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결국 잡힌 ‘병풍사건 주역’ 김대업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9.07.08 09:51:34
  • 호수 122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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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바꿨는데…초라한 말로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김대업씨가 도피 3년 만에 필리핀서 붙잡혔다. 사기전과로 수배 중이던 그는 3년간 해외서 도피생활을 하다가 필리핀서 체포됐다. 김씨는 2002년 대선의 판도를 바꾼 ‘병풍(兵風)사건’의 주역이다.
 

▲ 병풍사건의 주역 김대업씨

지난 6월30일 오후 4시30분(현지시각). 필리핀 마닐라 말라테에 있는 한 호텔 입구를 지키고 있던 한국 경찰이자 코리안데스크였던 권효상 경감은 호텔 로비서 휠체어를 탄 남성을 발견했다. 코리안데스크는 해외로 도피한 한국인 범죄자 검거나 한국인이 피해자인 사건의 범인 검거를 지원하기 위해 외국의 경찰청에 파견하는 경찰관이다. 필리핀에는 2012년 처음 코리안데스크가 파견됐다. 현재 필리핀에 6명, 베트남에 4명의 코리안데스크가 있다.  

수사 중 
돌연 잠적

권 경감이 6개월간 행방을 쫓아왔던 김대업씨였다. 2002년 대선 당시 병풍사건을 일으켰던 바로 그 ‘김대업’이다. 권 경감이 ‘김대업이 말라테 인근을 돌아다닌다’는 첩보를 입수한 것은 지난달 초중순이었다. 수차례 탐문에도 김씨를 찾지 못하던 중 현지 정보원으로부터 새 정보가 들어왔다. 그가 말라테의 한 호텔에 있다는 소식이었다. 

김씨는 사기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던 중 2016년 10월 필리핀으로 달아났다. 3년 가까이 이어진 도피생활 탓인지 검게 그을린 김씨의 얼굴은 도피 전과 많이 달랐다. 하지만 권 경감은 휠체어를 보고 확신을 가졌다고 한다.

현지서 입수한 정보를 바탕으로 그가 허리는 약간 구부정해졌고, 지팡이를 짚거나 휠체어를 타고 다닌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권 경감은 현장에 함께 있던 필리핀 이민청 직원들의 도움을 받아 호텔 앞에서 택시를 잡으려던 김씨를 붙잡았다. 김씨와 휠체어를 밀어주던 한국인 남성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급하게 택시를 잡는 등 도주하려는 낌새를 보였다고 한다. 

권 경감이 “김대업씨 맞느냐”고 묻자, 김씨는 “맞다”고 한 뒤 순순히 체포에 응했다. 권 경감은 일요일이라는 이유로 협조요청을 거절하던 현지 이민청을 가까스로 설득한 끝에 체포에 성공할 수 있었다. 

체포될 당시 김씨는 짙은 색 러닝셔츠에 체크무늬 반팔 셔츠와 반바지를 입고 있었다. 샌들을 신고 있었는데 발 전체가 퉁퉁 부어 있었고, 혈색도 어두웠다고 한다. 김씨는 건강상태가 좋지 않아 휠체어와 지팡이가 없으면 스스로 한 발자국도 걷지 못하는 상태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2002년 대선 당시 ‘병풍사건’ 주인공
이회창 장남 돈 주고 군면제 의혹 폭로

김씨는 도피 기간 중 사업을 벌이거나 특별한 직업은 갖지 않았다. 도피 이후 여권이 만료돼 불법체류자 신세였고, 현지 관광객인 것처럼 카지노를 자주 찾았다고 한다. 카지노와 유흥가가 밀집한 말라테에는 한인 밀집지역이 있다. 숙소는 경찰의 추적을 따돌리기 위해 주로 게스트하우스를 전전했다고 한다. 

