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25주년 특집> '특별진단' 복수의 시대를 말하다 - 사회심리학자 박지선 교수

우리는 왜 사이코패스에 열광하는가?

[일요시사 취재1팀] 차철우 기자 = 범죄자의 신상이 공개되면 언론에서는 그가 사이코패스인지 아닌지에 대해 연일 초점을 맞춘다. 주목도를 높여 대중의 공분을 사기 충분하지만, 범죄자가 사이코패스라는 게 사건 해결을 위하거나 피해를 복구하는 데는 관계가 없다.

TV를 틀면 거의 모든 채널에서 범죄 관련 이야기들이 무수히 나온다. 우리는 과거 사건을 통해 다시는 되풀이되지 말아야 하는 비극임을 깨달을 수 있다. 또한 범죄 소재는 대중의 분노를 사기 충분한 아이템이다.  

좋은 
방송 소재

대중은 범죄 소재에 열광한다. 드라마, 영화, 예능을 불문하고 범죄가 주제가 되면 시청자의 관심도가 높아지는 경향이 있다.

사법 시스템 불신으로 탄생한 사적 복수라는 소재를 활용해 직접 단죄에 나서는 드라마나 영화는 시청자의 몰입도를 높인다. 실제로는 하기 힘든 공권력에 대한 도전이나 통쾌한 복수를 통해 드라마 속에서 나마 문제를 해소하는 역할을 한다. 

드라마와 영화 속에서 복수를 하는 자도 긍정적인 에너지를 가지고 있진 않다. 실제 벌어지지 않는 일이지만 대부분 범죄자와 마찬가지로 법을 어겨가며 복수에 몰두한다. 묘사 역시 자세하다. 그래야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 사건을 되짚는 예능들 역시 호성적을 유지하고 있는 중이다. 언론에서 밝혀지지 않았던 숨겨진 이야기와 범죄자의 심리를 분석해 반복되지 않아야 한다는 경고를 하며 시청자들이 피해자가 겪었던 고통에 대해 공감하는 모습도 보인다. 

사건과 관계없이 그들의 성향만 집중
해결·피해 복구 전혀 도움 되지 않아

전문가들이 패널로 등장해 피해자들의 입장에서 풀어내며 해당 사건에 대해 잊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또한 범죄자들은 하나 같이 공포의 대상이 아니라 자신을 정당화하는 인물임을 강조하기도 한다. 

언론에서도 범죄자 보도는 하루에 몇 번씩 쏟아져 나온다. 범죄자가 포토라인에 서는 날이면 수많은 플래시를 터뜨리며 질문 공세를 퍼붓는다. 

그러나 실제 사건과 관계없는 그들의 성향과 말 한 마디에 주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N번방 사건의 조주빈은 "멈출 수 없던 악마의 삶을 멈춰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말과 피해자에게 사과 한마디 없는 모습으로 대중의 분노를 샀다. 

세 모녀를 살해한 김태현 역시 경찰에게 "잠시 팔을 놔 달라"라는 말을 한 바 있다. 전문가들도 김태현의 말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언론은 김태현의 말을 연일 보도했다. 

범죄자 성향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이는 경우도 있었다. 범죄자가 사이코패스인지 아닌지에 연일 보도하는 행태가 만연하다. 


범죄자의 극악무도한 행동에 대해 분석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범죄 성향과 수법을 분석하면 미래에 있을 범죄에 대해 충분히 대비가 가능한 것은 사실이다.

플래시 따라
대중의 분노

하지만 언론에서 범죄자만 주목한다면 대중의 분노는 그 순간에만 발현되기 십상이다. 범죄자의 자세한 범행 동기에 대해서는 시간이 지나면 결국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 지는 경우가 다반사다.

<일요시사>는 tvN <알쓸범잡>과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등에 출연 중인 숙명여대 사회심리학과 박지선 교수와 함께 범죄 소재 프로그램들이 시사하는 바와 앞으로 언론이 해야 할 역할에 대해 짚어봤다.

다음은 박 교수와의 일문일답. 

-범죄 소재 프로그램에 사람들이 주목하는 이유는?

