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면 나온다’ 강력 사건에 빠진 TV 

“드라마도 예능도 범죄를 좋아해”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최근 TV 속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 중에서 가장 핫한 장르는 범죄다. 단순히 사건 사고를 풀이해주는 수준이 아니다. 이 같은 범죄가 왜 일어났으며, 그 이면의 사법체계는 제대로 작동했는지까지 꼬집는다. 범죄물이 진화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과거 범죄를 다룬 장르 드라마가 적지 않았다. 대부분 주인공은 형사나 검사였으며, 범죄 사건의 범인을 찾는 내용이 이야기의 핵심이었다. 얼마나 강력한 반전을 주는가가 성패를 갈랐다. 

진화한
범죄물

이 틀을 벗어난 작품이 tvN <비밀의 숲>이다. 단순히 범죄 사건을 다루는 것이 아닌, 범죄가 일어나게 된 배경과 범죄자를 다루는 사법 시스템의 오작동을 날카롭게 짚어냈다. 한국 사회의 가장 뜨거운 감자 중 하나인 사법개혁이 불씨가 된 작품이기도 하다.

이른바 ‘진화한 범죄물’의 시발점이다.

지난해 검경수사권 조정을 주제로 만든 <비밀의 숲2>까지 의미 있는 성공을 거두면서, 범죄 장르물은 급물살을 탔다. JTBC <괴물>과 <로스쿨>, tvN <마우스>와 <빈센조>, SBS <모범택시> 등 인기리에 종영했거나 방영 중인 대다수 드라마가 범죄를 다루고 있다. 


대다수 드라마가 단순한 사건 사고에 그치지 않는다. 범죄가 발생할 수 있는 이면의 문제점을 속속 짚어낸다. 

현재 가장 눈에 띄는 드라마는 <빈센조>와 <모범택시>, <로스쿨>이다. <빈센조>는 자본이 낳은 괴물을 처치하는 다크 히어로물로 평가된다. 

다소 무거울 수 있는 범죄 이야기를 블랙코미디 형태로 풀어낸 참신한 기획과 함께 송중기를 비롯한 배우들이 안정적인 연기를 펼치는 등의 장점만큼 주목받는 건 이른바 ‘사적 복수’ 코드다. 

범죄자를 법의 시스템이 아닌 개인이 직접 나서서 벌을 내린다. 마피아 변호사 빈센조(송중기 분)가 거대 경제권력과 그들과 끈끈한 연을 맺고 있는 카르텔을 모조리 박살 낸다는 내용이다. 

극 중 빈센조는 변호사이긴 하지만 법을 정의구현의 방법으로 쓰지도 않을뿐더러, 가능하다고 여기지도 않는다. 함정 수사를 펼치거나, 위법한 방법으로 증거를 수집하는 등 악당의 방식으로 악을 처단한다. 정의를 부르짖던 사람들조차 악행을 저지르는 강자들에 짓밟히다 보니 빈센조의 방식을 따르게 된다. 

<빈센조>와 비슷한 맥락의 작품이 <모범택시>다. 사적 복수를 대행해주는 택시기사의 이야기다. 공권력의 사각지대에서 범죄를 저지르는 악인을 단죄한다는 인물을 그린다.

드라마 속 모범택시를 운행하는 무지개 운수는 사적 복수를 대행해주는 조직이다. 김도기(이제훈 분)는 그 사적 복수를 실행하는 인물이고, 장성철(김의성 분) 무지개 운수 대표는 이 조직을 만들어낸 인물이다.


‘사법 시스템’ 불신서 오는 갈증
법보다 주먹이 앞선 드라마 열광

김도기가 악을 대하는 방식은 빈센조의 그것과 궤를 같이한다. 그나마 다른 점을 꼽자면 김도기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를 택한다. 

지적장애가 있는 이들을 폭행, 구금하며 강제노동을 일삼은 젓갈 공장 사람들이나, 가난한 친구를 괴롭힌 왕따 가해자들을 그들이 약자를 괴롭힌 방식으로 갚아준다. 

생선이 담긴 대야에 머리를 쑤셔 넣어 물고문하고, 흠씬 두들겨 팬 후 커다란 통에 담아 무지개 운수와 연결된 낙원 신용정보 대모(차지연)가 운용하는 사설 감옥으로 보내버린다. 또, 대마초를 피운 것을 약점 잡아 협박하고 평생 노예 계약을 맺는다.

