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김지선 기자] 20년 만에 찾아온 폭염에 전 국민이 밤잠을 설치는 가운데 에어컨 수요가 날이 갈수록 급증하고 있다. 최근 전기료 인상이 시행됨에도 불구하고 에어컨 사수에 열을 올리는 소비자들이 증가하고 있어 이와 관련해 각종 불만사항도 폭주하고 있다. “에어컨 구경하려다 더위 먹겠다”는 소비자와 “눈 깜빡일 시간도 없는 입장도 고려해 달라”며 양해를 구하는 업체의 양측 의견이 엇갈리고 있어 논란이 끊이질 않고 있다.
1994년 이후 가장 끔찍한 폭염과 열대야 현상이 올 여름을 강타했다. 지구온난화로 심하다 싶을 정도의 고온현상이 지속되면서 전국 곳곳에서 더위를 이기지 못하고 사망하거나 탈진을 일으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찌는 날씨 탓에 가전제품 매장에는 너도나도 에어컨을 사수하려는 소비자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에어컨 앞에 두고 부채질만
에어컨 일부 모델이 삽시간에 품절되는 것도 모자라 진열돼 있던 에어컨마저 동나는 등 에어컨 특수가 벌어지고 있다. 전자제품 전문 대리점인 모 업체는 지난달 21일 이후 전국 매장에서 매일 1만 대 이상 에어컨이 팔려 나가고 있다. 지난달 말엔 하루 1만4000여 대가 팔려 사상 최대 판매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그러나 업체들은 매출이 큰 폭으로 오름에도 불구하고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실정이다. 에어컨 수요가 늘면서 소비자의 불만도 증가하고 있기 때문. 하루에도 1만대 이상 씩 팔려나가는 에어컨 때문에 재고가 없어 가격흥정을 하기도 전 발길을 돌리는 소비자부터 에어컨을 구매해도 설치까지 10여 일이나 걸려 불만을 토로하는 소비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아이디 홍**는 “일주일째 거실에 새로 들여놓은 에어컨을 바라보며 부채질만 하고 있다. 에어컨을 산 다음 날 배송은 됐는데 설치는 1주일 넘게 기다려도 감감무소식이다. 더위 때문에 숨은 콱콱 막히는데 새 에어컨을 쳐다만 보고 있자니 더 덥고 기가 막힌다”고 말했다.
2주 전 이사를 한 아이디 최**는 “에어컨을 샀지만 현재 배송이 밀려있어 최소 1주일에서 길게는 10일까지 걸린다는 얘길 들었다. 보통 구매하고 설치까지 마치는데 3~4일이면 충분하다. 몸이 타들어갈듯 한 더위 속에서 에어컨 바람을 쐬기까지 10일이나 걸린다니 말이 되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가족들의 성화를 못 이겨 에어컨을 장만하려고 가전매장을 방문했다는 아이디 김**는 “미리 봐둔 에어컨을 구매하려고 직원한테 물으니 ‘품절됐다’는 짤막한 대답만 듣게 됐다. 직원은 내가 원하던 에이컨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모델이 품절됐다고 했다. 진열된 물건도 거의 없어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대형 전자제품 매장에서도 에어컨을 살 수 없다는 사실이 황당할 따름이다”며 당시 심경을 토로했다.
아이디 gjgj***도 “오프매장은 설치까지 마치는데 기본이15일. 온라인도 15일. 하루 온종일 여기저기 오픈매장을 다녔지만 죄다 품절. 한밤중에 온라인 매장에서 한 개 건졌다. 주문하고 일어나보니 밤새 30만원이나 더 비싸졌다. 그리고 오후 5시쯤 품절이라며 취소요청전화가 들어왔다. 이번 여름은 선풍기나 껴안고 살아야 할 판이다”며 하소연했다.
소비자 “배송기간 열흘? 기다리다 쪄 죽겠다”
설치기사 “너무 바빠 더위 먹을 시간도 없다”
아이디 chepl***는 “기온에 따라 에어컨
가격도 천정부지로 오르네. 일주일 만에 같은 제품이 50만원이나 오르다니. 이건 뭐 며칠 전에 100만원 하던 제품이 일주일새 50만원이나 올랐네. 100만원주고 샀던 제품 다른 데서 150만원에 팔리니….품절이라며 취소해달란다. 거참, 가전제품인데 정찰가로 못 사고 소비자가 판매자한테 놀아나는 꼴이라니….부르는 게 값이라 마음대로 사지도 못 하겠다”라며 업체들의 무차별적인 가격인상에 불평을 늘어놨다. 소비자의 불만이 거세지면서 각 업체들도 양해를 구하려는 입장표명에 나서고 있다. 한 전자제품 대리점에서 일하는 정모씨는 “현재 A사의 벽걸이형 에어컨은 3개 모델만 생산되고 있고 스탠드형은 한개 모델만 나온다. 품절이라는 말을 듣고 발길을 돌리는 고객이 점차 늘어나고 있고 주문이 들어가도 설치까지는 최소 1주일이 걸리는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B대리점의 에어컨 설치기사는 “이른 새벽에 나와 밤 12시가 넘도록 집집을 돌아다니며 설치작업을 하지만 매번 ‘왜 이제 왔느냐’는 항의를 받는다. 설치기사끼리 ‘너무 바빠 더위 먹을 시간도 없다’는 농담을 하기도 한다. 연일 지속되는 찜통더위에 소비자들의 불쾌지수가 높아지는 건 당연한데 우리 입장도 생각해 주길 바란다”며 하소연했다.
한 가전제품 대리점 관계자는 “대형 전자제품 회사들이 매일 대량 생산에 힘을 쏟고 있어도 급격히 팔려나가는 에어컨 때문에 구매부터 설치까지 보름 이상 연기되는 것은 불가피한 상황이다. 예년 같으면 7월 말~8월 초쯤 내수용 에어컨 생산을 중단했던 S전자·L전자도 올해는 근로자들의 휴가를 8월 중순까지 미룬 채 생산라인을 풀가동 중이다”라고 속사정을 설명했다.
폭염에 유통업계만 '하하하'
기약 없는 에어컨 때문에 쿨매트 등 실용성 냉방용품도 덩달아 덕을 봤다. 옥션의 가전담당 김문기 팀장은 “특히 영남권은 더위가 극심하다 보니 지역 소비자들이 에어컨을 기다리는 대신 상대적으로 배송 기간이 짧고 빨리 사용할 수 있는 소형 가전과 냉방용품을 구입한다. 극심한 폭염에서 조금이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다면 이런 소형 냉방용품도 나쁘진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