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24주년 특집⑦> 지난 24년 대한민국 뒤흔든 결정적 장면 24

‘들썩들썩’ 다이내믹 코리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1996년 첫발을 내딛은 <일요시사>가 올해로 창간 24주년을 맞았다. <일요시사>1996년부터 2020년 현재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의 희로애락과 함께 호흡했다. 창간 24주년을 기념해 대한민국을 뒤흔든 24건의 결정적 장면들을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 진도 해상서 침몰한 세월호

대한민국은 다이내믹 코리아라는 말처럼 격동의 시간을 거쳐 지금에 이르렀다. 수많은 변곡점을 지날 때마다 국민들의 삶은 온통 뒤흔들렸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은 이제 옛말이 됐다. 이제 강산은 1년에도 수차례씩 변화하고 있다.

격동의 정치
휘청인 경제

1997IMF 외환위기= 1996년 한국은 선진국 대열에 합류할 수 있다는 꿈에 부풀었다. 국민소득 1만달러를 돌파했고, OECD 29번째 회원국으로 가입했다. 하지만 금융기관의 부실, 차입 위주의 방만한 기업경영으로 한국 경제는 바닥부터 흔들리기 시작했다. 국제적으로도 달러 가뭄으로 인한 위기가 일어나면서 한국 경제에 불안을 느낀 외국 투자자들이 자본을 거둬들였다. 그 결과 한국의 외환보유고가 바닥을 쳤고 단기간에 많은 기업이 파산했다.

한국 정부는 상황 수습을 위해 IMF(국제통화기금)에 긴급자금을 요청했다. 그 대가는 혹독했다. IMF는 지원 조건으로 기업의 구조조정과 공기업의 민영화, 자본시장 추가 개방 등의 조건을 내걸었다. 실직자가 쏟아졌고, 직장을 잃은 사람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후 IMF 외환위기는 한국의 경제 상황을 판별하는 기준점이 됐다. IMF세대의 트라우마는 현재진행형이다.


1997년 김대중 대통령 당선= 1997121815대 대통령 선거서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후보가 당선됐다. 한국 헌정 사상 최초로 민주적인 형태의 정권교체가 이뤄진 순간이다. 김대중 후보를 비롯해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국민신당 이인제 후보 등이 나선 선거서 김대중 후보는 40.3%를 얻어 38.7%를 얻은 이회창 후보를 누르고 15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당시 취임사를 통해 정부 수립 50년 만에 처음 이뤄진 여야 간 정권교체’ ‘국민의 힘에 의해 이뤄진 참된 국민의 정부등의 표현을 사용하면서 한국 헌정 역사서 선거를 통해 처음으로 야당이 집권하게 된 것을 강조했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2000613일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평양 순안공항서 만났다. 김정일 위원장의 초청으로 이뤄진 첫 남북정상회담은 1945년 한반도 분단 이후 55년 만의 만남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615일까지 23일간 평양에 머물렀다. 회담 마지막 날에는 남북이 서로 힘을 합쳐 통일문제를 자주적으로 해결하자는 내용을 1항으로 하는 ‘6·15 남북공동선언을 발표했다.

IMF, 월드컵, 세월호, 기생충…
경제로 ‘휘청’ 스포츠로 ‘으쓱’

2002년 월드컵 4강 진출= 2002년 전국에 붉은 물결이 넘실댔다. 한국과 일본이 공동으로 개최한 월드컵서 한국 국가대표팀은 사상 처음 16강 본선 진출 성공에 이어 4강에 올랐다. 한국 대표팀은 포르투갈, 이탈리아, 스페인 등 전통의 축구 강국들을 파죽지세로 꺾어나갔다. 당시 서울시청, 광화문 광장 등에서 펼친 거리 응원은 한국을 상징하는 또 다른 문화로 자리잡았다.

