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빈’ 알펜시아 새 주인 찾기 프로젝트

혈세 먹는 하마 누구 품에?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알펜시아리조트의 새 주인 찾기가 어떻게 끝맺음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수차례에 걸친 매각실패로 몸값이 최저치로 떨어지면서 인수자 찾기는 오히려 탄력이 붙은 상태. 다만 예상치 못한 경영진의 일탈 행동과 임직원 고용승계 여부가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 알펜시아 전경 ⓒ알펜시아

‘알펜시아리조트(이하 알펜시아)’는 2009년 강원도 평창군 대관령면 일대 491만㎡ 부지에 2009년 지은 종합 리조트다. 2006년 10월 공사가 시작돼 2010년 7월 전체 영업시설을 개장했으며, 골프장·스키장·호텔·콘도·고급 빌라 등으로 구성돼있다. 

옥죄는
빚의 무게

강원도개발공사는 2014년 12월 평창 알펜시아리조트 매각에 나섰다. 투자유치자문사 선정 용역 입찰공고를 공사 홈페이지와 나라장터에 게시해 접수를 진행했고, 이듬해 2월 기업평가가 마무리되자 매각 대상자 선정 절차에 돌입했다.

매각 결정에는 강원도와 강원도개발공사 재정난을 해소한다는 판단이 깔려있었다. 알펜시아는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핵심기반시설로 조성됐지만, 차입금을 끌어다 사업을 추진한 탓에 빚이 천문학적으로 증가했다. 부채 규모는 한때 1조189억원까지 치솟기도 했다.

그러나 알펜시아 새 주인 찾기 프로젝트는 참담한 실패의 연속이었다. 2016년 6월 중국 기업 2곳과 매각 협약을 맺었지만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논란으로 무산됐다. 2017년 4월에는 싱가포르와 영국 기업들이 강원도개발공사와 타운지구 매각 협상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지만, 금액 차이로 인해 협상이 중단됐다.


빚더미에 쌓은 올림픽 영광
바닥 친 몸값…이제야 입질

지난해 1월에는 미국계 투자회사 컨소시엄과 양해각서를 체결하면서 한껏 기대를 키웠다. 컨소시엄은 알펜시아의 글로벌 이미지에 주목했다며 시설을 아시아 최대 스포츠파크와 휴양시설로 개발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양해각서 체결 나흘 전까지 강원도에 입금하기로 했던 계약이행 보증금 15억원은 입금되지 않았고, 유예기간까지 넘기면서 협약은 공식적으로 무효 처리됐다.

마음이 급해진 강원도는 ‘혈세 먹는 하마’로 전락한 알펜시아를 공개 매각하기로 방침으로 선회했다. 유찰될 경우 건물 가치가 하락하는 것을 우려해 추후 숙박지구와 골프장을 구분하는 등 분리매각도 검토했다.
 

▲ 심세일 알펜시아 대표 ⓒ알펜시아

하지만 매각 작업은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했다. 세 차례에 걸쳐 유찰이 이뤄진 상태다. 지난해 10월 1차 매각공고 결과 다수 기업이 인수의향서를 제출하고 예비실사를 진행했지만, 입찰 진행 과정에서 무응찰로 유찰됐고, 2·3차 매각공고도 모두 유찰됐다. 1∼2차 입찰 때 1조원 수준이던 매각 가격은 3차 때부터 10% 할인이 적용됐지만, 인수자를 찾기란 쉽지 않았다.

팔고는 싶은데
제자리걸음

지난 11일에는 네 번째 입찰공고를 내고 매수자 물색에 나섰다. 4차 입찰부터는 20%까지 할인이 가능해 매각 가격은 8000억원대로 떨어졌다.

만약 4차 입찰마저 유찰되면 매각 셈법은 한층 복잡해진다. 공유재산법상 50% 할인도 가능해 5차·6차 입찰도 진행할 수 있지만, 감정평가를 거쳐 공개된 재산 가액의 20%까지만 할인할 수 있도록 했기 때문에 매수자 입장에서 추가 입찰은 사실상 큰 의미가 없다.


다행인 점은 인수 의향을 드러낸 곳이 있다는 사실이다. 지난 19일 강원도개발공사는 알펜시아 4차 매각공고 인수의향서 접수 마감 결과, 다수의 기업이 의향서를 접수했다고 밝혔다.

4차 매각공고에 인수의향서를 접수한 기업을 대상으로 다음 달 23일까지 예비실사를 진행한다. 예비실사가 끝나고, 3월3일까지 입찰 및 입찰보증금(매각 금액의 5%) 약 400억원에 대한 납부가 완료되면 본 실사를 통해 올 상반기인 5월에 최종 계약을 체결하게 된다.

팔릴 듯 말듯
이번에는 과연

다만 알펜시아 안팎에 산재한 불안요소가 매각 작업에 걸림돌로 작용할 여지를 남긴다. 일단 고용승계 여부가 최대 분수령이다.

알펜시아 경영진은 매각 작업에서 직원들의 고용승계를 기본 원칙으로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인수자가 조직 정비의 필요성을 앞세울 경우 고용승계는 공염불이 될 수도 있다. 알펜시아에 직접 고용된 인원은 약 500명으로 파악된다. 이 가운데 절반가량이 계약직 신분이다. 매각 협상에 앞서 최우선해야 하는 것이 고용안정대책과 승계라고 주장하는 이유다.
 

▲ 알펜시아 전경 ⓒ알펜시아

지난해 12월 민주노총 서비스연명 강원본부와 알펜시아리조트노동조합은 강원도청 정문 앞에서 알펜시아리조트 공개 매각으로 인한 노동자 고용 보장 촉구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노조는 “매각이라는 불안한 미래에 떨지 않기로 했으며, 직접 행동으로 나서기로 결의한다”며 “강원도와 도개발공사는 우리 회사를 정상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기업을 매수자로 선정해 달라”고 강조했다.

“이번엔 달라” 말만 몇 번째…
바닥 친 몸값…이제서야 입질

경영진의 공짜 라운딩 및 돈내기 골프 논란이 자칫 매각 작업에 악재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지난 15일 강원도개발공사는 공짜 라운딩 등과 관련한 감사 결과 알펜시아리조트 임원 2명에 대해 감봉 3개월의 중징계를, 알펜시아 직원 4명과 강원도개발공사 직원 1명 등 5명에 대해서는 경고 조치를 했다고 밝혔다.

앞서 강원도개발공사는 지난해 12월 초께 감사를 진행했다. 알펜시아 임원과 강원도개발공사의 간부 등이 코스 점검을 이유로 1년이 넘게 무료 라운딩을 하고, 돈내기 골프를 했다는 제보가 접수됐기 때문이다. 

감사 결과, 이들은 업무적으로 적절한 점검 라운딩은 사전 계획 수립 등을 통해 명확한 근거를 남겨야 한다는 절차를 어겼다. 돈내기 골프 의혹에 대해서는 간식비와 캐디피 지급 명목으로 금전이 오갔던 것으로 알려졌다. 

강원도개발공사는 “이번 불미스러운 사태로 강원도민께 심려를 끼쳐 송구스럽다. 앞으로 이런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직원들의 공직기강을 강화해 강원도민들의 공기업으로 거듭나겠다”고 밝혔다.


산재한
불안요소

그럼에도 논란은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국민의힘 강원도당과 지역 시민사회단체는 논평을 통해 “도민의 혈세를 축내는 빚덩어리·골칫덩어리 알펜시아의 공기업 간부들이 이러한 특권 남용과 도덕적 기강해이를 보였다는 사실에 분노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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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