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사냥’ 나선 윤석열 검찰총장 노림수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9.09.02 10:24:18
  • 호수 123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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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서 서초동으로 칼자루 넘어갔다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또 다시 검찰이 정치권의 목줄을 쥐었다. 검찰이 전격적으로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속전속결로 진행되는 검찰 수사를 보는 여·야의 속내는 복잡하다. 정치권에선 내년 총선 주도권이 여의도서 서초동으로 옮겨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 윤석열 검찰총장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를 둘러싼 딸 입시 부정과 가족 사모펀드, 웅동학원 사금고화 등 각종 의혹에 대해 검찰이 전방위적인 압수수색에 들어갔다.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부장 고형곤)는 지난달 27일과 29일에 걸쳐 고려대 생명과학대학, 서울대 환경대학원, 부산대 의학전문대학원, 오거돈 부산시장 시장실 등 30여곳을 압수수색했다. 

속전속결
친인척 출금

법조계와 정치권에선 이번 검찰의 속전속결 수사가 매우 이례적이라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실제로 국회 인사청문회 제도가 도입된 2000년 이후 공직 후보자가 청문회 전에 검찰의 강제 수사를 받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게다가 다른 부처도 아닌, 법무부장관 후보자다. 임명된다면 검찰에 대한 수사지휘권을 갖는 이를 상대로 검찰이 칼을 빼든 전례가 없다.

또 조 후보자를 고발한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 등 시민단체의 고발장이 접수된 지 일주일 만에 검찰 수사가 이뤄진 부분도 예상치 못한 일이다. 

검찰은 공적 사안이 크기 때문에 빠른 수사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검찰 관계자는 “이 사건은 국민적 관심이 큰 공적 사안으로서, 객관적 자료를 통해 사실관계를 규명할 필요가 크다”며 “만약 자료 확보가 늦어질 경우 객관적 사실관계를 확인하기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 조치”라고 했다.


검찰이 조 후보자를 향해 사실상 칼을 빼들었다. 검찰은 조 후보자 사건들을 서울중앙지검은 형사1부에 배당했으나, 특수2부로 재배당했다.

재산 의혹과 관련된 수상한 자금 흐름, 딸 조씨를 둘러싼 입시 부정, 장학금 특혜 등의 의혹을 규명하기 위해선 특수부가 적합하다고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또 검찰은 조 후보자의 부인과 딸에 대해 출국 금지 명령을 내렸다. 동생, 처남 등도 출국금지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조국 후보자 수사 착수 ‘액션? 리얼?’
법무부 수장 청문회 앞두고 압수수색 최초

검찰이 전격적으로 조 후보자를 수사하면서 정치권의 속내는 여야 가릴 것 없이 복잡해진 모양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이번 검찰 수사에 상당히 정치 공학적인 노림수가 숨어있다. 조 후보자 문제로 여당이 코너에 몰렸지만 야당도 웃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라며 “이번 검찰 수사는 내년 총선을 앞두고 여의도에 큰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말했다. 

먼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코너에 몰렸다. 한국당 공격에 검찰 변수까지 떠안은 상황이다. 민주당은 이번 검찰 수사에 대해 강하게 반발했다.
 

▲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

민주당 수석대변인 홍익표 의원은 “조 후보자의 인사청문회를 앞둔 시점에 압수수색이 진행된 것에 유감을 표하며 이로 인해 청문회의 정상적 진행에 장애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점에 우려를 표한다”며 “이번 압수수색이 검찰개혁을 방해하려는 정치적 의도가 아니길 바란다. 검찰은 청문회 결과를 보고 검증과정서 해소되지 않은 의혹이 있다면 그에 대한 조사를 통해 진실을 밝혀주기를 바란다”고 촉구했다.


민주당은 조 후보자 청문회와 관련해 한국당의 가족 증인 신청을 거부하는 정도로 대응해왔다. 하지만 예상하지 못했던 검찰의 등장으로 한국당에선 전선이 크게 확대되는 형국이다. 한국당에선 조 후보자를 피의자로 규정해 민주당과 청와대에 사퇴를 촉구하고 있다. 

