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H 하명수사 의혹 그날의 재구성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19.12.02 10:21:42
  • 호수 1247호
  • 댓글 0개

또 조국…황운하 뇌관 터졌다!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정권 수사로 확대될까. 청와대가 하명 수사를 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때는 지난 6·13지방선거, 당시 경찰이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하명을 받아 자유한국당 소속인 김기현 당시 울산시장을 표적수사했다는 의혹이다. 정황을 포착한 검찰은 수사에 돌입했다. <일요시사>는 문제의 그날을 재구성했다.
 

▲ 김기현 전 울산시장

김기현 전 울산시장이 지난달 27일 기자회견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 자리서 김 전 시장은 자신이 낙선했던 지난 6·13지방선거 당시 청와대의 ‘하명 수사’가 있었다며 의혹을 제기했다. 기자회견에 앞서 배포한 회견문을 통해 김 전 시장은 “청와대가 공권력을 동원해 민심을 강도질한 전대미문의 악랄한 권력형 범죄를 자행했다”고 주장했다.

권력에
당했다

시간은 지난해 3월로 돌아간다.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은 6·13지방선거를 100여일 앞두고 공천 신청을 접수받는다고 알렸다. 접수 첫 날 김기현 당시 울산시장은 같은 직에 공천을 신청했다. 이후 한국당은 김 전 시장을 울산시장 단독 후보로 확정하고, 일찌감치 본선 준비에 돌입했다.

중앙당 차원의 전폭적 지원이 이어졌다. 홍준표 당시 대표는 지난해 3월8일 울산을 직접 찾아 “중앙정치가 혼돈에 이르고 있는데도 울산을 묵묵히 지키면서 시민의 안전과 경제 발전에 전력을 다하는 김 시장에게 당 대표로서 고맙고 감사한 마음을 전달하기 위해 내려왔다”며 힘을 실어줬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에서는 3명이 출사표를 던졌다. 송철호 변호사와 임동호 울산시당위원장, 심규명 변호사가 주인공이었다. 이들은 지난해 3월5일 울산시의회 프레스센터서 기자회견을 열고 “새로운 울산을 염원하는 시민들 앞에 하나가 되겠다”며 ‘원팀(One Team)’을 선언하는 등 선거에 본격적으로 임하기 시작했다.


김 시장이 공천을 신청하고 일주일여가 흐른 지난해 3월16일, 울산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김 시장 부속실과 건축 관련부서 등 울산시청 내 사무실 5곳을 압수수색했다. 당시 경찰은 김 시장의 비서실장이 울산 지역의 한 아파트 건설공사에 김 시장 측근의 레미콘업체가 참여할 수 있도록 건설사 측에 압력을 행사했다는 첩보를 입수했다고 압수수색의 배경에 대해 설명했다.

경찰은 김 시장의 친동생 역시 또 다른 아파트 건설공사 과정에 부당한 압력을 행사했다고 보고 체포영장을 발부받았다.

이는 곧바로 쟁점화됐다. 경찰의 압수수색 소식 직후 민주당 울산시당은 성명을 내고 “(김)시장이 직권을 남용해 이미 선정된 업체를 특정업체로 교체하라고 압력을 넣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고 입장을 내놨다. 민중당 울산시당 역시 울산시청 앞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김 시장에 대한 수사를 촉구했다.

후보 신청 후 경찰 압수수색
김기현 측근들 모두 무혐의…

반면 김 시장과 한국당은 경찰의 압수수색에 크게 반발하며 정치적 의도가 숨어 있다고 주장했다. 당시 김 시장은 “전혀 사실에 기반하지 않는 제보자의 일방적 진술로 압수수색이 단행됐다”며 “후보 공천 발표와 동시에 압수수색을 한 것에 대해 정치적 의도가 의심된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홍준표 대표도 “정권의 검찰·경찰 사냥개를 앞세운 덮어씌우기 수사”라며 “(이런 수사가)이기붕의 자유당 말기를 연상케 할 정도로 전국적으로 자행되고 있다”고 강한 의혹을 제기했다. 

