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장’ 대형 건설사들의 플랜B

새 먹거리 찾아 삼만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대형 건설사들이 지난해에 이어 올해 들어서도 생존을 위한 변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전통적인 건설 이외의 분야에 투자하며 사업 다각화에 적극 나서는 등 과감한 도전을 통해 새로운 성장동력 확보에 분주하다.
 

▲ 현대산업개발

건설업계에 따르면 대림산업은 최근 미국 크레이튼(Kraton)으로부터 ‘카리플렉스(Cariflex)’ 사업을 약 6200억원에 인수했다. 카리플렉스 브라질 생산 공장과 네덜란드 R&D센터를 포함한 것으로 생산제품의 원천기술까지 확보했다. 이와 함께 미국과 독일, 일본 등 글로벌 판매 조직과 인력, 영업권도 갖게 됐다.

계속되는 인수
모듈러 진출

카리플렉스는 이소프렌 고무와 이소프렌 고무 라텍스 제품을 생산한다. 이 제품들은 수술용 장갑이나 주사용기 고무마개 등 의료용 소재로 사용된다.

대림산업은 여천NCC 등을 통해 에틸렌과 프로필렌 등 석유화학 기초제품을 생산하는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한발 더 나아가 이번 카리플렉스 인수로 고기능 부타디엔 고무 생산 사업에 진출, 고부가가치 석유화학 분야로 사업 확장을 가속화한다는 전략이다.

특히 사내이사 연임을 포기하며 경영 일선서 물러난 이해욱 회장이 석유화학뿐 아니라 에너지 디벨로퍼 사업 등을 주도하고 있어 신사업에 대한 투자는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아파트 브랜드 ‘자이’를 앞세워 주택사업에 주력하던 GS건설도 신사업 분야에 꾸준히 관심을 갖고 있다. 지난해 초에는 스마트팜을 사업목적에 추가한 데 이어 올해는 2차전지와 모듈러 부문에 투자하며 공격적인 행보에 나서고 있다.

특히 지난해 말 인사를 통해 허창수 GS건설 회장 장남인 허윤홍 사장이 신사업부문 대표를 맡으며 투자를 이끌고 있다.

GS건설은 올 초 2차전지 재활용 관련 사업에 진출, 2022년까지 1000억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2차전지서 니켈과 코발트, 리튬과 망간 등 유가금속을 생산할 수 있는 시설을 조성해 운영하는 것으로 전기차 보급 확대를 대비한 결정이다.

이와 함께 국내 건설사 중에서는 처음으로 미국과 유럽 선진 모듈러 업체 3곳을 동시에 인수하기도 했다. 이를 통해 해외 모듈러 시장을 선점하고 각 사의 강점과 기술, 네트워크를 활용해 선진 모듈러 시장을 적극 공략한다는 방침이다.

부동산 규제 강화·불황 맞서 활로 찾기
대림산업, 수술 장갑 세계 1위 회사 인수

GS건설은 주총을 앞두고 ‘조립식 욕실 및 욕실제품의 제조, 판매 및 보수 유지관리업’을 사업 내용에 신설하는 정관변경을 안건으로 올리기도 했다.

HDC현대산업개발은 항공사업으로 눈을 돌렸다. 지난해 말 HDC현대산업개발-미래에셋대우컨소시엄(이하 HDC컨소시엄)이 금호산업과 아시아나항공 주식매매계약(SPA)을 체결하며 국적항공사를 품에 안았다. HDC컨소시엄은 4월까지 유상증자를 통한 신주 인수를 마무리할 예정이다. 


당시 HDC컨소시엄은 금호산업이 보유한 아시아나항공 보통주 6868만8063주(지분율 31.0%·구주)를 주당 4700원에 적용해 3228억원에 인수했다. 이와 함께 아시아나항공이 발행하는 보통주(신주) 약 2조1772억원 규모(신주가격 5000원 적용)의 유상증자(제3자배정)에도 참여해 4월30일까지 신주(보통주)를 인수하기로 했다. 
 

▲ 대림산업

HDC현대산업개발은 약 2조원을 쏟아 아시아나항공의 지분 약 61.5%(구주+신주)를, 재무적투자자(FI)로 참여한 미래에셋대우는 약 15.3%의 아시아나항공 지분을 확보하게 된다. 앞서 정몽규 HDC그룹 회장은 미래에셋대우와의 지분구조를 8대2의 틀로 가져가겠다고 밝혔던 상황이다. 