“이건 말이 안 되잖아요”라며 우는 가해자에게 “너는 말이 되서 괴롭혔냐”며 반박한다.

4회까지 방영된 <로스쿨>은 법 집행자들의 잘못된 행태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작품이다. 

<로스쿨>은 극 중 명문대학교인 한국 대학교 법학과 서병주(안내상 분) 교수가 모의법정 중 변사체로 발견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검사 출신 법학과 교수 양종훈(김명민 분)과 사시 2차까지 합격한 로스쿨 학생 한준휘(김범 분)이 용의자로 떠오르면서 이야기는 빠르게 전개된다.

재밌는 포인트는 유력한 용의자로 떠오른 두 사람은 마치 경찰과 검사를 손바닥 위에 놓고 가지고 노는 대목이다. 법에 통달한 두 사람이 심리전을 펼치면서, 악할 뿐 아니라 무능력한 검사와 경찰을 요리한다. 이들 역시도 법망의 사각지대를 교묘하게 이용하는 등의 악한 방식으로 악을 대한다.

공권력을 조롱하는 두 사람의 행태가 공권력에 대한 분노를 지닌 대중의 갈증을 해소한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아울러 수사와 기소 과정에서 벌어지는 문제점을 노골적으로 그려낸다. 검사가 수사 과정에서 기소 전에 언론이나 타인에 미리 알려주는 피의사실 공표죄가 얼마나 무의미한지나, 경찰이 초동조치 과정에서 목적을 갖고 증거를 은닉하는 대목, 검사와 범죄자의 은밀한 거래 등 법 집행자들의 잘못된 행태를 현실적으로 보여준다.

<빈센조>와 <모범택시> <로스쿨>은 가상의 설정을 통해 더 악랄하게 악을 처단하는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세 드라마 모두 높은 화제성을 보인다. 특히 <빈센조>와 <모범택시>는 두 자릿수 시청률을 기록할 정도로 상승세에 있다. 


탄탄한 스토리텔링과 스타성 있는 배우들의 열연을 바탕으로 다소 폭력적이고 자극적인 처단 방식, 그 사이에서 숨통을 틔우는 유머 등이 세 드라마의 인기 요인으로 분석되지만, 그보다 더 밑바탕에 깔린 건 ‘사법 시스템의 불신’이다. 

지강헌이 외친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무려 30여년이 지났지만, 그 말은 아직도 한국 사회에서 현재 진행형이다. 가진 자들은 부와 권력을 이용해 범죄를 저질러 더 큰 부를 축적하는 한편, 약자들은 강자들의 부정한 힘 앞에 무릎을 꿇는다. 

법의 허점을 이용해 벌을 받지 않는 이른바 ‘법꾸라지’들과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법을 악용하는 변호사, 대중의 눈높이에 맞지 않는 판결과 짧은 형기를 마치고 금세 사회로 돌아온 전과자들이 재차 범죄를 저지르는 상황이 연이어 발생한다. 

이 같은 드라마가 높은 인기를 얻는다는 건, 대중의 눈에 비친 불편한 현실에서 쌓이는 갈증을 드라마가 풀어주고 있는 것을 방증한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최근 론칭하는 범죄 장르물이 인기를 얻는 요인은 사법체계에 대한 불신이다. 법조계의 문제점을 대중이 충분히 인식하고 있지만, 사회는 변하지 않고 있다. 법보다 주먹이 앞서는 ‘사적 복수’ 코드는 현실을 반영한 시대의 거울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범죄 장르의 본원은 교양국이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나 <궁금한 이야기 Y>, MBC <실화탐사대> 등 사건 사고를 다루는 교양 프로그램은 꾸준히 호성적을 이루고 있다.


멀리 내다보면 넷플릭스를 비롯해 영미권에서 가장 뜨거운 장르가 실화를 바탕으로 한 범죄 다큐다.

마치 트렌드에 편승하듯 국내 예능계도 범죄와 손을 잡았다. 범죄를 주제로 한 프로그램이 속속 론칭하고 있다. 그중 가장 각광 받는 프로그램이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와 tvN <알아두면 쓸데 있는 범죄 잡학사전>(이하 <알쓸범잡>)이다.

