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허균, 서른셋의 반란 (8)의문

“자유를 위하여”

허균을 <홍길동전>의 저자로만 알고 있는 독자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조선시대에 흔치않은 인물이었다. 기생과 어울리기도 했고, 당시 천대받던 불교를 신봉하기도 했다. 사고방식부터 행동거지까지 그의 행동은 조선의 모든 질서에 반(反)했다. 다른 사람들과 결코 같을 수 없었던 그는 기인(奇人)이었다. 소설 <허균, 서른셋의 반란>은 허균의 기인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파격적인 삶을 표현한다. 모든 인간이 평등한 삶을 누려야 한다는 그의 의지 속에 태어나는 ‘홍길동’과 무릉도원 ‘율도국’. <허균, 서른셋의 반란>은 조선시대에 21세기의 시대상을 꿈꿨던 기인의 세상을 마음껏 느껴볼 수 있는 장이 될 것이다.
 

 

매창의 대꾸에 허균의 너털웃음이 방안을 가로질러 세상으로 힘차게 뻗어나가고 있었다.

그 웃음소리가 빨리 주안상을 들여오라는 소리로 들린 모양이었다.

문이 열리며 별의 지휘로 상이 들어오고 있었다.

그 상 너머로 삼복의 얼굴이 나타났다.

얼굴빛이 초조하게 비치고 있는 모습으로 보아 필시 속으로 침을 흘리고 있을 터였다.


“이 상보다 더 휘어질 정도로 삼복에게도 보내주도록 하시게.”

정식으로 맞이하다

삼복의 눈동자가 커지며 그 눈동자만큼이나 커다란 함박웃음이 얼굴 가득 번져가고 있었다.

상이 자리 잡자 고홍달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생원은 왜 그러시는가.”

“이제는 소생도 자리를 물리고 일을 보아야 합지요. 이제 제 할 도리는 다한 것 같아서 말입니다.”  

“그 사람 눈치 한번 빠르구먼. 이제 모든 일은 이 자유인에게 맡기고 고생원도 따로 자리하도록 하시게나.”


조금도 머뭇거림이 없는 답변에 매창의 얼굴 위로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고생원이 나가자 매창이 호리병을 들었다.

“소녀 정식으로 판관 나리를 뵈옵니다.”

아직도 매창의 음성에서 떨림이 감지되었다.

“그러세. 그러면 나도 정식으로 매창을 맞아보세.”

매창이 허균이 내민 잔을 채우기 시작했다.

도대체 허균이란 사람 종잡기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모에서 느껴지는 흡인력도 그러려니와 세상의 모든 일을 빨아들일 것 같은 눈매와 거침없는 말투에서 모든 것이 강하다는 인상을 받을 뿐이었다. 

잔을 받은 허균이 매창의 손에 들려 있던 호리병을 받아들었다.

“내 술도 받아주시게.”

잠시 손사래를 치던 매창이 차분하게 자신의 앞에 놓인 잔을 들었다.

“그렇다면 저도 정식으로 나리를 맞이하도록 하겠나이다.”

“그대는 나에 대해 마치 잘 알고 있는 듯하오.”


“소녀뿐만 아니옵지요. 나리의 고명은 이 나라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듯하옵니다. 그러니 천하의 소리가 나오는 것이 아니온지요.”

허균이 잔을 들어 매창 앞에 놓인 잔 가까이 가져갔다.

그를 바라본 매창이 자신의 잔을 향해 손을 움직였다. 그러나 잔 가까이에 이른 손이 쉽사리 잔을 잡지 못하고 가느다랗게 떨리고 있었다.

“그대가 정녕 나에게 자유인이라 했소?”

“그러하옵니다.”

매창의 갑작스런 질문…당황한 허균
늘 품고 있던 생각에 대한 이야기를…


“자유인에게 유교는 무슨 얼어 죽을 유교라고. 우리 케케묵은 물건일랑 저만치 던져버리고 자유를 찾아보도록 하시게나.”

허균의 은근한 소리가 이어지자 매창의 떨리는 손이 기어코 잔을 잡았다.

그 잔 가까이로 허균의 잔이 다가갔다.

