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 감싸는 '수상한 성북동' 이야기

  • 한종해 han1028@ilyosisa.co.kr
  • 등록 2012.08.27 17:4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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훨훨 나는 대도들…설설 기는 부자들

[일요시사=한종해 기자] 돈이 많다면 당장이라도 살고 싶은 동네. 고급 주택과 외국 대사관저가 많아 경찰과 보안업체가 수시로 순찰을 도는 동네. 하지만 역설적으로 도둑이 많은 동네. 서울 성북동이다. 최근 이명박 대통령 최측근인 한 인사의 집에도 도둑이 들었다. 피해액은 '억'소리가 날 정도지만 한 달이 지나서야 뒤늦게 알려졌다. '간 큰 도둑'들이 '만찬'을 즐기고 가는 데도 신고도 제대로 못하는 '부자'들, <일요시사>가 그들을 집중 조명했다.

북쪽에는 북한산이 서 있고, 서울 성곽이 부채꼴로 에워싼 성북동은 예로부터 풍수적으로 명당으로 꼽혔다. 여기에 1968년 북악산길과 삼청터널이 개통되면서 도심과의 접근성이 높아졌고 재벌가 사람들의 호화 저택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보안수준'도 최고
'도둑수준'도 최고

성북동은 삼성, 현대, LG 등 재벌가 사람들과 주한외국대사관저들도 몰리면서 서울의 대표적 부촌으로 명성을 쌓았다. 타워팰리스 등 대규모 호화 주거시설이 들어선 도곡동과 '한국의 비버리힐즈'로 떠오르고 있는 청담동도 있지만 지금도 서울에서 재벌가 사람들이 가장 많이 사는 동네는 성북동이다.

성북동이 유명한 이유는 또 있다. 바로 '간 큰 도둑'이다. 성북동이 부촌으로 떠오르면서 자연스럽게 도둑들의 시선도 몰리기 시작했다. '대단한' 사람들이 몰려 사는 만큼 보안수준이나 경비상태도 삼엄하지만 그 만큼 외부와 단절돼 절도범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 것. 절도 소식은 잊을만하면 '불쑥' 잘도 튀어나왔다. 지난달 이명박 대통령 최측근 인사의 집에 도둑이 들었던 사실도 최근 알려졌다. 범행 한 달만이다.

서울 성북경찰서는 지난달 22일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의 서울 성북동 주택에 도둑이 침입해 10돈짜리 금목걸이 1개와 다이아몬드 반지 2개 등 금품을 훔쳐갔다고 지난 21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피해자가 "다이아반지가 몇 캐럿인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고 진술해 정확한 피해금액은 알 수 없지만 최소한 억대에 이르는 피해를 입은 것으로 보인다.

경찰은 집이 비었던 당일 오전 10시에서 오후 2시 사이 사건이 발생한 것으로 보고 있다.

천 회장 가족은 당일 외출했다 귀가해 보니 천 회장 부인이 핸드백에 넣어뒀던 귀중품이 사라진 것을 확인한 뒤 집사가 경찰에 신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MB친구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 다이아 도난 
이웃들 하나같이 묵묵부답 "냄새가 난다"

천 회장의 집 주변에는 다양한 각도를 비추는 CCTV가 설치돼 있지만 천 회장 가족은 도난 사실을 파악한 뒤 뒤늦게 자체적으로 보안 장비를 설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절도범이 사전에 상대적으로 보안이 취약한 천 회장의 집을 범행대상으로 선정했을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또 비슷한 시기 천 회장 자택 인근의 모 기업체 사장이 사는 다른 고급 주택에도 동일범으로 추정되는 도둑이 침입해 수억원 상당의 금품을 훔쳐간 것으로 알려졌다.

성북경찰서는 강력반 두 개 팀을 투입해 수사를 하고 있지만 아직 단서를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사건 발생 후 천 회장 주택 주변에 설치된 CCTV 화면 분석 등을 통해 용의자를 추적 중"이라고 말했다. 또 "인근 주택에도 도둑의 침입 흔적은 있으나 훔쳐 간 것으로 신고된 물품이 없다"며 "다른 집들에 대해서는 절도 미수에 그친 것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천 회장은 이 대통령과 고려대 상대 61학번 동기로 '대통령의 후견인'으로까지 불리며 정권 초기 막강한 영향력을 과시했다.