그는 필리핀서 한동안 한국인 남녀와 콘도에 함께 머물렀다. 돈을 받고 김씨를 돌봐주는 이들이었다. 하지만 김씨는 경찰에서 “그 사람들과 사이가 틀어지면서 돈도 뺏겼고, 그들이 내 휴대폰도 부숴버렸다. 그래서 지금 수중에 돈이 한 푼도 없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체포된 호텔서도 그는 채 하루를 머물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현지 조력자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경찰에 따르면 김씨는 강원랜드 등의 CCTV 교체 사업권을 따주겠다며 CCTV 업체 영업이사로부터 2011∼2013년 3차례에 걸쳐 2억5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피소당했다. 김씨는 사기 등 10건에 대한 A급 지명수배를 받고 있었다.


서울남부지검은 2016년 6월 김씨가 환청, 불안, 심장 스텐트 시술 등을 호소하자 그의 건강상태를 고려해 김씨가 회복할 때까지 수사를 중지하는 시한부 기소중지 처분을 내리기도 했다. 하지만 김씨는 변호인을 통해 검찰 출석 일정을 3차례 연기한 뒤, 같은 해 10월 국내를 빠져나갔다. 

검찰은 김씨의 출국 사실을 뒤늦게 알고 2016년 12월 기소중지 처분과 동시에 김씨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국내로 소환을 시도했지만, 이미 연락이 두절된 상태였다. 검찰은 2017년 1월16일 김씨에 대해 사기 등 10건에 대한 A급 지명수배를 내리고 국제공조수사를 요청했으며, 같은 해 1월23일 경찰청 외사수사과는 필리핀 마닐라 인터폴 코리안데스크에 김씨의 소재 확인과 검거를 지시했다.

도피 3년 만에 
필리핀서 체포

이후 지난해 11월 수원지검도 김씨에 대해 게임산업진흥법 위반·방조 혐의로 별건 수배를 경찰에 요청했다. 경찰은 신원과 소재확인 목적을 위한 청색수배를 요청해 영장을 발부받았다. 그런데도 김씨를 찾지 못했다.

그러던 중 올해 1월 김씨가 말라테에 자주 나타난다는 첩보가 권 경감의 귀에 들어온 것이다. 경찰청 외사수사과는 지난 2일 “말라테의 한 호텔서 필리핀 이민청과 코리안데스크가 공조해 김씨를 체포했다”고 밝혔다. 

김씨를 국내로 데려오기까지는 2~3개월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김씨는 2013년 불법 사행성 게임장을 운영한 혐의로 징역 1년2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형의 집행유예로 그는 보호관찰 대상이었다. 그가 해외로 도피하면서 보호관찰 의무를 준수할 수 없어 지난해 집행유예가 취소됐다. 이에 따라 그는 국내로 송환되면 징역형을 살아야 한다. 사기 혐의에 대한 수사는 별도로 받게 된다.
 

▲ 검찰 출두 중인 김대업씨

경찰에 체포된 직후 김씨는 “옛날에 내가 이회창씨 사건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말도 했다고 한다. 그 유명한 병풍사건을 언급한 것이다. 

군 부사관 출신인 그는 2002년 대선 직전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의 장남이 돈을 주고 병역을 면제받았다”는 이른바 ‘병풍의혹’을 제기했던 인물이다. 이 의혹으로 타격을 입은 이회창 후보는 당시 대선서 패배했고 민주당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당시 일부 민주당 인사는 그를 ‘의인’이라고 했지만 그의 폭로는 모두 허위인 것으로 밝혀졌다. 김씨는 대선이 끝난 뒤 허위사실 유포 등으로 징역형을 살았다. 

당시 언론 보도에 따르면 ‘1997년 대선 직전 이회창 후보의 장남 정연씨의 병역비리를 은폐하기 위한 대책회의가 열린 뒤 병적 기록이 파기됐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또 대선 직전인 2002년 12월3∼4일 “한나라당이 제3자에게 돈을 주고, 이회창 후보의 부인 한인옥씨가 아들의 병역 면제를 위해 병역 관계자에게 돈을 건넸다는 내용이 담겼다는 ‘김대업 녹음 테이프’가 조작됐다는 거짓 진술을 시키려 했다”는 취지의 언론 보도도 나왔다. 