완성도↑
몰입도↑

시즌2에 접어든 <꼬꼬무>는 매회 한국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을 다룬다. 이른바 ‘장트리오’로 불리는 장항준 감독, 방송인 장성규, 장도연이 게스트를 모시고 사건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꼬꼬무>는 늦은 시간대에 방영함에도 5% 시청률을 넘겼으며, 유튜브에서는 매회 수백만 건의 조회수를 기록 중이다. 

<꼬꼬무>의 주제가 된 사건은 검색어 상위권에 랭크되며,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 급속도로 퍼진다. 시청률과 비교해 화제성이 어마어마한 프로그램이다.

시즌1에서는 사건의 줄거리를 푸는 데 집중했다면, 시즌2부터는 이야기의 소재가 확장될 뿐 아니라 내용 면에서도 매우 깊어졌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로 다각화됐다.

이 프로그램의 관전 포인트는 역사를 다루는 방식이다. 역사를 거시적으로 다룬 프로그램이 많았던 반면, <꼬꼬무>는 역사를 한 명의 인물로부터 출발해 사회문제의 이야기로 변형해간다. 이를 통해 당시의 사건이 현재의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전달한다. 

예를 들어 박흥숙 사건을 박흥숙 개인을 중심으로 풀어내다가 자연스럽게 빈민 운동의 관점에서 강남 개발의 역사와 철거민들의 역사를 돌아보는 대목이나, 한 군인의 의문의 죽음을 시작으로 한 이야기가 하나회 소속 군인들이 시스템을 무시하고 쿠데타를 일으킨 12·12 사태로 확장되는 형태 등이다. 

여대생 살인사건을 통해 한 여대생의 의문의 죽음을 들춰내는 과정을 거쳐, 끝내 사법 기득권과 의료 기득권이 경제권력에 기생하는 현실로 전개되는 대목은 <꼬꼬무>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의 완성도가 얼마나 높은지 보여준다. 

아울러 단순히 과거의 ‘야만의 시대’에서 불거졌던 사건을 풀어내는 데 멈추지 않는다. 그 사건이 당시에는 어떻게 또는 왜 발생하게 됐는지를 살펴본다. 

당시 사건의 유가족이나 담당 경찰 등 당사자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그 사건이 개인에게 미친 영향을 비롯해 사회 전반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그 사건으로 인해 사회의 시스템은 어떻게 바뀌었는지와 아울러 재발 가능성에 대한 여부까지 깊숙하게 들춰낸다. 

‘야만의 시대’를 들춰내는 예능 
“관심 갖지 않으면 또 발생할지도”

<꼬꼬무>의 유혜승 PD는 “프로그램 회의를 할 때 가장 중요하게 던지는 질문은 ‘이 아이템이 현재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다. 그 질문을 던졌을 때 분명한 답이 나오지 않는다는 건 이 아이템은 지나간 이야기일 수 있다”며 “이 이야기가 현재 사회에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에 대한 명분이 우리에게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단순히 이야기만 풀어내는 건 그 사건으로 피해를 본 사람들에게 2차 가해를 하는 성격도 지닌다. 사건 이후 한국 사회는 어떻게 변했고, 어떤 문제점을 보완해야 하는지까지 말하려고 한다. 그래야만 과거의 상처를 헤집는 행위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이하 <알쓸신잡>) 제작진이 야심 차게 준비한 프로그램은 <알쓸범잡>이다. 윤종신이 메인 MC가 돼 과거 <알쓸신잡> 유희열의 롤을 맡았다. 장항준 감독과 박지선 프로파일러, 정재민 법무부 법무심의관, 김상욱 물리학 박사가 게스트로 나와 범죄로부터 파생된 이야기를 나눈다. 

대중 지식인이 된 김상욱 박사를 제외하곤 출연진이 모두 교체됐지만, 각기 다른 전문 분야를 가진 출연진이 함께 또는 따로 여행을 다니면서 얻은 정보와 지식을 퍼즐 맞추듯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은 <알쓸신잡>과 비슷하다. 

범죄라는 특정 주제를 잡은 <알쓸범잡>은 박지선 교수와 정재민 심의관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이들은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31년 만에 무죄를 선고받은 엄궁동 사건, 한국판 홀로코스트로 불리는 형제복지원 사연, 부산의 마약 이야기, n번방 조주빈, 정남규와 유영철을 비롯한 싸이코패스 등을 소개하면서 범죄 관련 정보도 함께 제공한다. 

