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빈’ 알펜시아 새 주인 찾기 프로젝트

혈세 먹는 하마 누구 품에?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알펜시아리조트의 새 주인 찾기가 어떻게 끝맺음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수차례에 걸친 매각실패로 몸값이 최저치로 떨어지면서 인수자 찾기는 오히려 탄력이 붙은 상태. 다만 예상치 못한 경영진의 일탈 행동과 임직원 고용승계 여부가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 알펜시아 전경 ⓒ알펜시아

‘알펜시아리조트(이하 알펜시아)’는 2009년 강원도 평창군 대관령면 일대 491만㎡ 부지에 2009년 지은 종합 리조트다. 2006년 10월 공사가 시작돼 2010년 7월 전체 영업시설을 개장했으며, 골프장·스키장·호텔·콘도·고급 빌라 등으로 구성돼있다. 

옥죄는
빚의 무게

강원도개발공사는 2014년 12월 평창 알펜시아리조트 매각에 나섰다. 투자유치자문사 선정 용역 입찰공고를 공사 홈페이지와 나라장터에 게시해 접수를 진행했고, 이듬해 2월 기업평가가 마무리되자 매각 대상자 선정 절차에 돌입했다.

매각 결정에는 강원도와 강원도개발공사 재정난을 해소한다는 판단이 깔려있었다. 알펜시아는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핵심기반시설로 조성됐지만, 차입금을 끌어다 사업을 추진한 탓에 빚이 천문학적으로 증가했다. 부채 규모는 한때 1조189억원까지 치솟기도 했다.

그러나 알펜시아 새 주인 찾기 프로젝트는 참담한 실패의 연속이었다. 2016년 6월 중국 기업 2곳과 매각 협약을 맺었지만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논란으로 무산됐다. 2017년 4월에는 싱가포르와 영국 기업들이 강원도개발공사와 타운지구 매각 협상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지만, 금액 차이로 인해 협상이 중단됐다.


빚더미에 쌓은 올림픽 영광
바닥 친 몸값…이제야 입질

지난해 1월에는 미국계 투자회사 컨소시엄과 양해각서를 체결하면서 한껏 기대를 키웠다. 컨소시엄은 알펜시아의 글로벌 이미지에 주목했다며 시설을 아시아 최대 스포츠파크와 휴양시설로 개발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양해각서 체결 나흘 전까지 강원도에 입금하기로 했던 계약이행 보증금 15억원은 입금되지 않았고, 유예기간까지 넘기면서 협약은 공식적으로 무효 처리됐다.

마음이 급해진 강원도는 ‘혈세 먹는 하마’로 전락한 알펜시아를 공개 매각하기로 방침으로 선회했다. 유찰될 경우 건물 가치가 하락하는 것을 우려해 추후 숙박지구와 골프장을 구분하는 등 분리매각도 검토했다.
 

▲ 심세일 알펜시아 대표 ⓒ알펜시아

하지만 매각 작업은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했다. 세 차례에 걸쳐 유찰이 이뤄진 상태다. 지난해 10월 1차 매각공고 결과 다수 기업이 인수의향서를 제출하고 예비실사를 진행했지만, 입찰 진행 과정에서 무응찰로 유찰됐고, 2·3차 매각공고도 모두 유찰됐다. 1∼2차 입찰 때 1조원 수준이던 매각 가격은 3차 때부터 10% 할인이 적용됐지만, 인수자를 찾기란 쉽지 않았다.

팔고는 싶은데
제자리걸음

지난 11일에는 네 번째 입찰공고를 내고 매수자 물색에 나섰다. 4차 입찰부터는 20%까지 할인이 가능해 매각 가격은 8000억원대로 떨어졌다.

만약 4차 입찰마저 유찰되면 매각 셈법은 한층 복잡해진다. 공유재산법상 50% 할인도 가능해 5차·6차 입찰도 진행할 수 있지만, 감정평가를 거쳐 공개된 재산 가액의 20%까지만 할인할 수 있도록 했기 때문에 매수자 입장에서 추가 입찰은 사실상 큰 의미가 없다.


다행인 점은 인수 의향을 드러낸 곳이 있다는 사실이다. 지난 19일 강원도개발공사는 알펜시아 4차 매각공고 인수의향서 접수 마감 결과, 다수의 기업이 의향서를 접수했다고 밝혔다.

