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김지선 기자] 오이도 해양단지에 미심쩍은 간판이 일렬로 늘어서있다. 그것은 바로 ‘모델’. 원룸·달방·임대라며 친절히 보충설명이 돼있는 간판을 보면 모텔과 같은 장·단기 숙박업소랑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인다. 모텔과 차이가 없는 숙박업소를 왜 하필 모델로 교묘히 바꿔 영업을 하는 것일까. <일요시사>가 그 실체를 파헤쳤다.
“오이도 해양단지 근처에서 모델 영업하는 사람들 죄다 한 곳에서 10년 넘은 사람들이야. 식당 근처에서 숙박업소 있는 게 당연한 거지. 게다가 바다도 밀접해 있는데….”
모델간판의 정체는?
오이도 해양단지에 들어서기 전 주민에게 전해들은 얘기다. 모델촌이 밀집해 있다는 소문을 듣고 찾은 오이도 해양단지 안에는 역시 소문대로 한 건물 건너 한 개꼴로 모델간판이 늘어서있었다. 이름도 각양각색에다 대부분 건물 고층에 위치해 있고 원룸과 임대까지 가능하다며 친절히 소개를 마다않는 곳들도 쉽게 목격할 수 있었다.
모텔과 같이 숙박과 달방(월세와 비슷하게 달마다 숙박비를 지불하는 형식)이 가능하다면, 더불어 원룸까지도 가능하다면 왜 굳이 모텔이 아닌 모델로 바꿔서 영업을 하는 것일까. 궁금증은 의외로 쉽게 풀렸다. 인근 조개구이식당 주인으로부터 이곳 모델의 실체에 대해 전해들을 수 있었다.
그는 “오이도 해양단지는 주거지역으로 분류돼 숙박업소 자체가 들어설 수 없다. 바다에 밀접해 있어 수많은 음식점은 어쩔 수 없다지만 모텔 같은 경우는 근처에 초등학교도 있기 때문에 아이들 정서에 맞지 않아 지역당국의 완강한 반대로 숙박업 허가가 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러한 이유 때문에 모텔 업주들은 모델이라는 명칭을 사용해 단속을 교묘하게 피하고 있는 실정이다”라고 덧붙였다.
좀 더 자세한 얘기를 듣고자 관할시청과 경찰서 관계자에게 연락을 취했다. 경찰서 관계자는 “우리 소관이 아니다. 관할행정관청에서 이뤄져야 할 단속이다. 불법숙박영업에 대한 고발을 한다면 해당경찰서 홈페이지에 들어가 정식으로 고발하길 바란다”며 관할시청으로 책임을 미뤘다.
관할행정관청 관계자는 “오이도 해양단지가 본격적인 도시개발계획에 나선 게 약 4년이 다 돼간다. 바다와 밀접해 있다 보니 음식업이나 유흥업이 발달할 수밖에 없지만 근처에 교육기관이 인접해 있어 숙박업은 제재를 하고 있다. 오이도 해양단지에 모델들이 성행하고 있는 것은 알고 있다. 다만 1박과 같은 민박은 안 되는 것으로 알고 있고 임대로 방을 빌려주는 숙박영업을 한다고 들었다. 사실 관할부서에 아직 이에 대한 정확한 단속체계가 마련되지 않아 단속권도 없는 상태일 뿐만 아니라 그 수많은 숙박시설을 일일이 단속하기엔 어려움이 많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모델 업주들을 만나 모델의 실체를 낱낱이 파헤쳤다. 기자는 실제로 1박과 달방, 원룸이 가능한지 업주가 의심하지 않도록 서너 군데를 차례로 방문해 문의했다.
처음 방문한 마OO 모델 주인에게 하루 숙박에 대해 물었다. 그는 “모델은 모텔과 비슷한 업소로 민박과 같다고 보면 된다. 대실은 4시간에 2만원으로 가능하다. 주말에 친구들과 놀러올 거면 정확히 몇 사람 묵을 건지 말해 달라. 대부분 1박으로 친구들과 놀러오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적당한 방을 고르려면 빨리 예약해야 한다. 평일엔 3만원이고 주말엔 5만원 선이다. 성수기에는 방 구하기가 힘들어 그 가격보다 더 비쌀 수도 있다”며 다짜고짜 가격흥정에 나섰다.
