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김설아 기자] 어떤 학부모는 ‘로망’이라고 했다. 또 다른 이는 재벌가나 유력 정치인의 손자손녀, 유명 연예인의 이름을 나열했다. 소위 ‘부잣집 아이들’만 모인다는 사립초등학교를 두고 하는 소리다. 남들보다 좋은 환경에서 공부하며 일찌감치 부자인맥을 쌓는다는 이곳. 이른바 ‘끼리끼리 법칙’을 몸소 실천하고 있는 사립초등학교의 화려한 계보를 들여다봤다.
무상으로 다니는 공립초등학교와 달리, 비싼 학비를 부담하고 다니는 사립초등학교. 취학 연령의 자녀를 둔 부모라면 한번쯤 “우리 아이도 사립초등학교에 보내볼까?”라는 생각을 한다.
어느 학교는 수학과 과학을 영어로 수업한다더라, 어느 학교는 전교생이 체육시간에 골프를 배운다더라 하는 식의 소문이라도 들려오면 ‘우리 아이 첫 학교인데’ 하는 생각에 솔깃해진다. 거기에 유명인들의 자녀가 다니고 있다고 하면 믿음은 더욱 확고해진다.
그러나 ‘1%를 위한’ 초등교육기관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은 사립초등학교는 생각보다 만만치 않다. 재력이 있는 집안 자녀들만 문턱을 넘을 수 있다는 소리는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이재용 아들 다니는
‘영훈초등학교’
서울 최고의 명문사립으로 꼽히는 영훈초등학교는 영어 교육에 관심 있는 엄마들에겐 ‘꿈의 학교’라 불린다. 매년 사립초등학교 경쟁률에서 1, 2위를 다툰다. 특히 삼성전자 이재용 사장의 아들이 다니는 학교로 더 유명하다.
출신들도 화려하다. 이회창 전 자유선진당(현 선진통일당) 대표의 손녀와 두산 그룹 손자들, 그리고 유정현 전 한나라당(현새누리당) 의원의 딸과 차인표·신애라 부부의 아들 등 정·재계와 연예계 유력 인사의 자녀들이 이 학교를 거쳐 갔다. 이밖에도 유명 방송인, 중견기업인들의 자녀가 상당수 이 학교에 재학 중이다.
강북에 위치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16대의 셔틀버스 중 8대가 강남으로 다닐 만큼 부유층 자제들이 포진해 있다.
학교 보안도 철저하다. 빼곡한 CCTV는 기본이고 출입카드를 받지 못하면 학교에 들어가는 것이 불가능하다. 하교시간에는 고급 승용차들이 인근을 가득 메우는 진풍경을 연출하기도 하고, 운동장 한켠에 있는 학부모 대기실엔 아이를 마중 나온 학부모들로 가득차기도 한다.
초등학교지만 교육비는 만만치 않다. 영훈초등학교의 수업료는 2011학년도 1/4분기 기준 170여 만원이다. 입학금 100만 원은 별도납부다.
연간 4회의 수업료에 특기·적성비, 스쿨버스비, 급식비, 교재비 등이 추가되면 1년 교육비는 거의 1000만원을 육박한다. 웬만한 대학교 1년 등록금과 맞먹는 액수다.
그럼에도 학부모들이 영훈을 고집하는 이유는 탁월한 영어교육 수준 때문이다. 1998년부터 이미 ‘영어이멀전교육(한국어와 영어로 이중 언어 교육)’을 실시할 정도로 영어교육에 대한 역사가 깊다.
한국인 담임, 원어민 부담임, 한국인 부담임을 두고 한국의 교과 과정을 영어로 지도하는 이중 언어 교육을 전 학년을 대상으로 실시하고 있어 영어를 생활화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교사 중 대부분이 석사 이상의 학위를 소지한 고급인력이다.
‘기막힌’최상류층 1% 위한 귀족학교 훔쳐보니
6년간 학비 약 6000만원, 이중언어 교육 특화
학부모들은 이 외에도 아이들에게 전인교육을 시키고, 독서왕 선발만 할 뿐 성적 위주로 따로 등수를 매기지 않는 점, 1인 1예능 교육을 시키는 점 등을 영훈의 장점으로 꼽는다.
