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격 리뷰> 본질로부터 달아난 여자의 격정 ‘도망친 여자’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제70회 베를린 영화제서 은곰상 감독상을 수상한 홍상수 감독의 신작 <도망친 여자>가 베일을 벗었다. 불분명하고 불친절하게 설명하지만, 인간 내면을 정확히 꿰뚫는 홍 감독의 역량이 <도망친 여자>서도 빛난다. 베를린 영화제를 비롯해 유수의 영화제가 ‘웰컴 홍상수’를 외치며 이 영화에 환호한 이유를 짚어봤다. 
 

▲ 도망친 여자 ⓒ영화제작전원사

홍상수 감독 신작은 언제나 영화광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받아왔다. 그의 작품 속 인물들이 던지는 대사는 교묘하면서도 불친절하게 나열된 듯 보이지만, 결과적으로 인간 내면을 통찰한다. 

통찰

인간 군상 사이서 벌어지는 사건은 공감이 갈 뿐 아니라, 그가 전달하고자하는 메시지 역시 시대와 정확히 맞닿아 있다. 지난 9일 베일을 벗은 <도망친 여자>도 일맥상통한다. 

남편과 결혼한 후 5년 동안 단 한 번도 떨어진 적 없는 감희(김민희 분)는 남편의 출장으로 인해 처음으로 혼자만의 여행을 떠난다. 먼저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영순(서영화 분)을 만난다. 도심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외곽서 작게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 영순이 반갑기만 하다. 고기와 술을 사서 먹는 과정서 영순과 함께 살고 있는 영지(이은미 분)도 알게 된다. 

영순과 영지는 어딘가 닮아있다. 채식주의자인 영순을 위해 고기를 먹지 않는 영지나, 평소 술과 고기를 입에도 대지 않는 영순이 오랜만에 찾아온 감희를 위해 즐겁게 자리를 기울여주는 면이 그렇다. 그러면서도 자기의 신념을 포기하지 않는 것도 공통점이다. 감희는 마치 웃는 가면을 쓴 것 같은 두 사람과 헤어진다.


이튿날 감희는 친한 언니 수영(송선미 분)을 만난다. 감희는 10억원을 모아뒀으며, 5억원가량의 전셋집을 4억원에 계약한 수영이 부럽기만 하다.

그러다 갑자기 수영을 찾아온 술에 취한 한 남자(하성국 분)를 보게 된다. 수영을 좋아한다고 밝히는 이 남자를 수영은 거부한다. 남자가 사라지고 수영은 26세인 이 남자와 잠자리를 가진 적이 있다며 치부를 드러낸다. 감희는 수영의 치부가 반갑기만 하다. 

다음날 우연히 간 커피숍서 우진(김새벽 분)을 만난다. 우진은 감희가 한때 사랑했던 정 선생(권해효 분)과 결혼한 옛 친구다. 작은 영화관을 운영하고 있는 우진은 오랜만에 만난 감희에게 정 선생과 만나게 된 과거를 사과한다. 감희는 괜찮다며 우진의 사과를 받는다.

우진은 작가로서 세간의 관심을 받는 정 선생이 불안하다고 털어놓는다. 

그리고 흡연구역서 정 선생을 만난 감희는 우진을 외롭게 만든 그에게 일침을 쏟아낸다. 마치 자신이 오랫동안 생각해왔던 것처럼, 정 선생이 듣기에 거북할 만한 말들을 내뱉는다. 기분이 나빠진 감희는 유일하게 힐링의 기분을 주는 영화를 보면서 남은 휴가를 즐긴다.

영화는 감희가 세 집단의 사람을 만나는 과정을 통해 화자 역할을 맡고 있는 감희를 설명한다. 남편과 이혼하고 비로소 자유를 찾은 영순, 결혼하지 않았지만 당당하게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는 수영, 예술적 감각을 지닌 작가 정 선생을 통해 감희가 얼마나 자유로운 삶을 추구하는지 보여준다. 

가면 쓴 현대인에 던지는 일침
꾸준히 성장하는 ‘홍상수 월드’


하지만 현재 감희의 삶이 희망적이지만은 않다. 새벽에 일어나 낮 12시까지 번역 일을 하고 일주일에 두 세 번 강의를 하며, 사랑하는 사람은 떨어져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는 남편은 감희의 자유를 통제하는 듯 보인다. 감희가 운영하는 꽃가게는 손님이 끊겨 지겹기만 하다. 

