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구영신 특집> ‘키워드로 본’ 2020 연예계 핫이슈

환희의 순간부터 최악의 장면까지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2020년이 저물어간다. 전염병이 몰아친 올해에도 연예계에는 예년과 다름없이 크고 작은 사건이 벌어졌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과 BTS의 ‘다이너마이트’가 전 세계를 휩쓴 영광의 순간도 있었던 한편, 마약·도박·갑질로 얼룩진 연예계의 어두운 그림자도 짙었던 한 해였다. 
 

 

올해 초 갑작스럽게 시작된 코로나19로 인해 전 세계가 신음하고 있다.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불편해지는 심리, 인적이 드문 거리, 사라진 콘서트와 공연, 가뭄에 콩 나듯 나오는 영화, 확진자로 인한 방송국 폐쇄, 점점 더 활발해지는 유튜브와 OTT 등 갑작스럽게 변해버린 일상에서 국민들은 사투를 벌여나가고 있다.

완전히 달라진 세상 속에서도 연예계의 시계는 돌아가고 있다. 많은 사람이 모이고 관심을 두는 연예계에는 환희와 영광, 경쟁과 갈등, 감동과 슬픔이 버무려진 희로애락도 이어지고 있다. 키워드를 통해 2020년 연예계 이슈를 짚어봤다.
 
<기생충>

지난 2월 한국 영화계에 새 역사가 쓰였다. 지난해 칸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영화 <기생충>이 프랑스를 넘어 영화산업의 본고장이라 할 수 있는 미국에서 최고의 성적을 거뒀다. <기생충>은 오스카로 불리는 제92회 아카데미시상식에서 작품상과 감독상, 각본상, 국제영화상까지 총 4관왕을 달성하는 기염을 토했다. 

봉준호 감독이 연출한 <기생충>의 쾌거는 한국 영화 100년 역사 중 가장 기념비적인 순간이자, 세계 영화사에서도 다시 쓰이기 힘든 대기록이기도 하다.

아카데미 역사상 외국어 영화가 작품상을 받은 것도, 작품상과 국제영화상을 동시에 받은 것도 처음이다. 한 사람이 한 작품으로 4개의 트로피를 받은 것도 최초다. 황금종려상 수상작이 아카데미 작품상을 동시에 받은 것은 1955년 개봉한 <마티> 이후 65년 만의 기록이다. 
 

▲ 기생충 봉준호 감독

봉 감독은 감독상 수상 소감에서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라는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발언을 인용해 그에게 헌사를 전하며 전 세계 영화인에게 감동을 전했다.
 
트로트

지난해 TV조선 트로트 오디션 <미스트롯>이 좋은 결과를 내면서 서서히 기지개를 편 트로트 예능프로그램은 한국 방송가를 장악했다. 지난해 연말부터 MBC <놀면 뭐하니?>의 유재석이 부캐 유산슬로 트로트 바람이 시작됐고, TV조선 <미스터트롯>은 35%가 넘는 시청률로 신드롬을 일으켰다.

임영웅, 영탁, 이찬원, 김호중, 장민호 등 상위권에 랭크된 가수들은 국내 가요·예능계를 휩쓰는 주역이 됐다. 한동안은 <미스터트롯> 출연진이 나오는 곳이면 시청률이 두 배 이상 뛰는 기현상도 벌어졌다. 

트로트가 바람을 일으키자 모든 채널은 트로트 오디션을 론칭했다. MBC는 <트로트의 민족>, SBS는 <트롯신이 떴다>, KBS는 <전국 트롯체전>을 선보였다. 감정이 과하게 섞인 창법이나 다소간 과장된 퍼포먼스는 젊은 연령층에겐 외면받지만, 40대 이상 연령대에서 트로트는 여전히 최고의 프로그램으로 주목받고 있다.

언택트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인해 올해 연예계에 들이닥친 가장 큰 변화는 언택트(Untact)다. 비대면과 비접촉을 지향하는 언택트는 여러 사람이 모여 진행되는 제작발표회와 쇼케이스 등 다양한 이벤트를 온라인 생중계 형식으로 바꿨다.

작품 종영 이후 진행되던 인터뷰도 화상 형태로 바뀌는 등 소통의 방식도 변화를 맞았다. 각자 편안한 공간에서 아티스트의 이야기를 들어본다는 장점이 있지만, 그만큼 활기가 떨어졌다는 의견도 나온다.


