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허균, 서른셋의 반란 (41)운명

서둘러 세상 밖으로

허균을 <홍길동전>의 저자로만 알고 있는 독자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조선시대에 흔치않은 인물이었다. 기생과 어울리기도 했고, 당시 천대받던 불교를 신봉하기도 했다. 사고방식부터 행동거지까지 그의 행동은 조선의 모든 질서에 반(反)했다. 다른 사람들과 결코 같을 수 없었던 그는 기인(奇人)이었다. 소설 <허균, 서른셋의 반란>은 허균의 기인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파격적인 삶을 표현한다. 모든 인간이 평등한 삶을 누려야 한다는 그의 의지 속에 태어나는 ‘홍길동’과 무릉도원 ‘율도국’. <허균, 서른셋의 반란>은 조선시대에 21세기의 시대상을 꿈꿨던 기인의 세상을 마음껏 느껴볼 수 있는 장이 될 것이다. 
 

방긋이 웃으며 말하는 매창의 모습을 보는 순간 가운데에서 뜨거운 기운이 세차게 밀고 올라왔다.

몸이 저절로 매창에게 향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매창의 얼굴에서 뜨거운 기운이 자신의 얼굴로 향하고 있는 사실에 멈칫했다.

아니, 그 순간 매창의 얼굴 위로 어디선가 낯익은 얼굴이 스쳐지나갔다. 

얼굴


분명 자신의 누나 난설헌의 모습이었다.

허균이 급히 뒤로 물러났다.

매창이 놀란 얼굴로 허균을 응시하고 있었다.

“나리, 왜 그러시옵니까!” 

“갑자기, 갑자기 앞이 아뜩해져서 그만. 미안하오.”

매창이 급히 자신의 손을 뻗어 허균의 이마를 짚어보았다.

그 이마에서 허난설헌의 환영이 되살아날 리 없었다.


고개를 갸웃거리던 매창이 잠시 후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나리의 몸이 저를 본능적으로 거부하는 모양입니다.”

“그런가 보오. 그러니 서둘러서 세상 밖으로 나갈 일이오.”

허균이 매창의 얼굴을 바라보며 깊이 한숨을 내쉬었다.

매창도 그 한숨의 의미를 알고 있다는 듯이 잔잔한 미소만 보내고 있었다.

“세상 밖으로 나가자 더 큰 세상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오.”

“더 큰 세상이라 하심은.”

“바로 명나라를 일컬음이요, 명나라.”

“그곳은 어떤가요?”

허균의 얼굴 위로 조롱하는 듯한 웃음이 번져나갔다.

“그 의미는…….”

“그 넓은 땅덩어리를 바라보니 조선은 단지 조족지혈에 불과하다 이 말이오.”


“네!”

“땅덩어리뿐만 아니었다오. 사람들의 마음 씀씀이 역시 그 땅덩어리만큼이나 넓다오.”

매창의 입에서 가느다란 한숨이 흘러나왔다.

“이 나라는 땅이 좁아서 그런가요.”

“땅이 좁아서라.”

허균이 그 소리를 되뇌며 혀를 찼다. 


“그럴 수도 있지요. 정저지와라고, 우물 안 개구리 식으로 세상을 대하고 있으니 그럴 수도 있다는 말이오. 그런데, 매창은 이 좁은 땅 덩어리도 다 돌아보지 못했을 터인데.”

허균이 막상 말을 해놓고 아차한 모양으로 매창의 눈치를 살폈다.

“비록 직접 가서 보지는 못했지만 귀로 웬만한 곳은 다 다녀보았지요.”

매창이 전혀 거리낌 없이 답하자 허균이 정색했다.

“물론 그 말도 일리는 있소. 그러나 들어서 아는 것과 직접 가서 보는 것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오. 보는 즐거움이 얼마나 대단한지. 그 감흥은 어떻고. 또한 그로 인해 인간의 사고가 폭넓게 변화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새삼 느꼈다오.”

