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7년 만에 빅리거 김하성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21.01.04 09:56:42
  • 호수 130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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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팀서 월드시리즈 정조준!

[일요시사 취재2팀] 최현목 기자 = ‘평화왕자’ 김하성이 꿈을 이뤘다. KBO리그 최고 유격수를 꼽는 각종 토론에서 이견 없는 최고 유격수로 뽑혀 평화왕자라는 타이틀을 얻은 김하성은 포스팅 시스템을 통해 메이저리거로 발돋움하는 데 성공했다. 행선지는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지난해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강팀이다. 올해 야구팬의 볼거리가 또 하나 늘었다.
 

▲ 7년 만에 메이저리그에 입성하는 김하성

야구팬들에게 희소식이 전해졌다. MLB닷컴은 지난달 29일(한국시각) “김하성이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 입단에 합의했다. 아직 구단은 계약에 대해 함구하고 있다. 피지컬 테스트가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계약 규모도 알려지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MLB닷컴 외에도 수많은 외신들이 김하성의 샌디에이고 입단 소식을 앞다퉈 전했다.

국내 최고
유격수 출격

디애슬레틱의 데니스 린 기자는 현지 취재진 중 가장 먼저 자신의 트위터에 “김하성이 샌디에이고 입단에 합의했다”고 썼고, MLB네트워크의 존 헤이먼 역시 트위터를 통해 “김하성이 샌디에이고와 최소 4년 이상의 계약을 한 것으로 보인다. 김하성은 2020년 키움 히어로즈에서 30홈런을 치며 유격수와 3루수로 뛰었다”고 설명했다.

김하성은 포스팅 시스템(자유계약 자격이 없는 선수가 메이저리그에 진출하기 위해 소속 구단의 동의를 얻는 제도)을 거쳐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역대 5번째 한국 선수로 이름을 올리게 됐다. 

첫 번째는 토론토 블루제이스 소속 류현진 투수. 한화 이글스에서 에이스로 활약하던 류현진은 지난 2012시즌을 마친 뒤 포스팅 시스템을 거쳐 LA 다저스와 6년 3600만달러에 계약했다. 당시 다저스가 지불한 포스팅 비용 2573만7373달러33센트(한화 약 280억원)를 합하면 그 규모는 더 커진다.


류현진은 메이저리그 진출 이후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이는 국내 선수들의 메이저리그 진입장벽을 낮추는 효과로 이어졌다. 류현진 이후 야수인 강정호와 박병호가 메이저리거의 꿈을 이뤘다.

투수인 김광현 역시 지난 2019년 12월 포스팅 시스템을 거쳐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 입단, 선발 로테이션에 진입하며 연착륙했다.

김하성이 선배들의 뒤를 이어 역대 5번째로 포스팅 시스템을 거쳐 메이저리그에 진출하는 데 성공했다. 프로 데뷔 7년 만이다. 지난 2014년 넥센(현 키움) 히어로즈는 2차 3라운드 29순위로 김하성을 지명했다.

역대 5번째 포스팅 통해 MLB 직행
꾸준한 성장, 강정호 넘을 만하다!

입단 첫해 김하성은 백업 내야수와 대주자 요원이었다. 김하성의 주 포지션인 유격수 자리에는 강정호라는 거대한 산이 위치하고 있었다. 강정호는 2014년 시즌 117경기에 출전해 타율 0.356(4위), 40홈런(2위), 117타점(3위)이라는 어마어마한 성적을 남겼다. 장타율과 OPS(출루율+장타율)는 전체 1위였다.

반면 김하성은 단 60경기에 출전해 타율 0.188, 2홈런, 7타점을 기록하는 데 그쳤다. 프로 무대는 녹록지 않았다.

부진한 데뷔 시즌에도 구단은 김하성을 차기 주전 유격수로 점찍었다. 강정호는 2014년 시즌이 끝난 후 메이저리그에 도전하겠다는 뜻을 구단에 전했기 때문이다. 당시 히어로즈를 이끌던 염경엽 감독과 홍원기 코치는 김하성을 지도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강정호는 결국 포스팅 시스템을 통해 메이저리그 진출에 성공했다. 김하성에게 기회가 열린 것이다. 2015시즌부터 김하성은 팀의 유격수 자리를 꿰찼다. 김하성은 그해 140경기에서 타율 0.290, 19홈런, 73타점을 기록하는 맹활약을 펼쳤다. 아쉽게 신인왕 수상에는 실패했지만, 구단의 기대에는 충분히 부응했다.