그러나 2009년 '박연차 게이트'에 연루돼 징역 3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또 지난해에는 대우조선해양 협력업체인 임천공업의 이수우 대표로부터 세무조사 무마 청탁과 함께 47억여원 상당의 금품을 받은 혐의로 기소돼 지난해 6월 징역 2년6월을 선고받았다. 1심에서 실형이 선고된 천 회장은 지난해 9월 '심장 발작 우려가 있어 입원치료가 필요하다'는 구속집행정지 요청이 받아들여져 현재 서울 강남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에서 입원 치료중이다.

MB 후견인 천 회장
정권 초 영향력 과시

지난해 9월 발생한 이봉서 단암산업 회장 집 절도 사건도 유명하다. 검거된 용의자가 15년 전 성북동과 한남동 일대 주요 재계 인사들의 집을 골라 절도행각을 벌여 일대를 떠들썩하게 했던 이른바 '대도' 정모씨였기 때문이다. 정씨는 1997년 7월 친형과 함께 성북동과 한남동 일대 재계 인사들의 집에서 수억원대 금품을 털다 경찰에 붙잡혔다. 정씨 형제는 전국경제인연합회에서 발간한 '한국재계인사록'을 입수해 기업 회장의 자택 5곳을 골라 대낮에 침입 모두 5억8000만원어치의 금품을 강탈했다.

이 회장은 이회창 전 자유선진당 대표의 사돈이며 6공화국 시절인 1988∼1990년 동력자원부 장관과 1990∼1991년 상공부 장관을 지냈고 현재는 한국능률협회 회장으로도 재임하고 있다.

정씨는 당시 친형과 함께 최순영 전 신동아 그룹 회장 등 재계 인사들의 집만 골라 수억원의 금품을 훔쳤다. 당시 정씨 형제는 물방울 다이아몬드 등 희귀 귀금속 등을 훔쳤으나 오히려 피해자 상당수가 신분 노출을 꺼려 도난품을 찾아가지 않은 사건으로 더 유명했다.

털리고도 '쉬쉬' 알려질라 '벌벌'

이 회장 집에 대한 범행 수법도 대도다웠다. CCTV가 즐비한 성북동 부촌에서 그가 이 회장 집에 침입한 시각은 오후 2시30분께였다. 그 시각 이 회장의 집 대문은 열려있었다. 사건 발생 직전 택배가 배달되면서 현관문이 열린 채로 있었는데 범인은 이 틈을 놓치지 않고 집 안으로 잠입했다.

빈 집은 아니었다. 가사도우미 한 사람이 집을 지키고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범인은 집안에서 다이아몬드와 순금 거북이를 비롯해 5000만원 상당의 물품을 훔쳐 달아났다. 범인이 집을 떠난 후에도 가사도우미는 도둑이 들었다는 사실을 한동안 알지 못했다.

여기까지는 완벽한 대도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치밀하지는 못했다. 이 회장 집 주변 CCTV화면에서 정씨는 자주 등장했다. 사건에 대한 언론 보도가 나온 뒤 경찰이 자신을 쫓고 있다는 걸 예상할 수 있었는데도 휴대폰을 끄지 않아 경찰에게 실시간으로 현재 위치를 제공했다.


당시 사건을 담당했던 경찰은 "범행 수법도 정씨가 1997년 벌였던 것과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1997년 성북동·한남동 고급 주택가에서 절도 행각을 하고 해외로 도피했다가 2006년 검거돼 징역형을 선고받은 뒤 지난해 7월 출소한 정씨는 결국 사건발생 14일 만에 충북 영동군 경부고속도로 황간휴게소에서 경찰에게 체포됐다.

보기보다 허술한
성북동 보안상태

경찰은 정씨를 체포한 뒤 정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검찰은 증거부족을 이유로 기각했다. 이에 경찰은 정씨가 훔친 금품을 홍콩 마카오에서 처분한 행적을 확인하고 현지에 수사관을 급파해 전당포에 맡긴 일부 장물과 장물을 처분한 돈으로 추정되는 현금 1100만원등 증거물을 추가로 확보한 뒤 이를 바탕으로 구속영장을 재신청, 결국 정씨는 구속됐다.