그럼에도 감희는 이 남자를 사랑한다고 말하고 현실이 만족스럽다는 듯 속내를 감춘다. 제목이 ‘도망친 여자’라는 건, 감희가 진심 혹은 본질로부터 도망친 여자임을 의미하는 듯하다. 

그러면서 이 영화는 진심에 대해 이야기한다. 감희가 세 집단의 사람들을 만나는 과정은 반복적인 리듬을 갖는다. 감희와 그를 만난 사람들은 마치 가면을 쓴 듯 포장된 얼굴로 상대를 대하다가, 헤어질 무렵 각자의 진실한 순간을 마주하는 방식이다.
 

본심을 감추는데 익숙한 감희는 특정한 순간 격정을 뿜어내며 민낯을 드러낸다. 

3층 방이 지저분하다는 이유로 공간을 공개하지 않은 영순에게 진짜 서운함을 드러내고, 치부를 밝힌 수영에게는 아낌없이 응원한다. 가면을 쓰고 있다가 진실을 마주했을 때 찰나의 순간, 진심을 표출하는 감희의 모습이 반복된다.

이 반복을 통해 감희가 감정을 뿜어내는 그 찰나의 순간이 인간이 추구해야 할 진심이라고 강조한다.

감희는 사람들을 만나 똑같은 말을 내뱉는다. 남편과 5년 동안 한 번도 떨어진 적이 없고, 남편이 사랑하는 사람과 떨어져 지내선 안 된다는 말을 한다는 것을, 마치 그게 자신의 신념인 양 포장하듯이 말한다.

그런 감희가 인기 작가가 돼 여러 매체와 인터뷰를 하며 같은 말을 반복하는 정 선생에게 “같은 말을 반복하는 걸 봤는데, 그럴 땐 진심인가 의심이 간다”고 비판한다. 이전 사람들을 만나면서 끊임없이 같은 말을 반복한 감희의 얼굴과 겹친다. 

이 대사는 정 선생을 향한 비판으로 보이지만, 감희 본인에게 던지는 비판이기도 하며, 나아가 현시대에 다소 거짓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전하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처음의 감희처럼 본질에서 도망치지 말고, 후반부의 감희처럼 본질의 자신을 찾으라는 의미를 감독은 전하고 싶었던 게 아니었을까. 

여러 새로운 인물을 만나면서 펼쳐진, 미로처럼 복잡한 인간 세계가 감희와 정 선생의 대화를통해 정확하게 한 길로 이어진다. 베를린 영화제가 왜 그를 감독상으로 선택했는지 알 수 있는 놀라운 영화다. 

또 홍 감독 작품 속 인물들이 대체적으로 지질했던 반면, 이번 영화에서는 남자들만 지질하다. 모든 인물이 지질했던 것과 사뭇 다른 방식이다. 유수의 영화제에서는 이를 두고 홍 감독이 여성 중심의 서사를 만들었다고 응원하고 있다. 

극중 화자인 김민희를 비롯해 송선미, 서영화, 이은미, 김새벽, 권해효 등은 홍상수 감독 영화 특유의 연극적인 자연스러움을 추구한다. 출연진 모두 어색한 듯 자연스러운 듯 묘한 연기를 펼치는데, 모두 그 세계에 빠져들게 한다.


본질

홍 감독과 김민희를 한 자리서 볼 수는 없었다. 코로나19 영향으로 기자간담회는 취소됐다. 그럼에도 두 사람이 추구하는 예술은 스크린을 통해 느낄 수 있었다. 김민희가 홍 감독의 뮤즈가 되고 이번이 일곱 번째 작품이다. 그 동안 홍 감독과 김민희의 예술적 감각이 점점 더 농익어가는 것 같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이재명발’ 검찰·법원 피바람 플랜

