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있는 겨울 음식 ②강원도 메밀전병, 콧등치기

강원도 겨울 시장의 미(味)담

▲ 콧등치기에 들어가는 메밀국수 삶는 모습. 막국수와 달리 면이 굵고 투박하다.

시장이 주는 즐거움 가운데 하나는 먹을거리다. 추위를 이기려고 국수 한 그릇 서둘러 말아먹거나, 출출함을 면하려고 막 튀겨낸 도넛을 베어 물 때, 만든 이의 인생을 맛보는 것 같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생의 미감이다. 강원도 재래시장은 먹을거리의 재료가 지역의 삶이다. 정선아리랑시장과 영월서부시장이 대표적이다.

‘정선아리랑시장’은 1999년 정선5일장관광열차가 개통하며 오늘의 명성을 얻었다. 2015년부터 정선아리랑열차(A-train)가 그 배턴을 잇고 있다. 끝자리 2·7일에 열리는 오일장은 변함없이 북적거리고 상설시장은 여행의 목적으로 부족함이 없다. 정선아리랑시장 동문과 서문 어느 쪽으로 들어가든 ‘메밀이야기’ ‘곤드레이야기’ ‘콧등치기이야기’ 등 먹자골목이 반긴다. 

시장 음식의 진가

메밀전 부치는 고소한 기름 냄새가 코끝을 간질인다. 골목을 나눴지만 콧등치기, 곤드레밥, 올챙이국수 등을 한집에서 판다. 전은 메밀부침과 전병, 수수부꾸미, 녹두전 등 모둠전 형태로 5000원 선이다. 시장 음식의 진가를 맛볼 수 있다.

정선아리랑시장의 먹을거리는 재료가 지역을 말한다. 토양이 척박한 강원도는 논농사가 쉽지 않았다. 그나마 메밀, 옥수수, 감자 등 구황작물은 꿋꿋하게 자랐다. 강원도 사람들은 메밀로 전병과 콧등치기를, 옥수수로 올챙이국수를 만들어 먹었다. 먹고 싶어서가 아니라 어쩔 수 없이 먹은 음식이다.

재미난 이름에는 사연이 있다. ‘콧등치기’는 장국에 말아 먹는 메밀국수다. 막국수와 달리 면이 굵고 투박하다. 후루룩 빨아들이면 면이 콧등을 칠 만하다. ‘올챙이국수’는 옥수수 녹말을 묽게 반죽해서 구멍 뚫린 바가지에 내린다. 찰기가 적으니 툭툭 끊어져 올챙이묵처럼 생겼다.


콧등치기나 올챙이국수는 술술 넘어간다. 급하게 허기를 채우고 서둘러 일터로 돌아가던 아우라지 떼몰이꾼과 민둥산 화전민의 뒷모습이, 정선 사람들의 하루가 보이는 듯하다.

새로운 공간도 생겼다. 정선아리랑시장 골목 안쪽에 ‘청아랑몰’이 있다. 청춘과 아리랑을 합친 이름이다. 3층 컨테이너 건물은 1층 푸드 코트, 2층 액세서리 숍과 공방, 3층 퍼브(pub)로 구성된다. 김밥이나 떡볶이 같은 분식에서 마카롱, 과실주, 수제맥주까지 작지만 알차다.

정선의 자연이 보고 싶다면 ‘아리힐스-스카이워크’가 좋다. 뱅뱅이재라고도 불리는 해발 583m 병방치 전망대에 길이 11m ‘U 자형’ 스카이워크를 설치했다. 강화유리 바닥 아래는 아찔한 절벽이고 눈앞에는 한반도 지형과 어우러진 동강이 압도적이다. 눈 내린 다음 날이 아름답지만 도로 상태에 따라 출입을 통제하기도 한다.

‘아리랑브루어리’는 영월과 가까운 신동읍에 있다. 맥주의 쓴맛을 폐광 지역 광원 이야기에 녹여냈다. 브랜드 이미지도 광원이다. 현재 수제맥주 5종을 선보인다. 평일에 맥주 5종 시음이 포함된 양조장 견학 프로그램(약 20분 소요, 1만원)을 운영한다. 50석 규모 퍼브를 갖춰, 오후 햇살 아래 맥주 한잔 즐기며 쉬었다 갈 수 있다.

정선아리랑시장이 강원도 시장 음식 여행의 대표 주자라면, ‘영월서부시장’은 떠오르는 강자다. 영월은 한동안 박물관 여행지로, 영화 〈라디오 스타〉 촬영지로 불렸다. 근래에는 영월서부시장이 대세다. 〈라디오 스타〉의 정서가 녹아든 소도시 시장이 ‘먹부림’으로 특화되며 찾는 이가 부쩍 늘었다.