정씨가 체포되던 날 또 다른 절도미수범인 전모씨도 경찰에 붙잡혔다. 정씨가 이 회장의 집을 털기 불과 15일 전 전씨는 한종우 국민대 이사장 자택에 창문을 통해 침입해 물건을 훔치려다 이사장에게 발각돼 격투를 벌이고 달아났다.

전씨는 비탈길이 많은 성북동 특성상 담장이 낮은 경우가 많은 것을 이용해 손쉽게 안으로 침입했다. 방범용 CCTV 또한 주로 골목 입구나 대문 앞에만 설치돼 있어 담장 쪽은 상대적으로 치안이 허술했다. 게다가 전씨가 열린 창문을 통해 집 안으로 들어가 경비업체의 경보시스템도 작동하지 않았다.

당시 경찰은 CCTV에서 맑은 날에도 우산을 쓰고 다닌 60대 남자를 추적, 절도 전과 6범의 전씨임을 확인하고 그를 검거했다.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경찰 조사를 통해 드러났다. 전씨가 평소엔 교회 장로로 활동하는 등 '이중생활'을 해온 사실이 뒤늦게 알려진 것. 전씨의 부인과 이웃들은 그를 '착하고 마음 여린 사람'으로만 알고 있었다.

부자들 웃고 있어도 눈물 나는 이유 왜?
상당수 신분 노출 꺼려…도둑들 ‘안심’

착하고 신앙심 깊은 남편이라 믿고 살아온 전씨 아내는 경찰조사에서 "남편이 일주일에 이틀은 새벽녘에 귀가하곤 했다"며 "얼마 전에는 갑자기 진주목걸이를 선물로 주기에 이상하다고 생각했다"고 진술했다. 전시는 경찰 조사 과정 내내 눈물을 흘린 것으로 알려졌다.

절도사건은 우리주변에서 너무도 흔하게 발생한다. 경찰범죄통계에 따르면 전국 절도 발생수는 2003년 18만7352건, 2005년 15만5311건, 2005년 18만8780건, 2006년 19만2670건, 2007년 21만2458건 순으로 꾸준히 증가해 왔다. 2007년 기준 빈집에 대한 침입절도는 3만6392건으로 17%에 해당한다. 주변에서 절도피해가 발생하면 대부분 피해자는 절도사실을 경찰에 알리고 피해 물품을 돌려받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하지만 지금껏 성북동에서 발생한 절도사건에서는 이런 적극적인 모습의 피해자들을 거의 발견할 수가 없다.

지난 2008년 10월17일 발생한 강성천 당시 한나라당 의원의 집 절도사건이 대표적이다.

사건은 당시 새벽 3시께 서울 마포구 성산동에 위치한 강 전 의원의 집에 도둑이 들면서 시작됐다.

신고를 받은 경찰은 즉시 현장으로 출동했고 조사 결과 "도둑은 강 의원의 가족이 잠든 사이 다용도실 창문을 통해 침입했으며, 현금 155만원과 500만원권 수표 1매, 100만원권 수표 3매, 10만원권 수표 80매, 여성용 명품 손목시계 1개, 1캐럿 짜리 다이아 반지 1개 등 약 1억원 상당의 금품을 훔쳐 달아났다"고 밝혔다.

여기까진 문제가 없었다. 문제는 당시 SBS <8시 뉴스>에서 불거졌다. <8시 뉴스>는 2008년 11월8일 "모 의원이 도난당한 금품 가운데 귀금속 등은 국회의원 재산신고 내역에 없는 것들이다" "신고 몇 시간 뒤 피해 의원측은 도난당한 물건이 없다며 수사를 의뢰하지 않겠다고 밝혀 경찰에 절도 사건으로 접수되지 않았다" "해당 의원은 개 짖는 소리에 놀라 가족들이 신고한 것일 뿐 도둑이 든 적은 없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이를 두고 누리꾼들이 문제를 제기했고 결국 강 전 의원은 다음 날인 9일 보도자료를 통해 해당 의원이 자신임을 밝히면서 "절도 사건을 경찰에 신고한 후 신고를 취소하거나 수사요구를 철회한 바 없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절도사실 사건발생
한달 만에 알려져

누구 말이 맞든 강 전 의원의 집에 침입했던 도둑은 어디선가 웃고 있었을 것이다.