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 2003218일 대구 중앙로역서 끔찍한 지하철 화재사고가 발생했다. 50대 남성이 저지른 방화로 무려 192명이 사망했다. 12량의 지하철 객차는 뼈대만 남은 채 다 타버렸고, 중앙로역 천장과 벽에 설치된 환풍기, 철길 바깥쪽, 지붕까지 녹아내렸다. 뇌병변장애와 심한 우울증을 앓고 있던 방화범은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진주교도소서 복역 중 20048월에 사망했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안 국회 통과= 2004312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국회서 가결됐다. 당시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탄핵소추안 상정을 저지하기 위해 농성을 벌였지만 역부족이었다. 헌정 사상 최초로 탄핵소추안이 기습적으로 국회를 통과하면서 국민의 분노가 들끓었다. 전국서 탄핵 반대 촛불집회가 열렸고, 그 여파는 417대 총선까지 이어졌다. 당시 열린우리당은 152석을 얻어 과반을 차지했다.
 

▲ 1997년에 찾아왔던 IMF 외환 위기 ⓒMBC

2004년 연쇄살인범 유영철 검거= 유영철은 20039월부터 20047월 검거될 때까지 서울지역 부유층 노인과 보도방·출장마사지 여성 등 모두 20명을 살해했다. 유영철의 엽기적인 범죄행각으로 반사회적 인격장애즉 사이코패스의 개념이 대중에 널리 알려졌다. 유영철 이후 정남규, 강호순 등 연쇄살인범이 연이어 등장해 사회를 경악케 했다.

2005년 황우석 논문 조작= 200511MBC <PD수첩><사이언스>지에 실린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 논문에 대한 의혹을 제기했다. 여성의 난자서 환자맞춤형 체세포 복제 배아줄기세포를 세계 최초로 추출했다는 내용의 논문이다.

황우석 열풍이라고 불릴 만큼 그에 대한 믿음이 강했던 터라 대중의 충격은 컸다. 사회적 논란이 계속되자 서울대는 황우석 교수의 논문을 검증하기에 이르고 “2005<사이언스> 논문이 고의적으로 조작됐다는 중간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그와 동시에 황우석 교수는 교수직을 사임했다. 황우석 신화의 종말이었다.

2007년 신정아 스캔들= 당시 동국대 교수였던 신정아씨가 학력을 위조한 사실이 드러난 사건으로 이후 미술계, 대학가, 불교계 등으로 여파가 확산되며 문제가 커졌다. 여기에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과의 스캔들이 불거지면서 정계 로비 의혹도 불거졌다. 일각에선 신정아 사건을 노무현정부 몰락의 시발점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또 신정아 스캔들로 디지털 포렌식이 새로운 수사 기법으로 떠오르면서 주목받았다.

월드컵 웃고
살인마 공포

20072차 남북정상회담= 2007102일 노무현 전 대통령은 한국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걸어서 군사분계선을 넘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4·25문화회관 앞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영접했다. 20001차 남북정상회담에 이은 두 번째 남북회담이다. 남북 정상은 6·15공동선언의 적극 구현, 한반도 핵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 이산가족 상봉 확대 등을 골자로 하는 2007 남북정상선언문을 채택했다.

2007년 삼성-허베이스피리트호 기름유출 사고= 태안 앞바다 기름 유출 사고, 서해안 기름 유출 사고 등으로 불린다. 2007127일 서해 태안 앞바다서 유조선 허베이스피리트호와 삼성중공업의 해상 크레인이 충돌해 기름이 유출됐다. 바다는 시커먼 기름으로 뒤덮였고, 어업으로 생계를 꾸리던 지역민들은 물리적·정신적 피해를 입었다. 삼성중공업이 47일간 침묵한 것과 반비례해 국민들은 자원봉사로 태안을 응원하는 모습을 보였다.

2008년 미국산 소고기 수입 반대 촛불시위= 20085월 이명박정부의 미국산 소고기 수입 재개 협상 내용에 대한 반대 집회가 열렸다. 학생과 시민들은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모였다. 100일 이상 집회가 이어지면서 소고기 문제뿐만 아니라 다른 정치적 사안으로까지 확산됐다. 이 과정서 근거 없는 괴담이 문제가 되기도 했다.

