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망신’ 욕먹는 라면재벌 부부, 왜?

회삿돈 빼돌리고 ‘옥중 돈잔치’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50억원 규모의 횡령을 저질러 대법원에서 유죄 확정 판결을 받은 삼양식품의 전인장 전 회장, 김정수 총괄사장 부부가 지난해 총 185억원의 보수를 수령한 것으로 나타났다. 김정수 사장의 복귀 행보를 두고 거센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더욱 싸늘한 시선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전인장 삼양식품 전 회장이 지난해 유통기업 가운데 보수를 가장 많이 받은 ‘연봉킹’에 등극했다. 전인장 전 회장은 회삿돈 50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아 복역 중이다. 일각에선 횡령 유죄 판정을 받은 전 전 회장의 연봉킹 등극 소식에 비난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퇴직금 수백억
연봉킹 등극

22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삼양식품은 지난해 전인장 삼양식품 전 회장에게 141억7500만원을 급여로 지급했다. 퇴직금 118억1700만원과 근로소득 23억5800만원이다.

전 전 회장의 아내인 김정수 삼양식품 총괄사장은 44억700만원을 보수로 받았다. 퇴직소득이 40억6600만원, 근로소득이 3억4100만원가량이다. 이들 부부가 지난해 받은 보수만 185억5200만원가량에 이른다.

지난해 1월 이들 부부는 계열사로부터 납품받은 자재 일부를 페이퍼컴퍼니로부터 납품받은 것처럼 해 49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전 전 회장은 징역 3년형을 받아 퇴사 후 복역 중이다. 2019년 1월 1심 판결 이후 줄곧 구속 수감 상태로 경영 공백을 빚기도 했다.


김 총괄사장은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은 뒤 취업이 제한돼 지난해 3월 퇴사했다가 법무부 허가를 받고 지난해 10월 총괄사장으로 재취업했다. 삼양식품이 법무부에 “경영 성과가 있다”며 취업 승인을 요청했기 때문이다.

오너 일가는 보수 외 배당으로도 주머니를 채우게 됐다. 삼양식품의 주당 배당금 800원과 소유 주식 수를 감안해 계산하면 김정수 총괄사장은 2억6000만원, 전인장 전 회장은 1억8900만원의 배당금을 각각 받게 된다. 오너가 3세 전병우 경영관리부문장은 3400만원의 배당금을 수령한다.

50억 횡령한 부부 퇴직금만 ‘180억’
“규정 따라 지급했다”…싸늘한 시선

오너 일가는 삼양식품 최대주주인 삼양내츄럴스를 통해서도 배당금을 받는다. 삼양내츄럴스엔 20억400만원의 배당금이 지급되는데 이 회사 지분의 42.2%가 김 총괄사장 소유다. 21.0%는 전 전 회장, 26.9%는 전병우 부문장이 100% 소유한 에스와이캠퍼스 소유다. 나머지 9.9%는 삼양내츄럴스가 보유한 자기주식이다.

김 총괄사장은 삼양식품 사내이사에 다시 오를 예정이다. 횡령 사건으로 물러난지 1년 만이다. 김 총괄사장은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을 맡지 않고 이사회 산하에 ESG 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투명경영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경영 총괄은 그대로 수행한다.
 

▲ 김정수 삼양그룹 총괄사장 ⓒ삼양식품

이에 일각에선 김 총괄사장이 맡는 ESG위원회 위원장이 이미지상 부합하지 않는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ESG는 기업이 단순히 수익을 창출 것을 넘어 환경적, 사회적, 윤리적 가치도 잘 지키는지 여부를 보는 평가지표를 뜻한다. 김 총괄사장이 7개월 만에 경영복귀를 하는 것도 시기상조인데 횡령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이 ESG위원장을 맡는 것은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측은 투명한 경영을 위해 사외이사를 증원하고 있으며 김 총괄사장은 책임경영이라는 측면에서 복귀한 것이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 같은 사 측의 주장에도 소액주주들의 불만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벌써 경영참여?
소액주주 반발

한 업계 관계자는 “횡령으로 회사에 피해를 입힌 사람이 ESG경영을 강화하겠다면서 다시 등기이사로 재직하려는 것은 모순된 행동”이라며 “위법 행위를 저지른 경영진들이 다시 이사로 선임되고 고액의 보수를 받으면 범법 행위를 진정으로 반성할 수 있을까 싶다”고 의구심을 표했다.

소액주주들은 경영진의 범죄행위 재발 방지책을 요구하며 김 총괄사장 복귀에 반기를 들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삼양식품 소액주주들은 법무법인 창천을 법률대리인으로 선임하고, 철저한 준법 감시체계 구축, 경영진의 불법행위 재발방지, 배당액 증가 등 주주가치 제고, 기타 소액주주의 권리 보호 요청 등을 주장했다.