 

영월서부시장은 영월서부아침시장과 서부공설시장, 영월종합상가가 합쳐 하나의 시장을 이룬다. 1959년에 정식 허가를 받았으니 60년이 넘었다. 영월 사람에게 여전히 동네 시장이지만, 여행자에게는 ‘메밀전병의 성지’다. 메밀전병 맛집은 영월서부아침시장 자리에 모여 있다.

시장의 먹을거리 재료가 지역의 삶
메밀, 옥수수 등 구황작물로 만들어


농부들이 아침에 농산물을 팔고 돌아가서 아침시장이란 이름이 붙었다. 그 자리에 메밀전병 맛집이 다닥다닥하다. 입구부터 메밀전병 부치는 냄새에 군침이 돈다. 자그마하게 내건 간판에는 ○○집, ○○분식 같은 상호가 메밀전만큼이나 정겹다.

▲ 콧등치기는 면발이 콧등을 치게 먹어야 제맛

조금씩 다른 음식을 낸 시절도 있었지만, 이제는 모두 메밀전병과 메밀부침개 맛집이다. 철판에 기름을 쓱 두르고 묽은 반죽을 얇게 부친 다음, 볶은 김치와 당면 등으로 만든 소를 얹어 둘둘 만다. 심심한 맛인데 한 점씩 먹다 보면 금세 바닥이 드러난다.

가게마다 전 부칠 때 쓰는 기름, 볶은 김치의 매운맛, 전의 두께와 색깔이 다르다. 여행자는 방송에 나온 맛집을 찾고, 영월 사람은 미세한 맛의 차이를 알아채니 각자 단골집이 따로 있다. 하지만 ‘오픈 키친’에서 부친 메밀전을 입 안 가득 넣고 먹을 때 행복감은 별반 다르지 않다.

주인은 할머니가 많은데 무뚝뚝해 보여도 막상 앉으면 친절하다.

▲ 정선아리랑시장 골목 안쪽에 자리한 ‘청아랑몰’

메밀전병과 더불어 영월서부시장 먹부림 양대 산맥의 하나는 닭강정이다. 메밀전병이 추억을 더해 은은한 맛을 빚는다면, 닭강정은 직설적이다. 매콤하고 달콤한 자극으로 매혹한다. 영월서부시장의 닭강정은 땅콩 가루를 넉넉히 묻혀 고소한 맛을 더한다.

시장 내 유명한 집들은 바삭하게 씹히는 맛이 각기 조금씩 다르다. 반대편 출구 영월종합상가 쪽에는 영화 〈라디오 스타〉의 주인공 안성기와 박중훈 벽화가 숨은 볼거리다.

▲ 강화유리 바닥 아래로 아찔한 절벽이 보이는 아리힐스-스카이워크

영월에 가면 ‘동강사진박물관’에 꼭 들러볼 일이다. 박물관은 2005년에 문을 열었지만, 2001년부터 사진 마을을 선포하며 시작된 영월의 사진 역사가 고스란히 담겼다. 상설전시실과 기획전시실에서 우리나라 대표 사진가들의 작품이나 동강국제사진제 수상작 등을 전시한다. ‘야외회랑’은 겨울 추위에도 회랑을 거닐며 작품을 감상할 만하다.

▲ 아리랑브루어리가 선보이는 수제 맥주 5종

젊은달와이파크

‘젊은달와이파크’는 요즘 영월에서 주목 받는 예술 공간이다. 최옥영 작가가 술샘박물관을 개조해 복합 문화 공간으로 꾸몄다. 젊은달와이파크는 ‘영(young, 젊은)+월(月, 달)’에서 따온 이름이다. ‘붉은 대나무’ ‘목성’ 등 공간으로 체험할 수 있는 작품을 비롯해, 젊은층이 공감할 만한 감각적인 요소가 많다. 젊은달와이파크 전체가 포토존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행 정보>
 
당일 여행 
맛 이야기 여행: 정선아리랑시장→아리힐스-스카이워크→아리랑브루어리→영월서부시장
시장과 예술 여행: 정선아리랑시장→아리랑브루어리→영월서부시장→동강사진박물관→젊은달와이파크

1박2일 여행 코스
첫째 날: 정선아리랑시장→아리힐스-스카이워크→상유재→아리랑브루어리
둘째 날: 영월서부시장→동강사진박물관→라디오스타박물관→젊은달와이파크  

관련 웹 사이트 주소
- 정선관광 www.jeongseon.go.kr/tour
- 정선아리랑시장 https://blog.naver.com/jungsun_mk
- 아리힐스-스카이워크 www.arii hills.co.kr
- 아리랑브루어리 www.아리랑브루어리.com
- 영월문화관광 www.yw.go.kr/tour
- 영월서부아침시장 https://morningmarket.modoo.at
- 동강사진박물관 www.dgphotomuseum.com
- 젊은달와이파크 www.ypark.kr


