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 죽방멸치쌈밥·멸치회

봄봄봄봄, 멸치 왔어요~!

여기저기서 터지는 꽃이 봄소식을 전한다. 봄의 전령은 또 있다. 추위를 이겨내고 새 생명의 기운을 담뿍 담아낸 음식이다. 겨우내 잃은 입맛을 돋우고 몸에 활력을 줄 제철 음식이 전국 각지에서 유혹한다. 모든 유혹을 떨치고 따뜻한 남쪽으로 달려간다. 은빛 반짝거리는 죽방멸치가 봄을 머금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지 않은가.

한려수도의 비경을 품은 남해는 태생적으로 섬이지만, 후천적으로 뭍과 연결됐다. 노량대교와 남해대교가 남해와 하동을, 창선·삼천포대교가 남해와 사천을 잇는다. 죽방멸치로 유명한 남해 지족해협 죽방렴(명승 71호)으로 가기 위해선 창선·삼천포대교를 이용하는 게 빠르다.

창선·삼천포대교는 삼천포대교, 초양대교, 늑도대교, 창선대교, 단항교가 육지와 섬, 섬과 섬을 연결하는 명물로, 2006년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 대상에 선정됐다.

수려한 풍광

바다와 섬이 빚어내는 수려한 풍광을 눈에 담고 다리를 건너면 남해 창선도다. 남해는 크게 본섬인 남해도와 창선도로 나뉘는데, 두 섬은 다시 창선교로 연결된다. 창선도는 북쪽이 사천과 창선대교로, 남쪽이 남해도와 창선교로 이어진다. 창선교 아래, 즉 창선도의 창선면 지족리와 남해도의 삼동면 지족리 사이로 지족해협이 지난다.

지족해협은 좁은 물목이라 전국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물살이 거세다. 게다가 조수 간만의 차가 크고 수심이 얕아, 죽방렴을 설치하기 좋은 조건을 두루 갖췄다. 죽방렴은 문자 그대로 대나무 발을 이용해 물고기를 잡는 일이며, 조선 시대 문헌에도 기록이 있는 전통 어로 방식이다.


지족해협 죽방렴은 물길을 따라 나무 말뚝을 ‘V 자형’으로 박고, 그 꼭짓점에 원형 통발을 설치한 형태다. 빠른 물살을 따라 이동하던 물고기가 죽방렴의 넓은 입구로 들어가면 통발에 갇힌다. 통발은 촘촘히 엮은 대나무 발로 둘러싸여, 물은 빠져나가도 물고기는 빠져나갈 수 없다.

어민들은 썰물 때 통발에 모인 물고기를 뜰채로 건진다.

단순한 조업 방식이지만 생태 환경과 물고기의 습성, 물때 등 자연의 섭리를 복합적으로 고려한 선조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이런 가치를 인정받아 죽방렴을 포함한 ‘전통 어로 방식-어살’이 2019년 국가무형문화재 138-1호로 지정됐다. 죽방렴홍보관에서 죽방렴의 역사와 원리를 자세히 볼 수 있다.

홍보관에서 해안로를 따라 약 1km 거리에 죽방렴을 가까이 보는 죽방렴관람대도 있다. 단 죽방렴홍보관은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한 사회적 거리 두기 단계에 따라, 죽방렴관람대는 기상 상황에 따라 개방 여부가 달라지므로 방문 전에 확인해야 한다.

죽방렴에서 잡히는 다양한 어종 가운데 대표 주자는 단연 멸치다. 물살이 빠른 지족해협을 헤엄치던 멸치는 탄성이 좋아 살이 탱글탱글하고, 죽방렴에서 소량씩 건져 올린 덕에 비늘이 훼손되지 않을 정도로 싱싱하다. 죽방멸치가 상대적으로 비싼 이유다.

특히 봄멸(봄에 잡히는 멸치)은 오동통 살이 오르고 기름기가 많아 씹는 맛이 좋고 고소하며 뼈는 연하다. 회, 구이, 찌개 등 어떤 요리로 즐겨도 맛있다.

살이 올라 씹는 맛 좋고 고소해
회·찌개 등 어떤 요리든 맛있어


봄에 많이 잡히는 대멸은 어른 손가락만큼 길고 굵직해 제법 생선다운 모습이다. 싱싱한 대멸은 회로 즐기기에 부족함이 없다. 마른 멸치가 워낙 익숙해서 멸치회라는 메뉴가 낯설게 느껴질지 모른다. 하지만 영롱한 은빛을 빛내는 죽방멸치를 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멸치회는 주로 매콤하고 새콤한 양념에 무쳐 먹는다. 대가리와 내장을 없앤 멸치를 각종 채소와 함께 무치는데, 막걸리 식초로 비린내를 잡는다. 굵은소금 톡톡 뿌려서 구워도 그 맛이 일품이다.