4차 매각공고에 인수의향서를 접수한 기업을 대상으로 다음 달 23일까지 예비실사를 진행한다. 예비실사가 끝나고, 3월3일까지 입찰 및 입찰보증금(매각 금액의 5%) 약 400억원에 대한 납부가 완료되면 본 실사를 통해 올 상반기인 5월에 최종 계약을 체결하게 된다.

팔릴 듯 말듯
이번에는 과연

다만 알펜시아 안팎에 산재한 불안요소가 매각 작업에 걸림돌로 작용할 여지를 남긴다. 일단 고용승계 여부가 최대 분수령이다.

알펜시아 경영진은 매각 작업에서 직원들의 고용승계를 기본 원칙으로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인수자가 조직 정비의 필요성을 앞세울 경우 고용승계는 공염불이 될 수도 있다. 알펜시아에 직접 고용된 인원은 약 500명으로 파악된다. 이 가운데 절반가량이 계약직 신분이다. 매각 협상에 앞서 최우선해야 하는 것이 고용안정대책과 승계라고 주장하는 이유다.
 

▲ 알펜시아 전경 ⓒ알펜시아

지난해 12월 민주노총 서비스연명 강원본부와 알펜시아리조트노동조합은 강원도청 정문 앞에서 알펜시아리조트 공개 매각으로 인한 노동자 고용 보장 촉구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노조는 “매각이라는 불안한 미래에 떨지 않기로 했으며, 직접 행동으로 나서기로 결의한다”며 “강원도와 도개발공사는 우리 회사를 정상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기업을 매수자로 선정해 달라”고 강조했다.

“이번엔 달라” 말만 몇 번째…
바닥 친 몸값…이제서야 입질

경영진의 공짜 라운딩 및 돈내기 골프 논란이 자칫 매각 작업에 악재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지난 15일 강원도개발공사는 공짜 라운딩 등과 관련한 감사 결과 알펜시아리조트 임원 2명에 대해 감봉 3개월의 중징계를, 알펜시아 직원 4명과 강원도개발공사 직원 1명 등 5명에 대해서는 경고 조치를 했다고 밝혔다.

앞서 강원도개발공사는 지난해 12월 초께 감사를 진행했다. 알펜시아 임원과 강원도개발공사의 간부 등이 코스 점검을 이유로 1년이 넘게 무료 라운딩을 하고, 돈내기 골프를 했다는 제보가 접수됐기 때문이다. 

감사 결과, 이들은 업무적으로 적절한 점검 라운딩은 사전 계획 수립 등을 통해 명확한 근거를 남겨야 한다는 절차를 어겼다. 돈내기 골프 의혹에 대해서는 간식비와 캐디피 지급 명목으로 금전이 오갔던 것으로 알려졌다. 

강원도개발공사는 “이번 불미스러운 사태로 강원도민께 심려를 끼쳐 송구스럽다. 앞으로 이런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직원들의 공직기강을 강화해 강원도민들의 공기업으로 거듭나겠다”고 밝혔다.