김 시장은 경찰의 압수수색이 있기 전 실시된 차기 울산시장 선호도 조사서 1위를 달리고 있었다. <ubc울산방송>이 ‘한국갤럽’에 의뢰해 2018년 2월2일부터 3일까지 19세 이상 울산시민 2506명을 대상으로 실시하고 5일에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김 시장은 37.2%를 기록했다. 뒤를 이어 민주당의 송철호 변호사가 21.6%로 2위에 올랐다.
 


그러나 몇 달 새 상황은 역전됐다. <부산일보>가 ‘리얼미터’에 의뢰해 2018년 4월13일부터 14일까지 19세 이상 울산시민 815명을 대상으로 실시하고 18일에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송 변호사가 41.6%로 1위를 차지했다. 뒤를 이어 김 시장이 29.1%를 기록했다(두 조사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사태는 이내 진흙탕 싸움으로 변질됐다. 한국당은 경찰을 향해 막말을 쏟아내 선거판을 어지럽게 만들었다. 홍 대표는 경찰을 ‘백골단’ ‘미꾸라지’ 등에, 같은 당 장제원 의원은 ‘미친 개’에 비유했다. 분노한 경찰들은 ‘사냥개나 미친 개가 아닙니다. 우리는 대한민국 경찰관입니다’라고 쓰인 항의 피켓을 들고 찍은 인증샷을 올리며 항의했다. 한국당은 황운하 울산경찰청장을 직권남용 혐의로 고발했다.

울산 민심
부글부글

해당 사건에 대해 경찰은 본격적인 조사에 착수했다. 김 시장의 형과 동생, 비서실장 등 8명이 피의자 신분으로 입건됐다. 이 중 경찰은 동생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울산지방법원은 기각했다. 당시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범죄 혐의에 대한 소명이 충분하지 않고 다퉈볼 여지가 있다”며 “현 단계서 (김 시장의 동생에게)도주 또는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사유를 밝혔다.

경찰은 비서실장과 레미콘업체 대표, 울산시 고위 공무원 등 3명에 대해서도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결국 기각됐다. 피의자들이 혐의 사실을 부인하고 있어 다툼의 여지가 있으며, 압수수색 등을 통해 상당한 증거가 확보된 상태라 증거인멸의 우려가 없다는 이유였다. 

경찰의 부실수사가 도마 위에 올랐다. 비서실장은 입장문을 통해 “경찰이 내 카드로 결제한 골프 비용까지 뇌물로 보고 있다”며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적 의도가 분명한 수사”라고 주장했다. 비서실장은 지난 2017년 6월24일 울산컨트리클럽서 18만9000원을 결제한 카드내역서까지 공개하는 강수를 뒀다. 검찰 역시 경찰에게 한 차례 보강수사를 지시했다.

그 사이 울산시장 대진표가 짜여졌다. 민주당은 송철호 변호사를 울산시장 후보로 확정했다. 다른 정당의 후보도 있었지만, 지역 정가는 송철호 대 김기현의 양강 구도를 점쳤다. 각종 여론조사서 송 후보가 1위, 김 후보가 2위를 차지했다. 이 같은 판세는 선거 당일까지 이어졌고, 결국 지난해 6월13일 송 후보는 김 후보를 누르고 울산시장에 당선됐다.

시간이 흘러 지난 3월 울산지검은 비서실장과 레미콘업체 대표, 울산시 고위공무원 등 3명에게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직권남용으로 볼 만한 증거가 없다는 이유였다. 4월에는 김 시장의 친동생도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 송철호 울산시장

한국당 측은 잇따른 무혐의에 “황 청장은 김 전 시장이 한국당 울산시장 후보로 확정된 날에 맞춰 비서실을 공개적으로 압수수색하고, 수사과정서 수차례나 기자회견을 자청하면서 엄청난 비리를 저지른 것처럼 공작·편파수사를 자행했다”며 “이로 인해 김 전 시장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확산돼 지지율이 20% 가까이 떨어지며 결국 시장직을 잃게 됐다”고 강도 높게 비난했다.