2009년 노무현·김대중 대통령 서거= 2009년은 두 전직 대통령이 3개월 간격으로 서거한 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523일 고향인 봉화마을 자택 뒤 봉화산 부엉이바위서 몸을 던졌다. 전직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은 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안겼다. 당시 광화문 일대와 시청 앞 광장서 열린 노제에 시민 100만명이 운집했다.
 

▲ 남측 판문점으로 함께 이동하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사진공동취재단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서 슬피 우는 모습으로 국민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은 같은 해 818일 세상을 떠났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폐렴으로 병원에 입원, 중환자실에 있다가 일반병실로 옮겨졌지만 폐색전증이 발병하면서 영면에 들었다.

2010년 천안함 사건= 2010326일 밤 922분 백령도 남서쪽 약 1지점서 포항급 초계함인 PCC-772 천안함이 훈련 도중 침몰한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해군 장병 40명이 사망하고 6명이 실종됐다. 천안함 침몰 이유를 두고 여러 의견이 분분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327일 국립대전현충원서 열린 5회 서해수호의 날기념식에 참석해 “(천안함 폭침 원인에 대한) 정부 공식 입장에 조금도 변함이 없다고 밝힌 바 있다.

대형 참사에
전 국민 충격


2014년 세월호 참사= 2014416일 인천서 제주로 향하던 여객선 세월호가 진도 인근 해상서 침몰했다. ‘전원 구조보도가 나갔다가 오보로 드러나면서 전 국민을 충격의 도가니에 빠뜨렸다. 전체 탑승자 476명 가운데 304명이 사망·실종했다. 특히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난 안산 단원고 2학년 학생 324명이 탑승한 상태여서 어린 학생들의 피해가 컸다.

세월호 참사는 한국사회의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업계 유착과 비리 원인으로 지적된 관피아(관료+마피아) 논란이 불거졌고, 국민들은 정부의 우왕좌왕한 태도를 두고 불신을 드러냈다. 세월호 특별법을 둘러싼 정치권의 갈등도 세월호 유족을 비롯해 한국사회를 할퀸 또 하나의 상처로 남았다.

2015년 메르스 사태= 최근 코로나19로 국민들은 전염병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 그보다 앞서 2015년에는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가 일어났다. 20155월 바레인서 입국한 68세 남성을 시작으로 201512월 세계보건기구(WHO) 기준에 따라 메르스 상황 종료를 발표할 때까지 186명이 확진판정을 받았다. 사망자는 38명이었다. 이 과정서 전염병 대응 체계의 문제점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2016년 김영란법 시행= 부정청탁및금품등수수의금지에관한법률이 2016928일부터 시행됐다. 공직자와 언론사·사립학교·사립유치원 임직원, 사학재단 이사진 등이 부정한 청탁을 받고도 신고하지 않거나 직무 관련성이나 대가성에 상관없이 1100만원이 넘는 금품이나 향응을 받으면 형사처벌하도록 하는 법률이다. 2012년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이 추진해 김영란법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2016년 박근혜-최순실 국정 농단 촛불집회= 촛불집회는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 2008년 이명박정부 미국산 소고기 수입 반대 등 국가적 이슈 때마다 등장했다. 촛불집회는 201611월 절정에 이르렀다. 시민들은 비선 실세최순실의 국정 농단 의혹에 대한 진상 규명과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외치며 거리로 나왔다.
 

▲ 서울 광화문광장서 열린 박근혜 전 대통령 퇴진 촛불 시위

서울 청계광장서 첫 주말 촛불집회가 열렸던 1029일 참가자는 무려 5만명이었다. 이어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이 공식 출범한 직후 3차 촛불집회(1112)100만명이 운집했다. 국회 국정조사 특위 청문회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 국회 본회의 표결 직전인 6차 촛불집회에는 정부 수립 이래 최대 규모인 232만명이 모였다. 누적인원은 1685만명에 달한다.


