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원한 동굴여행 ①동해 천곡황금박쥐동굴

도심 속 숨겨진 신비의 지하 세계

동굴 탐방을 위해 꼭 깊은 산골까지 갈 필요는 없다. 도심에도 꽤 운치 있는 동굴이 있다. 동해 천곡황금박쥐동굴은 국내에서 유일한 도심 속 천연 동굴이다. 수억년 세월을 간직한 동굴 옆으로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고, 시내버스가 빈번하게 오가는 낯선 풍경이다. 동굴 뒤쪽에는 석회암 지형과 어우러진 탐방로가 조성되어 인근 주민이 산책로로 애용한다.
 

▲ 지난 6월에 새롭게 문을 연 천곡황금박쥐동굴

동해시 동굴로의 천곡황금박쥐동굴은 1991년 아파트 공사를 하던 중 처음 발견됐다. 1996년 일반에 공개됐으니 알려진 세월은 20여년에 불과하다. 동굴은 총 길이 1510m이며 깊이는 10m에 달한다. 생성 시기는 4억~5억년 전으로 추정되는데, 810m가 관람 구간으로 개방된다. 동굴의 본래 명칭은 천곡천연동굴. 올봄 동굴 훼손을 막기 위한 개보수를 하고, 지난 6월에 천곡황금박쥐동굴로 새롭게 문을 열었다.  

황금박쥐 서식
 

▲ 천곡황금박쥐동굴 탐방의 하이라이트, 샘실신당
▲ 천곡황금박쥐동굴의 오백나한상

천곡황금박쥐동굴에는 황금박쥐가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황금박쥐(붉은박쥐)는 세계적으로 개체 수가 적어 멸종 위기종 1급과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희귀 야생동물이다. 동굴 입구에는 황금박쥐 모형이 커다랗게 장식돼 분위기를 더한다. 안전 헬멧을 쓰고 가파른 계단을 내려서면 신비한 지하 세계 탐험이 시작된다. 입구부터 스산한 기운이 감도는 동굴은 피서지로 제격이다. 동굴의 평균기온은 10~15℃. 이마에 송골송골 맺혔던 땀방울이 이내 사라진다.
 

▲ 최근 개방된 저승굴은 어두침침해 오히려 실감난다.

동굴은 석회동굴의 특성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바닥에 솟은 석순과 천장에 매달린 대형 종유석, 석순과 종유석이 연결된 석주 등이 끊임없이 이어지며 흥미진진한 동굴 탐방을 이끈다. 오백나한상, 사천왕상, 피아노상 등 다양한 2차 생성물도 차례차례 모습을 드러낸다. 종유석과 석순이 만나 석주가 되려면 보통 수만년이 걸린다는데, 아슬아슬하게 만남을 기다리는 석회 지형도 볼거리다. 종유석은 1년에 0.2mm 정도 자라며, 손으로 만지거나 부러뜨리는 일은 절대 삼가야 한다.
 

▲ 동해의 사계, 반딧불이 등을 감상하는 특수 조명 쇼

천장에서 물이 똑똑 떨어지는 천곡황금박쥐동굴은 석회암의 용식작용이 계속되는 현재진행형 동굴이다. 동굴에 물이 차면서 굴곡을 형성한 천장 용식구는 국내 동굴 중 최대급 규모를 자랑한다. 용식구 가운데 용이 승천하는 모습을 한 용굴은 크기가 압권이다. 동굴은 몸을 절반으로 낮춰서 통과하거나, 앉아서 올려다봐야 진면목을 관람할 수 있는 코스가 이어진다. 툭툭 머리를 부딪히는 경우가 다반사라 헬멧 착용은 필수다.


국내 유일 도심 속 천연 동굴
석회암 지형과 어우러진 탐방로

동굴 탐방의 하이라이트는 샘실신당이다. 천장을 떠받친 석주와 좌불상 등이 한자리에 모인 지형으로, 조명 시설도 새롭게 갖춰 신비로운 분위기를 더한다. 탐방로 중 최근 개방된 저승굴은 어두침침해 오히려 실감이 난다. 발을 디뎌야 불이 들어오는 조명 효과로 동굴 탐험의 묘미를 만끽할 수 있다. 저승굴 구역에는 천곡황금박쥐동굴에서 발견된 동물 뼈를 전시한다.