천 회장 집 절도사건도 마찬가지다. 사건은 지난달 22일 발생했는데 알려진 것은 한 달 뒤인 지난 21일이다. 경찰은 피해자가 사실을 알리지 말아달라는 부탁이 있어 사실을 숨길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사건이 알려졌음에도 이웃들과 동네 주민들은 아직까지도 '쉬쉬'하는 분위기다. 뭔가 '냄새'가 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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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징대는’ 북한 도발의 이면

‘징징대는’ 북한 도발의 이면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북한의 도발 방식이 다각화되고 있다. 전형적인 미사일 도발에 이어 사이버 공격을 감행하나 싶더니 최근에는 오물을 투척했다. 윤석열정부는 북한의 거듭된 도발에 강경 대응으로 맞섰다. 잦아진 북한의 도발, 그 노림수는 무엇일까? 80여년의 세월은 두 나라의 공통점을 차근차근 지워냈다. ‘한민족’ ‘동포’라는 말을 사용하긴 하지만 과거보다 유대감은 옅어졌고 소속감은 사라지고 있다. 세월이 흐르면서 이산가족 역시 줄어드는 추세다.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이 마주한 현주소다. 분단 79년 다른 나라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은 2001년부터 2022년까지 14번에 걸쳐 통일 시기에 대해 물었다. 전국 18세 이상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는 전체적인 경향에서는 큰 변화가 없었다. 모든 조사에서 응답자의 과반이 ‘(통일은) 10년 후쯤 점진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답했다. 2011년 김정일 전 노동당 총비서 사망, 2013년 12월 장성택 전 정치국위원의 숙청 발표 때 ‘통일되지 않는 것이 낫다’는 응답이 다른 조사에 비해 높았던 것을 제외하면 전반적인 경향은 10년 넘게 변화가 없었다. 오히려 눈에 띄는 점은 연령별 양극화였다. 2022년 조사에서도 응답자의 57%가 통일 시기를 10년 후쯤으로 답했다. ‘(통일이) 빨리 이뤄져야 한다’가 19%, ‘통일되지 않는 것이 낫다’가 19%로 나타났다. 의견을 유보한 비율은 5%였다. 큰 틀에서는 이전 조사와 비슷했지만 18~29세, 30대 등 젊은 층에서 ‘통일되지 않는 것이 낫다’는 비율이 평균치를 웃돌았다. 각각 29%, 30%의 수치를 기록했다. 젊은 층 3명 가운데 1명은 통일에 대한 거부감을 드러낸 것이다. 반면 70대 이상에서는 ‘(통일이) 빨리 이뤄져야 한다’는 답변이 39%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젊은 층에서 통일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으로 나타나는 이유로는 북한과의 관계가 손꼽힌다. 그간 정부의 성향에 따라 북한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진보 성향의 정부는 대화를 통해 전쟁을 억제하는 방향으로 대북정책을 전개했고 보수 성향이 짙은 정부일수록 강경 대응 방식을 취했다. 북한 역시 대화 상대의 성향에 따라 전략을 달리하는 식으로 대응해 왔다.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문재인정부의 대북정책을 따르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문정부는 미국과 중국 사이를 줄타기하면서 북한과의 대화 물꼬를 트고 평화 체제를 유지하는 방향의 대북정책을 고수했다. 이 과정서 한국이 미국, 중국, 북한과의 관계를 주도하는 이른바 ‘한반도 운전자론’을 전면에 내세웠다. 미사일·GPS·오물 다양한 도발 정부, 군사합의 효력 전면 정지 반면 윤석열정부는 한미동맹을 기반으로 한‧미‧일 체제를 공고히 다지면서 북한을 압박하는 형태의 대북정책을 펼치고 있다. 실제 윤 대통령은 한미, 한일관계에 공들이는 것에 비해 중국, 북한과는 거리를 두는 모양새다. 눈에 띄는 점은 북한의 대응이다. 북한은 최근 들어 다양한 방식으로 도발 수위를 높이고 있다. 지난달 28일 밤부터 29일까지 거름과 쓰레기 등을 담은 오물 풍선이 우리나라 쪽으로 날아왔다. 이른바 ‘오물 풍선’으로 이날 북한이 살포한 풍선은 260여개로 집계됐다. 오물 풍선은 지난 1~2일 사이에도 날아왔다. 합동참모본부(이하 합참)에 따르면 1일 밤 8시경부터 다음 날 오후 2시30분 기준 전국서 720여개의 오물 풍선이 식별됐다. 