‘이재명발’ 검찰·법원 피바람 플랜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윤석열정부 당시 ‘정적 죽이기’로 가장 많은 피해를 봤던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3일 당선됐다. 이 대통령은 대선 기간 내내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을 공약으로 내놨다. 이 대통령이 당선되자 검찰 내부는 ‘어쩔 수 없다’는 분위기가 나오고 있다. 다만 법조계와 학계에서는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을 신중하게 진행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된다. 이재명 대통령이 임기를 시작하면서 검찰 내에는 긴장감이 돌고 있다. 이 대통령이 후보 시절까지 포함해 취임 전 법원·검찰과 여러 차례 대립각을 세웠고 선거 과정서 사법개혁과 검찰개혁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운 만큼 빠른 시일 내에 개혁에 착수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수차례 대립각 이재명정부서 문재인정부 시절 ‘미완’으로 끝난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이 완성될지 관심이 모이고 있다. 이 대통령은 선거 기간부터 “검찰개혁을 완성하겠다”며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고 수사기관의 전문성을 확보하겠다”고 공약했다. 이는 문정부 때부터 줄곧 추진해 온 검찰개혁 방안과 유사하다. 문정부 당시 부패·경제 범죄 등에 대한 수사권만을 검찰에 남겨두고 다른 범죄에 대한 수사권은 경찰로 옮겼다. 하지만 윤정부 들어 이른바 ‘검수원복(검찰 수사권 원상복구)’ 시행령과 수사준칙 개정 등으로 여타 범죄에 대한 수사권도 일부 복구됐다. 이 대통령의 수사와 기소 분리는 문정부와는 궤를 달리할 것으로 예상된다. 검찰청을 기소와 공소 유지를 담당하는 ‘기소청’으로 전환하고 중대범죄수사청과 같은 새로운 수사기관을 신설한다는 것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구상이다. 이를 통해 검찰의 기소권 남용에 대한 사법 통제가 강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 검사를 일반 공무원처럼 자체 징계만으로도 파면할 수 있도록 하는 ‘검사 징계 제도’까지 도입한다는 구상이다. 또 ▲압수·수색영장 사전심문제 도입 ▲대통령령인 수사 준칙 상향 입법화 ▲피의사실공표죄 강화 ▲수사기관의 증거 조작 등에 대한 처벌 강화 및 공소시효 특례 규정 내용이 담긴 수사 절차법도 제정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이 대통령은 개헌을 통해 검찰총장 임명 시 국회 동의가 필요하도록 하고, 검사의 영장 청구권 독점도 폐지하겠다고 공약했다. 사실상 무소불위였던 검찰 권력을 수술대에 올리겠다는 취지다. 이에 대해 한 법조인은 “이 대통령이 현재 12개 혐의로 5건의 재판을 받고 있는데 이 가운데 상당수는 지난 정부서 검찰이 수사·기소한 것”이라며 “이 대통령으로서는 검찰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가질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검사 출신인 다른 법조인은 “앞서 민주당의 검사 탄핵이 모두 헌법재판소서 기각 결정을 받았는데, 이 대통령 공약대로 기소권 남용 통제, 검사 징계 파면 등이 도입된다면 검찰에 대한 견제가 매우 강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 다른 법조인은 “이 대통령이 공수처와 국가수사본부에 힘을 실어준 뒤 두 기관을 적극 활용해 이른바 ‘적폐 청산’을 하려는 것 아니냐”고 전망했다. 수사청과 기소·공소청 분리 원칙 줄사표 신호탄…내부는 ‘초긴장’ 검찰 내부에서는 착잡한 기류가 팽배하다. 앞서 민주당이 추진했던 검사 탄핵이나 특활비 전액 삭감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강도 높은 개혁이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대검찰청 한 관계자는 “검찰의 운명은 민주당에 달려있는 것 아니겠느냐”며 “이재명정부와 여당이 된 민주당이 몰아칠 텐데 검찰의 협상력은 사실상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재경지검의 한 부장검사도 “개혁을 하든, 무엇을 하든 담담하게 운명을 받아들여야지 별 수 있냐”며 “다들 숨죽이고 지켜보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대개 검찰을 지원하는 이유가 국가에 대한 사명감 때문인데, 검찰개혁에 포함된 검사징계법에 파면을 명문화하게 되면 리스크를 감수하고 공익을 위해 일할 사람이 몇이나 되겠냐”며 “4~5명의 평검사가 각 부서에 있어야 수사가 원활하게 진행되는데 지금도 2~3명의 평검사만으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검찰개혁 이후에는 부장 검사 밑에 직접 수사를 할 평검사가 전혀 없을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고 토로했다. 특수부 검사들 사이에서는 인사보복에 대한 우려가 강하게 나오고 있다. 