정권실세 잡나?
궁지 몰린 여

정치권에선 조 후보자의 임명 여부와 검찰 수사 결과가 민주당의 내년 총선 승패를 좌우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조 후보자가 법무부장관에 낙마하거나 의혹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조기 레임덕, 내년 총선 패배 등 최악의 시나리오를 맞게 될 수도 있다. 

민심도 상당히 악화됐다. 조 후보자 사태 이후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율이 3주째 하락세를 나타내며 40%대 중반에 머물렀다.

여론조사 기관 리얼미터에 따르면 부정 평가(50.8%)가 긍정 평가(45.7%)보다 5.1%포인트 우세했다. 지난달 29일 조 후보자 장관 임명 여론조사서도 반대한다는 응답이 절반을 넘어섰다. 리얼미터에 따르면 전국 성인 502명을 대상으로 조 후보자 법무부장관 임명에 대해 ‘반대’ 응답이 54.5%로 나타났다. 

대학생들이 촛불을 들고 일어났으며, 국민청원서도 조 후보자 임명 반대 청원이 빗발치고 있다. 무엇보다 조 후보자 사태가 문재인정부에 대한 배신감으로 이어지고 있다. 민주당 의원들은 지역구서 민심을 접하며 내년 총선을 걱정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한국당은 조 후보자 사태로 간만에 웃고 있긴 하지만 마냥 기뻐할 상황은 아니다. 

한국당은 이번 검찰 수사를 고리로 조 후보자의 자진 사퇴 문 대통령의 지명철회를 압박하며 파상공세를 퍼부었다. 한국당은 특히 조 후보자를 ‘피의자’ ‘검찰 수사 대상자’로 표현하며 부적격 인사임을 주장하고 있다.

한국당 김현아 원내대변인은 “과거 조국 교수도 검찰 수사대상인 장관에게 ‘직을 버리라’고 하지 않았느냐”며 “자진사퇴와 문 대통령의 지명철회가 꼬인 정국을 푸는 유일한 해법”이라고 밝혔다. 

웃고 있는 야 
그럴 때가…

한국당 소속 의원들 역시 패스트트랙 검찰 수사를 앞두고 있다. 그동안 ‘야당 탄압’이라고 주장했지만, 이번 주 조 후보자의 수사로 이 주장에 힘을 잃었다.

지난 4월 국회 개혁법안 등의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처리 과정서 의사진행 방해·폭력 사태 등으로 국회선진화법 위반 혐의로 수사대상에 오른 한국당 의원은 총 58명이다. 당시 한국당을 비롯해 더불어민주당, 정의당, 바른미래당 등 여·야를 막론하고 대대적인 고소·고발전으로 이어졌다.


지금까지 패스트트랙 수사로 경찰에 출석한 의원은 총 17명이지만, 한국당 의원들은 단 한 명도 출석하지 않았다. 현재 한국당 의원들은 패스트트랙 수사와 관련해 경찰의 출석 요구에도 소환에 불응하고 있다. 경찰은 지금까지 한국당 엄용수, 여상규, 정갑윤, 이양수 의원 등 4명에게 3차례에 걸쳐 출석 요구서를 보냈지만 불응했다. 
 

▲ 검찰이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에 대한 의혹과 관련해 오거돈 부산시장 집무실을 압수수색하고 있다.

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는 “이 모든 사태의 근본적 원인을 제공한 집권세력부터 수사하지 않는다면 표적소환에 응할 수 없다”며 “경찰은 타깃 줄 소환으로 야당 의원을 겁박해오고 있다”고 수사 불응 방침을 정했다. 