이후 김하성은 지속적으로 성장했다. 웨이트트레이닝 등을 통해 힘을 키웠다. 이를 통해 2016년 시즌에 20홈런, 28도루를 수확, 호타준족의 상징인 20홈런-20도루 클럽에 가입했다. 2017년에는 타율 0.302, 23홈런, 114타점으로 데뷔 후 처음으로 3할 타율을 넘어섰다. 
 

2018년에는 타율 0.288, 20홈런, 84타점의 성적으로 각 포지션 최고의 선수에게 수여하는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2019년에도 타율 0.307, 19홈런, 104타점을 올리며 다시 한 번 골든글러브 수상자에 이름을 올렸다. 

김하성은 강정호를 이어 30홈런 이상 치는 유격수의 계보를 이을 선수로 주목받았다. 그리고 이는 2020년 시즌에 현실이 됐다. 그해 김하성은 타율 0.306, 30홈런, 109타점이라는 개인 최고 시즌을 만들어냈다. 메이저리그 올스타 출신 에디슨 러셀이 시즌 중 합류함으로써 김하성은 유격수와 3루수를 오가야 하는 상황에서도 최고의 활약을 펼쳤다.

부진한 데뷔
강정호 가고…

김하성이 7시즌 동안 기록한 KBO리그 통산 성적은 타율 0.294, 133홈런, 575타점이다. 이는 강정호가 9시즌 동안 기록한 타율 0.298, 139홈런, 545타점과 비교해 전혀 손색이 없는 성적이다. 강정호의 뒤를 이어 진출에 성공한 김하성에 대해서도 메이저리그에서의 좋은 성적을 기대케 하는 이유다.

김하성은 국제대회에서도 활약했다. 2017년부터 태극마크를 달고 뛰었다. 그해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출전을 시작으로 2017 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APBC)에 참가했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에서는 금메달 획득에 선봉장 역할을 했다.

가장 최근 국제대회인 2019 WBSC 프리미어12에서도 김하성은 주전 유격수로 뛰었다. 

김하성은 포스팅 시스템 참가 자격인 데뷔 시즌 1군 등록일이 부족하다. 그럼에도 포스팅 시스템을 거칠 수 있었던 이유는 국제대회 출전으로 1군 등록일수 혜택을 받은 덕분이다. 결국 김하성은 지난 11월 말, 소속팀 키움을 통해 메이저리그 포스팅 공시를 요청하며 꿈을 향해 나아갔다. 

복수의 구단이 김하성에게 관심을 보였다. 토론토 블루제이스와 텍사스 레인저스, 보스턴 레드삭스, 뉴욕 메츠 등 국내 팬들에게도 익숙한 구단들이 달려들었다. 결국 김하성은 내셔널리그(아메리칸리그와 함께 메이저리그의 양대 리그 중 하나) 서부 지구에 속해 있는 샌디에이고의 유니폼을 입고 새로운 꿈을 펼칠 전망이다.

김하성은 피 튀기는 경쟁을 앞두고 있다. 샌디에이고는 메이저리그에서도 최상급으로 꼽는 내야진을 갖춘 팀이다. 3루수 매니 마차도는 올스타로 네 차례나 뽑힌 슈퍼스타다. LA 다저스 소속이던 마차도는 지난 2019년 샌디에이고와 계약 기간 10년, 총액 3억달러(약 3385억원)에 계약했다. 이는 김하성의 계약금보다 훨씬 많은 금액이다.

메이저리그는 성적이 부진하더라도 연봉이 높은 선수를 우선 기용한다.