산재한
불안요소

그럼에도 논란은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국민의힘 강원도당과 지역 시민사회단체는 논평을 통해 “도민의 혈세를 축내는 빚덩어리·골칫덩어리 알펜시아의 공기업 간부들이 이러한 특권 남용과 도덕적 기강해이를 보였다는 사실에 분노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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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페이스북에 사과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도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는 짧았지만,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난은 길었다. 사과 의견을 통해 확인되는 국면 전환 노림수는 ‘한동훈을 제외한 빅텐트’인 걸까? 국민의힘 공보실은 지난 2일 오후 10시54분 출입기자들에게 지난 3일 지도부 일정을 공지했다. 공보실에 따르면, 지도부의 일정은 ‘통상 일정’이었다.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의미다. 지난 3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1주년이었다. 통상의 의미는? 지도부의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것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공개 사과 및 기자회견 일정이 없었단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장 대표는 지난 3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 의견을 밝혔다. 장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는 등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있는 주장부터 제시했다.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대해서도 “한국 정치의 연속된 비극을 낳았고, 국민과 당원들께 실망과 혼란을 드렸다”는 등 ‘탄핵 반대’ 의견을 유지했다. 장 대표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잘못은 하나로 뭉쳐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는 부분이었다. 자신에 대해서도 “당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가 사과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같은 날 오전 4시50분경 이정재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확실시됐다. 장 대표는 페이스북 게시글에서도 “추 의원 구속영장 기각은 어둠의 1년이 지나고 두터운 장막이 걷히고, 새로운 희망의 길이 열리는 신호탄”이라면서 대정부 투쟁에 의미를 부여했다. 장 대표는 “이재명정권의 대한민국 해체 시도를 국민과 함께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사과 불가는 지난달 28일 대구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장외집회에서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그는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우리가 흩어지고 분열한 결과, 이재명정권이 탄생했단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연설 대부분을 채웠다. 5일 간격으로 같은 얘기를 반복한 것이었다. 당시 장 대표가 주장한 민주당에 대한 비난의 핵심 내용은 ▲의회 폭거·국정 방해 ▲무모한 적폐 몰이에 따른 공무원 사찰 위협 ▲폭거로 인한 민생 파탄·국가 시스템 붕괴 ▲내란 몰이 등이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국민의힘의 비상계엄 관련 사과는 ▲송언석 원내대표 ▲유상범·김은혜 원내부대표 ▲최수진·최은석 원내대변인 등 원내 지도부 차원에서 나왔다. 송 원내대표 등은 지난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께 큰 충격을 드린 비상계엄 발생을 막지 못한 데 대해 국민의힘 국회의원 모두는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군인·공직자·의료인·자영업자 등 비상계엄 선포 피해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하지만 이후의 메시지는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 등 장 대표의 주장과 크게 차이가 없는 내용이었다. 송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패배의 아픔을 딛고 분열과 혼란의 과거를 넘어서 다시 거듭나겠다”며 “소수당이지만 처절하게 다수 여당과 정권에 맞서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전까지 국민의힘에서 장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정치인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용태·김재섭·권영진·엄태영·이성권·조은희 의원 등이었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에서 진행된 장외집회 중 “국민의힘은 불법 계엄을 방치했으니,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일부 지지자들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김재섭 의원은 지난달 28일 YTN 라디오 <더 인터뷰>에 출연해 “당 지도부의 사과가 없으면 제 나름의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며 “같이 메시지를 낼 국민의힘 의원들이 약 20명은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 “연판장을 돌리거나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다”는 압박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었다. 오 시장도 같은 날 채널A <김진의 돌직구 쇼>에 출연해 “중도층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도 당 차원의 사과가 필요하다”며 “공당이라면 반성문을 쓰는 게 도리”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은 당과 무관하게 대국민 사과를 했다. 오 시장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 소속 중진 정치인이자, 서울시민의 일상을 책임지는 시장으로서 그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그날의 충격과 실망을 기억하는 모든 국민께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지난 3일 국회에서 “비상계엄 선포 당시 집권여당의 일원으로서 비상계엄을 미리 막지 못하고 국민께 커다란 고통과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거듭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면서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존중 ▲윤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단절 ▲국민의힘 체질 개선·재창당 수준의 혁신 등을 약속했다. 이어지는 각자 플레이 장 대표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후 자체적으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대체로 수도권에 기반을 둔 소장파다. 이들 중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면 가장 큰 손해를 볼 정치인으로는 오 시장과 김재섭·김용태 의원이 거론된다. 오 시장은 높은 개인 인기를 바탕으로 민주당의 서울시장 탈환 공세에 맞서고 있다. 김재섭 의원의 지역구 서울 도봉갑은 원래 민주당 텃밭이었다. 김 의원은 지난해 총선 당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1094표 앞서 어렵게 이겼다. 지난해 12월7일 국민의힘의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집단 이탈에 동참했을 때도 지역구에서 규탄 집회가 개최되는 등 홍역을 치렀다. 김용태 의원도 경기 가평·포천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박윤국 한국도자재단 이사장에 2774표 앞서 어렵게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강경 보수화가 진행된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 우려는 장 대표가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자유통일당 ▲우리공화당 ▲자유민주당 ▲자유와혁신 등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깊어졌다.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지금은 연대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면서 선을 그었다. 최근 국민의힘에선 “한동훈 전 대표를 축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만한 밑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다. 국민의힘 여상원 윤리위원장은 지난달 17일 사의를 표명했다. 