하지만 검찰이 이번 정권의 최고 실세인 조 후보자에 대한 전격적인 수사에 착수하면서 패스트트랙 수사가 ‘야당 탄압’이라는 한국당 주장의 명분은 보기 좋게 사라졌다. 경찰이 한국당 의원들의 소환 불응에도 의원 불체포 특권과 야당 탄압 등을 의식해 현실적으로 손쓸 방법이 없는 데 반해, 검찰은 강도 높은 수사를 할 것으로 예상된다.

여야 모두 물린 상황  
내년 총선 좌지우지?

홍준표 전 한국당 대표는 “(조 후보자 수사가)야당이 환호작약할 일은 아니다. 그 다음은 패스트트랙 수사”라며 “그때 가서 야당이 정치탄압이라고 주장할 명분이 있느냐”고 말했다. 

패스트트랙 수사는 총선뿐만 아니라 향후 한국당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검찰 수사에 따라 의원들의 정치적인 입지가 심각하게 흔들릴 수 있다. 이 때문에 경찰 소환 조사에도 불응한 것으로 보인다. 


국회선진화법 위반은 처벌 수위가 높다. 국회서 회의를 방해할 목적으로 회의장 또는 그 부근서 폭력행위를 하거나 의원의 회의장 출입 등을 방해하면, 5년 이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진다. 

회의를 방해하는 과정서 사람을 다치게 하거나 단체로 위력을 보인 경우 7년 이하 징역이나 2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는 규정도 있다. 더구나 국회 회의 방해죄로 500만원 이상의 벌금형을 선고받으면 5년간, 집행유예 이상을 선고받으면 10년간 피선거권이 제한된다. 수사 결과에 따라 피선거권까지 박탈될 수 있다.

한국당 58명 
도마에 올라

정치 무대는 여의도지만 내년 총선을 앞두고서는 서초동을 주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정치평론가로 활동 중이기도 한 변호사는 “현재까지 명분과 실리는 모두 검찰에게 있다. 내년 총선 역시 검찰의 칼자루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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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①군 정보사는 왜 개입했나