매창이 두 손으로 소중하게 잔을 들어 허균의 잔과 거의 맞닿을 지점까지 가져갔다.

“자유를 위하여!”

허균이 짤막하게 소리를 내지르면서 가볍게 잔을 부딪치고 입으로 가져갔다.

술잔을 기울이며 매창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매창의 눈가가 촉촉이 젖어드는 모습을 허균이 놓치지 않았다. 

매창이 자신을 바라보는 허균의 시선을 의식한다는 듯이 조심스럽게 잔을 들어 고개를 돌리고 입으로 기울였다.

“나으리, 소녀를 기생으로 여기시는지요!”

가볍게 잔을 입에 대었다가 뗀 매창이 눈가에 고인 이슬을 입술에 담아 입을 열었다.

깨끗이 잔을 비워낸 허균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질문 탓인지 아직 채 넘기지 못한 술이 목에 걸린 듯 심하게 기침하기 시작했다. 

입에서는 방금 마신 술인지 침인지 하얀 이물질이 튀어나오고 몸이 심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손에 들려 있는 잔은 비어 있었던 관계로 그저 흔들리기만 할 뿐이었다. 

매창이 아차한 모양으로 급히 수건을 들어 허균에게 다가갔다.

허균이 손사래 치며 매창의 행동을 저지했다.

허균의 저지에 다시 자리에 물러앉아 허균의 모습을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한참 기침을 해대던 허균이 소매로 입가를 훔치더니 손에 들려 있는 빈 잔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 잔을 채우라는 무언의 행동이었다.

“나리, 괜찮으시온지요. 안주를 먼저 드심이…….”

“이열치열이라 하지 않았소. 그러니 술로 목에 걸린 술을 넘겨야 되는 게지요.”

매창의 얼굴이 살짝 찡그러졌다. 순간적으로 허균의 편치 않아 보이는 얼굴이 안쓰러웠던 모양이었다.

“정말 괜찮으시겠사옵니까.”

허균이 대답 대신 애써 미소 지었다.

그 묘한 표정을 바라보며 매창이 조심스럽게 빈 잔을 채우기 시작했다.

잔을 받은 허균이 잔을 입에 기울였다.

그리고는 진한 여운을 남겼다.

“나으리, 소녀의 무례함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무례함이라니. 당치 않소. 내가 아직 수양이 덜 되어 그런 탓이거늘 너무 괘념치 마시오.”

“그래도…….”

“정 그러면 안주나 챙겨주구려.”

말이 끝나기 무섭게 매창이 전을 집어 두 손으로 공손하게 허균에게 건넸다.

“허 허, 이런 과분한 영광이. 내 또 한 번 사래에 걸려야겠소.”

매창의 얼굴이 한쪽으로 살며시 기울었다.

약간은 찢어진 듯이 보이는 매창의 눈매가 고혹적으로 비쳐지고 있었다.

“너무하시옵니다.”

“너무 하긴 무엇이 너무하다는 말이오. 내 좋아서 그런 것이거늘. 그건 그렇고 방금 한 말이 무슨 뜻이오.” 

매창이 근심스런 표정으로 허균을 응시했다.

“소녀가 괜한 말씀을 여쭈어서…….”

“아니오, 내 한번 이야기 좀 들어봅시다.”

매창이 꺼낸 이야기가 황당해서가 아니었다.

바로 자신의 생각의 정곡을 찌른, 늘 품고 있던 생각에 대한 이야기였던 탓이었다.

늘 품고 있던 생각

“계생(매창의 어린 시절 이름, 매창은 그녀의 호임)이 안에 있느냐.”

“예, 아버지. 소녀 방안에 있사옵니다.”

열두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앳된 아이가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었다.

갓을 쓴 초췌한 모습의 사내가 헛기침하고 방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이 무료한 시간을 어찌 보내고 있었느냐.”

아버지, 이양종이 자리 잡자 계생이 급히 거문고 가까이로 다가 앉았다.

“소녀 거문고를 타며 시를 읊고 있었사옵니다.”

말을 마친 계생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눈가에 이슬이 고이고 있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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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