▲최근에 범죄 관련 프로그램들이 주목받는 기저에는, 범죄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주변에서도 범죄가 발생할 수 있고, 나도 범죄 피해를 겪을 수 있다는 불안이 깔려 있다고 본다. 즉, 우리 사회에서 발생하는 범죄에 대한 불안과 공포, 또 그것을 피하기 어렵다는 두려움과 사회 전반에 대한 불신이 함께 작용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범죄 소재 프로그램들의 과거 사건 조명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어떤 점을 이끌어낼 수 있는지.

▲사람들이 자극적인 범죄 소재에 주목하기 때문에 이런 프로그램들을 관심 있게 시청한다고 생각하는 시각도 물론 존재하지만, 실제로 방송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살펴보면 범죄를 흥미 위주의 소재로 소비하기보다는 피해자들의 아픔에 공감하고 약자에 대한 폭력에 함께 분노하는 모습이 주를 이룬다. 

-<알쓸범잡> 같은 프로그램에서 과거 발생한 범죄를 되짚어 본다는 바가 의미하는 것은?

▲<알쓸범잡>과 같은 프로그램에서의 스토리텔링을 통해 범죄 사건을 통해서 거울처럼 드러나는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되짚어보고, 이런 범죄 피해가 반복되지 않기 위해 우리 사회에서 어떤 부분에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 함께 목소리를 높이는 데 사람들 모두가 각각 기여하고 있다고 본다.

-사람들이 범죄자가 사이코패스인지 아닌지에 주목하는 이유는?

▲사람들이 범죄자를 우리의 평범한 이웃이 아닌, 우리와는 다른 부류의 사람, 그들로 분리시켜 생각하고 싶어 하는 데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고 본다. 일상생활에서 우리가 마주치는 평범한 이웃들 가운데 범죄자가 있다고 생각하면 사람들은 심각한 불안을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사이코패스를 구분 지으려고 하는 이유는?

▲우리의 불안을 가중시키는 범죄자들을 사이코패스, 반사회성 성격 장애자와 같은 개별 카테고리로 분류하고, 평범한 우리 대다수의 사람들과는 이질적인 사람들이라 생각하고 싶어하는 경향이 반영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언론에서는 범죄자가 사이코패스임을 강조하는데.

▲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언론에서 해당 범죄자에게 사이코패스냐 아니냐에 대한 논쟁을 반복적으로 재생산하는 양상을 보인다. 이는 사람들이 사이코패스에 주목하는 경향을 반영하는 동시에 불필요하게 언론에서 이를 부추기는 측면도 분명히 존재한다고 본다. 

-그 이유는?

▲특정 범죄자가 사이코패스인지 아닌지의 여부는 실제로 사건의 해결이나 피해 회복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수백 개의 언론 매체에서 범죄사건에 대한 기사가 매일같이 쏟아져 나오는 현실 속에서 사이코패스냐 아니냐에 대한 상당 부분 불필요한 논쟁을 언론에서 반복 재생산하는 측면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범죄 사건이 발생하면 범죄자 자체에 대해 집중하는데.

▲범죄 사건이 발생하면 언론은 범죄자라는 개인에 과도하게 주목하고, 범죄가 발생한 공간이나 장소, 환경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다루지 않는다. 이렇게 되면 범죄에 대한 분노는 오롯이 범죄자 개인으로만 집중됐다가 시간이 흐르면 연소되고, 이 같은 범죄 사건이 더 이상 발생하기 않기 위해 필요한 사회적 개선이나 환경적 변화는 간과되기 쉽다. 

-현재 출연 중인 예능에서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무엇인가.

▲<알쓸범잡>에서 다룬 부산 김길태 살인사건에서는 범죄 사건 그 자체뿐만 아니라 범죄 발생 장소의 CCTV 설치 현황 등 환경설계를 통한 범죄예방(CPTED)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보고자 했다. 특히, 지역별 경제적 수준에 따라 CCTV 설치 등 범죄 예방을 위한시설과 환경에서의 차이가 엄연히 존재하는 현실 속에서, 빈부의 격차가 곧 안전의 격차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는 점을 모두와 함께 이야기해보고 싶었다.

