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한폐렴 공포’로 직격탄 맞은 재계

가뜩이나 죽을 맛인데 ‘설상가상’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국내 여러 업종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우한 폐렴)의 직격탄을 맞게 됐다. 메르스와 사스의 공포를 겪었던 터라 ‘초긴장’ 상태다. 중국 관광객들이 주고객인 면세점과 호텔, 여행업계, 극장 공연업계에서는 소독 강화와 직원 마스크 착용 의무화 등을 통해 피해 방지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 본 사진은 특정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유커(遊客·중국인 관광객)의 귀환으로 모처럼 훈풍이 부는 듯했던 면세점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에 직격탄을 맞을 위기다. 면세점과 호텔은 유커 방문이 집중되는 시설로, 유동인구가 많아 만약 방문객 중 보균자가 있을 경우 연쇄 감염의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유커 귀환에 환호
다시 초상집으로

국내 면세점의 주요 고객은 중국인이다. 면세점 업계에 따르면 고객 중 중국인 비중은 약 80%에 달한다. 대부분 보따리상으로 불리는 따이공(代工)들이다.

지난 설 연휴는 면세점서 따이공을 찾기 힘들었다. 대부분 중국 춘절을 맞아 한국을 떠나 중국서 연휴를 보냈기 때문이다. 중국 춘절 연휴는 지난 2일까지였다. 따이공들은 연휴가 끝난 뒤에야 다시 한국을 찾을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로 지난 수년간 중국 당국이 한반도 내 사드 배치를 이유로 한한령(限韓令) 기조를 유지하면서 발길이 끊어졌던 따이공들이 최근 다시 한국을 찾는 분위기였다.


면세점 업계는 ‘유커의 귀환’을 반겼다. 각 면세점들은 춘절을 맞아 중국으로 돌아가는 따이공을 대상으로 각종 할인과 사은품 증정 등 행사를 펼치며 연휴가 끝난 뒤 다시 발걸음을 해달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하지만 우한 폐렴 사태로 곧 돌아올 유커들을 환영하지도 내치지도 못하는 상황이 됐다.

이에 각 면세점들은 대표이사 등을 위원장으로 한 비상대책위원회를 가동하고 대응책 마련에 분주한 모습이다.

롯데면세점은 전 직원 일일 발열 체크와 매장 및 인도장의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하고 방역 활동을 강화했다. 임산부와 만성질환 직원들은 휴직도 실시할 예정이다.

신라면세점도 비상대응 태스크포스를 가동했다. 영업장 입구에 오가는 사람들의 발열 여부를 체크하기 위한 열화상 카메라를 설치하고, 직원들은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했다. 소독도 매일 실시하며 고객에게는 마스크를 나줘주고 있다.

사스·메르스에 이어 실적에 직격탄 우려
면세점 대표들 직접 비상대책위원회 꾸려

현대백화점 면세점도 비대위를 꾸리고 전 직원 마스크 착용과 발열 체크를 의무화하고 영업장의 수시 소독에 나섰고, 신세계 면세점도 모든 직원이 마스크를 착용하고 고객에게도 마스크를 나눠줬다.

한 면세점 관계자는 “중국 춘절 연휴가 끝난 뒤가 진짜 문제”라며 “질병관리본부 등 정부의 대응에 따라 유기적인 대응에 나설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어 “우한 폐렴은 과거 다른 감염설 질병과 달리 잠복기에도 타인에게 전염이 가능하다고 해서 걱정”이라며 “중국 상황이 진정될 때까지는 유커들이 입국을 못해도 문제고 입국을 해서 영업장을 찾아도 문제”라고 덧붙였다.


중국 여행을 계획했던 국내 여행객 취소가 잇따르면서 국내 여행업계에도 비상이 걸렸다. 게다가 중국 정부가 지난달 27일 자국민의 단체 해외관광을 전면 중단하면서 방한 관광 시장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한국관광공사가 유치했던 중국인 인센티브 관광객 2500여명이 지난달 28일 내한을 전격 취소했다. 2월 방한 예정이었던 이들이 여행 일정을 취소하면서 중국 단체 관광객 발걸음이 2016년 ‘금한령’ 때처럼 뚝 끊기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확산 중이다. 

2018년 2월 방한했던 중국 관광객은 45만3000여명이었다. 개별 관광객 숫자가 압도적인 상황(2018년 기준 92.4%)을 감안하더라도 감소가 확실한 것으로 판단되는 올 2월 중국 단체관광객 숫자는 3만여명에 달한다.

