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재료 이력서> (14·15) 마늘과 마늘종

한국인의 ‘최애’ 음식

오이, 쑥갓, 가지… 소박한 우리네 밥상의 주인공이자 <식재료 이력서>의 주역들이다. 심심한 맛에 투박한 외모를 가진 이들에게 무슨 이력이 있다는 것일까. 여러 방면의 책을 집필하고 칼럼을 기고해 온 황천우 작가의 남다른 호기심으로 탄생한 작품. ‘사람들이 식품을 그저 맛으로만 먹게 하지 말고 각 식품들의 이면을 들춰내 이야깃거리를 만들어 나름 의미를 주자’는 작가의 발상. 작가는 이 작품으로 인해 인간이 식품과의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 마늘 ⓒpixabay

음식점서 고기 먹을 때 유독 마늘에 자주 손이 가는 내게 지인들이 그 이유를 묻는다. 그러면 잠시 능청 떨다 한마디 한다.

“마늘 많이 먹고 사람 좀 되려고 그런다”고.

그러면 상대는 말이 된다 싶은지, 나의 자유분방했던 과거를 회상하는지 그저 웃어넘긴다.

내 젊은 시절 삶에 대해 시시콜콜 언급하는 대신 삼국유사에 실린 단군신화 내용 인용해보자. 

[마늘]


곰 한 마리와 호랑이 한 마리가 환웅에게 사람이 되게 해 달라고 빌자 환웅은 신령한 쑥(靈艾, 영애)과 마늘(蒜, 산) 20개를 주면서 “너희가 이것을 먹고 햇빛을 100일간 보지 않으면 사람의 형상을 얻을 수 있다”라고 했다.

이에 따라 곰은 금기를 지킨 지 21일 만에 여인이 됐으나 호랑이는 금기를 지키지 못하고 사람의 몸을 얻는 데 실패했다.

여인으로 변한 웅녀는 매일 태백산 신단수 아래서 잉태하기를 빌지만, 결혼할 사람이 없어 환웅이 사람으로 변화해 웅녀와 혼인하고 아들을 낳으니 이 사람이 단군왕검이다.

그런데 일부 사람들이 이 신화에 등장하는 蒜(산)이 마늘이 아닌 다른 물체라 주장한다.

물론 원산지 문제 때문에 그렇다.

마늘의 원산지는 중앙아시아 정도로 추정되는데 그 시기에, 기원전 2333년에 이 땅에 마늘이 전래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게 그 요체다. 

참으로 아쉬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蒜이 진정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제쳐두고 단군왕검이 탄생했다는 태백산에 대해 언급해보자. 


다수의 사람들이 태백산을 강원도에 있는 태백산 혹은 백두산으로 강변하고 있다.

참으로 황당하지 않을 수 없다.

기원 전 2333년이라면 이 땅 즉 한반도에는 소수의 토착민들이 씨족 혹은 부족의 형태로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렇다면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태백산이 어느 곳을 지칭할까.

역사는 순리에 입각해야 한다는 진리에 따라 접근해보자.

그를 입증하기 위해 먼저 백제란 국가의 탄생 과정을 살펴본다.

백제의 시조 온조왕은 고구려 동명왕의 둘째 아들로 형인 비류에게 밀려 남하해 한강 유역에 백제를 세운다.

이제 고구려 시조인 동명왕에 대해 살펴본다.

동명왕은 고구려보다 한참 위쪽에 위치해 있던 부여의 왕인 금와의 아들이다.

그는 금와의 장남인 대소(帶素)와 다른 형제들이 자신을 죽이려 하자 남하해 고구려를 세운다.

백제와 고구려의 건국을 살피면 한반도에 국가가 형성되는 과정을 살필 수 있다.

권력을 잡는 과정에서 밀려난 사람 혹은 국가를 세우고자 하는 의지가 강했던 사람이 북이 아닌 남으로 이동하여 국가를 세웠다고 말이다.


다시 언급하자면, 이 민족의 주 세력의 시원은 황하 유역의 중원이었는데 상기 경우처럼 혹은 이민족의 침입으로 인해 지속적으로 한반도까지 이동하게 되고, 그 과정에 소수의 토착민들을 정복하고 국가를 세운 것이다. 

이제 기원전 2333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그 무렵 이 민족 최초의 국가였던 고조선의 위치는 어디였을까.

역사의 순리에 입각하면 분명 한반도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현재로서 어느 위치라고 확언할 수 없지만 이동하는 과정을 살피면 한반도보다는 오히려 중원에 더 가까울 수 있다. 

그렇다면 태백산이 이 땅에 있었다는 주장은 그저 허구에 불과할 뿐이다.


결론적으로 이야기해서 원산지 문제로 인해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蒜(산)이 마늘이 아니라는 주장은 무모하기 짝이 없다. 

여하튼 곰도 사람으로 만들 수 있는 영험을 지닌 마늘에 대해 접근해보자.