HDC그룹은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통해 건설 중심의 사업서 벗어나 항공사업을 활용한 다양한 신사업을 추진할 수 있게 됐다. 동시에 재계 순위도 33위서 17위로 상승하게 됐다.  

HDC컨소시엄은 범현대가인 현대차그룹, 현대백화점그룹, 현대중공업그룹을 통해 항공물류 등의 강화를 추구할 수 있고, 이 밖에 다양한 시너지효과를 누릴 수 있는 신사업도 추진할 수 있다. 유통, 물류, 호텔 등으로 사업영역을 넓힐 수 있다.  

리츠사업 물꼬
골프장 운영

SK건설은 연료전지 주기기 제작업체인 미국 블룸에너지와 합작법인 설립을 마치고 이르면 올해부터 국내서 고체산화물 연료전지를 생산한다. 합작법인명은 ‘블룸 에스케이 퓨얼셀 유한회사’로 지분율은 SK건설이 49%, 블룸에너지가 51%다.

현재 경북 구미 공장서 생산설비를 설치 중이며 이르면 올해 안에 국내서 연료전지 생산이 본격적으로 이뤄질 전망이라고 SK건설은 전했다. 생산 규모는 연산 50MW로 시작해 향후 400MW까지 점진적으로 확대된다.

아울러 블룸 SK 퓨얼셀은 전문 강소기업과 협업을 통해 국산 부품의 우수한 품질과 가격 경쟁력을 활용할 방침이다. 협력업체 후보군 총 130여곳 가운데 약 10개 업체와 상반기 내 구매 계약을 체결할 계획이다.

SK건설은 “SOFC 국내 생산이 본격화된 뒤 블룸 SK 퓨얼셀을 아시아 시장을 상대로 하는 조달·생산·서비스 허브로 육성할 것”이라며 “국내 중소 부품업체의 수출 판로도 크게 확장하는 동반성장 롤 모델을 만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우건설은 리츠 사업에 진출했다. 대우건설은 부동산 간접투자기구인 리츠 산업에 진출해 건설과 금융이 융합된 신규 사업모델을 만들고, 회사의 신성장동력으로 삼는다는 계획이다. 특히 AMC설립에 금융사를 참여시킴으로써 부동산 개발사업의 성패를 좌우하는 자금 조달력과 안정성서 다른 AMC보다 경쟁 우위에 있다고 밝혔다.
 

▲ SK건설

대우건설은 개발리츠나 임대리츠에 직접 출자함으로써 디벨로퍼의 역할도 수행할 예정이다. 공사를 수주해 시공하는 단순 건설회사서 부지 매입·기획·설계·마케팅·시공·사후관리까지 하는 종합디벨로퍼 회사로 거듭나는 것이다. 이를 통해 기존의 시공이익 외에 개발이익, 임대이익, 처분이익 등을 수취함으로써 사업 수익원을 다각화한다는 전략이다.

또 대부분의 국내 리츠가 임대주택 개발·운용이나 대기업의 부동산 자산관리 수준에 그쳤다는 한계를 극복하고자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공모 리츠를 추진할 계획이다. 대우건설은 국내 개발사업뿐만 아니라 해외 개발사업에도 진출할 예정이며, 상업시설·오피스 등 다양한 실물자산도 매입해 운용할 계획이다.


관광업 인기
폐기물 처리도

부영그룹도 제주 더클래식CC&리조트, 무주 덕유산CC, 제주 부영CC, 순천 부영CC, 안성 마에스트로CC, 태백 오투리조트 등 국내 외 다수 리조트와 골프장을 운영하고 글로벌테마파크와 호텔 건립을 추진하면서 레저, 관광사업을 벌이고 있다.

스타트업과 협업으로 사업다각화를 모색하는 곳도 있다. 우미건설은 최근 공유주방 스타트업 ‘고스트키친’과 공유주택 수타트업 ‘미스터홈즈’에 각각 투자자로 참여했다.

전국의 신도시에 ‘호반써밋’과 ‘베르디움’ 브랜드 아파트 13만 가구를 공급하며 주택의 강자로 알려진 호반건설은 종합건설, 레저, 유통 등 신사업을 통해 지속 성장하고 있다. 