관찰 및 여행 예능이 빗발쳤던 방송가는 스튜디오 형태의 예능만 양산하게 됐다. 다양한 나라를 활보하거나, 각 나라 고유의 음식을 먹어보는 형태의 예능은 사라졌다. 

봉준호·BTS 세계 휩쓴 K-컬쳐
트로트 뜨고 코미디 무너지고

가요계는 ‘방구석 콘서트’로 지칭되는 새로운 형태의 콘서트 문화를 만들어 인터넷을 통해 콘서트를 관람하는 방법을 창안했다. 

영화계는 유례없는 보릿고개를 겪었다. 국내 최대 멀티플렉스 기업들은 예년과 비교해 90% 이상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영화를 그 누구보다 사랑하는 한국 관객들은 코로나19 불안으로 인해 폐쇄된 공간에서 2시간 넘게 타인과 보내야 하는 영화관을 외면했다.

이런 상황에 놀란 배급사는 신작 개봉을 줄줄이 미루며 악순환을 지속하고 있다. 
 

▲ 최고의 한 해를 보냈던 가수 방탄소년단

이외에도 연극과 뮤지컬 등 공연계 역시 관객의 발길이 끊기며 최악의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집콕’ 생활이 이어지면서 넷플릭스를 비롯한 OTT 플랫폼은 유례없는 수혜를 입었다. 특히 넷플릭스는 전 세계 가입자만 1억9500만명으로, 아시아 지역 가입자 수도 꾸준히 늘고 있다. 최근 로이터를 통해 국내 유료 가입자만 330만명이 넘기며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코미디

무려 21년간 일요일 밤의 대미를 장식했던 KBS2 <개그콘서트>가 잠정 휴식에 접어들었다. 재방 기약이 없는 형태로, 사실상 폐지에 가깝다. 지난해 5월 1000회를 맞이하면서 위기설이 대두됐지만 빠르게 변화하는 미디어 시장에서 공개코미디는 뒤처진 시대의 산물로 전락했다. 

새로운 스타를 발굴하지 못했고, 화제를 모으는 코너도 전무했다. 기존의 스타 개그맨들은 각 채널의 예능이나 팟캐스트, 유튜브 등 뉴미디어로 뻗어나갔고, 그 사이 무대에 설만한 인재는 고갈됐다.

현재 tvN <코미디 빅리그>가 공개 코미디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지만, 시청률 2%에 화제성도 다른 예능에 비해 많이 처진 성적이다. 국내 최고의 코미디 장르였던 공개 코미디가 점점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그 가운데 신인 개그맨 대다수는 유튜브로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몰래카메라나 브이로그 형식을 활용해 각자 의견이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 좀 더 자유로운 형태의 방송을 제작 중이다. 일부 개그맨들은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에 출연할 때보다 훨씬 더 많은 이익을 얻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BTS

영화계에 <기생충>이 있었다면 가요계에는 그룹 방탄소년단(이하 BTS)이 있었다. BTS는 ‘다이너마이트(Dynamite)’와 피처링곡 ‘세비지 러브(Savage Love)’ ‘라이프 고스 온(Life Goes On)’으로 미국 빌보드 메인 싱글 차트 ‘핫100’ 정상에 세 번이나 이름을 올렸다. 빌보드 핫100 차트는 미국 내 라디오 방송 청취자 수, 온 디멘드 음원 다운로드 수, 유튜브 조회수 등을 합산해 순위에 반영한다.

약 3개월 사이에 세 번의 1위를 차지했으며 ‘핫100’에 1위로 진입한 두 곡을 가진 첫 듀오/그룹이라는 타이틀도 얻었다. 오스트레일리아 그룹 ‘비지스’ 이래 최단기간(2개월 3주) 1위 탈환이라는 기록도 세웠다. 

BTS는 시상식 무대에도 올랐다. 미국 대중음악 시상식 ‘2020 MTV 비디오 뮤직 어워드’에서 3관왕을 차지했고, 북미 3대 음악 시상식 ‘빌보드 뮤직 어워드’와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에서도 상을 거머쥐었다. 내년 1월 열리는 ‘그래미 어워드’에는 한국 가수 최초로 수상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논란

올해에도 눈살을 찌푸릴 만한 크고 작은 사건 사고가 연이어 터졌다. 마약과 도박처럼 불법을 저지른 연예인들이 적지 않았으며, 문란한 사생활로 인한 폭로, 성추문, 갑질 사태도 이어졌다. 