이회창 후보 아들의 병적기록표가 위·변조됐으며, 불법 병역 면제를 은폐하려는 대책회의가 열렸고, 신검 부표를 고의적으로 파기했다는 주장이었다. 김씨는 같은 해 7월31일 기자회견을 갖고 직접 이회장 후보 아들의 병역비리 의혹을 제기했다. 이를 받아 당시 민주당 등은 이회창 후보 아들의 병역비리를 집중 공격했다. 

당시 병풍사건으로 불린 이 폭로는 대선 판도를 크게 흔들었다. 그러나 김씨는 대선 후 폭로와 관련해 명예훼손과 공무원 사칭, 무고 등 혐의로 실형을 살았다.


당시 법원은 김씨의 제보와 언론 보도에 대해 “내용이 진실하다고 인정하기에 부족하다”며 “얼마 남지 않은 대선서 한나라당 후보에게 불리한 영향을 주겠다는 현실적인 악의가 존재하지 않았나 하는 의심이 든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이 보도로 한나라당의 명예가 크게 훼손되고 그 영향이 16대 대선서 한나라당에 불리하게 작용했음이 명백하다”고도 덧붙였다.

실제로 당시 의혹을 제기한 두 언론사에게는 한나라당 측에 1억6000만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이 내려졌다. 대법원은 병풍사건의 첫 보도가 사실과 다르다고 확정한 것이다. 병풍사건 전체가 조작된 것인지 등에 대한 판단은 판결문에 나와 있지 않다. 그러나 첫 보도가 오보로 밝혀짐으로써 이 사건 전체가 허구였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 암시됐다.

대선 뒤집은 
병역 브로커 

이 사건의 원심 판결문도 “2002년 8월에서 9월경 사이에 실시된 각 언론사의 여론조사 결과에 의하면 이회창 후보의 지지도가 병역비리 의혹으로 인해 최대 11.8%까지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적시했다. 

야당 후보로서 대통령 재수에 나섰던 이회창 후보는 ‘대세론’을 업고 타 경쟁자를 압도했다. 하지만 김씨의 허위 폭로로 아들의 병역기피 의혹에 휩쓸리면서 상대 후보자에게 추격을 허용했다. KBS는 <9시 뉴스>서 이 사건에 대해 80여차례에 거쳐 집중 방송하는 등 이회창 후보에 타격을 가했다. 이후 지지율이 일거에 11%나 빠졌다. 

제15대 대선 당시 병풍이 교묘하게 병역을 기피했다는 ‘편법’ 시비라면 16대는 ‘탈법’으로 강도를 높였다는 점이 다르다.


김씨는 수감자 신분이면서 서울지검서 8개월 동안 수사관 행세를 하고 검찰 기자실서 기자회견을 갖기도 했다. 야당은 당시 김씨의 배후가 김대중 전 대통령이라고 주장했다. 김씨의 행위가 최고 권력의 비호가 없었다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다. 
 

김씨는 대선이 끝난 후 대법원 재판서 명예훼손 및 무고, 검찰수사관 사칭 등의 혐의가 모두 인정돼 징역 1년10개월의 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2004년 10월30일 잔여형기 1개월을 남기고, 1년 9개월 만에 가석방으로 출소했다. 

김씨는 출소한 이후에도 이회창 후보 아들의 병역비리 의혹은 사실이라고 주장하고 다녔다. 김씨의 허위 폭로의 최대 수혜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었다. 그는 2006년 노무현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주최한 ‘대선 승리 4주년’ 기념행사에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사기 수배 중 3년간 해외 도피
첩보 입수한 파견 경찰에 덜미

김씨는 이후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서 “정치권의 논리에 의해 힘이 없어 감옥에 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당시 “한나라당은 병풍과 관련해 ‘청문회를 하자’ ‘국정감사를 하자’면서도 내가 나서겠다고 하면 안 한다”고 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도 이회창 후보에 대해서는 “인격적으로 훌륭한 걸 알고 있다”며 “병역 부분만 빼면 개인적으로 그분에게 미안한 감정이 왜 없겠나”고 언급했다. 

