 해도 2억원을 갚지 못해 회사의 지배권을 넘겨준 것을 두고 석연찮은 의문이 일었다. 1주일이라는 짧은 주식 근질권 설정도 의문으로 떠올랐다. 보성그룹에 기생하는 ‘앤유’ 푼돈 주고 1주 만 회사 꿀꺽? 더 흥미로운 대목은 같은 해 5월 케이앤지스틸이 우빈산업에 주금 대여금 25억3000만원을 송금한 뒤 주주권을 주장하기 시작했다는 의혹이 동시에 불거진 점이다. 다시 말해 2억원을 갚지 못해 회사의 지분 100%를 앤유에 넘겨주고 한 달 만에 20억원이 넘는 돈을 융통해 SPC 빛고을 지분을 확보하려 했다는 의혹이다. 여기에 우빈산업을 상대로 한 주주권 확인 소송 등에 김앤장을 변호인으로 선임하면서 수임료에 대한 의혹이 추가로 제기됐다. 일각에서는 케이앤지스틸이 지분확보를 위해 사용한 자금 출처가 한양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한양 입장서 케이앤지스틸이 가지고 있는 지분을 확보하면 54%로 SPC 빛고을의 최대주주가 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대법원 판결로 시공자 지위는 상실했지만 롯데건설에 넘어가 있는 시공권을 흔들 수 있는 상황이 생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지분 갈등 구조가 롯데건설과 우빈산업, 한양과 케이앤지스틸로 정리되는 셈이다. 하지만 한양과 케이앤지스틸 모두 두 업체 간 모종의 관계 의혹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한양 관계자는 “앤유라는 계열사가 있는지도 잘 몰랐다. 앤유서 케이앤지스틸에 2억원을 빌려줬다거나 주금 대여금을 대줬다는 의혹은 전혀 사실무근이다. 우빈산업서 (1심)소송에 져서 계속 근거 없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는 듯하다. 대응 가치를 느끼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보다 광주시가 우빈산업과 결탁해 여러 가지로 유리하게 상황을 봐주고 있다고 판단해 광주시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광주시는 사업시행자이자 감독관청으로서 해야 할 일이 참 많은데 그런 일을 하지 않아 공모 제도가 다 무너졌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광주시의 행정행위에 대해 소송을 제기해 재판이 진행 중”이라고 덧붙였다. 석연찮은 자금 출처 케이앤지스틸 관계자는 한양이 주금 대여금을 대줬다는 의혹에 대해 “우빈산업서 하는 얘기”라고 일축했다. 그러면서 “새로운 주주가 들어와 투자가 이뤄지면서 주금 대여금을 갚은 것이다. 우빈산업에서는 (우리가)한양의 위장계열사 아니냐, 대표이사 선임 과정이 의심스럽다, 자금 출처가 어디냐 같은 의혹을 제기하는데 그건 주주권 확인 소송서 져서 그러는 것이다. 한양이랑 우리랑은 큰 관계가 없는데 자꾸 엮어서 흠집을 내려 한다”고 주장했다. 2022년 4월 회사가 어려운 시기에 케이앤지스틸 대표로 오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이 사업이 잘 마무리되면 우리 회사에 300억원 정도의 수익이 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시행이익을 1100억원으로 계산했을 때 우리 회사 지분이 24% 정도니까 그렇게 계산한 것이다. 수익성이 있다고 생각해서 회사를 맡게 됐고, 새로운 주주들도 그 사업성을 보고 투자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