올해 가요계에서는 특히 마약 스캔들이 눈에 띈다. 가수 휘성이 프로포폴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았다. 서울 한 건물에서 수면마취제류를 투입한 후 실신한 채로 발견돼 충격을 안겼다. 이후 경찰을 통해 소변 검사 등을 진행했지만 결과는 음성으로 나왔다. 
 

▲ 개그콘서트 ⓒKBS

M.I.B 출신 래퍼 영크림을 비롯해 메킷레인 레코즈 소속사의 나플라, 루피, 블루, 오왼 등이 마약 투약 혐의로 무더기 적발됐다. 

최근에는 비투비의 멤버 정일훈이 약 5년간 가상 화폐를 통해 대마초를 구입하고 흡입한 사실이 알려졌다. 

연예계와 끊이지 않는 고리와도 같은 도박 스캔들 역시 올해도 연달아 터졌다. 지난 9월 초신성의 멤버 윤학과 성제가 필리핀에서 불법 도박 혐의로 입건됐으며, 개그맨 김형인과 최재욱도 서울에서 불법 도박장을 운영하다 적발됐다. 

코로나로 완전히 뒤바뀐 세상
마약, 도박, 성추문, 갑질도

YG엔터테인먼트의 수장이었던 양현석 대표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불법 도박을 한 혐의로 벌금 1500만원을 선고받았다. 

매년 연예인들의 잘못된 행동이 구설에 오르는 일은 올해도 어김없었다. 특히 가수 김건모, 레드벨벳 아이린, 엑소의 찬열 등 이미지가 좋았던 스타들의 명예가 폭로로 인해 구겨졌다. 

SBS <미운 우리 새끼>에서 맹활약하며 선한 이미지를 쌓은 김건모는 결혼까지 이어지는 ‘꽃길’의 행보를 걷다 성폭행 피소를 당하며 방송 활동을 접었다. 그는 피해자의 주장에 ‘사실무근’이라며 무고죄로 고소했지만, 경찰은 피해자에 대한 무고죄는 불기소로 마무리했다.
 

▲ 가수 아이린 ⓒ아이더

아이린은 화보 촬영 중 갑질을 했다는 폭로를 당해 이미지가 실추됐다. 스타일리스트 겸 에디터라고 밝힌 A씨는 아이린으로부터 충격적인 갑질을 당했다고 폭로했다. 이후 아이린과 관련한 폭로 글이 다수 올라왔고, 결국 아이린은 갑질 행태에 사과했다. 

엑소의 찬열은 과거 연인이라고 주장하는 B씨로부터 문란한 사생활을 폭로당했다. B씨는 찬열이 자신과 사귀는 중에도 다른 여성들은 물론 지인과도 잠자리를 가졌다고 폭로했고, 찬열은 묵묵부답으로 일관 중이다. 

가짜사나이

올 여름을 강타한 콘텐츠는 방송사가 아닌 유튜브 피지컬 갤러리 채널에서 만든 ‘가짜사나이’다. 인기 유튜버들이 특수부대 UDT 훈련을 체험하는 장면을 날 것 그대로 방영한 ‘가짜사나이’는 엄청난 화력을 일으키며 회당 1000만 이상의 인기를 끌었다. 

특히 훈련대장이었던 이근 대위의 “인성 문제 있어?” “4번은 개인주의야” 등 다양한 유행어를 만들며 방송가를 휘젓는 예능 블루칩으로 떠올랐다. 

‘가짜사나이’ 제작진은 CGV를 통한 관람을 비롯해 왓챠와 카카오TV 등 OTT 플랫폼과 계약을 맺으며 몸집을 불리는 등 빠른 행보를 선보이며, 새로운 콘텐츠 시대를 여는 듯했다. 

하지만 시즌2가 시작되는 과정에서 아이콘이나 다름없었던 이근 대위의 사생활 논란이 불거졌다. 또 더 많은 훈련생이 참가한 ‘가짜사나이’ 시즌2는 지나친 가혹행위와 함께 포기를 유도하는 훈련 방식을 보여주어 부정적인 여론도 들끓었다. 

여기에 추가로 교관 중 일부가 퇴폐업소를 방문하고 성 착취 행위를 저질렀다는 논란까지 일었다. 신드롬에 가까웠던 인기가 한순간에 물거품처럼 사라진 것. 이 프로젝트를 기획한 김계란은 온갖 논란에 휘말리다 급기야 시즌2 방영 중 모든 방송 공개를 중단하기로 했다.