스타군단
일원으로

1루는 에릭 호스머가 차지하고 있다. 9시즌 통산 타율 0.278, 176홈런, 770타점을 거둔 팀의 주포다. 파워가 약하다는 지적을 받지만, 4번의 골드글러브(메이저리그에서 가장 뛰어난 수비수에게 주는 상)를 받을 정도로 안정적인 수비를 자랑한다. 이런 성적을 앞세워 호스머는 샌디에이고와 지난 2018년에 계약 기간 8년, 총액 1억4400만달러(약 1700억원)에 계약했다.

김하성의 주 포지션인 유격수 자리에는 빅리그 2년 차에 ‘최정상급 내야수’로 성장한 페르난도 타티스 주니어가 자리하고 있다. 메이저리그 최고의 유격수 유망주로 평가받던 타티스 주니어는 지난해 코로나19로 인한 단축 시즌임에도 59경기 타율 0.277, 17홈런, 45타점이라는 괄목할만한 성적을 거뒀다.

특별한 일이 발생하지 않는 이상 샌디에이고의 주전 유격수는 타티스 주니어가 될 예정이다.

결국 김하성은 제이크 크로넨워스와 2루수 자리를 두고 경쟁을 펼칠 전망이다. 크로넨워스는 지난 시즌 54경기 타율 0.285, 4홈런, 20타점을 기록해 내셔널리그 신인왕 투표에서 공동 2위를 차지했다. 8경기(39이닝)에 출전해 3승(1세이브), 평균자책점 1.62, 탈삼진 24개를 따냈음에도 신인왕 투표 최종 순위에 오르지 못한 김광현보다 높은 평가를 받았다.
 

크로넨워스가 버티고 있지만, 김하성이 비집고 들어갈 틈은 존재한다. 바로 크로넨워스의 부진한 좌투수 상대 성적이다. 우투좌타인 크로넨워스는 지난 시즌 좌투수 상대 타율은 0.218에 불과하다. 만약 제한된 기회 속에서 김하성이 좌투수 상대 성적을 끌어올릴 수 있다면, 출전기회는 시즌이 지날수록 더욱 많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포지션을 변경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외야수로의 전향이다. 이는 김하성과 크로넨워스 두 선수 모두에게 해당된다. 디애슬레틱 데니스 린 기자는 “샌디에이고는 크로넨워스뿐 아니라 김하성에게까지 외야수로의 포지션 변경을 고려할 것이다. 크로넨워스는 내야수가 아닌 포지션은 거의 경험해 보지 못했다. 김하성 역시 공식적으로 외야수로 뛴 적이 없다. 지명타자 도입이 가장 도움이 될 수도 있다”고 예상했다. 

팀내 주전 경쟁 불가피
‘타도 다저스’ 선봉장?

투수가 타석에 들어서는 내셔널리그는 지난해 아메리칸리그의 지명타자 제도를 도입해 시즌을 치렀다. 시즌 초반에는 내셔널리그 감독 및 선수들을 중심으로 불만의 목소리가 나왔지만, 이후 오히려 지명타자 제도를 내셔널리그에도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 시즌 월드시리즈 우승 감독인 LA 다저스 데이브 로버츠 감독은 “투수도 타석에 들어가야 한다는 오랜 규칙에 집착했었지만, 지금은 지명타자 제도도 괜찮다고 생각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콜로라도 로키스의 버드 블랙 감독 역시 “내셔널리그의 지명타자 제도 도입을 반대했다. 지금은 마음이 바뀌었다. (과거에 비해) 구속이 빨라지고 변화구가 날카로워졌다. 타석에서 팀에 도움이 되는 투수는 거의 없다”고 설명했다.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다음 시즌에서 내셔널리그에 지명타자 제도를 도입할지 여부를 확정하지 않았다. 만약 지명타자 제도가 내셔널리그에 도입된다면 김하성의 출전 시간 역시 늘어날 전망이다. 

샌디에이고는 ‘타도 다저스’를 천명했다. 다저스는 지난 시즌 32년 만에 월드시리즈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반면 샌디에이고는 와일드카드 시리즈에서 김광현이 속한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를 눌렀지만, 디비전 시리즈에서 탈락하는 아픔을 겪었다. 당시 샌디에이고를 꺾은 상대가 바로 다저스였다. 샌디에이고 입장에서는 같은 지구인 다저스를 누르지 않고서는 월드시리즈 진출을 노려볼 수 없는 상황이다. 