오물 풍선은 항공기 운항에도 영향을 미쳤다. 인천국제공항공사에 따르면 2일 오전 제1활주로와 제2활주로 사이 상공서 오물 풍선이 두 차례 확인돼 운항이 일시적으로 중단됐다. 전날에도 제3활주로와 제4활주로 사이에 낙하한 오물 풍선을 수거하느라 일정 시간 동안 항공기가 이착륙하지 못했다. 결항된 항공편은 없었지만 자칫 대형사고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었다. 북한은 오물 풍선에 이어 탄도미사일을 대거 발사하는 등 무력 도발을 이어갔다. 지난달 30일 합참은 “오늘 오전 6시14분께 북한 평양 순안 일대서 동해상으로 발사된 단거리 탄도미사일(SRBM) 추정 비행체 10여발을 포착했다”고 밝혔다. 그동안 시험발사 명목으로 탄도미사일을 발사한 적은 있지만 이렇게 무더기로 쏜 것은 이례적이다. 합참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명백한 도발 행위로 강력히 규탄한다”며 “군은 굳건한 한미연합 방위 태세하에 북한의 다양한 활동에 대해 예의주시하면서 어떠한 도발에도 압도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능력과 태세를 유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거듭된 공세 강경한 대응 북한은 지난달 17일에도 300㎞를 날아간 단거리 탄도미사일 1발을 발사했다. 북한은 위성항법장치(GPS) 교란 공격도 자행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정통부)에 따르면 지난달 29일 오전 5시50분부터 발신지가 북한의 강령과 옹진으로 추정되는 전파 교란 신호가 3일까지 누적 1500건에 육박했다. 발신지가 북한으로 추정되는 전파 교란 신호가 연평·인천·강화·파주의 과기정통부 전파감시시스템에 유입됐다가 중단되길 반복한 것이다. 지난달 31일 기준 932건으로 집계됐는데 주말 새 550건이 늘어 1482건으로 나타났다. GPS 전파 혼신 신고 건수를 대상별로 분류하면 항공기 507건, 선박 975건 등이다. 실제 피해로 이어진 사례는 다행히 발생하지 않았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북한의 GPS 교란 전파가 산과 같은 지형지물을 넘기 힘들어 수도권 등 국민의 일상생활에까지 영향을 미치기는 힘들 것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북한의 다각화된 도발에 정부는 강경 대응에 나섰다. 윤정부는 지난 4일 남북 간 적대 행위를 금지하는 9‧19 군사합의 효력을 전부 정지시켰다. 오물 풍선 사태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9‧19 군사합의의 효력이 정지되면서 대북 확성기 방송, 군사분계선 일대의 군사훈련 등이 가능한 여건이 마련됐다. 9‧19 군사합의는 2018년 8월19일 문재인 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간 회담서 채택한 ‘9월 평양공동선언’의 부속 합의로 남북 간 적대 행위를 금지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북한은 지난해 11월 이미 전면 파기를 선언했고 윤정부도 같은 달 효력을 일부 정지했다. 북한이 오물 풍선, GPS 교란 등의 도발을 거듭하자 전면 정지로 맞대응에 나선 것이다. 미국도 규탄 국제기구에 지난 3일 대통령실은 김태효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처장 주재로 NSC 실무조정회의를 열고 “남북 간 상호 신뢰가 회복될 때까지 9‧19 군사합의 전체의 효력을 정지하는 안건을 국무회의에 상정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지난 5일 국무회의서 의결된 9‧19 군사합의 전부 효력정지안을 재가했다. 이 같은 조치는 북한의 도발을 더 이상 좌시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외교부는 북한의 GPS 교란 공격에 대해 국제기구에 문제를 제기했다. 임수석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 4일 “최근 북한의 GPS 교란과 관련해 정부는 유관 부처 간 긴밀한 협의하에 유관 국제기구를 통해서도 이 문제를 제기하는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부가 밝힌 국제기구는 국제전기통신연합(ITU),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국제해사기구(IMO) 등 3곳이다. 