떨어진 별

올해 국민을 가장 아프게 한 소식 중 하나는 개그우먼 박지선의 사망일 것이다. 언제나 긍정적인 언행으로 많은 사람을 즐겁게 한 박지선은 지난 11월2일 생을 마감했다. 올해 나이는 36세로 한창 아름다운 나이에 하늘로 떠난 박지선을 향해 예능계의 지인들은 물론 많은 국민이 함께 슬퍼했다. 고인은 생전 피부질환으로 힘들어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 고 박지선 ⓒSNS

잇따른 성 추문으로 얼룩진 한국 영화계의 거장 김기덕 감독도 사망했다. 김 감독은 지난달 20일 라트비아에 도착했다가, 지난 11일 코로나19 합병증으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칸과 베를린, 베니스영화제 등에서 수상하며 거장의 반열에 오른 김기덕 감독은 2017년 미투 논란에 휩싸인 이후 실추된 이미지로 인해 주로 해외에서 활동했다. 워낙 성추문 논란이 많은 탓에 그의 죽음에 대한 여론의 반응은 냉담한 편이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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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국민의힘 행사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다가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국민의힘에서 ‘보수의 김어준’을 꿈꾸는 것 같다. 전씨는 과연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했던 영향력을 단번에 얻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지난 8일, 대구 EXCO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지역 합동연설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지난 3월 창간한 <전한길뉴스> 소속 언론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선거판 난장판 하지만 전씨는 언론 취재의 한계를 넘어 반탄(탄핵 반대) 성향 후보들의 연설 도중 응원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반대로 찬탄(탄핵 찬성) 성향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들이 연설할 때마다 “내부 총질” 혹은 “배신자” 등 원색 비난을 했다. 이날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는 전씨를 직접 지칭해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지고,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정당화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투쟁할 수 있겠느냐”면서 비난했다. 그러자 전씨는 김 후보에게 욕설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격동시켰다. 찬탄 성향 조경태 당 대표 후보가 연설할 땐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들고 항의하는 등 지지자들의 조 후보 비난을 유도했다. 그러자, 찬탄 성향 일부 당원들이 전씨에게 물병을 던지면서 항의했다. 한 당원은 전씨에게 “난 20년 차 당원인데, 입당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당신이 왜 이런 난동을 부리느냐”고 따져 물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씨의 전당대회 출입을 막기 위해 대의원이 아닌 일반 당원의 행사장 출입을 금지했다. 이어 전씨에 대한 징계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자 전씨는 <전한길뉴스> 발행인 신분을 내세워 “언론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이처럼 전씨는 국민의힘 당원과 언론인이란 신분을 왕래하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개입하고 있다. 지난달 31일과 지난 7일엔 시사평론가 고성국씨 등과 함께 주최한 ‘자유 우파 유튜브 연합 토론회’에 각각 장동혁·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출연시켜 ‘면접’을 보는 위력을 국민의힘 내외에 과시했다. 특정 진영의 강경파를 대상으로 언론사·유튜브 채널 등을 운영하면서 힘을 과시하는 모델로는 방송인 김어준씨가 있다. 김씨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친문(친 문재인) 강경파 성향 당원·지지자를 대상으로 라디오·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 대표 후보들을 면접하는 형식은 김씨가 지난해 3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민주당 총선 후보자였던 이언주·전현희 의원과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출연시켜 객석의 청중에게 큰절을 시킨 것과 비슷하다. 김씨가 지난 6월 기획·진행한 ‘더 파워풀’ 콘서트엔 ▲문재인 전 대통령 ▲민주당 정청래 대표 ▲김민석 국무총리 등 다수의 민주당 내 유력 정치인이 참석했다. 입당하자마자 영향력 과시 물의 당원·언론인 오가며 전대 개입 김씨는 지난 2011년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로 활동하면서부터 민주당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왔다. 물론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한 영향력을 전씨가 단기간에 얻긴 어렵다. 이 때문인지 전씨는 국민의힘에 입당하자마자 ‘10만 당원 양병설’ 등을 주장하면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하기 위해선 당비를 3개월 이상 납부하고, 연 1회 이상 교육을 받은 책임당원이어야 한다. 전씨는 지난 6월 온라인으로 입당했고, 당 대표 후보 등록일은 지난달 30일부터 단 이틀 동안이었다. 따라서 전씨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출마 길이 막힌 전씨는 전당대회에서 당원·언론인 신분을 교차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당원들을 선동해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가 민주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주변 진영 전체를 둘러싼 질서는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 갖는 틀과 비슷하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는 견고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대전제를 토대로 “언론·문화 등 각 분야에 진지를 구축해 참호전으로써 상대 세력을 약화해야 한다”는 사상을 정리했다. 