[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①군 정보사는 왜 개입했나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오혁진 기자 =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3일 선포했던 비상계엄을 포함해 대한민국 헌정사에서 총 17번의 계엄령이 선포됐다. 야당의 무분별한 탄핵 남발과 정부 예산 삭감 등이 이유였다. ‘충격요법’ 차원의 계엄령이라는 주장과 달리, 백병전에 특화된 북파공작대(HID) 요원을 투입한 것도 이례적이다. 계엄법에 따르면 계엄은 비상계엄과 경비계엄으로 나뉜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적과 교전 상태에 있거나 사회질서가 극도로 교란됐을 경우 발령할 수 있다. 경비계엄은 그보다 낮은 수위로 경찰 등 일반 행정기관만으로는 치안을 확보할 수 없을 때 선포할 수 있다. 사실상 실패한 계엄 이후 2차 계엄 의혹마저 제기되면서 윤 전 대통령은 파면됐다. 국민 향한 특수부대 계엄은 대통령이 전시·사변 등의 국가 위기 상황에 군사력을 동원해 공공질서를 유지하게 하는 비상조치로 대한민국 헌법 제 77조에 규정돼있다. 비상계엄이 선포됐을 경우, 대통령이 임명한 계엄사령관은 계엄 지역의 행정권과 사법권을 모두 갖게 된다.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도 제한되며 작전상 부득이한 경우라고 판단하면 국민 재산을 파괴하거나 소각하는 권리도 갖게 된다. 불법 계엄 사태 당시 국군방첩사령부와 함께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에 병력을 투입한 계엄군 핵심은 국군정보사령부(정보사)였다. 정보사 예하 HID 요원 일부가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의 사조직인 ‘정보사령부 수사2단’에 동원된 것이다. 대북 공작에 특화된 ‘살인 병기’로 불리는 HID 요원들은 노 전 사령관 등 수뇌부의 정치적 일탈행위로 인해 불명예를 안게 됐다. 노 전 사령관은 육군사관학교 출신을 중심으로 꾸린 내란 사조직의 수장 노릇을 했다. 이렇게 조성된 ‘육사 카르텔’은 12·3 비상계엄 선포 석 달 전부터 진급을 미끼로 조직원 포섭을 시작했다. 지난해 말 김 전 장관은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 등 수뇌부에 ‘노 전 사령관이 하는 일을 잘 도와주라’는 취지로 지시했다. 이들은 문 전 사령관과 노 전 사령관 지시가 곧 김 전 장관의 지시인 것으로 받아들여 계엄을 준비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노 전 사령관은 문 전 사령관과 정성욱·김봉규 정보사령부 대령에게 수사2단에 편성할 정보사 소속 요원을 선발하라고 상세히 지시했다. 김 대령은 2016년 노 전 사령관의 현역 시절 과장 신분으로 함께 근무했다. 취재진이 입수한 검찰 수사기록에 따르면,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10월경 김 대령에게 전화를 걸어 “특수요원 중에 사격 잘하고, 폭파 잘하는 그런 인원 중에 한 7~8명을 나에게 추천 좀 해달라”고 했다. 당시 김 대령은 “특수 요원들이 전역하게 되면 대통령경호처, 국정원 특임 조직 등으로 재취업하는 경우가 왕왕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을 도와주려고 하는 말인가 하고 생각했었다”고 진술했다. 노 전 사령관이 문 전 사령관보다 먼저 김 대령에게 특수부대, 공작요원 등으로 인원을 선발하라고 지시한 것이다. 문 전 사령관은 김 대령에게 재차 ‘노 전 사령관이 말한 것을 잘 이행하라, 잘 도와라’라는 식으로 말했다고 한다. 노 전 사령관이 특수부대를 모집한 이유에 관해 김 대령은 ‘북한이 오물풍선을 보내면 우리가 원점을 타격해야 하기에 필요하다고 노 전 사령관이 말했다’고 한다. ‘충격 요법’ 차원 출동? HID 요원 투입 ‘백병전 고수들’ 모아 선관위 장악 플랜 계엄 두 달여 전인 지난해 10월 말까지만 해도 평소처럼 북한이 오물풍선을 보내는 상황이었고, 이밖에 특수한 상황은 없었다. 