호반건설의 사업다각화는 2010년대부터 시작됐다. 2011년 KBC광주방송의 대주주가 돼 방송미디어 사업에 발을 들였고, 2016년에는 울트라건설(현 호반산업)을 인수해 사업 규모를 키웠다. 2017년에는 제주도 중문 관광단지 내 퍼시픽랜드를 인수하고 본격적인 레저사업 확대를 밝혔다.

2018년에는 리솜 리조트를 인수했고, 2019년에는 덕평CC, 서서울CC도 인수해 현재 국내 7곳, 해외 1곳의 리조트, 골프장을 보유하고 있다. 


호반건설 등 호반그룹은 종합레저 영역에 더욱 체계적으로 진행되는 모양새다. 지난해 상반기에는 리솜호텔&리조트 시설을 보수하는 동시에 중단된 제천 호텔동 공사를 재개했다. 지난 7월에는 스플라스 리솜의 플렉스타워(스파동)에서 그랜드 오픈식도 가졌다.

새롭게 선보인 스플라스 리솜의 플렉스타워(스파동)는 외관, 로비, 객실, 인테리어까지 감각적인 디자인을 갖췄다는 평을 듣고 있다.

또 지난해 6월에는 대아청과를 인수해 농산물 유통 사업에 진출했다. 대아청과는 가락시장 내 도매시장법인 중 하나로 가락시장에서 농산물 경매와 수의계약을 통한 농산물 도매 유통 사업을 하고 있는 회사다. 

GS건설, 올 초 2차 전지 재활용사업 가세
현대산업개발·SK건설 등도 사업 다각화

동부건설은 최근 건설폐기물 사업에 뛰어들었다. 건설폐기물 중간처리업체인 WIK-용신환경개발 4개사를 인수한 에코프라임PE 사모펀드에 간접 투자하는 방식으로 진출했다. WIK-용신환경개발은 2016년 기준 일일 평균 처리실적이 6488t가량으로 업계 1위 실적을 보유한 기업이다.

동부건설 관계자는 “기존 건설업서 확장된 신사업 진출 차원서 투자를 했다”며 “높은 마진률과 견고한 현금창출능력을 보유한 건설폐기물 중간처리업체 투자를 통해 안정적 투자수익을 실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 GS건설

태영건설은 최근 눈에 띄는 성과를 내고 있다. 태영건설은 지난 2004년 ‘TSK워터’ 설립을 시작으로 수처리·폐기물 처리·폐기물 에너지·토양 및 지하수 정화업 등으로 사업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그 결과 지난해 환경부문에서 연결기준 매출 5106억원, 영업이익 950억원을 달성했다.

계룡건설산업은 최근 주주총회를 통해 제로에너지 등 신사업 진출을 위한 정관 변경을 완료했다. 올해 제로에너지 관련 설계·시공·유지관리업을 사업 목적에 추가해 신사업으로 키우겠다는 계획이다.

중흥그룹은 경제신문과 영자신문을 보유한 미디어그룹 헤럴드의 새 주인이 됐다. 중흥그룹과 헤럴드의 최대주주인 홍정욱 회장은 최근 홍 회장 및 일부 주주의 보유 지분 중 47.8%를 양수도하는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중흥그룹은 주택사업에만 치중된 포트폴리오를 개선하기 위해 사업 다각화 대상을 물색해왔으며, 특히 언론사업 진출에 적극성을 보였다. 2년 전 호남 지역지인 <남도일보> 인수에 이어 최근 미디어그룹 헤럴드까지 품으면서 중앙 언론 진출에 대한 염원을 풀게 됐다.

건설로 역부족
신규사업 어디?

이처럼 건설사들은 올 초 신년사를 통해 신성장동력 확보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정부의 부동산 시장 규제로 수주할 수 있는 정비사업 물량이 크게 감소하는 등 주택사업 환경이 녹록지 않은 까닭이다. 글로벌 경기 위축과 유가 하락 등 대외적인 변수도 많다. 대형 건설사들이 새로운 사업 분야로 눈을 돌리는 이유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프로젝트를 수주해 시공하는 것으로는 수익성이 상대적으로 높지 않고, 정부 정책과 경기 등 외부 변수에 따른 영향이 큰 것이 사실”이라며 “수익성이 높은 개발 사업이나 그동안 하지 않았던 새로운 분야로 진출하며 성장 동력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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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성 없는 ‘내란 TF’ 겉핥는 내막

