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재료 이력서> (19·20) 미나리, 배추

봄·가을의 대표 음식

오이, 쑥갓, 가지… 소박한 우리네 밥상의 주인공이자 <식재료 이력서>의 주역들이다. 심심한 맛에 투박한 외모를 가진 이들에게 무슨 이력이 있다는 것일까. 여러 방면의 책을 집필하고 칼럼을 기고해 온 황천우 작가의 남다른 호기심으로 탄생한 작품. ‘사람들이 식품을 그저 맛으로만 먹게 하지 말고 각 식품들의 이면을 들춰내 이야깃거리를 만들어 나름 의미를 주자’는 작가의 발상. 작가는 이 작품으로 인해 인간이 식품과의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 ⓒ롯데백화점

 

미나리

조선 중기 문신인 정온(鄭蘊, 1569∼1641)의 작품을 감상해보자.

種芹(종근)
미나리 심다
淺鑿窓前方寸地(천착창전방촌지)
창 앞 조그마한 땅 얕게 파고
貯停洿水種靑芹(저정오수종청근)
웅덩이 물 가두어 파란 미나리 심었네
區區不爲供朝夕(구구불위공조석)
구구한 정성 아침저녁으로 바칠 수 없지만
待得莖長獻我君(대득경장헌아군)
줄기 자랄 때 기다려 우리 임금께 바치리

어린 시절 기억에 노원에는 드문드문 미나리꽝(미나리를 심는 논)이 있었다.

그곳은 언제나 물이 가득 들어차 있었는데, 간혹 미나리를 채취하기 위해 그곳에 들어가고는 했었다.


처음에는 반바지를 입고 맨발로 미나리를 뽑다 두렁으로 나왔을 때 기겁했었다.

다리 곳곳에 거머리가 달라붙어 있고 그 주위가 온통 피로 물들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즉각 손을 뻗어 거머리를 떼어내려 시도했으나 그 일이 좀처럼 쉽지 않았다.

그런 내 모습을 살피던 어른들이 다가와 담배에 불을 붙이고 그 불로 거머리를 지져대자 거머리들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 후 미나리꽝에 들어갈라치면 반드시 긴바지를 입은 채 양말로 바지 끝을 감싸고는 했다.

왜 미나리꽝에 거머리들이 득실거릴까.

바로 환경 때문에 그렇다.


미나리와 거머리의 서식지가 논과 같은 습한 곳이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미나리를 채취하고는 반드시 거머리를 가려내야 한다.

그런데 미나리를 뜻하는 한자 芹(근)이 흥미롭다.

풀을 의미하는 초두변(艹)과 도끼를 의미하는 근(斤)이 합해졌다는 이야기다.

이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미나리는 도끼 같은 풀이 되는데 과연 그러할까.

이를 위해 芹의 다른 뜻을 살피면 예물로서 변변치 못한 물건을 의미하는데 이와 관련한 답이 정온의 시 ‘待得莖長獻我君’(대득경장헌아군, 줄기 자랄 때 기다려 우리 임금께 바치리)에 등장한다.

이와 관련한 고사다.

옛날 송(宋)나라에서 농부가 겨울이 지나 봄이 오자 등에 햇볕을 쬐면서 자기 아내에게 “햇볕을 쬐면서도 그 따사로움을 아는 사람이 없소. 이것을 임금님께 알려 드리면 후한 상을 내리실 것이오”라고 했다. 이에 그 마을의 부자가 말하기를 “옛날 사람 중 콩잎과 미나리 같은 것들을 맛있다고 생각해 고을의 부자에게 먹어 보라고 말한 자가 있었는데, 그 부자가 그것을 가져다 먹어 보니 입이 쓰리고 배가 아팠다네. 이에 여러 사람들이 그를 비웃고 원망했네”라고 했다.

즉 미나리는 임금을 위한 신하의 충성을 비유하는 겸사로 쓰인다.

이제 서거정의 작품 미나리와 미나리 국을 감상해본다. 