분위기는 반전됐다. 한국당은 황 청장에 대한 특검도 불사하겠다며 강경 대응을 예고했다. 무혐의 처분을 받은 비서실장 등은 황 청장을 고소했다. 한국당 현역 의원들은 황 청장이 자리를 옮긴 대전경찰청장에 항의 방문했다.

검찰은 지난 4월9일 울산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와 112상황실을 압수수색했다. 지능범죄수사대는 김 시장 측근비리 사건을 전담해 수사했던 부서다.

구속영장
잇단 기각


검찰이 압수수색에 나선 데는 김 전 시장의 측근들이 무혐의를 받은 사실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당초 검찰은 김 전 시장 측근들이 연루된 사건의 결과를 선거 개입 여부를 들여다볼 수 있는 기준으로 봤다. 기소할 만한 범죄였다면 선거 개입으로 볼 수 없지만, 그렇지 않다면 무리한 수사를 한 배경에 대해 들여다볼 여지가 생긴다는 뜻이었다.

김 전 시장 측근들을 수사하던 경찰관이 사건 관계자에게 접근해 협박과 청탁을 한 사실이 밝혀졌다. 검찰은 지난 4월 경찰관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고, 법원은 이를 받아들였다. 울산지방법원은 “범죄 혐의가 소명되고, 사안의 성격, 피의자 지위와 관련자의 관계 등에 비춰 증거 인멸 우려가 있다”며 영장을 발부했다.

지난달 26일 서울중앙지검이 황 청장에 대한 고발건을 넘겨받으면서 사건은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앞서 황 청장은 “국가를 위한 부름이 있다면 그에 응답하는 것이 공직자의 책임과 의무라고 생각한다”며 21대 총선에 나설 뜻이 있음을 알린 상태였다.

지난달 27일 청와대의 하명 수사 의혹이 불거졌다. 경찰의 김 전 시장 측근 수사가 청와대 비위 첩보 전달로 시작된 정황을 검찰이 포착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더욱이 당시 비위 첩보를 전달한 곳이 ‘조국 민정수석실’로 알려져 파장은 일파만파로 번졌다. 황 청장뿐 아니라 조국 당시 민정수석 등이 수사 대상에 오를 수 있다.

황 청장은 하명 수사 의혹에 선을 그었다. 그는 자신의 SNS에 “울산경찰은 경찰청 본청으로부터 첩보를 하달받았을 뿐, 첩보의 원천이 어디인지, 생산경위가 어떠한지 알지 못한다”며 법과 원칙에 따라 수사했다는 취지의 글을 남겼다. 그는 추가로 대전경찰청 기자실을 찾아 “악의적이고 무책임한 정치공세”라며 “경찰 수사실무를 모르는 분들이 엉뚱한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청와대 역시 하명 수사 의혹에 반박했다.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은 서면브리핑을 통해 “김 전 시장 관련 비위 혐의에 대해 청와대의 하명 수사가 있었다는 언론보도는 사실무근”이라며 “당시 청와대는 개별 사안에 대해 하명 수사를 지시한 바가 없다”고 밝혔다.


이어 “청와대는 비위 혐의에 대한 첩보가 접수되면 정상적 절차에 따라 이를 관련 기관에 이관한다”며 “당연한 절차를 두고 마치 하명 수사가 있었던 것처럼 보도하는 것에 유감을 표한다”고 입장을 전했다.

투서→백원우→박형철→경찰
백원우 “정치적 의도 있다”

쟁점은 과연 청와대가 김 전 시장 측근에 대한 첩보를 경찰에 이관했는지, 첩보를 청와대가 직접 수집했는지 투서나 제보를 통해 입수했는지 여부다. 한국당은 김 전 시장이 선출직 공무원이므로 청와대 감찰대상이 아님에도 그에 대한 비위 첩보를 청와대가 수집했다면 위법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선거에 개입하려는 목적으로 경찰에 이관한 것 아니냐는 주장이다.