동굴 내에서 동해의 사계, 반딧불이 등을 감상하는 특수 조명 쇼도 올해부터 관람할 수 있다. 천곡황금박쥐동굴은 개방 시기가 비교적 짧아 생성물의 원형이 잘 보존된 상태다. 동굴이 들어선 천곡동은 예부터 큰 샘이 있던 마을로, 동네 이름은 여기서 비롯됐다. 구릉에 어미 소와 송아지를 풀어놓으면 송아지만 엉뚱한 곳에서 발견돼, 주민들이 어딘가 지하 비밀 통로가 있는 것으로 여겼다는 사연도 내려온다.   
 

▲ 동굴 밖에 야생화 군락지와 쉼터가 어우러진 돌리네탐방로

동굴 밖으로 나서면 돌리네탐방로가 이어진다. 돌리네(Doline)는 동굴 생성의 비밀을 간직한 석회암 분지로, 천곡황금박쥐동굴 위쪽으로 군데군데 형성됐다. 나무 데크 탐방로를 따라 가까이서 살펴볼 수 있으며, 야생화 군락지와 쉼터가 어우러져 산책 코스로 좋다. 동굴관리사무소 2층에는 동굴의 형성 과정을 보여주는 화석을 전시한다.

시내에서 천곡황금박쥐동굴로 향하는 길은 제법 편리하다. 동해시청에서 10여분이면 걸어갈 수 있으며, 동해종합버스터미널에서 차량으로 10여분 거리다, 동해시의 필수 관광 코스인 논골담길, 무릉계곡 등이 동굴 앞에서 시내버스로 한번에 연결된다. 동굴 입장료는 어른 3000원, 청소년 1500원, 어린이 1000원이다(주차료 1000원). 여름 성수기에는 오전 8시부터 오후 8시까지 문을 연다. 예약하면 문화관광해설사가 동굴에 담긴 흥미진진한 얘기를 무료로 들려준다.
 

▲ 서퍼들이 사랑하는 대진해변

어두컴컴한 동굴과 달리, 동해시의 논골담길은 화창한 골목 풍경을 전해준다. 묵호 논골담길은 옛 묵호항의 사연과 바다 풍경이 담긴 길이다. 묵호등대로 이어지는 비탈진 골목에는 바다에 의지해 살아간 주민들의 삶이 벽화로 표현됐다. 논골담길은 1길, 2길, 3길, 등대오름길로 구분되는데 무작정 배회하는 것도 골목을 즐기는 묘미다. 오징어와 명태를 지게로 날랐다는 길목 정상은 묵호등대로 연결된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방에서 하룻밤 묵거나, 바람의언덕전망대에서 바닷바람에 취해 커피 한잔 마셔도 좋다.  

번잡한 논골담길을 벗어나 동해를 따라 북쪽으로 향하면 탁 트인 대진해변을 만난다. 대진해변은 서퍼들이 사랑하는 해변이다. 양양 죽도해변이 서핑 포인트로 알려졌지만, 최근 서핑 마니아들은 한적한 파도를 찾아 이곳 대진해변을 찾는다. 모래톱이 드넓게 펼쳐진 대진해변 입구에는 서핑 강습을 하는 상가와 민박, 카페 등이 오붓하게 들어섰다. 대진항을 품은 대진마을은 경복궁의 정동방에 위치한 동네다.
 

▲ 청량한 무릉계곡 쌍폭포

무릉계곡

여름 동해 여행에서 무릉계곡을 빼놓을 수 없다. 무릉계곡은 신선이 노닐었다는 백두대간의 절경을 간직한 곳이다. 무릉계곡 초입의 무릉반석은 희고 커다란 바위가 펼쳐진 경이로운 공간에 다양한 기념 석각이 있다. 그중 조선의 4대 명필인 봉래 양사언이 새긴 석각이 풍류를 더한다. 무릉계곡 물줄기는 비 온 뒤에 더욱 활기찬 소리를 뿜어낸다. 기암절벽과 어우러진 쌍폭포, 용추폭포, 학소대 등이 계곡의 청량함을 완성한다.