특히 이 대통령을 수사했던 특수부 검사들은 ‘검찰개혁 이전에 인사보복을 당할 것’이라고 사석에 이야기하고 다닌다고 한다. 반면, 일선 형사 사건을 수사했던 검사들은 “우리에겐 직접적인 피해는 없을 것”이라며 선을 긋는 분위기다. 다만, 형사부·특수부 검사들이 공감대를 이루며 우려하는 부분도 있다. 과거 문정부 시절 검경수사권 조정으로 경찰의 권한이 비대해진 바 있는데, 이번 검찰개혁으로 경찰이 영장 청구권을 확보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검찰 단계서 경찰의 영장청구를 판단하지 않아 문제가 생길 것이라는 분석이다. 검찰 내부서 특수부와 형사부가 갈리는 상황에 이들을 모을 구심점도 없다. 과거 문정서 검찰개혁이 추진될 때 검사들이 단일대오로 뭉쳐 저항했던 것처럼 먼저 움직일 사람이 없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결국 수사로 검찰의 존재 의의를 보여야 하지만 ▲12·3 비상계엄 사태 ▲도이치 주가조작 의혹 ▲명태균·건진법사 선거개입 의혹 등 굵직한 주요 사건 관련 특검법이 국회 본회의에 부의돼있다. 특검이 시작되면 검찰의 역할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새 정부의 법무부 장관 인선 직후 대규모 인사도 예상된다. 당장 고검장·지검장 물갈이에 이 대통령 관련 사건을 맡았던 검사들의 줄퇴사도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실제 지난달 20일 사의를 표했던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의 사직서는 지난 3일 수리됐다. 검 운명은 민주당에 이 지검장은 수원지검 성남지청장 재직 당시엔 성남FC 및 선거법 위반 등으로 이 대통령을 기소했다. 이미 2022년부터 업무 과부하 등을 이유로 매년 100명 이상의 검사들이 퇴직했는데 이번엔 이보다 더 큰 규모로 검찰 대탈출이 벌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실제 윤정부가 들어섰던 해인 2022년엔 직전 해(79명)보다 2배쯤 많은 검사 142명이 퇴직한 바 있다. 다만 퇴사를 희망하는 검사가 많더라도 대형 로펌에 이들을 다 수용할 수 있는 자리가 없어 실제 퇴사 규모는 예상보다 적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검찰개혁 신중론도 나오고 있다. 검찰 내부에선 피할 수 없는 문제지만 속도전이 아닌 과거 수사권 조정에 따른 부작용에 대한 반추와 함께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차원의 정책 설계가 우선돼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문정부 시절 검찰개혁으로 인한 수사권 조정 등으로 인한 영향을 복기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한 검사장급 간부는 “다 예상했던 것들로 놀랍진 않지만 수사가 효율적으로 될 수 있도록 제도를 설계했으면 좋겠다”며 “과거 수사권 조정으로 대표되는 검찰개혁이 왜 실패했다고 평가를 받겠나? 수사권 조정 등 앞선 검찰개혁에 대해 복기한 다음 추진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 차장검사는 “수사기관 간 견제는 경쟁으로 이어진다”며 “수사는 합리적이고 치밀하게 해야 하는데 다른 기관을 의식해 무리하게 하다 보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고 우려했다. 한 부장검사는 “구조적인 문제가 없도록 꼼꼼히 설계해야 한다”며 “수사권, 수사력의 문제도 있지만 법 자체가 구조적으로 난점이 있다는 것에 더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형사소송법 등 근간이 되는 법에 속도전으로 나선다면 이번 비상계엄 사태 수사 때처럼 향후 여러 문제가 드러날 것”이라고 밝혔다. 또 다른 부장검사도 “수사기관끼리 경쟁하게 되면 결국 윤 전 대통령 내란 수사처처럼 어느 사건이든 번번이 망가질 것”이라며 “검찰 등 수사기관, 학계, 정계 등이 참여하는 공론의 장에서 시간을 갖고 충분히 논의해야 할 문제”라고 했다. 이재명정부는 검찰개혁과 더불어 수사기관 개혁과 사법개혁도 같이 추진하려고 준비 중이다. 이 대통령은 검찰의 권한은 축소하면서 경찰과 공수처의 권한은 더욱 강화하겠다는 공약을 펼쳤다. 민주당은 공수처 검사 정원을 현행 25명에서 최대 300명까지 확대하고, 고위 공직자의 모든 범죄에 대해 영장 청구 및 기소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꼼꼼히 설계해야 법조계 안팎에서는 성급한 수사기관 확대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공수처가 2021년 출범 이후 뚜렷한 수사 성과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12·3 비상계엄 사건서도 윤석열 전 대통령 대면조사에 실패하는 등 수사력 한계를 노출했다. 게다가 윤 전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 수사에서 검찰과 경찰, 공수처가 각자 수사권을 주장하며 혼선을 빚기도 했다. 