여 위원장은 “당에서 ‘물러나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며 “굳이 능욕당하면서 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돼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답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윤리위원회가 ‘계파 갈등 조장’을 이유로 윤리위에 넘겨진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주의 조치만 내린 것 때문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국민의힘 우재준 청년 최고위원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원하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윤리위원장을 사퇴시키는 게 정당한 일이냐”며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드는 민주당과 뭐가 다르냐”고 정면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한 조사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당원 게시판 의혹은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올라온 윤 전 대통령 부부 비방글 작성에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밝혀 당원에게 알릴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던 바 있다.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정치적으로 몰락해 서울구치소에 갇혔고,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이 당원 게시판 의혹을 밝혀낸 후 거둘 수 있는 실익으로는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친한(친 한동훈)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거론된다. 구 친윤(친 윤석열)계가 거둘 수 있는 이익이다.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보수 성향 유권자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뉜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갈등하면서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던 이력이 있다. 이 때문에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일색이 되는 걸 막는 방파제·상징”이란 분석이 오랫동안 있어왔다. 친한계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의원 중 상당수는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소장파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리위원장 쫓아낸 이유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이 정치에서 폭력을 동원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정치의 본질은 대화·토론·협상이다. 영국 하원에선 20세기 초까지 의원이 총칼을 이용해 결투·난투를 했다. 물리적 폭력이 아닌 ‘언어폭력’ 선에서 공방을 이어가는 정치 문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정착됐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전 세계에 줬던 충격은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했다고 믿었던 대한민국에서 군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려던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는 사과 메시지를 먼저 짧게 발표하면서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은 길게 이어가는 형식의 사과 의견을 밝혔다. 사과엔 ▲직접적인 반성 ▲분명한 잘못 인정 ▲재발 방지 약속 ▲보상 약속 등 4개의 원칙이 제기됐는데 “상대방 비판에 더 중점을 둔 사과는 역설적으로 ‘반성을 하는 게 맞느냐’는 비판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대국민 사과를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후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국민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후속 조치 중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미흡했고, 우려를 덜어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을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당시 크게 불거졌던 각종 우려를 ‘괴담’으로 규정지었다. 이 때문에 촛불 시위 세력이 제시한 재협상 시한과 맞물린 시점에서 사과가 나온 점을 감안할 때 국면 전환을 위한 명분 쌓기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각종 의혹이 광범위하게 제기돼 근거 자료들까지 제시되는 시점에서 “취임 후 일정 기간 일부 자료들에 대해 최순실씨의 의견을 들은 적은 있지만,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의 해명은 신뢰를 잃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두 전직 대통령의 사과처럼 자신의 주장을 뒤에 배치한 후 더 큰 비중을 부여하는 형식을 유지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이런 사과 형식은 국면 전환·지지층 결집 목적을 가진 이들이 활용한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고대 로마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있었던 마르쿠스 브루투스·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연설이 꼽힌다. 카이사르 살해를 주동한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에 대한 내 사랑은 카이사르를 사랑하는 다른 분보다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고 선언한 후 “로마를 더 사랑해서 카이사르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라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죽였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한 사람들은 모두 존경할 만한 분들”이라고 선언한 후 카이사르를 찬양하면서 그의 유언장을 공개했다. 유언의 핵심 내용은 “내 재산을 로마 시민에게 기증한다”는 것이었다. 또 카이사르가 살해당할 당시 입었던 칼자국과 피로 얼룩진 옷도 공개했다. 흥분한 로마 시민은 암살자들의 집을 습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토니우스·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정국을 장악했다. 불리한 내용을 먼저 짧게 거론한 후 유리한 내용을 장황하게 거론하는 형식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즐겨 이용된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가 짧은 사과 의견을 밝힌 후 이재명정부·민주당을 비중 있게 비판한 것도 강경 보수 세력에겐 강한 인상을 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장 대표는 비상계엄의 원인을 ‘의회 폭거’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카이사르가 된다. 비상계엄 해제에 찬성해 사실상 윤 전 대통령 몰락에 가담한 한 전 대표와 친한계는 브루투스 일당이 되는 구도가 그려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강경 보수 세력은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해 어떤 의견을 제시할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공나형 전남대 학술연구교수는 지난 2022년 발표한 논문 <대통령의 공적 사과 담화에서 드러나는 ‘개입’ 양상>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1993년 쌀 시장 개방을 수용하면서 밝힌 대국민 사과와 박 전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 관련 대국민 사과를 분석했다. 공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선의로 행한 행위가 어쩔 수 없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고 강조하면서 결과의 부정성에 관여하는 자신의 의도의 비중을 제거했다”고 분석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자기 고백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그 고백의 원인이 되는 행위에 대해선 소극적”이라고 분석했다. 12월3일 조용히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과 상대방 비판을 내용으로 채웠다. 그러면서 민주당 심판·보수 재건·대여 투쟁을 강조했다. 결국 두 사람의 답은 ‘한 전 대표를 제외한 빅텐트’ 방침 재확인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12월3일은 이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