노 전 대통령은 취임 전과 후에 김씨를 2차례 만난 것으로 전해진다. 노무현정권 말기 그에 대한 사면 시도가 있었지만, 법무부의 강한 반발로 무산되기도 했다. 당시 그는 사면이 무산되자 병풍의 내막을 폭로하겠다고 예고했지만 실행으로 옮기진 않았다. 

2008년 1월에는 전년도 연말 사면대상서 제외되자 언론과 접촉해 “노무현 대통령의 측근들로부터 배신을 당했다”며 “조만간 그들의 이중적인 행동과 실상을 폭로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김씨는 2004년 10월30일 출소 후에도 여러 차례 범죄를 저질렀는데 사실 병풍사건 이전에도 이미 사기 등 전과 5범이었다. 

2004년 12월에는 초등학교 동창생에게 접근해 개발 예정지를 살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며 1억1000만원짜리 땅을 3억8000만원에 사도록 하고, 차익 2억7000만 원은 본인이 챙겼다는 혐의도 받았다. 김씨는 동창에게 “내가 국가정보원서 일하는데 정부가 경기도 연천에 문화관광단지를 세운다고 한다”며 “땅을 사면 큰 이익을 볼 수 있다”는 거짓 정보를 제공하고 투자금을 받아 챙긴 혐의를 받았다.  

당시 경찰에서 불구속 입건으로 검찰에 송치된 뒤 보강 수사를 받던 중 잠적했다. 그러다가 2008년 4월 서울서 경찰의 일제 교통단속에 걸려 체포됐다. 결국 김씨는 2008년 5월 1심서 징역 10개월을 선고받고 다시 수감생활을 했다.    

오랜 도피로 
건강에 이상

이 외에도 경찰이 수사 중인 음주운전 사건을 무마해주겠다며 지인에게 800만원을 받아 기소됐다. 경기도 광명서 동업자와 함께 불법 사행성 오락실을 운영해 체포되기도 했다. 이미 전과 9범인 그는 또다시 사기 사건에 연루돼 필리핀으로 3년간 도피했지만 결국 체포됐다. 

7년 전인 2012년에는 당시 대통령 후보로 나선 안철수 전 바른미래당 대표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한 온라인 매체와의 인터뷰서 “안철수씨나 나나 친노에게 이용만 당했다”며 “(친노 세력이)결국 안철수를 중간에 놓고 쥐고 흔든 거다. 안씨나 나나 동병상련”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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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총질 ‘친명 전쟁’ 서막

