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망신’ 욕먹는 라면재벌 부부, 왜?

회삿돈 빼돌리고 ‘옥중 돈잔치’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50억원 규모의 횡령을 저질러 대법원에서 유죄 확정 판결을 받은 삼양식품의 전인장 전 회장, 김정수 총괄사장 부부가 지난해 총 185억원의 보수를 수령한 것으로 나타났다. 김정수 사장의 복귀 행보를 두고 거센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더욱 싸늘한 시선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전인장 삼양식품 전 회장이 지난해 유통기업 가운데 보수를 가장 많이 받은 ‘연봉킹’에 등극했다. 전인장 전 회장은 회삿돈 50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아 복역 중이다. 일각에선 횡령 유죄 판정을 받은 전 전 회장의 연봉킹 등극 소식에 비난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퇴직금 수백억
연봉킹 등극

22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삼양식품은 지난해 전인장 삼양식품 전 회장에게 141억7500만원을 급여로 지급했다. 퇴직금 118억1700만원과 근로소득 23억5800만원이다.

전 전 회장의 아내인 김정수 삼양식품 총괄사장은 44억700만원을 보수로 받았다. 퇴직소득이 40억6600만원, 근로소득이 3억4100만원가량이다. 이들 부부가 지난해 받은 보수만 185억5200만원가량에 이른다.

지난해 1월 이들 부부는 계열사로부터 납품받은 자재 일부를 페이퍼컴퍼니로부터 납품받은 것처럼 해 49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전 전 회장은 징역 3년형을 받아 퇴사 후 복역 중이다. 2019년 1월 1심 판결 이후 줄곧 구속 수감 상태로 경영 공백을 빚기도 했다.


김 총괄사장은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은 뒤 취업이 제한돼 지난해 3월 퇴사했다가 법무부 허가를 받고 지난해 10월 총괄사장으로 재취업했다. 삼양식품이 법무부에 “경영 성과가 있다”며 취업 승인을 요청했기 때문이다.

오너 일가는 보수 외 배당으로도 주머니를 채우게 됐다. 삼양식품의 주당 배당금 800원과 소유 주식 수를 감안해 계산하면 김정수 총괄사장은 2억6000만원, 전인장 전 회장은 1억8900만원의 배당금을 각각 받게 된다. 오너가 3세 전병우 경영관리부문장은 3400만원의 배당금을 수령한다.

50억 횡령한 부부 퇴직금만 ‘180억’
“규정 따라 지급했다”…싸늘한 시선

오너 일가는 삼양식품 최대주주인 삼양내츄럴스를 통해서도 배당금을 받는다. 삼양내츄럴스엔 20억400만원의 배당금이 지급되는데 이 회사 지분의 42.2%가 김 총괄사장 소유다. 21.0%는 전 전 회장, 26.9%는 전병우 부문장이 100% 소유한 에스와이캠퍼스 소유다. 나머지 9.9%는 삼양내츄럴스가 보유한 자기주식이다.

김 총괄사장은 삼양식품 사내이사에 다시 오를 예정이다. 횡령 사건으로 물러난지 1년 만이다. 김 총괄사장은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을 맡지 않고 이사회 산하에 ESG 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투명경영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경영 총괄은 그대로 수행한다.
 

▲ 김정수 삼양그룹 총괄사장 ⓒ삼양식품

이에 일각에선 김 총괄사장이 맡는 ESG위원회 위원장이 이미지상 부합하지 않는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ESG는 기업이 단순히 수익을 창출 것을 넘어 환경적, 사회적, 윤리적 가치도 잘 지키는지 여부를 보는 평가지표를 뜻한다. 김 총괄사장이 7개월 만에 경영복귀를 하는 것도 시기상조인데 횡령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이 ESG위원장을 맡는 것은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측은 투명한 경영을 위해 사외이사를 증원하고 있으며 김 총괄사장은 책임경영이라는 측면에서 복귀한 것이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 같은 사 측의 주장에도 소액주주들의 불만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벌써 경영참여?
소액주주 반발

한 업계 관계자는 “횡령으로 회사에 피해를 입힌 사람이 ESG경영을 강화하겠다면서 다시 등기이사로 재직하려는 것은 모순된 행동”이라며 “위법 행위를 저지른 경영진들이 다시 이사로 선임되고 고액의 보수를 받으면 범법 행위를 진정으로 반성할 수 있을까 싶다”고 의구심을 표했다.

소액주주들은 경영진의 범죄행위 재발 방지책을 요구하며 김 총괄사장 복귀에 반기를 들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삼양식품 소액주주들은 법무법인 창천을 법률대리인으로 선임하고, 철저한 준법 감시체계 구축, 경영진의 불법행위 재발방지, 배당액 증가 등 주주가치 제고, 기타 소액주주의 권리 보호 요청 등을 주장했다.