대통령령인 ‘대통령비서실 직제’의 감찰반 관련 규정에 따르면, 감찰 대상은 대통령이 임명하는 행정부 소속 고위 공직자와 공공기관장 등이다. 선출직 공무원인 김 전 시장은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 물론 그의 측근인 비서실장, 동생 등도 마찬가지다.

첩보를 청와대가 직접 수집했는지 여부도 중요하다. 만약 청와대 내부서 김 전 시장 측근의 정보를 수집해 경찰로 이관했다면, 업무 범위를 넘어선 것이 아닌지 등을 규명할 필요성이 생긴다. 청와대 해당 첩보를 ‘익명의 투서’로 확보했다는 입장이다.
 

▲ ▲황운하 울산경찰청장

황 청장과 청와대의 반박에도 불구하고 사태는 여러 의혹을 낳으며 확산되는 추세다. 경찰청이 ‘울산경찰청의 김 전 시장 표적수사 여부’를 수사하는 울산지검에 “이 사건은 청와대의 하명 사건”이라고 답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지난해 있었던 압수수색과 관련해서도 경찰청이 이를 청와대에 보고했다는 의혹도 나왔다. 그러나 경찰청은 이 같은 의혹들에 대해 전면 부인하고 있는 상태다.

백원우 민주연구원 부원장(당시 민정비서관)이 김 전 시장 측근에 대한 첩보를 박형철 전 반부패비서관에게 전달했다는 의혹도 불거졌다. 검찰은 박 전 비서관으로부터 “백원우 당시 민정비서관이 첩보를 전달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백 부원장은 민주당을 통해 ‘오해와 추측이 난무하고 있어 이를 바로 잡고자 한다’는 제목의 입장문을 냈다. 그는 “이번 사안은 조국 당시 민정수석에게 보고될 사안조차 아니다”라며 “비서관실 간 업무분장에 의한 단순한 행정적 처리일 뿐”이라고 밝혔다.

정권까지
불 붙나

이어 “김 전 시장 관련 제보를 박 전 비서관에게 전달했다는 보도에 대해 특별히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많은 내용의 첩보가 집중되고 외부로 이첩된다”며 “반부패비서관실로 넘겼다면 이는 울산 사건만을 특정해 전달한 것이 아닐 것”이라고 설명했다. 백 부원장은 “어떤 수사나 조사도 하지 않았던 사안을 지금 이 시점에 꺼내든 배경에 어떤 정치적인 의도가 깔려 있는 것 아닌지 의심이 든다”며 또 다른 의혹을 제기한 상태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왜 1년 만에?

검찰이 자신들에 대한 의혹을 직접 해명하고 나섰다.

앞서 김기현 전 울산시장 수사 관련 사건을 울산지검서 서울중앙지검으로 이첩한 것과 관련, 고발이 접수된 후 1년이 넘은 시점에 서울중앙지검으로 이첩해 수사하는 이유에 대해 “검찰이 정치적 의도를 갖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졌다. 