-<알쓸범잡>에서 말하고자 하는 범죄자들의 실체는.

▲연쇄살인범 정두영과 정남규에 대해 <알쓸범잡>에서 다룬 것은 미디어에서 연쇄살인범에 대해서 있는 그대로 범죄자라고 직시하기보다는, ‘악마’나 ‘괴물’, ‘희대의 살인마’ 등과 같이 ‘거대한 공포의 대상’으로 묘사하는 경향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들이 공격한 피해자는 대부분 약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범행에 마치 어떤 명분이 있는 것처럼 정당화하려는 연쇄살인범들의 행태에 대해 함께 이야기 나누고 싶었다.

범죄 아이템에 주목 이유는?
결국 잊혀지는 경우 다반사

정남규가 쓴 편지에 대해 시간을 들여 문장들을 하나하나 살펴본 것은 편지에 드러난 자기모순과 열등감, 범행에 대한 그들만의 정당화 기제에 대해 여과 없이 들여다보고, 이들이 그야말로 비겁한 범죄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함께 직시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최근 스토킹범죄 처벌법이 통과했는데 <알쓸범잡>에서도 다뤘다.

▲22년 만에 통과된 스토킹처벌법에서 스토킹을 명백히 범죄로 규정한 점과 함께 살인 등 더 심각한 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는 스토킹 범죄의 심각성을 짚어보고, 스토킹이 피해자 및 그 가족들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싶었기 때문이다. 

-<알쓸범잡>에서 포토라인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는데.

▲그간 반복적으로 제기돼온 이른바 ‘포토라인’에서의 범죄자들의 행태에 대해 짚어보고 싶었다. ‘포토라인’은 범죄자 본인을 위한 자리가 아니라, 피해자와 유족에 진심으로 잘못을 빌고 본인의 행동이 사회 구성원들에 끼친 충격과 사회에 미친 해악에 대해 반성하는 자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다수의 범죄자들이 이와는 동떨어진 행태를 반복적으로 보인 바가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해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해 보고 싶었다. 

-최근 미디어에서 사적 보복에 관한 내용이 빈번히 등장하는 것이 시사하는 바는?

▲사람들의 법 감정과 실제 양형 사이에 심각한 괴리가 존재하고 있음은 이미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생각된다. 최근 드라마나 영화 등에서 법치주의 국가에서 범죄로 규정하는 사적 보복행위가 묘사되는 것은 일정 부분 이 같은 양형에 대한 불만이 반영되었다고 본다. 

-앞으로 범죄를 소재로 다루는 드라마나 영화, 언론에서 주의할 점은?

▲사적 제재는 엄연한 범죄 행위이므로, 앞으로 범죄를 소재로 한 대중 매체뿐만 아니라 범죄 관련 언론 보도에 있어서도 범죄자를 영웅시하거나 사적 제재를 부추기는 내용은 지양돼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ckcjfdo@ilyosisa.co.kr>


[박지선 교수는?]

▲서울대학교 심리학 학사 및 석사
▲리버풀 대학교 수사심리학 석사
▲John Jay College of Criminal Justice CUNY 심리학 박사
▲전 경찰대학 행정학과 교수
▲현 숙명여자대학교 사회심리학과 교수


<기사 속 기사> 10년간 연쇄살인 없지만…
"현실적인 입·사법 필요"

2009년 강호순이 체포된 이후로 한국사회에는 연쇄살인범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 최근에는 살인 사건이 발생하면 대부분 그날 바로 잡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또 출소 이후 강력범죄에 연루된 범죄자들에게는 전자발찌를 채워 재범률 역시 크게 줄었다.

권일용 전 프로파일러는 CCTV 등의 보급화로 사회 안전망들이 발달해 살인을 예방, 차단이 가능한 점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다 보니 형량이 줄은 측면이 있다고 이야기했다.

그는 "범죄자의 재범 우려가 높다면 전문가들의 판단 하에 예전의 잣대를 적용하기보다는 현실화된 입법, 사법 시스템으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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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