강제성 없는 ‘내란 TF’ 겉핥는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이재명정부가 내란을 방조하거나 간접적으로 가담한 이들을 가리기 위해 TF를 구성했다. 내년 1월까지 공무원 75만명을 대상으로 참여·협조 여부를 조사한다. 일부 기관은 자체적으로 판단해 TF를 구성하는 걸 두고 고민하고 있다. TF는 강제성이 없으며, 이미 조사를 끝내 인사에 반영한 기관도 존재한다. 헌법 존중 정부 혁신 TF(태스크포스)는 중앙행정기관 49곳에 구성됐다. 구체적으로 각 부처 25곳이 포함됐다. TF는 총 48개다. 활동 목표가 인사에 합리적으로 반영하기 위한 것이라지만 각 기관 안팎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사실상 내란 특검팀(조은석 특별검사)의 연장선이 아니냐는 것이다. 방조·간접 가담자들 김민석 국무총리는 지난달 24일 TF 실무 책임자들과 첫 간담회를 갖고 “TF의 조사 활동은 대상, 범위, 기간, 언론 노출, 방법 모두 절제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 총리는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절제하지 못하는 TF 활동과 구성원은 즉각 바로잡겠다”면서 “TF 활동의 유일한 목표는 인사에 합리적으로 반영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이 TF는 공무원 75만명의 ‘내란 참여·협조’ 여부를 개인 휴대전화까지 제출받아 조사한다는 방침 등이 인권침해란 논란이 일었다. 총리실에 설치된 ‘총괄 TF’는 이날까지 부처 25곳을 포함한 기관 49곳에서 TF 48개가 출범했다. 국무조정실·국무총리비서실로 구성된 총리실에 단일 TF가 설치되면서 TF 숫자는 하나 줄었다. TF는 대부분 10~15명으로 구성됐지만, 전체 인원이 많은 국방부(53명), 경찰청(30명), 소방청(19명) 등은 대규모 조사단을 꾸렸다. TF 48개의 총인원은 정부 내부 인사 536명을 포함해 661명에 달한다. TF 48개 중 32개에 외부 인사 125명이 참여했고 그중 76명(60.8%)은 법조인, 31명(24.8%)은 학자, 18명(14.4%)은 시민단체 관계자 등이 참여했다. TF는 ‘내란의 사전 모의나 실행, 사후 정당화, 은폐’를 한 공무원은 ‘내란 참여’로, ‘내란의 일련의 과정에 물적·인적 지원을 도모하거나 실행’한 공무원은 ‘내란 협조’를 한 것으로 보기로 했다. 적발된 공무원에게는 내년 2월13일까지 ‘징계’나 ‘승진 배제’ 같은 인사 조치할 방침이다. 또 ‘내란 행위 제보 센터’를 설치해 동료 공무원들에게 제보·투서를 받고, 의심 공무원은 개인 휴대전화를 들여다보기로 했다. 한 정부 관계자는 “의혹이 상당하다고 판단되면 대상자의 휴대전화를 제출받아 들여다볼 예정이다. 의혹이 상당한 데도 조사에 협조하지 않으면 수사 의뢰까지 가능한 선을 정했다”고 말했다. 법조계에서는 TF 조사 권한을 두고 이견이 나온다. 형사가 아닌 행정 절차이지만 일반적인 조사가 아닌 만큼 행정법이 지켜져야 한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공무원 75만명 전방위 조사 문제없나 형소법 원칙 유명무실…권력남용 소지 한 서초동 변호사는 “영장 없는 조사를 두고 많은 문제 제기가 이뤄질 수밖에 없다. 행정조사기본법에 따르면 인사상 불이익으로 압박하거나 진술을 강요하면 직권남용 혐의가 성립될 수 있다. 최소한의 범위를 규정하고 조사해야 하는데 TF가 정한 선이 어느 지점까지인지가 핵심일 것 같다”고 조언했다. 국회도 과거 비슷한 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2022년 발간한 ‘권력적 행정조사의 쟁점 및 개선 과제’ 보고서에서 행정조사 과정에서 영장주의·진술거부권이 침해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행정조사에서 수집된 자료가 수사기관으로 넘어가 형사 처벌 근거로 활용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형사소송법상 원칙이 유명무실해지고, 국가권력이 남용될 소지도 있다. 업무용 PC나 이메일에서는 변호사와 상담한 내용까지 확보되는 사례도 있어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위축될 가능성도 있다. 