국내 여행업계에도 직격탄이 떨어졌다. 국내 최대 여행사인 하나투어는 현재 중국 상황을 2012년 메르스 때보다 심각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하나투어 관계자는 “중국 여행을 계획했다가 취소하는 고객이 급격히 늘고 있는 상황이라 1월은 물론 2월 예약자 7000여명 전원이 취소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현재 주요 도시 관광지까지 폐쇄한 중국의 상황은 메르스 때보다 심각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중국인 투숙 여부
고객 문의 폭주

하나투어는 1∼2월 예약 취소 고객에 대해 취소수수료를 받지 않기로 했다.

모두투어 역시 설 연휴 전날까지 중국여행 취소자가 4000명을 넘어선 것으로 조사됐다. 이 회사의 연평균 2월 중국 여행 상품 예약자가 1만 5000명∼2만여명인 점을 감안하면 예약 취소자 숫자는 앞으로 기하급수적으로 늘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 이외의 타지역도 제한적이긴 하지만 취소자가 생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모두투어 관계자는 “설 연휴 직후 중국 주요 관광지가 통제 또는 폐쇄돼 진행 예정이던 중국 본토 관광상품의 경우 일괄 취소를 결정했다”며 “2월 이후 행사도 비슷한 수순을 밟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모두투어 역시 2월 말까지 홍콩, 마카오 등을 포함한 중국 여행 상품에 대해 취소수수료를 받지 않기로 결정했다.

한국으로 들어오는 중국 단체 관광객의 경우 중국계 여행사를 이용하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다. 따라서 국내 업계의 직접적인 피해는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문제는 중국 관광객 숫자의 90%가 넘는 개별 관광객이다. 
 


아직 정확한 입국 통계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현재와 같은 추세가 이어질 경우 개별 여행객들의 여행 심리도 움츠러들 것이 뻔해 전체 중국 관광객 숫자 역시 역대 최저치까지 떨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비상 상황은 극장과 공연업계도 매한가지다. 영화, 연극, 무용, 음악회 등이 펼쳐지는 극장과 공연장은 밀폐된 공간서 적게는 수십명, 많게는 수천명이 넘는 인파가 모여 장시간 작품을 감상하기 때문에 전염에 대한 우려도 클 수밖에 없다.

중국 관련 업체
하나같이 불똥 

지난달 28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정규 9집 발매를 앞둔 슈퍼주니어는 경기도 고양시 일산 빛마루 방송지원센터서 이날 오후 3시와 7시30분에 회당 팬 400여명 앞에서 컴백쇼를 녹화할 예정이었으나, 소속사는 이를 비공개로 전환했다.

소속사 SM엔터테인먼트는 전날 슈퍼주니어 팬 페이지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관련한 상황으로 ‘슈퍼주니어 더 스테이지’의 모든 녹화는 비공개로 진행된다”고 공지했다. 중국서 예정된 가수들의 행사 일정 조정도 검토되는 분위기다. 

보이그룹 SF9은 오는 3월14일 중국 칭다오에서 팬 사인회가 예정됐다가 팬들이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을 우려해 이를 취소하거나 연기하라고 SNS를 통해 목소리를 높였다. 


세종문화회관, LG아트센터, 경기도문화의전당 등 공연 관련 기관들은 오전 대책 회의를 진행했다. 유인택 예술의전당 사장은 “손 세정제를 배치하고 마스크를 준비하는 등 기본적인 조치는 준비하고 있다”며 “메르스 때 있었던 매뉴얼을 참고해 대책을 마련 중이며 다른 공연장과의 공조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연극, 뮤지컬 업계도 촉각을 곤두세우기는 마찬가지.

신시컴퍼니 관계자는 “공연을 안 할 수도 없고 정말 걱정”이라며 “메르스 사태 때는 손 소독제를 곳곳에 비치하고 배우들 건강에 특별히 유의했는데 이번에도 비슷한 분위기가 재연될 것 같다”고 말했다.

CJ ENM 관계자도 “메르스 때는 사람이 모이는 곳을 피하라고 하니까 관객이 많이 줄었다”며 “아직 티켓 예매나 판매에는 영향이 나타나지 않지만 긴장할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인기 공연 줄줄이 취소…공연업계 울상
2∼3월 중국 여행예약 대부분 취소되기도

CGV, 롯데시네마 등 대형 극장들도 직원들에게 감염 예방을 위해 안전 예방 수칙을 준수하도록 독려 중이다.