각 분야에 구축한 진지는 결정적인 시기에 전개할 기동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 구조가 뿌리내리면서 러시아 2월·10월 혁명과 같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뒤집는 혁명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람시는 주도권 다툼으로써 체제 내 혁명을 추구하는 취지의 사상을 구체화했다. 우리나라에선 소련 해체가 가시화되던 1980년대 후반부터 기존 노동운동에 문화·예술운동을 접목하는 단체가 활동하는 등 각계에서 다른 방향의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을 받치는 양대 축은 각계의 시민단체들과 진보 성향 매체들이다. 대규모 정치 이벤트가 진행될 땐 민주당 지원 사격을 맡으면서,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구축·홍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 민주당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주요 선거 등 대규모 기동전이 필요한 상황에선 각자의 진지에서 일시에 뛰쳐나와 물량을 공급하는 식이다. 이 같은 구조를 상징하는 사람이 민주당 윤미향 전 의원이다. 정의기억연대 대표로 오랫동안 활동하던 윤 전 의원은 민주당을 통해 국회의원이 됐지만, 횡령 의혹이 유죄로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같은 당 추미애 의원 등 민주당 일각에선 윤 전 의원의 사면을 강하게 지지했고, 결국 8·15 광복절특사를 통해 사면·복권됐다. 민주당과 그람시 하지만 시민단체와 매체는 대중을 직접 동원하기가 어려운 데다, 매체는 언론 고유의 한계가 있다. 시민단체 역시 시민들의 참여가 부실하다는 핸디캡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도 존재해 왔다. 이 때문에 삼각 구조를 받쳐줄 또 하나의 하부 구조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 김씨는 지난 1998년 ‘안티 <조선일보>’라는 깃발을 내걸고 <딴지일보>를 창간한 후 풍자·B급 정서·유머를 지향해오고 있다. 당시 <딴지일보>에선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찍어 먹는 용도로 내는 간장의 위생 상태를 취재해 기사화하거나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의 대권 도전 과정을 풍자하는 등 ‘신선한 B급 정서’를 지향해 독자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김씨에게 평생 따라다닐 놀림거리를 남겼다. 김씨가 <딴지일보>의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용 성인용품을 판매했고, 성인남녀의 만남을 중개하는 사이트를 개설했던 탓이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여전히 김씨를 비판하면서 당시의 전력을 함께 언급한다. 이후 김씨는 ▲황우석 박사 옹호 ▲영화감독 겸 코미디언 심형래씨 옹호 등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황 박사 옹호는 그럴 듯한 음모론을 제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 김씨의 특성과 깊이 맞물린다. 당시의 논란도 김씨에 대한 비판론을 형성하는 중심축이다. 그랬던 김씨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계기로는 크게 2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 중 1명으로 활동했단 것이었다. 김씨는 당시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거친 항의를 말리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문 전 대통령을 주목했다. 이후 김씨는 문 전 대통령의 킹메이커를 자처했고, 이는 ‘나는 꼼수다’ 진행 이후 문 전 대통령의 대세론으로 이어졌다. ‘나는 꼼수다’는 김씨 특유의 B급 정서·음모론이 이명박정부에 대한 다양한 불만과 맞물려 대성했던 방송이었다. ‘나는 꼼수다’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김씨의 성향을 구체화한 방송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해당 팟캐스트의 상징으로 통하는 “쫄지 마”는 여전히 회자된다. ‘나는 꼼수다’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검증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명확한 당파성을 매개로 특정 정당·진영 사람들이 선호할 음모론과 괴담을 이미 밝혀진 사실관계와 섞어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을 적당히 왕래하면서 민주당 지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영웅과 악당들 이는 집단의식으로 연결됐고, 김씨에겐 거대한 영향력을, 민주당엔 거대한 지지 집단을 만들어줬다. 김씨는 ‘나는 꼼수다’를 통해 단순·명쾌한 이분 구도를 완성했다. 그를 선호하는 민주당 지지자의 정치관은 “보수진영이란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는 정의로운 주인공이 지구 정복을 노리는 악당의 무리에 맞서 싸우는 어린이용 만화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울러 현재 민주당 핵심 지지 세대로 알려진 4050세대가 미국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선호하는 것과 연결해볼 수 있다. 이 세계관엔 초월적인 힘을 갖고 모든 생명체의 절반을 죽여 우주를 정화하려는 악당에 맞서는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은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사건이었다. 이들에게 노 전 대통령 사망사건은 거대 악당과 싸워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절대적인 명분이었다. 김씨가 이 사건에 주목하고, 상주로서 백 전 의원의 항의를 제지하던 문 전 대통령을 주목한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우리 고전문학 중 전설은 김씨의 평소 주장과 비슷한 서사 구조를 띠고 있다. 