검찰은 1년여의 시간이 걸린 이유에 대해, 김 전 시장 측근에 대한 수사가 무혐의로 끝난 후 수사에 관여한 경찰관 등 관련자들을 소환조사하려 했으나 대부분 불응했고, 자료를 분석한 결과 사안의 성격과 관련자들의 소재지 등을 고려해 신속한 수사를 할 필요성을 느껴 서울중앙지검으로 이송해 수사를 진행하고 있을 뿐이라고 관련 의혹을 반박했다. <목>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국민의힘 행사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다가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국민의힘에서 ‘보수의 김어준’을 꿈꾸는 것 같다. 전씨는 과연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했던 영향력을 단번에 얻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지난 8일, 대구 EXCO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지역 합동연설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지난 3월 창간한 <전한길뉴스> 소속 언론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선거판 난장판 하지만 전씨는 언론 취재의 한계를 넘어 반탄(탄핵 반대) 성향 후보들의 연설 도중 응원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반대로 찬탄(탄핵 찬성) 성향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들이 연설할 때마다 “내부 총질” 혹은 “배신자” 등 원색 비난을 했다. 이날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는 전씨를 직접 지칭해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지고,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정당화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투쟁할 수 있겠느냐”면서 비난했다. 그러자 전씨는 김 후보에게 욕설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격동시켰다. 찬탄 성향 조경태 당 대표 후보가 연설할 땐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들고 항의하는 등 지지자들의 조 후보 비난을 유도했다. 그러자, 찬탄 성향 일부 당원들이 전씨에게 물병을 던지면서 항의했다. 한 당원은 전씨에게 “난 20년 차 당원인데, 입당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당신이 왜 이런 난동을 부리느냐”고 따져 물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씨의 전당대회 출입을 막기 위해 대의원이 아닌 일반 당원의 행사장 출입을 금지했다. 이어 전씨에 대한 징계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자 전씨는 <전한길뉴스> 발행인 신분을 내세워 “언론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이처럼 전씨는 국민의힘 당원과 언론인이란 신분을 왕래하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개입하고 있다. 지난달 31일과 지난 7일엔 시사평론가 고성국씨 등과 함께 주최한 ‘자유 우파 유튜브 연합 토론회’에 각각 장동혁·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출연시켜 ‘면접’을 보는 위력을 국민의힘 내외에 과시했다. 특정 진영의 강경파를 대상으로 언론사·유튜브 채널 등을 운영하면서 힘을 과시하는 모델로는 방송인 김어준씨가 있다. 김씨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친문(친 문재인) 강경파 성향 당원·지지자를 대상으로 라디오·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 대표 후보들을 면접하는 형식은 김씨가 지난해 3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민주당 총선 후보자였던 이언주·전현희 의원과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출연시켜 객석의 청중에게 큰절을 시킨 것과 비슷하다. 김씨가 지난 6월 기획·진행한 ‘더 파워풀’ 콘서트엔 ▲문재인 전 대통령 ▲민주당 정청래 대표 ▲김민석 국무총리 등 다수의 민주당 내 유력 정치인이 참석했다. 입당하자마자 영향력 과시 물의 당원·언론인 오가며 전대 개입 김씨는 지난 2011년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로 활동하면서부터 민주당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왔다. 물론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한 영향력을 전씨가 단기간에 얻긴 어렵다. 이 때문인지 전씨는 국민의힘에 입당하자마자 ‘10만 당원 양병설’ 등을 주장하면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하기 위해선 당비를 3개월 이상 납부하고, 연 1회 이상 교육을 받은 책임당원이어야 한다. 전씨는 지난 6월 온라인으로 입당했고, 당 대표 후보 등록일은 지난달 30일부터 단 이틀 동안이었다. 따라서 전씨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출마 길이 막힌 전씨는 전당대회에서 당원·언론인 신분을 교차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당원들을 선동해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가 민주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주변 진영 전체를 둘러싼 질서는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 갖는 틀과 비슷하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는 견고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대전제를 토대로 “언론·문화 등 각 분야에 진지를 구축해 참호전으로써 상대 세력을 약화해야 한다”는 사상을 정리했다. 