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허균, 서른셋의 반란 (18)나쁜 소식

누나의 삶

허균을 <홍길동전>의 저자로만 알고 있는 독자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조선시대에 흔치않은 인물이었다. 기생과 어울리기도 했고, 당시 천대받던 불교를 신봉하기도 했다. 사고방식부터 행동거지까지 그의 행동은 조선의 모든 질서에 반(反)했다. 다른 사람들과 결코 같을 수 없었던 그는 기인(奇人)이었다. 소설 <허균, 서른셋의 반란>은 허균의 기인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파격적인 삶을 표현한다. 모든 인간이 평등한 삶을 누려야 한다는 그의 의지 속에 태어나는 ‘홍길동’과 무릉도원 ‘율도국’. <허균, 서른셋의 반란>은 조선시대에 21세기의 시대상을 꿈꿨던 기인의 세상을 마음껏 느껴볼 수 있는 장이 될 것이다. 
 

“나리, 이제 제 이야기는 잠시 접어두고 나리의 역정을 들려주시면 어떠실는지요.”

“나의 역정이라.”

“그러하옵니다. 나리의 순탄치 않은 역정을 듣고 싶습니다.”

“그래요, 그러면 우리 길고 긴 이야기 속으로 빠져 들어가 봅시다.”

매창이 상 앞으로 바짝 다가앉았다.


허균의 역정

“아마 내 나이 열두 살 무렵이었던 것 같소.”

새벽녘이었다. 갑자기 집안이 웅성거리기 시작했고 급기야 통곡이 들려오고 있었다.

잠시 눈을 떴다가 꿈인가 하는 생각으로 다시 잠자리에 빠져들려고 했다.

“도련님!”

팔봉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슬며시 자신의 볼을 꼬집어보았다. 꿈이 아닌 현실이었다. 몸이 반사적으로 반응했다.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문가로 다가서고 있었다.

“도련님!”

그 사이를 참지 못하고 다시 팔봉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단지 목소리만이 아니었다. 그 소리에 울음이 배어있었다.

급하게 문을 열었다. 어둠 속에서 집안 하인들이 우왕좌왕 분주했다.

“무슨 일이야!”

불길한 일이 발생했음을 직감했다.

그 불길한 일이 아버지와 관련한 일이 아닐까하는 순간적인 직감이 찾아들었다.

“도련님, 영감마님께서…….”

역시 불길한 예감은 제대로 들어맞았다.

이상하리만치 좋은 예감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일쑤인데 불길한 예감은 항상 적중하고는 했다.

아버지께서 경상도 관찰사직에서 물러나셨다고 전해들은 지 며칠이 지나지 않았다.


건강이 악화되어 더 이상 현직을 맡을 수 없어 자리에서 물러나시고 중추부동지사라는 직책을 받으시고 집으로 돌아오시고 있다는 전갈을 받았었다. 

허균이 급히 방문을 박차고 안채로 뛰어갔다.

어머니 혼자 소맷자락으로 눈물을 훔치고 있는 모습이 목격되었다.

“어머니!”

어머니께서 급히 정색하고 균을 바라보고 있으나 이미 눈동자는 벌겋게 물들어 있었고 호롱불에 유난히 붉게 보였다.

“아버지께서 어떻게 된 일이에요!” 


눈물 자국을 닦으시던 어머니가 균에게 다가서더니 그대로 균을 껴안았다.

“아이고, 이렇게 어린 자식을 놔두고……. 그것도 노중객사라니.”

어머니의 울음이 다시 이어졌다. 아마도 균을 안고는 서러움이 더욱 복받친 모양이었다. 이미 일은 벌어진 상태라 직감했다. 가만히 어머니의 등을 쓸었다.

“어머니, 자초지종을 말씀해주세요.”

어린 아들 균이 더 침착했다.

그 모습에 어머니의 눈에서 천천히 눈물이 멈추고 있었다.

“너희 아버지께서 집으로 돌아오시는 길에 상주의 역관에서 숨을 거두셨다고 하는구나. 그래서 지금 네 큰형과 둘째 형이 급히 그곳으로 출발했다.”

그 순간 갑자기 누나, 초희가 생각났다.

“누나에게 기별을 넣어야 하지 않겠어요.”