행정조사 위법성과 관련해서는 판례도 존재한다. 지난 2012년 서울고법은 기관이 업무용 휴대전화 통화 기록과 문자메시지를 동의 없이 확보해 공무원을 해임한 사건에서 이를 위법한 증거수집으로 보지 않았다. 법원은 기관이 통신비를 부담했고, 감사 목적이 공익적이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도 상고를 기각했다. 조직 내부 감사는 세무조사·공정거래위원회 조사·근로감독 등과 달리 별도의 법적 근거가 불명확한 경우가 많아 조사의 한계 역시 모호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정부 차원의 대규모 내부 감사가 법적 문제를 일으킨 선례 역시 많지 않다. 민간인의 TF 참여도 새로운 논란이다. 정부는 감사부서 공무원 외에 민간인을 포함하거나 아예 외부 전문가로만 구성된 TF를 둘 수 있다는 지침을 내렸다. 명확한 법적 근거 없이 민간인이 공무원에 대해 조사권을 행사하는 셈인데, 정부는 TF 설치를 위한 별도 입법을 마련하지 않았다. 논란 불구 조사 시작 공직사회는 뒤숭숭한 분위기다. 조사 기준이 모호해 억울한 문책 인사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반면 계엄을 방관했거나 동조한 세력을 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상당하다. 핵심 조사 대상으로 거론되는 기관은 기획재정부·국방부·행정안전부·경찰·검찰·법무부 등이다. 기재부의 경우 최상목 전 기재부 장관 겸 경제부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까지 겸했다. 최 전 장관이 12·3 비상계엄 당시 윤석열 전 대통령으로부터 국가비상입법기구 예비비 편성 등 계엄 지시 문건 등을 받고 1급 고위직들을 소집해 회의를 연 바 있어, 당시 회의에 참석했던 이들이 조사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10월 국회 국정감사 때 김동일 전 예산실장과 신중범 전 대통령실 경제금융비서관 등이 아시아개발은행(ADB)과 아시아거시경제감시기구(AMRO)로 파견되기 직전 명예 퇴직금을 수령한 것을 두고 ‘해외도피’ 논란이 제기되기도 했다. 외교부는 이번 국감에서 비상계엄 직후 대통령실이 외교부 장관 명의로 ‘합법적 계엄’이란 내용의 공문을 주미한국대사관에 보내고, 이를 ‘3급 기밀’로 지정한 점을 지적받은 바 있다. TF가 가동되면서 외교부 인사는 사실상 ‘중단’ 상태다. 외교부는 애초 올해 말까지 1급 인사를 마무리할 계획이었지만, TF 활동이 시작되면서 어렵게 됐다. 새 정부가 출범한 지 반년이 다 되어가지만, 그동안 외교부 실·국장 및 재외 공관장 인사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외교부 인사는 특임 대사 임명과도 맞물려 있지만 인사 속도는 더디기만 하다. 특히 현 정부는 특임 대사를 확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외교부는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특임 대사는 직업 외교관이 아닌 전문가·정치인·학자 등을 대통령이 재외공관장으로 임명하는 제도다. 주요 공관장 인사가 늦어지면서 사안이 터졌을 때 제대로 대응할 수 있느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지난 9월 미국 조지아주 현대자동차·LG에너지솔루션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서 발생한 한국인 불법구금 사태 당시에도 조지아주를 관할하는 주애틀란타총영사직은 공석이었고, 캄보디아 사태 때도 주캄보디아 대사직이 비어있었다. 필요는 한데… 이중 감사 검찰 TF는 최근 검찰 내부망인 ‘이프로스’에 다음 달 12일까지 제보용 익명 게시판과 별도의 이메일 계정을 통해 관련 제보를 받겠다고 공지했다. 단장은 구자현 검찰총장 대행이 김성동 대검 감찰부장과 주혜진 대검 감찰1과장이 각각 부단장과 팀장을 맡아 10여명이 참여했다. 법무부에 설치된 TF 역시 같은 날 공지를 게시했다. 법무부에선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TF 단장을 맡고 내외부 인사 10여명이 구성원으로 참여한다. 