내부 총질 ‘친명 전쟁’ 서막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당내 울려 퍼지던 비명(비 이재명)계 소리가 사라졌다. ‘내부 저격수’가 사라졌으니 이제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 중심으로 똘똘 뭉쳐 국회를 꽉 잡을 것이란 희망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다른 한쪽에서는 우려의 뜻을 내비친다. ‘이재명 독주’ 체제로 완성된 민주당이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겠냐는 점에서다. 22대 총선서 압승을 거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큰 폭으로 물갈이에 나섰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주요 자리에 친명(친 이재명)계 인사들을 대거 투입했다. 친명 위주의 인선을 단행해 원팀 민주당을 꾸리겠다는 셈이다. 공천 파동을 딛고 살아남은 친명 의원들이 일제히 한 보 전진했다. 피바람 잦아드니… 지난 21일 이 대표는 사무총장에 김윤덕 의원을 임명했다. 김 의원은 이번 총선서 전략공천관리위원회 위원을 지낸 인물로 지난 20대 대선 경선 당시 이재명 후보의 열린캠프서 활동한 바 있다. 조직사무부총장은 황명선 당선인, 당 대표 정무조정실장에는 김우영 당선인, 전략기획위원장은 민형배 의원 등 친명계가 이름을 올렸다. 민주당의 정책을 이끌 민주연구원장에는 이 대표의 ‘정책 멘토’로 알려진 이한주 전 경기연구원장이 선임됐다. 이 원장은 이 대표의 ‘기본소득’을 설계한 인물로 민주당이 제시한 ‘25만원 지원금’에 전폭적으로 힘을 실어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법률위원장에는 이 대표의 대장동 변호를 맡은 박균택 당선인이 낙점됐다. 이 밖에도 당 대표 비서실장에는 천준호 의원, 당 대표 정무조정실장에는 김우영 당선인, 교육연수원장에는 김정호 의원, 수석대변인에는 박성준 의원, 대변인에는 한민수·황정아 당선인이 자리했다. 이날 한민수 대변인은 인사 소개를 마친 후 당직 개편에 대해 “4·10 총선의 민심을 반영한 개혁 과제 추진에 있어서 동력을 형성한다는 의미가 있다”며 “신진 인사들에게 기회를 부여한다는 의미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인선은 이 대표가 국회에 입성한 후 진행된 두 번째 물갈이다. 2022년 8월 이 대표가 취임 직후 단행한 인선을 두고 ‘친명 일색’이라는 거친 비판이 터져 나왔다. 곧바로 한병도·권칠승·고민정 등 대표적인 친문(친 문재인)계 인사를 등용하면서 논란을 잠재웠지만 이번 총선서 친명이 주류를 이루면서 이들을 당에 대거 투입한 것으로 풀이된다. 22대 국회 문턱을 넘은 친문 세력은 약 스무명 안팎인 것으로 전해진다. 한때 민주당 180석을 지탱하던 핵심축이었지만 총선을 거치면서 세력이 급격히 쪼그라들었다. 민주당 공천을 두고 ‘비명횡사 친명횡재’라는 말이 나오자 고민정 최고위원은 위원직을 사퇴했다가 다시 복귀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이처럼 공천 피바람이 당내를 휩쓸었지만 총선 이후 이 대표를 비판하던 목소리가 단숨에 잦아들었다. 총선 결과 이후 이 대표 체제는 더욱 견고해졌다. 이 대표를 거칠게 비판하며 당을 떠나거나 새로운 둥지를 꾸린 이들이 줄줄이 낙선하면서다. ‘친명’ 타이틀 달고 꽃밭 안착 둥지 떠난 탈당파 줄줄이 낙선 새로운미래 이낙연 공동대표는 이 대표와 대립각을 세운 뒤 탈당해 새로운 당을 꾸렸다. 이번 총선서 광주 광산을에 출사표를 던졌지만 민주당 민형배 당선인에게 62.25%p로 크게 밀려 패배했다. 이 공동대표가 야심 차게 창당한 새로운미래는 지역구 한 석에 그치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개혁신당과 손을 잡은 이원욱 공동선대위원장 역시 지역구서 낙선했다. 탈당 후 국민의힘으로 이적한 ‘5선 중진’ 이상민 의원과 김영주 의원(국회 부의장)도 고배를 마셨다. 홍영표·설훈 등 다른 비명계 의원 역시 줄줄이 낙선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당을 떠나면 춥다는 걸 몸소 보여줬다”며 “소위 비명계로 분류됐던 이들이 모두 당을 떠났으니 당내 파열음이 나오지 않는 건 당연한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대부분 여의도를 떠나게 됐으니 당분간 ‘내부 저격수’로 불리는 이들의 목소리는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친명 체제에 화룡점정을 찍을 원내대표 선출 결과에도 눈길이 쏠린다. 내달 3일, 선출을 앞둔 차기 원내대표 선거가 사실상 친명인 박찬대 의원의 독무대인 만큼 ‘친명일색 민주당’이 완성될 것이란 해석이 우세하다. 