롯데시네마는 직원들에게 근무 전에 체온을 반드시 체크하도록 했으며, 손 소독제와 마스크 사용을 독려했다. 극장 내에도 손 소독제를 비치해 관객들이 사용하도록 했다. 극장과 공연업계서 겨울방학 성수기에 이 같은 사태가 발생해 관객 감소를 우려하고 있는 가운데 인터넷과 SNS서도 극장이나 공연장, 쇼핑몰 등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은 가지 말자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극장 관계자는 “설 연휴가 끝났지만, 겨울방학이어서 가족 단위 관객의 극장 나들이가 많은 시기인데 ‘우한 폐렴’ 여파로 관객 발길이 뜸할 것 같다”고 우려했다. 2015년 메르스 공포가 정점을 찍은 6∼7월 두 달간 연극, 뮤지컬 티켓 판매액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27%나 급감한 적이 있다.

호텔도 비상이다. 중국 제일재경망에 따르면 지난해 12월30일부터 지난달 22일까지 약 3주 간 우한서 출발한 탑승객 중 6430명이 한국을 찾았다. 지금까지 국내서 발생한 확진자 모두 이 시기에 한국을 찾았으며 일부 확진자는 호텔에 숙박했다.

호텔업계에 따르면 각 호텔에는 중국인 투숙 여부를 물어보는 고객의 문의가 이어지는 상황이다. 내국인 예약은 10% 넘게 취소됐다. 이 같은 우려에 각 호텔업계도 대응에 들어갔다. 소공동 롯데호텔서울은 열화상 카메라를 설치해 오가는 사람들의 발열 여부를 체크하고 전 직원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했다. 서울신라호텔도 열화상 카메라 설치와 직원들의 마스크 착용, 프런트 데스크와 화장실 등에 손 소독제를 비치했다.

언제까지∼
이제 시작?

각 호텔들은 발열 등의 이유로 미리 예약을 취소하지 못하고 노쇼를 하더라도 수수료 없이 취소해주기로 했다. 한 호텔 관계자는 “최근 중국인 관광객이 증가하는 추세라 반가웠는데 뜻밖의 악재를 만났다”며 “내국인 고객 문의와 항의가 잇따르고 있지만 오는 사람을 강제로 막을 수는 없어 난처한 때가 많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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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 협상’ 일본과 비교해보니⋯