법무법인 창천 정영훈 변호사는 “소수의 지분을 가진 창업주 일가가 오너라는 미명하에 회사를 마음대로 쥐락펴락하던 시대는 끝났다”며 “이제는 주주 전체의 이익을 추구하는 경영을 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집단소송 조짐도 보이고 있다. 소액주주 A씨는 법원에 주주명부 열람 등사 가처분을 신청했고, 지난 11일 서울북부지방법원 제1민사부는 A씨가 제기한 가처분 신청을 허용했다. 
 

▲ ▲▲ 전인장 삼양식품 회장 ⓒ삼양식품

주주명부 열람 등사는 주주가 상법 제396조 제2항에 근거해 회사측에 주주명부의 열람과 등사를 요청하는 행위로, 주주는 이를 통해 회사 지분구조를 정확하게 파악 가능하다. A씨는 확보한 주주명부를 토대로 소액 주주들의 힘을 모으고, 회계장부열람등사 청구 및 대표소송 제기 등을 통해 회사 경영 정상화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승계 방향은?
“아직은 이르다”

A씨는 “회삿돈을 횡령해 유죄 판결을 받은 경영인이 곧바로 사업에 복귀 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라며 “김 총괄사장이 복귀하더라도 경영진의 범죄행위 재발을 방지할 수 있는 객관적 감독기구를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주총 시즌을 맞아 소액주주들의 영향력은 전방위적으로 커질 전망이다. 지난해 말 상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며 도입된 감사위원 분리 선출제도 영향으로 대주주 의결권이 대폭 제한됐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삼양식품 관계자는 “오너 일가가 횡령 금액을 다 배상했고, 김 총괄사장은 삼양식품의 매출 증가를 이끈 불닭볶음면 기획·수출 등에 공헌이 있다”며 “오너의 책임경영이 필요해 김 총괄사장을 사내이사 후보로 올렸다”고 말했다.


현재 삼양식품은 지난달 8일 정태운 대표와 진종기 대표를 선임해 각자대표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이 같은 상황에서 삼양식품의 3세 승계에도 관심이 쏠린다. 최근 전 전 회장의 장남인 전병우 부문장이 회사 지분을 늘리고 있어 3세 승계가 본격화되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올해로 27세인 전병우 부문장은 지난해 삼양식품 부장으로 입사했다. 지난 3월에는 삼양식품 최대주주인 삼양내츄럴스 등기임원에 이름을 올리면서 지분 매집도 이어가는 점도 이 같은 분석을 뒷받침하고 있다.

2019년 말 기준 전병우 부문장은 삼양식품 0.56%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6월9일 기준 지분율이 0.59%로 0.03%포인트 늘어났다. 전병우 부문장은 올 3월 이틀에 걸쳐 삼양식품 2350주를 매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6월9일 종가 기준(12만원) 전병우 부문장이 추가 매수한 주식가치는 약 2억8200만원 수준이다.

때이른 경영 복귀에 소액주주들 불만
공고한 오너 지배력…경영승계는 아직

다만 지주사 격인 삼양내츄럴스의 지분 증여는 현재까지 전무한 가운데 아직 승계를 논하기 이르다는 해석도 일고 있다. 오너리스크가 발생했어도 이들 부부가 행사하는 지배력은 여전히 크다.

향방은 60%가 넘는 이들 부부의 지분이 장남 전병우 부문장에게 어떻게 증여될지에 따라 달라질 것으로 분석된다. 경영승계 및 지분증여에 따라 발생하는 증여세 문제도 거론된다. 


김 총괄사장과 전 전 회장이 보유한 삼양내츄럴스 주식가치는 자본총계를 기준으로 약 893억원으로 집계됐다. 만약 이들 부부가 60%가 넘는 삼양내츄럴스 지분을 전병우 부문장에게 증여할 경우 적잖은 증여세를 내야 한다.

상속세 및 증여세법(상증법)상 증여재산이 상장주식이면 증여일 이전·이후 각각 2개월(총 4개월)의 최종시세 평균으로 매겨진다. 여기에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 주식이면 증여재산이 20% 할증평가된다. 여기서 산출된 과세표준이 30억원을 넘으면 50%의 세율이 붙는다.

증여지분 가치는 총 893억원이며 과세표준은 주식가치의 60%인 536억원, 여기에 세율 50%를 적용하면 산출세액은 대략 268억원으로 추산된다. 누진공제 및 신고세액공제(산출세액의 3%)를 받을 수 있지만 크지 않은 금액이다.

오너 부부가 장남에게 지분을 증여할 시 대략 268억원의 증여세를 짊어질 것이라는 계산이다. 경영승계와 더불어 지분증여를 위한 재원확보 과정서 어떤 행보를 보여줄지 주목된다.

곱지않은 시선
“규정 따랐다”

삼양식품은 횡령 혐의로 물의를 빚고 쫓겨나듯 물러났던 두 사람이 거액의 퇴직금을 수령한 것으로 나타나면서 곱지 않은 시선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삼양식품 관계자는 “전인장 전 회장은 28년, 김정수 사장도 19년 동안 재직해왔으므로 규정에 따라 퇴직금을 지급한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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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