<꼬꼬무>와 <알쓸범잡>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범죄의 일상성이다. 강력범죄가 남의 일 같지만, 실제로는 우리 주위에서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비극이라는 것. 그래서 더더욱 범죄의 재범을 예방해야 하며, 범죄자가 다시는 나오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는다. 

범죄의
일상성

<알쓸범잡>의 양정우 PD는 “범죄와 관련된 이야기들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우리 모두의 일이다. 박지선 교수가 ‘왜 당시 아무도 누명 쓴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았는가’를 가슴 아파하는 것처럼 우리가 관심을 두지 않으면 같은 사건은 또 벌어질 수도 있다”며 “박 교수의 마음에 다 같이 공감하길 바라며, 그 과정에서 희망도 함께 찾길 바란다”고 말했다.

 

<기사 속 기사> 범죄 예능 스타는 누구? 전문성·재치 갖춘 권일용·박지선 교수
“방송인 못지않게 웃겨요”

범죄와 관련된 예능이 늘어나면서 방송에 얼굴을 내비치는 범죄 전문가들이 늘어나고 있다.

범죄 전문가들이 범죄 현장에서 느끼고 경험한 것들을 풀어내는 이야기는 강력한 자극성이 있을 뿐 아니라 다양한 정보도 얻을 수 있어 빨려 들어가게 된다.

그 가운데 권일용 교수와 박지선 교수가 범죄 예능계의 스타로 발돋움하고 있다.

<그것이 알고 싶다>에 무수히 출연하면서 범죄자들의 심리를 읽어내는 데 탁월한 재능을 보인 권 교수와 박 교수는 깊이 있는 지식은 물론 재치있는 언변으로 방송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박 교수는 <알쓸범잡>에 패널로 맹활약 중이며, 권 교수는 28일 론칭하는 <당신이 혹하는 사이>에 고정 패널로 출연한다.

한 관계자는 “두 분 모두 오랫 동안 방송활동을 하면서 카메라와 익숙하다. 깊이는 당연하고 여느 방송인 못지않은 유머 감각을 지니고 있다”고 말했다.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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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승자박’ 정청래 리더십 위기