芹(근)
미나리

芹子由來美(근자유래미)
미나리는 예로부터 좋은 나물인데
晨盤亦可羹(신반역가갱) 
아침밥상에 국으로도 좋다네 
靑泥今日種(청니금일종) 
청니는 오늘날 심은 곳이요 
碧澗舊時名(벽간구시명)
벽간은 예전 이름이라네
已入詩人詠(기입시인영)
이미 시인의 읊조림에 들었으니
堪誇野老情(감과야로정)
들판 노인의 정으로 자랑할 만하네
區區吾欲獻(구구오욕헌)
나 역시 구구한 정성 바치고 싶어
曝背坐南榮(폭배좌남영)
남쪽 마루에 앉아 햇빛에 등 쬐네 


청니(靑泥)는 …… 곳이요 : 두보(杜甫)의 최씨동산초당(崔氏東山草堂) 시에 ‘쟁반에는 백아곡 어귀의 밤을 벗겨 놓았고, 밥 먹을 땐 청니방 밑의 미나리를 삶아 내었네’라고 했는데, 청니방은 지명이었는바, 여기서는 그와 달리 진흙의 뜻으로만 쓰였다.

임금을 위한 신하의 충성 비유
“가을 배추는 고기에도 견준다”

벽간(碧澗) : 두보(杜甫)의 시에 ‘신선한 붕어회는 은빛 실을 날리고, 향기로운 미나리로는 벽간갱을 끓이었네’라고 한 데서 온 말인데, 벽간갱이란 미나리 나물에 조미료를 섞어 끓인 국을 말한다.

芹羹(근갱)
미나리국

朝來碧澗採香芹(조래벽간채향근) 
아침에 벽간에서 향기로운 미나리 캐와
杜甫羹中欲策勳(두보갱중욕책훈) 
두보의 국 가운데 공훈 세우고 싶네
我與野人同此味(아여야인동차미) 
나는 시골 사람처럼 이 맛을 함께 하니
區區只欲獻吾君(구구지욕헌오군)
다만 구구한 정성 우리 임금께 바치고자하네

배추


서거정의 村廚八詠(촌주팔영)에 등장하는 작품이다.

菘虀(숭제)
배추김치 

西風吹送晩菘香(서풍취송만숭향)
하늬바람이 늦가을 배추 향기 불러오자
瓦甕鹽虀色政黃(와옹염제색정황)
항아리에 김치 담으라 색깔 정말 노랗네
先我周顒曾愛此(선아주옹증애차) 
나보다 먼저 주옹이 이를 사랑했으니 
嚼來滋味敵膏粱(작래자미적고량)
씹으니 맛이 고량진미와 대적할만하네

상기 작품에 등장하는 주옹은 중국 남제(南齊) 때 은사(隱士, 벼슬하지 않고 숨어 살던 선비)로, 문덕태자(文德太子)가 일찍이 주옹에게 채소 중 어떤 나물 맛이 가장 좋으냐고 묻자 “초봄의 이른 부추나물과 늦가을의 늦배추였습니다”라고 말할 정도로 배추를 좋아했던 사람이다.

그런데 왜 필자가 서거정의 이 작품을 인용했을까.
 

물론 배추에 대한 오해를 불식시키고자 함이다.

배추와 관련 일부 단체서 언급하고 있는 내용이다. 

숭채(菘菜, 배추)의 기록이 있는 문헌으로는 훈몽자회(訓蒙字會)가 있는데 중국서 도입된 무역품의 하나로 숭채 종자가 포함돼있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그 후 중종 때(1533년)와 선조 때에도 숭채 종자가 중국으로부터 수입됐다.

이는 명백한 오류다.

훈몽자회는 1527년 최세진이 지은 작품으로 서거정은 훈몽자회가 모습을 드러내기 한참 이전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이런 오류가 발생했을까.

여러 기록에 의하면 배추김치의 등장은 여타의 다른 김치에 비해 시기가 상당히 늦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닌가 추측해본다.

이를 염두에 두고 다시 서거정의 작품 배추(菘, 숭)를 감상해보자.

生菘靑間白(생숭청간백)
파랗고 하얀 싱싱한 배추
一一飣春盤(일일정춘반)
하나하나 봄 쟁반에 담아
細嚼鳴牙頰(세작명아협) 
가늘게 씹으면 어금니 울리고
能消養肺肝(능소양폐간) 
소화 잘되 폐와 간에 좋다네
誰知能當肉(수지능당육)   
고기에 견줄 걸 누가 알겠나  
亦足勸可餐(역족권가찬) 
밥으로 가하다 권할만 하네
周郞先得我(주랑선득아) 
주랑이 먼저 나를 얻었으니
歸去亦非難(귀거역비난) 
돌아감 역시 어렵지 않다네

주랑(周郞)은 앞서 이야기했던 주옹(周顒)을 지칭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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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