2017년 포항 지진= 20171115일 경북 포항서 규모 5.4의 지진이 발생했다. 1978년 본격적인 지진 관측 이래 두 번째로 큰 규모의 지진이다. 첫 번째는 2016년 경주 지진이다. 하지만 피해는 포항지진이 더 컸다. 포항지진으로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1주일 연기되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났다. 정부는 지난해 320일 포항지진이 인근 지열발전소의 실증연구에 따른 촉발지진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울고 웃은 ‘희로애락’
격동의 시간 되돌리니…

2018년 평창올림픽= 20182월 강원도 평창, 강릉, 정선 일대서 동계올림픽이 열렸다.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30년 만에 한국서 열린 두 번째 올림픽이다. 효자 종목인 쇼트트랙을 비롯해 스켈레톤, 컬링 등에서 메달을 거머쥐면서 국민들에게 기쁨을 선사했다. 북한 김정은 위원장의 동생인 김여정을 비롯해 북한 고위급 관계자들이 평창을 찾아 이후 남북정상회담의 발판이 됐다.

2018년 남북정상회담= 2018427일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만났다. 2000, 2007년 이후 11년 만에 열린 남북정상회담이다. 이전 회담이 모두 평양서 열렸던 것과 달리 2018년 정상회담은 판문점 남측서 진행됐다. 남북 정상이 군사분계선서 조우한 것은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며, 북한 최고 지도자가 남한 땅을 밟은 것도 최초였다.

한 달 뒤인 526일 문재인 대통령이 판문점 북측 통일각을 방문해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면서 두 번째 만남이 이뤄졌다. 북미 정상회담을 앞둔 시점이었다. 이후 같은 해 612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싱가포르서 만났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세 번째 만남은 같은 해 9월 평양서 이뤄졌다. 대통령의 평양 방문은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에 이어 세 번째다.

2018년 미투 운동= 미투(#me too) 운동은 2017년 미국서 시작된 사회운동으로, 한국에선 20181월 서지현 검사가 방송에 출연해 자신의 성폭력 피해 사실을 고발하면서 촉발됐다. 이후 미투 운동은 법조계를 넘어 문화예술계, 방송계, 정치권, 종교계, 학교 등으로 번졌다.
 

▲ 봉준호 감독 ⓒA.M.P.A.S

수많은 유명인사가 미투 운동 과정서 가해자로 밝혀졌고, 사회적으로 존경받던 인사들의 민낯이 드러나면서 충격을 안겼다. 지난달 23일에는 오거돈 전 부산시장이 성추행 사실을 인정하고 전격 사퇴했다.

2018BTS 열풍= 2018년은 그야말로 방탄소년단(BTS)의 해였다. BTS는 미국 빌보드 앨범차트 빌보드 200’서 두 차례 1위를 거머쥐면서 세계적인 인기를 확인했다. 20189월초부터 50여일간 미국과 캐나다, 영국, 프랑스 등 6개국 11개 도시서 가진 22차례 공연을 통해 북미 투어서만 22만명, 유럽 투어서 10만명의 관객을 모았다. UN 정기총회서 우리 가수로는 처음으로 연설해 세계 언론의 관심을 받았다.

2019년 일본 불매운동= 20197월 일본 정부는 반도체·디스플레이 등의 생산에 필수적인 품목의 한국 수출규제를 강화하는 조치를 시행한 데 이어 8월에는 한국을 백색리스트서 제외했다. 정부는 일본의 조치에 강경 대응을 시사했고 국민들은 일본 불매운동에 돌입했다. 일본 맥주와 의류서 시작된 불매운동은 자동차, 여행상품 등으로 확산됐다. 한국의 불매운동으로 일본의 관광업계가 큰 타격을 받은 것으로 분석된다.