박 의원은 지난 21일, 일찌감치 출마 기자회견을 열고 “이재명 대표와 강력한 투톱 체제로 개혁 국회, 민생 국회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최고위원직을 사퇴한 박 의원이 신호탄을 쏘아 올리면서 자천타천으로 물망에 오른 의원들은 속속 불출마를 선언했다. 서영교 최고위원은 지난 22일 원내대표 출마 선언을 위한 기자회견을 예고했지만 돌연 취소했다. 당 대표 ‘원픽’ 이와 관련해 서 최고위원은 “(박찬대 의원 포함)2명 다 최고위원직을 사퇴하면 제가 원내대표에 당선돼도 최고위원 두 자리가 비게 된다”며 “총선에 압도적으로 이긴 이 대표 체제에 문제가 된다는 게 처음부터 고민이었는데 사전에 조율하지 못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4선 김민석 의원도 “당원 주권의 화두에 집중해 보려고 한다”며 불출마를 시사했다. 인재위원회 간사였던 3선 김성환 의원과 원내수석부대표인 박주민 의원 역시 불출마 입장을 표했다. 민형배·진성준 의원도 하마평에 올랐지만 각각 전략기획위원장, 정책위의장에 임명되면서 자연스레 출마가 불발됐다. 이로써 원내대표 출마 후보군은 박 의원 한 명으로 압축됐다. 친명계 핵심인 만큼 이 대표의 의중인 ‘명심’이 강하게 작용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당초 10명 안팎의 후보군이 난립할 것으로 예상됐으나 물밑서 이 대표가 교통정리에 나섰다는 해석이다. 당 대표의 노골적인 선거개입이라는 비판이 나왔지만 당을 좌우하는 명심에 대항하기는 사실상 어렵다. 친문 인사가 끼어들 틈도 없이 빠르게 상황이 흘러갔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의 설명이다. 민주당 원내대표 겸 의장단 선출 선거관리위원회 간사인 황희 의원은 지난 24일, 선거관리위원회 1차 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당규상 민주당서 원내대표 선거는 결선투표가 원칙으로 기본적으로 과반 득표를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후보자가 1인일 경우 찬반 투표를 하기로 정했다”고 설명했다. 원내대표 다음으로 주목받는 자리는 바로 차기 국회의장이다. 당내 우직한 이력을 가진 후보들이 기싸움이 이어가면서 명심이 누군의 손을 들어줄지 주목되는 상황이다. 민주당에서는 6선에 성공한 조정식·추미애 당선인과 5선인 정성호·우원식 의원이 22대 전반기 국회의장 출마를 밝혔다. 이들은 일제히 “기계적 중립은 없다”는 입장을 강조하며 강경 성향 의원의 표심을 얻기 위한 선명성 경쟁에 나섰다. 완벽한 시나리오 먼저 정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기계적 중립만 지켜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며 “민주당 출신으로서 다음 선거의 승리를 위해 보이지 않게(그 토대를) 깔아줘야 된다”고 말했다. 여야 간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을 경우 다수결의 원리에 따라서 다수당의 주장대로 갈 수밖에 없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정 의원은 이 대표의 사법연수원 18기 동기로 알려졌다. 40년 가까이 알고 지낸 만큼 ‘원조 친명’이자 ‘친명계 좌장’으로 통한다. 이 대표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7인회’ 핵심 멤버기도 하다. 친명 후발주자인 추 당선인도 국회의장 도전에 대해 “주저하지 않겠다”며 “국회의장도 물론 좌파도 우파도 아니다. 그렇다고 중립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정치적 유불리를 계산하지 않고 유보된 언론개혁, 검찰개혁을 해내겠다는 의지를 거듭 밝히면서 강성 지지자의 호응을 유도했다. 민주당 조 전 사무총장도 “여야 합의가 될 때까지 무한정 기다릴 수 없다”며 “국회의장이 되면 긴급 현안에 대해서는 의장 직권으로 본회의를 열어 처리하겠다”고 말했다. 민주당이 과반석을 차지한 만큼 당내 경쟁도 치열해진 양상을 띠고 있다. 국회의장 경선에 당원투표를 반영하자는 주장까지 나온 것으로 전해진다. 강성 지지층의 힘이 크게 작용하는 만큼 후보들은 당심을 겨냥하기 위해 명심을 강조할 수밖에 없다. 당의 주요 인사들이 ‘이재명과의 호흡’을 강조하고 나선 만큼 이 대표의 의중인 ‘명심’은 당을 좌지우지하는 강력한 무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를 앞세운 메시지가 앞다퉈 나오면서 입법 독주에 대한 우려 섞인 목소리도 커질 전망이다. 