전설은 능력이 뛰어난 주인공이 현실의 한계에 좌절하고 무너지는 비극적인 구조를 취한다. 또 설득력을 부여해야 많은 사람에게 퍼질 수 있어서 실제 존재하는 지역·지명을 매개로 그럴듯하게 전개된다. 여기엔 각박한 현실을 바꿔줄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민중의 소망이 담겨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정씨 성을 가진 영웅이 새 나라를 만들어 왕이 될 것”이란 취지의 예언서가 오랫동안 돌아다녔다. 김씨의 주장은 21세기판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김씨는 민주당과 주변 진영을 취약한 상황에서 거대한 악에 도전하는 영웅으로 묘사하고, 지지자들은 그 영웅담에 환호한다. 그러면서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는 영웅을 또 잃을 수 없다”는 공감대를 공유한다. 그들은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 김씨는 ‘김어준 유니버스’ 혹은 ‘민주 유니버스’를 만들었고, 지지자들은 관객을 넘어선 참여자로서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 <한국일보>는 지난 2017년 이들의 세계관을 소개하면서 “대통령이 국민을 지켜야지, 왜 국민이 대통령을 지켜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완전히 다른 ‘B급 정서’ 카타르시스·도파민 차이 김씨는 ▲세월호 고의 침몰설 ▲천안함 피격 사건 관련 가짜 뉴스 살포 ▲코로나19 대구 확산설 등 주장을 이어가면서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했다. 그들이 김씨를 통해 느낀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은 고스란히 민주당의 정치적 자양분이 됐다. 그래서 총선 출마 후보들은 김씨가 보는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해야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김씨를 지목했던 것은 김씨에게 엄청난 이익이 됐다. 당시 계엄군은 김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스튜디오 주변을 통제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13일 국회에서 “계엄군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사살한 후 북한 소행으로 공작하려고 했다”면서 “정보 출처는 국내에 대사관이 있는 우방국”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그 우방국은 미국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미국은 국무부·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이를 부인했다. 반면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어준님’의 증언을 허구로 단정하고 비난부터 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보수 세력은 민주당과 그 주변 세력처럼 정교한 조직체를 만들지 못했다. 보수 세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피커 역할은 전씨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김씨처럼 진영 전체를 들썩일 수 있는 정치적 유머 감각과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하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강경 보수 지지자들 외 국민 사이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고, 국민의힘 내부서도 강하게 비판한다. 국민의힘이 지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이겼을 당시엔 민주당에 비판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70세대를 아울러 민주당을 지지하는 4050세대와 2030세대 여성을 포위한다는 ‘세대포위론’ 전략이 제시됐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과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불화 끝에 결별하면서 이 연합은 얼마 가지 못해 해체됐다. 당시 승리를 주도했던 국민의힘 지지층은 이 대표 특유의 합리주의를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와 강경 보수를 지향하는 노년 유권자로 분열됐다. 전씨는 많은 공무원 제자를 거느린 유명 한국사 강사였다. 따라서 적절히 순화된 주장과 교묘하게 선정한 정치적 입지를 섞어서 정치 전면에 나섰더라면,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와 달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유머를 섞는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전씨의 옛 제자들은 그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절대로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김씨와 달리, 직접 국민의힘에 입당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 하는 등 적당히 선을 긋지도 않는다. 정치인들이 알아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큰절을 하게 만드는 김씨와 달리, 전씨는 스스로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당대회서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전에겐 없는 것들 무엇보다 김씨가 “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가진 것 아니냐”는 설까지 나올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단 사실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국민의힘은 정치 구조를 통찰하지 못해 민주당이 장기간 공들여 구축한 정치 구조체를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전씨는 ‘전한길 유니버스’ 제작을 멈추지 않는다. 과연 전씨는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