멸치쌈밥은 멸치찌개 속 통통한 멸치를 상추에 싸 먹는다. 멸치찌개는 싱싱한 죽방멸치에 시래기, 고춧가루, 다진 마늘 등을 넣고 자작하게 끓인다. 음식점마다 다르지만, 남해의 또 다른 특산물 남해마늘로 담근 장아찌를 함께 내는 곳도 있다.

상추에 멸치와 시래기, 마늘장아찌를 싸 먹으면 더욱 맛깔스럽다. 삼동면 죽방렴 일대에 오래된 멸치쌈밥 음식점과 죽방멸치 판매장이 여러 곳 있다. 40년 전통을 자랑하는 우리식당이 유명하다.

지족해협 죽방렴에서 동부대로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며 남해의 다양한 매력을 만끽하자. 지난해 말 개장한 설리스카이워크가 새로운 명소로 인기를 끈다. 설리스카이워크는 캔틸레버(한쪽 끝은 고정되고 다른 끝은 받쳐지지 않은 상태로 있는 보) 방식으로 제작돼 이색적이다.

높이 38m 스카이워크 끝에서 타는 대형 그네가 포인트다. 세계적인 명물인 인도네시아 발리의 그네를 모티프로 제작해 어느새 ‘SNS 성지’로 떠올랐다. 스카이워크 끝에서 세차게 출발한 그네는 바다 위를 날아오른다. 기분이 짜릿하고 사진은 예술이다.

최근 드라마 〈여신강림〉에 등장해 더 유명해졌다.

물미해안전망대라고도 불리는 남해보물섬전망대는 원통형 구조로 이뤄져 파노라마 바다 전망을 자랑한다. 이곳의 백미는 바닥이 유리로 된 길을 와이어에 의지해 걷는 스카이워크 체험이다. 어떤 사람들은 걷는 것만으로 다리가 후들거리겠지만, 어떤 이들은 와이어를 잡고 공중에서 점프하거나 스카이워크 끝에 발을 대고 바다를 향해 몸을 뻗기도 한다.

이런 체험은 안전 요원의 도움을 받아 진행한다.

독일마을

이국적인 분위기로 눈길을 사로잡는 독일마을도 놓치기 아쉽다. 독일마을은 1960~1970년대 독일로 파견돼 우리나라 경제 발전에 이바지한 간호사와 광부들이 고국에 돌아와 정착할 수 있도록 조성된 마을이다. 물건항이 내다보이는 언덕배기에 오밀조밀 들어선 전통 독일식 건축물이 그림 같은 풍경을 완성한다.

파독 간호사와 광부들의 역사를 보여주는 남해파독전시관, 독일 맥주와 독일식 소시지를 판매하는 가게, 독일마을 전경이 내다보이는 전망대 등 즐길 거리가 풍성하다.

 


<여행 정보>

당일 여행 
코스지족해협 죽방렴(죽방멸치쌈밥과 멸치회)→독일마을→남해보물섬전망대→설리스카이워크

1박2일 여행 코스
첫째 날: 지족해협 죽방렴(죽방멸치쌈밥과 멸치회)→독일마을→물건리 방조어부림→남해보물섬전망대→설리스카이워크 
둘째 날: 상주은모래비치→보리암→다랭이마을→섬이정원

관련 웹 사이트 주소 
- 남해문화관광 http://www.namhae.go.kr/tour/main.web
- 남해보물섬전망대 http://www.instagram.com/namhae_cliffhill 
- 독일마을 http://남해독일마을.com 

문의 전화
- 남해군청 문화관광과 055)860-8601
- 남해관광안내 1588-3415
- 설리스카이워크 070-4231-1117
- 독일마을관광안내소 055)867-8897 

대중교통
[버스] 서울-남해, 서울남부터미널에서 하루 4회(7:10~19:30) 운행, 4시간30분~5시간 소요. 남해공용터미널 정류장에서 뚜벅이버스(9:00, 14:00) 이용, 지족 죽방렴 정류장 하차. 
*문의: 서울남부터미널 1688-0540 시외버스통합예매시스템 남해공용터미널 1668-3506 뚜벅이버스


자가운전
통영대전고속도로→진주 JC→남해고속도로→사천 IC→사천·사천공항 방면 우회전→사천대로→창선·삼천포대교→동부대로→창선교→지족해협 죽방렴

숙박 정보
- 남해비치호텔(한국관광 품질인증업소): 남면 남서대로, 055)862-8880 
- 남해편백자연휴양림: 삼동면 금암로, 055)867-7881
- 쉴가펜션: 삼동면 동부대로1122번길, 010-9411-6363
- 엘림마리나앤리조트: 삼동면 동부대로1122번길, 055)867-6767

식당 정보
- 우리식당(멸치쌈밥): 삼동면 동부대로1876번길, 055)867-0074 
- 단골식당(멸치쌈밥): 삼동면 동부대로1876번길, 055) 867-4673 
- 동천식당(멸치쌈밥세트): 삼동면 동부대로, 055) 867-3560 

주변 볼거리
원예예술촌, 송정솔바람해변, 두모마을, 양모리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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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