 

<여행 정보>

당일 코스 천곡황금박쥐동굴→무릉계곡→논골담길
1박2일 코스 
첫째 날: 천곡황금박쥐동굴→무릉계곡→동해무릉건강숲
둘째 날: 논골담길→대진해변→북평민속시장→추암촛대바위출렁다리  

관련 사이트 
동해관광 www.dh.go.kr/tour, 천곡황금박쥐동굴(동해시시설관리공단) www.dhsisul.org/facility/02.htm

*문의: 천곡황금박쥐동굴 033)539-3630, 동해시청 관광과 033)539-8689, 묵호등대논골담길협동조합 033)535-1414, 무릉계곡관광안내소 033)530-2802

대중교통 정보
-버스: 서울-동해, 서울고속버스터미널에서 하루 19~24회(06:30~3:30) 운행, 약 3시간5분 소요. 동서울종합터미널에서 하루 14회(06:45~20:30) 운행, 약 2시간50분 소요. 동해종합버스터미널에서 32-1번·12-4번 버스 등, 천곡황금박쥐동굴·돌리네탐방로 정류장 하차, 약 15분 소요. 
*문의: 서울고속버스터미널 1688-4700, 동서울종합터미널 1688-5979, 고속버스통합예매 www. kobus.co.kr, 동해시대중교통정보 080-850-9486, http://bus.dh.go.kr

자가운전
동해고속도로→동해 IC→동해대로→운동장사거리 우회전→천곡황금박쥐동굴

숙박
- 청춘게스트하우스: 동해시 대진항길, 033)534-3737, www.oceancamp.kr 
- 동해보양온천컨벤션호텔: 동해시 동해대로, 033)530-0700, www.msgh.kr 
- 망상해오름가족호텔: 동해시 동해대로, 033)532-7373, www.mshaeorum.co.kr 
- 동해현진관광호텔: 동해시 동굴로, 033)539-2000, www.dhhjhotel.co.kr

식당
- 부흥횟집(물회): 동해시 일출로, 033)531-5209 
- 칠형제곰치국(곰칫국): 동해시 일출로, 033)533-1544 
- 천곡해물탕(해물탕): 동해시 한섬로, 033)533-7013 황금로, 032)880-9766

주변 볼거리
추암촛대바위출렁다리, 북평민속시장, 동해무릉건강숲, 묵호야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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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뒤통수로 다시 꼬인 한·미·일