세계로 뻗은
한국 문화

2020년 영화 <기생충> 열풍= <기생충>은 가난한 가족과 부자 가족을 극단적으로 대비시켜 빈부격차와 양극화로 인한 계급과 계층 간의 갈등을 그린 작품이다. 2019525일 프랑스 칸 국제영화제서 한국 영화 100년 역사상 최초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세계 유수의 영화제서 수많은 상을 휩쓴 <기생충>은 지난 29(현지시각열린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서 각본상·국제장편영화상·감독상·작품상 등 주요 부문을 싹쓸이하면서 명실상부한 그 해 최고의 영화로 인정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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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고객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쿠팡의 태도가 도마 위에 올랐다. 현재까지 대응만 봐서는 국민은 물론, 정부와도 전면전을 벌일 기세다. 새어나간 정보의 범위와 규모가 ‘역대급’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최악의 사태임에도 불구하고 쿠팡의 고개는 꺾일 줄 모르고 있다. 일각에서는 ‘뭘 믿고 저러나’ 소리가 나오는 중이다. 쿠팡의 고객 개인정보 유출 사건, 이른바 쿠팡 사태가 점입가경이다. 사태가 일어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수습은커녕 국민의 화만 돋우고 있다. 쿠팡의 대응 태도가 미지근한 수준을 넘어 뻔뻔한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 김범석 의장은 모습을 비추지 않고 보상안은 꼼수로 가득하다. 국민을 조롱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한 달 만에 고개 숙여 지난해 11월 말 3370만명에 이르는 쿠팡 고객의 개인정보가 ‘탈탈’ 털렸다. 앞서 쿠팡은 4500여건의 고객 정보가 유출됐다고 정부 당국에 신고했지만 2주 만에 그 수치는 7500배까지 늘어났다. 전 국민의 65% 수준이며 지난해 4월 SKT 개인정보 유출 사태 범위(2300만명)를 훌쩍 넘는 사태였다. 쿠팡은 이커머스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갖고 있다. 대형마트 등이 규제에 막혀 뒷걸음질 칠 때 쿠팡은 로켓배송으로 시장을 싹쓸이했다. 전날 저녁에 주문해도 새벽이면 물건이 문 앞에 와 있는 총알 배송에 소비자는 쿠팡으로 몰렸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비판을 받던 물류센터는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사태는 아이러니하게도 쿠팡이 국민의 실생활에 얼마나 스며들어있는지를 바로 보여줬다. 쿠팡 사태가 터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은 “쿠팡이 경쟁자가 없는 시장 지위를 누리고 있고 한국 고객이 데이터 유출에 덜 민감해 보인다”며 “잠재적 고객의 이탈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놨다. 그래서일까? 쿠팡은 역대 최악의 정보 유출 사태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도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이 언급하고 정부 차원의 TF가 꾸려졌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힘겨루기’를 하는 태도를 보이는 중이다. 최근에는 정부의 반박에도 자체 조사 결과를 고집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보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쿠팡은 지난달 25일 ‘정보 유출자는 3300만개 계정에 접근했으나 실제 저장한 정보는 3000여개에 불과하며 제3자 유출 정황은 없는 등 피해가 미미하다’는 내용의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면서 “(유출자는)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언론 보도를 접한 이후 저장했던 정보를 모두 삭제하고 범죄에 사용한 노트북을 파손해 하천에 던졌다”고 주장했다. 쿠팡은 “잠수부들이 벽돌에 담긴 쿠팡 가방에 든 노트북을 하천에서 회수했고 유출자가 클라우드 계정에 등록한 일련번호와 해당 노트북의 일련번호가 일치하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범행에 사용된 PC 와 노트북 등 모든 장치를 회수해 안전하게 확보했고 글로벌 보안업체들의 조사 결과도 진술 내용과 같았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매출 90% 나오는데 정보 유출 태도·대응 낙제점 쿠팡이 발표한 대로라면 고객 정보 유출 피해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든다. 