방과 후 예능 교육 등으로 저학년이라고 해도 일찍 끝나지 않기 때문에 맞벌이 부부들이 믿고 자녀를 맡기기에도 좋은 환경이라고 한다. 또 아이들이 교실이나 복도에서 뛰지 않도록 가르치고 천천히 줄을 서서 기다리는 ‘룰’을 몸에 익히게 하는 것도 좋은 점으로 꼽는다.
엄친아 학교로 유명
숭의·계성 초등학교
서울 중구 예장동의 사립학교인 숭의초등학교는 일명 엄친아 학교로 유명하다. 신세계 정용진 부회장의 아들, 영화배우 차승원의 딸, 이찬진 드림위즈 대표와 배우 김희애의 아들, 고 최진실과 조성민의 딸과 아들이 다니거나 다녔던 것으로 알려졌다. 빅뱅의 멤버 권지용도 이 학교 출신이다.
이처럼 많은 유명인들이 2세의 학교로 숭의를 선호하는 이유 중 하나는 기독교 학교로 신앙을 통해 인성 교육을 제대로 시킨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원어민 교사와 함께 수준별로 영어 수업을 실시하고 방학 중에는 어학연수 프로그램을 통해 외국어 능력을 향상시키며, 6학년에는 중국어 수업을 실시해 따로 외국어 교육을 시키지 않아도 된다는 것도 장점이다.
또 1인 1악기 예능 교육 실시, 수영과 스키 등 다양한 체육 활동, 거기다 인성 함양을 위한 서예 교육까지 이뤄져 많은 학부모들에게 각광받고 있다.
강남권 유일의 사립 초등학교로 유명한 계성초등학교는 사립초등학교 경쟁률에서 매년 영훈초와 1,2위를 다투는 곳이다. 이곳에는 윤세영 SBS 명예회장의 손자와 손녀, 신승남 전 검찰총장 손녀, 배우 박상원의 아들과 딸 등이 다녔거나 다니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가톨릭 계열의 계성초교 역시 특히 인성 교육에 신경을 많이 쓰는 곳으로 유명하다. 체험학습을 통한 산 교육을 강조해 학생들은 경기도에 있는 학교 수련장에서 연간 3회 이상의 다양한 체험 활동과 체력 단련 프로그램을 받는다. 특히 기초 학력이 떨어지는 부진아를 책임 지도하는 시스템이 도입돼 학습 결손을 방지하고 있으며, 1인 1악기 갖기 운동을 하고 있다.
학부모의 참여도를 높이는 프로그램도 많다. 매년 2회 이상 공개 수업을 하고 4회의 시범 수업을 개최하고 있어 이곳에 아이를 보내는 학부모들은 열혈 학부모가 되지 않을 수 없다.
두 학교 모두 입학금이나 수업료 등은 동일한 수준이다. 연간 학비를 추산해 보자면 약 800만∼1200만원 정도다.
톱스타가 선택한
세종·경기 초등학교
서울 광진구 군자동에 위치한 세종초등학교는 유명 연예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학교로 떠오르고 있다. 올해 초 차인표와 신애라 딸, 윤도현 딸, 이재룡과 유호정 부부의 딸 등 연예인 자녀들이 대거입학하면서 시상식 레드카펫을 방불케 하는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연예인 학부모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탄 세종초등학교는 영어, 수학중심의 교육 뿐 아니라 다양한 예체능 교육으로 사랑받고 있다. 승마장, 골프장, 리듬체조 연습실 등 최고급 체육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과학영재학급이나 오케스트라 등을 보유하고 있다.