트럼프 뒤통수로 다시 꼬인 한·미·일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불확실성의 시대에 가장 확실하다고 굳게 믿었던 관계에서 파열음이 나오고 있다. 새 정부 초기부터 보이기 시작한 적신호가 이제 눈 돌릴 수 없을 정도로 커진 모습이다. 어디서부터 균열이 시작된 걸까? 우리나라 외교는 한미동맹을 배경으로 진행됐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중립 외교를 꾀한 때도 있지만 대체로 한·미 혹은 한·미·일 관계가 우선시됐다. 하지만 최근 들어 우리나라와 미국이 삐걱거리는 모습이 자주 포착되고 있다. 상수였는데 변수됐나 지난 12일 미국 이민 당국에 체포·구금됐던 한국인 근로자 316명이 귀국했다. 이번에 구금된 한국인은 총 317명으로 남성 307명, 여성 10명이다. 이 가운데 1명은 잔류를 택했다. 지난 4일, 미국 이민 당국의 불법체류 및 고용 전격 단속에서 체포돼 포크스턴 구금시설 등에 억류된 지 8일 만이다. 이들은 미국 조지아주 엘러벨의 현대차그룹-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서 일하던 중에 체포·구금됐다. 문제 해결을 위해 조현 외교부 장관이 미국을 급히 방문했다. 당초 이들은 지난 10일(현지시각)에 전세기를 타고 출국할 예정이었지만 ‘미국 측 사정’으로 지연됐다. 외교부는 이번에 체포·구금된 한국인이 향후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미국에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에 따르면, 조현 외교부 장관은 마코 루비오 미 국무부 장관에게 이들이 신체적 속박 없이 신속히 귀국하고 향후 미국에 재입국하는 데 불이익이 없게 해달라고 요청했고 미국 측으로부터 긍정적인 답을 받았다고 한다. 체포·구금된 한국인이 미국을 떠나는 방식을 두고 우리나라와 미국 간의 이견이 있었다. 우리나라는 ‘자진 출국’을, 미국은 ‘추방’을 언급한 것이다. 자진 출국 방식으로 귀국하면 향후 ‘5년 입국 제한’ 등의 불이익이 없다. 반면 추방 명령으로 미국을 떠나면 영구적으로 기록이 남아 최대 10년간 미국에 들어갈 수 없다. 지난 8일 크리스티 놈 미국 국토안보부 장관이 이번 사안과 관련해 “법대로 하고 있다. 그들은 추방될 것”이라고 말하면서 출국 형태에 대한 논란이 불거졌다. 다행히 미국 측과 조율이 이뤄지면서 자진 출국 형태로 귀국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에 따르면 루비오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도 이재명 대통령과 도출한 한미 정상회담의 성과를 높이 평가하고 있고, 이 사안에 대한 한국인의 민감성을 이해하고 있다. 특히 미국 경제·제조업 부흥을 위한 한국의 투자와 역할에 대해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인 체포·구금 사태 야 “700조원 줬는데도?”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 측이 원하는 바대로 가능한 한 이뤄질 수 있도록 신속히 협의하고 조치할 것을 지시했다”고 설명했다. 우리 정부의 노력으로 상황이 봉합되는 모양새지만 한국인 체포·구금 사태의 후폭풍이 상당할 것이라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한국인 체포·구금 과정에서 드러난 미국 이민 당국의 모습을 두고 동맹을 고려하지 않은 처사라는 말이 나왔다. 실제로 미국 측은 한국인 체포 과정에서 수갑을 채웠고, 이들을 환경이 열악한 수용소에 구금했다. 야권에서 ‘외교 참사’가 일어났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6일, 한국인 체포·구금 사태 이후 내놓은 논평에서 “이재명정부는 700조원 선물 보따리를 미국에 안겼지만 회담은 공동성명조차 발표하지 못한 채 끝났다”며 “그 결과가 고스란히 현대차-LG 합작 공장 단속 사태로 돌아왔다”고 맹공을 퍼부었다. 그러면서 “국민 사이에서는 실컷 투자해 주고 뒤통수 맞은 것 아니냐는 분노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며 “700조원에 달하는 투자를 약속해 놓고도 국민의 안전도, 기업 경쟁력 확보도 실패한 것이 이재명정부의 실용 외교 현실”이라고 비판했다. 우리나라는 관세 협상, 한미 정상회담 등을 통해 미국에 5000억달러(약 700조원)를 투자하겠다고 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도 지난 6일 페이스북에 글을 썼다. 수갑 채우고 수용소 넣고 장 대표는 “이번 사태는 단순한 불법체류자 단속을 넘어 앞으로 미국 내 한국 기업 현장과 교민 사회 전반으로 피해가 확산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심각한 사안”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수많은 한국 기업이 미국 전역에서 공장을 건설하고 투자를 확대하는 상황에서 근로자들이 무더기로 체포되는 일이 되풀이된다면 국가적 차원의 리스크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우리 정부는 이 같은 사태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미국 측과 방지책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다. 조 장관은 루비오 장관 등과 만난 자리에서 이번 사태의 재발 방지책과 대미 투자 한국 기업 관계자들의 비자 문제 등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에 따르면 조 장관은 유사 사례 재발 방지를 위해 새로운 비자 카테고리를 만드는 등 다양한 방안 논의를 위한 ‘한미 외교부-국무부 워킹그룹’ 신설을 제의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를 한미 관계 차원에서 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미 관계가 순탄하게 흘러가고 있지 않다는 신호로 봐야 한다는 설명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당선 직후부터 관세 등을 무기로 전 세계를 흔들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과정에서 우리나라가 동맹 취급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은 끊임없이 제기된 바 있다. ‘삐걱거림’은 이정부 출범 초기부터 감지됐다. 