각 분야에 구축한 진지는 결정적인 시기에 전개할 기동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 구조가 뿌리내리면서 러시아 2월·10월 혁명과 같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뒤집는 혁명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람시는 주도권 다툼으로써 체제 내 혁명을 추구하는 취지의 사상을 구체화했다. 우리나라에선 소련 해체가 가시화되던 1980년대 후반부터 기존 노동운동에 문화·예술운동을 접목하는 단체가 활동하는 등 각계에서 다른 방향의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을 받치는 양대 축은 각계의 시민단체들과 진보 성향 매체들이다. 대규모 정치 이벤트가 진행될 땐 민주당 지원 사격을 맡으면서,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구축·홍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 민주당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주요 선거 등 대규모 기동전이 필요한 상황에선 각자의 진지에서 일시에 뛰쳐나와 물량을 공급하는 식이다. 이 같은 구조를 상징하는 사람이 민주당 윤미향 전 의원이다. 정의기억연대 대표로 오랫동안 활동하던 윤 전 의원은 민주당을 통해 국회의원이 됐지만, 횡령 의혹이 유죄로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같은 당 추미애 의원 등 민주당 일각에선 윤 전 의원의 사면을 강하게 지지했고, 결국 8·15 광복절특사를 통해 사면·복권됐다. 민주당과 그람시 하지만 시민단체와 매체는 대중을 직접 동원하기가 어려운 데다, 매체는 언론 고유의 한계가 있다. 시민단체 역시 시민들의 참여가 부실하다는 핸디캡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도 존재해 왔다. 이 때문에 삼각 구조를 받쳐줄 또 하나의 하부 구조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 김씨는 지난 1998년 ‘안티 <조선일보>’라는 깃발을 내걸고 <딴지일보>를 창간한 후 풍자·B급 정서·유머를 지향해오고 있다. 당시 <딴지일보>에선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찍어 먹는 용도로 내는 간장의 위생 상태를 취재해 기사화하거나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의 대권 도전 과정을 풍자하는 등 ‘신선한 B급 정서’를 지향해 독자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김씨에게 평생 따라다닐 놀림거리를 남겼다. 김씨가 <딴지일보>의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용 성인용품을 판매했고, 성인남녀의 만남을 중개하는 사이트를 개설했던 탓이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여전히 김씨를 비판하면서 당시의 전력을 함께 언급한다. 이후 김씨는 ▲황우석 박사 옹호 ▲영화감독 겸 코미디언 심형래씨 옹호 등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황 박사 옹호는 그럴 듯한 음모론을 제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 김씨의 특성과 깊이 맞물린다. 당시의 논란도 김씨에 대한 비판론을 형성하는 중심축이다. 그랬던 김씨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계기로는 크게 2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 중 1명으로 활동했단 것이었다. 김씨는 당시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거친 항의를 말리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문 전 대통령을 주목했다. 이후 김씨는 문 전 대통령의 킹메이커를 자처했고, 이는 ‘나는 꼼수다’ 진행 이후 문 전 대통령의 대세론으로 이어졌다. ‘나는 꼼수다’는 김씨 특유의 B급 정서·음모론이 이명박정부에 대한 다양한 불만과 맞물려 대성했던 방송이었다. ‘나는 꼼수다’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김씨의 성향을 구체화한 방송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해당 팟캐스트의 상징으로 통하는 “쫄지 마”는 여전히 회자된다. ‘나는 꼼수다’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검증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명확한 당파성을 매개로 특정 정당·진영 사람들이 선호할 음모론과 괴담을 이미 밝혀진 사실관계와 섞어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을 적당히 왕래하면서 민주당 지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영웅과 악당들 이는 집단의식으로 연결됐고, 김씨에겐 거대한 영향력을, 민주당엔 거대한 지지 집단을 만들어줬다. 김씨는 ‘나는 꼼수다’를 통해 단순·명쾌한 이분 구도를 완성했다. 그를 선호하는 민주당 지지자의 정치관은 “보수진영이란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는 정의로운 주인공이 지구 정복을 노리는 악당의 무리에 맞서 싸우는 어린이용 만화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울러 현재 민주당 핵심 지지 세대로 알려진 4050세대가 미국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선호하는 것과 연결해볼 수 있다. 이 세계관엔 초월적인 힘을 갖고 모든 생명체의 절반을 죽여 우주를 정화하려는 악당에 맞서는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은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사건이었다. 이들에게 노 전 대통령 사망사건은 거대 악당과 싸워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절대적인 명분이었다. 김씨가 이 사건에 주목하고, 상주로서 백 전 의원의 항의를 제지하던 문 전 대통령을 주목한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우리 고전문학 중 전설은 김씨의 평소 주장과 비슷한 서사 구조를 띠고 있다. 전설은 능력이 뛰어난 주인공이 현실의 한계에 좌절하고 무너지는 비극적인 구조를 취한다. 또 설득력을 부여해야 많은 사람에게 퍼질 수 있어서 실제 존재하는 지역·지명을 매개로 그럴듯하게 전개된다. 