문의 전화
- 정선군관광안내 1544-9053
- 정선아리랑시장 033)563-6200
- 아리힐스-스카이워크 033)563-4100
- 아리랑브루어리 033)378-7177
- 영월군관광안내 1577-0545
- 영월서부시장(영월군청 경제고용과) 033)370-2763
- 동강사진박물관 033)375-4554
- 젊은달와이파크 033)372-9411

대중교통
- 정선아리랑시장 [기차] 청량리역-정선역, 정선아리랑열차(A-train) 수~일요일·정선 장날(끝자리 2·7일) 하루 1회(08:35) 운행, 약 3시간40분 소요. 정선역에서 정선아리랑시장까지 도보 약 20분(1.3km). 정선역 앞 애산리 정류장에서 17번·17-1번·19번·20번 버스 이용, 신용협동조합 정류장 하차, 정선아리랑시장까지 도보 4분. 
*문의: 레츠코레일 1544-7788, www.letskorail.com 정선군대중교통정보 www.jeongseon-pti.com 
[버스] 서울-정선, 동서울종합터미널에서 하루 8회(07:00~19:15) 운행, 약 2시간30분 소요. 정선버스터미널에서 정선아리랑시장까지 도보 약 20분(1.3km). 정선버스터미널 정류장에서 17-1번·  20번·21번 버스 이용, 농협 정류장 하차, 정선아리랑시장까지 도보 2분. 
*문의: 동서울종합터미널 1688-5979 시외버스통합예매시스템 https://txbus.t-money.co.kr 정선버스터미널 033) 563-9265 정선군대중교통정보 www.jeongseon-pti.com
- 영월아리랑시장 [기차] 청량리역-영월역, 무궁화호 하루 6회(07:05~23:20) 운행, 2시간20분~2시간50분 소요. 정선아리랑열차(A-train) 수~일요일·정선 장날(끝자리 2·7일) 하루 1회(08:35) 운행, 약 2시간20분 소요. 영월역 앞 정류장에서 1번·5번·7번·12번·12-1번·13번·20번·20-1번·20-3번·20-5번·20-7번 버스 이용, 푸른사랑의원 정류장 하차, 영월서부시장까지 도보 4분. 
*문의: 레츠코레일 1544-7788, www.letskorail.com 영월교통 033)373-2373 영월군대중교통정보 www.yeongwolterminal.co.kr 
[버스] 서울-영월, 동서울종합터미널에서 하루 13회(07:00~22:00) 운행, 1시간50분~2시간20분 소요. 영월시외버스터미널 맞은편 영월서부시장. 
*문의: 동서울종합터미널 1688-5979 시외버스통합예매시스템 https://txbus.t-money.co.kr

자가운전
- 정선아리랑시장: 영동고속도로 진부톨게이트→정선 방면 우회전→진부중앙로 1.7km→오대천로 28.7km→정선·태백 방면 우회전, 서동로 7.5km→덕송교차로 우회전 1.3km→미탄·평창 방면 우회전, 비봉로 100m→정선아리랑시장 방면 좌회전 100m→정선아리랑시장
- 영월서부시장: 중앙고속도로 제천톨게이트→단양·영월 방면 북부로 33.6km→영월 방면 영월동로 814m→영월 방면 좌회전 425m→영월 방면 좌회전, 청령포로 802m→석향·태백 방면 영월로 976m→시외버스터미널 방면 좌회전, 중앙1로 208m→영월서부시장 

숙박 정보
- 상유재(한국관광 품질인증업소): 정선군 정선읍 봉양3길, 033)562-1162
- 강과 소나무(한국관광 품질인증업소): 정선군 북평면 나전리 328, 010)2271-8523, www.gangsol.com
- 강이흐르는마을펜션: 정선군 정선읍 군언길, 033)563-7979, http://rivertown.kr
- 드림힐펜션: 영월군 영월읍 봉래산로, 033)375-1234, www.ywhill.com
- 동강빌리지: 영월군 영월읍 동강로, 033)373-7151, www.dongang.net

식당 정보
- 회동집(콧등치기): 정선군 정선읍 5일장길, 033)562-2634
- 할머니횟집(향어백숙): 정선군 화암면 소금강로, 033)563-2785~6, https://cjsekgod.modoo.at
- 미탄집(메밀전병): 영월군 영월읍 중앙로, 033)374-4090
- 일미닭강정(닭강정): 영월군 영월읍 서부시장길, 033)374-0151, www.일미닭강정.com

주변 볼거리
정선: 아리랑박물관, 타임캡슐공원, 추억의박물관
영월: 별마로천문대, 영월 장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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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