국민의힘은 “너도나도 ‘명심팔이’를 하며 이 대표에 대한 충성심 경쟁을 하니 국회의장은커녕, 기본적인 공직자의 자질마저 의심스러울 정도”라며 “협치라는 말을 머릿속에서 아예 지워버려야 한다는 망언을 빙자한 민주당의 속내가 흘러나오는 가운데 상임위를 독식하겠다는 위헌적 발상도 서서히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다”고 비판했다. 솔솔 올라오는 ‘대표 연임설’ 대세는 ‘명심’…친문계 주목 총선 승리 이후 일부 민주당 의원들 사이에서 “협치는 없다”는 기류가 흐르자 이를 꼬집은 것으로 풀이된다. 이처럼 당내 주요직이 속속들이 친명으로 배치되는 가운데 친문에게 더 이상 핵심적인 역할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여기에 이 대표의 연임설까지 불거지면서 ‘이재명호’ 민주당은 한층 견고해질 전망이다. 이 대표 임기는 오는 8월28일까지다. 이제까지 민주당서 당 대표가 연임한 역사는 없지만 당헌·당규상 이를 금지한 조항도 없다. 이 대표가 마음만 먹는다면 몇 번이고 당 대표를 연임할 수 있다는 뜻이다. 게다가 이 대표는 20대 대선 패배 직후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와 전당대회에 연이어 출마하면서 이전과는 다른 선례를 남기기도 했다. 총선 승리 직후부터 친명 의원 중심으로 “민주당에 압승을 가져다준 이 대표가 한번 더 당 대표를 맡아야 한다”는 여론이 일면서 친·비명 간의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정성호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국회가 본연의 역할을 하고 민주당이 윤석열정권의 무능과 폭주하는 이 상황을 막아야 된다는 측면서 당 대표가 강한 리더십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며 “그런 면에서 연임할 필요성도 있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총선이 끝나고 이 대표를 만나 “강한 당 대표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전달했다고도 덧붙였다. 해남·진도·완도에 승기를 꽂은 박지원 당선인 역시 “만약 이 대표가 계속 대표를 한다고 하면 당연히 해야 한다. 연임해야 맞다”며 “이번 총선을 통해 국민이 이 대표를 신임했다”고 전폭적으로 힘을 실어줬다. 반면 친문계 핵심으로 꼽히는 윤건영 의원은 이 대표 연임에 대해 “전당대회가 넉 달이나 남은 상황서 민주당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이슈”라며 “지금은 총선서 나타난 민의를 충실하게 수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우려를 표했다. 이어 “당의 리더십에 관한 것은 시간을 두고 차분하게 풀어가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여의도 정가에 밝은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친명 체제를 두고 외부서 걱정하는 모양이지만 정작 당내에서는 후폭풍이 불 수 없는 상황”이라며 “비명 의원끼리 바람을 일으키려고 해도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폭풍 전야 잔잔한 미풍 일제히 이 대표의 의중만 바라보는 민주당은 친명과 찐명 그리고 ‘신명(새로운 친명)’만 존재하게 된다. 이런 상황서 “당의 민주주의가 제대로 실현되겠냐”는 비판이 물밑으로 조용히 들려온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애초에 이 대표의 목적은 자신만의 민주당을 만드는 거였고 이번 총선을 통해 결국 이뤄냈다”며 “친명 민주당이라는 날카로운 검을 어떻게 사용할지 결국 이 대표의 손에 달려 있다. 이 대표는 임기를 마치는 날까지 자신의 영향력 밑에 당을 두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속 타는 조국혁신당 교섭단체 구성에 난항을 겪는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과의 거리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앞서 조국당 조국 대표는 여러 차례 민주당 이재명 대표에게 ‘범야권 연석회의’를 제안했지만 이 대표는 만찬 회동으로 갈무리하는 데 그쳤다. 민주당 내에서는 “아직 그럴 시기가 아니다”라며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이 대표와 어깨를 나란히 하려는 조 대표가 부담스럽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하지만 캐스팅보트 역할을 쥔 것 또한 조국당인 만큼 22대 국회 개원 이후 민주당과 협상 테이블에 앉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박>