문 전 사령관이 본격적으로 HID 인원 선발에 착수하라고 지시하자, 김 대령은 지난해 10월30일 모 주임원사에게 연락을 취해 ‘5명 정도 특수무술 잘하는 인원을 추천해달라고 했다’고 진술했다. 김 대령은 특수부대 5명과 우회요원 10명을 포함한 총 15명의 선발 명단을 만들어 노 전 사령관에게 텔레그램으로 전달했다. 이어 지난해 11월9일 오후 4시경 노 전 사령관과 김 대령, 문 전 사령관은 안산 상록수역서 만났다. 노 전 사령관이 특수요원 선발, 준비가 다 됐는지 확인하자, 문 전 사령관은 “오물풍선이 날아오는 대북 상황에 우리 정보사가 들어갈 필요가 있겠냐” 물었다. 그러자 노 전 사령관이 ‘언론에 평상시에 나지 않는 특별한 보도가 날 거야’라고 답했다고 한다. 노 전 사령관이 언급한 특별한 보도는 부정선거 의혹이었다. 그러면서 노 전 사령관은 이들에게 “중앙선관위로 가서 관련된 사람들을 잡아와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노 전 사령관이 이들에게 건넨 A4용지 10장 분량의 부정선거 관련 자료에는 선관위 부서와 직원 30여명을 체포하라는 지시와 함께 ‘계엄 선포 시 할 일’이라고 기재돼있었다고 한다. 자료에 계엄 선포 날짜는 없었으나 노 전 사령관은 이들에게 “조만간 상황(계엄 선포)이 생길 것”이라며 “출장이나 장거리 출타를 가지 말라”고 지시했다. 김 대령이 이해한 노 전 사령관의 지시는 계엄이 선포되면 선관위에 가서 부정선거 관련 잘못한 사람들을 잡아들여야 한다는 정도였다. 그는 ‘사실 처음 듣고는 황당했다. (노 전 사령관이) 대북상황이라고 주장하지만, 계엄을 선포할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국내 정세로도 계엄을 선포할 상황이 아니니까. 그리고 부정선거를 이유로 계엄을 선포하는 것도 말이 안된다’고 진술했다. 노 전 사령관은 이들에게 계엄 시 ▲소집된 인원과 차량이 수방사에 출입할 수 있도록 조치하고 ▲수방사 시설 확인 인원을 제외한 전 인원은 계엄 후 6시30분까지 선관위로 가서 선관위 직원 명부를 파악하고, 부정선거에 관해 물어볼 수 있는 공간 확보 ▲선관위 홈페이지를 관리하는 곳에서 ‘부정선거 관련, 아는 사항이 있거나 선거 조작에 대해 아는 사항이 있으면 양심고백을 하라’는 내용의 문구를 올리고, 사령부 내에 일반전화 및 콜센터 설치 ▲선관위 방송실에 가서 선관위 내부 방송을 통해 계엄 상황을 고지하고, 계엄 상황이니 지시를 따르지 않을 경우, 체포 등의 조치가 있음을 경고하라는 총 4개의 임무를 부여했다. 또 30여명의 선관위 직원은 정 대령 팀에게 지시한 것으로 전해진다.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속초 정보사 교관 A씨는 비상계엄 선포 직전 판교에 있는 본부에 소집됐다고 진술했다. 실제로 A씨는 문 전 사령관 등의 지시를 받고 판교에 HID 요원 5명을 투입했다. 진급에 목매다 A씨는 검찰 조사에서 “속초서 온 인원 중 3명이 김 대령 팀에 속해 있는데, 그 중 2명에 대해 김 대령은 ‘너희들은 내가 취조할 때 내 뒤에서 취조 대상자들이 나를 해하려고 하면, 나를 보호해라. 그리고 내가 취조할 때 상대방이 겁 먹을 수 있도록 옆에서 책상을 치거나 욕을 하거나 노려보는 등으로 취조 분위기를 조성해라’고도 했다”고 진술했다. 국방부 아래 가장 비밀스럽고 강력한 정보사가 한낱 민간인 지휘 아래 계엄에 투입된 웃지 못할 사건은 이렇게 시작됐다. 체포된 윤 전 대통령의 자필 편지처럼 ‘계엄의 형식을 빌린 대국민 호소’였다면 HID가 왜 필요했는지 의문이다. <일요시사>가 만난 정보사 출신 군 고위 관계자는 “상명하복이 원칙이니 HID 요원들도 따를 수밖에 없었겠지만, 이번 사태는 문 전 정보사령관의 투입 명령에 충분히 불복할 수 있었다고 본다”며 “국방부에 책잡힌 몇몇 사건의 영향도 있고, 문 사령관이 진급이라는 미끼를 물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국군정보사령부(이하 정보사)는 가장 진급이 어려운 곳이다. 현재까지도 소장 직급인 정보사의 경우 사령관 직무 배제 및 전직 정보사 여단장 전출 등 각종 이슈로 인해 ‘원스타’ 계급장을 단 장군조차 찾아보기 어려운 상황인 것으로 전해진다. 정보사의 사령관은 소장이지만 지휘부는 군단 편제와 같다. 