정부는 2016년 3월 북한이 GPS 교란 전파를 발사했을 때에도 이들 기구에 문제를 제기했으며 각 기구는 비판 성명을 채택하거나 교란 중단을 촉구하는 서한을 발송한 바 있다. 미국도 반응했다. 미 국무부는 북한의 오물 풍선 살포에 대해 “역겨운 전술”이라고 규탄했다. 매슈 밀러 국무부 대변인은 “이것은 분명히 역겨운 전술”이라며 “무책임하고 유치하니 북한은 이를 그만둬야 한다”고 말했다. 앞서 베단트 파텔 국무부 부대변인도 “우리는 어떤 형태의 비행 물체든 불안정을 초래하고 도발적인 것이라고 본다”며 한국, 일본과 긴밀한 대응 논의를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의 계속된 도발에 윤정부가 9‧19 군사합의 전면 효력정지로 맞서자 정치권이 술렁이고 있다. 윤정부의 강경 대응에 따른 입장이 엇갈리고 있는 것.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9‧19 군사합의 전면 효력정지 안건이 국무회의에 상정되기 전 “오물 풍선을 보낸 북한 행태는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이 문제에 대한 윤석열정부의 대응은 정말 유치하고 졸렬하다”고 지적했다.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한반도 긴장 수위를 높여 정권이 처한 위기를 모면하려는 나쁜 대책이라는 설명이다. 내부 상황 안 좋아 외부로 눈 돌렸나? 반면 국민의힘은 환영의 뜻을 전했다. 국민의힘은 “북한은 올해만 6차례에 걸친 탄도미사일을 발사했고 1000여개의 오물 풍선을 살포해 우리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고 재산 상의 피해를 초래했다”며 “북한의 몰상식하고 치졸한 도발행위에 대해 강력히 규탄하며 향후 이로부터 발생하는 모든 사태에 대해서는 북한 당국이 책임져야 한다는 것을 엄중히 경고한다”는 내용의 결의문을 발표했다. 일각에서는 북한의 도발과 윤정부의 대응에 모두 노림수가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된다. 외부의 적을 만들어 내부 상황을 감추려 한다는 설명이다. 양쪽 모두 국면전환을 위한 일종의 ‘노림수’라는 말이 흘러나오고 있다. 실제 북한의 경우 정찰위성 발사 실패, 경제난 등을 겪고 있다. 북한은 지난달 27일, 밤 군사정찰위성 2호기를 발사했다. 하지만 1호기 발사 때와 달리 비행 과정서 폭발했다. 사실상 실패한 것이다. 합참에 따르면 우리 군은 이날 밤 10시44분경 북한이 평안북도 동창리 일대서 서해 남쪽 방향으로 발사한 ‘북 주장 군사정찰위성’으로 추정되는 항적 1개를 포착했다. 해당 발사체는 밤 10시46분경 북한측 해상서 다수의 파편으로 탐지됐다. 비행 과정 중 폭발, 실패가 추정되는 대목이다. 북한이 군사정찰위성을 쏜 것은 지난해 11월21일 이후 6개월여 만이다. 당시 북한은 3번의 시도 끝에 1호기를 궤도에 올리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북한 군사정찰위성 만리경 1호는 정찰 등의 역할은 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호기 발사가 북한에 중요했던 이유다. 이번 실패로 김정은 위원장의 군사정찰위성 추가 발사 계획에 차질이 불가피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여기에 경제난으로 북한 주민의 불만이 누적되고 있는 점도 북한 입장에서는 차단해야 할 부분이었다는 것이다. 결국 우리나라와의 군사적 긴장 수위를 높이는 방법으로 위기 상황을 모면하려 한 게 아니냐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주거니 받거니 짜고 치는 쇼? 내부 상황만 놓고 보면 윤정부도 녹록지 않다. 윤정부는 4‧10 총선서 패한 이후 거듭된 이슈로 수세에 몰리는 중이다. 윤 대통령의 지지율은 20% 초반 박스권에 갇혀 반등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 채 상병 특검, 의료개혁, 김건희 여사 사건 등 곤혹스러운 이슈들이 산재한 상황이다. 문제는 북한 이슈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과거와는 달리 현저하게 떨어져 있다는 점이다. 북한이 미사일을 쏘면 정국이 요동치고 북한 내부에 문제가 발생하면 관심도가 높아졌던 때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며칠만 ‘반짝’ 이슈화됐다가 사라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국과 북한이 마주한 현주소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