이에 샌디에이고는 영입 시장에서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김하성을 영입하기 전 탬파베이 레이스의 에이스 블레이크 스넬을 트레이드로 영입했다. 스넬은 2018년 아메리칸리그 사이영상(각 리그 최고의 투수에게 주는 상) 수상자다. 이어서 샌디에이고는 시카고 컵스의 일본인 투수 다르빗슈 유와의 트레이드에도 합의했다.

서부 지구
박 터진다

다르빗슈는 지난 시즌 내셔널리그 사이영상 2위를 차지한 에이스다. 

샌디에이고는 여기서 그칠 생각이 없는 듯하다. 지난 시즌 내셔널리그 사이영상 수상자인 신시네티 레즈의 트래버 바우어 영입전에 뛰어들었다. 샌디에이고 A.J. 프렐러 단장은 현지에서 ‘매드맨’으로 불리고 있다.

만약 샌디에이고가 바우어까지 손에 넣는다면 바우어-다르빗슈-스넬-다넬슨 라멧으로 이어지는 사이영상 투수진이 꾸려진다. 이미 호스머-김하성-크로넨워스-타티스 주니어-마차도로 이어지는 막강 화력의 타선을 구축한 상태다. 당장 월드시리즈 우승을 노려볼만한 로스터 구성이다.

MLB닷컴은 지난달 30일(한국시각) “즉시 전력감 다수를 영입한 샌디에이고는 새 시즌 대체선수 대비 승리기여도(WAR)에서 선두권으로 뛰어올랐다”며 “지난 시즌 월드시리즈 우승팀이자 같은 지구팀인 다저스를 추격했다”고 밝혔다.

과연 김하성은 메이저리그에서 어떤 성적을 기록할 것인가. 야구 예측 시스템 ZiPS(SZymborski Projection System)는 “김하성의 2020년 KBO리그 성적을 메이저리그 성적으로 변환하면 타율 0.274, 출루율 0.345, 장타율 0.478, 24홈런, 17도루가 된다”고 내다봤다. 

이는 메이저리그 주전은 물론 올스타를 노려볼만한 성적이다. 김하성은 내년에 만 25세로, 젊은 나이다. 선수로서의 전성기를 시작할 시점이다. 김하성은 KBO리그에서 부상 없이 활약을 꾸준히 펼쳤다. 만약 이러한 기세가 메이저리그에서까지 이어진다면, KBO리그 출신의 타자 중 최초로 메이저리그 올스타에 선정되는 장밋빛 미래를 그려볼만하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미 분석가의 김하성 성공요건

김하성의 메이저리그 진출이 확정된 가운데 미국 현지 매체가 김하성의 성공요건으로 그의 빠른 공 대처 능력을 꼽았다.

미국 야구 통계사이트 ‘팬그래프닷컴’은 지난해 12월30일 “KBO 리그에는 시속 88~90마일(142~145km)대 속구를 던지는 투수들이 많고 드물게 접한 95마일(153km)이 가장 빠른 공이었을 것”이라며 “김하성은 이제 매일 95마일대 강속구를 공략해야 하는데, 적응 기간이 필요할지 모른다”고 짚었다.

타구 속도도 높여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지난 시즌 김하성의 가장 빠른 타구 속도는 105마일 정도였는데, 이는 메이저리그 기준으로 하위권이라는 것.

결국 메이저리그 강속구 투수들을 상대로 얼마나 선전할지가 관건이다.

실제로 김하성보다 먼저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박병호는 메이저리그 투수들의 빠른 공에 적응하지 못하고 씁쓸하게 KBO 리그로 복귀했다.

다만 이 매체는 김하성이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에서 메이저리그에서 적응에 성공할 가능성을 높게 점쳤다.

김하성에게 기회가 충분히 주어질 예정이기 때문이다.

샌디에이고의 홈구장인 펫코파크가 우타자에게 친화적이라는 점 역시 긍정적이다.

다만 생소한 경기장 환경으로 김하성이 어느 정도의 수비력을 보여줄지가 관건이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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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