이유는 김영삼 전 대통령 취임 직후 정보사령관의 계급을 소장으로 낮췄기 때문이다. 단, 기무사는 1년 뒤 중장으로 다시 사령관 계급을 올렸다. 실제로 HID 팀원들도 자신의 계급을 보안상 알 수 없으며, 사실상 최종 계급은 원스타다. 노 전 사령관이 계엄 선포 계획에 동참한 군 장성들의 진급을 도운 정황은 정 대령의 진술서도 나왔다. 지난해 12월1일 안산시 롯데리아서 노 전 사령관, 문 전 사령관, 김 대령의 회의 당시, 수차례 ‘내가 도와줄게’라며 정 대령에게 일을 시켰다. 실제로 정 대령은 “노상원의 군내 인맥이 아직도 대단한 것 같아서, 솔직히 진급 욕심이 나 지시에 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죄송합니다”라고 진술했다. 또 그는 노 전 사령관으로부터 “계엄이 선포되면 정 대령과 김 대령이 팀을 나눠 중앙선관위 직원 30명을 체포해 중앙선관위 회의실 등에 가둔 뒤 이들을 수방사 B1벙커 내 수감시켜두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이후 노태악 선관위원장을 처리하는 일은 노 전 사령관이 직접 처리하겠다는 말을 들었다고 덧붙였다. 노 전 사령관의 지시로 12·3 계엄령 작전에 배치된 HID 요원들은 근접 전투 능력이 뛰어난 이들로 선발됐다. 윤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한 날 HID 요원 5명은 서울 외곽인 판교에 배치됐고, 나머지 35명은 서울 시내 곳곳에 배치됐다. 사령관과 육군 카르텔 12·3 내란의 우두머리는 체포된 윤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으로 드러났다. 특히 김 전 장관은 계엄 이틀 전인 12월1일부터 곽종근 특전사령관 등에게 전화를 걸어 전체적으로 지시를 점검했다고 한다. 정보사가 국방부에 장악된 배경도 의아하다. 정보사는 애초 국방부가 아닌 합동참모본부 정보본부장의 지휘·통제를 받는 조직이다. 그러나 문 사령관은 “장관 지시의 보안 유지 차원서 본부장에게 보고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공식 지휘를 건너뛰고 국방부 장관과 직접 소통했다는 의미다. 계엄 수개월 전 정보사를 곤란하게 만든 두 사건 때문에 국방부가 틀어쥘 수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7월 정보사 군무원이 블랙요원 수십명의 신상을 중국으로 유출한 사건과 정보사 수뇌부끼리 감정싸움이 벌어져 고소전으로 번진 사건이다. 김 전 장관은 두 사건을 핑계 삼아 정보사를 장악하려 했다. 같은 해 8월, 국방부 장관 부임 직후 정보사를 ‘해체’ 수준으로 개편한다고 예고하더니, 정보사를 국방부 직속 부서인 ‘국방정보실’로 옮기는 안을 검토했다. 다만 그해 10월 언론보도로 계획이 유출되자 실행에 옮기진 않았다. 이후 김 전 장관은 OB(퇴직자) 활용으로 방향을 튼 것으로 추정된다. 박근혜 전 대통령 경호차장 근무 경험이 있는 노 전 사령관을 연결고리로 활용한 것이다. 같은 해 12월1일 노 전 사령관은 정모 대령 등에게 ‘진급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취지로 인맥을 과시하며 협조를 요구했다고 한다. 실제로 노 전 사령관은 김 전 장관과의 친분을 과시하며 현역 군인들의 진급, 인사에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노 전 사령관은 입버릇처럼 김 대령에 ‘오늘도 용산에 다녀왔다’는 식으로 김 전 장관과의 인맥을 자랑했다. 특히, 진급 발표 시기에 노 전 사령관은 하루에 3~4번씩 김 대령 등에게 연락해 현역 장성들의 근황을 묻곤 했다고 한다. 한편, 윤 전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령을 포함해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대한민국서 계엄령은 총 17번 선포됐다. 이 중 비상계엄은 12번에 달한다. 헌정사상 첫 계엄령은 이승만정부 시절 1948년 10월 여수·순천 사건을 계기로 발동됐다. 앞서 국군 제14연대가 이승만정부가 내린 ‘제주 4·3사건 진압 명령’을 거부하면서 무력충돌이 일어났다. 이에 이 전 대통령은 여수·순천 지역에 계엄령을 선포했다. 