비록 매창과의 대화에 몰두해 있는 듯 보이지만 허균의 머릿속은 조금 전에 일어났던 알 수 없는 상황에 사로잡혀 있었다.

왜 매창의 얼굴 위로 누나의 모습이 스쳤던 것일까.

허균이 급히 잔을 들어 단숨에 비워냈다.

역시 매창의 행동이 반복되었다.

“나리, 이제 그만 쉬셔야 하지 않을는지요.”

허균의 얼굴을 주시하며 매창이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그 무슨 소리요. 난 지금 아주 편하게 쉬고 있는 중이건만. 왜, 그대야말로 이 자리가 편치 않소?”

“무슨 말씀을요. 다 나리가 염려되어 이른 말씀이옵니다.”

“우리 내친 김에 모두 쏟아냅시다. 이왕에 시작한 걸음 아니겠소.”

“나리께서만 괜찮으시다면.”

“하기야, 그 후에 일이란 다람쥐 쳇바퀴 돌듯 무료한 날들의 연속이었거늘.”

“왜요.”

만날 그 일이 그 일이지 않았겠소. 그저 새로운 일이 있다면 김효원의 딸과 다시 혼인한 일, 그리고 처참하게 죽어간 부인을 강릉 땅에 이장한 일이었다오.”

“참으로 나리의 운명이 기구하네요.”

매창의 얼굴 위로 누나의 모습이…
이 세상 엎어버리고 싶다는 생각

“왜 또 갑자기 운명이야기요.”

“어머니의 경우도 큰 어머니께서 일찍 돌아가셔서 후처로 들어가셨다고 하시지 않으셨어요. 그런데 나리의 경우도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본부인이 일찍 죽어 후처를 들였으니 말입니다. 아니 그런가요?”

허균이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매창이 말한 내용과 연관 지어 자신의 운명을 더듬어 보았다.

“미치겠군!”

매창에게 이른 말이 아니었다.

스스로에게 던진 말이었다.

“결국 이 세상을 뒤집어 버려야만 하는가!”

역시 스스로에게 중얼거린 말이었다.

“나으리, 고정하십시오!”

“아니오, 매창. 그대의 말을 곰곰이 생각해 본 것이오. 과연 주변에서 일어난 일련의 일들이 예정된 운명이라면 다시 심각하게 생각해볼 일이오.”

“소녀가 괜한 소리를 해서…….”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요. 방금 전 내가 매창을 취하려고 했을 때 말이요.”

“그런 일이 있었사옵니까, 나으리.”

매창이 다시 하얀 이를 드러내면서 미소를 보였다.

“아까 매창의 얼굴에서 바로 누나의 환영을 보았다오. 그래서 깜짝 놀라 뒤로 물러난 것이라오.”

“네? 누님의 환영을. 제게서요!”

“그렇다오, 그래서 내가.”

매창이 허균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이제는 허균이 생각에 잠겨들었다.

갑자기 누나의 환영이 나타난 사유를 헤아리기 시작했다.

단지 마신 술기운 때문이었을까. 고개를 가로저었다.

술기운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순간 묘한 생각이 일어났다.

누나의 억울한 영혼이 안식을 취하지 못하고 있고,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어 매창의 얼굴에 나타난 것이 아닌지 하는 생각이었다.

“그대가 만약 나의 누나라면 어떨 것 같소.”

매창이 가느다랗게 한숨을 내쉬었다.

한숨

“만약에 나리의 누나라면 소녀 역시 억울해서 편안하게 눈을 감지 못했을 것입니다. 저의 경우도 지난 시절 생각만 해도…….”

“솔직하게 말해보시오.”

나리께서 말씀하신 대로 이 세상을 엎어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요.”

“결국 그렇게 되어야 하나.”

“그것이 결국 나리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일이 아닐는지요.”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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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