‘자승자박’ 정청래 리더십 위기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리더십이 위기다. 1인1표제가 통과된 이후 힘을 받나 싶더니,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문제와 2차 종합특검 후보 논란 등 악재가 겹치면서 연임에 적신호가 켜졌다. 이재명 대통령도 시시각각 리더십 시험대에 올랐지만 결국 대권가도의 길을 걸었다. 정 대표도 무사히 ‘이재명의 길’을 걸을 수 있을까? 지난 10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를 ‘일시 중지’하기로 결론지었다. 늦은 시간까지 이어진 의원총회서 민주당 의원들은 대체로 지방선거 전 합당 추진을 중단하자는 의견을 낸 것으로 전해진다. 충분한 논의 없이 합당을 띄워 당을 혼란스럽게 하고, 당·청 관계까지 어색해진 만큼 ‘정청래 책임론’이 불거지면서 리더십은 타격을 입게 됐다. 더 좁아진 운신의 폭 이날 정 대표는 국회에서 비공개 최고위원회의를 연 뒤 브리핑에서 “오늘 민주당 긴급 최고위와 함께 지방선거 전에 합당 논의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대신 지방선거 후 통합을 추진하기 위한 ‘연대와 통합을 위한 추진준비위원회(이하 통합추진준비위)’ 구성을 결정하고, 혁신당에도 준비위를 구성할 것을 제안했다. 정 대표는 “당 대표로서 혁신당과 통합을 제안한 것은 오직 지방선거 승리와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한 충정이었다”며 “그러나 통합 제안이 당 안팎에서 많은 우려와 걱정을 가져왔고, 통합을 통한 상승 작용 또한 어려움에 처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러 자리에서 의원들의 말씀을 경청했고 민주당 지지층 여론조사 지표도 꼼꼼히 살피는 과정에서 더 이상 혼란을 막아야 한다는 당 안팎의 여론을 무겁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당을 혼란케 한 점에 대해서도 사과했다. 정 대표는 “그동안 통합 과정에서 있었던 모든 일들은 저의 부족함 때문”이라며 “국민 여러분과 민주당 당원들, 혁신당 당원들께 사과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당초 이달 13일 입장을 밝히겠다던 혁신당은 날짜를 앞당겨 지난 11일 긴급 최고위원회를 열고 사안에 대해 입을 열었다. 혁신당 조국 대표는 통합추진준비위 구성에 동의하며 6월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열어뒀다. 민주당을 향한 뼈있는 말도 이어졌다. 조 대표가 “선거 후에는 통합의 의미가 무엇인지 확인하고 내용과 방식에 대한 논의를 책임감 있게 이어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 것이다. 그동안 혁신당은 민주당에 흡수되는 방법을 피하고자 했던 만큼 합치는 방식에 대한 합의점을 찾는 것이 합당의 최대 과제로 남아있다. 조 대표는 “양당 간 회동이 이뤄지면 먼저 민주당이 제안한 연대가 지방선거에서의 연대인지 아니면 추상적 구호로서의 연대인지 확인해야 한다”며 “지방선거 연대가 맞다면 추진준비위에서 그 원칙과 방법을 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모든 과정에서 양당은 상호 신뢰와 존중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진행해야 한다”며 “특정 정치인 개인과 계파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면 반드시 역효과가 난다. 국민과 양당 당원께 또다시 실망을 드리고 말 것”이라고 경고했다. 제동 걸린 민주당-혁신당 합당…다음 복안은? ‘쌍방울 변호인’까지…제대로 꽂힌 ‘2연타’ 조 대표는 정 대표의 사과를 수용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조 대표는 “정 대표께서 혁신당 당원에게 표명한 사과를 받아들인다”며 “혁신당 당원은 당으로 향해지는 비방과 모욕에 큰 상처를 입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고 밝혔다. 혁신당 박병언 선임대변인도 회견 후 기자들과 만나 “(민주당이) 단순히 연대라고만 표현했는데 우당 간 레토릭적 연대를 의미하는지, 실질적으로 두 당이 지선을 치러낸다는 선거 연대인지 분명히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며 민주당의 답변을 요구했다. 앞서 민주당은 합당이 아닌 ‘지선 이후 통합’이라는 단어를 썼는데, 민주당의 답변에 따라 향후 당의 대응이 달라질 것으로 풀이된다. 합당 논의가 중지되면서 당이 숨 고르기에 들어가나 싶더니 2차 종합특검으로 추천된 전준철 변호사가 새로운 불씨가 됐다. 민주당이 추천한 전 변호사는 2023년 ‘불법 대북 송금 사건’으로 구속 기소된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 등의 변호인으로 선임된 인물이다. 1심 이후 사임했지만, 친명(친 이재명)계에서는 “이재명 죽이기” “제2의 체포동의안 사태” 등 격하게 반발했다. 친청(친 정청래)계로 분류되는 이성윤 최고위원이 전 변호사를 추천하면서 반발이 더욱 거세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전 변호사는 검사 시절 김건희 주가조작 사건, 한동훈 채널A 사건 등을 담당했다. 