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1년’ 김오수 검찰총장 후보자 호위 플랜

등에 칼 꽂을까 호흡기 달아줄까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 임기 5년차, 정권교체와 정권 연장의 기로에 선 시기다. 역대 정부에서는 어김없이 정권말 대형 비리 사건들이 터져 나왔다. 검찰총장은 임명권자의 등에 칼을 꽂을 수도, 호흡기를 달아줄 수도 있는 자리. 문재인정부의 마지막 검찰총장은 어떨까. 일단 청와대는 ‘우리 편’을 택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김오수 전 법무부 차관을 차기 검찰총장으로 지명했다. 지난 3일 오후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검찰총장후보추천위원회(이하 추천위)에서 추천한 최종 후보군 가운데 김 전 차관을 문 대통령에게 제청했다. 지난달 29일 추천위가 김 전 차관을 포함한 4명을 최종 후보군으로 선정한지 나흘 만이다. 

4명 후보
투표 4위

김 후보자는 추천위 표결에서 조남관 대검찰청 차장검사, 배성범 법무연수원장, 구본선 광주고검장에 이어 가장 적은 표를 얻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 후보자(사법연수원 20기)는 현직 검사가 아닌 점, 전임 윤석열(23기) 총장보다 기수가 높은 점 등이 약점으로 평가됐지만 2019년에 이어 검찰총장을 목전에 두게 됐다.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은 “김오수 후보자는 대검 과학수사부장, 서울북부지검장, 법무부 차관 등 법무, 검찰 주요 보직을 두루 거치며 풍부한 경험을 쌓았고, 법과 원칙에 따라 주요 사건을 엄정히 처리했다”며 “아울러 국민 인권보호와 검찰개혁에도 앞장섰다”고 발탁 배경을 설명했다.

김 후보자는 조직 안정을 우선시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지난 4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검찰총장으로 임명된다면 무엇보다 조직을 안정시키는 게 중요할 것 같다”며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어 “내부 구성원과 화합해 신뢰받는 검찰, 민생 중심의 검찰, 공정한 검찰이 될 수 있도록 소통하고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전남 영광 출신의 김 후보자는 광주 대동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1988년 사법시험에 합격했고, 1991년 사법연수원을 20기로 수료했다. 문재인정부에서 법무부 차관으로 임명돼 박상기·조국·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등 3명의 장관과 호흡을 맞췄다.

2년간 법무부 차관으로 재직하면서 문정부의 검찰개혁에 발을 맞춘 부분이 강점으로 꼽혔다. 

김 후보자는 친정부 성향의 인사로 꼽힌다. 이미 수차례에 걸쳐 문정부 주요 요직의 최종 후보로 이름을 올린 바 있다. 감사원 감사위원, 공정거래위원장, 금융감독위원장, 국민권익위원장 등이다.

18기→23기→20기 기수 역전
요직마다 최종 후보로 거론돼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아마 공직자 후보의 최대 노미네이션이 아닐까 생각한다”며 “그 말은 다양한 분야에서 역량을 갖추고 있다는 방증 아닌가 한다”고 설명했다. 

김 후보자 지명에 더불어민주당은 ‘검찰개혁의 적임자’, 국민의힘은 ‘정권의 호위무사’라는 엇갈린 입장을 내놨다. 김 후보자의 정치적 편향성 논란은 인사청문회에서도 쟁점이 될 전망이다. 김 후보자 역시 이 같은 논란에 대해 청문회에서 소상히 밝히겠다는 입장을 전한 상태다. 


그의 정치적 편향성이 청와대의 검찰총장 지명에 있어서는 유리하게 작용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이 정치적 편향성을 이유로 최종 후보군에 포함되지 못한 것과는 대조되는 대목이다.

앞서 청와대가 김 후보자를 감사원 감사위원으로 제청해 달라고 요청했을 당시 최재형 감사원장이 ‘친정부 인사’라는 점을 들어 거부했을 때와도 상황이 달라졌다.

김 후보자의 친정부 성향은 검찰총장으로 임명된 이후 본격적인 검증이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인사, 정권 관련 수사, 김 후보자 본인이 연루된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불법 출국금지 사건 등 현안이 산적해있다.

정치적 논란이 불거질 수 있는 사건들인 만큼 김 후보자의 역량을 가늠할 수 있는 잣대가 될 전망이다.

검찰총장 취임 직후 단행될 고위급 검찰인사가 첫 시험대가 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차기 검찰총장 1순위로 언급되다가 목전에서 낙마한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의 거취에 관심이 집중된다. 일각에서는 청와대에서 김 후보자를 검찰총장 후보로 지명한 이유에 이 지검장이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친여 성향
유리했나?

김 후보자는 4명의 최종 후보군 가운데 유일하게 이 지검장(23기)보다 사법연수원 기수가 높다. 조남관(24기) 대검찰청 차장검사, 배성범(23기) 법무연수원장, 구본선(23기) 광주고검장 등으로 김 후보자가 아닌 3명 가운데 검찰총장 지명이 이뤄졌다면 이 지검장은 검복을 벗을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청와대가 18기(문무일 전 검찰총장), 23기(윤석열 전 검찰총장)에 이어 다시 20기(김 후보자)로 기수 역전을 감행하면서 이 지검장의 유임 확률이 높아졌다.

청와대는 이 같은 기수 역순환에 대해 “기수가 높다는 게 단점으로 작용하진 않는다고 생각한다”며 “18기(문무일)에서 23기(윤석열)로 뛴 게 좀 파격적인 인선이 아닌가 싶다”고 설명했다. 