‘관세 협상’ 일본과 비교해보니⋯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트럼프발’ 통상 전쟁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앞서 못 박은 시한은 끝났다. 우리나라는 유예 기간이 끝나기 전날 타결했다. 이제 협상 결과를 두고 계산기를 두드려야 할 때다. 일본과 유럽연합(EU), 그리고 한국. <일요시사>가 세부 내용을 들여다봤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취임 전부터 각국에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미국을 상대로 돈을 번, 즉 대미 무역 흑자를 거둔 나라들이 표적이 됐다. 지난해 11월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부터 전 세계는 ‘트럼프발’ 통상 전쟁에 휘말렸다. 트럼프 대통령이 숫자를 외칠 때마다 세계 경제가 요동쳤다. 하루 전 극적 타결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다소 늦게 통상 협상을 시작했다. 지난해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지난 6월 조기 대선이 치러질 때까지 ‘무정부’ 상태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탄핵심판 등 대형 정치 이슈가 거듭되면서 미국과 협상을 하고 싶어도 테이블에 앉을 사람이 마땅치 않은 상태였다. 실제 한덕수 전 국무총리나 최상목 전 경제부총리 등이 협상에 나섰지만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 새 정부가 해야 할 일이라고 제동을 걸었다. 또 한 전 총리의 대선 출마 선언, 최 전 부총리 탄핵안 상정 등의 상황이 겹치면서 미국과의 협상은 큰 진전 없이 시간만 흘렀다. 이후 이재명 정부가 출범했다. 우리나라는 좀처럼 미국 실무진과 접점을 찾지 못했다. 그 사이 트럼프 대통령은 이재명 대통령에게 ‘모든 한국산 제품에 대해 산업별 관세와는 별도로 25%의 일반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내용의 서한을 보냈다. 시한은 지난 1일로 못 박았다. 우리나라는 미국과 FTA 체결로 사실상 무관세 수준이었기에 관세 부과가 현실화하면 경제 전반에 타격이 불가피했다. 자동차나 반도체 등 핵심 수출 품목에 붙는 관세 외에도 비관세 장벽(관세 이외의 수단으로 무역을 제한하는 조치)을 허물라는 압박도 가해졌다. 쌀이나 소고기 등 농·축산물 시장 개방, 정밀 지도 반출,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증액 등이 협상 테이블에 오를 것으로 예상됐다. 국내 상황과 맞물려 쉽게 내주기 어려운 조건들이었다. 일·EU와 같은 15%로 막아 대미 투자는 3500억달러로 협상도 난항을 겪었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2 통상 협상을 하루 앞두고 출국하려다 미국 측의 취소로 불발하는 일이 일어났다. 앞서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부 장관이 방한을 닷새 앞두고 일정을 취소하기도 했다. 미국 고위급 인사들과의 만남이 잇따라 무산되면서 ‘한미 관계에 문제가 생긴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일본과 유럽연합(EU)이 차례로 미국과 협상을 타결하면서 불확실성은 더욱 커졌다. 특히 일본의 협상 결과가 공개되면서 우리나라가 최소한으로 맞춰야 할 기준이 생겨버렸다. 우리나라와 일본은 자동차 등 수출 품목이 일부 겹치기에 일본보다 관세가 높아지면 수출 경쟁력이 망가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2일 일본과 무역 협상을 완료했다고 발표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밝힌 일본산 수입품에 부과하는 상호관세는 15%다. 기존 25%에서 10%포인트 줄어들었다. 일본이 미국에 5500억달러(약 759조원)를 투자할 것이고 이 중 90%의 수익을 미국이 받게 된다고도 했다. 동시에 자동차와 농산물을 일부 개방한다는 조건도 달렸다. 지난달 27일에는 미국과 EU가 관세 협상을 타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EU로부터 수입되는 모든 품목에 대해 일괄적으로 1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미국산 에너지 7500억달러(약 1030조원) 구매 및 대미 투자 6000억달러(약 820조원) 확대 방안을 담은 ‘무역협정 틀’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일본과 EU의 협상 타결로 미국의 협상 전략이 윤곽을 드러냈다. 관세를 낮추는 조건으로 무엇을, 얼마나 내놓느냐가 관건이 된 것이다. 관심이 집중된 부분은 대미 투자액이었다. 애당초 통상 전쟁 자체가 타국이 얻는 대미 무역 흑자를 줄이겠다는 명목으로 시작된 터라 트럼프 대통령은 상대국에 대미 투자라는 일종의 ‘청구서’를 요구한 셈이다. 일본이 5500억달러, EU가 6000억달러를 미국에 각각 투자하기로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우리나라에 날아올 청구액에 관심이 쏠렸다. 협상 시한이 다가오면서 언론보도 등을 통해 3000억달러, 4000억달러 등의 추측이 난무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제멋대로’ 외교에 우리나라 협상팀이 휘둘리고 있다는 말도 나왔다. 쌀 소고기 지켰다는데 우리나라는 협상 시한을 하루 앞둔 지난달 31일 한국산 제품에 대한 상호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추는 내용을 골자로 협상을 타결했다. 일단 일본, EU와 동일한 수준으로 관세 인하를 이끌어낸 것이다. 관심을 모았던 자동차 관세율은 15%, 철강·알루미늄·구리는 기존 관세율(50%)을 유지하기로 했다. 또 반도체와 의약품 관세 부과 시 최혜국 대우도 약속받았다. 