이 최고위원은 “(전 변호사가) 윤석열·김건희 수사를 할 때 서슬 퍼런 윤 총장하에서도 결코 소신을 굽히지 않고 강직하게 수사했다”며 “이번 2차 종합특검의 중요성에 비춰 적임자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확한 팩트 확인 없이 전 변호사가 김성태 대북 송금 조작 의혹 사건을 변호했고, 그런 변호사를 추천함으로써 마치 정치적 음모가 있는 것처럼 의혹이 확산하는 것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정·이 차이는? ‘윤정부에서 탄압을 받은 변호사’를 강조했지만, 민주당을 설득시킬 명분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자 이 최고위원은 “이번 2차 종합특검 추천 과정에서 조금 더 세밀하게 살피지 못한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앞으로는 더 세심히 살피겠다”고 사과했다. 정 대표도 거듭 고개를 숙였다. 정 대표는 해당 사태를 인사 검증 실패에 따른 ‘사고’로 규정하고 “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의 책임은 당 대표인 저에게 있다. 대단히 죄송하다”며 사과의 뜻을 밝혔다. 지도부가 진화에 나섰지만 사태는 이 최고위원을 향한 사퇴 압박으로 이어졌다. 이번 사태가 단순한 인사 사고가 아닌 정청래 체제를 향한 불만이 표면화된 결과라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무산과 후보자 논란으로 정 대표의 리더십이 2연타를 맞으며 8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연임 가능성도 불투명해졌다. 정 대표는 직접 연임 여부를 밝히지 않았지만 1인1표제 등 당원의 힘을 강화하는 작업에 공을 들이며 대권주자로 나서기 위한 입지를 다지고 있다는 해석이 우세했다. 혁신당과의 합당 이후 지방선거를 승리로 이끈다면 공은 정 대표에게 돌아간다. 그 성과를 토대로 대표 연임에 성공한 뒤 차기 대권까지 밟는 이른바 ‘이재명의 길’을 염두에 뒀다는 것이다. 여의도가 바라본 이재명의 길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친문(친 문재인)계가 민주당을 꽉 쥐던, 시절 그는 한 줌의 계파도 없이 고군분투하며 기득권에 맞섰다. 온건파 사이에서 파격적인 개혁을 앞세워 당원들의 갈증을 해소했고, 이들을 ‘개딸(개혁의 딸)’로 묶어 본격적인 팬덤 정치에 나섰다. 당 대표 시절에는 대선에 출마하려는 대표의 사퇴 시한인 ‘대선 1년 전’에 예외를 두는 내용의 당헌을 바꾸면서 극심한 내홍에 시달렸다. 그럼에도 당시 이재명 대표는 자신 있게 뜻을 밀어붙였고 전당대회서 최종 득표율 85.4%로 연임에 성공했다. 리더십 심폐소생 권력의 정점에 선 이 대통령이 걸어온 길은 비주류에서 주류로 거듭나고 싶어하는 정치인들의 ‘롤모델’로 자리 잡았다. 정 대표는 그런 거친 이재명의 길 초입에 들어섰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사이다 화법’으로 지지 세력을 키우는 시도는 이 대통령과 매우 유사하다. 이 대통령도 성공하지 못했던 1인1표제를 정 대표는 해냈다”면서도 “서둘렀던 게 문제다. 합당도 시기가 적절하지 못했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어 “이 대통령은 당 대표이던 시절부터 모든 것이 순차적으로 맞아떨어졌다. 그때는 민주당이 야당이었고 윤석열·김건희라는 공공의 적이 있으니 친명과 비명(비 이재명)이 매일같이 싸워도 봉합할 명분이 충분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과 정 대표의 차이는 측근의 유무다. 이 대통령은 성남시장일 때부터 함께해 온 이른바 ‘성남 라인’이 존재했고, 김현지 대통령비서실 제1부속실장 등 측근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존재했다”며 “친청을 자처하는 의원들이 있지만 이들을 측근이라고는 볼 수 없다. 김어준·유승민 두 사람이 정 대표에게 영향을 주는 인물로 꼽히지만, 그들조차도 자기 정치에 당 대표를 쓰는 느낌이 든다. 누가 중심이고, 누가 휘둘리는지 알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승부수를 던지지 않는 한 지방선거가 정 대표의 마지막 리더십 시험대가 될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린다. 지방선거에 사활을 걸어 ‘압승’을 끌어낸다면 무너진 리더십을 다지는 건 물론 8월 전당대회 출마 명분까지 얻을 수 있다. 당장은 정 대표가 타격을 받았지만 선거 국면을 통과하면서 과오가 희석되는 흐름에 기대를 건 셈이다. 민주당은 오는 4월 중순까지 모든 지방선거 공천을 마무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다만 경선 규칙과 공천 룰 등을 두고 계파 간 갈등이 재점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모든 권력에는 비판이 따르기 마련”이라는 한 정치권 관계자의 말처럼 반대 여론을 찬성 여론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리더십이 판가름 난다. 시계를 돌려 2024년 4월, 이 대통령 역시 당 대표이던 시절 공천 시즌을 앞두고 ‘비명횡사’ 논란에 휩싸였다. 현역 의원 의정평가 하위 20% 통보를 박은 이는 6명으로 모두 비명계였던 만큼 의원들 대다수가 ‘친명’을 내세워 마케팅을 이어갔다. 이, 비주류서 180석 야당 대표로 지선 앞둔 대표님의 큰 그림은? 