초희는 이미 몇 년 전에 김성립에게 시집간 터였다. 

“당연히 그래야지, 네가 어서 누나에게 소식 전하도록 하거라.”

아버지 사망 소식…무거운 발걸음
이뤄지지 않은 사랑…불행의 시작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아버지의 죽음을 가장 먼저 누나가 알아야하고 누나에게 반드시 자신이 알려야 한다는 느낌이 절로 일어난 탓이다.

안채에서 밖으로 나서자 바로 팔봉을 앞세우고 누나의 시댁으로 길을 잡았다.

“균아!”

“누나야!”

오누이가 손을 마주 잡았다.

보름달이 그들의 얼굴을 환하게 비쳐주고 있었다. 이제 내일이면 누나는 길을 떠날 터였다.

비록 먼 길은 아니었으나 이상하게도 그 날 헤어지면 모든 지난 시간이 사라진다는 느낌이 찾아들었다.

그 길이 누나가 원하지 않는 길이라 더욱 애절하게 느껴졌는지도 몰랐다.

당신의 동생을 끔찍이도 사랑하는 허봉이 그와 절친한 친구로 누나보다 한 살 더 많은 김성립이라는 사람에게 시집을 보내기로 했던 터였다. 

물론 허봉 형이나 아버지는 김성립의 아버지 되는 교리 김청의 인품과 학식에 반했고 그 아들이라는 이유로 당신의 딸이, 동생이 행복하게 살리라는 판단 하에 누나의 배필로 흔쾌히 점지하셨었다.

그러나 누나의 속마음은 다른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바로 스승이자 오라비의 막역한 친구인 이달에게 향하고 있었던 터였다.

자신의 시 사상을 스승인 이달에게 전수 받으면서 그 시풍에 빠져들었고 또한 마음 역시 이달에게 향하고 있었다. 

거기에 더하여 설상가상으로 누나의 신랑이 되는 김성립의 경우 누나의 문재를 수용할 만한 인물이 아님을 허균은 알고 있었다.

“누나야, 왜 이리 기분이 우울하지.”

“균아, 내가 다시는 못 올 데를 가는 것이 아니지 않니. 그러니 너무 섭섭하게 생각하지 마. 이 누나는 비록 몸은 떠나가더라도 마음은 항상 균을 생각하고 있을 테니 말이야.”

“누나, 어차피 가는 길인데 나에게 속 시원하게 풀어놓고 가면 안 되겠어.”

“무슨 말이니, 그것이.”

균이 답을 하지 않았다. 직접 누나보고 이야기하라는 투였다.

초희가 하늘에 떠 있는 보름달로 시선을 주고 있었다.

그날 유난히도 보름달이 커보였다. 그 크고 밝은 보름달을 원망하듯이 초희가 한숨을 내쉬었다.

“부질없는 일을.”

“그래도 할 말은 있을 거 아니야.”

초희가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 분인들 오죽하겠니. 그러니 우리 그 이야기는 그만하도록 하자꾸나.”

누나의 생각이 현명했다. 두 사람은 당시로서 죽어도 이루어질 수 없는 사이였다.

서자도 아닌 얼자인 이달과 명문가의 딸인 누나와의 관계는 여하한 일이 있어도 성사될 수 없는 일이었다.

누나를 바라보던 허균의 시선이 다시 보름달을 향했다. 보름달 한 귀퉁이가 흐릿하게 물들어 있는 모습이 시선에 들어왔다.

아마도 누나는 그 달에서 자신의 연정을 그리고 있을지 몰랐다.

무거운 발걸음

누나가 살고 있는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볍지 못했다.

그래서 허균이 그를 자원했는지도 몰랐고 아니, 반드시 자신이 그 일을 해야 할 것만 같았다. 

가례를 올리고 나자 오래 걸리지 않아 누나의 고생이 시작되면서 우려했던 일들이 현실로 드러났다.

먼저 시어머니와의 관계가 그러했다. 판서의 딸인, 명문가 출신의 시어머니의 입장에서 보면 별난 며느리가 마음에 차지 않았다.

언제나 홀로 사색에 잠기고 새로운 세상을 갈구하는 며느리가 눈에 티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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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