또 유출자와 접촉해 장치를 확보했으니 추가 피해는 없다. 전체적으로 사건이 축소되는 것이다. 쿠팡의 발표에 정부는 강하게 반발했다. 쿠팡의 조사 내용은 사전에 정부와 어떤 논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됐다는 설명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는 “정보 유출 종류와 규모, 경위 등은 민관합동조사단이 조사 중인 사안”이라며 “쿠팡이 발표한 내용은 조사단에 의해 확인된 바 없다”고 밝혔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과도 “쿠팡 측이 제출한 진술서와 노트북 등 증거물을 분석 중”이라며 “사실관계를 면밀하게 확인하겠다”고 했다. 논란이 계속되자 쿠팡은 정부의 지시를 받아 조사를 진행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경찰은 사전 협의가 없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사실관계가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쿠팡은 지난달 26일 내놓은 입장문에서 “정부의 지시에 따라 수주간 진행한 조사였다”고 선을 그었다. 같은 달 9일 정부가 쿠팡 측에 유출자와 접촉할 것을 제안했고 14일 쿠팡은 유출자를 처음 만난 뒤 해당 사실을 정부에 보고했으며 16일에는 정부 지시에 따라 유출자의 데스크톱과 하드드라이브를 정부에 제공했다는 게 쿠팡 측 주장이다. 하지만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도 “쿠팡의 입장문 형식의 보도자료에서 정부와 협력했다는 내용 중 일부 국정원으로 추정되는 부분도 사실과 다르거나 왜곡된 부분이 있다”고 반박했다. 쿠팡이 자체 조사와 관련해 정부와 사실 공방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 김범석 쿠팡 의장이 사건 발생 한 달여 만에 사과했다. 그동안 박대준 전 대표가 청문회 등에서 뭇매를 맞고 있는 동안에도 김 의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정부의 압박이 거세지자 처음으로 입을 연 것이다. 5만원 상당 속사정은? 김 의장은 지난달 28일 “쿠팡의 창업자이자 이사회 의장으로서, 쿠팡 전체 임직원을 대표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저희의 책임으로 발생한 이번 데이터 유출로 인해 많은 분께서 자신의 개인정보가 안전하지 않다는 두려움과 불안을 느꼈고 사고 초기부터 명확하게 직접적으로 소통하지 못한 점으로 인해 큰 좌절감과 실망을 안겨 드렸다”며 “사고 직후 미흡했던 초기 대응과 소통 부족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한 달 만에야 입을 연 부분에 대해 “무엇보다 제 사과가 늦었다”면서 “모든 사실이 확인된 이후에 공개적으로 소통하고 사과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돌이켜보면 이는 잘못된 판단”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비판과 질책을 겸허히 받아들인다고도 했다. 하지만 자체 조사 논란에 대해서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김 의장은 “쿠팡은 조사 초기부터 정부에 전면적으로 협력해 왔다”며 “일련의 과정에서 많은 오정보가 확산하는 상황에서도 정부의 ‘기밀 유지’ 요청을 엄격히 준수했다”고 주장했다. 김 의장의 사과는 국회 6개 상임위원회가 참여하는 대규모 연석 청문회를 이틀 앞두고 나왔다. 정부가 범부처 TF를 과기부 총리 산하로 확대하고 다각도로 압수수색과 조사를 진행하는 등 대응 수위를 높이는 상황에 압박을 느꼈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그러나 사과와는 별개로 김 의장은 청문회에 불출석하겠다고 밝혔다. 김 의장뿐만 아니라 동생인 김유석 쿠팡 부사장, 강한승 전 쿠팡 대표 등이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면서 쿠팡에 대한 부정적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여기에 쿠팡이 내놓은 보상안도 도마 위에 올랐다. 쿠팡은 지난달 29일 고객 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해 총 1조6850억원 규모의 보상안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전체적으로 보면 1인당 5만원 상당이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뜯어보면 쿠팡의 ‘꼼수’가 보인다. 청문회는 나 몰라라 보상안은 ▲쿠팡 전 상품 구매 이용권 5000원 ▲쿠팡이츠 5000원 ▲쿠팡트래블 2만원 ▲명품 플랫폼 알럭스 2만원 등으로 구성됐다. 소비자들은 보상금의 상당 부분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 등 평소 이용 빈도가 낮은 서비스 이용권 위주로 구성된 점을 지적했다. 실제 이번 보상안을 통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를 처음 알게 됐다는 소비자도 있다. 