공천 갈등은 당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졌고 민주당이 패배했던 2012년 총선이 되풀이될 것이란 당내 우려가 커졌다. 하루가 멀다고 나오는 사퇴 요구에 이 대표는 “툭 하면 사퇴 요구를 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런 식으로 사퇴하면 1년 내내 대표를 바꿔야 한다”며 오히려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친명과 비명 간의 갈등은 “환골탈태 과정에서 생기는 약간의 진통”으로 진단했다. 이 대표의 리더십이 총선의 최대 걸림돌로 여겨졌지만, 180석 공룡 야당을 탄생시키면서 여론을 뒤집었다. 정 대표 역시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고 (합당 논란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 지방선거 승리에 올인하겠다”며 반전의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기습 행동으로 당을 흔들지 종잡을 수 없어 잃어버린 신임을 되찾는 것이 지방선거를 앞둔 첫 번째 과제로 여겨진다. 정 대표는 ‘억울한 컷오프를 최소화하는 것’에 방점을 찍었다. 지난 11일에는 “공천 과정 전반의 불공정·불합리한 사례를 사전에 점검해 신뢰받는 공천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노력하겠다”며 공천신문고 구성 안건을 의결했다. 이날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민주당이 합당 과정에 여러 가지 내홍을 겪고 걱정을 끼쳐드렸지만 그런 와중에도 할 일은 빈틈없이 해왔다”며 “민주당은 공정한 경선을 통한 공천, 투명한 공천이 지방선거 승리의 요체임을 여러 차례 밝혀왔다. 당 대표의 이 같은 의지가 (공천신문고) 제도를 통해서 충실히 반영되고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말한다”고 강조했다. 정 대표가 ‘이재명 모델’로 노선을 잡았지만 ‘제2의 ○○○’이라는 꼬리표가 오히려 발목을 잡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대선을 앞두고 과감하게 오른쪽으로 핸들을 꺾은 이 대통령의 ‘중도 보수’ 전략까지 정 대표가 따라 할 수 있겠냐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문재인 전 대통령에 실망한 사람들이 정권교체에 손을 들어줬다. 이 대통령이 임기를 마칠 때 즈음이면 정권 유지든 교체든 국민의 마음속에 새로운 잣대가 세워질 것”이라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좌우 통합을 이뤄낼 지도자를 원할지, 지금보다 조금 더 강경한 지도자를 원할지는 현 정부에 달려 있다. 그 시대에 맞는, 또 국민이 원하는 사람이 차기 대권주자로 분류될 것”이라고 봤다. 신선한 뉴페이스? 이어 “이 대통령은 후임자를 키우지 않는다고 한다. 미래의 민주당은 당 대표도, 차기 대권주자도 ‘포스트 이재명’이 아닌 새로운 모델이 필요하다”며 “이 대통령의 행보가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라 이재명 그림자에만 메어서는 민주당이 앞으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극단으로 치닫는 여야 갈등 지난 12일 이재명 대통령이 설을 앞두고 민생 회복과 국정 안정을 위한 초당적 협력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여야 대표를 오찬에 초대했지만, 약속 시간을 한 시간 앞두고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불참을 통보했다. 장 대표는 “(이번 회동이) 부부 싸움하고 둘이 화해하겠다고 옆집 아저씨 불러놓는 꼴이라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며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 이어 “오늘 회동에 가면 여야 합치를 위해 무슨 반찬을 내놨고, 쌀에 무슨 잡곡을 섞었고 그런 것들로 오늘 뉴스를 다 덮으려 할 것”이라며 “대한민국 사법시스템 무너지는 소리를 덮기 위해 여야 대표와 대통령이 악수하는 사진으로 모든 걸 다 덮으려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날 밤 민주당이 추진하는 이른바 ‘재판소원법’과 ‘대법관증원법’이 국민의힘 반발 속에 여당의 주도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한 것에 대한 불만을 표현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정청래 대표는 SNS를 통해 “국민과 대통령에 대한 예의는 눈곱만큼도 없는 국민의힘의 작태에 경악한다”며 “본인이 요청할 때는 언제고 약속 시간 직전에 이 무슨 결례인가. 국민의힘, 정말 ‘노답(답이 없음)’”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청와대도 “이번 회동은 국정 현안에 대한 소통과 협치를 위한 자리였다. 그런 취지를 살릴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는 데 깊은 아쉬움을 전했다”고 밝혔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