법무부는 내부 익명 게시판을 통해 제보를 접수하는 한편, 검찰과 별도의 이메일 계정을 개설해 운영할 예정이다. 경찰은 경무관 승진, 총경 인사를 앞두고 숨죽이는 분위기다. 앞서 계엄 수사로 조지호 경찰청장 등 수뇌부가 재판에 넘겨졌지만, 계엄 당시 국회 출입 통제나 체포조 투입에 관여됐던 간부 상당수는 기소를 피했다. 국방부는 이중 감사 논란이 일고 있다. 이미 12개 기관을 대상으로 내부 감사를 진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취임 직후 감사관실 주도로 중령급 이상 간부를 전수 조사해 지난주 보고서를 대통령실에 제출했고, 이는 이번 3성 장군 인사에도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부는 총리실의 지시에 따라 기존 감사자료를 제출하는 수준에서 협조할 것으로 알려졌다. 감사관실은 조사본부를 합류시켜 TF를 꾸릴 것으로 보인다. 지난 국방부의 자체 감사는 합참 현역 장교뿐 아니라 본부 군무원과 민간 공무원까지 포함한 대대적 감사였다. 지난 9월 진영승 합참의장 취임 이후, 권대원 합참차장을 제외한 합참 장군 전원과 2년 이상 근무한 중령·대령에 대한 대규모 인적 쇄신이 실제로 단행됐다. 합참의 지시에 따라 장교들의 진급이 보류되거나 보직이 변경됐다. 국정원은 이미 이종석 국정원장 취임 이후 직원들의 비상계엄 관련 여부 등 내부 조사를 마쳤다. 특히 의무적으로 TF를 구성해야 하는 기관이 아니다. 국정원은 지난 8월 첫 1급 인사를 단행하고 최근까지 2∼4급 인사를 마무리했다. 애매한 의혹 제기 투서 남발 우려 일부 기관 자체 판단 별도 TF 설치 이 인사는 이 원장 취임 이후 진행한 내부 조사 결과를 반영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국정원은 이 원장 취임 두 달 만인 8월 1급 간부 20여명의 인사를 단행하면서 그간 정권이 바뀐 뒤 1급 간부를 모두 교체하던 관행과 달리 윤석열정부에서 임명된 간부들을 일부 유임시켰다. 국정원은 대통령 직속 기관이다. TF 설치를 두고 대통령실이 직접 관리할 수 있다. 정부 관계자는 “본래 정권이 바뀔 때마다 신임 국정원장이 취임하면 국정원은 윗선 지침이 없어도 원장 지시하에 내부적으로 감찰이나 조사를 철저하게 해 왔다”며 “대통령실에서 직접 관리해 TF 조사가 이뤄져도 추가로 드러날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국회 정보위원회 간사인 더불어민주당 박선원 의원은 지난달 4일, 국정원 국정감사 이후 브리핑에서 “국정원이 불법적 비상계엄 상황에서 내란·외환 정보수집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는 점을 인정했다”면서 “국정원은 국정원법 4조에 따라 내란죄·외환유치 관련 자료를 특검에 이미 제출했고 계엄 시 국정원 역할 재정비와 실효적 안보조사체계 복원을 추진하겠다고 보고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인권침해 진정이 들어온 기구를 인권위가 설치하면 모순”이란 이유로 TF 설치를 거부했던 국가인권위원회는 TF 구성 반대 의결 과정에서 절차상 흠결이 지적되자 다음 전원위원회에 다시 상정해 논의하기로 했다. 앞서 인권위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등 독립기관은 TF 설치를 자율적으로 판단하기로 정해졌다. 안창호 인권위원장은 지난달 24일 열린 제21차 전원위원회에서 “정부에서 부처 내 헌법존중 TF를 자율적으로 만들라는 권고가 있는데 어떻게 할 것이냐”고 위원들에게 물었다. 이에 한석훈 위원이 구두로 안건 발의를 제안했다. 이후 안건 발의자로 참여한 김용원·이한별 위원 포함 발의자 세 명과 강정혜·김용직 위원, 안 위원장 등 6인이 ‘TF 구성 반대’에 손을 들면서 의결됐다. 부역자 남았나 인권위 안팎에선 자율적 설치라고 해도, TF 설립 취지에 비쳐 조사 대상이 될 수 있는 위원들이 안건을 즉석에서 상정해 반대 의결까지 한 건 부적절했다는 비판도 나왔다. 특히 반대 의견을 낸 안 위원장과 김용원 위원 등은 지난 2월 ‘윤석열 방어권 안건’ 의결에 찬성해 특검에 내란 선동·선전 혐의로 고발된 상태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