한 연예계 관계자는 “아이 교육에 관심 많은 건 일반 학부모나 연예인 학부모나 별반 다르지 않다. 오히려 연예인들은 일과 병행해야 하기 때문에 세심하게 아이를 돌볼 수 없어 초등학교 선택에 많은 신중을 기하는 편”이라며 “학부모 역할에 있어서만큼 연예인이라는 신분은 어떤 특별함도 없지만, 돈과는 상관없이 좀 더 나은 교육환경과 시설을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승마장, 골프장, 수영장 등 최고급 체육시설 갖춰
초등학생부터 계층 울타리…상대적 박탈감에 한숨
역대 대통령의 자녀들이 많이 다닌 곳으로 유명한 경기초등학교 역시 연예인, 전문직 학부모들 사이에서 선호도가 높은 곳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아들 이시형씨와 전두환 전 대통령의 차남 전재만씨, 노태우 전 대통령의 딸이자 SK그룹 최태원 회장의 부인인 노소영씨 등이 이곳 출신이다. 또 삼성가(家) 자제들이 많이 거쳐 간 것으로도 유명한데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과 이서현 제일모직 부사장, 정유경 신세계그룹 부사장 모두 이 학교를 거쳤다. 이 밖에 최불암, 김창숙, 김혜자, 이홍렬, 조재현, 이혜숙 등 많은 연예인들의 자녀도 이곳 출신이다.
경기초교는 학생들을 15명 이하의 소그룹으로 나누어 공부하는 ‘협력수업’을 실시하는 것이 가장 큰 특징으로 알려져 있다. 같은 학년의 선생님들끼리, 혹은 예체능 교과 선생님들끼리 그룹별로 아이들을 전문적으로 지도하기 때문에 수업의 질이 높은 것도 장점이다.
또 영어 교육과 함께 1학년부터 전 학년이 생활 중국어 수업을 하는 등 일주일에 두 시간씩 중국어 수업도 받는다. 입학할 때부터 현악기 교육을 시작해 학년 진학에 따라 더욱 많은 악기와 다양한 음악교육을 배울 수 있는 ‘1인 1악기 음악 특활’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도
이곳의 장점으로 꼽힌다. 다양한 활동만큼이나 공부를 많이 시키는 것으로도 유명해 학부모가 관리해야 할 몫이 크다고 알려져 있다.
서민학부모에게는
‘그림의 떡’
그렇다면 경제적 부담에도 불구하고 많은 학부모들이 사립초교를 선호하고 고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재계 유명인들이 선택한 곳이라서? 남들보다 좋은 교육환경에서 받는 귀족교육이라서? 혹자는 오히려 사립초교가 촌지비용이나 사교육 등으로 드는 비용을 절감 할 수 있어 합리적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무리를 해서 자녀를 사립초교에 보냈던 한 학부모가 털어놓은 현실은 많이 달랐다.
직장인 김모(38·여)씨는 “입학 전부터 재벌가 자녀도 많고 연예인 자녀도 많고, 엄마들 치맛바람도 대단하다고해서 겁을 먹었었는데 그것보다 힘든 것은 그 학교의 수업을 따라가기 위해 또 엄청난 사교육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며 “예전에는 사립초교가 정규공부를 너무 안 시켜서 사교육을 했다고 하는데, 최근엔 사교육을 안 하면 학교 수업을 따라갈 수 없으니 사교육을 시키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김씨는 “어릴 때부터 특권층들의 인맥을 쌓고, 정보를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이 사립초의 장점이지만 아빠들 면면이 정말 장난이 아니라 내 아이가 그 속에서 받는 스트레스도 많았다”며 “‘뱁새가 황새 쫓아가다 가랑이 찢어진다’는 속담을 절실히 깨달았다. 교육환경도 중요하지만 아이와 엄마가 모두 행복할 수 있는 쪽을 선택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 역시 사립초등학교로 쏠리는 학부모들의 관심에 우려를 표명했다. 참교육학부모회 관계자는 “사회 권력층들이 자녀들을 사립초등학교에 보내 인맥을 형성하고 사회의 양극화나 계층의 대물림을 만들어간다”며 “다른 것도 아닌 초등학교 교육 과정에서부터 계층간 울타리가 쳐지는 것을 보면서 많은 학부모들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현상을 단순히 학부모들의 일그러진 교육열이라고 치부할 순 없다. 그러나 자녀에 대한 부모들의 뜨거운 열정만큼 박수를 받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부모의 지시와 각본에 따라 교육의 수레바퀴에 끼어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아이들. “남들보다 빠르다”며 미소를 띨 때, 어쩌면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