두 번째 계엄은 같은 해 11월 ‘4·3 사건’ 당시 제주지역에 선포됐다. 당시는 아직 계엄법이 제정되기 전이었으므로 일제강점기의 계엄법에 해당하는 ‘합위지경’을 적용했다. 정작 계엄법이 제정된 것은 1949년 11월24일이다. 김봉현과 한 배 탄 민간인 노상원 “까라면 까야지” 어이없는 수하들 이후 6·25 전쟁으로 인한 첫 전국 단위 계엄령이 선포된다. ‘4·19 혁명’ 당시에는 학생 시위를 막는 데 악용되기도 했다. 이는 다음 정부로 이어져 1961년 ‘5·16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전국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이듬해 12월6일 이를 해제했다. 비상계엄 12일에 경비계엄 558일로 한국 역사상 지속 기간이 가장 길었던 계엄으로 기록됐다. 이후 박 전 대통령은 한일 협정에 반대하는 ‘6·3 항쟁’에 대응한다며 계엄령과 휴교령을 발령했다. 대통령 간선제를 골자로 하는 10월 유신, 부마항쟁 때도 계엄령을 발동했다. 마지막 비상계엄은 1979년 10월26일 박 전 대통령이 시해된 다음 날 발령됐다. 이 계엄령은 1979년 ‘12·12 쿠데타’로 사실상 권력을 장악한 전두환·노태우 등 신군부에 의해 1980년 5월17일을 기해 제주도를 포함한 전국으로 확대됐다. 이로 인해 ‘5·18 민주화운동’이 일어나게 된다. 부마항쟁으로 인해 1979년 10월18일 부산지역에 선포된 계엄령은 이후 계속 확대되면서 1981년 1월24일 해제될 때까지 456일 동안 유지됐다. 이에 저항하는 5·18 광주 민주화운동이 일어나자 전두환정권이 계엄군을 투입해 무력으로 진압하면서 국민적 공분을 사기도 했다. 5·18 민주화운동 뒤 실행으로 옮기지 않았으나 계엄령을 검토한 증거도 남아있다. 1987년 1월 고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으로 촉발된 ‘6·10 민주항쟁’ 당시 전두환정권은 계엄령을 통한 무력 진압을 검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국민적 저항과 더불어 미국의 계엄 조치가 적절치 않다고 압박하자, 전두환정권은 대통령직선제 개헌을 수용했다. 이후 40년이 넘도록 대한민국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한 적은 없었다. 다만, 박근혜정부 당시에도 계엄령 검토설이 불거졌다. 처음에는 낭설에 불과하다는 취급을 받았으나 실제 국군기무사령부(방첩사령부)의 세부 문건이 공개되면서 사실로 확인됐다. 윤 전 대통령이 계엄사령관으로 합동참모의장이 아닌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을 임명했던 것을 두고 해당 문건을 참조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해당 문건에는 “계엄사령관은 군사 대비 태세 유지 업무로부터 자유로워야 하며, 현행 작전 임무가 없는 각 군을 지휘하는 지휘관으로 임명해야 한다”며 “육군총장을 계엄사령관으로 건의한다”고 적시했다. 계엄령이 선포되면 통상 합참의장이 계엄사령관을 맡을 것으로 여겨졌다. 합참이 계엄과 관련된 업무를 관장하고 합참 조직에 계엄과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윤 전 대통령은 계엄사령관에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을 임명했다. 이빨 빠진 살인 병기 군 내부엔 김명수 합참의장이 해군 출신으로 지상 병력인 계엄군 지휘에 한계가 있고, 김 전 장관이 같은 육군 출신인 박 총장과 더 편하게 소통할 수 있기 때문이란 분석도 있다. 윤 전 대통령의 심야 비상계엄 선포는 대통령실 여러 참모도 발표 직전까지 그 내용을 모를 정도로 기습적으로 이뤄진 것으로 전해졌다. 대통령실 안팎의 상황은 지난 12월3일 오후 9시를 넘으며 급변했다. 대통령실 참모들은 윤 대통령이 담화를 발표할 것이라는 사실을 애초 모르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smk1@ilyosisa.co.kr>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