친정부 성향의 검찰총장과 서울중앙지검장이 쌍두마차로 검찰을 이끌 가능성이 높아졌다. 검찰 내부에서 정권 관련 수사의 동력이 약해질 것이라고 우려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동안 이 지검장은 정권 관련 사건을 막아왔다는 지적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이 지검장을 가리켜 ‘방탄 수호대’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이 지검장은 지난해 초부터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재직하면서 ‘청와대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옵티머스 펀드 사건’ 등 정권 관련 수사를 뭉갰다는 비판을 받았다. 또 ‘채널A 기자의 강요미수 의혹 사건’과 관련해 한동훈 법무연수원 연구위원(검사장)에 대한 수사팀의 무혐의 요청을 수차례 거부해 마찰을 빚었다.


이 지검장이 조직 내 신망을 잃은 사건이다.

정치적 중립
시험대 올라

월성원전 경제성 평가 조작 의혹 사건, 청와대 기획사정 의혹 사건 등 정권 관련 민감한 수사들이 진행되고 있다. 내년 3월 대선을 앞두고 여권에 악재로 작용할 수 있는 사안들이 김 후보자의 영향력 아래에 놓인 상황이다. 법조계가 해당 사건들에 대한 김 후보자의 의중에 관심을 표하는 이유다. 

검찰은 수사가 진행 중인 사건을 최대한 신속히 처리한다는 기조로 움직이고 있다. 김 후보자가 인사청문회를 거쳐 무난하게 취임한다고 해도 한 달 안팎의 시간이 소요되는 만큼 그때까지 수사에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또 검찰총장 임명 직후 검찰인사가 단행되면 수사팀이 와해될 가능성도 있다. 반면 수사팀이 속도를 내는 것과는 별개로 사건 마무리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대전지검에서 수사 중인 월성원전 경제성 평가 조작 의혹 사건은 백운규 전 산업통산자원부 장관과 채희봉 전 청와대 산업정책비서관 등에 대한 수사가 곧 마무리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수사팀은 백 전 장관의 구속영장 기각 이후 두 달 넘게 보강 수사를 벌이고, 최근 채 전 비서관을 소환 조사하는 등 사건 처리에 속도를 내고 있다. 

청와대 기획사정 의혹 사건은 2019년 3월 이른바 버닝썬 사태를 덮기 위해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재조사 사건을 활용했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사건화됐다. 이광철 청와대 민정비서관이 연루된 청와대 기획사정 의혹 수사는 대선을 앞두고 여권의 도덕성에 치명타를 가할 수도 있는 사안이다. 

이규원 당시 대검 과거사진상조사단 검사 등 진상조사단 8팀 관계자들이 2018년 12월부터 2019년 초까지 6차례에 걸쳐 건설업자 윤중천씨를 만날 때마다 이 비서관과 이 검사가 통화한 기록이 나왔다. 검찰은 조작 또는 왜곡된 것으로 의심받고 있는 ‘윤중천 면담보고서’ 작성 과정에서도 이 비서관이 개입한 것으로 보고 있다. 

‘친정부 성향’ 이성윤과 쌍두마차
검 인사·정권 수사에 관심 집중

이 비서관은 김 전 차관의 불법 출국금지 의혹 사건에도 연루돼있는데, 이 사건에는 김 후보자 역시 수사선상에 올라있다. 김 후보자는 2019년 3월 김 전 차관 출국금지 당시 박상기 전 법무부 장관을 대신해 관련 보고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최근 수원지검 수사팀으로부터 서면조사를 받기도 했다. 

김 후보자는 김 전 차관 불법 출금 사건을 포함한 검찰 수사와 관련해 “현재 진행 중인 사건과 관련해 일절 보고를 받지 않을 방침”이라고 밝혔다.

특히 본인이 수사선상에 올라 있는 김 전 차관 불법 출금 사건에 대해서는 향후 총장으로 취임해도 법령과 규정에 따라 회피하겠다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검찰 내부에서는 김 후보자를 보는 시각이 곱지 않다. 김 후보자는 법무부 차관 재직 시절 법무부와 검찰 간의 갈등을 제대로 중재하지 못했다는 비판에 휩싸여 있다. 문정부가 검찰개혁의 일환으로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안 등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전혀 의견을 내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이 과정에서 2019년 9월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관련 의혹이 불거져 나왔던, 이른바 ‘조국 사태’ 당시 대검에 윤석열 전 총장을 제외한 조국 수사팀을 구성하자고 한 사실도 다시 회자되고 있다. 실행으로까지 이어지진 않았지만 당시 김 후보자의 제안은 상당히 이례적으로 받아들여졌다. 

김 후보자가 언급한 조직 안정을 꾀하기 위해서는 ‘방탄 총장’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보수성향 변호사 모임인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한변)에서는 김 후보자를 두고 “중립성과는 정반대의 인물”이라며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반면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김 후보자에 힘을 실어주는 모양새다. 그는 지난 6일 “일선 검사장과 대검 부장검사, 법무부 차관을 한 만큼 수사와 행정에 두루 밝아 검찰 수장이 될만한 자격을 갖춘 분”이라고 김 후보자에 대해 평가했다.

김 후보자가 친정부 성향이라는 지적에는 말을 아꼈다. 

김학의 사건
발목 잡히나

박 장관은 김 후보자 취임 이후 단행될 검찰인사에 대해 “촘촘하고 객관적인 기준을 만들어 김 후보자가 취임하면 잘 협의하고 의견을 들어서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총장의 의견을 듣는 절차를 공식화하고, 최종적으로는 인사권자인 대통령의 뜻도 잘 받들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 장관은 장관 취임 직후 단행한 검찰인사에서 윤 전 총장과 의견청취 문제로 갈등을 빚은 바 있다. 법무부는 최근 사법연수원 27~31기를 대상으로 인사 검증 동의서를 받기 시작했다. 이들은 검사장·차장검사 승진 대상이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