마늘이 살균·항암효과, 항균작용, 빈혈 완화, 저혈압 개선 등에 이롭다고 하지만 뭐니 뭐니해도 남자들의 정력 강화에 탁월한 효과를 보인다. 

중국의 약학서인 <본초강목>에도 마늘이 강정 효과가 있다고 기록돼있다.

또 고대 이집트인들은 피라미드를 건설하는 노예들의 체력을 보강하기 위해 마늘을 먹였고, 세계적으로 명성이 자자한 이탈리아의 호색한 카사노바도 마늘을 정력식품으로 애용했을 정도다. 
 

▲ 마늘종 ⓒpixabay

이와 관련해 우리에게도 흥미로운 기록이 있어 소개한다.

조선이 개국하고 고려의 국교인 불교를 부정하는 과정에 등장하는 대목이다.

김종서 등이 편찬한 <고려사절요> 고려 제 11대 왕인 문종 재위 시인 1056년에 승려들의 폐해를 다룬 기록이 보인다. 

범패(梵唄, 석가여래의 공덕을 찬미하는 노래)를 부르는 마당은 갈라서 마늘 밭이 되었으며 중들이 그들에게 금기 식품인, 정력 강화에 탁월한 마늘을 먹고 음탕한 짓을 한다는 이야기다.

이제 이응희 작품 감상해보자.

蒜(산)
마늘
薑桂非無貴(강계비무귀) 
생강과 계피도 귀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無踰此味長(무유차미장) 
이 맛보다 더 뛰어난 건 없다네衆玉扶金柱(중옥부금주) 
여러 옥 금 기둥 떠받치고群珠拆素房(군주탁소방) 
많은 구슬 소박한 방에서 터졌다네硏肌瓜炙美(연기과자미) 
갈아 넣으면 오이 부침 맛나고添汁水漫香(첨즙수만향) 
즙 더하면 물에 향기 퍼진다네葷氣雖云濁(훈기수운탁)  
훈채 기운 비록 탁하다지만 參書却暑方(참서각서방) 
더위 물리칠 처방에 들어 있네

이응희에 의하면 마늘을 섭취함으로써 무더위를 물리칠 수 있다고 한다. 각별히 새겨둬야 할 일이다. 

정력 강화에 탁월…더위 물리칠 처방
아삭아삭한 식감, 쌉싸름한 맛이 별미

[마늘종]

마늘종은 마늘 싹이라고도 하며 꽃대가 완전히 자란 마늘 꽃의 줄기를 지칭한다.

그런데 왜 마늘 꽃 줄기를 하필이면 마늘종이라 부르는지 의아함이 발생한다.

해서 그 사연을 먼저 풀어본다. 

​마늘종은 한자로 蒜薹(산대)라 한다. 蒜(산)은 마늘을, 薹(대)는 여러 의미를 지니고 있지만 식물과 관련해서 종대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종대는 파, 마늘, 달래 따위에서 꽃을 달기 위해 한가운데서 올라오는 줄기를 지칭한다. 

즉 마늘로부터 올라오는 줄기는 ‘마늘 종대’라 지칭해야 옳다.

그런데 그 마늘 종대서 대를 생략해 마늘종으로 줄여버렸다.

추측하건데 간략한 것을 좋아하는 우리 민족의 습성으로부터 그렇게 된 게 아닌가하는 생각 지울 수 없다.

이와 관련해 필자는 또 다른 생각을 하고는 한다.

종이 종대가 아닌 하인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 그 종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마늘종은 마늘에 예속되어 마늘의 종과 같은 존재이기에 누군가가 해학적으로 마늘종으로 명명한 것이 지금에 이르고 있지 않나 하는 것이다.

여하튼 마늘종이란 음식을 처음 접한 시점은 초등학교 고학년 시절이었다.

당시 거의 모든 어린이들의 점심 반찬은 김치 혹은 콩자반이 전부였다.

내 살던 동네서 짓는 농사는 그게 전부였던 게다. 

그러던 차에 전학 온 한 친구가 생전 보지도 못했던 반찬을 지니고 왔다.

바로 마늘종이었다.

마늘종을 기름에 볶아왔는데 아삭아삭한 식감은 물론이고 쌉싸름한 맛이 참으로 별미였다.

그를 맛본 이후 그 친구에게 매일 마늘종을 싸오도록 간청하고는 했다. 

그 친구 고맙게도 어떤 때는 볶아오고 또 어떤 때는 무쳐오기도 해 우리들의 입맛을 즐겁게 해주고는 했다.

그렇다면 마늘 종은 언제부터 식용되었을까.

홍만선의 <산림경제>에 실려 있는 글이다. 

5월에 살지고 연한 것을 가려, 끓는 소금물에 데쳐서 볕에 말렸다가 쓸 때쯤 해서 끓는 물에 넣어 부드럽게 되거든 양념해 먹는다.

살진 고기를 넣어서 요리하면 더욱 좋다.  

홍만선은 원나라 시절 저술된 것으로 여겨지는 <거가필용>서 이를 인용했는데, 이를 살피면 오래전부터 마늘종을 식용하지 않았나 추측해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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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