한 건물 건너 하나 ‘모델간판’ 단속 피하기 위한 꼼수?
정확한 단속체계 하나 없어…경찰·행정기관 서로 미뤄
이어 오OO, 유O 모델 등을 방문해 달방과 원룸에 대해 자세하게 물었다. 업주들의 답변은 별반 차이가 없었다.
“몇 명이서 살 거예요? 여자 혼자서 살기에는 조금 위험할 텐데…. 외국인은 없지만 워낙 해안가 근처라서 위험할 수도 있어요. 여긴 주말이나 휴가 때 하루 이틀 정도 자고 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서. 모텔이랑 똑같아요. 달마다 정산하고 한 달에 55만원이예요. 화장실, 침대, TV, 냉장고, 에어컨 다 구비돼 있고, 조리할 수 있는 방을 원하면 원룸 따로 구해다주고…. 대신 월비는 더 내야할 수도 있어요. 세탁은 다른 데 가서 한꺼번에 해야 하고요. 밤에 일하면 낮에 3층 식당 옆 세탁물 맡기는 데에 맡긴 후 빨래하고 출근하면 되고요. 언제 들어올 예정인가요?”
모델촌 안의 모델들을 방문하면서 들었던 이야기와 관할관청 직원의 말과는 다른 점이 있었다. 방을 월세로 놓고 빌려주는 숙박영업만 하는 줄 알고 있는 행정기관의 입장과는 달리 불법민박과 달방, 원룸 심지어 대실까지 모든 종류의 숙박을 허용하고 있었다. 이들은 이러한 영업이 불법인 점을 모르는 듯 오히려 간판에 ‘전망 좋은 방’이라고 써 붙이며 당당하게 영업을 하고 있었다.
이에 해양단지에 거주하는 주민들의 항의도 날로 거세지고 있다. 주민 한모(45)씨는 “오이도는 숙박업소 허가가 날 수 없는 지역인데도 업주들이 불법으로 개조해 버젓이 영업을 하고 있다. 숙박업이 성행하면서 관광객들의 고성방가가 새벽까지 멈출 줄을 몰라 매일 밤을 지새운다. 왜 시청에서 단속을 안 하는지 모르겠다”며 불만을 제기했다.
주민들의 성화가 날로 늘어가는 데 비해 관할행정부서와 담당자들은 줄곧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이는 단속의 부작용이 심해질 것을 우려해 몸을 사리고 있는 것으로, 대표적인 예로 인근 제부도가 있다.
지난 3월 제부도는 화성시와 제부도 상인들 간의 마찰로 인해 영업이 실제로 중단됐다. 지난 10년간 방치하고 묵인해왔던 제부도 불법 펜션들의 숙박영업을 올해 들어 화성시가 원칙에 의거 원상태로 복구하라는 명령을 내렸기 때문이다. 이에 제부도 식당·펜션 업주들은 지난 22일부터 제부도 진입로를 봉쇄하며 항의 시위에 나섰고, 섬을 찾았다 되돌아가는 관광객이 늘어나면서 제부도를 찾는 관광객들의 발길도 하나둘씩 끊기게 됐다.
갈등의 골 해결
오이도의 상황 역시 제부도와 크게 다르지 않다. 주거단지이지만 해안가에 위치한 특성상 식당과 숙박업소가 사라진다면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겨 오이도는 어느새 죽은 지역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물론 그 근처의 상인들도 더 이상 생업을 이어나갈 수 없어 길바닥에 나앉게 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상인들과 주민들의 갈등, 그리고 그 갈등을 나 몰라라 떠넘기는 관할시청 공무원들. 10년 동안 묵혀왔던 깊은 갈등의 골이 원만하게 해결될 수 있도록 관할시청의 적극적인 관심이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