여기엔 각박한 현실을 바꿔줄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민중의 소망이 담겨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정씨 성을 가진 영웅이 새 나라를 만들어 왕이 될 것”이란 취지의 예언서가 오랫동안 돌아다녔다. 김씨의 주장은 21세기판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김씨는 민주당과 주변 진영을 취약한 상황에서 거대한 악에 도전하는 영웅으로 묘사하고, 지지자들은 그 영웅담에 환호한다. 그러면서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는 영웅을 또 잃을 수 없다”는 공감대를 공유한다. 그들은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 김씨는 ‘김어준 유니버스’ 혹은 ‘민주 유니버스’를 만들었고, 지지자들은 관객을 넘어선 참여자로서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 <한국일보>는 지난 2017년 이들의 세계관을 소개하면서 “대통령이 국민을 지켜야지, 왜 국민이 대통령을 지켜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완전히 다른 ‘B급 정서’ 카타르시스·도파민 차이 김씨는 ▲세월호 고의 침몰설 ▲천안함 피격 사건 관련 가짜 뉴스 살포 ▲코로나19 대구 확산설 등 주장을 이어가면서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했다. 그들이 김씨를 통해 느낀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은 고스란히 민주당의 정치적 자양분이 됐다. 그래서 총선 출마 후보들은 김씨가 보는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해야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김씨를 지목했던 것은 김씨에게 엄청난 이익이 됐다. 당시 계엄군은 김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스튜디오 주변을 통제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13일 국회에서 “계엄군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사살한 후 북한 소행으로 공작하려고 했다”면서 “정보 출처는 국내에 대사관이 있는 우방국”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그 우방국은 미국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미국은 국무부·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이를 부인했다. 반면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어준님’의 증언을 허구로 단정하고 비난부터 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보수 세력은 민주당과 그 주변 세력처럼 정교한 조직체를 만들지 못했다. 보수 세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피커 역할은 전씨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김씨처럼 진영 전체를 들썩일 수 있는 정치적 유머 감각과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하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강경 보수 지지자들 외 국민 사이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고, 국민의힘 내부서도 강하게 비판한다. 국민의힘이 지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이겼을 당시엔 민주당에 비판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70세대를 아울러 민주당을 지지하는 4050세대와 2030세대 여성을 포위한다는 ‘세대포위론’ 전략이 제시됐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과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불화 끝에 결별하면서 이 연합은 얼마 가지 못해 해체됐다. 당시 승리를 주도했던 국민의힘 지지층은 이 대표 특유의 합리주의를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와 강경 보수를 지향하는 노년 유권자로 분열됐다. 전씨는 많은 공무원 제자를 거느린 유명 한국사 강사였다. 따라서 적절히 순화된 주장과 교묘하게 선정한 정치적 입지를 섞어서 정치 전면에 나섰더라면,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와 달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유머를 섞는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전씨의 옛 제자들은 그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절대로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김씨와 달리, 직접 국민의힘에 입당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 하는 등 적당히 선을 긋지도 않는다. 정치인들이 알아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큰절을 하게 만드는 김씨와 달리, 전씨는 스스로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당대회서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전에겐 없는 것들 무엇보다 김씨가 “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가진 것 아니냐”는 설까지 나올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단 사실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국민의힘은 정치 구조를 통찰하지 못해 민주당이 장기간 공들여 구축한 정치 구조체를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전씨는 ‘전한길 유니버스’ 제작을 멈추지 않는다. 과연 전씨는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