미국 백악관은 이재명 대통령 당선과 관련해 처음 내놓은 메시지에서 중국을 언급해 ‘이례적’이라는 말을 들었다. 백악관은 지난 6월3일 한국 대선 결과에 대한 언론의 질문에 “한미동맹은 철통같이 유지된다”면서도 “한국은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를 진행했지만 미국은 전 세계 민주주의 국가들에 대한 중국의 개입과 영향력 행사에 대해서는 여전히 우려하며 반대한다”고 말했다. 백악관의 메시지를 두고 이정부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 행사 견제, 실용 외교를 표방하는 이 대통령이 중국과 거리두기를 해야 한다는 압박 등 다양한 해석이 이어졌다. 당시 미국은 중국과 관세를 두고 이른바 ‘치킨게임’을 벌이고 있었다. 시간이 가면서 다소 소강상태가 되긴 했지만 갈등의 골은 여전히 남아 있다. 분위기만 화기애애? 관세 협상이나 한미 정상회담을 두고도 여전히 후폭풍이 계속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협상 시한으로 정한 날짜를 하루 앞두고 미국과 타결을 이뤄냈다. 당초 한미FTA로 우리나라와 미국 사이의 관세는 일부 품목을 제외하고 ‘0’이었기에 타격은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서한을 통해 언급한 상호 관세 25%를 15%로 낮추는 데는 합의했지만 과정은 난항을 거듭했다. 루비오 장관의 방한이 취소되는가 하면 ‘한미 2+2 통상 협의’를 앞두고 미국 측의 취소로 구윤철 기획재정부 장관이 발길을 돌리는 일도 벌어졌다. 일본이 먼저 관세 협상을 마무리하면서 기준이 생기고 시간에 쫓기는 등 여의치 않은 상황이 지속됐다. 결국 미국과의 관세 협상은 일본과 비슷한 수준에서 정리됐고 동시에 천문학적인 수준의 대미 투자를 약속했다. 이때도 관세 협상 결과를 두고 이견이 나타났다. 우리 정부 측은 쌀, 소고기 등 농산물 개방은 없다고 주장했던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전면 개방을 말했다. 또 대미 투자의 방식에서도 서로 다른 생각을 보였다. 이견은 한미 정상회담을 거치고도 조율되지 않은 모양새다. 미국 측은 관세 협상 타결 결과를 발표하면서 이 대통령의 방미를 언급했고 실제 한미 정상회담이 열렸다. 정상회담은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치러졌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앞에 두고 면박을 주는 등의 돌발 행동을 보인 바 있어 우려가 제기됐지만 무난하게 마무리됐다는 평을 받았다. 문제는 명문화된 결과가 없다는 점이다. 지난달 25일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은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진행했지만 공동합의문은 발표하지 않았다. 역대 우리나라 대통령들은 정상회담 이후 공동성명을 통해 동맹의 성과와 협력 의제를 문서화해 왔다. 당선 메시지에 중국 언급 정상회담 합의문도 없어 당시 공동합의문이 나오지 않은 데 대해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제기될 정도였다. 정상회담에서 각종 현안을 폭넓게 논의했지만 구체적 합의에 이르지 못한 결과였다. 특히 자동차 관세가 확정되지 않으면서 업계는 ‘불확실성’을 해소하지 못했다. 관세 협상에서 자동차 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추는 내용으로 타결했지만 문서로 명시되지 않은 것이다. 안보 문제 역시 마찬가지였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한미 정상회담 이후인 지난달 28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공동발표문이 항상 있는 것은 아니”라며 “정상 간 논의 내용은 상당 부분 생중계됐고 나머지는 언론 브리핑을 통해 양국 국민에게 효과적으로 설명했다”고 말했다. 위 안보실장은 “문건을 만들어내기까지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많은 공감대가 있었다. 그런 공감대를 바탕으로 추가 협의를 하면 마무리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8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나온 조 장관의 발언은 조금 더 구체적이었다. 그는 “투자 부문에서 국민에게 큰 부담이 될 수 있어 수용하지 않았다”며 공동합의문이 발표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말했다. 이어 “미일 간 합의문 내용을 보면 왜 우리가 협상을 지연해 가면서까지 안을 만들고 있는지 이해될 것”이라고 부연했다. 일본은 관세 협상에서 제조업·항공우주·농업·에너지·자동차 등 분야에서 미국에 시장을 개방하고 5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를 약속하는 내용의 합의를 진행했다. 또 합의 불이행 시 미국이 관세를 재조정할 수 있다는 조항이 담긴 것으로 알려지면서 ‘굴욕 협상’이라는 말도 나왔다. 조 장관은 “일본의 타결 협상안을 보면 우리가 비슷한 협상안을 받아들인다고 할 때 여러 문제점이 많다”며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을 분명히 하며 협상을 강하게 하다 보니 합의가 지연되고 있다”고 말했다. 반도체 품목 관세가 부과될 때 최혜국 대우가 불확실하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현재로서는 그렇다”고 인정했다. 불확실성 해소될까? 우리나라와 미국 사이에 자리한 불확실성이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이 타국을 대하는 방식은 이제 변수를 넘어 상수가 되는 모양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가 한미 관계를 더 흔들 가능성도 있는 상황이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