이창현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검경 수사권이 조정된 지 5년이 지난 시점서 경찰 국가수사본부, 공수처, 검찰의 수사 성과를 냉정히 평가한 뒤 수사권 분리를 논의해도 늦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 대통령이 가장 먼저 개혁할 것으로 보이는 것은 사법개혁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달 1일, 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에 대한 파기환송을 결정하고, 다음날에 파기환송심 첫 공판기일을 그달 15일로 지정했다. 그러나 공판기일을 지정한 지 5일 만에 다시 공판기일을 대선 이후인 오는 18일로 변경했다. 연기 사유는 “대통령 후보인 피고인에게 균등한 선거운동의 기회를 보장하고, 재판의 공정성 논란을 없애기 위해서”였다. 일련의 과정 이후 민주당 내에서는 ‘대법관 증원’을 비롯한 사법부 개혁이 대선 국면의 핵심 의제 중 하나로 떠올랐다. 민주당 의원들은 대법관 증원 법안을 연달아 발의했고, 박범계 의원이 법조인이 아닌 사람도 대법관으로 임명할 수 있도록 하는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발의했다가 논란 끝에 철회하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대선 기간 발표한 공약집서 ‘내란 극복과 민주주의 회복’의 하위 범주로 “사법개혁을 완수하겠다”며 대법관 증원을 비롯한 여러 정책을 공약했다. 대법원 등 사법기관도 엎는다 “신중하게 진행해야” 의견도 공약집에는 실제 증원 규모가 명시되지 않았으나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개정안은 대법관 수를 30명으로 늘리는 방안을 담고 있다. 대법관 수를 100명으로 늘리는 법안도 발의됐으나 논란이 일자 민주당은 지난달 26일 철회했다. 대법관이 증원되면 현재 1인당 연평균 약 4000건을 처리해야 하는 대법관들의 업무 부담이 줄면서 ‘재판 지연’의 주된 원인으로 꼽히는 상고심 적체 현상은 상당수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대법관 전원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를 통해 법적 안정성을 확보하고 사회적 갈등에 해답을 제시하는 최고 법원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30명이 모두 모여 깊이 있는 합의에 도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대법관 증원에 따라 이 대통령 임기 중 총원의 절반이 넘는 대법관이 대통령 임명을 받아 합류하면 사법부 구성이 편향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법원의 재판에 관한 헌법소원 심판을 허용하는 ‘재판 소원’이 도입될지도 관심사다. 민주당 의원들이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을 발의해 국회에 계류 중이다. 재판소원이 허용되면 법원이 법률을 헌법에 어긋나게 해석·적용하거나, 재판의 절차적 측면서 국민의 기본권이 침해됐다고 판단된 경우 헌재가 결정으로 위헌임을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은 헌재가 법원의 재판에 관여하는 것은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한다’고 정한 헌법 101조에 반하고 불필요한 법적 분쟁을 초래할 수 있다는 이유로 법안에 반대해 왔다. 법조계의 의견은 엇갈린다. 재판소원 추진 논의가 이 대통령에 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 급물살을 탔다는 점에서 대법원을 견제하려는 시도로 보는 시각도 있다. 사실상의 ‘4심제’가 돼 최고법원으로서 대법원의 기능이 약화하고 법적 안정성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반면 헌법기관 간 상호 견제를 강화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할 안전망을 두텁게 만든다는 점에서 도입을 긍정하는 견해도 있다. 실제로 법조계에서는 오랜 기간 재판소원 도입의 필요성에 관한 논의가 이어져 왔다. 헌재 역시 최근 국회에 “국민의 충실한 기본권 보호를 위해 개정안의 취지에 공감한다”는 찬성 의견을 냈다. 이밖에 판결문 공개 범위 확대, 공개변론 중계 의무화 추진, 법관평가위원회 설치 등 국민의 사법 접근성을 제고하는 정책 등도 이 대통령 임기 중 추진될 전망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는 “사법개혁 문제는 최우선 문제에 속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당시 “제도 개혁이나 특히 사법·경찰·검찰개혁은 중요하다. 수사권 조정이든 다 중요하다”면서도 “여기에 주력해서 힘을 뺄 상황은 아닌 것 같다”고 덧붙였다. 민생이 우선 일단 후순위 이후 지난 6월4일 취임사에선 “먼저 민생 회복과 경제 살리기부터 시작하겠다. 불황과 일전을 치르는 각오로 비상경제대응TF를 바로 가동하겠다”며 “국가 재정을 마중물로 삼아 경제의 선순환을 되살리겠다”고 강조했다. 검찰 및 사법개혁이 중요하지만 민생 회복이 중요하다고 재차 강조한 셈이다. 이로 인해 검찰·사법개혁은 후순위로 미뤄질 것으로 보인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