시민단체도 쿠팡의 보상안에 반발했다. 참여연대는 “1인당 5만원 보상이라고 했지만 현금이 아닌 구매 이용권으로 사실상 강제 소비를 유도하는 방식”이라며 “보상이 아니라 매출 확대를 위한 마케팅에 불과하다”는 내용의 논평을 발표했다. 쿠팡의 행보는 사사건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국민을 조롱하고 정부를 기만하는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쿠팡이 미국 시장에 상장한 기업이지만 매출 대부분을 우리나라에서 벌어들이는 상황인데도 이 같은 태도를 보이는 것에 분노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회원 탈퇴, 보상안 거부, 집단소송 참여 움직임이 거세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심지어 이재명 대통령도 쿠팡 사태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쿠팡 사태가 일어나고 사흘 뒤인 지난달 2일 “쿠팡 때문에 국민의 걱정이 많다”면서 “사고 원인을 규명하고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관계부처는 해외 사례를 참고해 과징금을 강화하고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도 현실화하는 등 실질적인 실효적 대책에 나서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뒤늦은 사과·꼼수 보상안 도마 위에 이래서 정치권 인사 영입했나? 의혹 12일에도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반복되는 것에 대해 “경제 제재가 너무 약해서 규정 위반을 밥 먹듯이 한다”며 “앞으로는 규정을 위반해 국민에게 피해를 주면 엄청난 경제 제재를 당해서 ‘회사가 망한다’는 생각이 들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규정을 위반하면 난리가 나야 하는 것 아니냐”며 “그런데 위반해도 태도를 보면 ‘그래서 어쩔 건데’ 이런 느낌이 든다”고 지적했다. 정부도 쿠팡에 강력하게 경고하며 전방위 대응을 예고했다. 실제로 같은 달 29일, 배경훈 부총리 겸 과기부 장관 주재로 ‘쿠팡 사태 범정부TF’ 회의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과기부와 경찰청, 개인정보위원회, 금융위원회 등은 역할을 분담해 신속한 조사를 진행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배 부총리는 “쿠팡이 국내 고객 정보 3000만건 이상을 유출한 것은 명백한 국내법 위반 사항으로 정부는 쿠팡이 관련 법령을 위반한 사실이 확인될 경우, 다른 기업과 동일하게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에 따라서는 영업정지 여부도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 사방에서 몰아치는 압박에도 쿠팡이 연달아 이상한 행보를 보이자 ‘믿는 구석’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그 정도로 쿠팡의 현재 대응 방식을 이해할 수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쿠팡이 미국 기업인 것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 증시가 쿠팡의 모든 결정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라는 것이다. 실제 쿠팡이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한 다음 날 미국 뉴욕 증시에서 쿠팡의 주가는 6% 급등했다. 국내에서는 쿠팡의 ‘셀프 조사’에 분통을 터트리고 있는데 미국 시장에는 호재로 작용한 것이다. 쿠팡이 정치·국회 인사를 대거 영입한 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정치권 인사를 영입해 쿠팡 관련 각종 논란을 틀어막고 있다는 의혹이다. 해당 의혹은 ‘강력 경고’ ‘전방위적 대응’ 등의 수사를 사용하고 있지만 실제 조사는 흐지부지될 것이라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나오는 배경으로도 꼽힌다. 변죽 울리다 무사통과? 실제 최근 원내대표직에서 사퇴한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이 국정감사를 한 달여 앞둔 시점에 박대준 전 쿠팡 대표 및 대관 총괄과 오찬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쿠팡이 일용직 퇴직금 미지급 사건에서 검찰 외압 의혹, 물류센터·배송 기사의 과로 및 산재 사망 문제가 제기된 상황이었던 만큼 적절성 논란이 불거졌다. 김 의원은 그달 16일 자신의 SNS에 “공개 일정이고 적어도 5명이 (함께) 식사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만남보다 대화의 내용이 중요한 것 아니냐? 참고로 지난해 7월16일 쿠팡 물류센터도 방문했었다”고 적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