다른 나라보다 불리한 관세를 적용받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 부분도 일본, EU와 같은 합의 내용이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민감한 품목으로 분류됐던 쌀과 쇠고기 등의 개방은 하지 않는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농산물 전면 개방을 언급해 향후 변동 가능성을 지켜봐야 한다. 대미 투자액은 3500억달러(약 490조원)로 결정됐고 1000억달러(약 140조원) 상당의 액화천연가스(LNG) 또는 기타 에너지 제품을 수입하기로 했다. 김용범 정책실장은 “한국과 일본의 대미 무역 상황은 지난해 기준 각각 660억달러 흑자, 685억달러 흑자로 규모가 유사한 상황에서 일본보다 작은 규모인 3500억 달러 펀드를 조성하기로 했다”며 “기업이 주도하는 조선펀드 1500억달러를 제외하면 우리 펀드 규모는 2000억달러로 일본의 36%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 합의에서 가장 주목할 점은 미국과 조선업 분야 협력을 확대하기로 한 것”이라며 “한미 조선협력펀드 1500억달러는 선박 건조, MRO(유지·보수·정비), 조선 기자재 등 조선업 생태계 전반을 포괄한다”고 덧붙였다. 우리나라 협상팀은 조선 협력을 내세운 게 협상 타결의 ‘키’였다고 자평했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주미 한국대사관에서 브리핑을 하며 마스가(MASGA·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 프로젝트가 협상 타결에 가장 큰 기여를 했다고 밝혔다. ‘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뜻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 구호인 ‘매가(MAGA·Make America Great Again),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에서 따온 표현이다. 자동차는 관철 못 해 아쉬운 부분으로는 자동차 관세를 꼽았다. 이전까지 우리나라 자동차는 관세가 0%였다. 2.5%였던 일본과 비교해 근소하게 가격 경쟁력을 가졌다. 하지만 이번 협상 타결로 일본과 똑같은 15% 관세가 결정되면서 자동차 업계는 가격 경쟁력을 잃게 됐다. 우리나라 협상팀이 끝까지 자동차 관세 12.5%를 요구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모두 15%’라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명 대통령은 “큰 고비를 하나 넘었다”며 “이번 협상으로 정부는 수출 환경의 불확실성을 없애고 미국 관세를 주요 대미 수출 경쟁국보다 낮거나 같은 수준으로 맞춤으로써 주요국들과 동등하거나 우월한 조건으로 경쟁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했다”고 평했다. 협상 결과를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하다. 성공과 실패를 떠나 일단 ‘최악은 면했다’는 의견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협상 타결이 이뤄지기 전까지 유예 기간을 놓쳐 관세 25%를 맞을 수도 있다고 우려한 것에 비하면 나름 ‘선방했다’는 의견이다. 동시에 미국이 내민 청구서의 구체적인 부분을 더 살펴야 한다는 신중론도 존재한다. 일본 등은 트럼프 대통령의 협상 타결 발표와 실제 합의 내용이 다르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결정된 사항을 즉흥적으로 바꾸는 등 외교 과정에서 ‘오락가락’하는 면모를 보인 적이 여러 차례 있다. 힘의 우위를 바탕으로 불확실성을 극대화하는 협상 기술을 사용한다는 평이다. 정밀 지도·국방비 등 안보 이슈 백악관서 만나 대통령끼리 담판? 트럼프 대통령이 우리나라와의 협상 타결 내용을 발표하면서 언급한 정상회담이 ‘진짜’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그는 “한국이 투자 목적으로 상당한 금액을 추가 투자하기로 합의했다”면서 2주 내로 이재명 대통령과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자리에서 투자액이 발표될 것이라고 했다. 추가 청구서가 나올 수 있다는 뜻이다. 이번 통상 협상에서 논의되지 않은 정밀 지도 반출 문제가 협상 테이블에 올라갈 가능성이 있다. 김용범 정책실장은 지도 반출 등 안보 사안은 한미 정상회담에서 별도로 논의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지도 반출과 관련해) 우리가 계속 방어해왔다. 추가 양보는 없다”고 말했다. 미 무역대표부(USTR)는 지난 3월 <2025 국가별 무역 장벽 보고서>에서 정밀 지도 반출 제한을 한국과의 디지털 무역 장벽 중 하나로 지목했다. 우리나라 정부는 군사기밀 유출을 우려해 정밀 지도의 국외 반출을 막아왔다. 정밀 지도에 해외 기업이 가진 위성사진을 결합하면 국가 안보와 직결된 지도 정보로 완성될 가능성이 있다. 미국 정계와 IT업계는 정밀 지도를 반출해야 한다는 주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협상에서는 다뤄지지 않았지만 정상회담의 의제로 오를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뜻이다. 주한미군 주둔 방위비 분담금, 국방비 문제도 거론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동맹국들에 국내총생산(GDP) 대비 5% 이상을 국방비 예산으로 잡으라고 압박했다. 우리나라에도 대선 후보 시절부터 방위비 분담금으로 100억달러를 내야 한다고 여러 차례 말하는 등 전방위로 요구한 바 있다. 추가 청구 나올까? 한미 정상회담은 이 대통령의 ‘외교 시험대’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 대통령은 취임 직후 G7 정상회의에 참석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지 못했다. 나토 회의에는 이 대통령 대신 위성락 안보실장이 참석했다. 이번 정상회담이 ‘안보’ 회담이 될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어떤 딜을 벌일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