법무법인 창천 정영훈 변호사는 “소수의 지분을 가진 창업주 일가가 오너라는 미명하에 회사를 마음대로 쥐락펴락하던 시대는 끝났다”며 “이제는 주주 전체의 이익을 추구하는 경영을 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집단소송 조짐도 보이고 있다. 소액주주 A씨는 법원에 주주명부 열람 등사 가처분을 신청했고, 지난 11일 서울북부지방법원 제1민사부는 A씨가 제기한 가처분 신청을 허용했다. 
 

▲ ▲▲ 전인장 삼양식품 회장 ⓒ삼양식품

주주명부 열람 등사는 주주가 상법 제396조 제2항에 근거해 회사측에 주주명부의 열람과 등사를 요청하는 행위로, 주주는 이를 통해 회사 지분구조를 정확하게 파악 가능하다. A씨는 확보한 주주명부를 토대로 소액 주주들의 힘을 모으고, 회계장부열람등사 청구 및 대표소송 제기 등을 통해 회사 경영 정상화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승계 방향은?
“아직은 이르다”

A씨는 “회삿돈을 횡령해 유죄 판결을 받은 경영인이 곧바로 사업에 복귀 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라며 “김 총괄사장이 복귀하더라도 경영진의 범죄행위 재발을 방지할 수 있는 객관적 감독기구를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주총 시즌을 맞아 소액주주들의 영향력은 전방위적으로 커질 전망이다. 지난해 말 상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며 도입된 감사위원 분리 선출제도 영향으로 대주주 의결권이 대폭 제한됐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삼양식품 관계자는 “오너 일가가 횡령 금액을 다 배상했고, 김 총괄사장은 삼양식품의 매출 증가를 이끈 불닭볶음면 기획·수출 등에 공헌이 있다”며 “오너의 책임경영이 필요해 김 총괄사장을 사내이사 후보로 올렸다”고 말했다.


현재 삼양식품은 지난달 8일 정태운 대표와 진종기 대표를 선임해 각자대표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이 같은 상황에서 삼양식품의 3세 승계에도 관심이 쏠린다. 최근 전 전 회장의 장남인 전병우 부문장이 회사 지분을 늘리고 있어 3세 승계가 본격화되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올해로 27세인 전병우 부문장은 지난해 삼양식품 부장으로 입사했다. 지난 3월에는 삼양식품 최대주주인 삼양내츄럴스 등기임원에 이름을 올리면서 지분 매집도 이어가는 점도 이 같은 분석을 뒷받침하고 있다.

2019년 말 기준 전병우 부문장은 삼양식품 0.56%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6월9일 기준 지분율이 0.59%로 0.03%포인트 늘어났다. 전병우 부문장은 올 3월 이틀에 걸쳐 삼양식품 2350주를 매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6월9일 종가 기준(12만원) 전병우 부문장이 추가 매수한 주식가치는 약 2억8200만원 수준이다.

때이른 경영 복귀에 소액주주들 불만
공고한 오너 지배력…경영승계는 아직

다만 지주사 격인 삼양내츄럴스의 지분 증여는 현재까지 전무한 가운데 아직 승계를 논하기 이르다는 해석도 일고 있다. 오너리스크가 발생했어도 이들 부부가 행사하는 지배력은 여전히 크다.

향방은 60%가 넘는 이들 부부의 지분이 장남 전병우 부문장에게 어떻게 증여될지에 따라 달라질 것으로 분석된다. 경영승계 및 지분증여에 따라 발생하는 증여세 문제도 거론된다. 


김 총괄사장과 전 전 회장이 보유한 삼양내츄럴스 주식가치는 자본총계를 기준으로 약 893억원으로 집계됐다. 만약 이들 부부가 60%가 넘는 삼양내츄럴스 지분을 전병우 부문장에게 증여할 경우 적잖은 증여세를 내야 한다.

상속세 및 증여세법(상증법)상 증여재산이 상장주식이면 증여일 이전·이후 각각 2개월(총 4개월)의 최종시세 평균으로 매겨진다. 여기에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 주식이면 증여재산이 20% 할증평가된다. 여기서 산출된 과세표준이 30억원을 넘으면 50%의 세율이 붙는다.

증여지분 가치는 총 893억원이며 과세표준은 주식가치의 60%인 536억원, 여기에 세율 50%를 적용하면 산출세액은 대략 268억원으로 추산된다. 누진공제 및 신고세액공제(산출세액의 3%)를 받을 수 있지만 크지 않은 금액이다.

오너 부부가 장남에게 지분을 증여할 시 대략 268억원의 증여세를 짊어질 것이라는 계산이다. 경영승계와 더불어 지분증여를 위한 재원확보 과정서 어떤 행보를 보여줄지 주목된다.

곱지않은 시선
“규정 따랐다”

삼양식품은 횡령 혐의로 물의를 빚고 쫓겨나듯 물러났던 두 사람이 거액의 퇴직금을 수령한 것으로 나타나면서 곱지 않은 시선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삼양식품 관계자는 “전인장 전 회장은 28년, 김정수 사장도 19년 동안 재직해왔으므로 규정에 따라 퇴직금을 지급한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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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